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시대 담는 그릇…인문의 시선으로 부산 음식문화 캐냈다”
본지 연재 ‘부산탐식프로젝트’ 책으로 펴낸 최원준 시인
- 2016년부터 2년간 76회 맛여행
- 낙동강·기장음식 ‘집요한’ 발굴
- 화교밥상 등 원도심의 맛 우려내
- 독특한 로컬푸드 상세히 소개
- “피란 때 나눠먹던 값싼 밀면처럼
- 공유와 배려의 음식 많은 부산
- 수용·개방 등 지역 기질 보여줘”
프로젝트 이름은 ‘부산탐식’으로 하기로 했다. ‘탐’ 자는 탐낼 탐(貪) 대신 찾을 탐, 탐구할 탐의 ‘探’을 쓰기로 했다. 부산 음식문화를 ‘탐구’한다는 뜻을 담고자 했다.
‘부산탐식프로젝트’의 저자 최원준(왼쪽) 음식문화 칼럼니스트가 부산 동구 상해거리 ‘완챠이(灣菜)’ 정춘화 대표와 찡장로우스, 멘보샤, 동파육을 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완챠이는 ‘부산탐식프로젝트’에서 화교 음식이 부산화된 사연을 살핀 ‘화교밥상’ 편 취재를 도운 인연이 있다. 서순용 선임 기자
음식을 탐구한다는 뜻의 ‘探食’(탐식)이 아닌 음식을 탐낸다는 뜻의 貪食(탐식)으로 독자가 받아들일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돼도 할 수 없고 이 시대에 그게 꼭 나쁜 일도 아니다. 취재와 집필을 맡은 프로젝트 총책은 부산의 중요한 음식문화 칼럼니스트 최원준 시인. 그렇게 ‘부산탐식프로젝트’는 닻을 올렸다.
2016년 1월 6일 자 국제신문에 부산탐식프로젝트 ‘제1회 낙동김, 변화무쌍 물김’을 시작할 때만 해도 매주 신문 전면에 연재하는 이 프로젝트가 2년 동안 무려 76회(최종회 2017년 12월 27일 에필로그)에 걸친 장정을 펼치리라고는 많은 사람이 예상치 못했다. 음식문화 칼럼니스트이자 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가 마침내 같은 제목의 책(산지니 펴냄)으로 묶여 독자 곁으로 새롭게 왔다. 책의 부제는 ‘맛있는 음식 인문학’이다.
저자 최원준 시인을 만나 ‘부산탐식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나물 캐듯 캐물었다. 그를 만난 장소는 ‘부산탐식프로젝트’의 ‘화교 밥상’ 편(국제신문에는 2016년 7월 13일 자에 ‘부산의 화교 밥상’으로 실림) 취재에 큰 도움을 준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역 맞은편 상해거리의 명물 중화 음식점 ‘완챠이(灣菜·대표 정춘화)였다.
‘부산탐식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단행본 ‘부산탐식프로젝트’ 발간이라는 결실을 거둔 최원준 시인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관련된 자료나 책자를 꽤 찾아봤는데, 음식인문학이라는 관점과 음식의 문화인류학이라는 지향을 갖고, 부산지역의 음식과 음식문화에 접근한 책은 ‘부산탐식프로젝트’가 실질적으로 처음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닿았다.” 그는 “그런 점에서 무척 뿌듯하고 계기를 마련해준 국제신문에 고맙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부산탐식프로젝트’에서 줄기차게 강조했다. “음식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음식과 음식문화를 들여다보면 그 지역의 역사, 문화, 자연환경, 생활 습속의 특징이 잘 보인다는 지론이다. ‘부산탐식프로젝트’라는 책은 부산을 중심에 놓고, 바로 이런 지론을 촘촘히 증명해가는 ‘거방하게’ 잘 차린 잔칫상이다.
