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후기'에 해당되는 글 35건

  1. 2017.09.19 익살과 조롱으로 세상을 바꾸다 :: 『거리 민주주의: 시위와 조롱의 힘』
  2. 2017.07.18 사할린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 이규정 장편소설 『사할린』
  3. 2017.06.09 언젠가 나도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고 싶다 :: 김춘자 산문집『그 사람의 풍경』
  4. 2017.03.09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에 대한 진지한 토론 :: 에릭 올린 라이트 『계급 이해하기』
  5. 2017.03.06 지방에 자율권, 시민에게 참여권 -『지역사회와 민주주의를 말하다』서평 (2)
  6. 2017.02.17 사랑 이면에 자리한 욕망의 본질 :: 박정선 장편소설『가을의 유머』
  7. 2017.01.13 쓰엉을 둘러싼 어긋난 사랑과 욕망, 희망 / 서성란 소설집 『쓰엉』
  8. 2016.12.20 삶과 죽음에 대해 가볍지만 심도 깊게 그려낸 작품 -『올가의 장례식날 생긴 일』 모니카 마론 지음/정인모 옮김
  9. 2016.09.09 우리 시대의 민낯을 마주하다 :: 오영이 소설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2)
  10. 2016.08.09 미지의 섬, 그곳에서 마주친 또 다른 나 :: 정광모 소설 『토스쿠』 (4)
  11. 2016.05.27 유령을 만난 편집자::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이야기 (6)
  12. 2016.05.12 복잡해져가는 사회와 혼탁한 세상을 무탈하게 살아가게 하는 길잡이-『한비자』, 『한비자,제국을말하다』 (2)
  13. 2016.02.26 뜨거운 사상사, 아리프 딜릭의 『혁명과 역사』 편집후기 (1)
  14. 2016.02.12 행복하게 출판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다-『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15. 2016.02.03 묵묵히 선구자의 길을 걸었던 중국 연구자, 미조구치 유조 (4)
  16. 2015.12.15 <주간 산지니> 꼭 챙기세요! (1)
  17. 2015.07.08 매일 아침의 위기를 함께 넘긴 책 -『불가능한 대화들 2』 (5)
  18. 2015.07.03 사라져버린 학교에 문화를 그려내는 이들의 이야기:: 『폐교, 문화로 열리다』 (1)
  19. 2014.10.23 편집일기-산지니시인선의 1호 탄생기 『금정산을 보냈다』
  20. 2014.10.15 산지니에 배달된 호로록!-『이상한 과일』 (2)
  21. 2014.10.15 [출판저널] 설마 그 정인? 『만남의 방식』
  22. 2014.10.10 북적북적 대학로 페스티벌-『천 개의 권력과 일상』
  23. 2014.09.30 9월의 끝, 호박이 굴러들어온 날-『금정산을 보냈다』
  24. 2014.09.29 푸코가 말한 권력-『천 개의 권력과 일상』
  25. 2014.09.26 2014 가을독서 문화축제-표성흠 소설가가 말하는 “왜 문학인가”

EDITOR'S NOTE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편집자 기획노트]

 

 

익살과 조롱으로 세상을 바꾸다

스티브 크로셔의 『거리 민주주의: 시위와 조롱의 힘』

 

산지니 편집부 정선재

 

 

 

작년 연말은 참으로 추웠다. 연일 보도되던 박근혜 정권의 부정의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를 지켜보며 마음마저 얼었던 그런 겨울이었다. 온갖 비리들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국민들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즈음 스티브 크로셔의 『STREET SPIRITS』을 만났다. 그리고 이 지독한 겨울을 녹이는 촛불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부당한 권력이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화염? 단식? 천막? 모두 아니다. 이 책에서는 권력자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익살’과 ‘조롱’이라 말한다. 총검으로 제압할 수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들 앞에서 권력의 나약하고 비겁함이 낱낱이 까발려진다. 저자 스티브 크로셔는 이를 웃음행동주의(래프티비즘ㆍLaugh+Activism)라 부른다.

 

샌드위치 먹기, 박수치지 않기, 당나귀 기자회견, 시베리아 한복판에 놓인 인형 등. 이 책은 79개의 생생한 사진을 통해 전 세계의 유쾌한 시위 현장을 전한다. ‘이게 시위라고?’ 누군가는 이렇게 반응할지도 모르겠다. ‘시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정형화된 모습은 이 책 어디에도 없다. 무장한 경찰과 마주한 성난 사람들, 고성과 울음이 뒤섞여 핏빛으로 물든 거리의 모습이 없으니 말이다. 대신 창의적이고 이색적인 시위 현장들을 포착한다. 그리고 권위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익살과 유머, 웃음으로 빚어낸 변화의 순간들을 담았다.

 

 

 

이 책의 작업하는 동안에도 촛불을 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활활 타올라 박근혜 퇴진 및 정권 교체만을 요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사회의 제반 문제들(세월호 진상규명, 검찰개혁, 언론개혁, 재벌개혁, 정경유착 및 사회적 양극화 해소 등)에 대한 본질적 비판과 대안 요구까지 나아갔다.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자신의 손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사(史)의 한 페이지를 쓰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며 책의 제목을 결정했다.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이루려고 하는 것, 바로 민주주의였다. 이후 책의 제목을 『거리 민주주의: 시위와 조롱의 힘』으로 확정했다. 

 

어둠은 빛을 이길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 세월호 추모곡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중에서

 

저자의 말처럼 변화는 ‘많은 이유에서 비관주의가 따르는 느리고 더딘 과정’이다. 하지만 오늘의 비극이 다시금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비관주의에서 벗어나는 변혁의 순간이 필요하다. 『거리 민주주의: 시위와 조롱의 힘』이 보여주는 인간적이며 지적인 비폭력 시위가 승리한 사례를 통해 어둠을 밝힌 촛불의 가치를 생각해본다. 나아가 우리가 밝히고자 한 어둠은 무엇이고 그 어둠을 얼마나 몰아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출판저널』 2017년 9월호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 기획노트」에 게재되었습니다.

 

 

거리 민주주의 - 10점
스티브 크로셔 지음, 문혜림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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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편집자 기획노트]

 

 

1930년대, 사할린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이규정 장편소설 『사할린』

 

정선재 (산지니 편집자)

 

 

 

 

어느 날 갑자기 혜성같이 나타난 작가가 어디서도 보지 못한 작품을 턱하니 던져주면 얼마나 좋을까? 참 꿈같은 일이다. 그래, 이것은 꿈이다. 그렇기에 현실에서는 기획이란 과정을 서성이며 우리 주변에 흩어진 이야깃거리들을 찾아 나선다. 소설 『사할린』과의 첫 만남은 그런 현실적인 기획에서 시작해 꿈같은 기획으로 이어졌다.

 

<국제신문>(2016년 6월 10일자)에 보도된 소설 『먼 땅 가까운 하늘』을 만났다. 아주 오랫동안 준비하였지만 1여 년 밖에 선보이지 못한 작품, 20년의 시간을 잠자고 있어야만 했던 작품.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소설의 이야기를 읽으며, 궁금증이 생겼다. 어떤 작품이기에 언론사는 이 잠들어 있는 이 소설에 주목하는 것일까?

 

70년대부터 러시아 사할린 동포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규정 작가는 1991년 직접 사할린으로 날아가 현지 취재를 감행했다. 그는 현장을 돌아보고,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아픈 역사가 남긴 상처들을 발견한다. 이후, 6여 년에 걸친 탈고 작업을 거쳐 세 권의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다. 하지만 이 소설의 운명은 비극에 가까웠다. 1996년에 출간됐지만 당시 출판사의 사정으로 1년 만에 절판되고 만 것이다. 서점에서도 도서관에서도 만날 수 없는 소설, 독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이 작품은 미완의 상태로 20여 년을 잠들어 있어야 했다.

 

이 소설은 1930년대 사할린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사할린 현지를 방문하는 1990년대 초반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경남 함안, 북한, 일본, 러시아 등을 오가며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진 여정을 웅장하게 담고 있다. 해방 전후, 사할린과 경남지역에 아로새겨진 역사의 상처들을 마주한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무국적자로 처리되어 사할린에 남아야 했던 사람들에서부터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을 피워보기도 전에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까지. 마음이 고되다. 희망과 좌절을 오가는 사할린 동포들을 바라보며 고통스럽고 힘이 든다.

