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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철암 탄광촌의 과거와 현재

by 산지니북 2011. 8. 19.

"탄광촌은 생산이 목적이라 사람이 죽고사는 거는 문제도 아니다"

철암에 살았던 어떤 이의 기억 한 조각.
'과거를 기억하는 벽'에 쓰여 있던 이 문구가 철암을 떠나서도 계속 생각났습니다.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을 갔던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영동선이 지나는 철암역에는 무연탄 선탄 시설이 현재도 가동되고 있습니다. 철로에는 탄을 운반하는 화물열차가 대기중이고, 뒷쪽 선탄장에는 시커먼 석탄이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역 맞은편에 자그마한 상점들이 늘어서있는 거리는 마치 시간을 30년전쯤으로 돌려놓은 듯한 풍경이었습니다.

철암역 앞 거리


철암 지역은 50년대 말부터 탄광개발이 시작되어 60~70년대 전성기를 맞으며 국내 최대 탄광촌으로 이름을 날렸던 곳인데, 탄광업의 쇠락으로 태백시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이 되었다고 합니다.

거리의 상점들과 맞닿아 있는 살림집들. 뒷쪽으로 개울이 흐릅니다.
슬레트로 덧댄 벽면과 그 아래 흙벽이 남아있는 걸 보니 참 오래된 집들이구나 싶습니다. 

개울의 맑은 물과 하수구의 검은 물이 만납니다.
물이 검은 것은 석탄의 영향때문으로 보입니다. 사진으로는 약간 거무스름해 보이는 정도지만 실제 물빛은 완전 까맸거든요.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

철암역에는 무연탄 선탄 시설이 현재도 가동되고 있습니다. 선탄장에 산처럼 쌓여 있는 석탄이 비를 맞아 더 까맣게 보였습니다.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 [太白鐵岩驛頭選炭施設 ]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鐵岩洞)에 있는 선탄시설이다. 2002년 5월 31일 등록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었다. 대한석탄공사 소유이며 태백시장이 관리한다.  
국내 최초의 무연탄 선탄시설로 현재까지 가동하고 있다. 탄광에서 채굴한 원탄을 선별하고 가공 처리하는 시설로 근대 재료와 공법을 적용한 산업시설의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구조물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으며 현재는 증기기관차가 아닌 디젤기관차로 석탄을 운반한다. 1960~1970년대 국가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석탄산업을 상징하는 시설물로 가치가 있다.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 365-1번지 외 6필지에 있다. (출처 : 네이버백과사전)


철암역 주변 벽면에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곳에 살았던(혹은 아직도 살고 있을) 사람들의 짤막한 글도 쓰여 있습니다. 폐광촌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철암 지역의 과거와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2007년 조형예술가들이 모여 작업한 결과물이랍니다.

'기억하는 벽'

◎ 도로변에 탄먼지가 엄청나서 걸어다니기 불편하던 일. 경기가 나빠져서 안타깝다-황선숙
◎ 단양 구인사 절에 쌀떼인 일이 생각난다 그때 쌀집은 서울 명동도 부럽지 않았는데 떠나야 되지 않나 하는 갈등이 생긴다-주민 권덕희(2007.7.6) 
◎ 월급나오면 톡톡 털어 술먹고 빈털털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배급표 전표 받아 줄서있던 생각, 강원선탄장이(선탄장찜뿌라) 복원되기를 바란다-정홍기
◎ 철암역앞 매일 장서던일 황지사람도 물건을 떼어갔는데... 무허가 여인숙 성황이었던 일-배일환
◎ 석공에서 극장표 끊어주어 극장 앞에 바글바글 모여 있던 일. 사람이 북적되어 그래도 재미있었다, 뒷날은 생각...

◎ 후미끼리 : 멈춤+길의 일본말로 건널목이다. 나의 기억은 이곳에서 멈추었다. 이곳에는 광부들의 공포와 불안을 덜어줄 무당들이 살았다. 신작로 옆 꼬마무당은 내 또래의 딸아이를 데리고 살았는데... 쪽마루에 종이인형처럼 앉았다가 달려와 내민 신문지에 싼 떡조각에선 짙은 향냄새가 풍기곤 했었다. 쪽마루가 있던 방문틈으로 살짝 보이던 오방색의 천조각은 내 호기심을 자극했나보다.
내 기억은 이렇게 후미끼리, 에 멈추어 있다. 07. 11. 5

◎ 월급 받아야 외상 주고 나면 쓸돈이 없다 - 윤병준

◎ 석공 빼지 달고 다니면 대우받던 시절이 있었다. 60-70년대 월급 많이 받던 시절 30만원 받았다. 70년대 이후 이일 저일 해봤지만 그래도 석공 시절이 좋았다. 60년대 후반까지 광산 사원증 가지고, 장가가기 좋았다. 그당시 수입이 안정적이라 마냥 놀고 먹고 살았다. 탄광은 생산이 목적이라 사람 죽고 사는 거는 문제도 아니다 - 심길원


60년대면 제가 태어나기도 전인데,
과거를 '기억하는 벽' 덕분에 그시절 이곳에서의 삶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생산'이라는 목적을 위해 '사람'이 도구가 되는 삶은
30년 전과 지금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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