‘부산탐식프로젝트’에서 바다와 강이 만나 기수지역을 형성하는 낙동강 유역(낙동김, 명지대파, 재첩, 하단포 웅어, 갈미조개, 전어, 도다리, 큰구슬우렁이, 구포국수, 청게, 다대포방어, 대구 등), 바다를 품은 어촌·농촌 공동체 기장(산호자 멸치젓갈 쌈밥, 방게, 기장우묵, 메뚜기볶음, 미역설치와 몰설치, 매집찜, 대변 멸치, 철마 한우, 앙장구 등)은 독특하고 특별하고 상세하게 소개된다. 숨어 있기도 하고 잊히기도 한 이 지역 음식이 거의 ‘복권’되는 수준이다.
최원준 시인은 폭넓고, 오래되고, 끈끈한 이 분야의 인적 네트워크를 가동해 낙동강 강가 지역과 기장을 ‘집요하게’ 취재해 책에 실었다. 그는 “부산의 ‘로컬푸드’가 어떤 자연환경에서 탄생하고 자리 잡았는지, 어떤 사회·경제·인문적 상황에서 부산 전역으로 퍼져가거나 퍼져나가지 못했는지, 그 안에 담긴 부산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는지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음식인문학 영역을 지역에서 개척하고 탐구하는 전문가로서 저자의 관찰과 통찰이 빛나는 대목은 책의 ‘제3부 역사를 품은 곳, 원도심의 맛’과 ‘제4부 구석구석 골목골목, 부산의 맛’에서도 사골 육수처럼 듬뿍 우러난다. 부산어묵, 두투, 화교밥상, 초량외국인거리 중앙아시아·필리핀 요리, 해녀촌, 초량돼지갈비, 자갈치시장 고래고기, 복국, 밀면, 아귀 그리고 신문 연재 당시 부산 독자들에게서 유난히 뜨거운 사랑을 받은 선어회 등이 여기서 등장한다.
상해거리에 선 최원준 저자.
“부산은 한반도 남단의 해양을 ‘국경’으로 한 고장이라 해양문화 수용이 활발했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때는 도시 규모가 폭발하듯 팽창하고, 그 뒤 산업화시대에는 영남, 호남, 제주 등지에서 인구가 급격히 유입돼요. 그런데 부산은 그런 빠른 팽창과 급속한 다양화를 받아낼 만큼 음식 재료가 풍부하지는 않았거든요.” 이런 바탕에서 부산 음식문화의 특징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북에서 부산으로 피란 온 사람들이 이북 냉면을 만들려 해도 재료인 메밀이 없거든요. 그러니 원조물자로 공급된 밀가루로 냉면의 대체 음식을 만들었는데 그게 밀면이죠. 밀면은 냉면보다 훨씬 싸니까 서로 나누어 먹습니다. 먹장어, 돼지국밥 등등 오늘날 부산을 대표하는 숱한 음식이 그와 비슷한 형성 과정을 거칩니다.”
여기서 저자 특유의 부산 음식에 관한 음식인문학적 통찰이 나온다. “부산 음식 상당수는 비록 이렇게 어렵던 시절 ‘차선의 음식’ ‘대체의 음식’으로 형성됐지만, 이는 동시에 널리 함께 먹는 ‘공유의 음식’이고 넉넉히 베푸는 ‘배려의 음식’을 뜻하죠. 수용성과 개방성이라는 부산의 기질과도 깊은 연관이 있고요.”
그는 말했다. “하다 보니 부산에서 음식문화를 인문의 시선으로 공부하고 글로 쓰는 드문 음식문화 칼럼니스트라는 자리에 서게 됐음을 책을 내면서 거듭 절감했다. 2000년대 초 부산일보에 음식 글을 연재할 때 ‘가격이 착하다’는 표현을 내가 만들어 한국에서 처음으로 썼는데, 그 표현이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되는 상황도 목격했다. 음식에 관한 글을 쓴다는 일이 얼마나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신중해야 하는지 자꾸 느끼게 된다.” 그는 “음식이라는 거울로 부산을 비춰보는 음식인문학이 깊어지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신발 끈을 조여 매겠다”고 다짐했다.
국제신문 조봉권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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