 

신문을 통해 이 소설의 사연을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규정 작가에게 원고를 건네받았다. 어느 날 갑자기 어마어마한 원고가 턱하니 던져진, 꿈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1,000페이지가 넘는 묵직한 소설을 검토하며, 계속해서 침을 삼켰다. 이 소설은 진짜구나. 그동안 묵혀두었던 시간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출간 작업은 빠르게 진행됐다. 독자들에게 작품의 배경과 메시지를 또렷하게 전하기 위해 제목을 ‘사할린’으로 바꾸고, 등장인물과 배경을 정리해 책의 앞부분에 실었다. 3권짜리 소설을 촘촘히 메우는 인물들과 낯선 지명의 장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큰글씨책(전5권)으로도 제작해 노약자와 약시자들에게도 쉽게 읽힐 수 있도록 준비했다. 최대한 많은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채비를 한 셈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말했다. 일제 식민지하 민족은 갈갈이 흩어졌고, 평범한 사람들은 이유 없는 고통을 견뎌내야 했다. 도둑같이 찾아든 해방의 기쁨도 잠시, 외세에 의한 분단은 고향 땅을 밟고자 했던 민초의 삶을 짓눌렀다. 머나먼 타지에서 무국적자로 남아야했던 삶, 돌아오려 해도 돌아갈 수 없었던 동포들.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고, 그들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지점에 소설 『사할린』이 자리한다.

 

 

 

 

 

『출판저널』 2017년 7월호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 기획노트」에 게재되었습니다.

 

 

 

* 노약자, 약시자들을 위한 큰글씨책도 있습니다. *

 

 

사할린 1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사할린 2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사할린 3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사할린 1 (큰글씨책)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사할린 2 (큰글씨책)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사할린 3 (큰글씨책)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사할린 4 (큰글씨책)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사할린 5 (큰글씨책)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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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편집자 기획노트]

 

 

바람, 시간, 별, 추억…
“언젠가 나도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고 싶다”

 

산지니 정선재 편집자

 

가끔 덩그러니 놓인 흰 종이가 무섭다. 그럴싸한 무언가로 이 여백들을 채워야 한다는 사실이 내 손을 옴짝달싹 못하게 짓누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이든 그림이든 하나의 완성된 작품들을 볼 때면 마음이 벅차다. 아름다운 작품 하나를 위해 작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서성였을까.

 

그런 작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작품 뒤에 가려진 작가의 일상과 생각들이 듣고 싶었다. 그러던 중 지역신문에 연재된 글을 통해 김춘자 작가를 만났다. 그녀는 1980년대부터 부산 화단에서 왕성하게 활동해온 작가로 <자라는 땅>, <生>, <Breathe> 등 생명과 자연을 주제로 작품들을 발표했다. 식물과 동물 그리고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생生의 의미 만들어내는 김춘자 작가. 그녀의 글 역시 그러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꽤 길고 긴 시간을 돌아왔다. 고민과 논의, 논의와 수정, 수정과 편집. 이 끝없는 터널을 지나며 47편의 글들이 제 모습을 찾아갔다. 처음 이 원고를 받아들었을 때, 글들이 어떤 방향으로 뻗어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한 문장 한 문장 섬세하게, 때론 치열하게 적어내려 간 듯한 글들은 미래가 무궁무진한 어린 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목차, 구성, 제목 등을 구상하며 독자들에게 이 책이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생각했다. 막연한 바람이지만, 누군가의 하루에 가장 편안한 풍경을 선사하는 책이 되었으면 했다. 그래서 작가가 가장 마지막에 제안한 ‘그 사람의 풍경’이란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작업을 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작가의 글쓰기 방식이었다. 김춘자 작가가 들고 다니는 핸드폰은 종이이자 펜이었고, 세상의 모든 곳이 그녀의 서재였다. 지하철, 카페, 산책길 등등 일상의 여러 풍경들 속에서 작가는 떠오르는 단상들을 핸드폰에 옮겼다. 일상의 찰나를 고스란히 옮긴 셈이다. 그렇게 47편의 글들이 완성됐고, 산문집 『그 사람의 풍경』은 제 모습을 갖춰나갔다.

 

작가는 이번 산문집을 통해 살아가는 것들의 풍경을 전한다. 어린 싹, 바람, 새, 꽃, 별 등 자연이 주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이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사랑을 표현한다. 동시에 문명에 젖어 생의 민낯에서 멀어져가는 오늘날의 우리들을 반성하기도 한다. 또한 예술가로서의 삶과 작품에 대한 생각, 계속해서 걸어가야 하는 자신의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개인전을 끝내고 불쑥 찾아온 심한 상실감, 성공과 예술 사이에서의 갈등 등 작품 뒤에 가려진 작가의 고뇌를 솔직하게 담고 있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생명의 아름다움, 일상의 기억, 예술의 길 등을 만날 수 있는 김춘자 산문집 『그 사람의 풍경』. 아름답게 그려진 글들을 따라 생각의 걸음의 옮겨보자. 머릿속엔 새하얀 도화지가 펼쳐지고 그 위에 나지막한 삶의 풍경이 그려질 것이다.

 

 

 

『출판저널』 2017년 5월호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 기획노트」에 게재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풍경 - 10점
김춘자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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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편집자 기획노트]

 

"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에 대한 진지한 토론"

 

에릭 올린 라이트  『계급 이해하기

 

산지니 정선재 편집자

 

 

 21세기, ‘계급’이란 개념은 아직 유효한가? 오늘날 계급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우리 사회의 여러 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 한때 인터넷상에서는 부모의 자산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계급을 금, 은, 동, 흙으로 나눈 수저론이 화제를 모았다. 우스갯소리에서 시작한 이 수저론은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 간의 이동이 힘든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 뼈 있는 농담이자 자본주의 현실을 겨낭한 웃픈(웃기고, 슬픈) 유머였다. 계급, 한편에서는 이 개념은 죽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현재 자본주의에서 계급은 여전히 유효하고, 논쟁적인 개념으로 자리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자 에릭 올린 라이트의 저서들은 영미권을 중심으로 많은 작품들이 소개됐다. 하지만 국내에 완역 출간된 작품은 『계급론』(Classes, 2005)과 『리얼 유토피아』(Real Utopia, 2012) 뿐인데, 이번에 출간한 『계급 이해하기』는 이 두 저작에 담긴 이론작업을 총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이 책은 라이트가 1995년부터 2015년 사이에 집필한 논문들을 모은 것으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을 분석하는 일반적 분석 틀과 이에 입각한 사회변혁 전략을 제시한다. 그리고 계급투쟁과 계급타협이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고찰하여 자본가와 노동계급 사이에 상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타협의 조건과 실현 방법을 모색한다.

 

『계급 이해하기』에서 눈여겨 볼 만한 점은 비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의 계급이론을 긍정적으로 개괄하며 그 의미와 한계를 정리했다는 것이다. 막스 베버, 찰스 틸리, 오게 쇠렌센, 마이클 만은 분석을 위한 개념의 측면에서, 데이비드 그루스티, 킴 위덴, 토마 피케티, 잔 파쿨스키, 말콤 워터스, 가이 스탠딩은 21세기 계급을 분석하는 방법의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검토된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특정한 국가나 시기에 국한된 구체적 계급의 구분보다는 계급의 개념화 및 분석 방법과 관련된 계급의 방법론적 측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한 동기에 대해 문혜림 번역자는 “계급의 죽음까지 논해지는 현 상황에서 계급론을, 그것도 ‘마르크스주의’ 계급론을 다룬 저작이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될 수 있다는 점”과 “계급분석에 대한 옹호가 아닌 문제제기와 비판이라도 계급에 대한 토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에 대한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책 『계급 이해하기』.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계급 논쟁에서 불거진 쟁점들에 대한 고민과 판단을 접할 수 있었으면 한다. 더불어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계급이론과 계급분석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면서 발생한 사회학 내의 소통불능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 사회학자의 노력까지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출판저널』 2017년 3월호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 기획노트」에 게재되었습니다.

 

 

 

계급 이해하기 - 10점
에릭 올린 라이트 지음, 문혜림.곽태진 옮김/산지니

 

 

책 주문하기 >> https://goo.gl/cUJW3o

*산지니 출판사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습니다.

(10% 할인, 3권 이상 주문시 택배비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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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단디SJ

지방에 자율권, 시민에게 참여권

지역사회와 민주주의를 말하다언론학자 부길만 선생의 책을 읽고...

