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독서후기'에 해당되는 글 54건

  1. 2018.05.25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을 읽다 (2)
  2. 2018.04.01 70년 전 제주를 기억하며 - <레드 아일랜드> 서평
  3. 2018.03.09 『사람 속에서 길을 찾다』를 읽고 (1)
  4. 2018.01.15 [산지니가 읽는 소설] 『세 여자 - 20세기의 봄』(조선희, 한겨레출판, 2017) (2)
  5. 2017.12.10 [산지니가 읽는 시] '돌돌'의 언어 - "고개 숙이는 것, 조아리는 것, 무릎을 꿇는 것." (2)
  6. 2017.07.28 『밤의 눈』과『병산읍지 편찬약사』- 작가 조갑상과 보도연맹 학살사건 (1)
  7. 2017.03.20 세월은 가도 빚은 남는 것 - 부채(빚)에 관하여 (2)
  8. 2016.12.29 투덜대며 문제를 끌어안고 사는 우리-『내게 없는 미홍의 밝음』 (2)
  9. 2016.12.19 손톱 밑 가시와 같은 존재라 불리는 이방인 이야기. '쓰엉' (2)
  10. 2016.12.17 배가 고픈 부산토박이 - 부산을 맛보다 두번째 이야기 (1)
  11. 2016.09.13 [독자서평] 감천문화마을 단디 들여다보기 :: <감천문화마을 산책> (2)
  12. 2016.08.22 그럼에도 이어지는, 모든 요일의 「여행」에 관해서 (2)
  13. 2016.07.15 글쓰기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성공하는 글쓰기 전략』 (2)
  14. 2016.04.08 10년차 카피라이터가 쓴 『모든 요일의 기록』을 읽고 (3)
  15. 2016.03.31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를 읽고 (1)
  16. 2015.06.09 그녀의 뒷모습에서『조금씩 도둑』을 읽고
  17. 2015.03.10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독서를 위하여 『왜 책을 읽는가』
  18. 2015.01.16 애송이 편집자, 장인(匠人)을 만나다: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독서후기 (1)
  19. 2014.12.31 서정아소설집 『이상한 과일』독서후기
  20. 2014.12.19 출판제작, 책 만들기의 시작이며 완성이다 『만만한 출판제작』을 읽고
  21. 2014.12.01 "나 자신의 생명을 펼치고 싶다" - <나는 나> 독서후기
  22. 2014.11.23 종이의 탄생부터 전자책까지! 『책, 그 살아있는 역사』를 읽고 (1)
  23. 2014.11.13 감탄과 애도로 쓴 종이의 문화사『페이퍼 엘레지』를 읽고 (3)
  24. 2014.10.31 만만찮은 인물에 대한 만만찮은 그림책! <루쉰 그림전기>를 읽고 (6)
  25. 2014.08.22 공격적인 회사 아마존 (1)

‘전쟁’과 ‘슬픔.’ 이 두 단어는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너무 익숙한 단어들이기에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두 단어의 관계도 진부하다. ‘전쟁’ 하면 ‘기쁨’ ‘환희’보다는 ‘슬픔’ ‘절망’을 먼저 떠올릴 테니까. 그래서인지 두 단어의 의미는 실제 담고 있는 깊이만큼은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전쟁의 슬픔>을 읽으면서 ‘전쟁’과 ‘슬픔’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어느 때보다 뼈아프게 다가왔다.

 

<전쟁의 슬픔> 저자 바오 닌 (출처: 서울신문)

 

이 책의 저자 바오 닌 (Bao Ninh)은 1952년 1월 18일 베트남 중부 응에 안 성 지엔 쩌우 현 출생이다. 본명은 호앙 어우 프엉이며, 필명은 선조들의 고향인 꾸앙 빈 성 꾸앙 닌 현 바오 닌 사에서 따왔다.
1969년 쭈 반 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열일곱 살에 베트남 인민군대에 자원입대했다. 3개월간 사격 등 군사훈련을 받고 인민군 이등병을 10사단에 배치 바로 B3 전선에 투입되었다. 첫 전투에서 소대원 대부분이 전사하여 5갱러 만에 소대지휘관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6년 동안 최전선에서 싸웠다. 베트남전쟁의 마지막 작전이었던 사이공진공작전에 참여한 그는 소대원들과 함께 떤 선 녓 국제공항 점령 전투에 투입되었다. 1975년 4월 30일에 남베트남 공수 부대와의 치열한 최후 교전 끝에 떤 선 녓 국제공항을 장악했을 때 살아남은 소대원은 그를 포함하여 단 두 명이었다. 이 전투와 함께 길고도 길었던 베트남전쟁은 끝났고, 그는 전사자 유해발굴단에 참여하여 8개월간 베트남 산하에 버려진 전우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전역 후 하노이로 돌아와 응우옌 주 문학학교에 입학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첫 장편인 <전쟁의 슬픔>은 출간되자마자 문학계와 독자로부터 뜨거운 환영과 찬사를 받고 16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선 여느 소설보다 작가와 관련된 배경지식을 잘 알아야 한다. <전쟁의 슬픔>은 작가의 삶과 뗄 수 없는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소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저자인 바오 닌은 실제로 만 17세에 베트남 전쟁에 참가했고, 1969년부터 1975년까지의 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저술했다. 작가 바오 닌은 어느 전쟁 소설보다도 사실적으로, 전쟁에 대한 미화나 과장 없이, 안타깝고 끔찍하고 잔인하며, 아주 가끔 따뜻했던 전쟁이 어린 연인의 청춘과 사랑을 어떻게 미궁에 빠뜨렸는지를 냉정하면서도 격정적으로 진술한다.

 

<전쟁의 슬픔> 표지

 

<전쟁의 슬픔>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전쟁 이후 첫 건기, 주인공 끼엔은 전사자 유해발군단의 일원으로 부대원들이 전멸당한 전선으로 이동 중이다. 살아남은 단 열 명의 전사 중 한 명인 끼엔은 그 지역이 익숙하다. 패배가 낳은 수많은 혼령과 귀신을 마주하자 끼엔의 마음속으로 바로 작년까지 이어졌던 수많은 전투와 전투에 희생된 전우들, 그리고 전쟁이 갈라놓은 첫사랑 프엉이 찾아온다.
끼엔은 열일곱 살 나이에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서라면 끼엔처럼 전쟁에 나서지 않은 젊은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 막 피어나기 시작한 첫사랑을 두고 떠나야 하는 아픔을 겪는다.
전쟁은 일상을 파괴하고 대지를 할퀴며 인간의 영혼을 상처를 입혔다. 끼엔에게는 그의 첫사랑 프엉만이 마음속에 유일한 실체다. 처절한 전쟁은 아군과 적군, 군인과 민간인,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구분 없이 너무나 많은 목숨을 앗아가고, 끼엔의 영혼은 전쟁 속에서 메말라 간다. 그리고 믿기지 않게 종전이 선언된다.
지옥보다 끔찍한 전장을 경험한 끼엔에게 종전은 전쟁보다 실감 나지 않는 현실이다. 그리고 더욱 믿기지 않는 첫사랑 프엉과 재회하게 된다.
하지만 전쟁은 프엉과의 추억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변화시키고, 그에게도 그녀에게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방황하는 끼엔이 할 수 있는 것은 글을 쓰는 일로, 끼엔은 자신이 기적처럼 살아남은 전장에서의 죽음을 쓰기 시작한다.

 

줄거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전쟁 그 자체에도 집중하지만 그것을 넘어선 ‘사랑’의 이야기와,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이야기까지 사유를 확장한다. ‘전쟁’ 자체의 이야기도 다른 전쟁 소설과는 다르게 전쟁 당시의 상황보다 전쟁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과 벗어날 수 없는 괴로움에 초점을 맞춘다.

 

남겨진 사람들이 괴로움을 벗어나는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그중 소설 속 주인공은 홀린 듯 매일 밤 글을 쓴다. 작가는 글을 쓰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며 글쓰기에 대한 의의를 이야기한다. 아래의 글처럼 작가는 전쟁에 대한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시에 전쟁의 슬픔이 가실 때까지 그 아픔을 곱씹기 위해 소설을 쓴다.

 

 

글을 써야 한다! 잊기 위해 쓰고 기억하기 위해 써야 한다. 의지하고 구원받기 위해, 견디기 위해, 믿음을 간직하기 위해, 살기 위해 글을 써야 한다. 매일같이 거리를 지나다니는 낯선 무리가 우연히 서로의 인생에 증인이 되듯이 친한 사람들에 대해 글을 써야 할 필요가 있다. 삶과 영혼 속에서 서로 다른 세상과 상반된 것들에 대해 써야 하고, 태어나 자란 집들과 보금자리와 도시에 대해 써야 한다. 비 내리는 어두운 밤, 길모퉁이 가로등을 지나고 지붕들 아래를 걷는 사람들의 삶 속에 얼마나 많은 운명과 역경이 있는지 알고 있기에 이에 대해 써야 한다. (198쪽)

 

 

소설은 중반부까지 여러 인물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혼재되어 있어 집중해서 읽기 힘들었다.  그러나 중반부 이후에는 주인공 끼엔과 프엉의 사랑에 서사가 집중되어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둘의 사랑 이야기는 전쟁 이야기만큼 책 속에서 절절하게 묘사된다. 사랑할 나이에 전쟁을 해야만 했던 끼엔은 프엉과 이별하고 전쟁을 하며 황폐해져 간다. 남은 프엉 역시 전쟁 전의 해맑고 순수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변한다. 이런 모습과 함께 전쟁터의 끔찍한 맨 얼굴을 보여주며 작가는 이념이라는 가치의 대립으로 생긴 ‘전쟁’보다 진짜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사랑’에 대한 낭만적인 구절을 삽입하여 대비를 극대화한다. 아래와 같은 구절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그의 인생에는 딱 두 번의 사랑밖에 없었다. 한 번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그와 프엉의 사랑, 또 하나는 전쟁 이후의 다른 사랑, 역시 그와 그녀의 사랑이었다. (195쪽)


철로 위에서 기차 바퀴가 끝없이 덜컹거렸다. 신호등, 간이역, 나무숲을 스쳐 지났다. 가끔씩 짧은 다리를 지날 때는 천둥 같은 소리가 터졌다. 거대한 전쟁의 밤이 평원을 뒤덮었다. 끼엔의 가슴속에서 수많은 생각과 어리석은 감정들이 불쑥불쑥 깨어났다. 영원히 이렇게 같이 있고,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면 모든 걸 버릴 수 있다. 중대도 없고 대대도 없고 전쟁도 없다. (235쪽)

 

 

참혹한 전쟁 현장을 보여주며 시작한 이 책은 점차 시공간을 넘나들며 전쟁 전의 걱정이 없었던 따뜻한 모습, 전쟁 시의 긴박한 모습, 전쟁 후 남겨진 자들의 무기력한 모습을 겹쳐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전쟁이 끝난 후의 모습이다. 전쟁을 겪은 사람들은 쉽게 회복하지 못하고 전쟁의 기억 속에 산다. 작가는 소설 내에서 시종일관 전쟁의 잔인함과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인간의 모습을 책 속 인물을 통해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책 말미에는 그러한 작가의 생각이 아래와 같은 구절을 통해 직접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결국 아무것도 잊을 수 없다. 슬픔과 고통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어 전쟁을 거치고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하나로 커다랗게 뭉쳐진 응어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고통을 받아들여야 세상에 태어날 수 있듯이, 또한 삶을 다하는 날까지 고통 때문에 살아야 하며 행복을 추구하고 사랑을 하고 예술을 하고 즐기고 견뎌야 하리라. (216쪽)


추악하게 노골적으로 드러난 전쟁의 비인간성은 그러한 시대를 겪었다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고통의 기억에 시달리게 만들고, 영원히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만들고,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만든다. (265쪽)


정의가 승리했고, 인간애가 승리했다. 그러나 악과 죽음과 비인간적인 폭력도 승리했다. 들여다보고 성찰해 보면 사실이 그렇다. 손실된 것, 잃은 것은 보상할 수 있고, 상처는 아물고, 고통은 누그러든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슬픔은 나날이 깊어지고,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 (266쪽)


전쟁으로 폐허가 된 후에 사람들은 다시 사업을 벌이고, 예전의 생활수준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 재산, 내면적 삶의 가치는 한번 무너지거나 부서지고 나면 누구도 처음의 순수한 시절로 되돌리지 못한다. (278쪽)

 

 

 끼엔은 전쟁이 끝나고, 힘든 전쟁의 기억들을 피하려고 하지만 결국 그 전쟁의 기억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며 산다. 유해발굴단을 하면서 믿음과 삶에 대한 욕망을 느끼게 되고,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쓰며, 전쟁의 슬픔을 곱씹고서야 잠이 든다. 
 

작가는 '아무리 좋은 전쟁도 가장 나쁜 평화보다 나을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전쟁 이후 바오 닌이 베트남 문단에 등장하기 이전까지 베트남전쟁 문학은 조국 통일과 민족 해방의 영광, 집단을 위한 개인의 영웅적이고 숭고한 희생을 노래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바오 닌은 전쟁이 몰고 온 당연한 살육, 희생자들을 영웅시하고 신격화하는 시절 동안 이름 없이 사라져 간 모든 것들에 대해 위로를 건넸다. '모든 것들' 중에는 그 자신도 있으리라.

 

처음 출간될 1991년 당시에는 전쟁을 폄하한다는 의견 때문에 <전쟁의 슬픔>이 아닌 <사랑의 숙명>을 제목으로 냈다고 한다. 그 제목을 본 순간 어쩌면 전쟁의 반대말이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 역시 전쟁을 통해, 사랑이라는 가치에 대해 전하고자 했던 것 같다. 전쟁을 통해 희생된 생명과 그 속에서 사라진 개인의 '사랑'과 같은 위대한 가치들을 위로하며 글을 마친다.

 

전쟁의 슬픔 - 10점
바오 닌 지음, 하재홍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Posted by 실버 편집자

여러분 '제주도'를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푸른 바다와 봉긋한 오름들이 있는 평화로운 풍경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섬 제주에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아픈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70년 전 제주에는 피바람이 몰아쳤습니다. 4.3 사건 때문이지요.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시위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통칭하여 부르는 말입니다.

 

 

문경원 <레드 아일랜드> 中

 

 

단지 4월 3일 하루에 발생한 사건으로 명명하지 못하는, 무려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제주 도민들에게 불행을 안겨줬던 엄청난 사건이지요. 당시 전체 제주도민의 10분의 1인 3만여 명이 학살되었고,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큰 사건입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구체적인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았고, 2000년이 되어서야 제주4·3특별법이 지정되면서 피해의 진상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레드 아일랜드』는 바로 이 4·3사건을 소재로 다룬 장편소설로,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였고 제주 4·3사태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담은 추리소설 「암살」을 연재한 김유철 소설가의 작품입니다. 김유철 소설가치열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해방 전후 열강들의 이념 싸움에 억울한 피해 장소가 된 ‘제주’의 아팠던 역사와, 그 시절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녹여냈습니다.

 

 

 

 

4·3 사건이 더욱 충격적인 이유는 전쟁이 아니라 자국의 경찰과 정부에 의해 3만 명의 국민이 희생되었다는 것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남과 북의 이념 대립, 한반도를 둘러싼 외세의 간섭 때문인데요. 우리나라의 상황상 외세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같은 민족을 해치는 비극적인 역사를 낳게 된 것이죠. 그런 역사가 반복되면서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는 무기력한 분위기가 만연하기도 하였는데, 소설 속 한 대목에서도 그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잔치 분위기가 아니라 토론장으로 변한 공회당에서도 마을 젊은이 몇몇이 모여 앉아 '왜놈 대신에 미군정이 들어앉은 것 말고 달라진 것이 있냐'며 현 시국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여전히 친일 고문경찰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데다 왜정 말기보다 나아질 것 없는 궁핍한 생활을 한탄하는 사람이 늘어갔다. 대대로 외지인들에 의해 수탈을 당해온 섬사람 특유의 피해 의식이 모든 상황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 『레드 아일랜드』 p.46

 

 

해방 이후 마을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한 말인데요. 드디어 해방을 하고 우리의 힘으로 나라를 꾸려나간다는 생각으로 기대에 찼던 사람들은, 또다시 간섭이라는 벽에 부딪히게 되어 절망하고 맙니다. 

