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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일기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것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 12.


  서재라는 곳은, 문 열고 들어와서 사람 만나는 데죠. 어쨌든 책이 사람들인 거니까요. 그래서 손에 잡히면 ‘아, 오늘은 이분하고 한 번 이야기를 해보자’하는, 그런 곳입니다.

  책은 덮어놓으면 무생물이지만 펼치는 순간에 생물이 되고. 또 교감까지 하면 친구가 됩니다. 덮어놓으면 작가분도 주무시고, 펼치면 작가분도 깨셔야 하고.

-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교보문고에 들어섰을 때, 방송인 김제동이 말하는 서재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동감했습니다. 저 역시 항상 서점에 발을 내딛으면, 그 공간에서 실재하고 있는 독자들을 비롯하여 책에 내재하고 있는 저자, 편집자 등등의 수많은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에 귀가 멀어버릴 지경이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듣기 싫은 소리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들어보면, 그 매력에 중독되어 한동안 곁을 머물게 되거든요.^^

 

- 산지니출판사의 책도 있어서 너무 신기했답니다^^

베스트셀러 코너 앞에서 독자들은 이런 소리를 냅니다. ‘이게 왜 베스트셀러야?’, ‘왜? 난 충분히 좋은 책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난 전혀. 이것보단 저게 더 베스트셀러감이야.’ 어린이 서적 코너에 가면 이런 소리도 들립니다. ‘엄마, 이거 살래. 응?’, ‘안 돼. 저번에 샀던 책도 다 안 읽었잖아.’, ‘가서 읽을게. 그러니까 사 줘, 사 줘!’ 독자들의 소리엔 웃음 지으며 넘어갈 수 있지만, 저를 가장 심란하게 만드는 곳은 엄청나게 시끄러운 신간 코너입니다. 좁은 공간에서 겨우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사람들이 독자라도 하나 다가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를 내지릅니다. 그야말로 시장터이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세차게 손을 흔드는 사람은 표지 디자이너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화려하게, 또 어떤 사람은 심플하면서 강렬하게 자신을 꾸미고서 저에게 손을 마구 흔들지요. 그러면 저는 누구에게로 가야할 지 몰라서 몇 번을 갈팡질팡합니다. 바로 그 때 출판업계의 사람들이 외칩니다. ‘이건 아마존에서 4주간 1위를 놓치지 않았던 책이라고!’, ‘저건 약과야. 이 책은 전 세계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던 책이라니까!’, ‘이것 봐. 유명인들이 하나 같이 칭찬해놓은 거 안 보여?’ 그래도 제가 망설이자,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마구 끌려 다니며 결국 저는 저자들까지 만나게 됩니다. 처음 접하는 저자들부터 시작해서 저의 집 책장 한 칸에 잠들어 계시는 저자들까지, 모두 저를 곤혹스럽게 하지요. 휴우~

  덕분에 그들의 틈에서 벗어나 교보문고를 나오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는 길에, 표지를 보고 단번에 고른 「평면견」(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황매, 2010)을 꺼내어 표지 디자이너부터 시작해서 여러 사람들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우연히도 그 다음날, 저는 그 책의 표지 디자이너와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지요. 평면견의 표지를 이미지로 갖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이던 중에요.

  저는 잘 그려진 원본 그림을 발견하고서 ‘잘 됐다!’ 하며 가져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이런 글을 달아놓으셨더라고요. ‘열 손가락 중에 안 아픈 손가락 없다죠. 그 손가락들 중에 하나입니다. 제발 무단 사용, 스크랩 하지 말아주세요.’

  왠지 모르게 저는 그 글에 그 분의 진심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잠시 망설이다가, 그 이미지를 가져가는 대신 짧은 글을 남기고 나왔습니다. ‘당신의 손가락 때문에 이 책을 사게 되었습니다. 정말, 정말로 수고하셨어요.’

  그리고 다음날, 그 분이 남긴 글을 보았습니다. 서점에 들렀는데 자신의 그림이 눈에 띄지 않아서 내심 안타깝고 속상했다고, 그런데 덕분에 기분도 좋아지고 힘이 난다고, 감사하다고 말입니다.

  서점에서 책을 접하며 꼭 한 번 실제로 만나고 싶다거나 이런 사람과는 오래도록 이야기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꽤 멀고 먼 얘기라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좋다 생각했던 표지 디자이너를 만나 짧지만 이야기도 나눠보고, 산지니 출판사에서 편집자 분들을 비롯한 책의 출판 과정에 관련된 분들과 함께 있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것이 바로 서점이자 서적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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