 

 

지역 문화 발전의 구심체가 되는 지역 언론은 시민들을 대신해 세밀한 관찰자 역할을 한다. 언론학자 부길만 선생의 신간 지역사회와 민주주의를 말하다를 통해 그의 주장을 찬찬히 살펴보자

 

지역 언론은 지역 주민들의 삶에 깊숙이 다가가 건강, 교육, 생활정보, 경제활동, 복지 등의 문제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장애우, 극빈자,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 이웃을 위한 복지 정책이 활성화되도록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_지역사회와 민주주의를 말하다_18쪽 중에서

 

정책이 만들어지고 조례안이 발의된다. 그러나 어떤 정책이라도 행정상 구멍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에 지역 언론은 시민들에게 정책의 빈 공간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공적 의사 형성 과정에 참여할 기회 제공 역할을 한다. 이처럼 지역 언론이 시민과 지방정부 사이 매개체 역할을 할 때, 생활 속 민주주의를 구현할 디딤돌이 생긴다. 민주주의란 시민과 정부 사이에 합의점을 찾는 제도이기 때문에 디딤돌 없이 정파의 이익을 대변한다면 작년 중앙정부와 지방 사이의 지방교부세 예산안 같은 알력다툼이 일어나게 된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지방에는 자율권을, 시민에게는 참여권을 보장해주는 것이 지역사회의 발전, 나아가 우리나라 전체를 성숙한 사회로 만드는 길이 아닐까?

 

 

시끌벅적너도 나도 민주주의

 

지난 218 부산에서 청년정치네트워크(이하 청정넷)가 열렸다. 부산 청년들이 모여 직접 정책을 내는 모임으로 올해 2기째(두해 째)를 맞는다.

청정넷의 첫 시작은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지역사회 문제점을 토대로 분과를 나눠 토의한 후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주최 측의 예상과 달리 밤 11시가 되도록 분과조차 정해지지 않았고, 구성원들은 각자 생각하는 방식으로 분과를 정하자고 목소리로 내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말하기 시작하자, 80명 전체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보다 문득 생각이 스쳤다.

 

민주주의, 참 시끄럽다.”

 

민주주의, 참 시끄러운 제도이지만 동시에 뭉클한 감정이 올라왔다. 다름 아닌 한 사람 한 사람 목소리를 구성원 전체가 주목하는 모습이었다. 상식적이지만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모습들이었다.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듣는 것. 조금은 더딜지라도 조금은 피곤할지라도 한 사람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태도가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역 민주주의 핵심, 참여권 확대

 

지역에 부산청정넷과 같은 시민 정치 모임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대부분 떠올리는 정치는 중앙정치에 가깝다.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기능은 매우 미약하고 대부분 행정이 중앙에 귀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사회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앙집권화되어있다. 그렇다면 지역자치가 꽃피는 지역 생태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제와 권력의 집중이 빚어내는 각종 부조리와 병폐들을 몰아낼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은 분명히 있다. 중앙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지역 문화를 크게 살리는 일이다. 지역을 변화시키고 지방 분권을 실질적으로 강화함으로써 다원화된 사회체제 속에서 경제 정의를 이루며 미래지향적 교육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민족의 문화적 자부심을 높이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길이라고 확신한다.”_지역사회와 민주주의를 말하다』_5쪽 중에서

 

중앙정부는 지방 정부에게 다양한 권한을 과감히 이양해야 한다. 또 지방정부는 시민의 참여권을 확대해 지역 활성화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중앙과 지방 정부, 시민의 균형이 조화롭게 시너지를 낸다면 좀 더 나은 한국사회를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지역사회와 민주주의를 말하다 - 10점
부길만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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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편집자 기획노트]

 

" 사랑 이면에 자리한 욕망의 본질 "

 

박정선 장편소설  『가을의 유머

 

산지니 정선재 편집자

 

 

참 길었다. 지난여름은 선풍기 몇 대를 틀어도 지나갈 줄 몰랐고, 연일 성난 온도가 아스팔트를 데웠다. ‘이 여름에도 끝이 있을까?’ 하던 찰나, 지난한 여름 위로 찬바람이 불었다. 한 계절이 다른 계절로 바뀌는 것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가을은 어느 날 갑자기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슬며시 찾아왔다. 마치 소녀가 여인이 되고, 여인이 부인이 되는 것처럼.

 

『가을의 유머』의 주인공 승연은 하루하루 삶에 치여 살아오다 ‘40대’를 맞이하게 된 ‘기혼’여성이다. (그녀도 한때 꿈 많은 소녀였고, 수줍은 여인이었겠지) 나이와 결혼의 여부는 우리 사회에서 참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쩌면 자신의 이름보다 더. 승연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가 달아준 그녀의 여러 이름표들 중 ‘40대’와 ‘기혼’이라는 이름은 진짜 그녀의 모습을 밖으로 꺼내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그녀가 변하기 시작한다. 머리로 내리는 결정보다 가슴이 떨리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40대 기혼여성 승연에게 설렘의 바람이 불고, 사랑의 싹이 움튼다.

 

사실 처음 이 원고와 마주했을 때는 겁이 났다. 단 한 번도 삶에서 마주하게 될 가을을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뜨거웠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가라앉은 일상 속에 놓이게 될 그때, 우리는 얼마나 변해 있을까? 어쩌면 나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 나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만 변해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계속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원고 밖으로 많은 물음들이 오갔다.

 

“떨림은 정말 그런 것이었다. 떨림은 지금까지 고장 나고 비뚤어진 나의 뼈를 다시 맞추게 만들었다.” (p.72)

 

사회적 금지 영역에 속해 있는 기혼 남녀의 사랑을 통해 한 여인의 솔직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품 『가을의 유머』. 이 소설은 남녀 간의 관계와 사랑 이면에 자리한 욕망의 본질에 집중한다. 보통의 중년 여성에게 찾아온 사랑은 자신의 모습을 찾게 했다. 그리고 그동안 감춰뒀던 욕망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는 『가을의 유머』가 불륜을 다룬 여느 드라마, 영화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저자는 “모든 게 욕망이다”라고 전하며 “지구가 존재하는 한 인간은 욕망이 낳은 이상과 동경을 찾아 헤맬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규범 속에서 감추며 살아야 하지만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욕망. 그 아이러니 속에 소설 『가을의 유머』가 자리하고 있다.

 

소설 『가을의 유머』를 편집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내가 서 있는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그리고 겨울로 건너갔고,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소설 속 승연에게서 나의 시간을 비춰보고 있었다. 특히 승연이 다시금 거울을 보게 되는 부분에서는 왠지 모를 연민이 느껴졌다. 누군가의 아내로,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며 그녀는 자신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잊고 지낸 것일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을까….

 

가을은 풍요로운 계절이지만 한편으론 쓸쓸한 계절이다. 그 찬란했던 녹음들이 사라지고, 길거리를 뒹구는 낙엽만이 발끝에 머문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삶의 가을 역시도 그런 모습이 아닐까? 눈부셨던 청춘의 시간을 뒤로하고 현실을 버티며 차곡차곡 쌓아온 의무와 책임들이 명치끝에 머무는. 답답하지만 소리치기엔 남의 시선이 더 신경 쓰이는.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은 내 속에 숨어 있는 진짜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가을도 여름만큼 눈부신 계절이니까.

 

 

 

『출판저널』 2017년 2월호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 기획노트」에 게재되었습니다.

 

 

 

가을의 유머 - 10점
박정선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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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편집자 기획노트]

 

흑갈색 눈동자와 검은 피부의 베트남 여인 쓰엉

쓰엉을 둘러싼 어긋난 사랑과 욕망, 희망

서성란 소설집 『쓰엉

 

산지니 윤은미 편집자

 

 

   디자이너의 고심이 깊어졌다. 늘 그렇지만, 소설 표지는 디자이너나 편집자 모두에게 어려운 숙제다. 원고 작업을 하면서 나 역시 어떤 표지가 좋을지 고심해봤지만 답은 쓰엉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흑갈색 눈동자와 검은 피부의 베트남 여인 쓰엉. 이 매력적인 여인이 소설을 읽는 내내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결국 디자이너에게 베트남 여인이 표지에 등장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디자이너는 베트남 여인 스무 명의 사진을 모아 그리는 열정을 보이며 마침내 쓰엉을 그렸다. 그렇게 탄생한 쓰엉이 지금의 표지 그림이다. 익명의 베트남 여인으로 그려진 쓰엉이 묘하게 소설의 인물과 닮았다. 문득 그 여인들 중 나를 스쳐 간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젊고 건강한 베트남 여인 쓰엉은 국제결혼중개업소에서 만난 김종태와 결혼해서 한국 시골 마을에 살게 된다. 상상했던 결혼 생활과 달리, 시어머니와 갈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남편은 시어머니와 자신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화를 모른 척한다. 시골 마을에 또 다른 이방인 소설가 이령과 문학평론가 장규완, 이들은 도시에서 이사 와 하얀집을 짓고 살지만 좀처럼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 장규완은 이령의 아름다움과 관능에 사로잡혀서 산골 마을에 하얀집을 짓고 그녀와 재혼을 한다.