 

 

 

 

또한 소설 속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외지인으로 제주에 왔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제주에 남은 홍성수, 일제강점기에 밀수로 돈을 번 기회주의자 김종일, 유약한 지식인으로 현실에 순응하고 경찰에 입대한 김헌일, 4·3사건을 이끈 가해자 계급을 대표하는 비서부장 등 당시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전형적이면서 사실적인 인물들로 이루어져 그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저는 소설에서 김종일과 방만식 두 인물의 대립 구도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전혀 다른 두 인물의 대립을 보여주며 소설의 주제가 더 강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래의 글은 김종일이 민중을 외면하고 지배계급에 하수인 노릇을 했다는 이유로 잡혀간 후 혼자 하는 생각인데, 김종일의 말에서 우리는 현실에 외면하고 자신의 이익을 좇는 데만 익숙해지기 쉬운, 어쩌면 대다수의, 사람들의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남한에서 단독으로 선거를 치르든 말든, 친일파들이 군정에서 살아남아 권력을 행사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저 자신의 가족 건사나 하며 눈치껏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지 않은가? 김종일에겐 국가나 민족이나 이데올로기 같은 건 그저 다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허상 같았다. 왜정시대에 그는 일본을 줄곧 동경해 왔고 지금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랬다. 우리 힘으로 얻은 해방도 아니니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의 도움을 받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쌉쌀한 맛이 입안을 감돈다. 해방된 조국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건 김종일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의 나라가 되던 또다시 권력을 잡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고 그들에 의해 나라는 어떻게든 흘러가게 되어 있으니까.    

 -『레드 아일랜드』 p.144

 

 

김종일은 자신이 가족을 위한 일을 했기 때문에, 남들이 기회주의자라고 불러도 떳떳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김종일의 말처럼 순응하는 삶을 택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저항하는 삶은 훨씬 더 지치고 힘든 일이지요. 그러나 어딘가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사람이 있습니다. 김종일의 집에서 목동 일을 하던 방만식이 그렇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먹고 살기 위해선 지배층에 붙어살 수 밖에 없었다는 김종일의 말에 방만식은 이렇게 답합니다.

 

 

"하멍 자신과 가족만 중요하단 말임수꽈?"
"가족부터 챙기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이렇게 변한 거우다."
"그래서? 만식이 넌 특별하다고 생각하나? 소총 몇 자루와 죽창으로 제주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말이야." () 화북지서에 끌려가 사경을 헤매면서 결심을 했주. 내 자신이 움직이지 않으멍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본에서도 그렇고 제주에서도 그렇주. 성님과 달리 저 같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으멍. 스스로 만들지 않으멍 말이우다."

-『레드 아일랜드』 p.146

 

 

만식은 민중을 대변하며 힘든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좇고,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혁명가의 모습을 보입니다.

 

 

 

 

올해는 4·3사건 70주년을 맞이한 해로, 그날의 뼈아픈 고통을 생생하게 몸으로 기억하는 생존자들도 사실상 마지막 생애주기를 맞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시기라고 합니다.

 

부끄럽지만 서평을 쓰는 저도 4·3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관심을 가지려는 노력도 부족했습니다. 지금 당장 나에게 닥친 일도 처리하기 힘든 세상에, 몇십 년 전 역사적 사건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이고, 현재까지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입니다. 스스로가 김종일이 될 것인지, 방만식이 될 것인지는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해본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레드 아일랜드 - 10점
김유철

 

Posted by 실버 편집자

<영도희망21> 이송미 대표님이 박영미 위원장님의 사람 속에서 길을 찾다를 읽고 마을카페 밴드에 독후감(?)을 올려주셨네요~ 옮겨봅니다~^^

 

 

오늘은 지난 출판기념회에서 사온 책

사람 속에서 길을 찾다를 읽고 소감을 올려봅니다 .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 그것도 인생의 멘토이자 선배님의 삶의 여정을 들여다본다는건 묘한 떨림과 감동이 있었습니다.

제가 박영미 대표님을 처음안 건 20년쯤 전입니다. ^^ 그땐 너무 큰 사람이라 요렇게 옆에서 일을 함께 하고 일을 할 수 거란 생각조차도 못했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제가 지켜보고 함께 했고 전설처럼 들었던 얘기들이 나오더군요.

영도 고용평등 상담실 얘기, 호주제폐지운동 얘기 등 일부 함께 했던 얘기를 읽으니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영도희망21> 얘기도 비중있게 있더라구요.

박영미 대표님 책 속에서 <영도희망21> 마을카페 얘기를 읽으니 후임 대표로 더 책임감을 느끼게 되더라구요.

 

마지막쯤 대표님 칼럼에 시어머님에 대한 얘기가 있었는데 초록스웨터 얘기를 읽는데 울컥하더라구요. 한 여성이 한몫을 하려면 또 누군가가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거구나… 그런 시어머니와의 여성으로서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었구나 싶은.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었는데 짠하더라구요.

 

책의 마지막장을 읽으며 소감을 꼭 올려야겠다 결심했습니다.

우리 회원님들이 이 책을 꼭 읽어보시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박영미 대표님이 살아온 삶에 대한 중요한 증인으로서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보다 더 헌신하고 더 열심히 살아오셨다는 걸 우리 회원들만이라도 알아주면 좋을 것 같아 짧게 소감 올려봅니다.

제가 사둔 책 마을카페 가져다둘께요.^^

 

 

 

 

 

 

 

사람 속에서 길을 찾다 - 10점
박영미 지음/산지니
 



 

Posted by 산그늘12

 

역사/소설을 읽는다는

        세 여자(조선희, 한겨레출판, 2017)를 읽고

 

 

 

봄인가, 아니 여름인가. 세 여자가 개울에 발 담그고 노닥거리고 있다.

하얀 통치마 저고리 위로 한낮의 햇볕이 부서진다.

팽팽한 종아리와 통통한 뺨, 가뿐한 단발은

세 여자의 인생도 막 한낮의 태양 아래를 지나고 있음을 말해준다.

세 여자가 물놀이하는 개울은 청계천인가.” (1, p. 10)

 

 

 두 권으로 분권된세 여자(2017)는 역사 소설로 분류될 것이다. 제국주의의 총칼이 드리운 암흑기의 조선에서 여성 주체로 살아간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의 삶을 통해 조선 공산당의 실체로 다가간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세 여자를 비롯해 이름 석 자로 나오는 사람은 모두 실존인물이다. 등장인물들에 관한 역사기록을 기본으로 했고 그 사이사이를 상상력으로 메웠다. 역사기록에 반하는 상상력은 자제했고 소설역사를 배반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 2,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소설에서 세 여자의 존재와 삶은 그 자체로 조선 공산당의 여정을 되짚는 계기이자 동력으로 드러나고 작용한다. 그것은 역사의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지금 - 여기의 역사이다.

 

 

 나는 이제 이 소설을 읽었지만 여전히 내게 이 독서는 시기상조였다. 이 소설을 섣불리 역사 소설로 분류해 두었지만, 나는 내내 소설과 나란히 쓰인 역사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오래 사로잡혔다. 역사는 연대기적 흐름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그것은 실체가 없다. 시대를 살아간 무수한 삶들이 있을 뿐이고, 역사는 지금 여기서 내가 그 삶들에 다가가고자 희망할 수 있을 때 잠깐 그 실체를 드러내 주는 것 같다.세 여자에 관해 성실하게 쓴 어떤 리뷰 (백지은, <서사가 역사를 배반하도록>,문학과 사회 2017 겨울호) 에서는 이 소설을 역사/소설이라 명명하고 있었다. 나는 역사와 소설 사이를 가르는 저 빗금에 오래 빚질 것이며 그것을 다음과 같이 기억할 것이다. 서사(소설)과 역사의 길항. 역사 소설이란 역사라는 실체에 관해 정리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역사-삶의 움직임과 대면하려는 무한한 긴장(역사/소설)이다. 나의 바람이 간절하지 못했던 탓인지 긴장의 순간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다. 읽은 감상을 서둘러 갈무리하는 대신 이 책이 불러준 또다른 책들을 찾아 서가 앞을 막막하게 헤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조선 공산당의 최대 강령은 조선 사회의 공산주의화였지만, 이들의 최소 강령은 조선의 독립과 인민을 위한 민중적 민주주의 사회 구축이었습니다. 이들은 큰 목표를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작은 목표들을 실현하기 위한 실행을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독립 투쟁을 위해 좌우합작 활동에 매진했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관철시키면서 불안정 노동을 척결하려 했지요. 민족민주혁명 바로 직후에 토지개혁을 하려 하면서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가 가능한 사회를 혁명의 첫 단계에 만들어가려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무산계급을 중심으로 한 공산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게 조선 공산당의 1·2차 혁명구상이었지요. (……) 그렇다면 한국을 비롯해서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21세기의 아시아에 또다시 공산주의 운동이 필요하진 않을까요? 이미 보수화된 공산당들이 그런 운동을 펼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아시아의 대중들이 언젠가 다시 한번 이런 급진적이고 국제 연대적인 투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각국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지금과는 다른 아시아로 거듭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이것이야말로 아시아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를 살피면서 제가 품게 된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박노자,러시아 혁명사 강의, 나무연필, 2017, pp. 242~244)

 

 

 “최대 강령과 최소 강령의 이중주.”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비춰 주었던 투쟁의 길은, 세 여자가 살아 냈던 암흑기에서는 민족 해방과 독립 운동을 위한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그 길과 빛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한 면이 빛을 보면 한 면은 어둠일 수밖에 없었으니 항상 팽이처럼 위태롭게 균형을 유지하며 멈추지 않고 회전해야만 했다. 이념이 강령의 공허한 구호로 전락했을 때 민중은 주인이 될 수 없었고 인류의 역사는 새로이 쓰여지지 못했다. 작가 조선희는 해방과 독립이라는 대의하에 세 여자의 삶을 조명했다. 페이지를 넘기는 독자의 의무는, 무엇이 그 시대적 사명과 대의를 이끌어가는 것인지를 아는 것이다. 혁명의 와중에서도 여성의 노동력이 착취되는 모순을 끊임없이 들춰 냈던 허정숙의 눈빛과 코민테른 유학자금을 받아들고 모스크바의 겨울로 걸어 들어갔던 고명자의 발걸음,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딱지를 온몸에 새기고도 쾌활하게 종로 거리를 걷는 조선 청년의 뒷모습을 오래 서서 지켜보는 주세죽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짐작해 보는 것. 소외 없는 민중의 삶을 실현해내기 위해 무한히 투쟁했던 눈빛과 발걸음을 상상하는 것. 그 어떤 삶도 구분되지 않는 사회, 그 누구도 내쳐지지 않는 사회를 소망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지금 - 여기서 우리가 마찬가지로 가질 수 있는 눈빛과 행할 수 있는 발걸음, 낼 수 있는 그런 목소리를 말이다. 역사와 일상은 다른 것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20세기 초반 이곳에 살았다. 혁명이 직업이고 역사가 직장이었던 사람들. (……) 그들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착취하면 안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면 안 된다고 믿었다. 농부는 자기 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아프면 돈이 있건 없건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람이 평등해야 존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2, pp.370~371)

 

 

 

작가 인터뷰 보러가기

[미니북] 미국을 보지 못한 콜럼버스들 | 1boon https://1boon.kakao.com/bookclub/minibook20170720

 

   

세 여자 1 - 8점
조선희 지음/한겨레출판

세 여자 2 - 8점
조선희 지음/한겨레출판

 

Posted by 풀밭_

 

돌돌의 언어

- 고개 숙이는 것, 조아리는 것, 무릎을 꿇는 것에 대하여

 

최영철 시인의돌돌(실천문학, 2017)금정산을 보냈다(산지니, 2014)를 읽고

 

 

 

   

 

내 꿈에 놀러와

 

겨울. 추위에 몸을 떨고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늘 하루도 열심히 고개를 숙였구나, 춥구나, 생각하다가 시를 읽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매일 시를 읽는 것은 힘들다. 시를 읽는 것은 무용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컷 자고 일어난 주말에는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커다란 창이 있는 책상 앞에 앉기도 하며, 밀린 빨래들이 신나게 굴러다니는 세탁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겨우 읽을 수 있게 되고 그러면 무용함의 효용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읽을 때는 아무 생각없이 읽지만 읽고나면 그래, 시를 읽어야지. 하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시를 읽는 좋은 방법은 한 손에 시집을 들고 스르륵 넘겨보며 저절로 멈추게되는 곳부터 시작하는 것. 내가 처음 멈춘 페이.

 

 

"내 꿈에 놀러와

오는 길목 마트에 들러

새로 나온 꿈 세트 한 꾸러미 잊지 마"

(잊지마 꿈 세트부분, 돌돌)

 

 

마트에서 사갈 수 있는 꿈, “오래전 내놓고 잊어버린 꿈”, “깨고 나서도 꿈이어서 좋았지중얼거리게 되는 꿈은 반짝이는 희망이나 열린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 맨 얼굴의 꿈이다. 일상에서 나는 자꾸만 무언가를 기대하게 되는데 그것이 무엇을 위한 기다림인지를 묻게 만들 수 있는 힘은 맨 얼굴의 꿈을 보려는 자세에서 나오는 것 같다. “거긴 내가 내가 아니야라고 거짓 없이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곳에서 시인은 자주 서있고 중얼거리는데 그걸 계속 보고 있으면 너의 앞은 우리의 앞은 무척 깜깜해, 라는 속삭임을 듣게되기도 한다. (“인기척이 없어도 어김없이 길은 열리고/아무도 없는 미래가/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것이라 했다/길이 너무 많아/길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 했다”) 일상에서의 나의 기다림을 잠시 잊고서 거짓없는 그 캄캄한 말을 따라가는데 알 수 없는 믿음이 생기는 건 왜일까. 허무하다거나 절망적이라는 말보다 그 믿음이 더 크게 느껴질 즈음, 너무 많은 길 속에서 만나게 된 어떤 것들 때문일까.

 

 

길 위의 것들

너를 한번 안아주는 것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

떨며 선 나목과 새와 길고양이와

청설모와 멧돼지와 좀도둑과 육교와

세상 모든 노숙

나도 너에게 무엇인가를 받고

그 보답으로 내가 너에게

무엇인가를 주면 안 되겠니

너의 배고픔과 나의 배부름을

공평하게 맞바꾸는 건

너의 싸늘함과 나의 따스함을

신나게 맞바꾸는 건

저울 하나 갖다 놓고

정확하게 칼로 잘라 맞바꾸는 건

바람이 달아주는대로

이 무거운 등짐 맞바꾸는 건"

(노숙에게부분, 돌돌)

 

 

나약한 것들, 금방 사라져버릴 것 같은 것들을 앞에 두고도 내려다보지 않고 나란히 서있는 것은 힘들다. 불안하게 중얼거리는 시의 말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말로 안 되겠니’, ‘안 되겠니하며 옆에서 바라보는 일일 뿐이다. 거리의 말들, 선언의 말들과 멀리 떨어진 그 넋두리를 따라가다보면 당연하게도 납죽엎드려 저만치 기어가는 벌레같은 시인을 만나게된다. 나는 인사를 한다.

 

 

살의는 없었으나 짐짓 있는 힘 다해 내리친

나에게 보은이라도 하려는 듯

영영 숨이 끊어진 척 먼 딴 데를 보고

나 역시 서슬 시퍼런 척 납죽

까무러치는 척 정신을 잃은 척

부리나케 쫓아와

숨이 가쁜 듯 납죽

기어들어가는 척 숨 넘어가는 척

애도하는 척 납죽

그게 탄로 나 짐짓 먼 딴 데를 보고

눈시울을 닦는 척"

(납죽부분, 돌돌)

 

 

 

 

마음 노동자의 일

 

이번 시집 돌돌에는 유년의 기억(진흙 쿠키), 민중과 혁명에 대한 믿음(프라이 하는 법), 자본의 무자비함과 역사 인식(디엠지 부동산에 대한 전망)에 관한 사유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나는 이 시들을 읽으며 결코 밝은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 무자비한 꿈의 진실을 읽기를 바랬다. 그 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내가 매일 고개를 숙이며 쓸모없이 걱정하는 일상의 안위를 잠시 제쳐두고 더 크고 아름다운 고개 숙임과 자주 꿇어 벌겋게 닳아오른 무릎을 바라보는 일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시집을 엮으며 시인은 시를 쓰는 일을 마음 노동자의 일이라 정의했다. 일생의 반을 마음 노동자로 살아온 시인의 무릎은 무슨 색일까. 말로 세상을 사는 일은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일이고 노심초사하는 일이다.

 

 “너무 오래, 어눌한 말을 내뱉었다. 엄밀히 말해 그 말들은 하나도 나의 것이 아니었다. 세상의 파장이요 자연의 율동이었다. 나는 그것들의 말을 엿들은 염탐꾼이었고 누군가가 무심코 흘리고 간 말을 주워담아 궁굴려본 흉내쟁이였다.” (노심초사의 즐거움중에서 ) 시인은 여전히 그것을 하고 있다.

