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니 책/문학'에 해당되는 글 103건

  1. 2017.08.22 유년과 현실의 대비를 지나 진정한 자아를 찾는 모험 :: 『맨발의 기억력』 (책 소개) (1)
  2. 2017.08.07 괴기한 시대의 이상하고 외로운 네 편의 이야기들 :: 『폭식 광대』(책 소개)
  3. 2017.05.15 사할린 동포들의 애달픈 삶과 꿈 :: 이규정 장편소설 『사할린』 (2)
  4. 2017.05.11 “우리는 운명입니다” ::『필연』(책소개)
  5. 2017.03.24 "언젠가 나도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고 싶다" :: 김춘자 산문집 『그 사람의 풍경』(책 소개)
  6. 2017.03.13 외로운 당신에게 건네는 생명의 메시지 :: 『生을 버티게 하는 문장들』(책 소개)
  7. 2016.12.28 마흔셋, 뜨거운 사랑이 찾아온다 -『가을의 유머』(책소개) (2)
  8. 2016.12.21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길 찾기-『내게 없는 미홍의 밝음』(책소개)
  9. 2016.12.21 타자와 자신을 읽는 글쓰기로 문학 세계를 탐구-『무한한 하나』(책소개)
  10. 2016.12.12 삶의 시간은 철학 넘기는 소리 ::『저승길을 물어서 간다』(책소개) (3)
  11. 2016.11.07 베트남 여인 쓰엉을 둘러싼 어긋난 사랑과 욕망-『쓰엉』(책소개) (3)
  12. 2016.10.27 모니카 마론의 신작-『올가의 장례식날 생긴 일』(책소개) (3)
  13. 2016.10.17 절망을 사랑으로 포용하다-최정란 시인『사슴목발 애인』(책소개) (3)
  14. 2016.07.22 우리 시대의 민낯을 소설로 형상화하다 - 오영이 소설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책소개) (5)
  15. 2016.06.15 아름다움의 正名을 찾아가는 여정 :: 유익서 소설집 『고래 그림 碑』 (2)
  16. 2016.05.31 거칠지만 자유롭게 노래하다-서규정『다다』(책소개) (1)
  17. 2016.05.31 미지의 섬에서 마주친 또 다른 나:: 장편소설 『토스쿠』 (1)
  18. 2016.03.25 성선경 시집,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책소개) (3)
  19. 2016.02.04 시대와 운명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를 담다-『칼춤』(책소개)
  20. 2016.01.18 “이 세상에서 여자란 무엇인지 너 자신에게 물어본 적 있어?” - 『마르타』(책소개) (3)
  21. 2016.01.15 어머니가 되기 좋은 나라에서 온 편지-『나이지리아의 모자』 (2)
  22. 2016.01.14 부표처럼 떠도는 뱃사람들의 인생사-『아디오스 아툰』 (4)
  23. 2015.12.30 개인주의와 전체주의를 넘어-『공통성과 단독성』(책소개) (2)
  24. 2015.12.22 삶의 수렁에서 건져 올린 출구 없는 세계의 비정성-『씽푸춘, 새벽 4시』 (6)
  25. 2015.10.21 떠도는 섬 같은 현대인의 모습-『내 안의 강물』(책소개) (1)

윤현주 시집

<맨발의 기억력>

 

 

 

 

▶ 유년과 현실의 대비를 지나 진정한 자아를 찾는 모험

 

 

산지니시인선 014 윤현주 시집 『맨발의 기억력』이 출간됐다. 기자 출신으로 다양한 현장에서 삶을 부대껴온 윤현주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은 부박하고 비루한 현실 속에 처한 사회적 자아를 돌아보고 진실한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을 담고 있다. 유년과 고향을 주된 매개로 하여 때 묻지 않은 지난날의 순수한 경험들을 되새긴다. 또한 기억의 조각들로 이뤄진 유년 시절을 통해 현재의 나를 비춘다. 윤현주 시인에게 유년은 시적 원천이지만 안주할 위안의 공간으로 지속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비루한 현실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기제로 재귀적 반복의 양식이 된다.

 

 

 

 

▶ 혼탁한 현재를 밝히는 유년이라는 순수한 불빛

 

 

‘늙은 누이야/아직도 기억하고 사는가’ (「푸른 강냉이 시간의 윤슬」 중에서)

의식이 분화되지 않는 유년은 사실 말할 수 없는 기억의 세계이다. 시인이 기억하는 것은 경험의 잔상들이며 이로써 유년은 재구성된다. 가난과 상처가 있는가 하면 사랑과 행복의 기억이 공존한다. 유년의 이미지들은 시인의 현재를 반추하게 한다.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삶을 대비함으로써 바라는 자아에 대한 기대를 강화한다.

유년은 “세월이 가뭇없이 흘러도/끝내 젖지 않는 비의 맹점에/환한 기억의 등불”(「우산 속의 마른 기억」에서)과도 같다. 때론 상처로 고통을 환기하고 콤플렉스로 사고의 진전을 가로막기도 하지만 존재의 등불이 되어 내면을 비추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따라서 유년은 시인의 시적 지평을 열어가는 적극적인 매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타락하고 퇴락한 사회적 자아와 대립하며 탄생한 시

 

 

‘나는 노쇠한 개, 이빨은 파뿌리처럼 뽑혔고/야성은 서리 맞은 들풀이오/어둠마저 빨려 들던 눈의 광채는 어둠에 갇혀 버렸고/ 십 리 밖 악취를 낚아채던 후각은 권력의 향기에만 민감하오’ (「기자들」 중에서)

기자가 직업인 시인이 자신의 일을 자조하고 풍자한다. 즉, 윤현주의 시는 타락하고 퇴락한 사회적 자아와 대립하는 자리에서 탄생한다.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내적 망명의 장소에 시가 있다. 「대추나무에 걸린 시」에서 시인은 “때늦은 등단”과 시 쓰기의 의미를 깊이 새긴다. “온몸으로 세월을 관통해야만” 한다는 의지와 더불어 “화려한 꽃의 수식 대신/태양의 뜨거운 직유와/달과 별의 은은한 은유, 그리고/뇌우의 홛달한 활유”를 얻으려 한다. 여기서 우리는 비루한 현실과 시적 망명 사이에 위치한 시인의 긴장된 입장을 상기할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표제작인 「맨발의 기억력」과 「숟가락의 연애법」은 사물에 대해 세세하게 사유하고, 「헐렁한 시간」, 「모음을 파는 사내」, 「계절을 파는 여인」 등은 일상과 풍속을 관찰하고 그려낸다. 이러한 시적 과정은 나아가 「산복도로 풍경」이라는 연작시로 시적 성취를 얻는다.

 

 

 

 

저자 소개

윤현주 시인 hohoy@busan.com

경북 경산 출생. 경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사. 부산대학교 국제전문 대학원 석사. 2014년 <서정과현실> 신인상을 수상하여 등단했고, 현재 부산일보 논설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목차

시인의 말 하나

 

제1부

임플란트 | 의자 | 젖은 눈망울 | 기자들 | 반의반 통 수박의 고독 | 사회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 대추나무에 걸린 시詩 | 물먹다 | 맨발의 기억력 | 고3 성자들 | 넥타이 | 빈방 | 어느 날의 도시 | 숟가락의 연애법 | 러닝머신 | 헐렁한 시간 | 지하철

 

제2부

장미와 담장 | 모음母音을 파는 사내 | 계절을 파는 여인 | 산복도로 풍경-골목 | 산복도로 풍경-파란 물통 | 산복도로 풍경-천국의 계단 | 산복도로 풍경-흔들리는 섬 | 산복도로 풍경-빨간 고무다라이 | 산복도로 풍경-벽화 | 산복도로 풍경-168계단 | 포크레인 | 포란抱卵 | 막춤 | 꽃다지 | 때밀이 여자 | 버려진 길을 딛고 삶은 일어서는가 | 호랑이 쇼

 

제3부

경기 동향에 관한 보고서 | 고층에서 내려다본 풍경 | 누가 내 이름에 | 無所有 | 생활의 발견 | 그날 이후 | 목줄 | 우여곡절〔寺〕 | 시래기 | 아내는 낡아서 일가를 이뤘다 | 테트라포드 | 숫돌 | 천리향 설움에 젖어 | 386 따라지 | 능소화凌霄花 | 12월의 붉은 단풍나무 숲에서 | 노안老眼으로 당신을 읽다

 

제4부

입안에 고여 오는 얼굴 | 상어의 변주곡-돔베기 그리고 샥스핀 | 솔갈비·1 | 솔갈비·2 | 푸른 강냉이 시간의 윤슬 | 퇴장退藏 | 통곡 | 물메기 | 오래된 침묵 | 매실을 담으며 | 아버지 서책 | 우산 속의 마른 기억 | 아랫목 쌀밥 한 그릇 | 가덕 팽나무 | 도꼬마리 사랑 | 반어법 돌아가시다 | 즐거운 외풍

 

해설 | 비루한 현실과 시적 성찰-구모룡

 

 

 

윤현주 시집

맨발의 기억력

 

윤현주 지음 | 149쪽 46판  | 10,000원 | 978-89-6545-431-1 03810

 

산지니시인선 014 윤현주 시집 『맨발의 기억력』이 출간됐다. 기자 출신으로 다양한 현장에서 삶을 부대껴온 윤현주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은 부박하고 비루한 현실 속에 처한 사회적 자아를 돌아보고 진실한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을 담고 있다. 유년과 고향을 주된 매개로 하여 때 묻지 않은 지난날의 순수한 경험들을 되새긴다. 또한 기억의 조각들로 이뤄진 유년 시절을 통해 현재의 나를 비춘다.

 

 

 

 

 

맨발의 기억력 - 10점
윤현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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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 소설집

<폭식 광대>

 

 

 

 

 

 

▶ “나는 고독하다. 혀, 고래, 수프, 도둑과 실처럼…….”

제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 권리

특유의 건조한 문체로 풀어낸

괴기한 시대의 이상하고 외로운 네 편의 이야기들

  

 

 

 

제9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권리의 첫 소설집 『폭식 광대』가 출간된다. 이 소설집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집필한 작품들을 모은 것으로, 환상적 기법을 통해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전한다. 특히 한국사회의 현실을 심각하게 바라보기 보다는 한 발짝 떨어져 블랙코미디로 녹여내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예술에 대한 환상과 실제의 간극을 보여주는 「광인을 위한 해학곡」, 해파리 사건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을 재조명한 「해파리medusa」, 강남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판자촌을 모티브로 한 「구멍」,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은 「폭식 광대」까지. 신선한 소재와 발상으로 문학적 실험을 해온 작가 권리의 재기발랄한 작품들을 통해 한국문학의 새로운 도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구멍도 언젠간 하품을 멈출 날이 올 거여.”

서민의 삶까지 삼켜버리는 거대 자본과 사회에 대한 메시지

 

 

 

‘여기 사람 있어요.’

작가 권리는 재개발 아파트 건설로 인해 터전을 잃은 소시민의 인터뷰 한 마디가 이 소설집을 탄생시켰다고 말한다. 사회는 무엇으로 지탱될까? 그 속에 사람의 영역은 얼마나 될까? 권리 소설집 『폭식 광대』는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거대 자본에 의해 돌아가는 사회 시스템을 비판한다.

표제작이기도 한 소설 「폭식 광대」는 폭식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서글픈 최후를 그리고 있다. 평범했던 남자가 폭식으로 일약 유명인이 되면서 계속해서 더 많이 먹어야만 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폭식 광대가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여론이 형성되고 더 이상 아무도 그의 폭식에 열광하지 않는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카프카의 단편소설 「단식 광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여기에 오늘날 한국적 현실을 더해 이상하고 외로운 한 남자의 이야기를 완성했다.

소설 「구멍」은 도공동의 빈촌 게딱지 마을을 중심으로 거대한 구멍이 생기면서 일어나는 일을 담고 있다. 강남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그 앞에 있는 판자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으로, 현실을 바탕에 두고 독특한 상상력을 더해 한국 사회의 현실을 꼬집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환상과 질서에 관하여

 

 

 

권리 소설집 『폭식 광대』는 건조한 문체와 독특한 상상력으로 우리 시대의 민낯을 그려내고 있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광인을 위한 해학곡」과 「해파리」는 냉소적이고 신랄한 문투와 비현실적 상황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환상과 사회 질서를 표면 위로 끌어올린다. 출간 전, 두 작품 모두 문예지 발표 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4차 문예지 게재 우수작으로 선정됐다.

「광인을 위한 해학곡」은 미술가 ‘장곡도’를 주인공으로 한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그의 사기에 가까운 메시지와 그림들이 대중에게 예술계의 신화로 자리매김 하는 것을 보여주며 예술이라는 이름 뒤의 허영과 환상, 실제를 보여준다.

「해파리」는 해파리가 인천 앞바다를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일어나는 일을 담고 있다. 주인공 김부겸은 평소 필리핀 총각 토니를 무시하지만 해파리를 잡아 영웅이 되기 위해 그와 함께 바닷가로 나가게 된다. 부겸이 토니가 함께 생활하며 주고받는 언행들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생활을 생각하게 한다.

 

 

 

 

 

 

낯설고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한 권리의 소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없다. 권리의 첫 소설집 『폭식 광대』는 13년 동안 그녀가 시도해온 소설적 모험들로 가득하다. SF적 설정, 키치 문학 등을 클래식 소설에 적극 끌어들여, 독자들이 읽기 쉬우면서도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과감한 문학에 도전하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앞서 발표한 장편소설들과 산문집에서 보여준 작가 권리만의 무심한 듯 날카로운 스타일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문장과 문장 사이, 현대사회에 대한 날선 비판을 툭 던져 놓고 다시 다음 이야기로 시선을 옮긴다.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권리 소설집 『폭식 광대』, 유연하고 감각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아이러니를 짚어본다.

 

 

 

 

 

 

책속으로 &밑줄긋기

 

 

 

P.10 그의 탄생은 마치 설화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심지어 그가 알에서 나왔다는 주장까지도 있다. 바야흐로 사람들은 우리의 주인공, 즉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이자 ‘세계연출가그룹’의 대부 장곡도에게 미쳐 있다.

 

P.35 그의 앞에 있으면 정상적인 어법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세상을 오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만일 그가 정치가였더라면 그의 잘못된 문법이연일 도마에 오르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예술가였기 때문에 그런 비문조차도 예술적인 언어 구사능력의 하나로 여겨지고 말았다.

 

P.45 “예술가들은 전략적으로 신화가 되는 방법을 연구한다.”

 

P.61~62 검단에는 중국, 베트남, 필리핀에서 온 공장 근로자들이 많았다. 부겸은 그들이 몹시 못마땅했다. 피부색도 맘에 들지 않고, 한국말을 잘 못하는 것도 싫었다. 게다가 한국의 노동력을 그들이 다 빼앗아 간다고 여기고 있었다.

 

P.76 해파리는 그들의 의문에 응답이라도 하듯 몸 아랫부분에 달린 원형의 날개를 펄럭거렸다. 몇 번의 날갯짓 후에 그것은 갑자기 눈부신 빛을 내며 사라졌다. 그 순간, 부겸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눈앞에 지난 50년의 인생이 황홀하게 지나간 것이다.

 

P.95 도공동은 십자로를 중심으로 부촌과 빈촌으로 나뉘어 있었다. 부촌에 있는45층짜리 아파트에서 대무산 쪽을 바라보면 게딱지 마을이 바라다보였다. 그곳은 금방이라도 잡힐까 봐 꿈쩍하지 않고 엎드린 게들의 군집처럼 보였다.

 

P.105~106 게딱지 마을 주민들은 모두들 뒷걸음질을 쳤다.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야? 여자들은 입을 가리며 눈을 크게 떴다. 나무를 걷어 내자 구멍은 시골 외양간만큼이나 컸다. 마치 외계에서 날아온 운석이 쿵하고 떨어진 것 같은 모양이었다.

 

P.139 폭식 광대에 대한 잡음이 끊이지 않았으나 이 논란들이 폭식 광대의 인기를 드높였다. 인터넷에는 ‘많이 먹고 예뻐지기’라는 카페가 등장했고,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폭식 광대의 그림이 찍힌 열쇠고리와 부채가 폭발적으로 팔려 나갔다.

 

P.143 그날 집으로 돌아온 폭식 광대는 변기를 붙잡고 울음이 그칠 때까지 모든 음식물을 토해 냈다. 사과 껍질과 계란 노른자 찌꺼기, 참치 가시, 시금치 등이 분노하듯 토해져 나왔다. 이렇게나 많이 먹었던가 하고 그는 의아해했다. 그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이렇게 구토를 했다.

 

P.155~156 한때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안겼던 그는 사람들로 부터 한없이 격리되어 갔다. 그를 먼 거리에서 놓고 보려는 사람들도 점차 생겨났다. (…) 그에 대한 대중의 애정이 차갑게 식으면서 그의 몸을 가득 채우던 에너지들도 점차 식어 갔다.

 

P.169 그는 붕괴하고 있었다. 한 시대가 쓰러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또 앞으로 어디에 누울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저자 소개

 

 

 

 

권리 소설가

 

1979년 서울 출생.

2004년 장편소설 『싸이코가 뜬다』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데뷔했다. 장편소설 『왼손잡이 미스터 리』, 『눈 오는 아프리카』, 『상상범』과 산문집 『암보스 문도스』를 냈다.

 

 

 

목차

 

 

 

광인을 위한 해학곡

해파리Medusa

구멍

폭식 광대

 

작가의 말

 

 

 

 

 

 

 

권리 소설집

폭식 광대

 

권리 지음 | 176쪽 46판  | 12,000원 | 978-89-6545-430-4 03810

 

 

제9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권리의 첫 소설집 『폭식 광대』가 출간된다. 이 소설집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집필한 작품들을 모은 것으로, 환상적 기법을 통해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전한다. 특히 한국사회의 현실을 심각하게 바라보기 보다는 한 발짝 떨어져 블랙코미디로 녹여내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폭식 광대 - 10점
권리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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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으로 가자, 조선! 하시던 조선은 저승길보다 멀었는가."

 

잠자고 있던 역작을 깨우다!

이규정 장편소설 『사할린』

 

 

 

 

91년 사할린 현지 취재, 5년에 걸친 집필!

이규정 소설가가 전하는

일제강점기 사할린으로 끌려간 동포들의 애달픈 삶과 꿈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와 상처, 그 속에서 삶을 일궈가는 사람들에 주목해온 이규정 소설가의 장편소설 『사할린』(전 3권)이 재출간되었다. 이번 소설은 1996년 출간된 『먼 땅 가까운 하늘』을 새롭게 편집하여 선보이는 것으로, 20여 년 만에 다시금 독자들과 만나게 된 셈이다. 시간은 지나갔지만, 아픈 역사가 남긴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도 사과 한 마디 받지 못한 위안부 문제가 그러하고,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그러하다. 이규정 소설가는 작가란 존재에 대해 ‘역사의 파수꾼이자 현실의 증거자여야 한다’고 말한다. 일제 강제 징용 이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이규정 소설가는 오랜 시간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졌고 91년 사할린 취재에 나섰다. 노트 3권, 녹음테이프 5개, 사진 필름 10통에 담긴 취재 기록들은 이후 5년의 시간을 더해 소설로 만들어졌다. 그 후 다시 20여 년이 지났다. 시간의 장벽을 걷고 이규정 장편소설 『사할린』이 다시금 독자들 곁으로 다가간다.

 

 

 

 

그저 어디든지 훨훨 날아서 이 불길한 올가미에서 멀리 벗어나고 싶었다.”

 

사할린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한 맺힌 삶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상처

 

  『사할린』은 러시아 사할린 동포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이다. 1930년대, 사할린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사할린 현지를 방문하는 1990년대 초반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경남 함안, 북한, 일본, 러시아 등을 오가며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진 여정을 웅장하게 담고 있다. 최숙경과 이문근 부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소설은 이 부부의 생이별을 중심 갈등 구조로 삼아 사할린에 강제 징용된 동포들의 삶을 보여준다. 1943년, 숙경은 아픈 남편의 약값을 위해 사할린으로 떠나게 된다. 가와카미 탄광에 배속돼 인부 숙사에서 일하게 된 그녀는 그곳에서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을 만나게 되고, 열악한 노동 환경과 일본인 간부들에 의한 비인간적인 고문 등을 접하게 된다. 이 소설은 사할린 탄광촌의 삶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는 이규정 소설가가 직접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신 분들의 비극적 삶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한스러운 삶이 해방 이후에도 고된 타향살이와 이산가족의 아픔으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남송우 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에 대해 “한민족의 어두운 역사 한 편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기록적 의의가 있다”고 말한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아픔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여러 곳에서 펼쳐졌다. 하지만 사할린 강제 징용 문제는 그 수많은 삶의 이야기가 온전히 재구성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으며, 몇 세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사할린 동포들의 한스러운 삶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규정 장편소설 『사할린』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할 것이다.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의 굴곡진 역사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다

 

  『사할린』은 사할린 동포들의 이야기 하나 하나에 집중한다. 뛰어난 특정인을 주인공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편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사할린으로 떠난 숙경, 가와카미 탄광의 조선인 감독 판도, 탄광에서 탈주한 후 모진 고문을 당하는 남보, 정신대로 끌려가게 된 14살 소분, 하굣길에 일제 트럭에 태워져 강제징용을 당하는 형개 등 사할린으로 끌려간 동포 한 사람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으며 그들이 겪었던 참혹했던 삶을 그려낸다. 탄광 내에서 벌어지는 조선인에 대한 폭력, 짐승만도 못한 생활, 조선인 탈주자에 대한 고문대회, 정신대로 팔려가는 여성 등의 신랄한 묘사를 통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1945년 해방 이후, 탄광촌에서 건강을 유지한 채 살아남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여기서 병신이 되면 폐갱에 던져져 생매장 되는 것뿐이란 말이오."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온 이는 극히 드물다. 숙경도 북해도로 건너가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일본인들의 조속한 귀국에 막혀 4만 3천여 명의 한국인들은 사할린에 그대로 방치된다. 독립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반도는 분단이라는 혼돈과 아픔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특히 숙경의 남편 문근이 보도연맹 사건에 연루되어 생사의 고비를 맞이하게 되는 등 해방 이후에도 민초들의 고난은 계속되고, 결국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이들은 사할린 동포, 이산가족이란 이름으로 남게 된다.

 

 

 

 

1991년 5월이 어제의 일처럼 기억되면서 그때가 그립습니다.”

 

  첫 출간된 지 20여 년이 넘은 소설에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말했다. 일제 식민지하 민족은 갈갈이 흩어졌고, 평범한 사람들은 이유 없는 고통을 견뎌내야 했다. 도둑같이 찾아든 해방의 기쁨도 잠시, 외세에 의한 분단은 고향 땅을 밟고자 했던 민초의 삶을 짓눌렀다. 머나먼 타지에서 무국적자로 남아야했던 삶, 돌아오려 해도 돌아갈 수 없었던 동포들.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고, 그들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지점에 소설 『사할린』이 자리한다.