 

   그러나 상상하던 행복한 결혼생활과는 달리, 산골 마을 관목 숲에서 벙어리 사내를 피해 달아나다가 사고를 당해 뇌수술을 받고 언어와 기억을 잃어버린 이령을 간병하며 지내게 된다. 좁고 어두운 다락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잃어버린 시간을 더듬던 이령은 쓰엉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밖으로 나오게 된다. 이령의 간병으로 지쳐 있던 장규완 역시 젊고 아름다운 쓰엉을 욕망하게 된다.

 

 

 

 

   적막한 시골 마을에 나타난 이방인들, 그리고 쓰엉을 향한 장규완과 이령, 김종태와 벙어리 사내 등 서로 다른 시선과 사랑, 욕망이 그려진다. 작가가 그린 쓰엉은 순응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젊고 건강한 여인이다. 작가는 쓰엉이 단지 결혼을 위해 이주해온 이방인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꿈꾸는 평범한 여인임을 깨닫게 한다.

 

   서성란 작가와 첫 만남이 있던 날. 작가는 이 원고를 오랫동안 매만졌다고 했다. 이 소설을 작업하면서 몇 년 동안 다듬고 품은 그 시간에 베인 작가의 정성과 노력을 글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온 쓰엉을 소설을 읽은 독자가 조금 더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저널』 2017년 1월호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 기획노트」에 게재되었습니다.

 

 


 

 

쓰엉 - 10점
서성란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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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독일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모니카 마론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삶과 죽음을 성찰하다

 

 

삶과 죽음에 대해 가볍지만 심도 깊게 그려낸 작품

『올가의 장례식날 생긴 일』 모니카 마론 지음/정인모 옮김

 

 

  겨울이 오기 때문일까. 유난히도 부고 연락이 자주 온다. 대부분 부모의 부고 소식이지만 가끔은 평소 알고 지낸 사람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충격과 슬픔에 빠지기도 한다. 그 친구와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못내 연락하지 못했던 그동안의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내 주변에 병마와 싸우는 사람도, 갑작스럽게 세상과 이별한 사람도 없음에 감사한다. 아이러니하게 죽음은 평범했던 삶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한다.

 

 

『올가의 장례식날 생긴 일에서 주인공 루트역시 갑작스럽게 올가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남편과 헤어졌지만 평소 친구처럼 지냈던 시어머니 올가의 죽음은 루트에게도 충격이다. 루트는 올가의 장례식으로 가는 길, 길을 잘못 들어 낯선 공원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이미 세상을 떠난 올가와 재혼한 남편의 친구였던 브루노, 유년 시절 자신이 기르던 강아지와 닮은 개까지 세상을 떠난 혼령들이 루트 앞에 나타난다. 유령들은 루트에게 말을 걸고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는 루트를 과거 회상 속으로 인도하여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모니카 마론은 현대 독일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이미 한국에서는 슬픔 짐승으로 주목을 받았다. 슬픔 짐승이 독일 통일과 사랑이라는 주제로 삶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 작품은 삶과 죽음에 대해 가볍지만 심도 깊게 그려낸 작품이다. 루트가 사랑과 죄책감, 믿음과 배신, 노년과 죽음에 대해 유령들과 대화하면서 삶에 대해 성찰하듯, 소설을 통해 작가는 때로는 올바른 결정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고, 잘못된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도 있다고 말한다. 나는 작가의 이 차갑고도 따뜻한 위로가 좋았다.

 

소설의 원제는 연극의 막 사이나 전후에 진행하는 짧은 연극을 뜻하는 말로 막간극(Zwischenspiel)”이었다. 원제 그대로 국내에 출간하기에는 소설 내용을 전달하기가 어렵다는 의견이 많아 여러 개의 제목을 작성했다. 마지막까지 제목을 고심했고, 소설의 내용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올가의 장례식날 생긴 일로 정하게 되었다.

 

소설처럼 세상을 떠난 이를 죽음 이후에 한 번 더 볼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조금 더 편안하게 떠난 이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지만 실제 삶은 가혹하게도 죽음 이후에 기회는 없다. 이미 삶으로서 충분히 기회를 줬다고 말하듯이 말이다. 누군가의 장례식장에 가는 길,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장례식장에 들어서면 이상하게 허기가 진다. 먹어도 자꾸 배가 고프다. 삶에 대한 의지일까. 각박한 현실이지만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과거를 조금 더 너그럽게 안아주고 이해할 수 있기를, 삶에 대한 새로운 허기를 느꼈으면 한다.

 

  글_윤은미 산지니 편집자

 

 

 

 
  『출판저널』 2016년 12월호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 기획노트」에 게재되었습니다. 

 

 

올가의 장례식날 생긴 일 - 10점
모니카 마론 지음, 정인모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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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편집자 기획노트]

 

우리 시대의 민낯을 마주하다
오영이 소설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산지니 정선재 편집자

 

영화나 드라마는 편집이라는 과정이 있다. 극 중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을 마주한 시간들은 편집을 통해 ‘몇 년 뒤’라는 자막과 함께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이내 성공과 기쁨의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네 삶에도 이러한 편집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삶은 두 시간짜리 영화가 될 수 없다. 기쁨의 시간을 걸어가는 만큼 슬픔의 시간도 오롯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몫이다.

 

오영이 소설집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의 소설들은 영화로 치자면 편집되거나 빠르게 지나갈 법한 고단한 삶의 이야기들로 이뤄졌다. 마치 ‘이게 진짜 우리 시대의 민낯이야’라고 이야기하듯 말이다. 이번 소설집은 총 네 편의 작품이 수록된바 청소년, 청년, 중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현실을 보여주며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독일에서 만들어져 한국으로 오게 된 고급 프라이팬이 그것을 구입한(혹은 주운) 사람들의 기구한 사연을 목격하게 되는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은 세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돼 한국 사회의 그늘을 응시한다. 「황혼의 엘레지」는 공원의 노인들에게 박카스를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안동댁의 이야기로, 한때 우리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노인의 삶과 복지의 취약성을 고발하는 가운데 노인의 성(性)이라는 또 다른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단편「마왕」과 중편 「핑크로드」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상처가 한 인간의 삶을 서서히 얼룩지게 만들거나, 오랫동안 이어져온 사랑이 윤리적 금기를 넘어서 헤아릴 수 없는 심연 속에 놓이게 한다.

 

빛이 사그라지지 않는 도심의 밤, 그 화려한 불빛 속 현실의 그늘과 그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어둡고 우울한 이 이야기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위로와 따뜻함을 얻는 건 왜일까? 나는 그것을 작가 오영이만의 독특한 관찰력과 문체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 원고를 봤을 때도 이 점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우리 사회의 음지를 바라보는 따뜻한 관찰력과 이를 풀어내는 재기발랄한 문체는 다소 무거운 주제들도 쉬이 읽히도록 하며 무겁지만 가벼운, 혹은 가볍지만 무거운 오늘날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결국 인생이란 주방의 사소한 요리 하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_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중에서 (p.12)

 

오늘도 손에 쥔 핸드폰 속으로 세상의 온갖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엄지손가락으로 스크롤을 몇 번 내리다 핸드폰의 전원을 껐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는 할머니, 꺄르르 웃으며 쉼 없이 재잘거리는 여학생들, 부채로 휘휘 파리를 쫒는 과일가게 아저씨가 보인다. 크고 화려한 세상의 이야기 속에서 작고 소박한 사람들의 일상을 바라보는 것, 어쩌면 이것이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이 전하는 사소하지만 진짜 삶의 이야기가 아닐까?

 

 

 

『출판저널』 2016년 9월호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 기획노트」에 게재되었습니다.

 

 

독일산 삼중바닥 프라이팬 - 10점
오영이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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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편집자 기획노트]

 

 

미지의 섬, 그곳에서 마주친 또 다른 나

정광모 장편소설『토스쿠

 

 정선재 | 산지니 편집자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라디오에서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가 흘러나온다. 이 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디제이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음악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그쯤 『토스쿠』의 한 구절에 밑줄을 그었다.

