센카쿠 열도



지난달 해운대에서 열린 동북아 평화 관련 심포지엄 자리에 참석해서 중국 쪽 발표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중국 해군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발표자는 커진 중국의 국력에 걸맞은 대우를 미국 쪽에 요구하며 타이타닉호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논조로 발언을 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조심스럽게 해왔던 표현과는 상당히 다른 태도였다.


덩샤오핑이 설계한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에서 탈피해 중국군이 공세적 국방개념인 주동작위(主動作爲) 전략으로 전환하며 동아시아의 긴장이 격화되고 있다.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6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미국에게 신형 대국 관계를 내세우며 영토 등 핵심 이익을 침해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중국, 미국 중심 질서에 대한 도전


중국은 한국 관할인 이어도와 일본과 영유권 분쟁이 계속되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다오위다오)를 포함한 동중국해 상공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다. 방공식별구역 설정은 중국의 최대 안보 핵심지역인 동남해안에서 미국과 일본의 패권을 뒤집기 위한 자기 근거를 만든 것이다. 중국이 이번에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은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을 노골적으로 크게 파고들어 갔다는 점에서 매우 도발적이다. 상대방의 군용기가 사전 통보 없이 이 구역에 진입할 경우 군사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어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 간 무력충돌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국, 일본, 대만 상공에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주체는 냉전시대 미국이며 중국의 이번 조처는 70년 가까이 관철돼온 미국 중심의 질서에 대한 첫 도전인 것이다.



중국이 동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이틀 후에 미국이 첨단 전략 무기인 B-52 폭격기를 내세워 무력시위를 벌인 것은 미국의 핵심적 이익과 관련된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의 중심을 중동에서 아시아로 옳기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은 미국 외교사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이데올로기와 미국 외교'(산지니)의 저자인 마이클 H. 헌트는 미국 외교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현상만 관찰해서는 안 되며, 그 이면에서 미국 외교 정책을 구조적으로 제약하는 어떤 거대한 '이념의 덩어리'(저자의 용어로 '이데올로기')를 먼저 포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1차 세계대전 이후 30년간은 친중, 반일 정책을 펴다가 태평양 전쟁 이후 30년간은 거꾸로 친일, 반중 정책을 펴게 된 것도 그 어떤 신비한 숙명 때문이 아니다. 또 미국이 유럽 대륙에서 벌어진 세력균형 게임의 주인공이 되면서 피비린내 나는 세계대전에 두 번이나 뛰어든 것, 또 기존 제국들이 붕괴한 1945년 이후 유럽에서 힘의 공백을 메우려고 뛰어든 것도 미리 정해진 역사의 숙명이 아니었다. 검증과 정련의 과정을 거쳐 미국 민족주의의 바탕으로 녹아든 미국 외교 정책 이데올로기가 20세기에 미국으로 하여금 국제정치와 해외전쟁의 덤불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갈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19~20세기 중국 텍스트 번역 과제


중국이 추구하는 신형 대국 관계는 미국의 수락 없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중국의 실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19~20세기는 중국 전통 지식과 서구 근현대 지식이 융합하여 중국의 새로운 지식이 창출되는 공간으로, 중국이 학문적으로도 급성장함에 따라 그 진원지로서 세계 중국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분야이다. 이 분야의 연구를 위해선 무엇보다 중국 근현대 지식을 창출한 주요 텍스트들의 번역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는 아직 이러한 텍스트들의 번역이 공백으로 남아 있는데, 이는 근현대 중국의 텍스트들이 중국과 서구의 사상과 지식이 복잡하게 융합되어 있고, 언어적인 면에서도 쉽게 읽히는 현대 중국어가 아니라 난해한 고문과 아울러 서구 지식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신조어가 복합되어 있어서, 번역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연구자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강수걸 출판사 산지니 대표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