 

 

 

"부산이라는 말

부산이라는 말

 

가마뫼라는 말

가마솥처럼 생긴 뫼라는 말

앙다문 솥뚜껑 아래 부글부글 끓는 뫼라는 말

 

그 가마뫼라는 말과 불끈 솟는 힘이라는 말

그 가마뫼라는 말과 절절 끓는 힘이라는 말

그 가마뫼라는 말과 굳게 다문 힘이라는 말

 

부산이라는 말

급하게 서두르거나 시끌벅적 떠들어 어수선하다는 말

부산이라는 말

주된 생산물이 아니라 무엇에 편승해 슬쩍 덩달아 나왔다는 말

 

부산이라는 말

부산이라는 말

 

꿀꿀이죽이라는 말

공돌이 공순이란 말

번득이는 생선 비늘이라는 말

 

덩달아 시끌벅적

지금도 끓고 있다는 말

 

그 가마뫼라는 말에 참기름을 붓고

그 가마뫼라는 말에 깨소금을 붓고

그 가마뫼라는 말에 각설탕을 붓고

 

오랫동안 굳은살과

바짝 조인 허리띠와

움켜쥔 땀방울을

슬슬 풀어주고 싶다는 것

슬슬 닦아주고 싶다는 것

 

부산이라는 말

부산이라는 말

앙다문 가마솥 같은 뫼라는 말"

  (「부산 釜山이라는 말전문, 금정산을 보냈다』)

 

 

 

 

 

돌돌 - 10점
최영철 지음/실천문학사
금정산을 보냈다 (양장)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블로그를 통해 처음 선보이는 <산지니가 읽는 시>.

가볍게 첫 인사를 건넸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찾아뵐 수 있기를!

 

 

 

 

Posted by 풀밭_

『밤의 눈』과 『병산읍지 편찬약사』

- 작가 조갑상과 보도연맹 학살사건

 

 

조갑상 작가에게, ‘보도연맹 학살사건’은 어느덧 하나의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화두가 된 듯하다. 2009년 발간된 소설집 『테하차피의 달』(산지니)에 수록된 <어느 불편한 제사에 대한 대화록>에서 보도연맹 사건을 언급했을 때만 해도, 수록작 하나를 가지고 그가 보도연맹에 아주 깊은 관심을 표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 시대를 지나온 사람이기에 더더욱, 보도연맹 사건은 마주보고 소설화하기에는 부담이 큰 소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2012년 그에게 만해문학상이라는 큰 영예를 안겨 준 장편 『밤의 눈』(산지니)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작품이었다. 달은 밤의 눈을 하고 세상을 내려다볼 뿐이고 인간들은 아무 죄 없는 사람인 줄을 알면서도 이웃을 쏘았고 더러는 산 채로 묻었다. 그 지옥도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어렵게 꾸린 유족회 활동은 시대의 족쇄에 매여 오히려 그들을 두 번 죽인 셈이 되었고, 그들 스스로의 손으로 세상을 바꾸는 데 나서지 못하게 했다. 바뀌어 가는 시대를 바라보며 ‘이제는 회한의 눈물이 아닌 내일을 위한 눈물을 흘리겠다’고 다짐하며 소설은 끝나지만, 그들이 살아왔던 굴종의 세월은 그들을 쉽게 놓아 주지 않았다는 것을 독자들은 알고 있다.

 

 

2017년, 그가 신작 소설집 『병산읍지 편찬약사』(창비)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보도연맹 사건을 다룬 작품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병산읍지 편찬약사>를 비롯해 <해후>, <물구나무서는 아이>까지, 모두 세 작품. 첫 페이지부터 연달아 세 작품이 이어진다.

 

<해후>에는 경찰 사위의 기지로 구출될 뻔했으나 마을 사람들의 눈을 꺼려 다시 창고로 돌아온 ‘장인’과 그를 돌려보내지 못하고 다른 이웃들과 함께 트럭에 실어 보내야 했던 경찰 출신 사위의 아픈 역사가 있다. 집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졌을 뿐인데 온 몸에 부상을 입을 만큼 나이가 든 박 영감은 온 몸에 깁스를 하고서도 유골 발굴 현장에 찾아간다.

 

<물구나무서는 아이>에서 김영호는 창고 앞에서 아버지를 날마다 불러대 아버지를 구할 뻔했으나 아버지를 자처하고 나선 낯선 남자가 아버지 대신 살아남게 되고 아버지는 죽고 만다. 훗날 그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던 사장에게서 그 낯선 남자의 냄새를 맡고, 그를 간첩으로 신고한 자신을 정당화하며 열성 극우파로 살아가다 허무한 죽음을 맞는다.

 

<병산읍지 편찬약사>에서는 병산읍 승격 기념 읍지에 보도연맹 사건이 너무 비중 있게 다뤄지는 것을 ‘좌빨 글 싣는’ 것으로 간주하는 여론이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원고를 썼던 이 교수는 피드백대로 고쳐보려고 애를 쓰지만, 도저히 지울 수 없는 부분을 지우라는 요구에 필자 교체를 요구한다. 결국 읍지는 보도연맹 관련 내용이 한 줄만 실린 채 발간된다.

 

요약하자면 <해후>가 『밤의 눈』처럼 보도연맹의 현장에 서 있다면, <물구나무서는 아이>는 유족회에 들지도 못하는 피해자의 인생 궤적을 간단하지만 충실히 따라간다. 인물들의 비극을 개인사적 비극으로 그리고 있지만 작가의 시선은 사회를 향한다. 그리고 묻는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리고 그 답을 <병산읍지 편찬약사>에 꾹꾹 눌러 담았다. 모두가 터부시하고 지워내기 급급한 역사, 그 아래에서 신음소리 한 번 제대로 내 보지 못한 채 숨죽여 살다 간 피해자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의 시선은 가해자들의 시선과 정말 다른가. 아니 우리 자신이 가해자가 아닌가.

 

작가는 『밤의 눈』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이번 단편들을 통해 정리한 듯하다. 어찌 보면 『밤의 눈』의 후일담처럼 느껴질 정도로 반복되는 이야기임에도 서사에는 지루함이 보이지 않는다. 『병산읍지 편찬약사』를 통해 또 다시 역사를 향한 이야기를 쏟아 낸 작가의 집념에 경의를 표한다.

 

 

 

 

*소개된 책

 

병산읍지 편찬약사 - 10점
조갑상 지음/창비

 

 

 

 

 

 

*같이 읽으면 좋을 산지니 책

 

밤의 눈 - 10점
조갑상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 고시원 생활 모습 /출처=KBS 시사기획 창

내일은 뭐 먹나?

돈 없으면 꿈도 가난해진다

흙흙떨어지는 청년의 눈물

 
오늘 오천 원 짜리 밥을 먹으면, 내일은 3천 원짜리 먹어야 한다. 오죽하면 청년의 눈물은 흙흙떨어진다고 할까. 대학 시절 가장 고민거리는 내일은 뭐 먹지?’였다. 일주일 생활비를 쪼개고 쪼개서 생활하던 나에게 밥이라도 사준다면 달려가 품에 안겨 맞이하고 싶었다. 이런 현실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청년이 겪는 통증이다. 아르바이트와 휴학을 반복하며 고군분투하는 대학생, 끼니 걱정하며 우여곡절 졸업하면 취직 걱정하는 청년들. 교육, 주택, 고용 등 정말 어느 하나 청년들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있지 않다. 이 시대의 청년으로서 이렇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미래가 청년이 맞나요?”

버티면 암, 못 버티면 자살이라는 어구가 놀랍지 않다.
저축은커녕 소비조차 못 하고 매달 밀려오는 학자금 대출을 갚기에도 빠듯하다. 이런 상황에 결혼과 출산은 소위 '미친 짓'으로 통용된다. 어째서 따뜻한 밥 한 끼 사주기 어려운 사회가 됐을까?. 이제 청년이 갈 곳은 새로운 내일을 꿈꾸기보다 오늘을 버티는 길뿐이다.


, 쪼들려 봤나요?

징글징글한 상환 문자


고객님
00일까지 상환해주세요. 매달 같은 날짜에 알람이라도 울리듯 문자가 온다.
매달 돌아오는 이자보다 짜증 나는 독촉 문자. 오죽하면 오후 6시 이후에는 채무독촉을 금지하는 법까지 있을까. 그래도 고객은 을이니깐. 원금에 이자까지 대출 상환을 한다. 착잡한 마음을 쓸어내리고 한숨을 내쉰다. 설령 빚 탈출을 하더라도 저소득으로 결혼 자금, 전세 대출 등 다시 빚을 지고 악순환의 고리는 벗기려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처럼 삶을 옥죈다. 대학시절 후배는 일주일 중 하루 공강(강의 없는 날)을 만든다. 수업이 없는 날은 일용직 노동을 하고 주말에는 아르바이트한다. 이렇게 번 돈으로 월세와 통신비를 해결하고 나머지는 생활비로 사용한다후배는 하루 하루를 버티다 휴학했다. 내년 다시 복학할 계획을 하고 있지만 다시 고단한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쉽사리 결정을 못 하고 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 아르바이트를 하다 전화를 받은 후배가 한마디 한다.

형 인생 노답이야 노답.”


기본소득, 너만 있으면 돼?


매달 용돈을 준다고?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일을 안 하는데 돈을 왜 주지?”, “그래도 주면 좋은 거 아니야?” 일각에선 노동 없는 소득은 국민을 게으르고 나태하게 만든다고 주장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개개인의 행복만이 아니라 사회의 임금 격차를 줄이려고 한다면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다양한 논의가 오가는 과정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기본소득의 우리 삶의 질을 바꿀 만큼 많은 소득을 줄까?’. 모 시장의 공약은 년 최대 100만 원으로 기본소득을 준다고 대선 공약으로 주장한다. 1달로 치면 8만 원 남짓. 당장은 우리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되지 않을 액수이다. 기본소득이 청년들의 좌절감을 극복하는데 하나의 방편이 된다면, 또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복지국가로 나아가는데 동력이 된다면,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가치 있고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나 반대와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빚 권하는 사회, 빚 못 갚을 권리 - 10점
제윤경 지음/책담
   

 

우리는 빈곤세대입니다 - 10점
후지타 다카노리 지음, 박성민 옮김/시공사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 10점
오준호 지음/개마고원

 

 

 

 

Posted by 비회원

투덜대며 문제를 끌어안고 사는 우리

 

내게 없는 미홍의 밝음


 

 

 

우리 사회의 여성이 겪는 크고 작은 불편함을 소설로 풀어내다

 

주인공 소영은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비정규직 여성이다. 재래시장에서 스토리텔링을 해주는 그는 평상시처럼 길 찾기 앱을 열고 골목 구석구석 거리를 검색해 본다. 정해진 길을 검색하는 건 쉽지만, 소영의 삶은 도착지 없는 골목을 지나가고 있다. ‘내게 없는 미홍의 밝음은 우리사회의 지친 면들을 다시 끄집어낸다. 그리고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기보단 그저 버티며, 그저 한 사람으로 서 있다. 다름 아닌 우리네들 삶처럼 말이다.

 

         사진 출처 http://bbs.rigvedawiki.net/index.phpmid=issue&document_srl=23034&order_type=desc

 

▶ 자신의 삶을 주도하는 밝음

 

밥값과 사무실 운영비를 뜯었다고 했다. 덕분에 빈대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미홍이, 나는 부럽다. 빈대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붙잡고 갈 만한 뭔가가 있다면 막막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게는 미홍의 밝음 같은 게 없었다. P57

 

소영에게도 부러운 친구가 있다. '미홍' 그는 소영에게는 없는 특유의 밝음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낸다. 대학연극부 시절 발음으로 지적을 받던 미홍은 항상 주인공을 배정받았고, 발음이 좋은 소영에게는 비중 없는 역할을 배정받았다. 그러던 중 한 선배가 소영에게 말로 찌른다. “아무리 발음이 좋아도 무대욕심 없이는 못 해!” 말을 들은 소영은 쓸쓸한 마음을 가지고 조명실로 향한다. 그녀는 미홍에 비해 무엇이 부족할까?

 

 

▲사진 출처 = 아리랑 패널

 

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필요한 밝음

 

그나마 숨쉬기가 편한 곳을 고른게 결과적으로 그랬다. 닥치는 대로 여기저기 찾아 들었던 강좌 가운데는 제목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오고 나서 후회했던 대기업 정규직도, 피곤을 무릅쓰고 쫒아 다녔던 그 많은 강좌들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아니었던 거다.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어쩌면 정말 하고 싶은 게 없는지도 모른다. P71

 

 

'내게 없는 미홍의 밝음'에서 주인공 소영은 미홍을 보며 자신의 밝음을 찾아 나선다. 이처럼 이 책이 자본으로 일그러진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되기를 바래본다. 미홍처럼 내면에 묵묵히 버틸만한 무언가가 있다면, 아니 찾을 수 있다면 우리 삶이 한결 밝아지지 않을까? 현재 우리네 일상은 길을 잃었고, ‘미홍의 밝음은 언제나 곁에 있다. 어떤 철학자 말 따라 참 치사하고 씁쓸한 현실이지만 자신의 밝음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밝음이기 때문이다.

 

 

내게 없는 미홍의 밝음 - 10점
안지숙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손톱 밑 가시와 같은 존재라

불리는 이방인들의 이야기 '쓰엉'>

 

 

매콩강에서 뱃사공으로 일하다가 한국으로 시집 온지 10년 된 베트남 여자 우엔 티 ‘쓰엉’. 쓰엉은 베트남을 벗어나면 무언가 다른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결혼생활은 시어머니, 폭행을 일삼는 남편 밑에서 숨 막히는 지옥과 다름없다.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장’과 ‘이령’. 장은 이령의 소설 집필을 위해 시골 가일리에 하얀 집을 하나 지어 생활하는데, 가정부 쓰엉은 그들에게 매우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자로 다가온다.

쓰엉이 무언가를 찾아 떠나 갈까봐 두려운 쓰엉의 남편 종태는 결국 하얀 집을 불태워버리고 만다.

 

 

 

                                                  출처: http://unryeong.blogspot.kr/2014/07/blog-post_9850.html

 

닮은 데라곤 하나도 없는 두 사람이 모두 여자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통이 크고 겁이 없는데다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엄살을 피우지 않는 억척스러운 엄마는 묵묵히 일만 하는 가축 같은 여자였다. (40쪽)

 

『쓰엉』을 보면서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 갇힌 한국사회 여자들의 불편한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졌다. 지난 한국사회의 엄마들이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희생하는 모습을 많이 보고 자랐다. 가상으로나 실제로나 그것은 안타까운 사실이었다.

 

이령의 어머니는 남편 첩의 산후조리까지 해주는 가축 같은 여자라고 한다. 이령의 언니는 술독에 빠진 남편과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 쓰엉은 시어머니에게 고된 시집살이를 당하고 손자 타령까지 시달린다. 그녀들은 인내와 순종을 택한 삶을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인지 이령은 ‘가족’에 대해 딱히 관심도 없는 듯하다.

 

 

늙고 추해서 불쾌하고 혐오스러웠던 여자의 몸과 달리 이령의 소설은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변하거나 훼손되지 않을 거였다. 언어의 아름다움에 비한다면 인간의 미란 건강이나 젊음, 사랑의 감정처럼 한시적이고 쉽게 마모되기 마련이며 돌이킬 수도 없었다. 육체는 소멸하는 물질이 그런 것처럼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없었다. (55쪽)

 

베트남에 있을 때도, 가일리에 있을 때도 항상 쓰엉의 눈빛은 먼 곳을 향해있다.

쓰엉은 우물을 벗어나기 위해서 즉 도시에 대한 동경과 갈망으로 장과 이령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령은 아버지의 첩인 ‘여자’의 아름다움에 대해 동경했고, 그 동경심으로 소설을 욕망하는 소설가이다.

 

이령이 갈망하는 아름다움은 필히 늙기 마련이기에 이령은 ‘언어’로 그 아름다움을 가두려 한다. 이런 이령은 낯선 이방인 쓰엉의 아름다움을 갈망하여 생기를 되찾기도 한다.

 

영원한 것, 어떤 높은 곳을 향한 동경과 갈망은 가장 인간적이고도 순수한 단어이다. 무언가를 갈구하고 바라는 것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

 

허망된 것이 아닌 보다 더 나은 것을 갈망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이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쓰엉은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일 따름이었다. 박 씨 할머니처럼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고 팽팽했던 얼굴이 주름으로 자글자글해진다고 해도 그녀는 한국 사람이 될 수 없었다.(159쪽)

 

이방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어떠할까.