 

 

  “내가 내 마음의 작은 일부만을 알고 있다면 나머지는 도대체 뭐란 말일까?”(p.253)

 

 

  우리는 미처 나를 다 알지도 못한 채, 불쑥 밀고 들어오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다. 노래를 계속 틀까? 디제이의 마이크 볼륨을 높일까? 하는 것처럼. 그렇게 현재의 내가 서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삶의 씨앗이었던 삶의 방식과 나는 어딘가에 꼭꼭 숨어버린다.

 

  토스쿠. 처음 원고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제목이자 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토스쿠’라는 단어였다. 이는 정광모 작가가 직접 만든 말로, 또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신을 뜻하기도 하고, 그런 또 다른 자신을 만날 수 있게 미지의 문이 열린다는 의미로도 풀 수 있다.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땐 드라마에서 나오는 식상한 대사인 “나다운 게 뭔데?”의 변주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다운 것’ 속에 들어 있는 꽤 진중하고 깊은 물음들을 꺼내 볼 수 있었다. 내 속에 광활하게 펼쳐지는 삶의 우주에는 내가 선택하여 현재가 된 ‘나다운 것’과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는 ‘나답지 않은 것’들이 떠다닌다. 소설 『토스쿠』는 이 거대한 우주를 만나는 여정을 통해 인간 내면과 자아, 인간 존재의 본질에 관해 집요하게 들여다본다.

 

  『토스쿠』에는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우연히 모인 곳은 한 로봇공학자의 목공심리치료소. 명쾌한 이성적 사고로 삶을 대하는 ‘장 박사’와 함께 나무를 매만지며 이들은 조금씩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루는 방법을 배운다. 그런데 어느 날, 장 박사는 필리핀으로 여행을 떠나고, 긴 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장 박사를 찾아 떠난 3인은 미지의 섬으로 향한다. 각각 뚜렷한 개성과 고통스러운 과거를 가진 4인방의 이야기는 장 박사를 찾아가는 거시적 서사 내에 현대인의 고립과 누적되는 상처에 대한 선명한 장면들을 녹여낸다. 이야기 속에 보다 작은 이야기들을 배치하며 작가는 노련하게 소설의 긴장감을 지속시키고 있다.

 

  읽고 있으나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소설, 나에겐 『토스쿠』가 그랬다. 선명하고 뚜렷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부터 유독폐기물을 싣고 표류하는 유령선,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바다까지 소설을 구성하는 여러 부분들이 이미지화되어 다가왔다. 장 박사와 토스쿠를 만날 수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시작한 여정, 미신처럼 느껴질 수 있는 이 신비로운 여정에서 현대문명의 민낯과 현실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또렷하게 그려지는 소재의 이미지들 덕분이 아닐까? 때론 가상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법이다. 소설 『토스쿠』를 통해 허구의 이야기가 현실에 던지는 삶의 메시지들을 만나보기 바란다. 그리고 세상에 뿌리내린 무수히 많은 삶들을 응원하는 시발점이 되길.

 

 

 

 

『출판저널』 2016년 8월호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 기획노트」에 게재되었습니다.

 

 

 

토스쿠 - 10점
정광모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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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유령 이야기를 읽었던 것은 언제일까요?


출처: gholly-fromb.tistory.com


초등학생 때는 문방구에서 무서운 이야기 모음집을 사 읽곤 했습니다. 

손바닥만한 책에 나오는 귀신 이야기가 너무 무서워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계속 등 뒤를 돌아본 기억이 있는데요.


그 이후에 활자로 만났던 유령들은 

진지한 문학 작품의 상징적 인물이거나

사회과학 책에서 '냉전의 유령'과 같은 비유 정도여서,

해질녘 귀갓길에 마주칠 것 같은 존재로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나와 이 세계에 공존하는 존재로서의 유령은 

글보다는 무더운 여름 친구들이 담력 겨루기처럼 하는 수다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무심하게 꺼내시는 이야기에서 더 자주 만나는 것 같습니다.


무섭기는 한데 믿는다고 선뜻 말하기는 부끄러운 것.

저에게는 그런 존재였던 유령과 사람들의 관계를 연구하는 책이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입니다.



권헌익 교수의 베트남 2부작 완결판이라고 볼 수 있는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 베트남의 다낭과 인근 지역을 배경으로 합니다.

베트남에서는 '미국 전쟁'이라고 불리는 전쟁은 1975년에 끝났지만,

전쟁은 베트남인들의 삶 구석구석에 스며 있고

삶의 터전 그 자체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책에서 중요한 장소로 등장하는 껌레(Cam Re) 지역은 

전쟁 때 조성된 광활하고 오래된 묘지에 위치합니다. 

거의 모든 껌레 가구의 농지에는 십여 기 이상의 무덤이 있고요. 


출처: bettertour.tistory.com


베트남인들의 삶에서 유령은 낯선 이방인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들과 이미 관계를 맺고 있는, 

그리고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존재입니다.

한 남자는 밭에서 전쟁 중 죽은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기도 하고

어느 마을에서 늘 같은 길에 나타나는 외국 군인 유령은 주민들에게 익숙한 존재입니다.


책에서는 "누군가의 유령은 다른 이의 조상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지연, 혈연이 없고 때로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데도 

베트남인들은 유령들을 위해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립니다.

이러한 추모는 1980년대의 경제 개혁 이후에 뚜렷한 문화적 현상으로 부상했다고 합니다. 


유령을 위한 향과 가짜 돈.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seafaringwoman/5455195256/


저자는 베트남에서 

"망자의 역사와 산 자의 생동적 활동이 공존하는 상황"을 목격했다고 씁니다.

예를 들어, 책에서 중요한 인물인 '연꽃'이라는 소녀 유령이 있습니다. 

연꽃은 생전에 고아였고 생계를 위해 땔감을 모아 팔았는데, 

땔감을 모으던 중에 강물에 휩쓸려 자신이 살던 지역과 멀리 떨어진 강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자신의 시신이 묻혀 있는 마을에 사는 여자아이의 몸에 들어와 

그 아이의 가족들에게 시신을 찾아달라고 요청합니다. 


텃밭에서 어린아이의 시신이 발견되자 

연꽃은 그 가족에게 자신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족의 둘째 딸이 된 연꽃은 놀랍게도 

전쟁 당시 혁명 활동에 동참했던 이들 여럿이 있는 이 가족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정의를 위해 활동하는 유령으로 성장합니다. 

가족의 이웃인 찌엠 아저씨는 연꽃의 성장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혁명가를 길러내는 것은 그녀 가족의 전통이다." 

찌엠 아저씨에게 저자는 조심스럽게 질문합니다. 


“아저씨, 실례가 된다면 용서하세요! 당신은 연꽃이 진짜라고 진정으로 믿고 있나요?”

“조카야, 그녀가 진짜가 아니라면, 너는 왜 내게 그녀에 대해 묻고 있는 거냐?”


-유령의 변환 중에서

중요한 것은 유령이 실제로 존재하느냐, 망상이냐가 아닌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자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직접 유령과 대화하기도 합니다! 
제7장 유령을 위한 돈을 읽어보세요.)


조상을 위한 가내 제단. 

출처: travel.tourism.vn


베트남 문화에서 유령은 베트남인들이 집 안에서 추모하는 조상과 

국가적 기념의례의 대상인 전쟁영웅에 비해 주변적인 존재이지만, 

이들 못지않게 베트남인들의 일상에 함께하는 존재입니다.

특히,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향, 그리고 집이 아닌 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조상과 유령의 구분이 모호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런 맥락에서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은 유령을 '사회적 사실'로 연구하고 있다고 할까요. 



출처: www.theodysseyonline.com


문화인류학자들은 대체 뭘 공부하냐?는 질문에 대해, 이런 답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류학자들은 세계가 사실(fact)에 기대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꿈과 망상, 희망과 두려움, 상상과 야망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이해한다. 

인류학자들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일축하지 않는다. 

Savage Minds Interview: Sarah Kendzior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은 문화 인류학의 

"인류학적 통찰의 거의 완벽하고 경이로운 예"라는 찬사를 받았는데요,

(마이클 램벡 런던정경대학교 인류학과 교수의 평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베트남 전쟁 유령과 그들을 위한 의례의

선명한 사회적·정치경제적·종교적 함의에 놀라게 됩니다.


