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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벌교 홍교의 소박한 멋

by 산지니북 2010. 11. 23.

태백산맥 문학관을 나와서 벌교 홍교를 찾았습니다. <답사여행의 길잡이> 전남 편에 홍교가 아주 자세히 나와있어 벌교에 가면 꼭 가봐야지 했거든요. 전 '홍교'가 부산의 '광안대교'나 '구포다리'처럼 다리 이름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홍교(虹橋)다리 밑이 무지개처럼 반원형으로 쌓은 다리를 말하는 보통명사입니다. 홍예교·아치교·무지개다리라고도 한답니다.
 

3칸 무지개 다리, 벌교 홍교


벌교 홍교는 벌교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교량으로 길이 27m, 높이 3m, 폭은 4.5m.지금까지 남아 있는 홍교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워 보물 제304호로 지정되어 있다네요.

다리에서 바라본 벌교천. 여기 어디쯤에 뗏목다리가 걸려있었겠지요.


원래는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이곳에 뗏목다리가 있었는데 걸핏하면 홍수가 나 다리가 떠내려가는 바람에 영조 4년(1728년)에 선암사의 조안선사가 보시로 홍교를 건립했답니다. 그뒤 1737년에 다리를 다시 고치면서 지금 모습처럼 3칸의 무지개 다리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1981년부터 1984년까지 보수공사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하네요.

왼쪽이 홍교이고 옆으로 새 다리가 이어져 있습니다. 돌의 색깔로 새 다리와 옛 다리가 확연히 구분됩니다.


벌교사람들은 홍교를 '횡개다리'라고도 부른답니다. 다리 끝에 '홍교'를 설명하는 표지판이 서있습니다.

벌교(筏橋)라는 지명은 다름 아닌 '뗏목다리'로서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보통명사이다. 보통명사가 고유명사로 바뀌어 지명이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므로 뗏목다리를 대신하고 있는 이 홍교는 벌교의 상징이다. 소설에서도 이 근원성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고, 여러 사건을 통해서 그 구체성을 은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범우는 홍교를 건너다가 중간쯤에서 멈추어 섰다. 그러니까 낙안벌을 보듬듯이 하고 있는 징광산이나 금산은 태백산맥이란 거대한 나무의 맨 끝가지에 붙어 있는 하나씩의 잎사귀인 셈이었다.(태백산맥 1권 257쪽)


다리 위를 걸어보았습니다. 새 다리가 이어져 꽤 깁니다.


홍예의 높이는 약 3m정도.


아치 부분의 돌만 색깔이 많이 다르지요. 누리끼리하고 이끼도 끼어 있구요. '물의 시간'이 아니라 '돌의 시간'입니다. 저 누런 돌에는 세월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다리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도대체 이 다리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오로지 사람의 손으로 크고 무거운 돌을 깎고 운반하여 반원형으로 동그랗게 쌓아 올린 옛사람들의 기술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구조는 부채꼴 모양의 석재를 맞춰 홍예를 만들고 네모나게 가공한 석재로 홍예 사이의 면석을 쌓았으며 그 위에 밖으로 튀어나오게 멍엣돌을 걸치고 난간석을 얹은 후 판석을 깔아 다리 바닥을 만들었다. 홍예를 제외하고 각 홍예 사이의 면석과 난간의 축조 방식은 여러 차례 중수하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예전에 찍은 사진과 요즘 다리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특히 면석 부분이 많이 달라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예전에는 지금처럼 반듯반듯하게 가공한 돌이 아니라 막돌이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답사여행의 길잡이 전남 편, 340쪽


"그런데 다리 아래 삐죽 달려 있는 저게 뭐지?" 남편이 물었습니다.
3칸 홍예마다 저 요상한 물건이 달려 있었거든요. 
"흠. 무식하긴. 저건 동물모양이 새겨진 돌인데 다리를 만들때 끼워 넣어 잡귀가 얼씬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부적같은 거지." 저는 조금 으시대며 얘기해주었습니다. 여행 오기 전 책에서 읽었거든요.ㅋㅋ

좀 더 확대해서 찍은 사진입니다. 그래도 다리 밑이 어두워서 어떤 형상이 조각되어 있는지 잘 안보이네요.


홍예마다 아래쪽 가운데에 이무기돌이 박혀 물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처럼 다리 천장이나 멍엣돌 마구리 등에 동물이나 도깨비의 모양을 새겨 놓는 것은 재앙이나 잡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지닌다. 옛날에는 벌교 홍교의 이무기돌 코끝에 풍경이 달려 있었다고 한다. -답사여행의 길잡이 전남 편, 340쪽 


다리 밑에는 오리떼가 한가롭게 놀구 있습니다. 다리 밑에는 바닷물이 드나드는데, 썰물 때에는 다리 밑바닥이 거의 드러나고, 밀물 때에는 다리 대부분이 물속에 잠긴다고 하네요. 벌교에 와도 홍교를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태백산맥문학관은 북적였지만 다리에는 저희밖에 없었거든요. '벌교 사람들은 60년마다 한 번씩 이 다리에서 환갑잔치를 해주었는데 1959년에 6주갑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과거엔 이 다리가 사람들에게 참 소중한 다리였을겁니다. 2019년에 또 잔치가 열릴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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