 

쓰엉은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이방인이며, 갑작스레 도시에서 가일리로 내려온 이령과 장은 산골마을사람들에게 이방인이다. 장과 남이 된 전부인 정하와 아들 지호는 장에게 이방인이다. 지호와 승태는 장애를 가지고서 사회와 단절된 이방인이다.

 

이방인에게 경계선을 그어본다면 이미 우리는 각자 하나씩의 경계선을 달고 다니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이방인이 되는 순간도 수없이 많다. 죄를 뒤집어쓰고 법정에서 앉아있는 쓰엉을 보면서 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였을까. 자신의 방식으로 꿋꿋하게 살아가는 쓰엉은 쓸쓸하면서도 당차다.

 

어릴 때부터 한 민족, 한 가족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많이 들었다. 소속감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소속된 곳이 없는 현실은 불안하고 슬플 것이다.

 

또한 낯섦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는 불가피한 사람 심리일지도 모른다. 이방인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변화시키는 일은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쓰엉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당신이 자신을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한국 사람인 것이고 베트남 사람이라 말하면, 베트남 사람인 것이라고 말이다.

 

결국 이방인이라는 생각과 벽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다. 다른 이들의 생각과 말에 휘둘려 그곳에 존재한 자신을 부정하지 말아달라고, 『쓰엉』을 읽는 내내 말하고 싶었다.

 

 


 

 

쓰엉 - 10점
서성란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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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도 부산을 제대로 맛보지 못한 부산토박이>

 

 

맛집 기자 박나리·박종호 저자의 『부산을 맛보다-두 번째 이야기』. 내가 알고 있는 집이 몇이나 나올까 생각하며 펼쳤던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궁금증을 자아냈다. ‘여태 내가 먹은 부산의 맛은 뭐였지?’
어느 순간부터 음식을 먹으러 가자하면 다들 인터넷부터 켠다. 손가락 몇 번 툭툭하면, 눈을 데구루루 굴리기도 전에 쏟아져 나오는 부산의 수많은 맛집. 그런 식으로 내가 찾아 가보았던 맛집은 부산의 맛이 아니었다.

 

 

“가게에는 ‘세상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집’이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오용국 대표에게 그렇게 적어둔 이유를 물었다. 자식에게 먹이려고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만든 음식만큼 맛있는 것은 없다. 그런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지만 각자의 집에 있는 어머니보다는 못하니 두 번째라고 적었다며 웃는다.” (150쪽)

 

어느 지역의 문화를 알고 싶으면 그 지역의 음식을 맛보라고 얘기한다. 음식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알아가고 싶은 사람에게는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대개 제일 먼저 묻는다. 이래서 음식은 참 재미있다. 제각각 다른 입맛따라 만들어지는 여러 음식들이 존재하니까 말이다. 맛집으로 선정된 기준은 단순 저자의 취향대로일수도 있다.
하지만 책에서 나온 맛집 대표님들의 공통분모가 있었다. 음식에 대한 삶과 철학을 품고, 오랜 시간 맛있는 부산 음식 만들기에 공들여 왔다는 점이다. 부산의 맛을 담아낼 수 있는 맛집이 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음식에 대한 진심이었다.
음식은 살아 숨쉬는 것도 아니고, 먹어 사라지는 것일 뿐인데- 누군가의 진심을 담아내고 그 진심이 통하는 매개체가 된다. 그러고 보면 음식은 참 따뜻한 '사람' 같다.

 

“하 대표는 유치원 선생님이었단다. 적성과 잘 맞지 않아 어학연수를 떠난 캐나다에서 브런치를 만났다. 예전에 가르쳤던 유치원생이 단골이 되어 가게에 찾아온다니 세상 참 재미있지 않은가.” (253쪽)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닭 내장탕을 찾는 손님이 얼마나 있을까. “나이가 좀 있는 손님은 옛 추억을 떠올리며 온다. 아버지와 손잡고 왔던 아들은 아버지 생각에 오기도 한다고 대답했다. (72쪽)

 

브런치 카페 이안의 하 대표는 훌훌 털어버리고 떠난, 아무도 모르는 이방인의 도시에서 브런치를 만났고, 거기서 위로를 얻은 것이 아닐까?

음식이 주는 위로는 그 어떤 위로보다 따뜻하다고 항상 느낀다. 누군가의 힘이 된다는 것은 만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걸 해내는 것이 음식이다.
비 오는 날이면 엄마는 늘 굵은 멸치로 육수를 낸 물에 그대로 김치, 국수, 밥을 넣고 꽤 걸쭉한 김치국밥을 끓이신다. 그 김치국밥은 어딜 가도 같은 맛을 내는 가게가 없다. ‘엄마. 왜 항상 비가 내리면 김치국밥을 해?’, ‘비 오는 날마다 외할머니가 이 국밥을 끓여 줬어.’ 엄마의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낸 음식은 곧 위로가 담긴 음식이 된다.
어쩌면 30년 뒤의 나도 추적추적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보글보글 김치국밥을 요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저는 밀가루 음식을 굉장히 사랑합니다.)

 

“신맛쓴맛매운맛단맛짠맛을 이르러 오미(五味)라고 한다.” (95쪽)

 

미각은 재료, 맛, 분위기에 대해 낯가림이 있다. 이 중 맛은 5가지(신맛, 쓴맛, 매운맛, 단맛, 짠맛)로 단출하게 구성되어 있다. 맛은 제한적인 스펙트럼 안에서 끊임없이 미각혁명을 불러일으킨다.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분자요리부터 뜨거운 맛과 차가운 맛이 함께 어울리는 요리까지 미각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음식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기를 계속해서 시도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를 넉다운시키는 ‘맛’의 원펀치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들의 결과물일 것이니, 나는 행복하게 응급실에 실려 갈 수 있다. 그러고 정신이 들면 또 다른 맛집을 찾으러 다닐 것이다.

 

“Es ist gut(참 좋다)”

 

임종을 앞둔 칸트는 와인으로 목을 축였다. 그리고 그는 ‘Es ist gut’라는 말을 던지고 영면했다. 칸트가 남긴 마지막 말의 의미가 과연 와인이 맛있다고 한 것인지 혹은 그의 삶이 좋았다는 뜻이었는지를 두고 추측이 분분하다. 여기서 나는 감히 와인이 주는 맛이 참 좋다는 의미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각은 우리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축복이다. 그리고 그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음식이다. 우리는 몸에 좋은 음식을 선택해내는 분별력뿐만 아니라 맛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쾌락, 행복의 권리도 누려야 한다.
맛집을 서성이는 목적은 생존도 아니고 배불리 먹는 것만이 아니다. 맛집 속에 담긴 그 의미를 찾고 즐기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게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어 ‘Es ist gut, Es ist gut.’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맞이하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비회원

 

감천문화마을 단디 들여다보기
<감천문화마을 산책>/ 임회숙 지음/ 해피북미디어 펴냄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 배경은 감천문화마을 사진으로 해 두었다. 알록달록한 집들이 오밀조밀하게 쌓여있는 풍경이 예쁘다. 감천문화마을에 두 번 가 보았다. 마을을 들어서 꽤 긴 길을 걸으며 만나는 벽화나 갤러리, 공방을 둘러보고 사진 좀 찍었던 추억이 있다. 그때는 그곳을 그저 흔한 벽화마을들 가운데 하나쯤으로 여겼다. 젊은이들이 사진 찍기 좋게 잘 꾸며진 곳으로 말이다. 실제로 많은 이십대들이 셀카봉을 들고 즐기고 있었다.

 

<감천문화마을 산책>을 읽기 전까지 나도 관광객의 하나로 그곳을 갔는데 책을 읽은 후, 달라졌다. 

 

 

 "'관광객'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 달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람이 사는 마을을 구경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사는 곳은 방문하는 것이다. 방문자에게는 손님의 자격이 부여된다.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이 지켜야 할 자세가 있듯 방문자 역시 손님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63쪽)

 

 


구경하듯 스쳐지나치는 관광객 말고, 주인을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손님이 될 수 있을 거 같다.

 

<감천문화마을 산책>에는 마을을 꿰어 흐르는 역사가 있고, 마을에서 살아 숨쉬는 사람이 있고,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가난과 전쟁 통에 강제 이주된 삼천 명의 사람들이 일군 마을이 바로 감천마을이었다.

 

 

"집과 집이 서로를 가리지 않는 것은 다른 산동네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다. 집들 사이에 형성된 작은 골목길 역시 큰길과 이어져 있어 하나로 통한다. 그러니까 감천문화마을은 배려와 소통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110쪽)

 


감천문화마을의 상징이 되는 블록같은 집들에 이런 배려와 소통의 비밀이 있었다니 감동이다. 그 공간이 주는 가치가 지금 이 마을을 더 아름답게 해 주는 것 같다.

 

자세히 보면 예쁘다고 했던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도 했지? 지은이 임회숙 작가는 감천문화마을을 '단디'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해 준다. 감천문화마을 안에서 활동하는 작가들과 한 명씩 인터뷰를 하며 그들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가 하면, 마을에서 살며 겪는 어려움 또한 숨김없이 알려 준다. 마을의 빈 집을 개조해 무료로 작업실을 쓰고 있는 예술 작가들은 한결같은 고민을 안고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마을 주민들과 소통하며 살아갈까 하는 것이었다. 이런 고민이 외부에서 들어온 '그들'에서 한 마을 주민인 '우리'가 되어 함께 마을을 가꾸어가는 힘이 될 수 있겠다 싶다.

 

마을 사진이 담뿍 담겨있고 친절한 글로 쓰인 책을 읽으니 감천문화마을을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단, 아쉬운 점은 마을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예쁜 지도 하나가 곁들여졌다면 좋았겠다. 이제 '방문객'으로 감천문화마을의 초대에 응하고 싶다. 애정 가득 갖고 그 마을을 단디 즐겨야지.

 

 

글 : 박신경 님(독자)

 

 

 

감천문화마을 산책 - 10점
임회숙 지음/해피북미디어

 

 

 

 


Posted by 단디SJ

 

<출처: 픽사베이>

 

 

저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해왔습니다. 사람들은 왜 여행을 하는 걸까? 

여행해야만 하는 걸까?

대체 여행이 뭐길래, 다들 해야 하는 의무인 것처럼 행하고 있는 걸까.

 

얼마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한 작가의 에세이에서는 '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할 용기'를 다룬 부분도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여행은 신성불가침의 종교 비슷한 것이 되어서 누구도 대놓고 "저는 여행을 싫어합니다"라고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중략)

여행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쩐지 나약하고 게으른 겁쟁이처럼 보인다.

폰 쇤부르크처럼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났더라면 '우리 귀족들은 원래 여행을 안 좋아해'라고 우아하게 말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우리 같은 평민들이 쓸 수 있는 레토릭이 아니다.

『보다』中-김영하

 

 

저의 경우에 빗대어 본다면, 결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데 그렇다고 싫어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여행에 관해 늘 이렇게도 애매한 감정을 지녔던 저와 달리,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명확하게 '여행을 좋아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 몹시 궁금했던 저는 두 권의 에세이집을 읽어보게 되었는데요.

 

노경원 저자의 '그럼에도 여행'이라는 책과 김민철 저자의 '모든 요일의 여행'이라는 책입니다.

 

 

                

 

 

먼저 「그럼에도 여행」을 소개해드리자면, 가장 먼저 목차를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총 4 장으로 나뉘어진 책은 #1 돈이 궁해도, #2 시간이 없어도, #3 용기가 부족해도,
#4 그럼에도 여행 라는 연결고리로 진행이 되는데요.

 

여행을 생각할 때 여러 가지 벽들이 존재하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걱정이 되는 요소들을 언급하며 그럼에도, 라고 결론짓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도 그럴게, 이 저자는 이 책에 나오는 여행지를 다녔던 기간에 '대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인데요. 넉넉한 가정형편이 아니었던 만큼, 남들보다 배는 노력해서 간 여행이 저자에게 어떤 의미로 와 닿았는지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여행이 꿈꾸던 것과 달랐던 점도 있었고 꿈꾸던 것 이상이었던 점도 있었다고 표현하면서, 제목을 그럼에도 여행이라고 지은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는데요.

 

 

왜 ‘그럼에도’ 여행일까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던 여행이 대다수였거든요. 좀 더 큰 의미로 본다면 수많은 내면의 두려움들을 이겨내야만 했던 여정이었다고 할까요. 아마도 ‘만약에‘와 물음표가 끊이지 않는 위태롭고 혼란스러운 종류의 불안이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제 선택은 떠남이었기 때문에, 그 고민의 과정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책 제목을 선택하고 싶었어요.


<YES인터뷰-7문7답 中 일부(글: 엄지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여행은 그 준비과정도 쉽지 않아, 자기계발을 위한 휴학이 아니라 여행자금을 위한 휴학까지도 감행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저자는 모든 것들이 즐거웠다고 표현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려온 꿈이었다고 말하면서요. 왜 그런지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여행을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 것이라고.

 

 

다음은 한 번 소개해드린 적이 있던 저자분이시죠?

「모든 요일의 기록」에 이어 「모든 요일의 여행」을 쓰신 김민철 저자입니다.

 

소개하기에 앞서, 책에서 나온 문장 하나를 소개해 드릴까 하는데요

 

예전 책에
'여기서 행복할 것'
이라는 말을 써두었더니
누군가 나에게 일러주었다.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
'여행'이라고.

『모든 요일의 여행』中 일부

 

책에 나온 이 문장처럼 여행지에서의 저자의 태도는 하나인데요.

여행지이지만, 여행지가 아닌 것처럼.

일상이 되는 여행 속에서, 바로 이곳에서 행복할 것.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뜻대로 이루어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어서 저자는 찾아간 여행지가 일상이 되도록 만들기 위한 노력을 몇 번이고 실패하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게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 노력하다가 일상을 망쳐버리기도 하고(많은 여행자가 그러하듯), 식사하다 시작되는 불꽃놀이에 계산할 생각도 못 하고 달려갔다가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돌아왔더니, 식당 점원이 "그렇게 걱정하지 마. 이건 세계 최고의 불꽃놀이가 아니야." 라고 위로해주기도 합니다.

 

또, 여행에도 일요일이 필요해-라며 늘어져 있다가 이상한 죄책감에 휩싸이기도 반복합니다. 여행을 즐기는 방식은 각양각색이라지만, 이처럼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인데요. 그래도 여행을 하는 이유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나’를 단숨에 만나는 건 오직 여행뿐이다
여행만큼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게 또 있을까. ‘여행’이라는 빛 아래에서는 ‘애써 외면했던 게으름이, 난데없는 것에 폭발하곤 하는 성질머리가, 떨칠 수 없는 모범생적 습관’까지,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나답다’고 믿었던 것들로부터 더욱 벗어나보는 건 어떨까. 익숙한 공간과 익숙한 시간에서, 익숙한 생각과 익숙한 행동만 해왔다면 말이다.

 

 

이렇듯, 어릴 적 꿈이어서라거나 '나'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라거나 여행은 각자의 의미를 가진 채 존재하게 되는데요.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르고요)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여행에서 자신만의 이유를 찾아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도 함께 찾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나의 여행’은 ‘나의 선택’으로 이뤄진다. 때론 그 선택이 타인의 눈에는 결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여행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그러한 결점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점을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다.

 

- 모든 요일의 여행 中 일부

 

 

 

 

 

 

 

 

 

 

Posted by 비회원

서평을 쓰기에 앞서, 이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제가 치명적인 실수를 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바로, 전달할 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핵심만 간결하게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실수를 하게 된 이유라고 말하자면 그렇지만, 제가 잠깐 일했던 곳이 이런 규칙과는 정반대인 조금 특별한 사례였다는 점인데요.

 

알려진 방식과는 다르게 그곳에서는 핵심이 아니라, 그 어떤 부분도 놓치지 않고 전달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구구절절 설명하는 듯한 보고서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저는 간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끄럽네요. 하하

 

하지만 어찌 되었건, 그것은 특수한 경우였고, 일반적인 때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말이죠.

 

 

 

<출처: 픽사베이>

 

아무튼 제가, 읽어본 결과 성공하는 글쓰기 전략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이 책은 그 이름에 걸맞게 쉽게 읽힐 수 있도록 어렵지 않은 말로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책이었습니다.

 

그중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제5장의 인터넷 문장은 예외투성이 라는 부분이었는데요.

 

특히 메일을 보내는 부분에서 줄 바꾸기를 많이 하고 여백을 많이 주는 부분이 과연 공감되었습니다.

