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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일기

저랑 같이 규슈로 맛집 가실 분~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2. 27.

“규슈? 잘 모르겠어? 괜찮아, 겁먹지 말고 페이지를 넘겨 봐.”

 

 

『규슈, 백년의 맛』저자는 마치 그렇게 제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250여 페이지에 알맞게 자리하고 있는 도톰한 이 책이 어떤 이야기를 펼쳐낼지, 출판사 인턴 첫 날이 얼떨떨한 저는『규슈, 백년의 맛』책을 읽기 전, 생전 처음 와보는 일본 요리점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음식점에 앉았지만 정작 주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우물쭈물 대는 그런 손님 말입니다. 하지만 곧 저는『규슈, 백년의 맛』속의 재밌는 이야기와 다양한 음식에 매력을 느끼고 책에 푹 빠져들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규슈, 백년의 맛』은 굉장히 ‘맛있게’ 잘 읽히는 책입니다.

 

콩의 풍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한 가와시마의 소쿠리두부

 

부산일보 기자인 저자들은 일본 후쿠오카에서 돈코츠라멘을 맛보고 우리나라의 돼지국밥을 떠올립니다. 돼지 사골 육수와 돼지고기를 올려주는 것에서 두 나라 음식문화 속의 닮은 점을 찾고, 작은 가게도 백년 넘게 대를 이어가는 일본의 음식점에서 놀라움을 느끼며 본격적인 규슈 맛집 여행을 시작하는 것인데요. 이 책에서는 규슈의 오랜 맛집을 중심으로 '맛', '고집', '이야기', '지역', '생각' 의 다섯 가지 파트를 나누어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읽다보면 깔끔하고 속이 꽉찬 요리를 코스별로 맛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배부르지만 맛이 없는 음식, 맛은 있지만 속이 허전한 음식, 건강에는 좋지만 잘 안 먹히는 음식 등등, 다양한 음식 중에서도『규슈, 백년의 맛』을 음식에 비유하자면, 정말 맛있게 배부른 음식이 아닐까 합니다!

 

     술 마시고 난 후 먹는다는 속풀이용 우동으로 담백하고 부드러운 면이 자랑이라는 도가쿠시

     

이 책은 규슈의 맛집 소개서일 뿐만 아니라 일본과 한국 사이에 오고간 문화적 교류가 어떻게 각 나라의 음식을 발전시켰는지 숨은 비화도 넌지시 알려줘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하기도 합니다. 책을 읽기 전까지 저는 우리가 라면, 과자와 같은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한국의 명란젓이 일본에서 멘타이코가 되고, 돌솥에 내장과 채소를 넣고 끓이는 모쯔나베는 정말 뜨뜻한 곱창전골을 떠올리게 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으니까요.

 

고급 레스토랑에서 최고급 요리를 만드는 마음가짐으로 만든다는 작은 과자 쇼로만쥬

 

또한 이 책에 소개된 규슈의 음식, 그리고 그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그들의 따뜻한 음식 철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백년의 맛’이라는 제목답게 지역과 더불어 대를 이어 내려왔기 때문에 작은 음식 하나하나에도 그 가문의 전통과 신념,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인데요. 요즘은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생겨났다가 사라져버려서, 미처 우리가 기억하고 추억할 겨를도 없이 많은 것을 놓치게 되는 것 같아 씁쓸할 때가 있습니다. 오래된 것일수록 사람들의 추억을 가득 품고 있을 텐데요. 규슈의 오랜 가게들이 아버지에서 아들로, 어머니에게서 딸로 이어지며 함께 나이 드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고 부러웠습니다.

 

새로운 조합의 시도로 탄생한 딸기 밤 크림치즈의 난자고라 다이후쿠 (제일 먹어보고 싶어요, 크림치즈 ㅠㅠ)

 

책을 읽으면서 제가 살고 있는 영도에는 이런 오랜 맛집이 없을까 생각해봤는데, 한 번에 떠오르는 가게가 잘 없더군요. 프랜차이즈 카페와 음식점, 빵집은 정말 손쉽게 찾을 수 있는데, 정작 우리 동네를 오래 지켜준 작은 맛집들은 꽁꽁 숨어버린 듯해서 안타깝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그렇게 추억을 가득 품으며 오래도록 함께 나이 들어가는 가게가 많으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끼며,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저 스스로 지역의 맛집들을 먼저 살펴봐야 하겠죠.

 

“가업을 이어가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창업자 할아버지의 ‘공생하라, 남들과 경쟁하지 말라’는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 우리 집이 후쿠오카 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향이 되었으면 좋겠다.”

 

1905년부터 100년 넘게 빵집을 이어오는 '만세이도 빵집'의 오랜 경영철학에서 ‘백년의 맛’이 가지는 그 고유의 가치를 조금 알 것도 같았습니다.『규슈, 백년의 맛』속의 수많은 가게들도 위기가 있었지만, 그 가치를 인정하고 지키려는 사람들과 함께 위기를 우직하고 현명하게 극복해 냈습니다. 문득, 영도 봉래시장 골목에 있는 돼지국밥집에 뜨끈한 국물과 말캉말캉한 순대가 생각이 납니다! 오늘 집으로 가는 저녁 길에는, 제가 꽤 오래 살고 있는 영도의 '맛'을 좀 돌아봐야겠습니다.

 

 

 

규슈, 백년의 맛 - 10점
박종호.김종열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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