그런데 베트남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을 읽을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 베트남의 냉전사와 우리나라의 상황을 겹쳐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규모 학살과 극단적인 '내 편' '네편' 구분으로 점철된 냉전을 겪은 한반도.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냉전은 끝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또, '거리에서의 비극적 죽음'으로 가족과 고향을 잃은 베트남인들의 이야기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이북의 고향을 떠나신 저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얼마 전 2주기를 맞이한 세월호 유가족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한국인들도 베트남인들도

상처를 겹겹이 축적한 채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한국은 베트남 전쟁 참전국이지요. 

베트남인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한국인들이 

많은 베트남인들을 학살했다는 것을 기억하면

저는 베트남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

끝으로,

책이 나오기까지의 우여곡절에 대한 몇 가지 여담을 해보렵니다. 


1. 영혼이냐 유령이냐?!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의 원제는 Ghosts of War in Vietnam 입니다. 

번역서를 맡게 되면 언제나 큰 고민이 한글 제목을 어찌할 것인가?! 인데요.

눈썰미가 빠르신 권헌익 교수님 팬(...) 여러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동안 언론 기사에서 Ghosts of War in Vietnam은 

쭈욱 '베트남 전쟁의 영혼'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번역을 맡아주신 박충환, 이창호, 홍석준 교수님께서는 제목을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로 옮기셔서 저에게 원고를 보내주셨지요.

저는 원서와 교정지와 언론기사를 번갈아 쳐다보며 

유령? 정말 유령에 대한 책이란 말이야?? 라는 의심을 했지만 

이내 글에 빠져들었고, 

추상적인 느낌의 '영혼' 보다는 도발적인 '유령들'이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의 제목은 권헌익 교수님, 번역자 선생님들과의 논의를 거쳐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


2. 유령을 어떻게 표현하지?

혹시 눈치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글에서 '유령'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이미지를 단 한 컷도 쓰지 않았는데요,

그 이유는 한 번이라도 '유령'을 이미지 검색해보셨다면 아실 겁니다.

'유령' 하면 주로 납량특집에 나올 법한 오싹한 이미지뿐이라는 사실ㅠㅠ 


그래서 책의 표지 작업에도 사실 난관이 있었습니다. 

산지니에서는 담당 편집자가 디자이너님이 참고할 만한 이미지를 찾기도 하는데요,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의 경우 저는 

베트남인들이 거리에서 향을 피우거나 기도하는 모습 사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적당한 이미지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어정쩡한 사진들을 전달했고  

표지 시안이 나왔으나 디자이너도 편집자도 만족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마침 부산의 민주공원에서

꾸준히 베트남인들의 전쟁 기억에 대한 작업을 해오신 

이재갑 사진작가의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

그런데 전시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

그런데 담당 편집자인 저는 오후에 해외로 출국해야하는 상황!!!


그야말로 절규... 할 뻔 했습니다


저는 부리나케 전시회에 가서 사진들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디자이너님과 적절한 작품을 골라

이재갑 작가님께 연락을 드리니 흔쾌히! 표지 이미지 사용을 허락해 주셨어요.

이 자리를 빌어 이재갑 작가님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표지에 사용된 이재갑 작가님의 작품 <빈딩성 가족무덤> .


이렇게 출간 전에 일어난 일들을 적다 보니 책이 드디어 나온 것이 새삼 놀랍고(ㅎㅎ)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임을 되새기게 됩니다.

이제는 독자 여러분들과 만날 일만 남았네요 :)

독자 여러분께도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과의 만남이 기억에 남는 일이기를 기대합니다!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 10점
권헌익 지음, 홍석준 외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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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편집자 기획노트]

 

 

복잡해져가는 사회와 혼탁한 세상을

무탈하게 살아가게 하는 길잡이

『한비자』, 『한비자,제국을말하다』

 

 정선재 | 산지니 편집자

 

 

 

 

 『맹자, 시대를 찌르다』가 나온 지 근 1년여 만에 산지니의 새로운 고전오디세이 시리즈가 출간됐다. 그것도 두 권이 동시에. 그동안 고전오디세이는 ‘논어’, ‘중용’, ‘삼국유사’, ‘맹자’ 등 현대 사회에 걸맞은 고전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자 했다. 이번에 출간된 고전오디세이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책은 통치학의 영원한 성전으로 불리는 ‘한비자’로 채워졌다. ‘한비자’는 치열한 경쟁과 암투, 부정과 모순 따위가 빚어내는 인간의 갖가지 행태들을 예리하게 분석하여 점점 복잡해져가는 사회와 혼탁한 세상을 무탈하게 살아가게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고전이다. 무엇보다 유교적 사고방식에 익숙해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더없이 필요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고전 번역서인 『한비자』와 한비자로 한국 사회를 이야기한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 처음 이 두 원고를 받았을 때는 걱정이 앞섰다. 고전과 관련된 원고를 맡아본 적 없었던 나에게 500페이지가 넘는 『한비자』는 오르기 힘든 높은 산처럼 느껴졌고,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는 시의성을 가진 원고라 책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으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작업이 진행될수록 이 두 권의 책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좋은 책에 대한 이유 없는 믿음과 역자이자 저자이신 정천구 선생에 대한 신뢰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비자’는 원문에 담긴 함의가 넓고 깊어서 그 의미를 단박에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에 정천구 선생은 명료한 번역으로 원문과 주석 없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하여 독자 누구나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는 한비자의 해석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흔들었던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며 비판과 통찰력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한비자’를 맹목적으로 답습하지 않고, 현재를 보는 꼬투리로 삼으며 재해석한 부분은 현 시대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는 더없이 복잡해지고 어지러워졌으며 인간관계의 모순과 경쟁은 더욱 심화됐다. 이러한 시대에 ‘한비자’ 읽기를 권한다. 엄정한 기본과 원칙을 기반으로 부국강병을 논하는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를 통해 인간사의 실상과 이치를 깨닫고,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를 통해 오늘을 진단하여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드는 초석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많은 독자들이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난세의 시대를 유유자적 돌파할 수 있는 밑천을 마련하길 바란다.

 

 

『출판저널』 2016년 5월호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 기획노트」에 게재되었습니다.

 

 

한비자 - 10점
한비 지음, 정천구 옮김/산지니

 

 

 

 

 

 

 

 

 

한비자, 제국을 말하다 - 10점
정천구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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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단디SJ

혁명과 역사 편집후기


기획부터 인쇄까지,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 『혁명과 역사』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눈뜨기』, 『포스트모더니티의 역사들』의 저자로 유명한 역사·인류학자 아리프 딜릭이 그의 박사논문을 바탕으로 집필한 책인데요. 


이 책을 맡게 되었을 때의 소감을 떠올려보면... 당시에는 정말 무념무상했습니다. 

혁명? 역사? 

단어에서는 엄청난 기운이 느껴지는데, 

너무나도 무난한 원서 표지를 보며 저는 별다른 생각을 떠올릴 수 없었습니다. 



아, '읽을 테면 읽어보렴' 하는 듯한 이 학술서의 정취-

그래도 내심 '그렇다면 해보겠다!'는 두근두근함도 있었던 것 같네요. 

사실 『혁명과 역사』는 제가 처음으로 편집을 맡은 외서이기도 합니다.

(『방법으로서의 중국』이 이 책보다 먼저 출간되긴 했습니다만, 이 책 작업을 먼저 시작했어요.)


『혁명과 역사』의 '풀네임'은 혁명과 역사중국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기원 1919~1937 』입니다.

20세기 초반, 중국의 역사학과 마르크스주의의 만남에 대한 책을 우리가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유물론적 역사 개념은 공식적인 비호를 받으며 역사학계를 독점했다. 또 그만큼 의미가 있는 것은 그것이 수많은 인민들의 역사의식에 녹아 있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주의가 중국에 처음 소개되었던 1910년대부터 중국의 역사관은 수년간에 걸쳐 과장 없이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 사상이 중국의 역사관을, 따라서 중국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그리고 중국의 사상가들이 마르크스주의를 어떻게 활용하고 변형했는지를 기원에서부터 추적한다면, 중국의 마르크스주의가 어떻게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지 알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19191937, 이 년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919년 이후 중국으로 마르크스주의 역사 이론이 소개됨으로써 중국 역사에 대한 급진적 재해석의 가능성이 마련되었다. 

('문제' 중에서)


중국 지식인들은 1910년대에 이미 마르크스주의 역사 이론을 알고 있었지만, 초기에는 중국 역사에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적용시키는 데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1917년)이 일어난 이후,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을 겸비한 최초의 중국 역사 분석이 나타납니다. 


