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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집 펴낸 사라·김노환 씨 부부 "일흔에 완성한 사랑, 戀詩에 고이 담아"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7. 5. 29.

 

"생각만 해도 따스합니다. 50년이 좋았는데 여전히 난 당신이 좋습니다."
 
경남 밀양에서 전통음식점 '행랑채'를 운영하는 아내 사라(71·세례명) 씨 바로 옆에서 명상수련원 '늘새의 집'으로 울타리가 되어준 남편 김노환(72) 씨. 50년을 해로한 노부부가 마주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시 60편·그림 묶은 '필연' 출간
우여곡절 이겨낸 부부 삶 그려
"아끼며 살기에도 인생 모자라"

 

부부는 서로에게 주는 사랑의 시 60여 편과 아내의 그림을 묶어서 최근 시화집 <필연>을 출간했다. 전문작가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책을 낼 생각을 했을까.

 

사라 씨는 "이렇게 실리는 줄 몰랐다. 일기장에 그냥 적어둔 것인데…"라며 부끄러워서 내놓지 말자고 했단다.

 

김 씨는 "아내는 오래전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나이가 더 들면 못 할 것 같아 올해 발악을 해서 하나 만들었다"고 껄껄 웃는다. 

 

시화집은 두 사람이 만나서 연애하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왜 그리 필사적으로 우리 둘을 갈라놓으려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만나지 못하도록 집 밖에 나가질 못하게 해 꼼짝없이 감금당한 상태였어도, 통금시간 지나 새벽 1~2시면 우리는 매일같이 재래식 화장실 환기통을 사이에 두고 하루의 일과를 이야기하고, 선물도 주고받고, 따뜻하게 손을 맞잡았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집을 뛰쳐나왔고, 돈 한 푼 없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들의 사랑을 시험하듯 시련이 연이어 닥쳐왔다. 김 씨는 월남전 참전 후 극심한 외상후스트레스에 시달렸다. 40대 초반에는 열아홉 살 생때같은 아들을 사고로 잃기도 했다. 서로를 할퀴며 산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부부는 마음을 다잡고 생을 일구어 나갔다. 명상과 수행에 몰입한 김 씨는 지금은 상처받고 병든 사람을 수양의 길로 인도하는 일을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노년의 지혜-청소년을 위한 인생노트>를 출간해 우수도서에 뽑히기도 했다. 사라 씨는 정성으로 만든 수제비와 비빔밥 등을 손님들에게 대접하며 야생화 그리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사라 씨는 "하늘과 땅, 가족 이웃 친구들 모두에게 진실한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함께 견디며 여태 잘 지켜준 남편께도 감사하고, 나 자신에게도 잘 견디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슬퍼도 꽃을 그리고, 괴로울 때도 꽃을 그렸다. 꽃을 그리면서 언젠가는 꽃이 되리라 믿었는데 그만 할머니가 되고 말았다'는 대목이 애잔하게 와 닿는다. 김 씨는 "사람이 의미를 느끼고 살면 행복이다. 먼 데 있는 걸 가져다가 깨달으려면 힘들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서로 방향이 같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에 태어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노부부는 우리 사랑은 일흔에 완성되었으며, 사랑하며 살기에도 인생은 모자란다고 입을 모은다. 이렇게 사는 비결이 뭘까. 김 씨의 마지막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오늘도 두 번이나 장을 봐주고 왔다. 내가 가장 못 이기는 것이 가족이다. 아내 앞에서는 꼼짝 못 하고, 딸 앞에 서면 아예 생각이 멈춰버린다"고 말한다.

 

2017-05-28 | 부산일보 | 박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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