 

얼마 전 우리 출판사에서 나온 시집의 시 한 편을 인용하고 싶다는 메일을 **문고로부터 받은 적이 있는데요. 적절한 줄 바꾸기와 핵심 되는 부분의 노란 색 밑줄이 함께 들어가 있어, 정말 눈에 확 들어온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런 경우가 바로 성공 사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다음에 그 방식을 사용해보려고 기억해두고 있어요. 하하 그리고 이런 메일 쓰기의 경우, 계절인사는 일반적으로 생략한다고 하니 참고해주시는 게 좋겠죠?

 

그 밖에도,

 

메시지가 애매하면 읽는 사람에게는 절대 전달되지 않는다 - 73p

이미지가 살도록 숫자를 다른 무언가로 바꾼다 100p

단 한마디만 전할 수 있다면? 이라고 항상 생각하라 130p

비용을 들인 만큼 가능한 한 세세하게 기록하라 143p

 

 

 

등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만 소개해 드리자면, 이미지가 살도록 숫자를 다른 무언가로 바꾼다예시를 하나 보여 드리겠습니다.

 

예루살렘의 넓이는?”

 

<성공 사례>

서울대공원과 같은 면적 안에 성지

세 개(그리스도교, 유태교, 이슬람교)가 있다.”

<실패 사례>

성지가 모여 있는 구시가지는 평방 1킬로미터다.”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이렇듯 말이라는 게 참 신기해서 같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아예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또 이 책에서 익숙한 법칙을 하나 발견하게 되는데요.

 

 

* AIDMA 법칙

Attention(관심을 끌고 주목시킨다)

Interest(흥미, 관심을 갖게 한다)

Desire(갖고 싶다, 사고 싶다, 라고 생각하게 한다)

Memory(머릿속에 기억시킨다)

Action(실제로 사게 한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광고를 배우면서 몇 번은 들은 말인데요.

책에는 안나와있지만 배운 경험을 살려서 이야기 해보자면,

What to say(무엇을 말할 것인가) - How to say(어떻게 말할 것인가)라는 것도

함께 기억하고 계신다면, 성공하는 글쓰기에 있어서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 까

생각해봅니다.

기억해두셨다가, 모두 글잘알(글쓰기 잘 아는 사람)이 되어보도록 하자구요! ^^

 

 

성공하는 글쓰기 전략 - 10점
나카지마 다카시 지음, 최영봉.손일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이 책을 간단하게 소개 하자면, 광고 대행사인 TBWA KOREA의 10년차 카피라이터 김민철의 일상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이름 때문에 오해를 할까 노파심에 말씀드리자면, 여자분 이십니다! 그리고 이 분의 팀장님이 ‘박웅현’ 이라는 유명하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신데 『책은 도끼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여덟단어』 등의 저서를 쓰셨고,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진심이 짓는다’ 등의 광고를 만드셨습니다. 이 팀은 인문학이 아이디어를 내는 것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독서를 중요시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이 책의 저자는 글의 첫 문장에서 자신의 독서환경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독서 환경에 관해서라면 나는 삼면이 책으로 둘러싸인, 사시사철 넉넉한 읽을거리들이 쏟아지는 천혜의 환경에서 살고 있다. (중략)…집은 거실 한 면이 모두 책장이고, 방 한 칸은 도서관처럼 방을 가로지르며 책장들이 있다. 침대는 옆에 책을 둘 수 있도록 특별히 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각종 책들이 겹쳐지고 쌓이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365일을 지키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쯤은 새 책들이 배달되어 온다.

 

정말 부러운 집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가족과 함께 살기 때문에 공간 제약이 있지만, 언젠가 독립하면 저도 언젠가 저런 독서 환경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일상기록이라는 타이틀만큼, 이 책에는 읽고, 보고, 듣고, 찍고, 배운 모든 것들의 기록이 쓰여 있는데요.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꼽자면 이 부분 일 것 같습니다.

 

육체의 지중해는 지금도 여전히 나를 유혹한다. 끊임없이 그곳으로 오라 손짓한다. 반면에 정신의 지중해는 나를 지금 이곳에 살게 한다. 내 마음가짐에 따라 이곳이 지중해가 될 수 있음을 알 게 한다.

 

알베르 카뮈의 『결혼, 여름』, 『시지프 신화』를 읽고, 문득 일상에 회의감을 느낀 글쓴이가 결국 지중해를 다녀오고 나서 깨달은 바를 서술하는 부분인데요. 의미는 모호하지만, 뭔가 알 것 같기도 한 기분입니다. 언젠가 저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할 날이 오겠죠?

 

Posted by 비회원

 

 

산지니에 입사하기로 확정이 나고 받은 첫 번째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읽고 싶었던 책이기도 한데요. 출판이라는 일이 어떻게 시작되어서 어떻게 끝나는 지, 특히나 지방이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 산지니가 10년의 세월을 어떻게 버텨내었는지도 알고 싶었습니다.

읽게 된 책 내용 중에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을 꼽자면, 중국의 지원을 받아 부채의 운치, 요리의 향연, 차의 향기를 출간한 이야기나, 인쇄실수로 페이지가 뒤바뀌어서 제본소에서 감쪽같이 재작업 해 준 부분이 아닐까 싶은데요.

다른 나라의 책이라는 것은 언제나 아득하게 느껴지는 데 번역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거쳐 출간을 해냈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느껴졌고, 제작비를 과감하게 투자해서 양질의 책으로 탄생시킨 부분도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인쇄 실수에 대해서도 항상 궁금했었는데, 재 인쇄 없이 말끔히 고쳐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그런 게 바로 장인정신인걸까요?

, 브라질 광고와 문화라는 책의 경우는 광고전공자인 저에게 익숙한 광고가 표지로 채택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눈에 확 띄었습니다. 광고 종류가 다양하게 있지만, 개인적으로 유머가 있는 풍자광고를 좋아하는 편인데요.

앞으로도 이런 의미 있는 광고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 만약 광고에 관련된 책이 다시 한 번 나온다면 디자인에 참여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밖에도 타이베이와 도쿄 도서전에 참가한 이야기, 학생들의 영화 촬영을 위해 협조해준 이야기 등 소소하고 좋은 글들이 많아서 술술 잘 읽혀진 책이었는데, 출판에 관심이 있으신 많은 분들이 읽어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Posted by 비회원

 

그녀의 뒷모습에서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독서후기

 


 

 

 

 

 

 

'이 단발머리 여자는 누굴까?'
'그녀가 읽고 있는 저 책을 뭘까?'
'그녀는 무엇 때문에 고개를 돌렸을까?'

 

   『조금씩 도둑』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참 단순하게도 표지의 여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한가로이 책을 읽고 있던 여자. 창밖에 일어난 어떠한 일(사건)로 하여 순간 고개를 돌린 듯한(그녀의 단발머리가 흔들렸거든요!) 모습은 평화로운 여자의 시간이 깨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잔잔한 삶에 예고 없이 다가온 어떤 사건, 그리고 그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 제게『조금씩 도둑』의 첫인상을 그러했습니다.

 

 

'블라인드를 올리고 밖을 내다본다'

 

 「점심의 종류」의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나와 상관없이 창밖의 풍경들은 시간에 몸을 맡긴 채 흘러갑니다. 밖의 모든 것들은 10년 뒤의 미래를 살고 있지만,「점심의 종류」의 주인공은 아직 10년 전,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소설의 앞부분을 다시 읽었을 때, 잔잔한 창밖 모습이 왠지 환상처럼 느껴졌습니다. 밀려드는 시간의 홍수가 아픔을 채 덮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 고요한 풍경들이 진짜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2014년 4월, 시대적인 상처가 되어버린 '세월호 사건'. 소설을 그 사건이 발생한 뒤 10년 후 미래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영미가 볶음밥 접시를 들이민다. "먹어, 좀. 언니 볶음밥 좋아하잖아." 못 들은 척한다. 옛날 일이다. 볶음밥을 좋아했고, 만두를 좋아했다. 하지만 진흙이 메워진 것 같은 머릿속, 누런 위액이 구석구석 고여 있는 것 같은 뱃속, 스멀거리는 통증과 가려움으로 채워진 뼈와 살…. 고통의 증거들 속에서 배회하는 기억이 식욕을 가로막고 있다.
   
    지난 저자와의 만남(http://sanzinibook.tistory.com/1367)을 통해서 조명숙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식지 않은 슬픔, 분노, 모멸감을 느끼며 '작년에 일어난 일'이 아닌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 창 밖의 풍경 속에 살고 있는 걸까? 궁금해졌습니다.

 

  「점심의 종류」를 비롯해 2008년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앞두고 촛불시위를 벌이는 애인을 찾는 여자의 우울한 일상을 그린 「거기 없는 당신」, 2005년 APEC정상회의를 둘러싼 어떤 사회적 기미를 ‘가가’의 하루를 통해 풀어낸 「가가의 토요일」까지. 무엇보다 이번 작품집에는 현실과 맞닿아 있는 인물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어떤 소설이 현실보다 리얼하겠어?”

「하하네이션」의 작가 지망생 '유'가 한 말처럼 작품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블라인드를 올리고 현대사회의 리얼한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조금씩 도둑』의 주인공들은 모두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이치로와 한나절」의 '고아'인 주인공,「러닝 맨」은 '자식을 잃을 위기에 처한 아버지',「사월」은 '실질적인 결혼 생활이 끝난 여성',「나비의 저녁」의 남자의 충격적인 죽음을 이겨나가며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는 여자 등. 삶의 상처가 몸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마음의 응어리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소설들 속에서 이런 고통을 마주하는 것은 매우 힘이 듭니다. 하지만 잔잔하게(하지만 뾰족하게) 밀려드는 고통을 참고 끝까지 읽을 수 있는 것은 아픔 끝에 묻어있는 따뜻한 시선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은 표제작이기도 한「조금씩 도둑」입니다.

 

   "띠띠는 피융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초라하고 고되게 나이를 먹은 피융이 눈앞에 있었다. 띠띠는 피융의 곁에 누웠다. 피융에게서 시큼한 시장 냄새와 헤나 냄새가 함꼐 풍겼다. 띠띠는 피융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띠띠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훔쳐와 버려서 피융은 그 자체로 별로 남은게 없었다."

 

   용희, 선경, 영미 대신 피융, 바바, 띠띠라는 이름으로 우정을 쌓아가던 열여섯의 소녀들.  꿈 많던 청년기에서 중절 수술의 후유증을 얻게 되는 고단한 삶에 이르기까지. 세 소녀는 서로의 아픔을 조용히 끌어안으며 함께 생을 견뎌 나갑니다. 특히 친구 '피융'에게 조금씩 마음을 주고만 '띠띠'의 마음은 애달프게 다가왔습니다. 소설 중간마다  "괜찮아?"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내가 아닌 타인의 상태를 확인하고 안부를 물어보는 사소한 말 속에서 왠지 모를 위안을 얻습니다. 아마, 이 세 소녀가 고단한 생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이 말 속에 들어있었던 것을 아니었을까요? 

 


   마지막 장을 덮으며 다시 책의 표지를 봤습니다. 두려움과 불안으로 느껴졌던 여자의 모습에서 창밖의 세상을 바라보고 삶의 고통을 잊지 않는 여자의 따뜻함이 느껴졌습니다. 아픔과 위로,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고된 현실을 걸어나갈 힘을 얻습니다. 9편의 작품들을 만나며 블라인드를 걷고, 밖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씩 도둑』은 아픈 현실 위에서도 생의 꽃을 피우는 많은 사람에게 '괜찮아?'라는 말을 전하는 책인 것 같습니다. 아마, 표지 속 여자의 뒷모습도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닐까요?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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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1동 | 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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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단디SJ


샤를 단치 저|임명주 역|이루|2013.04.03|288쪽


저자는 "왜 책을 읽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는 책과 독자에게 씌워진 환상을 철저히 걷어낸다. 그것은 독자들의 지적 허영심이나 책으로부터 위안을 받으려는 나약함을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책은 위대한 것이며, 그 책을 읽는 더 위대한 독자들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었다. 과연 자신과 함께 "책의 시대"를 열어갈 용기 있는 독자인지 조심히 떠보는 것이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과감하고도 흥미로운 비평책이었다.

저자는 이 책을 쓰는 내내 냉철한 지성과 차가운 절제로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본심을 드러낸다.



1. 낯선 사유로 단조로운 세상을 읽는다


저자는 왜 책을 읽는지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자신만의 답과 생각들을 말해나간다.

폴 발레리가 말하고자 한 "책이 독자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면, 독자들마다 특별한 감흥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말을 언급한다. 

책을 읽는 진짜 이유는 책 자체가 아닌 자기자신을 위해서라고 말하며 책 읽는 것 만큼 이기적인 행위는 없을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또, 책은 독자들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좋은책의 판단 근거는 책속에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었는지 여부가 아닌 작가 재능에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닮고 싶은 것은 등장인물이나 사상이 아닌 재능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왜 독자는 책과 싸우는가? 라는 물음을 던지는데, 독서하는 동안엔 오직 책과 독자 단 둘뿐인데 때때로 독서는 이 둘의 고독한 전쟁이기도 하다는 거다. 독자는 자신을 성가시게 하는 개념을 정복하기 위해 대항하고, 무지를 넘어서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에 몰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2. 독자는 벌거벗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작가들의 공모자다


2장에서 단치는 문학의 형태를 읽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픽션을 포함한 모든 문학은 형태를 찾아 나선다는 점에서 하나의 실험이라고 말하는데, 정형화 되지 않은 인간의 삶에서 문학은 형태를 건져내거나 도로 집어던지거나 분류하며, 이런 형식화를 통해 의미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독자들의 생각이 제한적이라고 해서 책이 그들 생각으로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라는 월든의 인용문이 인상깊게 남기도 했다.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책은 혐오감을 준다는 부분에서는 칸트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단치의 지독히 편파적인 문학에 대한 애정때문인지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책들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책에서 배우기보다는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3. 책에 조언을 구하지 말고 책속의 보물을 훔치라


단치는 독서는 뇌리에 새기는 문신이라고 했다. 독자의 기억을 파고든 문장은 다른 내용까지 모두 떠올리게 하고, 그 책에 대한 관심과 감동을 지속시켜 줄 뿐만 아니라, 다시 읽고 싶은 욕망까지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란다.

잠언에 대해서 언급을 했는데, 잠언은 인용문이 아니며, 저자에게 가장 근접한 글이라고 설명했다. 매게물이 없이 저자의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토해낸 글이기에, 잠언은 발췌가 아니라 핵심을 담은 글이라는 것이다. 잠언집은 독자가 시시때때로 대꾸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고 말했는데, 이 말에 상당히 동감되었다.

3장에서 특히 눈에 들어왔던 부분은, '반딧불처럼 꺼져가는 서점에서 읽다.'라는 부분이었다.

서점은 그나라의 지성, 감성을 알 수 있는 지표고, 즉 미학이 응집되어 있는 곳이라고 한다. 프랑스법인 도서정가제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 이미 다른나라에서도 시행되고 있으며 서점이 문학을 상업화 한다는 것은 문학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라는 물음을 던져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4. 독서는 죽음과 벌이는 결연한 전투다


4부에서 대담집은 말의 경솔함에 빠지기 쉽다라고 했다. 대담에 임하는 사람은 박식하되 현학적이어서는 안되고, 정중하되 비굴해서는 안되며, 호기심은  가지되 상스러워서는 안된다고 덧붙인다.

인상깊었던 읽었던 부분은 저널리즘문학의 비교였다.

저널리즘의 본질은 대부분 지면 밖에 있어서 독자가 끄집어내야 한다. 문학이 창작이라면, 저널리즘은 해석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저널리즘은 신문 지면에 집착하나 언론은 대중과의 타협이라 말한다. 그래서 언론이 독자를 찾아다니는 것이고, 저널리즘은 폭력을 순화시키기 위한 이미지들의 반복인 반면 문학은 대중에 대한 의무감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것들까지 다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문학과 저널리즘, 이 두가지 글의 핵심적인 차이는 죽음과의 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문학은 죽음에 대해 말하지만 저널은 죽은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예를 들면, 문학은 유쾌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할 수 있지만 저널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4장의 끝에서 단치는 본심을 드러내며 책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독자들이여! 나의 애처로운 전투에, 그리고 책을 읽는 연약한 무리들에 부디 합류하길 바란다!" 라고 말하며. 



어찌보면 약간 과하다 싶을정도로 독서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간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가르침을 주려는 책에대해 단치는 혐오감을 느낀다 했으나 보통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적어도 나는 마냥 즐겁고 재미있는 책보단 지식이 쌓이는 느낌이 드는 책을 선호하는 편이라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몇몇구절 보였던 것 같다. 

