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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겼다가 울렸다가…이 남자의 시는 오랜 친구다 (국제신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4. 12.

- 일상의 평범한 장면 속에서
- 명퇴 앞둔 50대가 읊조리듯
- 삶의 회한 시적 언어로 버무려

삼복 더위로 푹푹 찌는 여름날 친구 다섯이 오랜만에 만나 보신탕집에 갔다. 이 집 메뉴는 삼계탕과 보신탕, 단 둘이다. 연신 들이닥치는 손님으로 바빠 죽을 것 같은 보신탕집 주인장은 빨리 주문부터 받느라 이렇게 외친다. "여기 개 아닌 사람 손 드세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주인장은 확인한다. "다섯 명, 모두 개 맞죠?"

   



여덟 번째 시집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씨'를 최근 펴낸 성선경 시인.

무신경하게 들으면 우스개, 애견인이 하면 저주가 섞인 꾸지람이 될 이 장면을 명퇴했거나 명퇴를 앞둬 약간 쓸쓸한 느낌도 없지 않은 오십대가 소개한다면? 시인 성선경의 시에서 이 촌극은 웃기고 쓸쓸한, 좀 후줄근하지만 미워하기 힘든 삶의 한 장면이 된다. 이 장면을 담은 그의 시 '녹피(鹿皮)에 가로 왈'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다섯 명 모두 개가 되었는데 / 개를 먹으러 갔는데 / 멍멍 짖지 않는 뚝배기 / 줄줄 땀 흘리는 숟가락.'

성선경(56) 시인은 시와 우리가 '친구'가 되게 해준다. 깍쟁이 같은 친구 말고, 옆에서 다 지켜보면서 눈물 콧물 닦아주던 속 깊은 존재로 시를 독자의 삶 가까이 끌어당겨준다. 요즘 같은 세태에 이런 능력과 성의는 드물고 귀하다.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산지니 펴냄)'는 경남 창원시에 살며 마산무학여고 교사로 오래 일한 성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이다. 

2003년 펴낸 시집 '서른 살의 박봉 씨'에선 서른 살 박봉 씨를 주인공으로 삼았던 그가 이 시집에선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를 내세웠다. 물론, 명태 씨는 명퇴(명예퇴직)와 겹친다. 명태 씨는 진짜 열심히 살았다. 근데 돌아보니 허무나 회한 같은 심정이 밀려오기도 한다.

'적금 타자 아들이 이사를 하고 /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하고 / 장롱이며 침대며 다 있는데 / 냉장고가 고장이 나고…'('복사꽃 지자 복숭아 열리고' 중) '꽃이 져야 열매를 맺는다는데 / 꽃피는 봄날에 / 계란 몇 개 깨어버렸네 / 그냥 두었으면 병아리가 되었을 / 닭이 되었을, 닭이 되어 / 알을 낳았을, 알을 품어 / 병아리를 오종종 오종종 / 거느리고 다녔을, 어미닭이 되었을 / 계란 몇 개를 깨어버렸네'('봄밤에 시를 쓰다' 중)

진하게 달인 반성도 오십대 명태 씨를 찾아온다.

'밥벌이는 밥의 벌(罰)이다 / 내 저 향기로운 냄새를 탐닉한 죄 / 내 저 풍요로운 포만감을 누린 죄 / 내 새끼에게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이겠다고 / 내 밥상에 한 접시의 찬이라도 더 올려놓겠다고 / 눈알을 부릅뜨고 새벽같이 일어나…'('밥罰-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중)

명태 씨는 지나온 삶을 더듬고 다듬으면서 시집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를 채웠다. 시가 우리의 친구가 되게 해주는 시인 성선경의 능력과 성의가 새삼 귀하게 다가온다. 

조봉권 | 국제신문 |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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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 10점
성선경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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