  부산 지역 문단의 원로 소설가 이규정은 소설집 『치우』(2013 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 2014 이주홍문학상 문학부문 수상), 장편소설 『번개와 천둥』(2015 지역출판문화 및 작은도서관지원 우수도서, 2016년 몽골 현지 출간) 등 탁월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되짚어 보고 따뜻한 시선으로 인간의 삶을 어루만지는 작품들을 집필했다. 장편소설 『사할린』은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 가장 아픈 손가락이자 가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 작품이다. 이규정 소설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전한다.

 

내가 사할린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 것은 20년이 넘었다. 우리 역사의 상처, 우리 민족의 맺힌 한, 이런 것들에 대하여 정부 당국이 미처 손쓰지 못한 일이 있다면 이야말로 작가의 몫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 언제까지나 사할린 동포의 그 단장의 망향을 방치해 두고만 있을 것인가, 하는 나름대로의 분노 때문이기도 했다. _ 「작가의 말」 중에서

 

  1991년 5월, 그는 사할린 동포에 대한 소설을 쓰기 위해 무작정 러시아 사할린으로 떠났고 이후 5년이 흐른 1996년 첫 출간을 하게 된다.(당시 소설의 제목은 『먼 땅 가까운 하늘』) 하지만 당시 출판사의 사정으로 책은 곧 절판되어 버리고, 이 이야기는 독자들을 만날 길을 잃어버린다. 이후 한 지역신문 문화부 기자의 재조명을 시작으로 재출간 작업에 들어가게 됐고, 다시금 독자들을 만날 준비를 하였다. 새롭게 편집된 이규정 장편소설 『사할린』은 노년층 및 약시자들을 위한 큰글씨책(전 5권)으로도 만들어져 보다 많은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산지니 출판사는 소설 『사할린』을 중심으로 사할린 동포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위안을 줄 수 있도록 관련단체와 협의해 나갈 예정이다.

 

기억되어야 하는 질곡의 역사,

그리고 그 속에 놓여 있었던 사람들.

장편소설 『사할린』를 통해 많은 독자들이 아물지 않은 역사의 상처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사할린』 북트레일러  ::

 

 

 

 

:: 작가 소개 ::

 

 

이규정 소설가

경남 함안 출생. 1977년 단편 <부처님의 멀미>를 월간 『시문학』에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1979년 계간 『문예중앙』에 의해 80년대의 신예작가 10인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 전개. 소설집 『부처님의 멀미』등 9권과 장편, 동화집, 이론서, 산문집, 칼럼집 등 20여 권의 책을 출간했다.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서울) 부이사장을 지내고, 현재 부산의 원로 민주인사 단체인 ‘민족광장’ 공동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종교 활동으로 천주교 부산교구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회장을 지냈다. 부산시문화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요산김정한문학상, PSB(현KNN)부산방송 문화대상, 가톨릭대상, 부산가톨릭문학상, 이주홍 문학상, 홍조근정훈장 등을 받았다. 신라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 2002년에 정년퇴임했다.

 

:: 소설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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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정 현장취재 장편소설

사할린(전 3권)

 

이규정 지음 | 1권 352쪽, 2권 356쪽, 3권 352쪽 | 각 16,000원 

| 2017년 5월 15일 출간

 

일제 강제 징용 이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이규정 소설가는 오랜 시간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졌고 91년 사할린 취재에 나섰다. 노트 3권, 녹음테이프 5개, 사진 필름 10통에 담긴 취재 기록들은 이후 5년의 시간을 더해 소설로 만들어졌다. 그 후 다시 20여 년이 지났다. 시간의 장벽을 걷고 이규정 장편소설 『사할린』이 다시금 독자들 곁으로 다가간다.


 

* 노약자, 약시자들을 위한 큰글씨책도 있습니다. *

 

 

사할린 1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사할린 2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사할린 3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사할린 1 (큰글씨책)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사할린 2 (큰글씨책)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사할린 3 (큰글씨책)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사할린 4 (큰글씨책)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사할린 5 (큰글씨책)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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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은 부부가 써내려간 사랑의 언어

 

밀양에서 수련원 <늘새의 집>을 운영하는 남편, 그 옆에서 <행랑채>라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아내. 50년을 함께 산 늙은 부부가 서로에게 주는 사랑의 시어를 책으로 펴냈다. 책에 실린 60여 편의 시 한 편 한 편에 모두 따스한 마음과 사랑의 감정이 묻어나는데, 나이 70을 넘긴 남편은 아직도 이렇게 이야기한다. “생각만 해도 따스합니다 / 50년이 좋았는데 여전히 난 / 당신이 좋습니다.”(「당신이 좋습니다」 중에서) 사랑하며 살기에도 인생은 모자란다고 말하는 남편은 길거리에서 노인 둘이 싸우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또 이렇게 일갈한다. “부산 갔다가 / 길에 차를 세우고 싸우는 / 늙은이 둘을 보았다 // 같은 늙은이로서 / 둘을 붙잡고 묻고 싶었다 / 단 한 번이라도 / 사랑을 고백한 적 있냐고”(「노인의 싸움」)

 

 

▶ 필연이 아닐까

 

나이 스무 살 어름에 만나 집안의 모진 반대를 무릅쓰고 화장실 환기통을 통해 선물을 주고받던 두 사람에게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남편은 베트남 전쟁 참전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환영에 시달리기도 하고 몸이 망가지기도 하였지만 부부는 마음을 다잡고 생을 일구어 나간다. 남편 김노환 선생은 36세에 황매산에 들어가 기의 세계에 입문하여 깨달음을 구하고, 이제는 상처받고 병든 사람을 수양의 길로 인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부인 사라 선생은 정성으로 만든 음식을 손님들에게 대접하면서 틈틈이 야생화 그리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사라 선생은 이제 와 생각해보면 모든 일에 감사할 뿐이라고, “하늘과 땅, 가족 이웃 친구들 모두에게 진실한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함께 견디며 여태 잘 지켜준 남편께도 감사하고, 나 자신에게도 잘 견디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이 모든 일이 필연이 아니었겠느냐고 책의 서문에서 속내를 드러낸다.

 

 

 

 

책속으로 / 밑줄긋기

 

P.38: 집안이 뒤집어지고 온 동네가 다 알도록 모두가 독하게 말렸으나 우린 끝까지 사랑을 밀고나갔습니다.

 

P.64 : 앞주머니가 유행이던 시절, 카키색 바지에 티 차림의 그는 배우보다 옷 잘 입고 핸섬한 남자였지. 약국 윈도우 앞에서 언제쯤 지나가나 하염없이 기다리며 그를 보고 싶어 했지. 시골에서 내려온 후 나이가 차도 이끌리는 남자가 없었는데 우린 대체 어떤 인연이었는지, 그 사람을 왜 그리 기다렸는지. 세월은 흐르고 흘러 둘 다 하얀 머리로 밥상 앞에 마주 앉는다.

 

P.86 <노인의 싸움> 부산 갔다가 / 길에 차를 세우고 싸우는 / 늙은이 둘을 보았다 // 같은 늙은이로서 / 둘을 붙잡고 묻고 싶었다 / 단 한 번이라도 / 사랑을 고백한 적 있냐고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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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김노환

 

1945년 경남 산청 지리산 줄기의 법물마을에서 태어났다. 전쟁 중에는 빨치산 유격대와 국군의 난리로 마을이 온통 좌우 대립의 격랑을 거쳤다. 전쟁이 끝난 후 부모님과 함께 부산으로 이사해 전쟁 피난민, 귀환동포 집단 거주지역이었던 범일동 매축지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월남전 참전 후 극심한 외상후스트레스로 병원을 전전하다가 우연히 기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36세 되던 해, 홀연히 황매산으로 들어가 7년간 수행 생활을 하며 깨달음에 갈급해하는 시기를 보내다가 힌두교 성지로 잘 알려진 여러 지방을 다니며 인도 순례를 시작하였다. 브라흐마, 시바, 비슈누 등 여러 힌두 신을 경배하기 위해 해마다 히말라야로 몰려드는 순례자들의 목적지 케다르나트와 바드리나트를 순례하였고, 인도에 산재한 힌두교와 불교의 유적지를 두루 돌아보며 명상과 수행에 몰입하였다. 갠지스 강의 발원지인 강고트리와 히말라야 산맥 북쪽의 야무나트리 등을 오가며 수행을 계속했다. 40대 중반에 국제심상기공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지금은 밀양에서 초월명상 수련원인 ‘늘새의 집’ 원장으로 치유를 위한 명상과 기 수련을 지도하고 있다.

 

사라

 

1946년 경남 밀양 출생. 밀양에서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내고 이후 부산에서 ‘한국생활개선연구소’ 강사로 활동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며, 특히 야생화에 조예가 깊어 25년간 야생화를 그려왔다. 전통음식문화에도 관심이 많아 현재 밀양에서 차와 전통음식점 ‘행랑채’를 운영하고 있다.

 


행랑체의 時畵

필연

 

사라, 김노환 지음 | 신판 | 12,000원 | 978-89-98079-20-8 03810

 

이 책 [필연]은 밀양에서 수련원 [늘새의 집]을 운영하는 남편, 그 옆에서 [행랑채]라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아내, 50년을 함께 산 늙은 부부가 서로에게 주는 사랑의 시어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따스한 마음과 사랑의 감정이 묻어나는 60여 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필연 - 10점
김노환.사라 지음/해피북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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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풍경

화가 김춘자 산문집

 

 

 

화가 김춘자가 들려주는 생명, 자연 그리고 예술

 

<자라는 땅>, <生>, <Breathe> 등 생명과 자연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화가 김춘자의 첫 번째 산문집이 출간됐다. 김춘자 작가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부산 지역 화단에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확고히 구축하며 자유로운 붓질로 자연을 표현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식물과 동물 그리고 사람 등이 한데 어우러져 생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그 사람의 풍경』은 47편의 산문을 통해 이러한 작품 뒤에 숨겨진 작가의 일상과 사색을 담고 있다. 생명의 숭고함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일상의 찰나에서 움트는 삶의 의미를 포착하여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생각들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작가는 산문집의 표지그림에 대해 “거짓 없이 순응하며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자연의 심성에 닿아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린 싹, 바람, 새, 꽃 등을 온몸에 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설명하며 자연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사랑을 표현했다. 동시에 문명에 젖어 생의 민낯에서 멀어져가는 자신을 반성하기도 한다. 진실한 아름다움에 대한 어느 화가의 동경과 고뇌를 만날 수 있는 산문집 『그 사람의 풍경』, 화가 김춘자가 전하는 평범한 일상 속 특별한 삶의 의미를 만나보자.

 

 

시간이 추억이란 이름으로 감춰 놓은 것들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 왔던 길을 돌아오며 친구가 건네준 작은 가지 한 개를 받아 베어 물었다. 아직 심장은 두근거리는데 입 안에 풋가지의 엷은 단맛이 번졌다. 그것은 가지 맛이라기보다는 그 어린 날 여름 새벽, 내가 처음 맛본 낯선 여행의 맛이었다.

달콤하고 알싸한 생에 대한 호기심의 시작, 그 맛. _「가지서리」p.26

 

자신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펼치는 작가들을 보면 생각의 시발점이 궁금해진다. 오랫동안 생명에 관한 그림을 그려온 화가 김춘자. 그녀의 작품은 어디서부터 시작한 것일까?

작가는 이번 산문집을 통해 자신의 작품 세계를 만드는 일상의 영감들을 보여준다. 친구를 따라 가지 서리를 했던 유년시절의 추억에서부터 지하철, 집 앞 산책로 등 일상의 공간에서 느낀 생각들까지 삶의 곳곳에 배인 영감들을 기록했다. 특유의 시선으로 지난 시간들을 더듬으며 추억, 사람, 그리움, 삶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깊이 있게 풀어낸다. 특히 시를 읽는 듯한 화가의 문장들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듯 다가와 추억에 젖어들게 만든다.

 

 

“별을 잃고 야윈 우리들의 영혼은 밤마다 마른기침을 하며 뒤척인다”

순수에 대한 동경을 노래하다

 

도시는 춥다. 고층 빌딩 숲을 지나다 보면 빌딩에서 드리워진 그림자로 골목골목이 음지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몰아치는 바람은 또 왜 그리 차가운지, 저절로 온몸이 움츠려 든다. 화가 김춘자는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는 이름처럼 부산 곳곳에도 빌딩 숲이 세워졌고, 밤에는 별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이런 도시의 삶을 살아가는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전할까?

『그 사람의 풍경』은 수많은 욕망들이 날마다 새로운 하늘 집을 짓는 도시의 삶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또한 밤새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먹방(먹는 방송)을 보며 과식의 밤에 대해 논한다. 무조건 많이 먹고, 높이 짓는 도시의 과한 욕망을 들추며 우리가 진정으로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변질된 문명이 곪아 병든 사회의 뒷골목에 꽃들이 쓰러져 있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작가의 말은 지금 우리들이 쉬이 지나갈 수 없는 오늘날의 풍경이 아닐까?

 

 

작품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일

 

자신의 삶을 궁구하는 인간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 속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이 있을 것이고, 때론 이유 없는 불안과 고통의 늪을 만날 것이다. 매일 자신의 생각과 감정들을 마주해야 하는 예술가들에겐 더 큰 진폭의 희열과 불안이 있지 않을까? 화가 김춘자는 이번 산문집을 통해 예술가로서의 삶과 작품에 대한 생각, 계속해서 걸어가야 하는 자신의 길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특히 개인전을 끝내고 불쑥 찾아온 심한 상실감, 성공과 예술 사이에서의 갈등 등 작품 뒤에 가려진 작가의 고뇌를 솔직하게 담고 있어 인상적이다.

생명의 아름다움, 일상의 기억, 예술의 길 등 화가 김춘자의 삶의 풍경을 담은 산문집 『그 사람의 풍경』. 이 책을 통해 보통의 시간이 가지는 특별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

 

 

[저자 소개]

 

 

 

 

김춘자

1957년 부산 출생으로 신라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개인전 18회, ‘80년대의 형상미술전’, ‘페미니즘아트세계해학의 독자성’, ‘상상력과 기호’, ‘식물성의 자유’ 등 다수의 기획초대전과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고, 2009년 봉생문화상을 수상했다.

 * 작가 블로그 : blog.naver.com/artchoon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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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풍경

화가 김춘자 산문집

 

김춘자 지음 | 208쪽 신국판 | 14,800원 | 978-89-6545-407-6 03810

 

47편의 산문을 통해 작품 뒤에 숨겨진 작가의 일상과 사색을 담고 있다. 생명의 숭고함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일상의 찰나에서 움트는 삶의 의미를 포착하여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생각들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진실한 아름다움에 대한 어느 화가의 동경과 고뇌를 만날 수 있는 산문집 『그 사람의 풍경』, 화가 김춘자가 전하는 평범한 일상 속 특별한 삶의 의미를 만나보자.


 

 

 

그 사람의 풍경 - 10점
김춘자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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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당신에게 건네는 생명의 메시지

『生을 버티게 하는 문장들

박두규 산문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떤가요?"

박두규 시인이 전하는 자연과 사람,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삶에 대하여

 

  지리산 권역에서 활동하며 자기완성과 사회적 실천을 지향하는 시인 박두규가 산문집을 출간했다.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자연, 인간, 문명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한다. 문학을 시작한 이후 시집 외의 책을 출간한 적이 없었던 그가 산문집으로 독자들을 찾아온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이에 대해 박두규 시인은 “나의 문학이 우리 사회와 현대인의 내면에 아무런 부끄럼도 없이 자리한 탐욕을 끌어내리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살아내기 위한 마음으로 이 책을 펴낸다”라고 전한다.

 

  너무 이른 아침부터 너무 늦은 저녁까지, 오늘도 우리는 쉼 없이 하루를 견뎌내지만 그 시간들이 오롯이 나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삶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을 나답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 세상에 우두커니 서 있는 외로운 당신에게 전하는 자연의 메시지를 통해 나와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만나보자.

 

 

"산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

자연이 전하는 푸른 대답에 귀를 기울이며

 

 

  누가 묻지 않아도 언제나 푸른 대답을 보내주고 있는 지리산, 하지만 내가 자본으로부터 한 발자국 물러나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그 푸른 대답,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해가 바뀌고 또 바뀌어도 언제나 묻지 않아도 늘 그 대답을 보내오건만 우리는 언제나 그 대답을 듣고 화답할 수 있을 것인가.

_「지리산이라는 이름의 스승」(p. 59)

 

  시인은 지리산 자락에 살면서 과거 우리의 삶이 산과 함께였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즉, 산의 모든 길은 등산로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길이었던 것이다. 문명이 발달하기 이전의 삶을 반추하며 자연과 인간의 삶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지금은 ‘등산로 아님’이라는 팻말로 감춰져 더 이상 사람이 거닐 수 없는 길이 되어버렸지만, 예전의 사람들에게 그 길은 일상의 길이자 삶의 길이었다. 나무 하러 다니고, 장 보러 다니고, 능선 너머 이웃동네를 넘나들던 길. 자본이라는 달콤한 유혹 속에 묻혀 우리가 놓치고 잃어버린 것들은 비단 이 산길만이 아닐 것이다. 『生을 버티게 하는 문장들』을 통해 인간의 욕구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질서에서 한 걸음 물러나 산의 품성과 자연이 전해주는 순수한 땀의 의미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흔들리고, 외롭고, 가난한 우리의 시간들

 

‘야 임마, 너 고생 많이 했는데 배에서 내리면 땅이 움직일 거다. 하루만 더 고생해라.’라고 했는데 진짜로 땅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흔들리며 보내야 했던 그 시절, 그 하루도 어김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_「절망의 우물에서 건져낸 시」(p. 106)

 

  시간을 걷는다는 것은 그리 낭만적인 일은 아니다. 하루하루 버텨내야 하는 일상의 고단함이 발끝에 채이고, 시대의 아픔이 옷자락에 머문다. 그렇게 매일 흔들리고, 외롭고, 가난한 시간들을 보내야 어렴풋한 삶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그 고된 시간들을 걷다 보면 한 편의 시에 위로받기도 하고, 길가에 핀 꽃 한 송이에 웃기도 하며 하늘에서 내린 비로 메마른 마음을 적실 수도 있다. 그렇게 오늘도 지난 시간들을 통해 성장해나간다. 박두규 시인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이 걸어왔던 시간과 어린 날의 기억, 함께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어루만진다. 또한, 세월호 참사 2년을 맞으며 쓴 「슬픈 아름다움, 아름다운 슬픔」은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명 하나하나를 오롯이 품을 수 있는 사람이 왜 중요한지를 전한다.

 

 

"내 안의 신성, 오직 그대뿐"

세상을 살아내는 첫 번째 일

 

  요즘 사람들은 “피곤해”, “힘들어 죽겠어”, “바빠”라는 말을 많이 한다. 푸념으로 넘기기엔 너무 무거운 이 말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필요 이상으로 바빠지고 복잡해진 생존의 구조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나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生을 버티게 하는 문장들』에서는 세상을 살아내는 첫 번째 일을 나의 존재와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이 세상이 무엇인지 가늠하는 일이라 말한다. 자연의 모든 생명들은 구체적 생활세계 속에서 자기 존재와 세상을 일치시켜내는 것이 세상을 살아내는 일이었다. 어떤 시대와 문명이 도래한다 해도 사람과 삶의 본질은 자연이다. 이 책은 자연과 사람의 삶의 조화를 이야기하는 산문과 더불어 남미 여행에서 얻은 명상의 이로움, 인도의 부단 운동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안과 밖의 조화를 이루는 삶과 사회변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잘 사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하지만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 스스로 해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너무 바쁜 우리들, 너무 빠른 사회. 지금 우리를 둘러싼 강제적이고 인위적인 질서들에서 한 걸음 물러서 이 생(生)을 가장 나답게, 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만나보자.

 

 

해가 뜨지 않은 아침, 거리를 나서서

어둠을 안고 집으로 들어가는 당신에게

이 책을 전한다.

 

 

[ 책속으로 / 밑줄긋기 ]

 

p.37~38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생명을 발현하는 즐거움과 기쁨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새들의 스스로 이상향을 향한 자유로운 날갯짓은 늙음과 무관하며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으로 말하면 그렇게 살 수 있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p.46 ‘자연스럽다’는 말의 뿌리는 ‘자연(自然)’이니 사실은 ‘자연’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산과 바다의 일상이나 비가 오고 꽃이 피는 일 등이 자연이고 자연의 현상인데 그것들에 무슨 거짓이 있을 것인가. 그래서 성현들은 자연은 진리요 도(道)이고 법(法)이며 생명 그 자체라고 말해왔다. 그러니 인간사 모든 문제의 답도 자연에 있다는 말은 틀림이 없는 말일 것이다.

 

p.58 언제나 말이 없으나 묻지 않아도 늘 푸른 대답을 스스로 보내오는 지리산, 우리의 슬픔과 좌절과 절망, 그 모든 것을 품어내고 삭여내어 새 살을 만들어내는 지리산, 이처럼 산의 아름다운 품성은 높은 해발의 고도가 아니라 숲이 거느리는 생명의 밀도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이처럼 산을 오르내리며 산을 만난다는 것은 우리들 내면의 소리, 영혼의 소리를 듣는 것이며 내 안의 하나님(신성)에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66 산은 늘 그곳에 말없이 혼자 있지만 언제나 외로운 건 우리다. 그리고 그때마다 산은 늘 푸른 대답을 먼저 보내온다. 다만 우리가 그 오랜 침묵의 답변을 읽어내지 못할 뿐이다. 그것은 우리가 산처럼 단 하루도 스스로 침묵해보지 못했고 단 한 번도 산의 외로움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 지금은 익숙한 길이 되었지만 산은 늘 새롭다. 모든 생명을 품은 산은 그 생명들이 뿜어내는 생명력으로 인해 사계의 하루하루가 모두 새롭고 신선하기 때문이다.

 

p.121~122 봄이 오는 일과 꽃이 피는 일이 다르지 않고 비가 오는 일과 우물의 물을 길어 올리는 일이 다르지 않듯, 일상의 삶도 세상의 모든 현상과 사람들과 사물들의 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조화와 상생의 질서인 자연 질서의 부분일 것이다. 이는 순환의 질서요, 원의 질서이며 지속가능한 질서이고 나눔의 질서이다. 그리고 그것은 되찾아야 할 21세기의 우리 현실이다.

