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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책

세상에서 제일 사소한 일「아들과 함께 화분에 물 주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8. 9.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있는 경험이겠죠.

저도 의욕 넘치게 화분을 샀다가 여러 번 죽인 적이 있습니다. 


성선경 시인은 

화분에 물 주기를 "세상에서 제일 사소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세상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귀한 일"이라고도 했습니다. 

 




교보문고는 교보문고 북모닝 CEO서비스로 

유료회원에게 시를 이용한 영상 컨텐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7월에는 윤성학 시인이

성선경 시인의「아들과 함께 화분에 물 주기」를 꼽았습니다.




아들과 함께 화분에 물 주기


세상에서 제일 큰 소리는 우리 귀에 들리지 않지만

세상에서 제일 사소한 일은 화분에 물 주기

그저 시간이 나면 관심을 가지는 척

물 조루를 들고 어디 새잎이 났는지

어디 마른 잎사귀는 없는지 살펴보는 일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서

내가 하는 일 가운데 가장 귀한 일이

화분에 물 주는 일 바싹 마른 화분에 물 조루를 들고

해봤자 표 나지 않는 일에 진지하게

시간을 내는 일 화분에 물 주는 일

세상에서 제일 큰 소리도 우리 귀에 들리지 않지만

세상에서 제일 귀한 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일

누가 봐도 그저 그런 사소한 일

해봤자 표 나지 않는 일 화분에 물 주는 일

아들과 둘이서 무슨 대화를 나누나 싶게

그저 시간이 나서 마주 앉아 차 한잔 마시듯

아무 말도 없이 물 조루를 들고 서성거리는 일

세상에 제일 중요한 대화는 말로 하는 게 아니지

그저 눈빛으로만

너도 여기 좀 봐!

응 새잎이 났네!

고개를 끄덕끄덕 다시 화분을 옮기고

물 조루를 들고 해봤자 표 나지 않는 일에

진지하게 시간을 내는 일 화분에 물 주는 일

아들과 함께 화분에 물 주는 일

세상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귀한 일.





최근에 화분 하나를 망쳤습니다. 어지간하면 죽지 않는 나무라는 해피트리인데 기어이 보내고 말았습니다. 뒤늦게 영양제를 꽂고 흙을 갈아준 다음 옥상에 내놓고 비를 맞춰주기도 했지만 마른 가지에서 새 잎이 나지 는 않았습니다. 병이 나타난 후에는 백약이 무효였던 것이죠. 성선경 시인의 시집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씨 (산지니 시인선)』 중에 「아들과 함께 화분에 물주기」라는 시는 그런 면에서 나를 꾸짖는 시로 다가왔습니다. 


표 나지 않는 일 


시인은 ‘해봤자 표나지 않는 일에 진지하게 시간을 내는 일 화분에 물 주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자신이 하는 일 가운데 가장 귀한 일이라고 하십니다. 고요한 가운데 자신을 닦고, 당장 달라지지 않더라도 오랜 기간을 두고 천천히 스스로를 가꿔나가는 자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식물을 키우는 일은 그런 거 같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빠뜨리지 않고 꾸준히 실천하기란 참 어렵지요. 하지만 회사에서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그 ‘표 나지 않는 일’입니다. 표 나지 않는 일은 지시하기도 수행하기도 어렵습니다. 동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이 일을 해봤자 누가 알아주겠어? 라는 의문이 먼저 들기 마련입니다. 


매번 표 나는 일만 할 수는 없지만 일 잘하는 사람은 표 나지 않는 일을 표 나게 합니다. 그들은 ‘No paper, No work’를 기본으로 삼지요. 문서로 남지 않는 일은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간단한 보고라도 문서로 만들어 상사에게 내밉니다. 제가 아는 후배는 자신이 하는 일을 거의 분(分) 단위로 엑셀 파일에 기록합니다. 회계 부서에서 일하는 친구인데 전국의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회 계 업무가 종합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자신이 언제, 누구와, 무엇에 관하여 통화했는지까지 모두 기록에 남긴 다고 하더군요. 타부서 담당자가 나중에 딴소리를 해봤자 그의 기록이 매번 판정승을 거둡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주로 말과 글로 이루어집니다. 말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이 더 많기는 하 지만 말은 공중에 흩어집니다. 기록은 남습니다. 기록은 표 나지 않는 일을 그나마 표가 나도록 하는 장치입 니다. 문서가 우리의 일을 가치 있게 해준다는 것은 매우 기초적인 사항이지만 동시에 매우 핵심적이라는 것 임을 기억해야겠지요. 


표 나지 않는 일 


시인은 아들과 함께 화분에 물을 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대화는 말로 하는 게 아니지’라고 하며 ‘아들과 함께 화분에 물 주는 일 세상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귀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달에 승진자 교육을 받았습니다. 교육 과정의 요체는 후배 육성이었습니다. 어떻게 후배들을 코칭할 것인가? 이 시를 읽으며 아주 중요한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것은 바로 라포(Rapport), 본래 의미는 환자 와 의사간의 심리적 교류입니다. 회사에서는 이 의미가 선배와 후배간의 상호 신뢰관계, 인간적인 유대감으로 적용됩니다. 저 선배는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인도할 것이다, 저 선배를 따라가면 나는 좀 더 나아질 것이다, 라 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친밀감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코칭과 트레이닝의 차이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트레이닝은 Traing(기차)+ing라는 뜻이라는군요. 즉 기 감성특별시 3 / 3 차가 다니듯 정해진 경로를 반복해서 훈련하도록 해서 기능을 향상시켜주는 일입니다. 반면 코칭은 여러 가지 내용과 형식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발전을 도모해주는 일입니다. 후배를 코칭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면으로 그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고 후배도 선배의 개인적인 성정과 기호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화분’으로 돌아갑니다. 꽃나무를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떤 집은 유난히 식물이 잘 자라고 어떤 집은 화분만 들여놓으면 죽어나가죠. 화분을 잘 키우고 상추나 깻잎을 잘 키우는 사람의 특징은 무얼까? 그건 바로 ‘대화’가 아닐까요. 물을 주며 꽃나무와 중얼중얼 대화를 합니다. 크고 작은 일들을 서로 얘기하며 마음을 나누는 일. 후배를 잘 키우는 사람과 무척 닮았네요. BM


윤성학 | 시인 시인이자 생활인. 200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감성돔을 찾아서」등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당랑권 전성시대>가 있다. 현재 N사의 홍보팀에서 근무하며, 시인의 눈으로 보는 생활인의 모습을 시에 담아 내고 있다. 



식물 하나 키우는 일에도 많은 관심이 필요하듯, 

사람을 대하는 일도 그렇겠지요.


이 글을 읽으니 다시 시인의 시집을 펼쳐보고 싶네요.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 10점
성선경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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