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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이야기

다시 오는 봄 -추리문학관 20주년의 비밀(2)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4. 4.





종군위안부와 문학 -양석일


제목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바로 이 강연을 듣기 위해, 저는 처음 추리문학관에 간 것이었습니다. 이 강연을 통해, 최근 한국에 번역된 『다시 오는 봄』에 대한 작가의 말을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양석일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시면 김응교(문학평론가, 『다시 오는 봄』역자) 선생님께서 동시통역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질의응답시간은 없었습니다. 선생님 강연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1. 종군위안부는 어떤 존재인가?

양석일 작가는 강연의 시작에서, 종군위안부란 어떤 존재인지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곧 이 책의 주인공인 '순화'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미 종군위안부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지만, 느릿느릿 설명을 이어나가는 양석일 작가의 말 속에서 잊고 있었던 참혹한 역사의 모습이 점점 드러났습니다. 그 내용은 이 소설 속에 모두 들어있습니다.

2002년 도쿄에서 전세계적으로 이 문제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일본의 정치가가 종군위안부 할머니에게 "너 거기 돈벌러 가지 않았느냐", "돈 받았지?"라고 계속 추궁했다고 합니다. 이에 양석일 작가는 매우 분노했다고 합니다. 일본인들의 종군위안부에 대한 인식은 매매춘 정도에 그친다고 합니다.

"가해자의 나라는 이 문제를 결코 인정하지 않습니다. 나라에서 안하니까 일본 사회단체에서 한 명당 3천만 원씩 주는 보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돈을 받은 사람도 있지만, 반 이상은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 사이에 대립이 생겼습니다. 결국, 종국위안부 문제는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단 하나도. 이것은 전쟁범죄입니다. 전쟁 후에는 재판이 열리는데, 이 문제는 한번도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2. 한국 젊은이들에게 묻고 싶다

일본 젊은이들 중에는 태평양 전쟁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석일 작가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묻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이 소설의 마지막 적전지가 '라멍'이라는 곳인데, 작가는 취재하기 위해 그곳에 갔으나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종군위안부가 살던 일본식 집이 하나 남아 있어, 그것을 바탕으로 상상력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쓰는 와중에 인물들이 꿈에서까지 나와 함께 힘들어했다고 하니, 얼마나 고된 작업이었는지 짐작케 합니다. 읽는 것도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이 문제를 소설로 남기지 않는다면 역사 속으로 잊히게 되지 않을까라는 작가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정작 한국에서 이 문제는 점점 잊혀지고 관심이 멀어지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에게 정말 봄이 왔던 것인지, 이 작가는 묻고 있습니다.


#3. 아시아적 신체

작가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단지 한국과 일본 간의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작가는 이 문제를 '아시아적 시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아시아적 신체'라는, 양석일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사상이 나오게 됩니다.

일본이 서양화되기 위해, 그리하여 아시아 최고의 국가가 되기 위해, 사람의 신체를 어떻게 했는가. 남자는 황군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몸을 바쳤습니다. 특히 일본은 자신의 서양화·근대화를 위해, 식민지와 식민지의 신체를 파괴했습니다. 이것이 양석일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아시아적 신체'입니다.

신체에 대해서는 학술적으로도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논의'는 너무도 부족합니다. 양석일 작가의 작품은 훼손되는 아시아의 신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4. 허구의 진실

양석일 작가의 전작『어둠의 아이들』은 태국에서 일어나는 아동매매춘을 다룬 소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문학동네에서 번열되어 출간되었는데, '19금'이라고 합니다. 일본에선 전체구독가능입니다. 이에 대해 양석일 작가는, 19세 미만도 이 세계의 비참을 봐야한다고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소설과 드라마는 매춘을 호텔방 앞까지만 묘사합니다. 하지만 양석일는 그 방 안에서 일어나는 고통까지도 씁니다. 폭력이 행해지는 깊은 곳, 그 바닥까지 써야만 독자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진실을 방 안에서 일어난다. 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쓰지 않으면 고통의 아픔을 알 수 없다."

때문에 작가에게 상상력은 너무도 중요한 능력입니다. 작가는 어둠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동자, 20개의 층의 눈동자를 가진 존재여야 한다고, 양석일 작가는 말했습니다. "작가는 상상력으로 진실을 만들어내야 한다. 상상력이 없으면 아무리 취재를 해도 좋은 소설을 쓸 수 없다. 작가는 영혼에 대한 증언자다." 


#5. 무엇이 세계문학인가

마지막은 『다시 오는 봄』뒷커버에 있는 다카하시 도시오(문학평론가, 와세다대학 문학부 교수)의 글을 인용해볼까 합니다.

양석일의 소설을 '세계문학'이라고 한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세계문학'이라고 할 수 없다는 건 매우 자명하다. 언뜻 '세계문학'으로 오인하기 쉬운 하루키의 '보편성'은 고도자본주의가 양산해낸 도시문화의 '보편성'이며, 이는 극히 한정적인 의미의 '보편성'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차별이나 빈곤 문제 등은 노정한 근대가 해소되기를 지향하는 '큰 이야기'가 무효화된 포스트모던한 도시문화의 '보평성'일 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한국의 소설도 하루키화되어가는 상황에서 양석일 작가의 작품은 정말 큰 의미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다시 오는 봄』을 읽고 밤잠을 이루기 힘들었지만, 이런 소설을 꽤 오랜만에 읽었다는 생각입니다.


▷ 관련 글: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떻게 한국에 안착했나"(조영일 문학평론가) 





양석일 선생님 강연이 끝난 후, 마지막 프로그램!! 추리문학관 개관 20주년 연극!!

문인들이 직접 배우로 나선 흥미로운 연극이었습니다. 어이없는 발연기를 보여줄 것이라 잔뜩 기대하고서 관람을 했는데요, 의외로 주연들의 연기를 훌륭했습니다. (톨스토이는 예외^^)



『죄와 벌』판권을 담보로 출판업자에게 도박빚을 지는 도스토예프스키


그래도 저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고, 몇몇 분들께서는 대놓고 대본을 보며 연기를 하셨습니다. 구수한 사투리는 귀를 즐겁게 해줬고요. 지하창고 같은 공간에서 막 하나만 쳐놓은 허름한 무대세팅은 마음을 매우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아프단 말이요!"라는 명대사는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의 삶과 작품을 엿볼 수 있는 재밌는 연극이었습니다. 


추리문학관 개관 20주년 기념 강연과 연극, 모두 만족스러웠습니다. 앞으로 계속 그 자리에 머물면서 좋은 프로그램 많이 마련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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