 

p.204 세상을 살아내는 일의 첫 번째가 나의 존재와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이 세상이 무엇인지를 가늠하는 일일 것이다. 저 느티나무의 작은 박새 한 마리도 알에서 깨어나 날개를 퍼덕이며 제가 날짐승인지 들짐승인지부터 가늠했을 것이고, 바람이 불면 어디로 날아야 한다는 것을 눈치 채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게 모든 자연의 생명은 구체적 생활세계 속에서 자기 존재와 세상을 일치시켜내는 것이 세상을 살아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 저자 소개 ]

 

 

글쓴이 : 박두규

시인. 1985년 『남민시(南民詩)』 창립동인으로 문단에 나왔으며 1992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사과꽃 편지』, 『당몰샘』, 『숲에 들다』, 『두텁나루 숲, 그대』 등이 있다. 1989년 전교조 창건과 함께 20여 년간 전교조 조직 활동가로 복무하면서 지역에서 여순사건순천시민연대, 순천교육공동체시민회의 등을 만들어 여순사건의 진상규명과 고교평준화 등의 일을 주도했고 한국작가회의 이사, 광주전남작가회의 부회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2014년을 끝으로 전남자연과학고에서 명예퇴직하고 현재는 자기완성과 사회적 실천을 지향하는 ‘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장, 대안문화를 고민하며 지리산 권역을 아우르는 문화신문 <지리산 人>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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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을 버티게 하는 문장들 - 10점
박두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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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유머


 

 

 

 

 

 

  

"이제 하룻밤만 자면 그가 온다는 사실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녀의 무미건조한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든 설렘과 기다림

마흔셋, 뜨거운 사랑이 찾아온다

 

30여 년 동안 시, 소설 등 다양한 문학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박정선 작가의 장편소설 가을의 유머가 출간됐다. 이번에 선보이는 소설은 사회적 금지영역에 속해 있는 기혼 남녀의 연애와 사랑을 다루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동경과 이상을 은유한 욕망을 말하려고 했다고 전한다. 주인공 승연()이 남편과는 전혀 다른 남자 석환과 만나게 되면서 잊고 지냈던 설렘, 떨림 등의 감정을 회복하고, 내면 깊숙이 숨겨두었던 욕망들을 하나씩 꺼내게 된다. 작가는 승연()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녀가 마주하는 내면의 욕망과 인간 본연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사회가 만든 규범과 질서의 근엄한 모습 안에 숨겨진 인간의 솔직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팍팍한 삶에 묻혀 지워진 줄 알았던 '여자'라는 이름

그리고 그 이름을 꺼내준 한 남자

 

떨림은 정말 그런 것이었다. 떨림은 지금까지 고장 나고 비뚤어진 나의 뼈를 다시 맞추게 만들었다. 석환 씨를 알고부터 몸이든 정신이든 속속 드러나는 내 단점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었다. 맨 먼저 식사습관과 빠른 걸음걸이와 빠른 말씨부터 고쳐 나갔다. 꽃장사를 하면서 격식을 생각할 겨를 없이 무조건 빠르게 먹던 습관 때문에 그와 식사를 할 때면 그가 절반도 채 먹기 전에 나는 식사를 마치고 기다렸다. 걸을 때도 그보다 늘 앞서가려고 해 주춤거려야 했고 말이 빨라 본의 아니게 말을 많이 하게 되어 늘 후회를 해야 했다. _ p.72~73

 

작가 박정선은 이번 소설에서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나이, 직업, 결혼의 유무 등 여러 사회적 굴레를 벗어던지고 인간 내면에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보여주는 데 몰두한다. 사람들은 시간을 건너오며 사회로부터 많은 이름을 부여받게 된다. 누군가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 어느 집안의 며느리 등. 그 수많은 이름에 익숙해질 중년의 나이가 되면 문득 진짜 나의 이름이 궁금해지지 않을까?

 

소설 가을의 유머의 주인공 승연()은 남편과 함께 힘든 삶의 시간을 견뎌내느라 진짜 나의 모습들을 잊고 살아온 보통의 중년 여성이다. 그 인고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남편의 꽃장사도 자리를 잡았고, 그녀 역시도 꽃꽂이 예술가로서 사회적 인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승연은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놓쳐버린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평온하고 잔잔한 지금의 삶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던 어느 날, 일본 출장길에 우연히 석환이란 남자를 알게 된다. 승연은 이제 다시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떨림이 온몸에 퍼진다. 그리고 치워뒀던 거울 앞에서 선다.

 

이 소설은 남녀 간의 관계와 사랑 이면에 자리한 욕망의 본질에 집중한다. 보통의 중년 여성에게 찾아온 사랑은 자신의 모습을 찾게 했다. 그리고 그동안 감춰뒀던 욕망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는 가을의 유머가 불륜을 다룬 여느 드라마, 영화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저자는 모든 게 욕망이다라고 전하며 지구가 존재하는 한 인간은 욕망이 낳은 이상과 동경을 찾아 헤맬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규범 속에서 감추며 살아야 하지만,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욕망. 그 아이러니 속에 소설가을의 유머가 자리하고 있다.

 

 

 

중년 여성들의 사랑과 성에 대한 솔직하고 과감한 이야기

 

생각해 보면 김 선생 네 말, 구구절절 일리가 있어. 섹스만 해도 그래. 쾌감 없는 섹스는 뭐랄까. 소득도 없이 중노동만 실컷 하고 난, 뭐 그런 기분이거든.”

쾌감을 섹스에서만 찾는 건 아니지만 프로이트에 의하면 사람의 원초적 충동은 에로슨데 에로스는 다름 아닌 삶의 충동이고 사랑과 섹스는 이런 충동의 대표적인 표현이라는 거야. 사실 가정이란 그렇잖아. 결혼해서 한 3? 아니 1, 2년만 지나도 아내나 남편은 어느새 부모로 변해 버리고 서로 성적 로맨스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함께 가정을 꾸려 가는 동역자로 전환되어 버리는 거지. 그래서 신비감을 추구하는 성적 호기심 때문에 성적 로맨스를 텐트 밖에서 구하게 되는 거구.” _ p.77

 

헬스장에서 만난 중년의 세 여자, 승연(), 전업주부여자, 가정선생여자. 이들은 주로 몸과 에로티즘에 대한 수다를 나눈다. 통통한 몸매에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전업주부여자는 자신의 남편을 최고라 이야기하며 그를 위해 몸매를 만들고자 한다. 반면 가정선생여자는 깡마른 몸에 깐깐한 성격의 소유자다. 모르는 것이 없는 그녀는 승연()과 전업주부여자에게 라스코동굴벽화의 의미부터 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전해주곤 한다. 이들의 대화는 일상적이고 가볍지만 결코 쉬이 넘어갈 수 없다. 작가는 이 대화와 승연()이 사랑을 하며 변해 가는 모습을 중첩시킨다. 예컨대 몸매에 관한 수다와 처진 가슴, 아랫배의 튼 자국에 고민하는 승연의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중년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봄 직한 고민과 이야기를 통해 공감과 더불어 주인공 승연()을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다.

 

 

 

 

우리 모두 새롭고 청아한 떨림을 찾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양과 나는 물을 찾아 내려가는 차나무 뿌리를 따라 흙을 파 내려가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흙을 지난 다음 모래층을 지났다. 얽히고설킨 수많은 뿌리들도 지났다. 차나무 뿌리는 줄기차게 계속 자기가 원하는 물을 찾아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도 계속 뿌리를 따라 내려갔다. 자갈층을 지나고 돌 무리를 지나 제법 큰 돌이 나왔다. 뿌리는 거기서부터 몸을 다듬기 시작했다. 뿌리는 표백을 해 놓은 것처럼 희고 고왔다. 내가 거울 앞에서 석환 씨를 만나기 위해 연습했던 것처럼 뿌리도 물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점점 희고 가늘어진 뿌리가 돌 틈을 뚫고 물을 향해 내려가 있었다. 드디어 물에 다다른 것이었다.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대고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소리가 들렸다. _ p.77

 

가을의 유머마지막 대목에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승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결말에 다다르자 그녀는 다시 본연의 일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는 자신 안에 있는 내재된 욕망을 억누르며 예전처럼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작가는 차나무 뿌리가 최상의 물을 찾아 땅속 깊숙이 뿌리내리는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하는데, 이 은유를 통해 인간의 욕망 역시 끊임없이 이어질 것을 예고한다.

 

소설은 삶을 그리고, 그 속에는 사람이 있다. 삶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사람의 내재된 욕망 역시 그 무엇으로도 누를 수 없다. 가을의 유머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소설은 끝났지만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음을, 승연()의 내면적 갈등과 욕망을 계속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러하듯이.

 

 

 

 

책속에서 & 밑줄긋기

 

시간을 죽여야 했다. 하필이면 제아무리 완고한 사람도 물렁해지고 만다는 가을에 석환 씨를 기다린다는 건 공기도 빛도 없이 숨 막히는 수심이었다. _P.10

 

돌이켜 보면 내가 거울을 보면서 행복해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거울은 나에게 무서운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거울을 마주 보는 이 위대한 버릇이야말로 석환 씨로부터 생긴 것이다. _P.28~29

 

통증 대신 오히려 라일락 향기가 꽃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내 몸과 영혼 어딘가에 단단히 얼어붙은 것이 비로소 용해되는 신묘한 카타르시스,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버린 듯한 순간이었다. _P.134~135

 

그런데 운명이란 것과 그런 기회가 찾아와 준다면 인간으로서 행복한 일이라고 했던 말이 지금 나에게 내일까지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듯하다. _P.158

 

인간은 이상과 현실 사이, 그 비좁은 행간에서 몸부림치는 존재라는 것, 현실은 곧 정형이란 틀이며 인간은 끊임없이 그 현실을 탈출하려고 몸부림치지만 현실은 늘 자기의 틀 안에 붙잡아 놓기를 고집하는 것이라고 했다._P.208

 

차나무 뿌리가 물을 빨아 올리는 소리를 들으며 동굴벽화를 떠올렸다. 인간이 신성과 동물의 중간인 이상, 동물적인 본성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나였다._P.224

 

글쓴이 : 박정선

 

소설가, 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졸업, 문학석사.

1986<문학정신> 신인상(시조)으로 문단에 나와 시조와 시를 쓰고 있으며 성파시조문학상을 받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로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심훈문학상, 영남일보문학상, 해양문학 대상(서울), 한국해양문학 대상(부산), 아라홍련 대상, 천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장편 소설 백 년 동안의 침묵(2012년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선정), 수남이(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창작지원 선정), 동해아리랑(한국해양문학 대상 당선), 소설집 청춘예찬 시대는 끝났다(2015년 우수출판콘텐츠 도서 선정), 내일 또 봐요, 와인파티, 변명, 표류등을 출간했다. 시집으로는 바람 부는 날엔 그냥 집으로 갈 수 없다, 뿌리(부산역사)가 있으며 <월간 시민시대>2년 동안 연재한 장편서사시 독도는 말한다8권을 출간했다. 에세이집 고독은 열정을 창출한다, 평론집 사유와 미학, 역사서 다수가 있으며 명진초등학교(부산) 교가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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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세 살 기혼 여성들의 연애와 욕망을 해부하다

가을의 유머

 

박정선 지음 | 240국판  | 13,000원 | 978-89-6545-391-8 03810

 

30여 년 동안 시, 소설 등 다양한 문학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박정선 작가의 장편소설『가을의 유머』. 주인공 승연(나)은 남편과 함께 힘든 삶의 시간을 견뎌내느라 진짜 나의 모습들을 잊고 살아온 보통의 중년 여성이다. 중년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봄 직한 고민과 이야기를 통해 공감과 더불어 주인공 승연(나)을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다.

 

 

 

 

 

가을의 유머 - 10점
박정선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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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없는 미홍의 밝음

 


 

                                       

 

                                  

투덜대며 문제를 끌어안고 사는 주인공들

불안전한 세계에 사는 여성들

현실의 우리와 닮았다


2005년 「바리의 세월」로 신라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등단한 안지숙 소설가의 첫 번째 소설집으로, 작가가 십여 년 동안 틈틈이 쓴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기보다 문제를 끌어안고 미련스럽게 견딘다. 화려한 인생을 꿈꾸기보다 투덜거리며 현실에 순응하는 모습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비정규직이나 계약직, 외주업체에서 일하는 여성, 가정이나 사회에서 상처 입은 여성의 이야기로, 작가는 불안전한 세계에 사는 여성의 이야기로 현실의 리얼리티를 고스란히 책에 담았다.


실제로 소설에 나온 직장 생활 이야기는 안지숙 작가의 경험에서 나왔다. 작가는 스토리텔링 업체나 외주 업체에서 ‘을’의 입장에서 일한 경험, 수개월째 월급이 밀렸지만 결국 받지 못했던 경험을 살려 소설에 녹여냈다.


작가의 실감 나는 이야기는 소설보다 현실이 더 끔찍하지 않느냐고 넌지시 묻는다. 당연했고 만연했기에 지나쳤던 일상의 고통과 상처를 소설에서 가감 없이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각성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주인공들이 내쉬는 가쁜 호흡에는 가정사까지 배여 있지만 차라리 지금 어려운 현실에 서 있는 모습들이 펄펄 살아 있는 이야기를 만든다. 인물들은 불안정하고 비인간적인 현재 직장을 떠나 길 찾기 앱이 깔린 휴대폰을 들고 새 길을 찾고 있지만, 적당히 타협하거나 반발하기보다는 차라리 더 철저하게 굴종하고 패배하는 인간상을 보여주는 것도 안지숙의 길 찾기로 보인다. 작가는 그만큼 지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가득하다는 걸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_조갑상 소설가

 


 

▶ ‘비정규직’으로, ‘을’로 살아가는 약자들

우리 사회의 모순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놀래미」, 「내게 없는 미홍의 밝음」, 「각다귀들」은 직장생활을 이야기의 주 무대로 삼았다. 「놀래미」에서 여경은 스토리텔링을 해주는 문화마케팅 회사에서 일한다. 회사의 본부장과 대표는 부부로, 둘의 마음에 드는 직원을 승진시키고 중요한 일을 준다. 소문이 무성한 상태에서 직원들은 하나둘 나가고 여경은 본부장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던 탓인지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 그런데 여경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회사의 창업정신과 스토리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지어낸 가짜라는 걸 알게 된다.

 

「각다귀들」는 청와대 수석비서관급 K에만 의지해서 사업을 따내려는 최 국장을 재치 있게 다뤘다. 최 국장은 영숙에게 몇 달째 월급을 주지 않고 있다. K의 동향을 파악한 후 정책만 따내면 한 방에 빚과 월급을 해결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 영숙은 밀린 급여와 상여금을 받기 위해 최 국장이 시키는 일을 하지만 결국 최 국장은 믿었던 K에게 사업을 따내지 못한다.

작가는 두 작품이 자신의 경험담이라고 말하며 회사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우리 사회의 불합리와 모순을 함축적으로 다뤘다.


▶ 현실은 비참하고 씁쓸하지만 길 찾기에 나서보자


「내게 없는 미홍의 밝음」은 소설집에서 가장 희망적이다. 소영은 관청에서 외주를 받는 사설 문화재단에서 재래시장 상인들의 인생을 스토리텔링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외주를 맡은 프로젝트는 다시 극단에게 외주를 준다. 소영은 비정규직으로 불안정한 자신의 위치와 재단과 극단 사이에 중간자 역할을 하는 게 괴롭다. 다행히 외주를 맡은 극단이 밝음이 대학 때 함께 연극부였던 미홍이 이끄는 극단이다. 가진 건 없지만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미홍이 소영은 부럽다. 고민 끝에 소영은 과감하게 일을 그만두고 미홍에게 극단 일을 해보고 싶다고 전화를 건다. 작가는 미홍과 소영의 인생 모두 녹록치 않지만 이 작품으로 자신의 인생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권한다.

 

 

 

▶ 삶을 선택하지 못하고 가정과 사회에서 희생당한 여성들

 

「청게」는 작가의 독특한 개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부모의 이혼과 사망으로 주인공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삼촌 집에 얹혀살게 된다. 그곳에서 동갑내기 사촌 지니와 가깝게 지내게 된다. 성인이 된 후 ‘나’는 어렵게 모은 전세금으로 지니와 독립을 꿈꾸지만 예전에 다정한 지니는 온데간데없고 전세금을 노리며 ‘나’의 존재를 귀찮게 여긴다. 상처받은 ‘나’는 조금씩 몸이 변하기 시작하는데 청게잡이를 하러 갔다 목숨을 잃은 아버지처럼, 자신의 몸도 청게처럼 변하는 걸 느끼게 된다.


「스토커의 문법」은 1인칭 독백으로 한 남자에 대한 집요한 집착을 다뤘다. 장애를 가지고 있던 ‘나’는 장애인인권센터 간사로 일하고 있었다. 우연히 재능기부로 강사를 맡은 시인에게 관심을 가지는데, 이후 ‘나’는 시인이 일하는 신문사에 계약직 교열기자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그와 가까이 지내면서 산책도 하고 술도 마시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그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지만 그날 이후부터 시인은 해명도 없이 여자를 피해 다닌다. 장애가 있던 여자의 몸은 점점 더 망가져 간다.


「티눈」은 입양한 아들 때문에 소외당한 딸의 이야기를 다뤘다.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칠촌조카를 집안의 대를 잇게 하겠다며 아들로 입양한다. 주인공은 부모를 원망하며 결국 가출을 한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늙고 병들자 부모는 딸에게 화해의 손짓을 보낸다. 「바리의 세월」은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의 삶을 그렸다. 외숙모의 집에서 부엌데기로 산 바리는 구박을 받으며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 그러다 무장승에게 시집을 가게 되고 행복한 시절을 보내는 듯했으나 무장승이 세상을 떠나고 딸 넷을 키우며 다시 어렵게 살아간다. 자식 뒷바라지로 힘겹게 살았지만 시집간 딸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바리를 찾아오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지 못하고 희생당한 여자의 기구한 인생을 다뤘다.

 

【작가의 말】

하나같이 알량하게 살아온 여자의 자학개그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일밖에. 핑계라면, 소설은 결국 상처 헤집기라는 것. 상처가 속으로 곪아들기 전에 헤집어서 통증을 느끼게 하는 것. 통증을 견디고 치유하는 방법을 상상의 지평에서 모색하는 것. 이것이, 혹은 이것도 소설 아닌가.

 

 

【책 속으로&밑줄긋기】


P.18: 헤엄이 서투른 물고기일수록 바다 깊은 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지낸다고 했다. 공격당하면 도망치기 힘드니까 산호초 같은 데 숨는 게 그들의 생존법이었다. 산호초 속에서 가만히 엎드려 있다가 낚시꾼들이 던진 미끼를 가늠하는 놀래미처럼 사는 것이 여경은 부끄럽지 않았다.


P.57~58: 공연이 있을 때마다 선후배와 동기들을 찾아다니며 표를 강매했고, 밥값과 사무실 운영비를 뜯었다고 했다. 덕분에 빈대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미홍이, 나는 부러웠다. 빈대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붙잡고 갈 만한 뭔가가 있다면 막막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게는 미홍의 밝음 같은 게 없었다.


P.92: 사장의 사업패턴은 딱 한 가지. 각다귀처럼 K 주변을 돌면서 그의 행보에 주파수를 맞추고, 그의 권력에 빌붙는 방식으로 일을 도모하는 거였다.


글쓴이 : 안지숙

1961년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을 졸업했다. 2005년 단편 「바리의 세월」로 신라문학상을 받았다. 『인생은 생방송』 『왕이 만든 도시』 『희망을 꿈꾸는 민들레』 등 몇 권의 스토리텔링 책자를 대표 집필했다. 야근과 출장으로 얼룩진 시절을 살다가 요즘은 소설쓰기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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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세계에 살고있는 여성들

내게 없는 미홍의 밝음

 

안지숙 지음 | 246국판 변형 | 13,000원 | 978-89-6545-384-0 03810

 

2005년 「바리의 세월」로 신라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등단한 안지숙 소설가의 첫 번째 소설집으로, 작가가 십여 년 동안 틈틈이 쓴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기보다 문제를 끌어안고 미련스럽게 견딘다. 화려한 인생을 꿈꾸기보다 투덜거리며 현실에 순응하는 모습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비정규직이나 계약직, 외주업체에서 일하는 여성, 가정이나 사회에서 상처 입은 여성의 이야기로, 작가는 불안전한 세계에 사는 여성의 이야기로 현실의 리얼리티를 고스란히 책에 담았다.


 

내게 없는 미홍의 밝음 - 10점
안지숙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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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자와 자신을 읽는 글쓰기로 문학 세계를 탐구

독점의 하나가 아닌 평등한 이들의 이름, 무한한 하나

 

2007년 『작가세계』 평론 부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김대성 평론가의 첫 번째 평론집. 평론집은 노동, 지역, 공동체, 공생 등 타자와 자신을 읽는 글쓰기로 문학의 세계를 탐구한다. 김대성 평론가는 글쓰기를 ‘한 사람’을 무한하게 만나기 위한 시도로서 모든 ‘하나’가 공평하게 나눠 가지는 속성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는 지배와 독점을 근간으로 ‘군림하는 하나’가 아닌 미미하지만 평등한 이들의 이름, ‘무한한 하나’를 뜻한다.

 

이 책에 묶인 다양한 평문은 글 쓴 평론가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문학과 글쓰기, 평론과 삶이 어떻게 하면 공존할까 하는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백무산 시를 분석하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용접공으로서 고단하게 살아온 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정태규 소설가의 서평 글에서는 지난날 처음 만난 정태규 소설가에게 부탁받은 소설집 발제문을 가혹할 정도로 비판했던 치기 어린 자신을 반성한다. 이처럼 김대성 평론가는 자신과 비평의 삶을 분리하지 않고 “수행의 발판을 삼으며 공동적인 것을 향한 실천의 의지를”(구모룡 문학평론가) 놓지 않고 있다.

 

그의 비평은 타자와 자기를 포개고 섞으면서 살아있는 문장을 생성하려는 아슬한 모험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무한으로 나아가는 존재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이반과 탈주, 소외와 공생, 고통과 죽음을 말하고자 한다. (…)그의 글에는 타자와 세계를 읽는 비평가의 비애가 묻어난다. 그리고 다른 곳을 사유하는 비평가적 신체가 문장의 배면으로부터 은근하게 드러난다._구모룡(문학평론가)

 



 

        

 

 

▶ 주변부과 공동체에 대한 고민

 

1부는 주변부를 탐색한 글로 묶었다. 백무산, 박완서, 김중혁 등의 글로 연약한 존재들이 자신의 힘으로 깊이와 무게를 더해가는 고투의 이력을 탐색했다. 2부는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담은 글로 묶었다. 공동체에 대한 사유를 멈추어선 안 된다고 말하며 문학을 통해 공동체 안과 밖을 탐구한다. 처음 청탁받아 쓴 「고통의 공동체」와 몇 년 후에 쓴 「불가능한 공동체」로 공동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읽어내는 것도 흥미롭다. 3부는 정익진, 김이듬, 송재학 시인 등의 시적 세계를 탐문하며 시인과 시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읽을 수 있다.


 

▶ 비평한다는 것과 지역적인 것

 

4부에 수록된 글은 지역적인 것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다. 요산 김정한, 조명숙, 정영선 등 부산 지역 작가의 작품을 주목하면서, 지역이란 개념과 ‘지역 작가’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 탐구했다. 지역을 단일화로 환원하지 말고 특색을 지닌 개별적인 곳으로 바라보길 당부한다. 5부는 서평 형식의 글로 진은영, 정태규, 정형남, 김영민 등의 문학 세계를 분석했다.

