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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책

자유로움을 갈망하던 도시녀, 초록 눈 아나키스트와 함께 한 산골살이::『산골에서 혁명을』(박호연 지음)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2. 28.

초록 눈 아나키스트와 꿈꾸는 자유영혼 '나'

 

산골에서 혁명을』(박호연 지음)

 

 

 

자유로움을 갈망하던 도시녀, 초록 눈의 아나키스트 남편과 무주 덕유산 자락 골짜기에 들어가다

 

기존 삶의 방식을 의심하는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혁명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지칭하는 남자와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갈망하던 여자는 새로운 삶을 찾아 산골짜기로 들어갔다. 제도가 만들어놓은 패턴에서 벗어나 대안적인 방식으로 살아보기엔 도시보다 산골이 더 좋을 것 같아서였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여의도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여자는 캐나다인 남자를 만나 무주 덕유산 자락에 신혼집을 차렸다. 그리고 어느덧 아이 넷을 낳아 기르며, 요상한(?) 손님들을 맞으며 좌충우돌 살아가는 그 여자 박호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혁명이란 반복되는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

 

글쓰기에 열정을 품고 있으며, 단편 소설 산청으로 가는 길로 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저자는 도시를 한 번 떠나 보자고 산골살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지난 10년의 시간을 이 책에 담았다. 제목에 혁명이라는 다소 거창한 단어를 넣었지만 저자는 그것이 결코 멋을 부린 게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에게 혁명이란 반복되는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고, ‘누구나 살면서 이루어나갈 수 있는 사건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혁명의 기록이다.

 초여름 밤에 울려 퍼지는 소쩍새 소리, 장마로 불어난 계곡의 용솟음, 결실이 주렁주렁 달리는 작물, 계절이 기척 없이 지나가는 풍경을 곁에서 지켜보며 밀려왔던 기쁨과 충만함. 이 모든 것이 저자에게는 바로 혁명인 것이다.

 

 

 

 

모든 것이 생경한 겨울 길목의 산골, 새롭게 이식된 땅에 잔뿌리를 내린다

 

책은 1산골살이, 2손님 열전, 3낳고 키우고, 4책과 영화 속으로, 5산 아래 세상에서로 짜여 있다. ‘도시를 떠나 산골에 살아보자!’고 결심한 것이 혁명의 시작이다. 눈 쌓인 산골에 고립되어 있다가 오랜만에 장 보러 나온 가족은 내친 김에 통영으로 가서 짧은 자유를 누린다.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뱀과 무심하게 지내는 여유도 갖게 되었지만 토막 난 뱀을 대하는 것은 여전히 마음 불편하다. 소쩍새 노래하는 광대정 골짜기를 방문하는 별스런 손님들의 이야기 2장도 흥미롭다. 3장에는 산골짜기에서 4명의 아이를 낳고 키우며 느끼는 기쁨과 어려움 등이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 4장과 5장에서는 세상과 연결된 이야기들이 책과 영화를 통한 사회의 이야기로 확대된다.

 

 

 

 

그 어디에 살든 삶은 공평하게 희로애락으로 채워진다

 

자급자족을 삶의 방향으로 정하고 산골살이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겪는 저자의 다양한 경험들이 범상치만은 않다. 예를 들면 산업적인 고기를 거부하는 남편의 야생고기(로드킬 당한 고라니 고기)에 대한 이야기는 도시 생활에서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선택으로 들어간 산골의 삶이지만, 오랫동안 비어 있던 산골의 흙집에서 맞이한 삶이 어찌 기쁨만으로 다가왔을까. 처음 겪는 많은 일들 속에서 저자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나고, 만들어 가고, 익숙해져 간다. 산골에서 나고 자란 네 아이들은 자연과 교감하며 건강하고 자유롭게 커간다. 또한 사는 곳이 어디든 경험하게 되는 이웃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산 아래 세상과 연결된 이야기들

 

산골에 살아도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매한가지다. 저자는 지난 탄핵 정국 때 서울과 전주의 촛불 광장에서 겪은 여성혐오에 관한 이야기들을 전하면서 결국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나는 뿌리 깊은 남성 중심 사회 전면에 목소리를 내는 용감한 여성들과 페미니즘의 거센 물결을 환영한다. 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특정 젠더를 혐오하지도 억압하지도 않을 사회적 뿌리를 심는 일이라 생각한다. (중략) 젠더와 인종, 나이와 지역, 경제적 계급을 초월한 여성주의 연대를 기대해본다. 쉽지 않겠다. 어쨌든 편협함은 페미니즘과 어울리지 않는다. -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중에서

 

캐나다인 시부모님이 한국으로 여행을 올 거라는 소식을 전해온다. 아나키스트인 남편과 달리 시부모는 경제적으로 넉넉해 토론토-인천 간 퍼스트 클래스 비행기값과 돌아갈 때 이용하게 될 요코하마-벤쿠버 간 크루즈 여행경비는 산골 가족의 1년 생활비를 훌쩍 뛰어넘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은 그들의 인생, 우리는 우리의 인생. 단지, 부모 자식 간에도 빈부 격차가 크다는 사실을 쿨하게 인정한다. 그리고 이번 여행이 두 분의 별거 여행이 될 거라는 뜻하지 않은 소식을 접한다. 먼 타국에 사는 아들에게 언제나 좋은 소식을 전하던 아버지가 사실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으며 이번 여행을 끝으로 요양원에 입소하고 어머니는 실버타운으로 가게 될 거란다. 저자는 늙어버린 몸에 담긴 노년의 정신은 대체 어떤 모습인지, 요양시설에 들어가는 심정이란어떠할지 염려한다. 이런 염려는 우리 모두의 숙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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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산골에서 혁명을 - 10점
박호연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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