평소에 들어보지 못했던 수많은 책의 이름이 거론되 있었던 책인데, 그만큼 얼마나 단치가 애독가인지 가늠이 조금은 가기도 했다. 독서를 하다가 문득 왜 책을 읽는지. 또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사람들은 한번쯤 읽어보면 재미있을법한 책인듯하다.





왜 책을 읽는가 - 10점
샤를 단치 지음, 임명주 옮김/이루
Posted by 비회원

오쓰카 노부카즈 지음, 송태욱 옮김 | 한길사 | 2007년| 458쪽 | 2만원 

산지니에 입사한 지 한달이 되었을 때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를 읽었습니다. '한 출판편집자의 회상' 이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은 일본의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에서 40년간 근무한 오쓰카 노부카즈의 수필입니다. 저처럼 대학을 갓 졸업한 '애송이 편집자'였던 오쓰카씨는 이와나미에서 30년간은 편집자로, 10년은 임원/사장으로 일했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지금, 오쓰카씨가 이렇게 긴 시간을 출판편집에 몸담았던, 그리고 몸담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헌책방에서 시작해 지난해 100주년을 맞은 이와나미쇼텐. 10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사옥에도 큰 변화가 있었네요.


이와나미쇼텐은 1913년 헌책방으로 시작해, 1914년에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펴내며 출판사로 거듭났습니다. 1910년대는 러일전쟁이 막 끝나고 한반도가 식민지화된 직후이며, 일본에 도시와 대중이 등장, 정치 참여의 요구가 높아지던 때입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은 창간사의 한 문장 "지식과 미를 특권계급의 독점에서 빼앗아 돌려받는 것이 언제나 진취적인 민중의 절실한 요구이다." 에서도 나타납니다. 일본에서 '대중문화는 고단샤, 고급문화는 이와나미'라고 할만큼 이와나미쇼텐은 학술 출판계의 강자입니다. 


이와나미쇼텐에서 40년간 근무한 오쓰카 노부카즈. (사진출처: 無我)


오쓰카 노부카즈 씨는 이와나미가 50살이 되던 해, 1963년에 입사하였습니다. 당시 직원이 300여명이었다고 하고, 저자를 대접할때면 항상 최고급 식당으로 모셨다고 하니 이와나미는 적잖은 부와 명성을 축적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오쓰카씨는 일류주의에 근거한 업무방식에 반감을 느껴, "처음 몇 년 동안은 속주머니에 항상 사직서를 넣고 다녔다"고 합니다. 또, "입안한 기획의 절반은 기성 권위를 무너트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자신은 이와나미에서의 30년을 '반이와나미'로 보냈고, 마지막 10년은 '어떻게 이와나미의 초심을 유지할까'를 고민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오쓰카 씨는 오에 겐자부로, 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 문화인류학자 야마구치 마사오, 철학자 나카무라 유지로 등 당대 최고의 지성이라 할 수 있는 저자들과 함께 작업하였습니다. 


오쓰카 씨는 "출판 일이란 뛰어난 인간의 지식과 지혜의 창출에 가담하고 아울러 그것들을 유지해 다음 세대로 계승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막중한 임무가 부여된 출판에서 편집자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편집자의 일은 새로운 사고방법을 산출하는 것이다. (...) 그러기 위해서는 인류가 지금까지 축적해온 것을 총체를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이 진짜 새로운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


'지식과 지혜'에 대해 생각할 때 저는 주로 '차곡차곡 쌓아지는 것', 즉 어떤 고정된 물질을 먼저 떠올립니다. 실제로 (종이)책은 한 무더기 쌓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책을 소개할 때 '사유의 결정체' 또는 '결과'라고 말하기도 하고, 실제로 책에 담기는 저자의 생각이란 상당히 정제된 것이겠지요. 그러나 책은 정보/데이터의 집합체일 뿐만 아니라 '사유'라는 행동의 과정 자체가 드러날 수 있는 물건이라는 걸 저는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편집자는 독자에게 저자의 지식은 물론이고 생각하는 방식 또한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아닐까요? 또, 시간이 흘러 한 편집자의 손을 거쳐 탄생한 책들이 여럿 모이면, 그 어울림에서 특정한 사고방식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오쓰카 노부카즈의 편집자상

그렇다면  오쓰카 씨는 4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어떻게 편집자로서 활약했던 것일까요?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에 나오는 일화들을 통해 오쓰카 씨의 편집자상을 추리해 보았습니다.

1. 편집자는 지적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스즈키 다카오라는 저자와는 한 편의 원고를 받기 위해 오쓰카 씨는 "그 내용에 대해 수차례에 걸쳐 몇 시간이나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회언어학의 새로운 식견과 스즈키 씨의 독특한 관찰에 기초한 사례 분석은 몇 시간을 들어도 재미있었다."라고 말합니다.

2. 편집자는 아마추어다

오쓰카 씨의 편집자 스승인 하야시 다쓰오 씨는 "입버릇처럼 '난 항상 아마추어로 있고 싶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편집자로서 인류의 유산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아마추어로서 경쾌한 발놀림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 그것이 하야시 다쓰오의 생활방식이었다." 

아마추어라는 단어는 그 어원이 '사랑한다'는 의미의 라틴어임을 떠올리면, 이는 숙련도나 완성도와는 별개로 이상적인 편집자의 태도를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또, "하야시 다쓰오 씨가 나에게 절대 허락하지 않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뭔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이 지점이 편집자와 저자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3. 편집자는 지적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젊은 학자들을 모아 토론을 하게 하면 지금의 현상을 파악하면서 나의 자유시간도 확보할 수 있지요 (...) 젊은 학자들의 의견 교환의 장을 마련해주는 게 편집자의 일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바로 '인류가 축적해온 총체'와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오쓰카 씨의 꼼수(?!)일까요. 오쓰카 씨는 도시회,  의 모임과 같은 연구모임이나 예술계 모임에 참석했고, 이런 모임들을 통해 새 책을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4. 편집자는 최고의 청자

“오쓰카 씨가 청자라서 흥에 겨워 술술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잠자고 있던 기억이 잇따라 깨어났는데, 

역시 ‘청자’의 힘이라는 걸 느꼈다.”

-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


원고를 받기 어렵기로 소문난 저자에게 어떻게 원고를 받았냐는 질문에 답하며:

“나는 담당 편집자로서 특별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직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에 충실했다"

-오쓰카 노부카즈


저자가 편집자와 이야기 함으로써 생각 정리를 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집필할 시간 없는 저자의 경우 직접 인터뷰한 것을 원고로 전환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85)

따라서 청자는 적절한 시점에 질문을 하기도 하는, 능동적인 역할일 것입니다.



신서에서 아카데믹총서까지

이와나미의 신서


1963년부터 2003년까지 이와나미에서 근무하며 오쓰카 씨는 일본의 고도성장기에서 '활자이탈 시대'라 불리는 출판계의 불황기까지 여러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 시간의 폭을 신서와 아카데믹총서, 두 종류의 책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서는 '계몽 시대'의 대중교양서로, 중일전쟁(1937~1945) 중 발행되기 시작했습니다. "학술적으로 권위를 가진 전문가가 지의 세계를 일반인이 소화하기 쉽도록 이른바 씹어서 해설하는 '계몽'의 구도가 제 기능을 발휘"한 책인데, 과거에는 "독자 측에서도 그 구도를 적극적으로 요구했다"고 이와나미의 편집국 부국장 오다노 고메이는 말합니다 (파주 에디터스쿨 강연 14~15쪽).

 아카데믹총서는 오쓰카 씨가 '활자이탈 시대'에 만든 학술서 시리즈 입니다. "대학에 제출되는 박사논문들 중에서 주목할 만한 논문을 골라 최신 기술을 이용해 제작원가를 낮춰 적은 부수의 출판을 가능하게 하는 방도를 모색"한 결과입니다 (오쓰카 433쪽)

많은 이들이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소비하는 시대에 

책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와나미의 초심으로 돌아가 고민한 오쓰카 씨.

그가 꿈꾸는 유토피아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어느 날, 어느 순간에 한 사람의 독자가

손에 든 책 한 권으로

현실 세계에서 짧은 시간

다른 우주에서 살 수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책을 만든 사람과 읽은 사람이

일체가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 순간이 바로 ‘유토피아’가 아닐까.


유토피아를 향한 장인 편집자의 노력을 되새기며

이 애송이 편집자 1인, 즐겁게 듣고 배우는 한 해를 보내보려 합니다!

늦었지만/이르지만,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D


참고문헌

차형석, “활자와 멀어지면 문화가 붕괴하는데 한국은 어떤가?”, 시사인


한기호, 계몽과 도발 위해 책과 씨름한 40년, 주간동아


김일주, 애송이 편집자, 일본 지성을 이끌다, 한겨레


오다노 고메이, '신서의 독자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2014 파주 에디터스쿨 강연


오카모토 아쓰시, '이와나미 쇼텐의 100년과 동아시아', 제8회 파주북시티 국제출판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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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폭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폭력』(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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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과일'



서정아 지음|산지니






 관계를 화두로 한다고 소개되었던 글을 읽은 후 이 소설집이 궁금해졌다.

줄곧 디자인하게 되는 원고가 아닌 이상 산지니의 책을 따로 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노력없이는 계속 그럴것 같아 표지에 끌려 궁금했던 소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상한 과일>은,


풍뎅이가 지나간 자리

이상한 과일

내 방에는 달팽이가 산다

나를, 알아?

꿀벌의 비행

해산

빙하로 가는 날엔

잎이 삼킨 것들



이렇게 총 여덟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이야기들은 모두 묘하게 닮은 분위기였다.  각 소설속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관계로 인해 생기는 문제, 갈등 속에서 그것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거나 모른 척 흘려보내기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을 받았을 지도 모르겠다. 



소설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젊은 여성들이었으며, 배경도 가정과 직장이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가끔 들려왔었던 이야기들 같았으며 그래서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책은 빠르게 읽혀나갔고, 순간순간 감정이입이 되기도 하였다. '내상황이 이랬다면'이란 상상도 가끔 되었던 것 같다.



특이한 점은, 소설속에 등장하는 요소들이다.많은 소설들에 고양이, 민달팽이, 개미, 벌, 풍뎅이와 같은 동물,곤충이 등장하며, 그 요소들은 마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세밀히 연관되어져있는 듯 했다. 

소설속 주인공들은 외로운 사람들이었고, 인간관계는 더이상의 안전장치가 아니었다.그렇기 때문에 내 삶에 빗대어 충분한 공감을 하기는 어려운 소설들이었다. 그러나 메마르고 각박한, 상처도 많고 불안한 상황속에서 덤덤히 살아가는 20-30대 여성들의 이야기였기에 충분히 감동으로 와닿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상한 과일 - 10점
서정아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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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만한 출판제작'

 

 

박찬수 지음|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오늘은 산지니에서 디자인을 시작한지 어느덧 7주차의 마지막날이다 :) 월요일이면 8주차가 되는데, 그동안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갔다. 입사전, 할 줄 알았던 것이라곤 디자인 관련 프로그램 몇개 다룰줄 아는것, 지속적인 취미활동으로 쌓아온 캘리그라피, 사진 그정도. 그나마 프로그램들은 좀 다룬다고 생각했으나, 팀장님 가르침 밑에서 얼마나 편리하게 작업할 수 있었던 것들을 여태껏 내가 얼마나 노가다로 해왔는지 깨달으면서 그것마저 어느정도 다룬다고 말할 수 없다는것을 느낀바가 있다. 그렇게 많은 메모들을 여기저기 모니터와 벽면에 붙여가며 차곡차곡 하나씩 배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사실상 판형이라던지 출력후 색상에 대한 감이라던지 디자인에 관련된 부분들을 배우기도 벅찬 단계라 그런지 제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는 책의 매우 많은부분이 이해불가였다. (그래서 팀장님 바쁘게 일하시는 와중에 귀찮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읽었던..죄송하고 감사합니다 하핫^^;) '나중에되면 배우겠지만~' 이라고 말씀하시며 설명해주시는 팀장님 말씀에 일단은 이런것들이 있구나 하는 개념학습정도로 읽기로 하였다.

 

이 책은 출판제작에 있어 필요한 개념들을 챕터별로 잘 정리해 두어서 좋았던 것 같다.

 

1부 출판제작, 흐름을 읽고 맥을 짚어라

2부 제책, 책의 운명을 좌우한다

3부 종이, 아는 만큼 비용은 줄고 효과는 배가된다

4부 스캔, 책이 확 달라진다

5부 출력, 꼼꼼하고 차분하게 점검하라

6부 인쇄, 원리를 알고 정확히 지시하라

7부 후가공, 작지만 색다른 변화를 준다

8부 원가계산과 손익분기,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라

9부 제작처, 서로 협력하고 신뢰하는 동반자다

 

 

『만만한 출판제작』을 읽고 책의 종류·내용·성격에 따라 책모양과 접착방식 등이 각각 다르다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을 때, 많은 책의 사례가 다시한번 다른시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림과 글을 '그냥' 훑어보며 읽어내려가는 우리 뒤에는 많은 사람의 수고가 있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많은 사진들을 실어 두었기 때문에 내가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처럼 일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인듯 하다. 잘못된 오류사례들을 보여주고 그에대한 이유설명과 해결방안들은 좋은 참고사항이 되었다. 용어설명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실무를 중점적으로 잘 담아준 이 책은 이 후에 제작을 배우고 게 된다 하더라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만만한 출판제작 - 10점
박찬수 지음/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Posted by 비회원

1923년 9월 1일, 도쿄가 있는 일본 간토 지역에서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집들은 우지직 소리를 내며 뒤틀리고 넘어졌다. 사람들은 거기에 깔린 채 생매장을 당했다.  겨우 뛰쳐나온 사람도 미친개같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다. 문명의 낙원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 머리말 중에서


지진 후의 혼란 속에서, ‘조선인들이 지진을 틈타 방화, 강도, 폭탄 투하 등의 활동으로 이익을 취하려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인에 대한 혐오성 폭력이 거세졌고 6,000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일본 정부, 그리고 민간인들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또한, 일본 정부는 국가 내의 ‘또다른 위험분자’ 무정부주의자들을 잡아들이고 죽였습니다. 이 때 체포된 이들 중에 근대 일본의 대표적 여성 아나키스트라 불리는 가네코 후미코(1903~1926)와 그녀의 연인이자 무정부주의 조직 불령사(不逞社)의 리더 박열(1902~1974)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번 주에 읽은 책 <나는 나>는, 가네코가 자신의 성장과정에 대해 기록하라는 판사의 명령을 받고 쓴 옥중 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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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여성 아나키스트의 옥중 수기라니. 어찌보면 세상에 둘도 없는 책이라 생각되어 저는 <나는 나>를 주저없이 이번 독서후기의 대상으로 골랐습니다. “문체는 어디까지나 단순하게, 솔직하게, 그리고 딱딱하지 않게” 해 달라고 밝힌 그녀의 당부대로 엮인 이 책은, 문장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아 하룻밤 만에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독서후기를 시작하는 것이 힘겹게 느껴졌던 이유는 아마 <나는 나>의 ‘압축 불가능함’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삶이란 누구의 것이나 원체 ‘압축 불가능’한 것일 테지요. 하지만 저의 첫 독서후기 대상이었던 <루쉰 그림일기>가 루쉰의 삶의 다방면을 비추면서도 그의 일생의 화두들에 일관성을 부여/부각하여 ‘루쉰=중국의 민족적 영웅’이라는 상을 형성하는 데 비해, <나는 나>는 특정한 질문에 답하거나 하나의 뚜렷한 주장을 펼치는 글이 아닙니다. 가네코 후미코는 그녀에게 이 글을 쓰라고 요구한 것은 아마 “[그녀가] 그처럼 엄청난 일을 한 (...) 이유”가 궁금해서일 것이라 추측하면서도, 이 옥중수기의 맺음말에서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나 자신도 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단지 나의 반생을 여기에 펼쳐놓고 싶었다.”라고 씁니다 (13, 344). 이 자기역사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스스로가 한없이 비참하고 부끄러웠던 순간들을 솔직하게 그립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자신을 해명하기 위해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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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코 후미코는 호적상 1903년생이나 실제 출생년도는 불확실하다고 합니다. 1912년에 조선에 있는 친할머니 댁으로 가게 되기 전까지 그녀는 무적자였기 때문입니다. 학교에 보내달라는 딸의 성화에 못이겨 가네코의 어머니는 그녀를 자신의 호적에 사생아로라도 올려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하려 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바보같이, 사생아 신고를 하겠다고? 사생아는 평생 떳떳하게 살 수 없어.”라며 호통을 쳤습니다 (28). 가네코를 자신의 호적에 올려주지는 못할 망정, 사생아로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아이로 만든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는 가네코의 이모와 사랑에 빠져 가네코와 어머니를 떠나고, 어머니는 의지할 사람을 찾아 다른 남자들을 만났으나 뒤이은 관계들도 곤궁한 생활을 해결해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어머니와 가네코는 어머니의 고향인 작은 농촌 마을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친할머니가 가네코를 데리러 찾아옵니다. 조선에 사는 가네코의 고모는 아이를 가질 수가 없어, 가네코가 어느정도 나이가 들면 고모의 아이로 입양하기로 약속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가네코 후미코는 친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조선으로 가게 됩니다.  