 

‘지방’이 아닌 ‘지역’이라고 명명한다고 해서 중앙과 주변의 이분법적 도식이 손쉽게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이라는 프레임 안에 자리하고 있는 ‘지역 작가’라는 명명 속에도 이미 ‘위계화’에 의한 차별과 소외라는 핸디캡을 안고 작업을 하는 ‘핍박받고 있는 존재’라는 의미가 각인되어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힘들다._「부산스러운, 하나가 아닌 여럿인」 277쪽

 

 

▶ 비평가로서 글쓰기

 

이 책에서는 김대성 평론가가 비평가로서 가지는 글쓰기에 대한 사유와 고뇌를 느낄 수 있다. 사람들에게 글쓰기는 촘촘한 연결망에서 외부와 소통하기 위한 통로이기도 하고, 일상적 글쓰기가 확대되면서 더 이상 쓰기가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게 되었다. 이런 시대에, 비평가로서 글쓰기가 어떤 의미인지, 생산성과 실천성을 보일 수 있는지 되물으며 글쓰기에 대한 나름의 이유를 발견한다

 

첫 평론집은 독자에게도 평론가에게도 드물고 귀한 기록이다. 날이 잔뜩 선 첫 평론집의 세계는 안주하지 않는, 아니 안주할 영토를 찾지 않는 비판의 공간이 가장 무한하게 펼쳐진 자리이다. 그 무한한 자리가 전율과 공포로 아로새겨져 있는 것은 필연이다. 영원히 침묵하는 무한한 공간 앞에서, 전율과 공포 속에서도, 헛되이 사라질 말의 조각을 던지는 일, 그것이야말로 ‘쓰기’의 존재 이유이다. 『무한한 하나: 몫 없는 이들의 문서고』는 그런 ‘쓰기’의 존재 이유를 묻는 책이다._권명아(비평가)



【책 속으로&밑줄긋기】


P.8: 비평은 자유롭게 숨 쉬고 마음껏 달릴 수 있는 필드(field)였다. 그저 부지런히 달리는 것으로 텅 빈 운동장을 경기장으로 바꿀 순 없었지만 무언가를 읽고 쓰는 일을 지속하는 것은, 다시 말해 내 힘으로 트랙을 달리는 일은 무엇보다 소중했다.


P.15: 내 아버지는 용접공이었다. 결혼을 한 이듬해 고향이었던 강원도 삼척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다 어깨너머로 배운 용접 작업으로 한 시절을 보냈다. 당연히 용접 자격증 따위는 없었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로 팀을 꾸려 언제, 어디라도 불러만 주면 달려갔다. 야무지고 기술이 좋다는 입소문 덕에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새벽에도, 휴일에도,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일거리가 생기면 달려 나가 용접을 했다. 식사 시간을 뚝 떼어내고, 잠자리를 뚝 떼어내서 철골들을 이어 붙이고 무수한 구멍과 빈틈들을 때웠다.


P.34: 문학은 현실의 불가능성에 의문을 던지는 행위이기에 그곳은 ‘말을 둘러싼 투쟁’의 현장일 수밖에 없다. 금지되어 있는 ‘말’을 전유하려는 의지와 ‘몫 없는 이’들의 ‘몫의 재분배’ 혹은 ‘자리바꿈’을 향한 쟁투는 동궤를 이루는 것이리라.



글쓴이 : 김대성

1980년 부산 출생. 2007년 『작가세계』 평론 부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2009년∼2013년까지 연구모임 <aff-com>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현재 생활예술모임 <곳간>의 공동대표이자 『문화/과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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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없는 이들의 문서고

 

무한한 하나

 

 

김대성 지음 | 380쪽 신국판 | 25,000원 | 978-89-6545-384-0 03810


2007년 『작가세계』 평론 부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김대성 평론가의 첫 번째 평론집. 

평론집은 노동, 지역, 공동체, 공생 등 타자와 자신을 읽는 글쓰기로 문학의 세계를 탐구한다.




 

 


 

 

무한한 하나 - 10점
김대성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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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길을 물어서 간다 

 

 

 

▶ 50여 년 동안 철학을 연구해온 박선목 박사,

그의 팔십 평생에 녹아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을 짚어보다.

 

수필집 『저승길을 물어서 간다』는 철학박사 박선목 부산대학교 명예교수가 팔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마주한 삶의 모습과 죽음에 대한 생각, 그리고 삶과 사회를 지탱하는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1980년부터 2000년까지 20여 년간 대학 강단에서 칸트, 윤리학, 가치론 등을 강의했고 정년 이후 글을 쓰고, 여행을 다니며 정리한 자신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유년시절의 기억부터 평생을 연구해온 철학과 삶에 대한 고뇌, 저자를 계몽으로 이끈 철학자, 여행 속에 만난 세계 각국의 문화와 자연 등 박선목 박사의 팔십 평생을 채운 이야기와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한국 현대사를 겪어온 저자의 삶을 통해 후회 없는 삶, 부끄럽지 않은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노년, 인생의 끝자락과 가까워지는 그 시간 앞에서 저자는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누군가를 위한 생활이 아니라 나 자신을 되찾는 반성의 생활이었기에 언제나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 “삶의 시간은 책장 넘기는 소리” 박선목 박사의 삶을 채운 책과 철학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유한한 삶에서 오롯이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의 삶’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생명만을 연명한 채 흐르는 시간 위에 서 있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사람은 정신과 육체를 가진 이중적 존재”라 이야기하며, 특히 정신은 사고활동의 총체로서 인지, 정서, 의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즉,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적, 정서적, 도덕적 학습과 활동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번 수필집을 통해 지적 행위의 중요성과 여러 철학자의 학문적 성과들을 고스란히 전한다.

 

 

희랍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덕은 앎이라 했다. 아주 단조로운 정의이다. 거창하고 지키기 힘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지함을 아는 것이 덕이라 했다. 왜 하필 자신에 대한 앎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자신에 대한 앎이 앎의 제1원리이기 때문이다. 만일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면 다른 모든 앎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지 여부를 아는 것, 다른사람에 대해 아는 것, 그리고 자연에 대해 지식을 얻어가는 것이 덕을 늘려가는 것이다. _ P.109

 

저자는 스스로를 ‘책의 주인’이라고 이야기한다. 누구보다 책을 사랑하기에 책은 저절로 벗이 되었고 평생을 함께 살아왔다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무수히 많은 질문 앞에서 저자는 늘 책을 펼쳐 들었다고 술회한다. 책은 생각을 성장시키고 자신만의 삶을 성숙시킨다.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과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는 것. 이 두 가지의 삶은 언뜻 서로 비슷한 듯하지만, 서로 다른 인생의 방향을 가리킨다. 저자는 책에 대해 “참으로 자비로운 존재”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사랑하고 삶의 길을 개척해가는 데 책의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보여준다.

  

 

 

▶ 앞산을 넘다 세계 일주를! 국내외 살아 있는 자연과 문화를 만나다

 

저자 박선목 박사에게 자연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서문을 통해 “삶의 공간은 책과 대화하는 서재와 나의 생명의 기를 살려주는 자연이었다.”고 전하며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 요소 중 하나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정년 이후, 17년이라는 시간 동안 시간과 공간의 제한 없이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고 전하며 그 시간 동안 자신을 되찾는 반성의 생활을 하며 건강의 재보를 자연으로 돌린다.

 

 

1960년도 시작부터 학창시절과 일상생활에서 쉽게 할 수 있었던 취미생활은 등산이었고 등산을 하고 자연을 찾는 즐거움이 대학 연구생활과 연결되었다. 철학연구를 발표하는 봄, 가을에 전국 대학 철학과에서 세미나가 개최되었으며 그곳의 아름다운 산천과 절간에서 인자와 지자의 담론이 밤새 이루어졌다. (…) 나의 연구 활동은 해외 발표로 연결되었고 세계인들의 생활터전과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을 체험하면서 더 높은 곳, 더 넓은 곳, 더 먼 곳의 세계 여행을 꿈꾸지 않을 수 없었다. _P.198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바쁜 연구 활동 중에도 틈틈이 등산을 즐겼다고 밝힌다. 그 결과 1000m가 넘는 전국의 모든 산을 올랐고, 해외 원정 등산도 여러 번 할 수 있었다. 그가 산과 자연을 가까이하며 걸어온 시간들은 자연스레 여행에 대한 꿈을 키우게 했다. 제4부에 수록된 글의 제목(「앞산을 넘다가 세계여행으로」)처럼 취미와 연구 생활에서부터 시작된 여행을 통해 저자는 각국의 자연, 문화를 경험하며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의 견문을 넓혔다. 50여 년 동안 다녔던 국내외 여행, 이를 통해 저자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졌는지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 "남은 인생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노인답게 살아갈 뿐이다"

 

삶과 죽음은 모순된 개념이지만 한편으로는 삶 자체가 죽음에 의한 존재이고, 죽음 역시 삶 속에 들어 있다. 하이데거의 주장처럼 사람은 죽음으로 가는 존재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직접 경험할 수 없기에 타인의 죽음을 통해 삶의 유한함을 깨닫고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생의 활력이 가라앉고 삶의 끝과 가까워지는 노년의 시간. 저자는 자신에게 다가온 그 시간 앞에 서서 담담하게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견해를 밝힌다.

 

죽는다는 것은 단순히 생명의 끊어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개인적 욕망을 성취시키는 것, 자신이 희망하는 행복을 얻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하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죽는다는 것 속에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죽는다는 전제에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즉 죽음에의 삶이며 삶의 방법, 목적 자체가 죽는다는 의미의 자기 모습이다. _p.242

 

이 책은 어느 학자의 개인적인 삶의 기록이자, 삶이라는 물음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며, 죽음의 길에 대한 질문이다. 박선목 박사는 삶에 대한 물음이 곧 저승길을 묻는 것이라 말하며 창조적 존재, 도덕적 의식의 주체, 미감적 활동의 주체로서 자신의 삶을 자문한다. 그리고 그 해답은 본인의 저승길에서 주어지는 것이라 전한다. 죽음 앞의 시간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으며, 지금껏 걸어온 길을 따라 자유롭게 걸어가는 것. 『저승길을 물어서 간다』 속에서 보여주는 박선목 박사의 삶에 대한 철학적 태도는 읽는 이로 하여금 큰 울림을 줄 것이다.

 

 

저승길을 물어서 간다

 

박선목 수필 | 320 판 | 20,000원 | 978-89-6545-383-3 03810

 

수필집 『저승길을 물어서 간다』는 철학박사 박선목 부산대학교 명예교수가 팔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마주한 삶의 모습과 죽음에 대한 생각, 그리고 삶과 사회를 지탱하는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유년시절의 기억부터 평생을 연구해온 철학과 삶에 대한 고뇌, 저자를 계몽으로 이끈 철학자, 여행 속에 만난 세계 각국의 문화와 자연 등 박선목 박사의 팔십 평생을 채운 이야기와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한국 현대사를 겪어온 저자의 삶을 통해 후회 없는 삶, 부끄럽지 않은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노년, 인생의 끝자락과 가까워지는 그 시간 앞에서 저자는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누군가를 위한 생활이 아니라 나 자신을 되찾는 반성의 생활이었기에 언제나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저승길을 물어서 간다 - 10점
박선목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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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갈색 눈동자와 검은 피부의 베트남 여인 쓰엉

쓰엉을 둘러싼 어긋난 사랑과 욕망, 희망이 펼쳐진다


제3회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고 문단에 등단한 서성란 소설가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 사회에서 소외되고 고립된 사람들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자주 내세웠던 서성란 소설가가 이번에는 베트남 여인을 소설 한가운데로 불렀다. 


흑갈색 눈동자와 검은 피부의 베트남 여인 쓰엉, 젊고 건강한 그녀는 한국 시골 마을에서 국제결혼중개업소에서 만난 김종태와 결혼해서 살고 있다. 상상했던 결혼 생활과 달리, 시어머니와 갈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남편은 시어머니와 자신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화를 모른 척한다. 

시골 마을에 또 다른 이방인 소설가 이령과 문학평론가 장규완, 이들은 도시에서 이사 와 하얀집을 짓고 살지만 좀처럼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 


적막한 시골 마을에 나타난 이방인들, 그리고 쓰엉을 향한 장규완과 이령, 김종태와 벙어리 사내 등 서로 다른 시선과 사랑, 욕망을 서성란 소설가의 섬세한 필체로 그려진다. 


서성란 소설가가 그린 쓰엉은 순응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젊고 건강한 여인이다. 작가는 쓰엉이 단지 결혼을 위해 이주해 온 이방인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꿈꾸는 평범한 여인임을 깨닫게 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어느새 그녀를 응원하게 한다.




 

욕망하는 쓰엉, 더 나은 삶을 꿈꾸다


조용하던 시골 마을에 방화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쓰엉의 집이다. 하필 쓰엉이 없을 때 집에 불이 나고 시어머니는 죽게 된다. 남편 김종태는 방화 범인이 쓰엉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후 남편은 농사일도 하지 않고 쓰엉을 하며 술주정뱅이로 살아간다. 쓰엉은 생계를 위해 도시에서 이사 와 하얀집을 짓고 사는 이령과 장규완의 집에 가사 도우미로 일하게 된다. 문학평론가 장규완은 소설가 이령의 아름다움과 관능에 사로잡혀서 산골 마을에 하얀집을 짓고 그녀와 재혼을 한다. 그러나 상상하던 행복한 결혼생활과는 달리, 산골 마을 관목 숲에서 벙어리 사내를 피해 달아나다가 사고를 당해 뇌수술을 받고 언어와 기억을 잃어버린 이령을 간병하며 지내게 된다. 좁고 어두운 다락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잃어버린 시간을 더듬던 이령은 쓰엉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밖으로 나오게 된다. 이령의 간병으로 지쳐 있던 장규완 역시 젊고 아름다운 쓰엉을 욕망하게 된다. 

쓰엉은 하얀집의 가사도우미로 일하면서 마을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을 꿈꾼다. 쓰엉의 욕망을 눈치챈 남편 김종태는 하얀집을 붙 태우기로 마음먹는다.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남편의 방화와 마을 사람들의 암묵적인 용인으로 쓰엉은 방화 용의자로 몰려 구속된다. 스스로를 변호해야 함에도 쓰엉은 능숙했던 한국어를 전혀 말하고 듣지 못하는 일시적 언어 장애를 겪는다. 쓰엉은 법정에서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쓰엉을 둘러싼 인물들의 위태롭고도 위험한 욕망을 작가는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엮어간다.



 


다양한 서술자로 이야기를 이끈다


이번 소설은 색다르게 하나의 시점으로 서술되지 않고 장마다 주요인물 세 명과 보조인물들이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이끈다. 1장, 3장, 6장, 13장은 비평가 장규완이 서술하고 2장, 5장, 8장, 12장은 소설가 이령이 서술한다. 4장, 7장, 11장은 쓰엉이 서술하고 9장은 쓰엉의 남편 김종태가 10장은 쓰엉과 한 마을에 사는 벙어리 사내 강동주가 서술한다. 서성란 소설가는 능숙한 솜씨로 인물마다 다르게 느낀 사건의 시선과 감정을 표현해 이야기를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여기에 벙어리 강동주와 쓰엉을 안쓰럽게 여긴 박 씨 할머니, 마을이 시끄러워지는 게 싫은 이장까지 현실에서 존재할 듯한 인물로 촘촘히 서사를 채워간다.

 

 

다문화 시대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하다

 

작가는 다문화 시대 결혼이주여성의 삶에 주목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최대 국제결혼 대상국은 중국이다. 중국을 제외하면 결혼이주여성의 비중이 가장 큰 나라는 베트남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르다. 무작정 한국 문화에 동화되길 요구하기보다 베트남에서 온 여성들의 문화와 삶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작가는 결혼이주여성의 삶을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거기에 자신만의 상상력을 더해 소설을 새롭게 재구성했다.

 


 

[서성란 한 마디]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쓰엉의

삶을 좇으면서 나는 저물기 시작하는 해를 바라보고 서서 

초록색 파프리카를 깨물어 먹었던 츄옌을 떠올렸다.

마지막 문장을 쓰고 고개를 들었을 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고 다시 몇 해의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은색 아오자이

를 입고 머리에 논라를 쓴 쓰엉이 부지런히 노를 저어서 강을

건너오고 있다.

 

 

[책 속으로&밑줄긋기]

 

P.8: 낡은 외투를 걸치고 보풀이 잔뜩 일어난 목도리를 두른 여자가 추위로 빨개진 홍옥 같은 제 뺨에 손바닥을 대고 가쁘게 숨을 몰아쉰다. 강바람이 여자의 검고 긴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린다. 장은 깜짝 놀랄 만큼 차가운 여자의 손등에 손을 얹었다가 진저리치며 떨어진다. 여자는 머뭇거리거나 수줍어하지 않고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두 눈을 크게 뜨고 흑갈색 눈동자를 반짝거리면서 웃는다.


P.130: 쓰엉이 오토바이를 타고 개울을 건너 앞마당으로 들어설 무렵이면 이령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번졌다. 집 안을 오가며 밥을 짓고 청소하는 젊고 건강한 외국인 여자를 경계하거나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쓰엉이 머물러 있을 때 하얀집은 정막이 걷히고 온기가 돌았다. 따뜻한 말이 오가고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쓰엉은 언제나처럼 조용하고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P.265: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손금을 읽듯 빤히 읽히는 삶을 벗어나려면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는 것을 여자는 알고 있었다. 여자는 운명에 순응하는 삶을 원하지 않았다.




서성란

1967년 익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서경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한국소설의 결혼이주여성 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중편소설 「할머니의 평화」로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창작집 『방에 관한 기억』 『파프리카』 『침대 없는 여자』 장편소설 『모두 다 사라지지 않는 달』 『특별한 손님』 『일곱 번째 스무 살』 『풍년식당 레시피』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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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엉


서성란 지음 | 288쪽 판 변형 | 13,800원 | 978-89-6545-377-2 03810


흑갈색 눈동자와 검은 피부의 베트남 여인 쓰엉, 젊고 건강한 그녀는 한국 시골 마을에서 국제결혼중개업소에서 만난 김종태와 결혼해서 살고 있다. 상상했던 결혼 생활과 달리, 시어머니와 갈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남편은 시어머니와 자신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화를 모른 척한다. 

시골 마을에 또 다른 이방인 소설가 이령과 문학평론가 장규완, 이들은 도시에서 이사 와 하얀집을 짓고 살지만 좀처럼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 적막한 시골 마을에 나타난 이방인들, 그리고 쓰엉을 향한 장규완과 이령, 김종태와 벙어리 사내 등 서로 다른 시선과 사랑, 욕망을 서성란 소설가의 섬세한 필체로 그려진다




쓰엉 - 10점
서성란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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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올바른 결정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잘못된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도 있다"


현대 독일 문단을 대표하는 모니카 마론의 신작이 나왔습니다. 

요즘 큰 이슈가 많아서 책에 대한 관심은 썰렁하기만 합니다. 

추운 연말이 예상되면서 걱정이 앞서네요^^;

그래도 우리는 약속한 책을 냅니다. 


이번 책은 『슬픈 짐승』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던 모니카 마론의 신작입니다. 

제목부터 표지까지 고심해서 출간한 책입니다.

독일 소설하면 여전히 괴테, 릴케, 헤르만 헤세만 이야기한다면 

현대 독일 작가들이 서운해합니다^^


이 책을 번역한 정인모 역자가 작가의 집에 초대되기도 했는데요. 

그 이야기도 역자 후기에 실려 있습니다.

읽고 여기저기 소문내주세요:)




『슬픈 짐승』의 작가 모니카 마론의 신작

현대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모니카 마론의 신작으로, 삶이 가지는 의미를 죽음을 통해 심도 있게 그려낸 소설이다.

1941년 베를린에서 태어난 모니카 마론은 독일 분단 이후 서베를린에서 살다가 동독의 내무장관을 역임한 양아버지 칼 마론을 따라 1951년 동베를린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했다. 동독 초기에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양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사회주의 혹은 스탈린주의 교육을 받았는데, 분단, 구동독의 체제, 통일 등 독일 역사의 큰 흐름들은 그녀의 작품에 중요한 토대가 된다. 1976년부터 동베를린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모니카 마론은 체제 비판적인 작품을 여럿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았으며, 그녀의 책은 동독에서 발간되지 못하고 서독에서 발간되기도 하였다. 

1988년 임시 비자를 받고 서독 함부르크로 이주했다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현재 베를린에 살고 있는 모니카 마론은 분단 상황을 주제로 삼아 구동독 체제에 신랄한 비판을 가했던 작품들로 이름가르트 하일만 문학상, 그림형제문학상, 클라이스트 문학상, 레씽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996년 발표된 후 국내에도 번역되어 호평을 받은 바 있는 모니카 마론의 전작 『슬픈 짐승』이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인 사랑을 다루어 마론의 문학에서 새로운 전환점으로 평가받는 소설이라면, 이번 『올가의 장례식날 생긴 일』(원제: Zwischenspiel(막간극))은 심오하고 사변적인 내용을 경쾌하고 가벼운 필치로 그려내는 데 성공하여 모니카 마론의 문학 세계를 총결산하는 역작으로 평가된다. 2013년 출간 당시 <슈피겔>, <디 차이트> 등 많은 독일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방송에도 여러 번 소개된 바 있다. 

(독일 바이에른 방송의 인터뷰 영상 클릭)



현대 독일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삶과 죽음을 성찰하다

주인공 ‘루트’는 남편과 헤어진 후에도 친구처럼 연락하며 지냈던 시어머니 ‘올가’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장례식에 참석하려는 그날 아침 갑자기 알파벳 철자가 눈앞에서 둥둥 떠다니고, 구름이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등, 루트는 사물을 인지하는 데 문제를 느낀다. 결국 그녀는 장례식으로 가는 길을 잘못 들어 어느 공원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여기서 희귀한 일들이 벌어진다. 

죽은 올가가 나타나 자신에게 말을 걸고, 오래전 세상을 떠났던 두 번째 남편의 친구 ‘브루노’가 맥주를 마시고 있다. 어린 시절 자신이 키우던 개와 닮은 강아지까지. 유령들은 루트에게 말을 걸고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는 루트를 과거 회상 속으로 인도하여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게 할 뿐 아니라 인간의 삶과 행복, 죽음 등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안겨준다.


왼쪽은 독일출판사에서 나온 원서


공원에서 만난 유령들과 대화

인생을 압축시킨 작은 극이 경쾌하게 펼쳐진다

과거에서 우리는 얼마나 벗어나 있을까? 자신의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루트는 유령들과의 대화를 통해 지나온 자신의 인생을 다시금 돌아본다. 

묘지에 묻히고 있을 시어머니 올가의 유령이 루트에게 과거의 일에 대해 묻는다. ‘루트’가 결혼하려고 했던 남자, 올가의 아들인 ‘베른하르트’에게는 전 부인과 낳은 아이가 하나 있다. 아이는 우연한 사고로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었고 루트는 베른하르트와 결혼하면 자신이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그와 결혼하는 것을 포기한다. 베른하르트를 떠나는 일이 옳은 선택이었는지, 책임을 함께할 만큼 그를 사랑하지 않았는지 루트는 고민한다. 

