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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내 ‘중국 없는 중국학’ 비판 … 이 책의 미덕은? (교수신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2. 24.

책을 말하다_ 『방법으로서의 중국』 미조구치 유조 지음|서광덕·최정섭 옮김|산지니|296쪽|25,000원

그가 내세운 중국학은 바로 ‘자유로운 중국학’이다. 여기서의 자유의 의미는 물론 ‘진화’에서 벗어나 방법론상의 자유의 확대를 가리키는 동시에 사회주의 중국이 지향하는 바를 자신의 學의 목적의식으로 삼는 그러한 중국밀착적인 목적으로부터의 자유 또한 가리킨다.

 

 



 
   
 

중국을 대상으로 자신의 사유를 전개한 사상가들 가운데 한 사람인 미조구치 유조(1932~2010)의 초기 저작 『방법으로서의 중국』이 시간이 꽤 흐른 지금 국내 독자들에게 선을 보인다. 오래 전부터 이 책의 번역을 염두에 뒀는데, 이제야 출판을 하게 돼 감회가 남다르다. 특히 중국의 싼롄서점에서 ‘미조구치 유조 전집’의 완간을 앞두고 있는데, 그에 못지않게 한국에서도 지금까지 미조구치의 저작은 많이 번역돼왔지만 유독 이 책만 번역되지 않아 조바심을 내던 차였다. 이미 번역된 저작들 대부분이 전문 연구서임에 반해 이번에 출간된 『방법으로서의 중국』은 자신의 학술연구를 바탕으로 ‘지금 중국을 말하는 이유’를 종래의 일본 중국학을 비판하면서 밝히고 있는 저서라는 점에서 전문 연구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에게도 유용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1980년대에 발표한 논문들을 수록한 이 책에서 그가 강조하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근대 중국을 분석하는 주류적 방법론에 대한 비판이다. 여기서 주류적 방법론이란 중국의 근대를 바라보는 종래의 시각 즉 진화론에 입각한 단계론적 시각을 가리킨다. 미조구치는 종래의 양무운동-변법유신-신해혁명이란 단계론적 구도에 따른 중국 근대사 이해가 얼마나 많은 오해와 병폐를 나았는지 조목조목 지적한다. 아울러 진보-보수, 사회주의-자본주의, 선진-후진이라는 단순한 이원론적 구도로는 중국의 근대가 지닌 독특함 그리고 이것이 드러낸 다양한 역사구조상의 모순들을 정확히 투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주장은 현재적 시점에서 본다면 새로운 내용은 결코 아니다. 게다가 당시에도 이와 같은 서구 중심의 근대 이해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도 제기됐다. 그런데 미조구치의 강점이라고 한다면, 중국의 근대 특히 현실 중국(중국 사회주의)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식의 단계론적 시각에서 ‘봉건’이라고 명명된 전근대를 일방적으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획득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미조구치는 중국의 근대를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大同的 근대’라고 정의하고, 근대 중국에서 일어난 혁명 전체를 장기적으로 부감하는 시각을 갖지 않고서는 중국의 근대를 규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중국의 ‘非’가 아닌 ‘異’적인 전근대와 근대의 전 과정을 역사적으로 투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미조구치의 이러한 주장이 중국의 근대를 분석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즉 그의 중국 연구는 세계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말한 ‘중국을 방법으로 세계를 목적으로’라는 구호는 중국 연구가 지향해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미래 세계의 문명에 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데 중국 연구가 일조할 것이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서구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중국이라는 창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의 표현인데, 그것은 중국 근대사의 제 현상을 횡적으로 대비하고 종적으로 탐문하는 과정에서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중국 연구자가 담당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 책에서 미조구치의 시선은 중국학의 역사로 옮겨 간다. 이 책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내용이 바로 일본 중국학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 검토인 이유다.