충청북도에 위치한 부강이라는 마을에서 조선인 소작농들을 고용하고, 고리대금업까지 하고 있을 정도로 생활이 넉넉한 친할머니 집안이었지만, 가네코 후미코는 이곳에서도 마땅한 보살핌은커녕 하루하루 학대를 받았습니다. 손님이 가네코를 보고 누구냐고 묻자, 할머니는 그녀를 손녀라고 소개하지 않고 “그냥 좀 아는 집 아인데, 여하튼 지독하게 가난한 집 아이라 예의도 모르고 말도 천박해요.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 한두 번도 아니지만 너무 불쌍해서 그냥 데려온 거랍니다.”라고 말합니다 (92). 아들의 혈육이라 데려오기는 했으나, 줄곧 빈곤 속에서 자라 할머니가 바라던 얌전한 소공녀가 될 수 없었던 가네코를 할머니는 손녀로 인정하거나 양녀로 들일 의향이 없었습니다.


가족이지만 가족이 아닌 상태. 이 경계적인 위치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모진 학대를 겪어야 했습니다. 할머니는 그녀를 학교에 보내기 전에 “잘 들어, 후미. 가네코라는 이름을 가진 가난한 아이라면 상관없지만, 적어도 지금부터 너는 이와시타 가문의 아이야. 이와시타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가는 거야. (...) 농부 자식에게 지거나 부끄러운 일을 하면 이름을 뺏어버릴 거야.” 라고 말합니다 (94). 그리고 몇년이 지나지 않아 정말 학교 출석부에서 ‘이와시타 후미코’는 ‘가네코 후미코’로 바뀝니다 (94). 그러나 이 ‘가네코 후미코’가 이와시타 집안에 속한 아이라는 게 마을에 알려진 이상, 후미코는 언제나 ‘이와시타 가문’에 먹칠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할머니는 후미코에게 ‘가난뱅이 자식처럼 험하게 놀지 말고 여자아이답게 행동하라’ 며 감시하고, 동시에  “우리 집은 말이야. 가난뱅이들과는 격이 달라. 아이를 밖에 내팽개쳐 둘 순 없어.”라면서 쉴틈없이 부려먹습니다 (111). 가족이고, 어린아이라는 이유로 돈을 주지 않고 착취하지만, 동시에 가족과 타인간의 선을 그으며 실수로 깨트린 냄비값까지 물어내라 합니다 (102).


이렇게 온갖 수모를 겪으며 후미코는 자신이 조선인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생각에 그들을 가깝게 생각합니다. 그녀는 할머니 집안의 머슴 고씨를 동정하지만, 동시에 일본인인 자신과 조선인들간의 ‘다름’을 매일같이 교육받았을 것입니다. 어느날은 할머니의 미움을 사 몇일을 굶고 쫓겨난 후미코를 한 조선인 아낙이 보리밥이라도 먹겠느냐고 집으로 초대합니다. 이 때 후미코는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 [할머니가] 조선인의 집에서 밥을 빌어먹는 거지를 우리 집에 들여놓을 수는 없어, 하며 호통을 칠 게 분명했기에 호의를 거절합니다 (140).

이후 박열을 만나 가네코는 그가 독립운동가인지를 물으며 조심스럽게 “민족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은 기분도 드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조선인이 아니라서 그들처럼 일본으로부터 억압받은 일이 없으니, 조선인들과 함께 조선을 위한 독립운동을 할 마음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군요” 라고 말합니다 (337). 그녀는 계급의 차원에서 조선인들과 공감하였으나 그녀는 일본인인 자신이 조선인들이 겪은 민족적 차별의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


1919년, 시집 갈 나이가 된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으로 돌려보내집니다. 조선에서의 생활보다는 조금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그녀는 자신의 “진실된 바람과 목적”, 즉 “다양한 책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습득하여 나 자신의 생명을 펼치는 것”을 이루기에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경제적 독립은 물론이고, 딸인 후미코를 마치 자신의 소유물처럼 다루려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녀를 “하나의 물건처럼 외삼촌에게 [아내로] 팔려고” 했고(193), 도쿄에 보내달라고 허락을 구하자 “어린여자아이를 혼자 도쿄로 보내줄 거라고 생각했니? 바보같이. 세상이라는 것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 않아. (...) 남자가 잠시 여자에게 길을 물어도 세상 사람들은 곧 색안경을 끼고 본다고. 한번 그런 소문이 나봐라. 그럼 그 여자는 끝인거야. 흠진 물건이 되고 마는 거지.”라며 단칼에 가네코의 희망을 꺾습니다 (212).

그러나 결국 가네코는 한차례 아버지와 크게 싸운 뒤, 도쿄에 있는 작은 외할아버지의 집으로 떠납니다. 이 곳에서 역시 공부보다는 결혼을 하라는 설교를 듣지만, 신문팔이, 비누장사, 식모, 오뎅집 종업원 등으로 일하며 공부를 하려 노력합니다. 이렇게 도쿄에서 가네코는 어느정도 가족이라는 체제 밖에서의 생활을 꾸리고, 사회주의자들이나 무정부주의자들과 어울리게 됩니다. 이런 가네코를 보고 사람들은 수군거리기도 합니다. “저 여자는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하숙집을 돌아다니는 매춘부 아닐까?” (316) 가족 체계 밖에 있는, 그러니까 딸, 아내, 어머니, 여자 형제로 확인되지 않는 여성은 매춘부--사회 질서에 위협을 가하는 여성의 대표적 이미지--라 의심하는 사회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끊임없이 ‘나 자신’ 그 자체로 하루하루를 살고자 했습니다.


///


젊은 여성이자 평생 가난 속에서 살았던 이로서 가네코 후미코는 뿌리깊은 억압의 구조에 대해 통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성장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고학을 하더라도 훌륭하게 될 수 없다”는 것은 물론 "모든 사람의 기쁨이 타인의 슬픔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씁니다. 또한, “인간사회에 대한 특별한 이상을 가질 수 없었다”고 털어놓습니다 (327~328). 하지만 그녀의 니힐리즘은 무기력한 포기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우리 사회에서 이상을 가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자신을 위한 일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을 성취하든 성취하지 않든 그것은 관여할 바가 아니다. 우리는 그저 그것을 진정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위한 진정한 생활인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진정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생활은 곧 우리와 일치된다. 먼 저편에 이상적인 목표를 두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328-9)


조선에 살던 시절, 그녀는 자살을 시도하려다 “세상에는 아직 사랑해야 할 것들이 무수하게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127). 어쩌면 '이상' 이 아니라도 '사랑하는 것들'이 있었기에 그녀는 자신을 더욱 굳게 지키며 앞으로 나아갔던 것일지 모릅니다.




[참고 문헌]


23세 꽃다운 나이, 옥중에서 숨진 그녀가 남긴 것은

서평 <가네코 후미코> 야마다 쇼지

박열, 가네코 후미코, 그리고 한국의 무정부주의 (영문)


나는 나 - 10점
가네코 후미코 지음, 조정민 옮김/산지니

[블로그 관련글]

김혜영 시인, '나는 나'의 주인공 가네코 후미코를 시로 탄생/국제신문


가네코 후미코, 나는 나 - 그녀의 옥중수기가 내게 말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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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 살아 있는 역사 ( Books : A Living History )'



마틴 라이언스 지음 |21세기북스



책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도 책에대한 역사에 대해 하나하나 알기는 꽤 힘들다.

이 책은 보통 잘 접할 수 없는 책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권으로 잘 보여줬던 책인 것 같다.

처음으로 콘텐츠 구성을 간략하게 살펴본다면,

「1 고대와 중세2 인쇄 문화의 등장3 계몽주의와 대중4 출판업자의 출현

5 만인을 위한 지식」

으로 나뉘었다.

큰 콘텐츠 맥락 속에서는 세부적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엔 디지털화의 진전에 대한, 책의 새로운 시대까지 언급한다.


오랜 세월 인류는 글에 '마력'이 있다고 믿어왔다고 한다. 책은 소수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적과 상장의 힘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어왔고 르네상스, 종교개혁, 과학혁명 그리고 계몽주의 등의 혁명과 서구역사의 큰 사건들은 모두 '활자'의 힘을 빌려서 이데올로기를 전파했고 그 영향력을 발휘했다.


인쇄술의 도입 외에도 상응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변화가 책의 역사와 독서방식에 발생했다. 그 최초의 혁명적 사건으로는 코덱스의 발명을 들 수 있다고 한다. 오늘날까지 지속되어온 책의 물리적 형태를 정의했다는 점에서 인쇄의 발명과 구분되어 진다. 이것을 저자는 '책의 혁명'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18C 후반 이른바 '읽기혁명'은 여가를 위한 문학과 정기간행물의 폭발적인 증가를 불러왔다고 한다. 그리고1900년대 인쇄물은 비로소 황금기를 이루게 되었다. 그 어떤 매체도 감히 경쟁할 수 없는 보편적인 의사소통의 도구로서 최고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책은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과거의 영향력과 힘을 잃은채 일상의 평범한 소비재가 되어 버렸다. 또한 어떠한 사람들은 아주 극단적으로 앞으로는 책이 필요하지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현대 디지털사회의 위기는 책의 위상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끔 한다. 많은 책들은 이제 급격하게 변화하는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서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있으며, 더욱이 새로운 기술들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21C 독자들은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에서 정보를 얻게 되었고, 전자책의 사용빈도도 점점 높아지게 되었다. 휴대하기 좋은 단말기 하나만으로 많은양의 책을 담을 수 있다는 편리함도 한몫 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책은 기존의 책과 다른방식과 형태로 살아남는데 성공할 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쯤에서 지난 독서후기 『페이퍼 엘레지』가 생각났다. IT시대가 열리면서 종이가 사라질 운명해 처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더 많은 종이를 사용하게 되었고, 더 사용범위가 넓어졌다.


책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저자는 세계 출판업계는 매년 더 많은 서적을 출간하고 있으며, 인쇄 문화는 종말과는 매우 거리가 멀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저자의 생각에 동감한다.


현대는 인터넷에 필요한 정보를 검색만 하면 찾을 수 있을만큼 많은 정보들이 넘쳐나는 사회가 되었고, 많은 학생들이 과제나 레포트에 인용하는 자료들이 책에서 인터넷정보로 옮겨졌다. 하지만 떠다니는 그 수많은 자료들도 역사가 깊은 책만큼 심도있는 내용은 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과연 책이 다른 방식과 형태로 살아 남는다 할지언정 이것을 제대로 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의문이 남는다. 책은 기술문명 자체의 역사이기도 했을 것이고, 인간의 성장과정이기도 했을 것인데 말이다.


나는 디지털 문화에 잘 적응해 나가고 있는 세대이며 신문물을 접하는것에 매우 흥미가 있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책만큼은 아직 역사가 깊은만큼 체계적이고 잘 정돈된, 그리고 정보를 넘어선 그 이외의 것들을 담고있는 종이책이 더 좋다. 출판사에서도 트렌드를 따라가야하고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가야 하기도 하겠지만,그리고 그 문화에 또 젖어들어야 하겠지만 글쓴이는 아직은 그렇다. 그리고 아직 이와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을것이라 생각된다. 

(아마 전자책이 종이책의 역사만큼 오랜 발전과정을 거치게 되면 어찌 될지 모르겟으나, 아니,저자의 말대로 현대의 '정보화사회'가 마지막이 되지도 않을 것이지만.)

참, 글을 마치기 전에 평소에 봐오지 못했던 많은 사진사례들을 볼수 있게 해준  이책에 고마움을 느낀다.:)



책, 그 살아 있는 역사 - 10점
마틴 라이언스 지음, 서지원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Posted by 비회원

출근을 하게된 첫날 대표님께서 처음으로 건네주신 책이다 :-)

'페이퍼 엘레지_ 감탄과 애도로 쓴 종이의 문화사'

이언샌섬 지음 |반비

 

'엘레지' 라는 말 자체가 문학적으로는 애도와 비탄의 감정을 표현한 시 이며 음악적으로는 슬픔을 노래한 악곡이나 가곡을 뜻한다고 한다.

책에 사용된 '엘레지'의 의미와 '애도'라는 단어가 와닿는 느낌이 내용을 읽기 전 후로 사뭇 달랐다. 애도라는 단어의 '애'는 슬픔보다는 사랑(愛)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종이라고 하면 우선 '책'을 떠올린다. 디지털시대인 만큼 가볍고, 편리하고, 구입이 용이한 전자책의 범위가 점점 커지며 그와 반대로 종이책의 범위가 줄어들게 되어 종이역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심지어 '종이의 죽음'이라고 일컫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저자는 얼마나 종이가 다양한 곳에 쓰이는지를 총 12장에 걸쳐서 보여준다. 읽는 과정속에서 우리가 종이에 대해 얼마나 한정적으로 인식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12장으로 나뉘어진 책을 잠시 들여다 보자면,

 

「 1. 종이 제작 : 한없이 복잡한 기적

2.종이와 나무 : 숲이 종이를 구했다

3.종이와 지도 : 걸어 다니는 종이

4.종이와 책 : 탐서벽에 빠진 사람들

5.종이와 돈 : 지옥의 전경

6.종이와 광고 : 종이가 도처에 있다

7.종이와 건축 : 건설적 사고

8.종이와 예술 : 비밀은 종이다

9.종이와 장난감 : 진지한 게임들

10.종이와 종이접기 : 놀라운 정신적, 육체적 치료법

11.종이와 정치 : 신분을 증명하기

12.종이와 영화, 그리고 그밖의 것들 : 다섯 장 남다 」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들에서 부터 조금은 놀라운 부분들까지. 꼼꼼히 열거한듯한 느낌이다. 잘 읽어 나가다가 장난감과 종이접기에 대한 부분까지 언급했을 때에는 머리에 느낌표가 꽂힌 느낌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

 

일반적으론 다들 종이의 가치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이 더욱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IT기술이 발달 될 수록 종이책, 편지지, 지도, 신문 이러한 '아날로그'적인 것들은 사라질  것만 같았으나 여전히 우리곁에 존재한다. '편리함'에 젖어 사는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향수'이기도 하며, 어떻게 보면 더 많은 종이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책속에 나오는 내용인데, 커피한잔을 테이크아웃하려고 해도 필요한것은 종이다. 이젠 일일이 종이에 수기로 적지는 않지만, 열심히 타이핑 한것들을 서류화 시키려 해도 종이가 필요하다.

 

종이 이기에 가능했던 것들이 수없이 많았고 더 많아지고 있다. 책에서 저자가 '종이인간'이라는 단어를 썼을 때 처음엔 이정도는 '좀 과장아닌가' 이렇게 생각했으나 어느순간부터 조금씩 공감이 가기 시작했다.

종이가 아니라면 이룰 수 없었을 것들이 너무나 많기에 결국 '감탄과 애도로 쓴 종이의 문화사' 라는 말이 이해가 되더라. 특히 제2장 종이와 나무 부분에서는 애도라는 느낌이 좀 더 공감가기도 했고.

 

나는 책이다. 그래서 이곳에 왔다.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좋아하고, SNS에 내 생각을 공유하기보다는 아직도 혼자 메모하고 생각하고 간직하는것이 좋다. 밤중에 센치해지는 내 감정도, 남들에게는 보여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들도 거리낌없이 적어나갈 수 있는 나만의 다이어리가 좋다. 돌이켜보니 '나'는 종이를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더 흥미롭게 와닿았나 보다. 

 

'페이퍼 엘레지' 를 읽으며 책안에 책이 들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문화사를 다루는 여러 책을 봤던 경험이 있으나 소재가 '종이'였기에 그리고 저자의 정서와 교감을 하며 읽었기에 무언가 모를 새롭고 신선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 아닐까. :)

 

느낀바가 많은 책이라 멋진 독서후기를 남기고 싶었으나 편집자님들처럼 멋있게 쓰는건 도저히 무리다!