베른하르트를 떠난 후 헨드리크와 재혼한 루트는 헨드리크를 따라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이주한다. 작가인 헨드리크는 검열로 인해 동독에서는 소설을 출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동독의 슈타지는 베른하르트로 하여금 루트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파니를 이용해 루트와 헨드리크를 감시하게 만든다. 딸을 슈타지의 비밀요원으로 이용한 전남편에 대해 루트는 경악한다. 하지만 그것이 베른하르트의 진심이었을까? 죽은 시어머니 ‘올가’의 유령을 통해 루트는 갑자기 딸을 잃어버리게 된 베른하르트의 고통을 알게 된다.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는 듯한 이번 소설을 통해 작가는 어떤 선택이든 과거의 선택은 자신의 결정이었고 누구도 과거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루트가 사랑과 죄책감, 믿음과 배신, 노년과 죽음에 대해 유령들과 대화하면서 삶에 대해 성찰하듯, 작가는 독자에게 삶과 죽음에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작가 모니카 마론(오른쪽) 집에 초대되어 방문한 정인모 역자(왼쪽)


독문학자 정인모 교수의 유려한 번역

모니카 마론의 『침묵의 거리』를 번역한 바 있는 독문학자 정인모 교수(부산대학교)는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연구교수로 있는 동안 모니카 마론과 인연을 맺은 후 그녀의 작품에 꾸준한 관심을 갖고 있다가 이번에 『올가의 장례식날 생긴 일』을 번역하게 되었다고 한다. 2012년에는 마론의 집에 초청을 받아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책 속으로

P.34: 그날 저녁에도 당신은 이렇게 말했어요. 또렷이 기억하는데, 죄라는 건 이렇게든 저렇게든 항상 남아 있다고 말이에요. 나는 이 말을 잊을 수 없어요. 또 당신이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도요.


P.75~76: 열정이 다 식고 사랑도 마력을 상실할, 또 몰락과 성공의 평가가 거의 폐쇄되어 있고 병과 허약함만이 남아 있는 삶을 황폐화시킬 30~40년 후 우리는 왜 그럴까? 매일 그렇게 완강하게 투쟁하고 겁주는 수술과 치료를 참아내며 사지를 왜 절단해야 하는가? 열린 창문을 통해 우리 병원까지 불어오는 봄바람을 우리의 건조한 피부에 한 번이라도 느끼기 위해 왜 우리는 사육당하고 기저귀를 차야 하는가.


P.190: 우리는 하루 종일 그 소리를 들었지요. 내가 말했다.

맞아요, 인간이 유감인 거예요. 올가가 말했다.

그 순간 공원 위에 창백한 빛을 던져주던, 마지막 약한 햇살이 사라졌다.


【추천 글】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벼운 소설은 아니다. 

어떻게 오늘의 “나”가 되었는지를 파고드는 문제작이다_<슈피겔>

 느긋하고 밝은 어조로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작_<타게스차이퉁>

 모니카 마론 특유의 날카로우면서도 신선한 사유 과정이 잘 드러나 있고 

유려한 필치로 묘사 된 소설_<디 차이트>

 모니카 마론은 이 작품에서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최고의 예술성을 펼치고 있다_<쥐트도이체 차이퉁>



글쓴이 : 모니카 마론

1941년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독일 분단 이후 서베를린에서 살다가 동독의 내무장관을 역임한 양아버지 카를 마론을 따라 1951년 동베를린으로 이주했다. 훔볼트 대학에서 연극학과 예술사를 전공했고, 대학 졸업 후 텔레비전 방송사에서 조연출로, 〈보헨포스트〉 지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1976년부터 동베를린에서 전업 작가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1981년 발표한 첫 소설 『분진』으로 이름을 알렸다. 『오해』 『경계 넘는 여인』 등의 작품은 동독 체제에 대한 비판적 내용을 담았다는 이유로 서독에서 출간되었다. 1988년 임시비자를 받고 서독 함부르크로 이주했으며 이듬해인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993년 이후 다시 베를린에 살고 있다. 

나치시대, 분단, 구동독의 사회주의, 그리고 통일이라는 독일 역사의 큰 흐름들은 모니카 마론의 작품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분단 상황을 주제로 삼아 구동독 체제에 신랄한 비판을 가한 여러 작품을 선보였으며, 이름가르트 하일만 문학상, 그림형제 문학상, 클라이스트상, 졸로투른상, 로스비타상, 에방겔리쉬상, 횔덜린상, 칼 추크마이어상, 독일 작가상, 휴머니즘상, 레씽상 등을 수상하였다. 

『분진』(1981), 『경계 넘는 자』(1986), 『침묵의 거리』(1991), 『슬픈 짐승』(1996), 『파벨의 편지』(1999), 『빙퇴석』(2002), 『아, 행복』(2007) 외 몇 편의 에세이집과 르포르타주 형식의 『비터펠더 보겐』(2009) 등의 작품이 있으며, 가장 최근 동물에 관한 짧은 에세이 『까마귀 울음』(2016)을 발표했다.


옮긴이 : 정인모

부산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칼스루에 대학과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한국 하인리히 뵐학회 회장과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학장, 교육대학원장, 교양 교육원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부산대학교 독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 독일언어문학회 회장과 독일학술교류처(DAAD) 리서치 엠버서더로 봉사하고 있다. 하인리히 뵐, 모니카 마론에 관한 논문을 포함하여 총 40편 정도의 독문학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대표 저서로는 『독일문학의 이해』, 『하인리히 뵐의 문학세계』, 『독일문학감상』, 역서로는 『침묵의 거리』, 『창백한 개』, 『신독일문학사』가 있고 편역으로는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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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의 장례식날 생긴 일


모니카 마론 지음 | 정인모 옮김 판 변형 | 13,000원 | 978-89-6545-378-9 03850


현대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모니카 마론의 신작으로, 삶이 가지는 의미를 죽음을 통해 심도 있게 그려낸 소설이다. 주인공 ‘루트’는 남편과 헤어진 후에도 친구처럼 연락하며 지냈던 시어머니 ‘올가’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장례식에 참석하려는 그날 루트는 가는 길을 잘못 들어 어느 공원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여기서 희귀한 일들이 벌어진다. 죽은 올가가 나타나 루트에게 말을 걸고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는 루트를 과거 회상 속으로 인도하여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게 할 뿐 아니라 인간의 삶과 행복, 죽음 등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안겨준다.




올가의 장례식날 생긴 일 - 10점
모니카 마론 지음, 정인모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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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같은 시집이 나왔습니다. 차갑다가도 따뜻하고 따뜻하다가도 쓸쓸한.

그러나 결국 사랑으로 사랑으로.

시인의 붉은 마음을 시집에 담았습니다.





▶ 사슴목발을 짚고 걷듯이 조금씩 미완성인 사람들

그들에게 애인의 칭호를 붙이며 절망을 사랑으로 포용하다



생동감 있는 시적 언어로 삶의 비애와 희망을 탐구해온 최정란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사슴목발 애인』이 출간됐다. 시인은 절망스러운 현실일수록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만이 절망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듯이, 우리는 조금씩 부족하고 삶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목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집 제목이 『사슴목발 애인』인 것도 사슴목발을 짚고 걷듯이 미완성인 우리가 서로에게 애인처럼 사랑으로 포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노래를 틀어놓고 열심히 춤을 추지만 “한없이 얇아진 풍선인형의 고독”(「댄싱 퀸」)을 느끼는 소녀들,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 지루한 별에 다녀간 것을 증명하는”(「불란서 인형」 노년의 할머니, 노량진에서 “공부만 하다 죽을지도”(「노량진」) 모른다고 외치는 취업 준비생들. 시인은 현실의 절망 앞에 놓인 사람들을 쉽게 지나치지 않고 정성스럽게 이번 시집에 담았다. 절망 대신 희망을 이야기하는 시인에게 황정산 평론가는 “절름거리는 절망 속에서 엇박자의 희망을 향해 가는 시인의 발이 간절하고 아름답다”라고 말한다.



절며 끌며 너에게 가네

발꿈치가 땅에 닿지 않는 봄

또각또각 추를 흔들며 울고 가는

엇박자의 시간 속으로

뼈가 부러진 꽃들이 떨어지네

깁스 속에 가둔 순결한 발이

진흙도 모래도 아스팔트도

때 묻은 땅이라고는 모르는 것처럼

최초의 구름 위를 걸어가네


-「사슴목발」부분


 



▶ 방황하는 청춘들의 슬픔을 시로 다독이다



시인은 청춘들의 어두운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시에 담아 위로를 전한다. 개인이 성장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해 방황하는 건 당연한 순리일 수 있다. 점점 혼란스러워지는 사회에서 청춘들의 방황은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는 청춘들에게 정체성을 확립하기도 전에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무엇이 서둘러 되라고 재촉한다. 청춘들은 고민한다. “나는 어떻게 나를 증명할 수 있을까”(「신분증」), 현실은 가혹하게도 취업도 결혼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시인은 청춘들의 방황과 정체성 상실을 부정하기보다 또 하나의 길을 찾는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믿으며 청춘들의 슬픔을 시로 다독인다.



서 있는 자리가

틀린 골목 틀린 문 앞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심해볼 생각을 왜 안 했을까


젖 먹던 힘까지 용을 쓰며

다른 골목에서 다른 대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는 삶이 있다.


-「영희네 집」 부분

 


 

▶ 환상과 절망 사이, 그래도 희망을 만들어내다



시인은 절망의 현실을 감추는 환상을 경계한다. “허락하면 나는 왕자의 세 번째 아내가 될 거예요 그렇지만 나는 누구의 아내도 되고 싶지 않아요”(「아부다비에서 온 편지 2」)라고 말하듯, 왕자가 와서 결혼해달라는 꿈같은 환상을 믿지 않는다. 


환상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고 사람들을 더 큰 절망으로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나지막하게 말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의 비애 속에도 서로가 연대하고 사랑한다면 희망은 만들어낼 수 있다.



남극기지를 세운 기념으로

교환학생 펭귄이

온대마을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

룸메이트였던 나는

극세사 이불 세트를 펭귄의 침대에 깔아주었다


-「펭귄표 지우개」부분


 



지은이 최정란


경북 상주 출생. 계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동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수료.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여우장갑』, 『입술거울』이 있다. cjr1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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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시인선 007

사슴목발 애인

 

최정란 지음 | 46판 양장 | 11,000원 | 978-89-6545-375-8 03810


생동감 있는 시적 언어로 삶의 비애와 희망을 탐구해온 최정란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사슴목발 애인』이 출간됐다. 시인은 절망스러운 현실일수록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만이 절망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듯이, 우리는 조금씩 부족하고 삶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목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슴목발 애인 - 10점
최정란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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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이 소설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사람과 사회를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소설가 오영이의 두 번째 소설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이 출간됐다. 이번에 선보이는 소설집은 첫 소설집 출간 이후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발표된 네 편의 작품이 수록된바, 화려한 도시의 불빛 속 현실의 그늘과 그 속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현 사회의 어두운 이야기들을 특유의 감각적인 문장들로 풀어내며 밝음 속 아이러니한 어둠을 그려낸다.

  문학평론가 정훈은 소설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에 대해 “우리 시대의 민낯을 소설로 형상화한”다고 전하며, 작품 속 인물들에 관해 “외면상 선진국의 문턱에 다다르고 각자 개성을 뽐내며 서로에게 ‘사랑’과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다가가지만, 실상은 의지와는 무관하게 서로에게 상처와 절망을 안긴 채 겨우 숨을 쉬며 살아가는 목숨붙이들”이라고 말한다. 표제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에서 독일에서 한국으로 온 프라이팬이 만난 세 명의 사람들이 모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재기발랄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소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를 되짚으며 공터에 누워 있자니 끔찍한 장면이 자꾸만 떠올라 나는 괜히 몸이 떨린다. 그런데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 걸까, 아니면 충격을 덜기 위해 이런저런 기억들을 조합한 내 착각일까? 나는 순간 움찔한다. 프라이팬에게 기억이라니. 하지만 내겐 기억이 있다. 매순간을 고스란히 다 떠올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분명 기억이 있고, 내가 기억하는 사건들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

 

_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중에서 (p.10)

 

 작가 오영이는 이번 소설집에서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현실을 보여주는 데 몰두한다. 사회와 인간이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양상과 개개인의 내면적 심리들을 기어이 소설 속 현재로 끌어와 우리를 집중시킨다. 소설집 네 편의 작품들은 꼬여버린 세계에 놓인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인물들을 통해 한국 사회가 야기하는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비춘다. 독일에서 만들어져 한국으로 오게 된 고급 프라이팬이 그것을 구입한(혹은 주운) 사람들의 기구한 사연을 목격하게 되는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은 세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돼 한국 사회의 그늘을 응시한다. 「황혼의 엘레지」는 공원의 노인들에게 박카스를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안동댁의 이야기로, 한때 우리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노인의 삶과 복지의 취약성을 고발하는 가운데 노인의 성(性)이라는 또 다른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단편「마왕」과 중편 「핑크로드」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상처가 한 인간의 삶을 서서히 얼룩지게 만들거나, 오랫동안 이어져온 사랑이 윤리적 금기를 넘어서 헤아릴 수 없는 심연 속에 놓이게 한다.

 이번 소설집에서 눈여겨볼 것은 오영이만의 독특한 관찰력과 문체다. 우리 사회의 음지를 바라보는 따뜻한 관찰력과 이를 풀어내는 재기발랄한 문체는 다소 무거운 주제들도 쉬이 읽히도록 한다. 무겁지만 가벼운, 혹은 가볍지만 무거운 오늘날 우리 시대의 이야기들이 오영이의 소설들에 녹아 있다.

 

 

"이제 또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디스토피아를 살아가는 우리를 감싸는 따뜻한 시선

 

이럴 때 안동댁은 기어이 알콜병동에서 사망소식을 전해 온 아들이 그저 원망스럽다. 어미는 제가 질러 놓고 간 새끼 키워 볼 거라고 육십이 넘은 나이에 박카스를 들고 뭇 사내들의 손을 타고 있건만, 젊은 것들은 새끼 버리고 나가 알콜 중독에 행방불명이라니.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안동댁은 얼른 집을 나설 채비를 한다. 이럴 때마다 주문처럼 입으로 뇌는 말이 있다. 어쨌든 산 사람은 살아야지.

_ 「황혼의 엘레지」 중에서 (P.58)

 

  「황혼의 엘레지」의 안동댁은 결코 긍정할 수 없는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이다. 공원 노인들의 추태를 받아주며 박카스를 파는 안동댁을 향해 동네 주민들은 “나이가 들면 나잇값을 해야지” 혹은 “동네 창피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부정한 행동임이 틀림없지만 작가는 안동댁의 그럴 수밖에 없는 속사정에 집중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젊어서 청상과부가 됐고, 아들은 알콜 중독으로 죽었으며, 며느리가 집을 나간 뒤 손자만 데리고 살아가는 노인. 안동댁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그녀가 왜 공원에서 박카스를 팔아야 하는지를 설명해준다. 나잇값을 못하며 창피한 안동댁의 행동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며 그녀 개인의 고달픈 삶과 오늘날 우리 시대 노인 문제에 대한 생각의 스펙트럼을 넓히게 한다.

  「황혼의 엘레지」에서 보이는 사람과 이야기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표제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에서도 드러난다. 이 소설은 프라이팬을 주인공으로 하여 세 가지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지는데 입시전쟁 속의 아들과 엄마, 팍팍한 현실에 사랑을 잃은 청년,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년 등 각 세대가 겪어내고 있는 현실의 그늘을 짚어낸다. 특히 프라이팬의 마지막 기억인 폐지 줍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화려한 도시 한편의 어둠을 지고 살아가는 이 시대 노년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리며 작가 특유의 따뜻한 시선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마법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았다"

결핍과 욕망으로 얼룩진 개인의 일상

 

「마왕」은 외로움과 상처가 그릇된 욕망이 되어 개인의 삶에 번지는 서글픈 작품이다. 어릴 적 “저녁마다 루주를 바르고 집을 나서는 엄마”에게서 버림받은 주인공은 자신의 결핍을 쇼핑으로 채우기 시작한다. 백화점의 고급스런 조명을 받으며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신상들을 입으면 마치 자신이 ‘여왕’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녀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이 그로 하여금 백화점에 진열된 옷들에 대한 집착으로 외면화된 것이다. 쇼핑 중독에 빠진 여자, 사회적 문제로 치부되는 이와 같은 소재를 작가는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가 파헤친다. 소설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우울한 성장사, 쇼핑중독, 사채 등 소설을 이루는 요소들이 촘촘히 연결되어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단자화된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한순간 사랑에 눈이 멀 수도 있지. 달콤하니까. 하지만 달콤함이 필요하면 보리차에다 설탕을 타서 마시면 돼. 뇌수가 눅진해지도록 듬뿍 말이야. 사랑이 달콤한 건 달콤함을 즐길 준비가 된 인간들에게나 그런 거야. 도대체 우리가 사랑한다 해서 달라지는 게 뭔데”

_ 「핑크로드」 중에서 (P.194)

 

  「핑크로드」에서는 나와 외사촌 지간인 여자 사이에서 벌어져서는 안 되는 격정적 사랑을 보여준다. 사촌 누나를 향한 성스러운 사랑을 간직한 나와 사랑을 오래 전에 유행이 지난 “웃기지도 않은 농담”이라 말하는 여자의 위험한 관계는 어쩌면 처음부터 파국으로 향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오랫동안 사랑을 간직한 주인공의 시선으로 사랑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반문한다. 사랑이 사회적, 윤리적 금기와 부딪쳐 욕망으로 변질된 것인지, 애초부터 사랑의 감정 속에 꿈틀대던 욕망이 폭발한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사회를 이루는 거대한 울타리 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애처로운 감정이 소설 속에 퍼져 읽는 이에게 전달된다.

 

 

▶ 지은이 : 오영이

 

 

  부경대학교 대학원 석·박사 과정(국어국문학과)을 마치고 현재 동서대학교와 경성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문예운동』 소설 신인상과, 『한국소설』 신인상, 그리고 『동리목월』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소설집으로 『별들은 이제 섬으로 간다』(2011)가 있다.

 

▶ 차례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황혼의 엘레지

마왕

핑크로드

 

해설 | 비창(悲愴), 스러지는 사랑과 윤리의 사회학 - 정훈(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오영이 소설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오영이 지음 | 국판 | 153,000원

978-89-6545-363-5 03810  | 2016년 7월 15

 

사람과 사회를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소설가 오영이의 두 번째 소설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이 출간됐다. 이번에 선보이는 소설집은 첫 소설집 출간 이후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발표된 네 편의 작품이 수록된바, 화려한 도시의 불빛 속 현실의 그늘과 그 속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현 사회의 어두운 이야기들을 특유의 감각적인 문장들로 풀어내며 밝음 속 아이러니한 어둠을 그려낸다.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 10점
오영이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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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단디SJ

 

암각화와 피카소, 승전무와 아쟁 산조를 관통해

아름다움의 正名을 찾아가는 여정

 

유익서 소설집

『고래 그림 碑』

 

 

  197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래 꾸준히 예술의 존재 이유와 예술가의 삶에 대한 소설을 발표해온 작가 유익서가 새로운 소설집을 펴냈다. 한산도에 칩거한 지 7년, 치밀한 연구와 함께 예술의 본질에 대한 사유를 정제해온 작가는 여덟 편의 신작을 담은 이번 소설집에서 자신의 예술론을 집대성한다.

 

  현대인의 삶에서 가장 결핍되고 왜곡되어 있는 것이 아름다움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고래 그림 碑』의 주인공들은 아름다움의 참 이름을 찾아 나선다. 반구대 암각화와 피카소, 승전무와 아쟁 산조를 관통하는 이 작품집을 통해 작가는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예술은 어떤 것이며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또 ‘아름다움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대해 과감하면서도 진중하게 답한다. 

 

 

삶의 필요에서 발생하는, 삶을 바칠 만한 예술

 

  『고래 그림 碑』에 수록된 소설들은 예술에 대한 성찰과 실천이라는 구심점을 중심으로 삼아 펼쳐진다. 표제작은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한 고고미술학도의 도전적인 해석을 다루는데, 주인공이 봉착하게 되는 좌절의 체험담 안에 가파른 석벽 위에 고래 그림이 그려지게 된 과정에 대한 고고인류학적 상상이 펼쳐진다. 미치광이로 오해받으면서도 암각화를 새기는 인물 ‘올’의 절실함은 생활과 예술이 같은 근원에서 나온다는 것을 반추하게 만든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고래 사냥과 마찬가지로 바위 위에 그림을 새기는 일 또한 삶의 필요에 응답한다. 이러한 고대의 예술가와 대비되는 오늘날 고고미술학도의 좌절은 생활과 예술이 완전히 분리되어 삶의 전체성 안에서의 조화를 상실하게 된 현실을 비추고 있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제목의 「소리무늬 山」은 한국적 산수화의 진경(眞境)을 추구하다 그림을 그리던 자세 그대로 생을 마감한 기구한 천재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높은 벼슬에 오를 수도 있었으나 속세를 등지고 살아간 젊은 화가는 우리 화가들이 중국의 서화첩에서 본 것을 흉내 내기만 하는 것을 지탄했다. 자신의 목숨을 바칠 정도로 그는 오로지 아름다움만을 추구했고, 아름다움 자체와 그에 대한 구도(求道)적 추구의 자세를 체화한다. 권오룡 문학평론가는 『고래 그림 碑』의 이러한 주인공들이 ‘삶의 미학화’라는 주제를 실현한다고 말한다.

 

깊이의 차원에서 ‘삶의 미학화’는 어느 순간 광기와도 통하게 됨은 물론이고 (…) 삶 자체를 송두리째 내던져야 한다는 무서운 역설의 요구에 직면하게 되기도 한다. (…) 이러한 극단적 실천에 의해 예술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하여 영원히 이어지는 불멸성을 추구하는 작업이 된다. (…) 예술은 삶과 죽음을 연결하여 하나로 이어지게 만듦으로써 영원불멸의 생명 사상을 수립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삶의 미학화’로 표출되는 유익서의 독특한 예술관이다. (288쪽)

 

 

서사 속에 녹여낸 철학

“예술의 본질은 형태에 머물지 않고 정신에까지 통해야 한다”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물성을 지닌 옻칠회화에 대한 소설,「1000년 그림」은 천년이 지나도록 불변하는 가치를 지닌 그림이란 무엇일까 질문하게 한다. 작품 속 주인공인 소설가 ‘나’는 이를 “물상의 본질적 기운을 그려내”는 것이라 표현한다. 『고래 그림 碑』의 작품들에서는 악기와 목소리 (「레닌의 왼발」), 육신 대 영혼 (「바리데기 꽃등」), 삶과 죽음 등의 대립쌍이 등장하지만 이들을 이분법적으로는 파악할 수는 없다. “물상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형질은 비가시적인 기운으로 운동하고 있기 마련”(「1000년 그림」)이라는 주인공의 말에서 볼 때 이 대비되는 개념들은 대립이 아니라 순환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소리무늬 山」의 주인공 고강은 “형상만을 고스란히 그린 것은 그림이라 할 수 없”으며, “그 형상 안에 내재해 있는 어떤 보이지 않는 핵(核)을 불러내 그려내야만 그림으로 불릴 가치를 지니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자신이 그리는 그림마다 흠을 찾아내 작품을 찢어버리는 주인공 고강은 생전에 만든 작품 중 남긴 단 하나의 그림에서 형태만이 아니라 소리를 느낄 수 있도록 산을 표현해냈다.