1919년 11월 『건설』에 다이지타오의 「경제적 관점에서 살펴본 중국의 혼란의 근원從經濟上觀察中國底亂源」이 발표되었다. 이후 수개월에 걸쳐 같은 잡지에 중국 사상사와 중국에서 친족 조직의 진화에 관한 후한민의 장편논문 두 편이 실렸다. 두 논문은 역사적 유물론을 중국 역사에 적용한 이 시기 가장 야심차고 인상적인 글이었다. 

(맥락 중에서)


이 글로 인해 유물론적 역사관에 대한 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1927년에 이르러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중국에서 분명한 경향이 됩니다.


1927년은 중국 역사학에 있어서 아마 가장 역동적이고 자극적인 경향이랄 수 있는, 소위 '사회역사논쟁'이 빠른 속도로 부상한 해였다. 이 시기 생산된 영향력 있는 저작들은 1930년대 역사적 작업에 확연한 흔적을 남겼다. 

(...)

1927년 이후 십여 년간 마르크스주의 역사학 활동이 집중적으로 전개됨으로써 마르크스주의 사회역사학 개념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고, 이에 따라 중국 지식인들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관점을 수립했다. 

('문제' 중에서)


사회역사논쟁의 주요 논자들이었던 타오시성(左), 궈모뤄(右)


그렇다면 딜릭은 왜 1937년을 책이 다루는 시기의 끝으로 설정한 걸까요?


출처: 위키피디아


1937년은 중일전쟁이 일어난 해입니다. 이 해 7월부터 1945년까지 전쟁은 계속되었습니다. 딜릭은 이 책에서 많은 학자들이 전쟁 이후, 정확히 말하면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1949년 이후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에만 집중해 혁명과 내전 이전, 혁명을 꿈꾸던 사상가들이 제시한 다양한 역사관을 무시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중국 역사학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의 가장 독창적인 공헌은 1949년 이후 역사연구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정통성이 확립되기 이전에 이루어졌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은 1949년 이후에도 중국 역사 연구에 지속적으로 공헌했으나 그들의 임무는 보다 단조로운 것들이었다. 거기에는 초기에 제기되었던 문제들을 퇴고하고 정제하는 것, 그리고 수정하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둘째로, 1949년 이후 역사기록에 집중했기 때문에,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주로 그 정치적 기능 때문에 중요하다는 인상이 심어졌다. 1949년 이후 공식적 역사관이 조성되면서 역사가들이 활용할 수 있는 해석의 폭은 좁아지고 말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1930년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 연구는 역사적 유물론적 개념을 이해하고 이를 중국 역사에 적용하는 데 있어 상당한 다양성을 띠고 있었다. 이 시기 역사는 관방의 지도나 강요로부터 자유로웠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의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소신은 그들의 역사 분석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정치와 역사 사이의 상호작용은 1949년 이후보다 훨씬 더 복잡했으며, 역사 저작에 있어 정치가 가지는 함의도 그러했다. 

('문제' 중에서)


국정화 교과서의 역사 다시쓰기가 논란이 되고 있는 지금, 

공식적 역사관이 조성되기 이전 중국의 사학자들이 과거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제시했다는 점을 특별히 눈여겨보게 됩니다.


번외로, 

편집자로서 이 책을 읽으며 재미있었던 점은 중국에 마르크스주의 서적들이 어떻게 소개되었는지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1910년대에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지식은 1차와 2차 자료가 뒤섞여 있는 일본의 선집뿐이었다고 하네요. 그러다 1920년대에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중역본重譯本이 아닌 중국어 번역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이 시기의 청년들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복잡성을 앞선 세대보다 정교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고요. 출판이라는 업이 어떻게 지식장/사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지를 엿볼 수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이 책의 매력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릴게요. 

"혁명이든 역사든 그 어느 쪽에 대해서도 목적론적 관점을 피했다는 것"

저자는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이 그들의 생각 때문에 추적, 검열, 투옥,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지만, 그들의 역사 연구에 대해 때로는 가혹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비판을 가하기도 합니다. 

본 연구의 맥락 내에서, 나는 모든 역사 저작들은 평가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따라 그들의 공헌을 평가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저작들은 역사로서 쓰였기 때문이다.(강조는 저자-역자) 이것이 그들이 행한 것을 진지하게 인식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서문' 중에서)


나는 그들의 학문에 비난받을 만한 결함이 있음에도,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의 개념이 종종 조악하게 조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이 중국 역사 연구에 지속적인 공헌을 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 사상적이고 정치적인 맥락 아래에서 형성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문제' 중에서)


『혁명과 역사』는 이렇게 뜨거운 사상의 역사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추적합니다.

 

1978년에 출간된 이 책은 2004년 중국에서도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그리고 12년이 지나 한국의 독자들과도 만나게 되었네요. 

중국 역사와 마르크스주의를 바라보는 올곧은 시각을 갖추는 데에 이 책이 보탬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혁명과 역사: 

중국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기원 1919~1937

아리프 딜릭 지음 | 이현복 옮김 | 신국판 336쪽

978-89-6545-325-3 93910 | 28,000원 | 2016년 2월 15일 

중국 역사학의 혁명기를 다룬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가 중국에 소개된 이후 중국의 역사가들이 어떻게 유교적 역사관을 넘어 사회 자체에서 발전의 동력을 찾는 전대미문의 작업에 천착했는지 보여준다. 약 20년에 걸친 열띤 논쟁을 통해 중국에서 역사는 권선징악과 운명의 영역에서 사회경제 구조의 내재적 힘들이 상호작용하는 변화의 장으로 바뀌었다. 『혁명과 역사』를 통해 오늘날 중국 역사의 근저를 이루는 주요 역사학자들의 공헌과 한계를 파악하고, 혁명을 꿈꾸었던 역사학자들의 뜨거운 논쟁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혁명과 역사 - 10점
아리프 딜릭 지음, 이현복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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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출판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다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김해 돗대산의 추억


3년 전 가을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부산이라는 공간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모습을 담은 책을 출판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이 말이다. 빨갛게 낙엽이 진 산길을 오르며 동료들과 함께 시인이신 신진 선생님의 자택으로 야유회를 즐겼던 추억이 아직도 눈에 선히 떠오른다. 출판사의 야유회이다 보니 마냥 즐거이 웃고 놀 수만은 없었다. 김해의 돗대산을 오르는 와중에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중에도 출판사 식구들 사이에서는 출판기획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졌음은 물론이요, 온통 책 얘기만 하다가 집에 갔으니 말이다. 등반에 이어 선생님의 농막에서까지 이야기꽃을 피웠지만, 기획에 관한 아이디어가 좀처럼 모아지지 않아 김해에서 다시 부산의 구포역으로까지 돌아와서 결국 야유회 아닌 기획회의(?)를 끝마칠 수 있었다.


당시 우리 출판사에서는 정기적인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출판에 관한 책을 읽고 토론하여 좋은 사례가 있으면 산지니에도 실천해보자는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읽었던 책들이 파격적인 편집자』『편집에 정답은 없다』『한국 전자출판을 말하다와 같은 책인데, 이 같은 다양한 책들을 탐독하면서 정작 왜 지역출판에 관한 책은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대표님께서 저자가 되어 책을 쓰는 게 어떨까 하는 질문을 야유회에서 넌지시 여쭈었지만, 대표님은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손사래 치셨던 게 기억난다.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단행본


이후, 몇 년이 지났다. 동료의 결혼과 퇴사, 새로운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입사와 같은 일상의 소소한 변화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출판사의 창업 10년을 맞이해 들뜬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러다 출판사의 10년을 정리하는 단행본을 기획해보자는 주문이 내게 주어졌는데, 담당자로서 갑작스런 곤혹감을 느꼈다. 그동안 수많은 저자들을 상대하면서 나름 내공이 쌓였지만, 우리가 저자가 되어 우리가 마감을 하고 우리가 제작하는 책이란 어떤 모양새를 띌지 도무지 가늠이 잘 안 되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업로드 되어 있는 저자와의 만남 사진 중 일부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다함께 쌓은 저력의 무기인 블로그가 있었다. 블로그에 실은 글을 우선으로 하여 출판사 식구들이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한데 모으고 나니, 원고의 뼈대가 얼추 잡혔다. 블로그의 글과 함께 담당편집자의 주문에 맞춰 새로이 글을 쓰고, ‘저자의 고통을 이제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며 마감일을 지켜준 출판사 식구들의 노력 덕분에 완성된 책이 바로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여담이지만 부제인 부산 출판사 산지니의 10년 지역출판 생존기는 담당편집자인 내가 아니라 권문경 디자인 팀장님께서 작성해주셨는데, 단순한 이야기 모음이 아니라 생존기에 방점을 두고 싶으셨다고 책의 결을 살려주셨다. 화룡점정의 표지디자인 덕분에 책을 받아본 독자들 모두 더 즐겁고 좋게 봐주신 것 같아 뿌듯했다.