글읽는것을 너무도 좋아하지만 쓰는건 소질이 없는듯. 느낀건 느낀건데 글로 표현안되는...(슬퍼)

 

페이퍼 엘레지 - 8점
이언 샌섬 지음, 홍한별 옮김/반비
Posted by 비회원


왕시룽 글·뤄시셴 그림, 이보경 옮김 | 그린비 | 416쪽 | 2만원



‘전기’를 읽어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유소년기에는 할머니께서 위인전집을 선물해(떠안겨) 주신 덕분에 한 사람의 일생을 다루는 전기라는 장르가 친근했는데, 언젠가부터는 인물보다는 사건이나 시대, 한 사람의 삶을 다룬다면 특정 시기에 집중하는 글을 더 자주 접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림전기라니. 어릴 적 저에게 ‘어른’의 징표 중 하나는 ‘그림이 없는 책을 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루쉰 그림전기>는 저에게 ‘그림책’이라 빨리, 쉽게 읽히겠다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절 긴장시키기도 했습니다. 막연하게 ‘중국 근대문학의 거장’ 정도로만 알고 있어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루쉰에 대한 책이기도 하고, 글‘만’ 읽는데 익숙해진 제가 어떻게 ‘그림’을 읽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루쉰 그림전기>는 ‘연환화(連環画)’ 입니다. ‘이어지는 그림’이라 풀이할 수 있는 단어인데, 이 장르에서는 그림이 페이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림 위, 아래 또는 오른편에 간략한 해설문이 들어갑니다. 간혹 그림 안에 말풍선이 들어간 연환화도 있다고 하지만, 이 ‘그림과 해설문’ 형식이 연환화를 만화와 구분하는 주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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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그림전기> 이야기의 시작.


[연환화 - 동서양의 만남이 만들어낸 서민의 책]


연환화의 기원은 정확하지 않으나, 중국 학계에서는 대체로 송나라 시절의 고전문학서나 청과 명 시대의 연애소설처럼 삽화가 포함되었던 책들, 그리고 새해를 기념하는 연화(年画)등의 전통을 계승하는 장르라고 평가된다 합니다. 중국의 근대기에 등장한 이 새로운 출판물은 분명 기존의 그림(책)들을 재현하는 면모가 있었기에 탄생하고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연환화의 등장의 시대적 배경이나 내용을 보면, 서구의 영향 또한 중요한 요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연환화는 1920년대 상해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910년대에 석판 인쇄술이 상해를 통해 중국 전역에 소개되면서 이야기와 그림이 함께 인쇄된 잡지들이 발행되기 시작했고, 이들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들이 손바닥 크기의 책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저렴한 가격에 연환화를 대여하는 노점들이 생겨났습니다.




1947년 홍콩의 연환화 대여 노점. 딱 만화방 풍경입니다! 

출처: Hong Wrong. Via: The Comic Journal


초기의 연환화는 중국의 전설이나 고전문학을 담기도 했지만, ‘킹콩’(!) 처럼 당시 개봉한 최신 영화의 각색물들도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문맹률이 높고 여가에 지출하는 금액이 많지 않은 중국의 서민층에게 연환화는 중국의 고전들은 물론이고 최신 (서구) 문물을 접할 수 있는 창이었습니다.


사진만 봐서는 연환화의 인기가 잘 실감나지 않으시지요?

1951년에서 1956년 사이만 해도 10,000종 이상, 총 10억 부가 넘는 연환화가 제작되었습니다. 정부의 검열이 조금 느슨해진 1980년대의 경우 1쇄에 100만부를 제작하는 경우도 있었고, 연환화가 중국 내 전체 출판량의 ¼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연환화를 만드는 종이가 워낙 질이 나빠 반투명한 정도였다고 합니다.



[싸구려 놀잇감, 그리고 대중교육 매체]


이러한 배경 때문에 연환화의 황금기 중에는 ‘연환화 = 싸구려 그림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으나, 루쉰은 이렇게 서민들이 좋아하는 읽을거리를 얕잡아 보는 시각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연환화를 ‘새로운 형태의 예술작품’으로 보고 1930년대에 벨기에 작가 Frans Masereel의 무언소설을 연환화로 출판하는 데 참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때 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중국 공산당에서도 연환화에 관심을 가졌는데, 연환화를 통해 대중들에게 공산주의 사상을 전하고 문맹자들을 글월의 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1949년에 중국인민공화국이 설립되고 난 뒤에는 정부 정책이나 규정에 대해 알리는 연환화가 대거 등장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연환화는 교육과 놀이, 두 분야에서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인민 항공지식>, 1978년 출판. 

출처: The Comic Journal


‘아… 아빠?’ 스타워즈를 각색한 연환화. 1982년 출판. 

출처: The Comic Journal



[루쉰을 연환화로 만날 때]


이렇게 연환화의 배경을 조금 파악하고 나면, 이 형식이 루쉰의 일생 이야기를 담기에 딱 알맞은 틀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인들, 특히 서민들에게 그들이 체내화하였고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사회적 병폐들에 대해 알려주려고 노력했던 루쉰. 그의 남다른 안목으로 관찰한 연환화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증명하는 예술장르였고, 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 중 하나였습니다. 


또한, 연환화는 루쉰과 같이 파란만장한 중국 근대의 산물입니다. 그 역사를 살펴 보면 지극히 중국적이면서도, 외세의 영향 없이는 탄생할 수 없었던 매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루쉰은 중국 사오싱의 명문대가의 장손으로 태어나 평탄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가문의 몰락을 경험하고 농민, 광부들을 만나며 중국 사회에서 '신분'이란 것이 얼마나 인간의 삶의 반경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체험했습니다. 이후 일본에 유학하며 중국과 중국인들에 대한 차별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문예활동을 통해 중국인들의 사고를 바꾸겠다는 결심을 했지요. 또, 진화론과 같은 과학 분야의 지식과 여러 외국 문학 작품들, 중년에 접한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외국에서 들어온 사상들은 그의 사유와 행동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여기서 잠시 퀴즈. 

1929년, 쉬광핑과의 아들 하이잉이 태어나자 루쉰은 쉬광핑에게 아스파라거스를 선물합니다 (p.326)이것은 어떤 사상에 기초한 행동이었을까요? 


1. 마르크스주의 2. 남녀평등주의 3. 채식주의 4. 녹색경제론 5. 위 보기 모두


(10/31 오전 9:40 수정: 

이 퀴즈에는 답이 없습니다 ㅠㅠㅠㅠ 

웃길려고 만든건데 선배님들께서 모두 답이 뭐냐 물으시더니....웃길려고 한 것인줄 몰랐다며.... 망했네요 ^_^!)




1928년 징윈리에서의 루쉰.


'중국의 대문호'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루쉰. 그는 '작가'를 생각하면 쉽게 떠올리게 되는, '골방에 틀어박혀 창작활동에 매진하며 세상과 어느 정도 분리된 삶을 사는 이'가 아니라,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첫번째 방법은 사람들의 정신을 바꾸는 것"이며 "사람의 정신을 바꾸는 데 제일 좋은 것은 당연히 문예"라는 신념 하에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행동한 '활동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일생동안 출간했던 수많은 소설과 에세이, 번역문, 혁명지는 그의 근면함이 없었다면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또한 "생활이 지나치게 편안해지면, 일이 방해받게 된다"며 생활공간을 아주 단촐하게만 꾸리고,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오자 "이 일이 성사되면...볼 만한 게 아무것도 없는 글쟁이의 글로 변하겠지요. 아무래도 지금처럼 명예 없이 가난하게 지내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답했다는 것을 읽으며, 저는 우리나라의 청빈한 선비상과 그가 닮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루쉰이 세상을 바꾸어 나갔던 방법 중 하나는 '청년들과의 협력, 그리고 아낌없는 지원'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교사로 활동하며 교내외의 문예활동을 장려했고, 형편이 어려운 제자를 몇 달간 자신의 집에 기거하게 하기도 했으며, 18살 어린 벗 취추바이와 열띤 토론을 하며 그를 존경하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미국인 기자 에드거 스노가 그의 작품을 번역해 소개하고 싶다는 제의를 했을 때 그는 "자신의 작품보다 청년작가의 작품을 많이 소개하라고" 말했습니다.



[전기의 정치]


이 책을 읽으며 저는 한 사람의 일생을 회고하는 것의 정치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342개의 그림과 해설문, 100여개의 사진자료가 들어있는 책이지만, 저자가 후문에서 썼듯이 책에 포함되지 못한 내용이 너무도 많을 것입니다. 언제나 다차원적이며 복잡한 인간의 삶에서 주요 장면들을 간추려 매끄럽고 '읽기 쉬운' 이야기로, 그리고 역사 속의 인물을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결코 객관적일 수 없는 작업입니다. <루쉰 그림전기>의 강점은 그렇다면 '연환화'라는 형식 뿐만이 아니라, 루쉰이 일생 동안 마주한 여러 어려움들과 그의 대응방식들, 그리고 역사 속 신념을 정치적, 문화적 맥락에서 분리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책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루쉰과 삶을 함께했던 여성들을 지극히 표면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겠습니다. "선량하고 강인한" 어머니 루루이는 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나오지만 그 영향이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바람 때문에 결혼한 것이지만 어쨌든 아내였던 주안에 대해서는, 그녀와 "공유하는 언어가 없다" 는 것 외에는 생각한 바가 없었을까요? 또한, 저는 루쉰이 사랑하고 조력자로 삼았던 쉬광핑과의 관계에서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쉬광핑은 그에게 어떤 깨달음과 도움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루쉰과 그의 남성 친구들이나 제자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인 묘사가 나오기에 더 아쉽다고 느끼는 바입니다.



[오늘날의 루쉰]



자신의 눈으로 세상이라는 살아 있는 책을 읽으십시오.

-1927년 강연 '독서잡담' 중에서

'혼수상태에 있어 죽음의 비애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깨어날 사람들이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역동적인 중국의 근대기를 살아 낸 루쉰. 그의 말은 오늘날에도 전혀 바래지 않았습니다.




참고문헌:


하와이 대학교의 연환화 모음집

The Comic Journal 
Chien, Minjie. Chinese Lianhuanhua and Literacy


Posted by 비회원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

 

 

안녕하세요 신입디자이너 윤블리블리 입니다 :-)

요즘 날씨상태가 정말 메롱이죠?ㅜ

하루에 비오다가 맑았다가 천둥쳤다가 맑았다가.....예상하기 힘든 당신 날씨!

오늘 소개해 드릴 책은 아마존과 제프베조스의 모든 것을 담은 책!!!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the everything store)》' 입니다. 

모두 한번씩 아마존 닷컴을 들어보시지 않았나요?

아마존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로써 책 뿐 아니라 음반, 전자제품, DVD, 가구, 장난감, 의류 등 품목을 넓혀 모든 상품을 팔고 있는 곳이지요.

 

 

이 곳이 바로 아마존 물류창고 입니다. 규모가 정말 어마무시하죠?ㅎㅎㅎㅎ

규모가 저 정도의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 제프 베조스는 정말 대단한분인 것 같아요.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 》는 제프베조스의 어린시절 이야기의 시작으로 그가  아마존을 창업하고 점점 사업규모를 넓혀가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제프베조스는 어릴적부터 경쟁심이 남달라 친구나 누군가에게 뒤처지는것을 아주 싫어 했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며  생각나는 구절이 어린 제프베조스는슈퍼맨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군가가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지시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해요.”

어떻게 어린아이가 이런 말을 담을 수 있지? 책을 읽으면서 반성이 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전 어렸을 적 어른들이 시키는 일만 한 기억 밖에 없는데.... ㅜ  
어릴 적부터 남다른 제프는 아마존을 창립하고, 목표지향적이고 재주많은 CEO가 되어 많은 직원분들을 거느리면서 완벽에 완벽을 거듭한 편집증적이고, 괴짜같은 그의 성격을 통해 상사로 모시고 일하기가 엄청 힘든 사람이였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책을 통해  제프베조스의 완벽주의 성격과 성공에 대한 열정과 집착, 결과는 숫자로 이야기하는 아마존의 문화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기업이 오랜시간동안 도태되지 않고 성장해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거대하고 공격적인 아마존도 창업 초기 시절이 있었을 텐데요.

고객불만, 시스템 기능 오류, 물류 센터의 재고 관리 엉망이었지만, 제프는 이런 환경을 바라보며 더욱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해결해 나간 모습을 보니, 아마존의 냉혹한 지배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직업의식이 투철한 CEO인 것 같습니다. 제프의 위기를 이겨나는 능력은 참 대단하고, 성장할 예비 경영자들에게 멘토가 되는 경영자로 평가 받을 만합니다.

 

아마존의 기업문화

제프의 직원들은 제프가 만든 독특한 사내관습(파워포인트 대신에 서술형태의 산문, 6페이지로 제한하고 추후 보도자료 형태로 작성)를 적응하느라 고생을 하고, 강도 높은 업무량과 그의 독설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고 최악의 경우 아마존을 떠나는 사람까지 생겨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프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기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제프는 파워포인트는 매우 애매모호한 소통 메커니즘으로 생각을 완전히 표현하지 않아도 되므로 요약목록 사이에 숨는 일이 아주 쉬워, 그들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언론 보도용 기사 스타일로 서류를 작성한다고 합니다. 이 기획제안서에는 고객이 제품을 처음 접할 때 듣게 될 만한 내용이 담겨야 합니다.
또, 아마존으로 고객의 문의 전화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의 시스템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편리한 쇼핑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통화가 오는 숫자를 일일이 체크했다는 내용에서 그가 얼마나 꼼꼼하고 열정적인지 알것 같아요.

 이렇게 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걸 까요?

 

아마존은 구글이나 애플처럼 회사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는 조용하지만 강한 회사인 것 같아요.

아마존 직원들은 외부 인터뷰를 안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해요. 다음 6가지 특성들은 퇴직자들을 통해 파악한 것이예요.


1.누구도 당신을 보살피지 않는다.
아마존은 다윈의 이론처럼 지극히 치열한 조직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선임자들중 그 누구도 진정으로 당신을 챙겨주지 않는다. 이 조직이 구성원들을 어떻게 
지원해줄 수 있는가 라고 묻지 않는다. 조직이 아니라 구성원의 책임이다.
구성원이 직접 수행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회사를 나가야 한다.

 

2.당신보다 더 나은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

채용의 룰은 간단하다. 당신보다 스마트한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주위에 6 ~ 8명의 아마존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지원자는 이들보다도 더 스마트해야 한다. 관리자가 스마트한 사람을 채용하게 되면, 그 관리자는 더 스마트하게 여겨진다.

 

3.당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아마존은 갈등 속에 번성하는 문화로 정평이 나 있다. 알콩달콩한 분위기가 아니다. 자신이 해야 할 업무가 깊이있게 알아야하며, 수치를 통해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구성원 모두가 논쟁하고 싸우며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최선의 결과를 얻느나.

 

4.왜? 라고 다섯번을 묻는다.
일이 잘못되면 해당 팀은 다섯차례에 걸쳐 그 이유를 묻는다. 이를 통해 겉으로 보이는 기계적 실수와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사람의 잘못된 의사결정간의 인과관계를 찾는다. 도요타 생산 시스템에서 응용한 것이다.

 

5.짠돌이가 되어야 한다.
아마존 리더쉽 원칙의 중심에는 짠돌이 정신이 있다. 아마존에서는 당신이 중역의 위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이코노미 좌석을 타야 한다. 좌석을 업그레이드하는 경우, 개인비용으로 지불해야 한다. 고객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비용 지출은 극히 삼가한다.

 

6.데이터에 기반해 의사결정해야 한다.
모든 의사결정의 근원은 감이 아니라 데이터이다. 모든 혁신 역시 데이터 분석에서 나온다.

 

 “여전히 많은 물건은 계속 발명되고, 여전히 새로운 일이 많이 일어나리라.

인터넷의 위력을 우리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오늘은 그저 거대한 미래의 첫날 일뿐

-제프베조스”

 

아마존이라는 회사는 소비자중심의 기업형태인건 알겠지만, 한 소비자를 위해서 많은 직원분들의 희생이 잇따른 것을 보니 정말 대단하고, 기업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대 다수의 잠, 노력, 에너지가 소비된다는 것을 느꼈다. 정말  아마존회사에서 일 한번 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ㅎㅎㅎㅎ아마존은 분명히 성공한 기업이긴 하지만, 올해 우리나라에도 들어온다는 말이 있던데 어떤 파동을 일으킬지 기대가 됩니다.^^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