 

  눈앞의 그림이 속삭이고 있는 저 아름다운 음률을 내 가슴이 지금 분명히 듣고 있지 않은가. 산수를 그릴 때에는 뜻이 붓 앞에 있어야 한다 했는데 외형의 산이 아니라 산의 음률로써 우주의 끝을 노닐게 하지 않는가. (280쪽)

 

 

순수하고 투명하면서도 깊은 경지에 이르는 미학적 탐색

 

  유익서의 소설들은 많은 작중인물들이 지금 머물러 있는 한산도라는 섬의 지리적 의미를 상징화의 모태로 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외부세계, 즉 육지와는 바다로 절연된 작은 섬에서 유익서는 이 단절과 협착을 글쓰기 작업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면서 오로지 삶과 예술의 일치라는 문제에만 천착하여 순수하고 투명하면서도 깊은 경지에 이르는 미학적 탐색의 노력을 끈기 있게 이어나간다.

 

  『고래 그림 碑』의 작품들은 ‘미학화’라는 삶의 방식을 추구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오늘날 현실에 대한 미학적 반성을 불러온다. 저자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결핍되고 왜곡되어 있는 것이 아름다움이라는 미학적 요소라고 본다. 「수선화의 방」에는 주인공인 ‘그’가 그를 고성에 초대한 강 선생이라는 인물과 알게 된 경위를 소개하기 위해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죽도 마을회관에서 열렸던 강연의 일화가 액자 형식으로 포함되어 있다.

 

  사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연제로 무슨 이야기를 더 새롭게 할 수 있겠는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그 당위성을 밝혀 정의를 내린 바 있는 너덜너덜한 낡은 주제였다. (…) 게다가 요즘 책보다 유익하고 흥미로운 것이 세상에 얼마나 많이 널려 있는가. (109쪽)

 

  ‘그’는 이 강연에 대해 “케케묵은 연제”이고 “너덜너덜한 낡은 주제”라 표현하는데 이것은 책의 궤도를 넘어 예술의 위상이나 운명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현대 사회에서 예술의 운명과 책의 운명은 제유적 관계에 놓여 있다. 책을 지키기 위해서 책의 취약점을 되짚어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현실을 되짚고 이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예술의 가능성을 끝까지 탐색해야 한다.

 

  『고래 그림 碑』에 수록된 유익서의 소설들은 모두가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예술과 존재 방식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고래 그림 碑』는 소설을 통해 예술의 본질과 현상, 가능성과 가치, 의의 등 미학적 탐색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가 소설의 계보에 자리를 잡는다.

 

 

▶ 글쓴이 : 유익서

 

 

  197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부곡(部曲)」, 197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우리들의 축제」로 문단에 나온 후, 고도의 상징과 알레고리로 시대상황을 적실히 비춰낸 『비철 이야기』『표류하는 소금』『바위 물고기』『한산수첩』 등의 소설집, 그리고 우리 전통음악의 우수성과 고유한 아름다움의 근본을 밝혀 미학적으로 승화시킨 『새남소리』『민꽃소리』『소리꽃』 3부작을 비롯하여 『아벨의 시간』『예성강』『세 발 까마귀』 등의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놓은 바 있다. 한동안 동아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단국대학교 대학원과 동의대학교 등에서 소설을 강의했고,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 이주홍문학상, 한국PEN문학상, 성균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차례

 

 

 

 

고래 그림 碑

유익서 지음 | 국 | 13,800원

978-89-6545-357-4 03810 | 2016년 6월 20

 

  한산도에 칩거한 지 7년, 치밀한 연구와 함께 예술의 본질에 대한 사유를 정제해온 작가는 여덟 편의 신작을 담은 이번 소설집에서 자신의 예술론을 집대성한다.

현대인의 삶에서 가장 결핍되고 왜곡되어 있는 것이 아름다움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고래 그림 碑』의 주인공들은 아름다움의 참 이름을 찾아 나선다. 반구대 암각화와 피카소, 승전무와 아쟁 산조를 관통하는 이 작품집을 통해 작가는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예술은 어떤 것이며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또 ‘아름다움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대해 과감하면서도 진중하게 답한다.

 

 

 

 

고래 그림 碑 - 10점
유익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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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지만 자유롭게 

낮은 곳에서 도약을 노래하다


거칠지만 자유롭게 자신의 시 세계를 펼치는 서규정 시인의 신작 시집 『다다』가 출간되었다. 등단 이후 일곱 번째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서규정 시인은 현실과 정치에 대한 비판적 시선,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를 투박하지만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인은 “다른 시인들이 좀처럼 ‘문학’에 포함시키려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적극적으로 시화”(고봉준, 해설)하는 편인데, 낮은 자세로 우리 삶 구석구석을 헤집으며 서정적으로 풀어내는 시어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봄날에 터지는 건 꽃망울뿐인데

남의 집에 들어가 눈뜨고 낮잠 자는 주인에게 놀라

그 자리에서 졸도한 좀도둑 같은, 뜬눈이 지키는 세월이다

목련화야 내 생애 단 한번만이라도

그대 발밑에 잠들고 싶어

(…)

얼마나 간이 커야 좀도둑이 되는 것이냐

길거리에서 손을 덜덜 떨며 훔친 것은

그대 어깨 위에 떨어진 머리칼 한 올

풀린 머릿결이 선율처럼 천상으로 가는 도중이, 아마 공중

이었지

바람이 분다, 한 바퀴만 더 돌고 갈래

-「감긴 눈이 더 감기려 할 때」




시인의 연륜과 결합한 서정적인 언어들

“거칠고 투박하다는 것도 살고 싶다는 삶의 포즈다.”


시인은 시집 첫머리 「시인의 말」에서 “거칠고 투박하다는 것도 살고 싶다는 삶의 포즈다.”라고 말한다. 비록 시인의 시가 세상에 대해 거칠고 냉소적일지라도 그 목적지는 사람다운 삶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인의 시는 연륜과 결합한 서정적인 언어들로 피어난다. 예컨대 만개한 벚꽃이 떨어지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추억과 미래라는 느낌 사이/어느 지점에 머물러 있었다는 그 이유 하나로도 너무 가뿐한”(「낙화」)처럼 생(生)의 가치를 긍정하기도 하고, 사랑에 대한 애잔한 감정을 “사랑이 살던 그 집의 울타리는 일생을 돌고 도는 강물이라서”(「그곳에 사랑이 살았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듯 시인은 강렬하지만 서정적인 목소리로 세상에 다가가고 있다. 



만개한 벚꽃 한 송이를 오 분만 바라보다 죽어도

헛것을 산 것은 아니라네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모심이 있었고

추억과 미래라는 느낌 사이

어느 지점에 머물러 있었다는 그 이유 하나로도 너무 가

뿐한

-「낙화」 전문


 



삶을 긍정하며 새로운 도약을 시도


나비야 나비

고맙다, 높이보다 바닥이라는 넓이를 살게 해준 그 공책을

하얀 나비라 부르는,

이 박차 막바지의 생, 내 최고의 직장은 공공근로였다만

다시 나비를 잡으려면 몰래몰래 다가가

집게손가락에 날개 끝이 닿을락 말락 하면


고개를 돌리고 입을 크게 벌려 하품 한 번 하고

사르르 눈을 감아 버릴 것

-「나비 잡는 법」



세상에 대한 시인의 냉소적인 시선은 한편으로는 삶에 대한 애정으로 볼 수 있다. 시인에게 삶은 “‘높이’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바닥’으로 대표되는 낮은 곳에 머무르는 일이다. 


서규정의 시세계를 무엇이라고 부르건 그의 시가 ‘바닥’을 지향하고, ‘바닥’을 긍정하는 삶의 태도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이 긍정의 태도 속에서 ‘바닥’은 추락지점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위한 도약대”(고봉준, 해설)가 된다. 이것이 시인의 시가 거칠지만 서정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지은이: 서규정


전북 완주 출생. 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참 잘 익은 무릎』, 『그러니까 비는, 객지에서 먼저 젖는다』 등이 있다.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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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

 

서규정 지음 | 46판 | 140쪽 | 10,000원

2016년 5월 20일 출간 | ISBN 978-89-6545-355-0 03810


등단 이후 일곱 번째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서규정 시인은 현실과 정치에 대한 비판적 시선,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를 투박하지만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인은 “다른 시인들이 좀처럼 ‘문학’에 포함시키려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적극적으로 시화”(고봉준, 해설)하는 편인데, 낮은 자세로 우리 삶 구석구석을 헤집으며 서정적으로 풀어내는 시어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다다 - 10점
서규정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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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온수입니까

장편소설


토스쿠


필리핀의 섬에서 실종된 로봇공학자,

그가 만난 ‘또 다른 나’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우연히 모인 곳은 한 로봇공학자의 목공심리치료소. 명쾌한 이성적 사고로 삶을 대하는 ‘장 박사’와 함께 나무를 매만지며 이들은 조금씩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루는 방법을 배운다. 그런데 어느 날, 장 박사는 필리핀으로 여행을 떠나고, 긴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장 박사를 찾아 떠난 3인은 미지의 섬에 있다는 그와 무사히 귀국할 수 있을까?

한국소설 신인상으로 데뷔하고 소설집 『작화증 사내』로 부산작가상을 수상한 작가 정광모가 새로운 장편소설을 펴냈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상한 신작 『토스쿠』의 제목은 ‘또 다른 나’라는 의미를 가진, 작가가 만들어낸 단어이다. 작가는 “한 인간의 내면에는 수많은 또 다른 나가 살고 있다. 또 다른 나는 살인자이거나 독재자일 수도 있고 광신도이거나 예술가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현실에서는 그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살고 있지만, 소설을 통해 작가는 수많은 가능성의 씨앗을 싹틔워 인간의 한계와 현실의 본질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뚜렷한 개성과 사연 지니고 모인 인물들

선명한 이야기 속의 이야기 돋보여

『토스쿠』는 필리핀의 유명 관광지, 보라카이에서 시작된다. 그곳에는 필리핀인 여성과 결혼해 정착한 뒤 한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요트투어 사업을 하고 있는 남 사장과 그의 사업을 돕는 후배 손태성이 있다. 어느 날 남 사장은 일주일간의 무인도 투어를 예약 받는데, 손님 3인은 성격도 배경도 제각각이라 어떤 이유로 함께 여행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무인도로 떠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컴퓨터 회사 엔지니어로 일하며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으나 해외에서 아들과 아내 모두를 잃은 박순익, 기계제작회사 직원으로 제품 배달 중 싱크홀에 빠진 후 폐쇄공포증을 겪게 된 오장욱, 한때 배우를 꿈꿨으나 스폰서와의 굴욕적인 계약을 견디지 못한 성주연. 이들의 선장이 된 태성은 어릴 적 부모 없이 보호시설에서 자랐고, 한국에서 트럭 운전을 하다 남 사장의 부탁을 받고 필리핀에 왔다. 처음에 순익 일행은 태성에게 투어의 목적을 비밀로 하지만, 순익이 장 박사로부터 받은 이메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장 박사가 실종된 것이 아니라 토스쿠라는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섬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나도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토스쿠라는 건 영혼의 문이랄까? 이승의 문이랄까……  하여튼 또 다른 문이라는 의미의 말인데…… 그 문이 열리면 자신이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자신의 실체를 선명하게 들여다본다는 뜻이야. (…) 이곳 어느 섬, 정확히 얘기하면 죽음과 탄생의 성지, 그곳에 가면 자신의 토스쿠를 만난다는 거야.” (56쪽)

각각 뚜렷한 개성과 고통스러운 과거를 가진 4인방의 이야기는 장 박사를 찾아가는 거시적 서사 내에 현대인의 고립과 누적되는 상처에 대한 선명한 장면들을 녹여낸다. 이야기 속에 보다 작은 이야기들을 배치하며 작가는 노련하게 소설의 긴장감을 지속시키고 있다.


출처: https://youtu.be/9dB_1HSWd7U


유독폐기물을 싣고 표류하는 유령선,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바다…

민낯으로 드러난 현대 문명의 모순들

『토스쿠』의 주인공 4인은 필리핀의 바다를 항해하며 현대 문명에서만 가능한 광경과 인물들을 만난다. 태성 일행의 배는 짙은 안개 속을 방황하다 다행히 큰 화물선의 도움을 받는데, 놀랍게도 거대한 화물선에 타고 있는 사람은 선장과 선원 1명뿐이다. 선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화물선은 중국에서 정체불명의 화물박스를 싣고 인도네시아의 섬으로 가고 있었으나, 항만관리소의 조사에서 화물박스의 내용물이 유독폐기물이라는 것을 밝혀졌다. 그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어 동남아시아의 모든 항구로부터 입항을 거절당하게 되었고 폐기물을 싣고 중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서 선장과 충직한 선원 1명만이 유령선이 되어버린 배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태성과 승객들은 해류가 모은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 찬 해역을 지나기도 한다.

양동이, 석유통, 필름, 호스, 전선피복, 완구, 선풍기 날개, 화장품 용기, 자동차 램프, 헬멧, 우유병, 푸른색 물탱크, 낚싯대, 햄 포장비닐, 카세트테이프, 구두창, 주사기, 링거액 주머니, 합성피혁, 파이프……. 바다를 뒤덮은 플라스틱들은 너무나 거대해서 바다의 거품을 뚫고 탄생한 새로운 생명체로 보였다. (266쪽)

그들은 플라스틱 바다에서 쓰레기로 작은 시설물을 지어 살았던 사람의 흔적과 시신을 마주하며 현대 문명을 돌아본다. “가상은 때로 현실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법”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러한 광경은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망각해온 모순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성과 과학만으로는 알 수 없는 세계,

또 다른 가능성의 문을 열어젖히는 소설

이 세상에 ‘또 다른 나’가 존재할 가능성은 비이성적인 미신이나 흑마술로 느껴지기도 한다. 『토스쿠』의 인물들은 그 존재의 가능성을 거부하기도,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장 박사를, 또 자신의 토스쿠를 만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떠난 여정에서 번번이 드러나는 것은 이성과 과학의 명쾌한 설명을 벗어나는 세계이다.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주인공들은 필리핀의 사람들과 대자연이 보여주는 ‘또 다른 세계’에 몸을 맡긴다.

인간의 인식과 기계문명의 이기 바깥에서도 이 세계는 생동하고 있다. 『토스쿠』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 가능성의 문을 열어젖힌다.



글쓴이 : 정광모

부산 출생으로 부산대학교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 정책과학대학원을 졸업했다. 2010년 「어서 오십시오, 음치입니다」로 한국소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작화증 사내』로 2013년 부산 작가상을 수상했으며, 장편소설  『토스쿠』로 2015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저서로 『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 『작화증 사내』, 『작가의 드론독서 1』이 있다.


차례

토스쿠

작가의 말 | 소설이 가는 길



토스쿠

정광모 지음 | 46판 336쪽 | 13,800원

978-89-6545-356-7 03810 | 2016년 5월 30일

명쾌한 이성적 사고로 삶을 대하는 로봇공학자 ‘장 박사’의 도움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던 사람들. 그들은 어느 날 장 박사가 필리핀의 작은 섬에서 ‘또 다른 나’를 찾다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생명의 은인을 찾아 나선 그들은 장 박사와 함께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토스쿠 - 10점
정광모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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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시인선 세 번째 시집으로 성선경 시집이 나왔습니다. 

제목이 독특하지요.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라니요. 


봄처럼 푸석해진 

내 마음 어디를 콕 찌르는 시입니다. 






생의 무력함 속에서도 빛나는 일상의 소중함과 정신적 성숙

희망이란 뭐 별건가?

내년이면 아들은 졸업반

등록금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게 어디냐?

나는 다시 힘이 나고 용기가 솟는다

이야 이야 이야오.


-「아주 꾀죄죄한 희망」 부분


그는 궁색하고 누추한 우리 삶의 틈을 벌린 뒤 능수능란한 언어의 촉수를 그 속으로 집어넣어 우리를 간질이고, 나는 저 웃기는 이야기들에 배꼽을 잡는다. _최학림(부산일보 전 문화부장)


무력함과 무상함에 노출된 존재의 원형적 감정의 한 형상을 이번 시집에서 보여주고 있다. _김경복(문학평론가, 경남대 교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삶의 진실을 환기하는 성선경 시인의 신작 시집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가 출간되었다. 등단 이후 여덟 번째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는 은퇴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명태 씨’를 통해 “늙어감의 문제와 관련된 존재의 불가항력적 슬픔과 무력함”(김경복, 해설)을 오롯이 드러내고 있다. 

봄꽃이 피고 지고, 모래가 부서지는 시간의 무상함 속에서 말라빠진 명태처럼 푸석한 자신의 삶을 풍자와 해학, 골계와 아이러니 기법으로 푼 시인의 재치가 인상적이다.


나이 든다는 것, 

존재의 무력감 속에 담긴 서늘함의 시원을 탐색하다


이젠 나도 내리막길인데 아직 내 눈엔

꽃은커녕 한눈파는 것도 쉽지 않다

어쩜 한눈파는 것이 정말 삶이고 인생인데

내려가는 길이 너무 가파르고 경사가 져

나무를 보고 꽃을 보는 일

아직은 내게 너무 어려워

자주 몸이 기우뚱하고 발이 꼬인다


― 「하산(下山)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부분


시인은 늦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시기처럼 스스로의 생애가 이제 장년에서 노년으로 기울고 있음을 명징하게 인식하고 있다.(“생각하면 한로(寒老)/ 나도 한가로이 늙어 갈 수 있을 것인가?”-「한로(寒老)」) 시집의 전편에 걸쳐 쉰 이후에 마주하는 삶의 문제를 고뇌하며 시간의 속절없음과 존재에 대한 사색을 이끌어내고 있다. 


특히 “발이 꼬”여 제대로 된 걸음을 걸어 나갈 수 없는 “내리막길”의 구석에서 느끼는 자기연민의 묘사가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조금씩 생명성을 잃고 사라져 가는 자신에 대한 자조와 슬픔이 “이젠 소리통도 관절염을 앓는”(「탄현(彈絃)」), “나는 이제 누워 있는 부처”(「와불(臥佛)」) 등의 묘사로 변주되면서 ‘늙음’에 대한 시인의 인식이 여과 없이 표출되고 있다.


속물적 삶에 대한 냉소와 부정, 그리고 자기반성


밥벌이는 밥의 罰이다.

내 저 향기로운 냄새를 탐닉한 죄

내 저 풍요로운 포만감을 누린 죄

내 새끼에게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이겠다고

내 밥상에 한 접시의 찬이라도 더 올려놓겠다고

눈알을 부릅뜨고 새벽같이 일어나

사랑과 평화보다도 꿈과 이상보다도

몸뚱아리를 위해 더 종종거린 죄

몸뚱아리를 위해 더 싹싹 꼬리 친 죄

내 밥에 대한 저 엄중한 추궁

밥벌이는 내 밥의 罰이다.


-「밥罰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전문


「밥罰」은 삶의 진실성을 놓쳐버린 것에 대한 비판을 담아, 시인이 자기 징벌의 마음으로 스스로의 시비(是非)를 가리는 시이다. 시집 전편에 깔려 있는 속물적 삶에 대한 혐오의 감정에서 벗어나 자기 현실에 대한 성찰과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태도에 대한 처방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시와 마찬가지로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에는 일상 속에서 빚어지는 자기반성과 성찰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시들이 다수 실려 있다.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생의 소중한 진실을 깨닫는가 하면(세상에 제일 중요한 대화는 말로 하는 게 아니지/ 그저 눈빛으로만/ 너도 여기 좀 봐!”-「아들과 함께 화분에 물주기」), 1급수 맑은 강가에만 살던 쏘가리의 생명력 넘치는 삶이 우리네 일상에도 펼쳐질 수 있음(“저 맑은 물에 쏘가리가 산다네/ 글쎄, 저 맑은 물에 어떻게/ 쏘가리가”-「그곳에도 쏘가리가 산다네」)을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성선경 시인의 신작 시집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에는 지리멸렬한 생의 범속함을 특유의 재치와 정신적 성숙으로 극복하려는 면모가 돋보인다.



성선경

1960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경남대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재학 중 1987년 무크 『지평』,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널뛰는 직녀에게』, 『옛사랑을 읽다』, 『서른 살의 박봉 씨』, 『몽유도원을 사다』, 『모란으로 가는 길』,『진경산수』, 『봄, 풋가지 行』, 시선집 『돌아갈 수 없는 숲』, 동요집 『똥뫼산에 사는 여우』(작곡 서영수), 시작에세이 『뿔 달린 낙타를 타고』, 산문집 『물칸나를 생각함』을 냈다. 경남문학상, 월하지역문학상, 마산시문화상, 시민불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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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성선경 지음|문학|46판 양장|168|10,000원

2016년 3월 15일 출간ISBN : 978-89-6545-341-3 03810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삶의 진실을 환기하는 성선경 시인의 신작 시집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가 출간되었다. 등단 이후 여덟 번째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는 은퇴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명태 씨’를 통해 “늙어감의 문제와 관련된 존재의 불가항력적 슬픔과 무력함”(김경복, 해설)을 오롯이 드러내고 있다. 봄꽃이 피고 지고, 모래가 부서지는 시간의 무상함 속에서 말라빠진 명태처럼 푸석한 자신의 삶을 풍자와 해학, 골계와 아이러니 기법으로 푼 시인의 재치가 인상적이다.









석간신문을 읽는 명태 씨 - 10점
성선경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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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온수입니까

중견소설가 김춘복이 『꽃바람 꽃샘바람』 이후 17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칼춤』을 출간하였습니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소설가가 된 준규와 밀양 검무기생 운심의 환생인 은미의 운명 같은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또한 『칼춤』은 두 남녀 간의 사랑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국면을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작가는 두 주인공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시대의 대립이 완화되길 바라며 장장 10여 년에 걸쳐 소설을 집필하였다고 회고하셨습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사회와 사랑을 알아가는 한 개인에 초점을 맞춘 성장소설로서, 1970년대 유신 체제를 겪던 시절부터 2000년대 초 현재까지 30여 년의 세월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고요. 이처럼 김춘복의 장편소설 『칼춤』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역사의 진실과 흘러가버린 옛사랑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그 시대를 겪지 않았던 이들에게 서사적 재미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기녀 운심의 발자취를 좇으며 재회하는 첫사랑의 그림자


봉분을 종횡무진으로 넘나들면서 한 자리에 정지했다가 쏜살처럼 달아나기도 하고, 달아났다가는 되돌아오고, 잠시 내려앉을 듯싶은가 하면 갑자기 허공으로 솟구치곤 하는 기생나비의 현란한 몸짓을 따라잡으면서, 나는 마치 무덤에서 나와 칼춤을 추고 있는 운심이의 혼령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동시에 쌍칼을 휘두르며 연풍대를 도는 은미의 춤사위와도 겹쳐진다. _본문 65쪽.