미조구치가 1980년대에 현실 중국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일본 중국학 분야의 선배 연구자인 다케우치 요시미를 비롯한 좌파 지식인들의 탈근대적 중국론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됐다. 그는 좌파 지식인들의 탈근대론적 중국론 역시 사회주의 중국을 이상화하는 오류를 범했는데, 더 큰 문제는 이들이 거부했다는 서구식의 근대 이해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미조구치가 비판한 근대에 대한 단계론적 해석을 철저하게 인정하는 위에서 그들의 중국 연구가 성립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바로 앞의 선행 중국학 연구를 비판하는 데서 출발해 일본의 중국학 연구사의 흐름을 중심적인 학파를 대상으로 기술했는데, 그는 이를 크게 ‘중국 없는 중국학’과 ‘중국밀착적 중국학’으로 구분했다. ‘중국 없는 중국학’은 일본의 전통 漢學과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서구(유럽)의 시놀로지를 수용한 지나학이 해당한다고 규정한 반면, ‘중국밀착적 중국학’은 바로 앞에서 말한 좌파들의 낭만적 중국 이해 또는 연구라고 지적한다.


근대 이전 중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정치, 경제, 문화적인 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시대에 보편적인 학문으로서 ‘한학’이 존재했었다. 그 ‘한학’의 내용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근대 이후에도 동아시아 각국에서 여전히 위력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런데 현실 중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이 ‘한학’적 연구방법론만으로는 부족하며, 아울러 서구의 시놀로지를 수용한 지나학 역시 과학적 방법론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을 차례로 비판했다. 미조구치에게 중국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며 바로 현재의 중국이며, 그리고 이 중국은 결코 과거가 박제화 된 채로 있는 것이 아니며 미래 역시 이 과거와 현재의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한학’이나 ‘지나학’은 그런 점에서 ‘살아 있는 학문’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파악했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유교(학)가 지닌 다층적인 의미를 포착하고, 근대 이후의 ‘봉건’이란 이름으로 부정된 反 유교 운동의 과격한 측면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학문이 정치(혁명)과 결부됨으로 그 자신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는 과거(전통)에 대한 학술적 해석에 있어서 경계해야할 사안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일본 중국학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뒤 그가 내세운 중국학은 바로 ‘자유로운 중국학’이다. 여기서의 자유의 의미는 물론 ‘진화’에서 벗어나 방법론상의 자유의 확대를 가리키는 동시에 사회주의 중국이 지향하는 바를 자신의 學의 목적의식으로 삼는 그러한 중국밀착적인 목적으로부터의 자유 또한 가리킨다. 이러한 자유야말로 이제까지 중국을 객관적으로 대상화하는 보증이 되며, 이 객관대상화의 철저야말로 일본의 한학이나 지나학과 같은 ‘중국 없는 중국학’에 대한 충분한 비판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중국을 단순히 아는 것을 목적으로 하거나 중국에 대한 몰입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 것은 그런 범위 내에서 또 하나의 중국밀착적 중국학이 되거나 혹은 그렇지 않다면 시종 자신의 개인적 목적의 소비에 이용하는 한에서 또 하나의 중국 없는 중국학이 되는 것은 결코 자유로운 중국학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에 미조구치는 진정 ‘자유로운 중국학’은 어떤 양태이든 목적을 중국과 자기 내부에 두지 않고, 결국 목적이 중국과 자기 내에 해소되지 않는, 역으로 목적이 중국을 넘는 중국학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중국을 방법으로 하는 중국학’으로 정의된다.
일본 중국학에 대한 미조구치의 이와 같은 정리는 바로 한국의 중국학 연구자들에게 우리 중국학의 역사와 위상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향후 우리의 중국 연구의 방향에 대해서도 질문하게 한다. 과연 우리의 중국학은 우리를 바라보는 데 있어 어떤 역할을 했으며, 나아가 자신을 상대화하는 눈을 통해 중국을 상대화하고 더 나아가 중국 연구를 통해 다른 세계에 대한 다원적인 인식을 어떻게 확보하고 있는가 말이다. 이 책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서광덕 건국대 강사·중문학

필자는 연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의 근대문학가 루쉰 및 동아시아 근대 지식의 형성과 관련해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루쉰』, 『일본과 아시아』, 『중국의 충격』, 『루쉰전집』 등을 번역했다.





교수신문 | 2016-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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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으로서의 중국 - 10점
미조구치 유조 지음, 서광덕.최정섭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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