S예전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준규는 조선시대 기생 ‘운심’의 소설 집필을 위해 운심의 묘소를 방문한다. 그는 운심의 묘소 자리를 캠코더로 촬영하다 순간 카메라 렌즈에 달라붙은 기생나비 한 마리를 발견한다. 마치 무덤에서 나와 칼춤을 추고 있는 운심의 혼령을 보고 있는 듯하며, 과거 대학 시절, 쌍칼을 휘두르며 춤사위를 보여줬던 첫사랑 은미의 이미지와 겹쳐지기도 한다. 준규는 소설 집필을 멈추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지난 30여 년의 숨 가쁘던 인생사를 돌아본다.


밀양 검무기생 운심의 이야기를 차용한 맛깔스런 사건 전개


밀양시 상동면 신안마을에는 조선시대 검무의 명인인 운심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운심은 박제가의 「검무기」, 박지원의 『광문자전』 등을 통해서 인용될 정도로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조선 시대 여인이다. 밀양의 관기로 있을 때 운심은 사대부 출신의 한 관원을 깊이 사랑했는데, 기생과 양반이라는 신분 차로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내가 죽거든 관원이 왕래하는 영남대로가 잘 보이는 고향 근처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관원에 대한 사랑이 깊었던 운심은, 김춘복의 소설 속에서 현대를 배경으로 새롭게 부활한다. 이 소설은 고향에 내려온 주인공이 집안 어른들의 이념 차로 이별했던 첫사랑을 되찾는 일련의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작가는 조선시대 검무기생 운심의 스토리를 연구하여 현대물에 극적으로 적용하는데, 운심이 평생토록 흠모했던 관원은 소설가 박준규로, 밀양 최고의 검무기생 운심은 밀양검무를 전수받은 최은미 무용가로 묘사하여 운심의 이야기를 소설 전개에 맛깔스럽게 되살리고 있다.


전생과 이승을 넘나드는 30여 년의 사랑을 그리다

운심의 이야기를 차용한 것과 걸맞게 소설 『칼춤』의 전개 또한 전생과 현생을 넘나들며 숨 가쁘게 진행된다. 대학생 준규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가담하여 고된 고문을 겪고 군대에 다녀오는 사이 사랑하던 연인 은미와 생이별을 겪고, 이후 출판사 편집자가 되어 원고에서 옛 사랑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준규는 또한 운심의 무덤 앞에서 기묘한 꿈을 꾸면서 은미와의 추억을 더듬는데…. 준규가 집필하려는 소설 속 인물 운심과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되뇌는 은미. 준규의 기억의 조각들은 어떻게 결합될 것인가. 김춘복의 장편소설 『칼춤』은 주인공 준규의 30여 년에 걸친 인생사를 돌아보며 전생과 현생을 넘나드는 운명적 사랑을 그리고 있다.


칼춤

김춘복 지음 | 문학 | 신국판 | 336쪽 | 15,000원

2016년 1월 20일 출간 | ISBN : 978-89-6545-324-6 03810

중견소설가 김춘복의 신작 장편소설.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소설가가 된 준규와 밀양 검무기생 운심의 환생인 은미의 운명 같은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세월을 그려내 역사의 진실과 흘러가버린 옛사랑에 대한 진한 그리움, 그리고 서사적 재미를 선사한다. 작가는 두 주인공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시대의 대립이 완화되길 바라며 장장 10여 년에 걸쳐 소설을 집필하였다.



지은이 : 김춘복

1938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중·고등학교를 거쳐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고교 등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1959년 단편 「낙인」으로 『현대문학』에 초회 추천을 받은 이래, 오랜 침묵을 지키다가 1976년 장편 『쌈짓골』을 『창작과비평』에 연재함으로써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쌈짓골』·『계절풍』·『꽃바람 꽃샘바람』, 중단편집 『벽』, 향토탐구영상물 〈미리벌 이야기〉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현재 한국작가회의·경남작가회의·밀양문학회 고문으로, 향리인 밀양 얼음골에서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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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 10점
김춘복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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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폴란드의 대표 여성 소설가 엘리자 오제슈코바의 『마르타』가 출간됐습니다. 『마르타』는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은 불행한 여인이자 한 아이의 어머니인 주인공 마르타의 필사적인 삶을 그리고 있는데, 한 여인이 남편 없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사회로 나오면서 겪는 일들을 통해 근대 유럽의 산업화, 근대화 과정에서 여성의 생존권과 존재 방식, 그리고 교육에 대한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루고 있습니다.

 

『마르타』는 1873년 폴란드어로 출간된 이후 1910년 프랑스, 1927년 일본(『과부 마르타』로 출간) 등에서 출간됐으며 총 15개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1월,

한국어로 번역된 마르타가 독자 여러분들을 찾아옵니다.    

 


 

 

1873년 폴란드 바르샤바,

하루아침에 무자비한 사회 한복판에 던져진

25살 과부 마르타의 이야기

마르타 MARTA


 

 

 

 

 

 

 

“이 세상에서 여자란 무엇인지 너 자신에게 물어본 적 있어?”

1870년대 산업화, 도시화의 사각지대에 놓인

 한 여성에게 덮친 비극

 

  『마르타』는 1873년 <주간 유행소설>에 연재된 작품으로 스물다섯의 젊은 과부 마르타의 자립을 위한 노력과 불행한 운명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마르타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공무원인 남편과 어린 딸과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병으로 죽고, 스물다섯에 젊은 과부가 된 마르타는 딸아이와 함께 살아나가야 했다. 그녀는 자신과 아이의 위해서 빵 한 조각이라도 얻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고, 처음으로 가정을 벗어나 여성으로서 사회, 직업, 노동 이라는 현실과 마주한다.

 

“그리고 그 과목들은 거의 남자들이 차지하고 있어요.”

“남자들이요.”

마르타는 중얼거렸다.

“왜 전부 남자들이지요?”

소장은 다시 ‘당신은 어디서 왔어요’라고 묻는 듯한 눈으로 마르타를 향해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

“남자들이 남자들이니까 그렇지요.”

마르타는 아무것도 모른 채 세상을 살아온 행복한 여성의 세계에서 왔다. 그래서 그녀는 직업소개소 소장이 한 말에 대해 잠시 생각에 잠겨야 했다. 난생처음 그녀에겐 이 사회가 복잡하고 의문스럽고 혼돈스럽고 불명확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그런 불명확한 의문도 마르타에겐 무의식적으로 고통스럽게 느껴졌지만, 자신에겐 아무 가르침이 되지 못했다. (52~53쪽)

 

  소설은 여성이 교육과 노동에서 소외된 당시의 사회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사회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의 존재를 보여준다. 마르타는 자신과 딸을 옥죄여오는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여러 일자리를 전전한 끝에 재봉사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재봉사로서의 경력이 없었던 마르타는 노동자를 착취하고 부당하게 대우하는 작업장에서 일하게 됐고, 턱없이 적은 임금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햇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공간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받은 일주일치 수당으로는 아이의 밥값과 집세, 기타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고 나며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노동 착취와 부당한 임금임을 알면서도 직업을 위해 받은 교육이나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한 인식 등의 걸림돌로 인해 이 일을 계속 할 수밖에 없는 마르타를 통해 당시의 여성과 노동자의 불행한 삶을 유추해볼 수 있다.

 

‘두 달치 집세 사십오 즈워티도 내야 되고…… 가게엔 이십 즈워티의 외상이 있고…… 지난 번 모피 옷은 백 즈워티에 팔았는데…… 육십…… 지금 사십이 남아 있고…… 얀치아 신발을 꼭 사줘야 하고, 내 것도 이미 떨어졌는걸…… 땔감도 구해야 하고…… 저 아인 언제나 추위에 떨며 지내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르타는 짧지만 메마르고 고통스러운 기침을 했다. 그녀가 슈베이츠 부인의 작업장에서 직공으로 일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마르타는 무척 변했다. (180쪽)

 

  실증주의 작가로 유명한 엘리자 오제슈코바는 리얼리즘 성격의 문학을 통해 변화하는 사회의 그림자 속에 놓인 여성에 집중했다.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당시 사회의 모습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현실을 인식하고 이를 타개해나가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우리는 무엇으로 행복을 만들어갈 것인가?

 

『마르타』는 산업화, 근대화 과정에서 여성의 생존권과 존재 방식에 대한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룬 폴란드 장편소설입니다. 먼 나라의 이야기이지만, 이 작품 속 주인공은 오늘날 우리 여성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옮긴이 후기_337쪽)

 

  『마르타』는 당시에 출간된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비극적 상황에 빠진 여주인공을 자선이나 사회의 도움과 같은 환상에 기대게 하지 않고 자본주의 사회의 밑바닥으로 밀어 넣는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풍족하게 살았던 마르타가 가진 것 하나 없이 사회에 나왔을 때, 만나게 되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다. 큰 저택에 사는 유명 문학가의 부인 마리아 루진스키, 슈베이츠 부인의 재봉소에서 일하는 동료들, 예쁜 얼굴로 남자에게 의지해 살아가는 카롤리나 등 소설 속에서 마르타가 만나게 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명암과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의 여성의 삶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법률과 풍속으로 보면 여자는 사람이 아니야. 여자는 사물이라고. 머리 돌리지 마. 내 말은 진실이야. 아마 상대적일지는 몰라도, 진실이야. 네가 사람을 만나보고 싶으면? 그러면 남자를 만나면 돼. 남자들 개개인은 이 세상에서 제 스스로 살아가지만, 그 남자들은 숫자 0으로 존재하지 않으려고 무슨 숫자를 옆에 써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하지만 여자는, 그 여자 옆에 채워주는 숫자처럼 남자가 서 있지 않으면 숫자 0이 되는 거야. (244쪽)

 

  소설 속 각 계층의 인물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도덕성은 다르게 표현된다. 상위 계층으로 묘사되는 유명 문학가의 부인 마리아 루진스키는 자국의 여성들에게 노동의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하며 도덕적 의무를 다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마르타의 어린 시절 친구로 나오는 카롤리나는 힘든 시절을 보낸 뒤 여자로서 자립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며 남자만이 자신의 삶을 이어가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점은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마르타가 삶과 행복을 만들어가기 위한 방식과 생각이 변한다는 것이다. 소설 초반, 마르타는 가정교사라는 괜찮은 보수의 일자리를 구하게 되지만,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느끼며 그 일자리를 거절한다. 또한 타인으로부터 아무런 대가 없이 받는 돈에 수치심을 느낀다. 하지만 팍팍한 삶과 녹록지 않은 일자리가 계속될수록 동정심으로 건네받은 돈에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빵과 땔감을 살 수 있음에 안도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작가는 가난으로 인해 한 개인의 생각과 도덕적 양심까지 변해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실제 그녀의 머릿속에는, 며칠 전 원고 안에 넣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서점 주인이 이번에도 자신을 위해 뭔가를 넣어두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르타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주지 않다니, 아쉽군!’(…) 아, 이 얼마나 큰 변화인가. 몇 달 전 마르타가 처음 동냥을 받았을 때는 부끄러움의 고통으로 몸서리쳤지만, 지금은 그 동냥조차도 받지 못해 애석해 하고 있다. (282~283쪽)

 

   최근 부모의 재산과 직업적 영향력에 따라 계급을 구분하는 ‘수저론’과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를 꼬집는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회자되고 있다. 극심한 취업난과 보이지 않는 희망 속에서 어느 때보다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 『마르타』가 전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고 강력하다. 취업, 여성, 노동, 교육 등의 사회적 문제는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실제적이며 오늘날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현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마르타』를 통해서 우리가 이 시대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조건과 각박한 사회 속에서 진정한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마르타

 

엘리자 오제슈코바 지음 | 장정렬 옮김| 문학 | 국판 | 352쪽 | 15,000원

2016년 01월 14일 출간 | ISBN : 978-89-6545-330-7 03890

 

폴란드의 대표 여성 소설가 엘리자 오제슈코바의 장편소설.

『마르타』는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은 불행한 여인이자 한 아이의 어머니인 주인공 마르타의 필사적인 삶을 그리고 있는데, 한 여인이 남편 없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사회로 나오면서 겪는 일들을 통해 근대 유럽의 산업화, 근대화 과정에서 여성의 생존권과 존재 방식, 그리고 교육에 대한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루고 있다. 작가는 사회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이 작품을 통해 여성이 교육과 노동에서 소외된 사회 시스템을 강하게 비판한다.

 

 

지은이 : 엘리자 오제슈코바(Eliza Orzeszkowa)

엘리자 오제슈코바(1841~1910)는 폴란드 대표 여성 소설가로 현대 사실주의 소설의 중요 작가다. 그녀는 아버지가 남긴 도서실에서 폭넓은 지식을 쌓으며 자랐고 16세에 결혼한 남편 피오트르 오제슈코프의 영지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1863년 폴란드의 독립을 위한 반란을 돕는다. 반란에 가담했던 남편이 시베리아로 유배를 당한 뒤, 그로즈뇨(Grodno)로 이사한 오제슈코바는 귀족을 비난하며, 농민과 유대인에 대한 권리와 사회평등 등의 진보적 사상을 담는 글을 쓴다. 소위 폴란드 실증주의(Positivism)의 세대에 속하지만 인간의 도덕적 타락을 강조하는가 하면 다른 실증주의 작가들처럼 작품에서 사회적 각성을 주장했으며, 수십 편의 장편소설과 단편소설 등 50여 권에 이르는 작품들은 19세기 ‘폴란드인의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옮긴이 : 장정렬

1961년 창원 출생. 부산대학교 기계공학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무역대학원을 졸업한 뒤 현재 거제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에스페란토청년회 회장과 한국에스페란토협회 교육이사를 맡았고, 지금까지 에스페란토 교육과 번역에 힘쓰고 있다. 에스페란토를 한국어로 번역한 책으로는 『꼬마 구두장이 흘라피치』, 『봄 속의 가을』, 『정글의 아들 쿠메와와』, 『산촌』, 『세계민족시집』 등이 있고, 한국어를 에스페란토로 번역한 책으로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언니의 폐경』, 『님의 침묵』 등이 있다.

 

 

 

 

마르타 - 10점
엘리자 오제슈코바 지음, 장정렬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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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단디SJ

산지니 시인선 시리즈의 열두 번째 시집 나이지리아의 모자가 출간되었습니다.

새로운 감각으로 여러분을 안내할 신정민 시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검은색은 현상일 뿐

검은 것 아닌 검은색 가까이 다가가 보자

                            ― 「색깔빙고」 부분


익숙함에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해내는 신정민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나이지리아의 모자』가 산지니에서 출간되었다. 신정민 시인은 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시 「돌 속의 길이 환하다」로 당선되어 “상상력을 현실적으로 구체화시키는 개성적 힘”이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나이지리아의 모자』는 시인의 최근 작품 58편을 만날 수 있는데, 무엇보다 이번 시집에서 주목할 것은 시인이 일상의 소재들을 통해 현실에 밀착된 시어들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를 현실 그 자체가 아닌 마치 추상미술을 그리듯 “현실의 탈(脫)현실화를 지시하는 비유적 표현”(고봉준 평론가)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문학이 문학일 수 있는 것, 바로 일상을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인만의 감식안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정민 시인은 이러한 직관의 눈으로 자신을 둘러싼 일상을 균열하여 세계 안의 미세한 틈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번 시집은 시인의 언어로 만들어낸 세계의 균열을 표현해낸 결과물인 셈이다.


처음 보는 얼굴처럼

익숙함을 거부하는 일상의 비(非)일상화


내 머릿속에는 얼굴을 지워주는 가게가 있다


배꼽 근처의 타투를 지우듯

당신이 누구였는지 알아볼 수 없게

생전 처음 보는 얼굴로 바꿔주는 곳


(…)


아름다운 건 늘 처음 보는 것


생각날 듯 끝내 생각나지 않는

화이트 아웃 혹은 블랙아웃을 포장해주는 집


다양한 이목구비

헤어지면서 잊어버릴 수 있게

부위별 깜짝 구매가 가능한 곳


방바닥에 귀를 대고 아래층 소리를 엿듣는

목요일이었던 남자를 읽는 깊은 밤까지

기어이 잊어주는 곳이 있다

                               ― 「방추상회」 부분


이번 시집에서는 시인의 미학적 태도가 분명하게 견지되는 시편이 더러 있다. 대표적인 시가 「방추상회」이다. 뇌에서 얼굴에 대한 정보 처리 역할을 담당하는 ‘방추상회’라는 이름에서 시인은 ‘가게’라는 발상을 이끌어내고, “아름다운 건 늘 처음 보는 것”이라는 진술을 통해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예술의 기능을 도찰해낸다. 이는 개성적인 시선을 통해 비일상적 맥락을 발견해내는 시인의 “일상의 비(非)일상화 전략”으로서, 이질적인 시어와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이끌어내는 시인의 문법이 주목되는 구절이다. 한편 「색깔빙고」에서는 “흑백”, “회색”, “새빨간”, “검은색”, “흰색” 등의 색상을 통해 놀이하듯 시어들을 풀어내고 있는데, 어떠한 논리적 연관 없이 낯선 문법을 통해 독자들을 새로운 감각의 세계에 초대하고 있다.


어머니가 되기 좋은 나라에서 온 편지

답장 대신 모자를 뜬다

시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단어들만 있고 그리움이 없다면

내일은 오겠지만 당신이 없다면

어머니가 되기 좋은 나라에서 온 편지

답장 대신 모자를 뜬다

시는 사랑이 쓰는 거라서

그리움만이 단어를 찾아 떠나고

당신이 없다면 내일도 없다고

손끝에서 태어나는 모자

생명과 두려움

그 둥근 실타래를 풀어 뜬다

              ― 「나이지리아의 모자」, 부분


표제작 「나이지리아의 모자」는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갈 운명을 지니고 태어나는 나이지리아 아이들에 대한 시인의 인간적 유대와 연민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일상의 비(非)일상화 전략”이 관통하는 이번 시집에서 다소 이질적인 작품이나, ‘벽화마을’의 모순적 풍경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여우의 빛」, 언어적 표현법에 대한 자의식을 담고 있는 「좋아한다는 것」과 함께 “빈곤”과 “굴욕”이라는 부조리한 현실을 향한 시인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한 NGO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먹먹한 감정을 풀어내고 있는 시이다. 이처럼 시인은 나이지리아의 아이들을 상상하며 문학과 삶, 언어와 세계 사이의 간절한 연결선을 시어로 “풀어 뜬다”. 문학과 삶이 동떨어지지 않는 시인의 태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표제작이다.


나이지리아의 모자

신정민 지음 | 문학 | 국판 | 144쪽 | 10,000원

2015년 12월 31일 출간 | ISBN : 978-89-6545-328-4 03810

익숙함에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해내는 신정민 시인의 네 번째 시집.시집 『나이지리아의 모자』는 시인의 최근 작품 58편을 만날 수 있는데, 무엇보다 이번 시집에서 주목할 것은 시인이 일상의 소재들을 통해 현실에 밀착된 시어들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를 현실 그 자체가 아닌 마치 추상미술을 그리듯 "현실의 탈(脫)현실화를 지시하는 비유적 표현"(고봉준 평론가)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글쓴이 : 신정민

1961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2003년 부산일보 신춘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꽃들이 딸꾹』, 『뱀이 된 피아노』, 『티벳 만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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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학상, <경북일보> 문학대전 금상을 수상하며 무섭게 떠오른 늦깎이 신예 소설가 김득진의 첫 번째 소설집이 출간되었습니다. 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인 중편 「아디오스 아툰」을 비롯해 총 여섯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2014년 단편 「나홋카의 안개」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득진 소설가는 다양한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등단 후 짧은 시간 안에 그만의 특유한 스타일을 구축하였습니다.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단한 삶을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덤덤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보험 가입, 도시재개발 사업, 기업 운영, 참치 어획 등 현실과 밀착된 소재를 통해 도시인의 불안을 그린 『아디오스 아툰』. 소설집은 여섯 편의 이야기로 독자에게 인간의 실존과 자본주의 시스템의 부조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삶을 버텨내고 있는 현대인의 이야기

아디오스 아툰





부표처럼 떠도는 뱃사람들의 인생사

나의 지나온 삶을 지레짐작하고서 곁눈질로 지켜봐주는 선장의 존재는 아버지와도 견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나에게 불빛도, 사람의 기척도 없이 스스로의 밝음으로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야 하는 배 위에서의 삶은 고독과의 처절한 싸움판과도 같았다. (…) 불빛이 사라진 뒤면 파도 소리만 간간이 스쳐 지나가는 절대 고독의 세상으로 배와 내가 한 몸이 된 채 스며들었다. 몸을 스쳐가는 무풍지대의 적막은 되돌아온 편지만큼이나 허허로웠다. 그럴 때면 바다와 싸워서도 결코 지는 법이 없었던 선장의 고함 소리가 기관실까지 들려왔다. _「아디오스 아툰」, 156-157쪽.

표제작 「아디오스 아툰」은 참치잡이 선단의 기관장으로 일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담긴 정통 해양소설이다. 젊은 시절, 함께 결혼을 맹세했던 여자가 자신을 배신하고 미국으로 떠난 것에 분노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선상에서 함께 지내는 사람들 모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연 많은 안타까운 이들이다. 특히 자기 자식이 아닌 아이와 아내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선원이 된 마이클과, 망망한 바닷가에서 조난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뒤 선원생활을 함께한 톰이 ‘나’는 계속해서 눈에 밟힌다. 이제 주인공은 구식의 참치조업 방식을 그만두고 최신식의 원양어선을 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과거 원양어선을 타며 겪었던 선상생활이나 사람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최신식 선박에 잡혀 죽어가는 참치에게 작별을 고한다.


불안의 현실을 메우는 노동의 자리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서술로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을 포장 없이 그려내고 있는 게 이번 소설집의 한 가지 특징이라면, 연극적 요소와 몽환적인 작품 분위기를 통해 작품집의 다양성을 풍부하게 하고 있는 것은 또 다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작가의 기업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된 소설 「어떤 각본」은 의사소통의 힘겨움을 겪고 있는 자본주의 인간 군상을 핍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이한 화법을 가진 친구의 아내 p에게 차용증서를 받아내려고 하는 ‘나’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까지의 일화를 통해 서로의 말과 말이 어긋나는 데 있어 언어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어떤 각본」 中

한편, 불안한 현실을 살고 있는 도시인의 삶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보험을 갈아타다」는 주목할 만하다. 남편의 월급과 아들의 그럴듯한 직장을 두고 보험이라고 표현하는 ‘나’. 그런 주인공에게 보험설계사 친구 N의 보험상품 가입 권유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현대인의 경제적 불안을 ‘보험’이라는 자본주의 시대의 발명품을 통해 풀어내고 있는 작품이다. 고용 못지않게 노동자들의 작업환경 또한 불안한 처지에 놓여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사일로를 고치다」에서는 기계문명이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 시대, 소외되고 있는 인간의 노동여건에 주목한다. 비닐시트 생산 공장에 근무하는 ‘나’는 동료 ‘ㅊ’과 25층 높이의 고층에서 기계를 고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과잉업무에 지친 ‘ㅊ’에게 회사는 납품기일에 맞춰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도록 무리하게 요구하는데…. 최소한의 안전장치 없이 묵묵히 일과를 마무리하다 추락사한 동료의 안타까운 사연을 그리며, 작가는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독자에게 묻는다.


「보험을 갈아타다」 中

표제작과 마찬가지로 해양소설 작품인 「나홋카의 안개」 또한 건설현장의 일용직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 불안한 고용을 전전하던 주인공이 러시아 기지에 있는 수산회사의 육상 근무자 생활을 하며 겪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위안부 생활을 했던 고려인 여성의 아픈 역사와 함께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고려인 후손의 삶을 몽환적 분위기 속에서 그려낸다. 

마지막으로, 「오래된 집」은 폭력에 관한 소설이다. 도시 재개발로 강제 철거가 이루어지고 있는 동네에서 성폭력 사건이 벌어지자 주인공은 예의주시한다. 비슷한 사건을 겪었던 아픈 가족사 때문인데, 주인공은 과거를 회상하며 현실이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절망한다. 유년 시절의 아픈 가족사와 현재의 범죄적 상황이 잘 연결된 소설로서 한 가지 불행의 은폐가 곧 또 다른 범죄로 재생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씁쓸한 작품이다.


아디오스 아툰

김득진 지음 | 문학 | 국판 | 212쪽 | 13,000원

2015년 12월 31일 출간 | ISBN : 978-89-6545-327-7 03810

제8회 해양문학상 수상작인 중편 '아디오스 아툰'을 비롯해 총 여섯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김득진의 첫 소설집. 2014년 단편 '나홋카의 안개'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득진은 다양한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등단 후 짧은 시간 안에 그만의 특유한 스타일을 구축하였다. 보험 가입, 도시재개발 사업, 기업 운영, 참치 어획 등 현실과 밀착된 소재를 통해 도시인의 불안을 그린 '아디오스 아툰'. 소설집은 여섯 편의 이야기로 독자에게 인간의 실존과 자본주의 시스템의 부조리를 드러내고 있다.


글쓴이 : 김득진

2014년 <동양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나홋카의 안개」로 등단하였다. 중편소설 「아디오스 아툰」으로 2014년도 해양문학상 최우수상을 받았고, 「떠돌이 개」로 2015년도 <경북일보> 문학대전 금상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커피를 훔친 시』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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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오스 아툰 - 10점
김득진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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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소개하는 마지막 신간입니다. 간단히 편집 후기를 덧붙이자면,

이번 책 출간을 준비하면서 저자와 처음 직접적인 인연을 맺었습니다. 책 작업은 늘 조심스럽지만, 처음 인연을 맺은 저자와 진행하는 작업은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원고를 읽고, 저자의 연구 깊이가 느껴진다고 할까요. 꼼꼼하고 단단하게 쓰인 원고 덕분에 원고를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었습니다. 연구서라고 해서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한국문학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소수자를 다룬 한국문학에 대한 분석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책 소개 할게요. 말투가 바뀌었다고 놀라지 마세요. 보도자료도 편집자가 쓴 거랍니다 하..하... 간혹 서점에서 써주는 거라고 오해하시는 분들이^^';;그럼 올 한해 마지막 신간 소개. 응원의 의미로 글 마지막에 있는 하트도 꾹 눌러주세요.





개인주의와 전체주의를 넘어 공통성과 단독성을 사유하다

                                                                 


경쟁에 내몰려 원자화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공동체 감각의 회복이 중요시되고 있다. 저자는 이미 전작 『공동체의 감각』(산지니, 2010)에서 2000년대 한국문학을 대상으로 공동체의 감각에 대한 문제를 살펴봤다. 『공통성과 단독성』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공동체 사유에 필수적인 공통성과 타인의 차이를 인정하는 단독성의 고민을 집요하게 다루고 있다.


인종, 국가, 민족, 계층 등 자신을 구분 짓는 틀에서 벗어나 서로가 가진 공통성을 깨닫는다면, 다른 존재와 만나 소통하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공통성을 찾기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단독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타자에 대한 폭력은 타자의 단독성에 대한 인식 부재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독성은 차이를 인정하고 소통을 발생하게 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게 한다. 지금과는 다른 대안적 사유도 모색할 수 있다.


저자는 추상적일 수 있는 논의를 시, 소설, 이론비평 등 다양한 텍스트를 통해 설득력 있게 펼친다. 『나마스테』, 『완득이』, 『로기완을 만났다』, 윤동주, 하종오 시 등 최근 한국문학 작품으로 한국사회의 담론을 심도 있게 고찰했다. 더불어 낭시, 랑쇼, 네그리, 하트 등의 이론을 바탕으로 공통성을 비교 분석하는 점도 흥미롭다.



한국문학을 통해 본 공통성

                                                                 



1부에서는 공통성을 유한성이나 취약성과 같이 결핍의 관점에서 논의했다. 박범신 소설『나마스테』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카밀과 미국에서 무적자 신세였던 신우는 신분은 다르지만 서로의 공통성을 확인하면서 소통의 문을 연다. 김려령 소설 완득이에서 난쟁이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완득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다문화가정에 대한 인식을 살필 수 있다.


2부에서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면서 이 고통이 우리에게도 열려 있음을 시사한다. 조해진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에서 소설 속 주인공이 ‘로’를 찾는 과정에서 자신과 주변 인물의 상처를 돌아보고 공통된 폭력과 지배관계를 인식한다. 「후쿠시마 원전재난 이후 한국시」는 고리원전, 밀양송전탑 관련 시를 다루며 두 사이에 있는 공통된 정서를 살펴본다.


                                     

단독성에 대한 인식을 심화    

                                                                 



집단주의는 개체들의 단독성을 제거하고 그들을 집단에 종속된 이들로 만들어버린다. 이러한 예속의 상태에서 개체는 타자와 소통할 수 없다. 자신에게 부여된 위치 바깥에 존재하려는 단독자의 탈자화하는 행위 속에서 차이와의 조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_「전성태 소설에 나타난 단독성과 소통의 전제」, 301쪽


3부에서는 단독성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뤘다. 저자는 전성태 소설을 분석하며 단독성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켰다. 개인 고유의 단독성을 제거하는 집단주의의 폭력과 거기에 예속된 개인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윤동주 시가 민족 저항의 시로 머물러 있는 점을 안타깝게 여기며, 집단에서 벗어나 자신의 행위에 책임지는 단독자의 자세에 주목했다.



소수자를 다룬 한국문학 작품 주목

                                                                 



한국문학에서 이주민, 탈북자, 다문화가정 등 소수자를 다룬 작품을 다수 분석했다. 저자는 우리보다 소수자들이 못한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한 점을 꼬집으며, 이는 식민주의를 살아온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모습이라고 말한다. 혹시 우리가 가해자의 지배 방식을 답습하고 억압과 종속의 관계를 확산하고 있는 게 아닌지 스스로 점검해보길 권하다. 


공통성과 단독성에 대한 인식이 지배와 종속 관계로 이루어진 식민주의 관계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방법이라며,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실천하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 소개   허정                                            

1971년 경남 의령에서 출생하여 초등학교 5학년 이후 부산에서 살고 있다. 1996년먼곳의 불빛」을 『창작과비평』에 실으면서 문학평론 활동을 시작하였고, 2008년 동아대학교에서 임화 시 연구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먼곳의 불빛공동체의 감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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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성과 단독성


허정 지음 | 문학 | 신국판 456 | 30,000

2015년 12월 14일 출간 | 978-89-6545-326-0 93810


경쟁에 내몰려 원자화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공동체 감각의 회복이 중요시되고 있다. 저자는 이미 전작 『공동체의 감각』(산지니, 2010)에서 2000년대 한국문학을 대상으로 공동체의 감각에 대한 문제를 살펴봤다. 『공통성과 단독성』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공동체 사유에 필수적인 공통성과 타인의 차이를 인정하는 단독성의 고민을 집요하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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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성과 단독성 - 10점
허정 지음/산지니

공동체의 감각 - 10점
허정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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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온수입니까

 

조미형 소설집

『씽푸춘, 새벽 4시』

 

 

  등단 후 10여 년만에 출간되는 조미형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씽푸춘, 새벽 4시』

 200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다시 바다에 서다」와 신작 소설 「나비를 보다」와 「연지연 꽃이 피면」을 포함해 총 7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지금부터 진한 삶의 농도를 가진 조미형 작가의 소설들을 만나보자.

 

 

 

 

 

 

 

 

비인간적인 사회의 논리 속에 갇힌 사람들


  이번 작품집에 수록된 단편소설들은 인물들의 희망이나 의지를 부질없는 것으로 나타낸다. 이는 자본주의적 풍경의 한 모습으로, 개인의 삶을 짓밟는 비정한 시장의 논리이자 힘의 지배다. 소설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씽푸춘, 새벽 4시」는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나’는 사업 실패 후 중국 통링에서 생가죽 무두일을 하며 사채업자 장두목에게 시달리는 빚의 노예가 된다. 사랑하는 아내는 사채업자에게 끌려가 고초를 당해 죽음을 맞지만 ‘나’는 이를 현실로 인정하지 못한다. 아내의 약값과 고향으로 돌아가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행동은 ‘나’를 더 깊은 수렁으로 몰고 간다.

 

  장 두목이 쓰러진 내 얼굴을 발로 짓이겼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덜커덩거리는 창문 소리만 났다. 다행히도 두 개의 눈알은 제자리에 있었다. 왼쪽 무릎에 뭉개진 양파가 들러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 나는 은근히 장 두목의 쌍칼을 기다리고 있었다. 통링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토함산 자락, 아름드리 소나무로 둘러싸인 고향 집에 가고 싶었다.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면 죽어서라도 가리라 마음먹고 있었던 터였다. 꿈길에서 본 고향 집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65쪽)

 

「씽푸춘, 새벽 4시」가 냉혹한 세계 속에서 폭력, 착취로 얼룩진 개인의 고통을 보여준다면 「나비를 보다」는 도시를 구성하는 비인간적 시스템에 개인의 희생을 강요당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도시철도 기관사인 주인공 ‘나’는 도시의 정확한 시간을 지키기 위해 매일 초 단위로 시간에 신경을 쓰며 하루의 대부분을 지하에서 보낸다. 이러한 주인공의 일상은 살아 있는 도시를 만드는 하나의 부속품으로 작용하지만 정작 개인의 삶은 무기력 속으로 빠지게 된다.

 

  직속 관리자인 팀장은 바뀐 운행스케줄에 대해서 언급조차 없이 안전운행만을 강조했다. (…)“도시 철도는 사람의 혈관과 같은 역할을 하지 않습니까. 누군가의 실수로 흐름에 문제가 생기면 도시 전체가 마비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괜히 졸다가 나비를 봤네, 어쨌네 하지 말고, 신속 정확하게 도착과 출발에 신경 쓰도록!”
팀장은 턱을 내밀고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144쪽)


  기관사의 기계적인 삶은 동료인 예비신랑 윤이 없어진 시점부터 점차 균열이 일어난다. 돌발승객으로 인해 열차가 지연되고, 안구건조와 피로 누적으로 전동차는 정차 위치를 벗어났으며, 출발하려는 순간 날아오른 신문지를 사람으로 오인해 ‘나’는 비상 브레이크를 당긴다. 1초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던 주인공의 삶에 이러한 균열은 공공성의 힘에 눌려 있었던 개인의 상처를 발견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자유를 일으켜 세운다.

 

 

 

사랑이라는 미망과 착각에 빠지다

 

  「씽푸춘, 새벽 4시」와 「나비를 보다」에서 보인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은 우리를 구원해주는 것일까? 이에 대해「다시 바다에 서다」와 「잉커송」 두 작품은 사랑의 실체와 마주하면서 암울한 사회에서 사랑은 도구로 쓰일 뿐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함을 보여준다.

 

  그의 시선이 커다랗게 일그러지며 내 얼굴에 꽂힌다. 그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하지만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나였다. 산소마스크를 끼고 의식불명 상태로 누워 있어야 할 그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출렁이는 바다 위에 서 있는 듯 다리가 후들거렸다. (36~37쪽)

 

  「다시 바다에 서다」는 외화 번역자인 정미아와 신인 영화배우이자 전직 카레이서 배우 신제민의 만남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정미아에게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사회생활은 몹시 불편한 일이다. 그래서 “선택한 공간은 가상의 공간”으로 회화 번역을 하며 이름에 특별한 의미가 없는 영화 속 가상의 인물들만 만난다. 그런 정미아에게 제민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능력을 알아봐준 사람이다. “관계를 규정지을 만한 단어가 없”는 사이라는 사실이 당혹스럽지만, 미아는 제민이 자신의 현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라 생각한다. 이후 제민이 영화 촬영 중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지고, 미아는 지독한 불면증을 앓기 시작한다. 제민의 사고 장면이 담긴 영화가 개봉을 하고 이를 본 미아는 제민에 대한 그리움을 참을 수 없어 우여곡절 끝에 그의 병실에 들어서게 되고, 그녀는 자신의 사랑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연수야!”
  둔탁한 소리와 동시에 기수가 눈 위를 구르더니 곧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때 무언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두 팔을 벌린 것처럼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 잉커송이었다. 그 나무가 나를 향하여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241쪽)


  「잉커송」에서는 프리랜서 사진작가인 주인공에게 하룻밤을 즐겼던 클럽 매니저 박기수와의 인연이 엉뚱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버지가 위독하단 소식을 듣고 귀국한 그녀 앞에 기수가 여동생 연수의 약혼자로 등장한 것이다. 연수는 기수와 함께 상하이에서 사업을 하겠다며 떠나고, 아버지는 곧 죽음을 맞이한다. 이후 연수를 찾아 중국으로 넘어가 그곳에서 동생 연수가 맞닥뜨린 잔인한 현실들을 알게 된다. 연수가 갔다던 황산의 정상에 올랐을 때 비로소 동생의 진짜 행방을 알게 되면서 소설은 대미를 보인다. 동생 연수에게 행복한 세계를 열어줄 것 같았던 사랑은 전혀 다른 현실을 보여주고, 그런 동생의 삶을 마주해야 하는 주인공 앞에도 결국 황폐한 세계만이 남아 있다. 언니인 주인공의 시선으로 “사랑은 애당초 없는 것”임을 깨달은 연수의 삶을 따라가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이기적인 세계의 모습은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할 만하다.

 

 

 

냉혹한 세계를 견디는 버팀목, 가족


  조미형의 소설에서 개인적인 영역은 공적 영역에 억압되어 매우 불안한 상태로 묘사된다. 「스노우 트리」의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방치하고, 「우리끼리 안녕」에서 부모는 가끔 전화해 돈을 부쳐달라고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처럼 작가는 불안한 상태의 사적 영역으로 가족을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를 극복하고 비정한 사회를 견뎌낼 유일한 방법으로도 ‘가족’을 지목한다는 것이다.

 

  무휘는 연의 손을 잡았다. 작고 여린 손이 그의 손안에 들어왔다. 지난 세월 그토록 다짐했던 각오가 부질없음을 알았다. 전쟁을 끝내고 버드네에서 연을 안해로 맞아 부부로 살아가리라 소원했다. (200~201쪽)


 「연지연 꽃이 피면」에서 가야 최고의 칼잡이 무휘는 철을 다루는 기술을 빼앗으려는 왜의 공격이 빗발치는 난국 속에서 단 하나의 소원으로 연을 “안해로 맞아 부부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우리끼리 안녕」에서는 교실을 박차고 나온 아이들이 용감하게 세상과 대면하는 장면을 통해 가족의 가치를 생각해볼 수 있다. 소설은 억압된 가족 질서에 비판적이지만 친구 일오의 “그럼 우리 셋이 가족이 되는 거지. 멋진 가족이 될 거야.”라는 말처럼 공감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가족을 모색한다. 또한 소박한 행복을 누리는 가족이라는 집단은 냉혹한 세계를 견디는 버팀목이 된다.

  “류지, 형 보러 갈 거야?”
  “가야지. 언젠가는…….”
  주머니 속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형은 내 옆에 있다. 나는 세이초에 말했다.
  “형이 사진을 하려나 봐.”
  세이초는 말없이 내 어깨를 툭 치며 씨익 웃었다. 횡단보도 앞에 섰다. 편의점이 보인다. 뽀얀 김이 서린 유리창 너머 형광등 불빛에 편의점 안이 따뜻하게 보인다. 빨간 신호등이 졸립다는 듯 깜박인다. 나는 형의 휴대전화를 꺼내 눈에 푹 파묻힌 거리에 초점을 맞춘다. (106쪽)

 

  「스노우 트리」에서 스노우 트리에 집착했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자 슬픔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자식에 대한 의무감보다 스노우 트리가 먼저였던 아버지,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삶을 이어갈 수 없었던 남자. 주인공 류지현에게 그런 아버지의 존재는 비겁한 겁쟁이이자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하지만 소설 말미에 우연히 건네받은 형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따뜻한 편의점 안을 들여다보는 나를 통해 가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씽푸춘, 새벽 4시

     

  조미형 지음 | 소설 | 국판 272 | 13,000

  2015년 12월 21일 출간 | 978-89-98079-11-6 03810

 

 소설집 『씽푸춘, 새벽 4시』는 200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다시 바다에 서다」를 비롯해 7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조미형 작가는 이번 소설집을 통해 삶의 심연을 드러내고 그 수렁을 건너는 것이 무엇으로 가능한지 탐문한다. 잔인한 시장논리가 사회를 떠받들고, 비인간적인 시스템이 도시를 지탱하는 냉혹한 세계를 불면증, 가려움, 편두통 등 인물들이 겪는 고통의 증상과 삶의 다기한 모습으로 그려낸다. 더불어 이번 작품집에는 신작 소설 「나비를 보다」와 「연지연 꽃이 피면」을 포함해 등단 이후 10여 년 동안 구축해온 조미형 작가의 다양한 작품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씽푸춘, 새벽 4시 - 10점
조미형 지음/해피북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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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단디SJ

김일지 소설집

내 안의 강물




“내 강은 언제나 꽃이 만발해 있어.”

 결핍된 가족구조 속에서 빚어지는 고독한 연인의 초상

문학이 상처 혹은 기억의 재현(representation)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것을 그 궁극으로 삼는 것이라 할 때 김일지 소설이 지닌 의미는 심대하다. 김일지는 가족에게 상처받은 근원적인 상처, 우리 속에 웅크리고 있는 ‘내면아이’를 호출하여 무대에 세웠다. _정미숙(문학평론가)


1986년 『동서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한 중견소설가 김일지의 신작 소설집 『내 안의 강물』이 출간되었다. 『타란툴라』 이후 8년 만에 출간된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정서적 결핍을 앓고 있는 현대인들을 보다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가족의 유대를 상실한 현대인들의 근원적 고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불안한 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을 그린 김일지의 『내 안의 강물』. 각기 다른 다섯 편의 이야기들은 불안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상처 입은 과거와 조우하게 하면서, 불안한 현재를 넘어 우리에게 삶에 대한 의지를 어떻게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떠도는 섬 같은 현대인의 모습

우리는 6년을 함께 살면서도 서로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수연이라는 동생이 있고 아버지가 사고로 죽었다는 것, 할머니가 우리를 키웠다는 것, 그런 테두리만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 그는 어머니도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나 또한 그의 가족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어머니가 없다는 것, 부자인 아버지가 있다는 것, 그 외에는 일체 말하지 않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우리는 둘 다 뿌리 없이 떠도는 섬 같은 존재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_「내 안의 강물」, 115쪽.


중편 「내 안의 강물」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6년간 동거하는 한 연인의 삶을 교차하여 그려내고 있다. 동거 형태의 불확실한 사랑 속에서 흔들리는 여자(연이)와 그런 그녀에 대한 사랑이 깊어져가는 남자(준규)의 상처와 고민, 변화의 양상이 소설의 주요한 테마이다. 두 주인공은 오랜 기간 함께 살아왔지만 서로 자신의 과거와 상처를 상대에게 드러내지 않는다. 깊은 정을 통하는 연인일지라도, 내면의 상처를 보여줄 수 없는 현대인들의 취약한 관계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유롭게 살아가던 그들은 연이가 수술을 위해 열흘간 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계기로 관계가 보다 끈끈해진다. 그러나 어머니의 학대를 겪었던 연이와 기혼자였던 아버지의 사생아로 태어난 준규는 각기 다른 상처를 서로 드러내지 못하고, 그들 마음의 생채기는 결코 봉합되지 못한다.


불안의 궤적을 그리다


게임이라는 가상의 세계에서 살아가며 현실을 잊는 알콜중독자 ‘성재’(「거머리」), 아버지가 다르고 어머니만 같은 누나에게 학원비와 용돈을 지원받으면서 늦은 나이에 춤에 빠져든 ‘나’(「나비」), 여덟 살 연하의 20대 남자를 만나 동거에 들어간 여자(「동거」), 사십 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과거와는 달라진 삶을 살아가는 두 여고 동창생(「지금처럼 되기 전에」) 등 표제작 이외의 단편 속 주인공들 또한 불안한 현재를 걷고 있는 현대인들의 초상이다. 정미숙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김일지의 소설은 인물들이 취한 불안의 궤적을 따르며 (…) 가파른 현실의 무게감을 견디지 못하는 인물들의 방황과 좌절을 그린, ‘불안’의 시학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어떠한 호의도 베풀지 못한 현실에 맞서 그들이 보이는 것은 우울의 정서로만 일관하지 않는다. 김일지의 이번 소설집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내놓은 ‘희망’의 정서이다. 정신병동에서 일기를 쓰면서 치료 의지를 밝히거나(「거머리」) 거울을 다시 보면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나비」) 등 소설 속 주인공들은 스스로의 성찰을 통해 삶의 의지를 표방하고 있다. 또한 연애와 결혼의 모순관계 속에서 냉정히 판단하고 그 관계를 끊어내려고 한 여성인물(「내 안의 강물」)의 등장을 통해 어두운 삶을 비관하던 주인공의 삶을 향한 새로운 결단을 읽어낼 수 있다.


글쓴이 : 김일지

부산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고 1986년 제1회 『동서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하였다. 2006년 부산소설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소설집으로 『타란툴라』가 있다.


내 안의 강물 | 김일지 소설집

김일지 지음 | 문학 | 국판 | 272쪽 | 13,000원

2015년 10월 15일 출간 | ISBN : 978-89-6545-317-8 03810

1986년 「동서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한 김일지의 소설집. <타란툴라> 이후 8년 만에 출간된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정서적 결핍을 앓고 있는 현대인들을 보다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가족의 유대를 상실한 현대인들의 근원적 고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불안한 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을 그린 김일지의 <내 안의 강물>. 각기 다른 다섯 편의 이야기들은 불안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상처 입은 과거와 조우하게 하면서, 불안한 현재를 넘어 우리에게 삶에 대한 의지를 어떻게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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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