금강산도 식후경부터! 아이스크림부터 먹고 일했던 2012년 무더운 여름날의 추억.


책의 제목에서도 강조했지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지역출판의 어려움이 아니다. 지역에서 출판하고 있음에도 행복하게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출판은 다들 어렵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외면하고 서점 수금도 힘들고, 무엇보다도 돈 안 되는직업이 출판업이라는 게 출판을 바라보는 세간의 이목이다. 하지만 몇 번의 직장을 체험한 내게 다른 직종과 다른 출판업의 매력은 이 아닌, 바로 사람에 있다. 따스하고 배려 깊은 마음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서로의 행복한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억대연봉의 직업보다 훨씬 더 큰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좀 더 많은 출판인들이 서울과 파주가 아닌 지역에서행복하게’ ‘출판할 수 있음을 느끼고 또 함께 좋은 책을 지역에서 만들어주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저널』 2016년 2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 10점
강수걸 외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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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미조구치 유조'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것은 지난 여름입니다.

세계적인 중국 연구자의 책이라는 소개와 함께 책을 한 권 건네받았는데, 표지를 봐서는 별달리 알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국내에서 '세계적 석학의 저서'라는 찬사와 함께 출간되는 책들의 표지는 대부분 이러한 저자의 프로필을 부각했기 때문일까요? 

흰 바탕에 검은 글씨. 상당히 절제된 느낌의 이 책이 『방법으로서의 중국』원서였습니다. 



호기심에 '미조구치 유조'를 검색해봤으나 국내 자료는 몇 없었습니다. 몇 권 번역되어 있는 저서의 저자 프로필에는 학력과 저서가 나열되어 있을 뿐이었지요. 


국내 출판된 미조구치 유조의 몇몇 저서들


중국 사상사, 그리고 사실상 중국학을 공부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름이 미조구치 유조이고,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 『방법으로서의 중국』이라고 들었는데, 

중국학에 문외한인 저는 딱히 미조구치 유조가 누구인지, 왜 중요한 사람인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미조구치 유조는 2010년에 타계하기 전까지 동아시아 지식인의 교류를 선도하며 왕후이, 쑨거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고, 중국에서는 사후에 전집이 출간될 정도로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일본 학자"로 주목받고 있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사진출처: 한겨레

천광싱 대만 자오퉁대학 교수는 미조구치 유조를 기리는 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지난 한 세기 넘게 유럽과 미국의 역사발전 경험과 그에 따라 형성된 지식틀이 아시아 학계에서 유일하게 참고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 틀로는 더이상 유럽·미국과 그밖의 여러 지역의 역사경험을 해석할 수 없다. 이제 참고할 대상을 어떻게 확대해 다원적 좌표를 만들고 새로운 지식의 방식을 창조해낼 것인지가 전세계 학술계가 마주한 공동의 문제이다. 그 다른 길을 찾는 여정에서 우리는 미조구치가 이미 그 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줄곧 외롭게 그 길을 걸어왔다.

미조구치가 1980년대 제기한 명언인 “중국을 방법으로 하는 것은 세계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는 당시 일본 지식상황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전까지는 ‘세계’를 방법으로 중국을 가늠했다. 하지만 이 ‘세계’는 실제로는 유럽과 미국이었다. 중국을 방법으로 하는 것은 더이상 유럽을 기준으로 타인을 가늠하지 않는 다원적인 구성이다. 유럽, 중국,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모두 이 세계를 구성하는 원소다. 즉 중국의 역사를 입구로 라틴아메리카를 바라보고 아프리카 역사에서 출발해 유럽을 보는 것처럼, 다원적 진리의 대화 과정에서 더 높은 수준의 세계의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인식을 가져야만 이론상에서 ‘제국주의’를 피할 수 있다." 


'중국을 방법으로 하여 세계를 보는 것'에 대한 미조구치의 시각이 선명하게 정리되어 있는 곳이 바로 그의 첫 저서,『방법으로서의 중국』입니다. 1989년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중국에서 '공사公私'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본에서의 의미와 비교해 명확히 드러내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미조구치가 훗날 더 깊이 파고들게 되는 주제들에 대한 열정적 논의를 엿볼 수 있습니다. 



50년 넘게 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미조구치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또한 동아시아 지식인 간의 교류였습니다. 그는 중국의 저명한 학자 왕후이, 쑨거 교수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중국 사회과학원의 쑨거 교수와는 1990년대에 함께 ‘중·일 지식인 회의’를 이끌었고 "스무살이 넘는 나이 차이와 국경, 전공을 넘어 친구"로 지냈다고 합니다. 쑨거는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미조구치 유조의 '방법으로서의 중국'을 언급했지요. 



“어떤 국가든 사회든 인식 상대를 나와 관계 없는 외재적인 개체라고 생각하면, 상대를 숭배하거나 무시하게 되어 ‘평등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때문에 다케우치 요시미나 미조구치 유조(1932~2010) 같은 일본의 사상가들은 일본인이 일방적으로 미국을 숭배하는 현상을 보면서 어떻게 중국이나 아시아를 방법으로 삼아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을까 고민했죠.” 

같은 인터뷰에서 쑨거 교수는 미조구치의 이론을 차용해 '방법으로서의 한국'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미조구치의 이론은 『방법으로서의 중국』이 출간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동아시아적 탈근대론을 모색하는 연구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노년의 미조구치 유조. 사진출처: 이와나미쇼텐


그러나 재미있는 점은 미조구치 본인이 자신은 이론가가 아니라고 말했다는 점인데요. 미조구치의 제자 이토 타카유키에 의하면, 그는 줄곧 "나는 이론가가 아니라 장인(職人)"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목공이 물건을 만들듯이, 담론을 만드는 일도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어떤 실체를 구성하는 작업이란 말일까요. 

온라인 번역기의 도움을 빌린 의역입니다만, 이토 타카유키의 이야기를 잠시 읽어보시죠. 

"[미조구치에게는] 현장 감각을 가진 사람 같은 모습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광맥을 찾아내, 시대적 사조와도 겹치는 동물적인 육감 같은 것을 느끼게 했다. [그에게는] 한때 사정이 있어 가업을 잇고, 그 약진이 경제지에 취재된 것이 자랑거리였다. 일본에 온 해외 연구자 때문에, 자가용으로 가재 도구를 나르기도 했다.  『주자 어류(朱子語類)』의 강독 세미나에 참가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윤독회에는, 사망 반년 전까지 건강 악화를 무릅쓰고 발걸음해 그것이 사는 보람처럼 되어 있었다."


미조구치의 '현장 감각'은 가업을 이었던 경험에서 온 것일까요? 땀을 뻘뻘 흘리며 동료의 이사를 돕는 학자의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2010년 타계 직전까지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그의 모습은 '장인'의 꾸준한 수련을 연상시키네요. 


///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방법으로서의 중국』 담당하게 되었을 때는 막막한 느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번역되어 세상에 나온 책을 만나니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네요ㅎㅎ

"故 미조구치 유조의 대표작이 드디어 한글로 나왔어요!"


『방법으로서의 중국』을 통해 더 많은 분들이 

새로운 중국, 그리고 새로운 세계와 만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책소개 읽기


참고자료

서구의 틀을 벗어나 세계를 보다 (한겨레, 천광싱

“사람들이 상식으로 여기는 인식 방식 없애는 게 내 역할” (한겨레, 쑨거 인터뷰)

中国思想のエッセンス』 소개글 (이와나미쇼텐)


방법으로서의 중국 - 10점
미조구치 유조 지음, 서광덕.최정섭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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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안녕하세요. 온수 편집자입니다:)

달력을 보니 2015년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올해 산지니에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가장 큰 사건은

부산 출판사 산지니의 10년 지역출판 생존기『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가 

출간된 게 아닐까 합니다.


알....고 계시죠....^^?




책을 구매하고도 <주간 산지니>를 받지 못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독자분이 계실까 봐 미리 알려 드려요^^


이 책을 구매하신 분께는 별책부록으로 만든 <주간 산지니>(오른쪽)를 드려요.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를 구매하시는 분들께 드리는 책이니 

혹시 받지 못했다면 서점 직원분에게 꼭꼭 문의해 주세요.


물론 비닐로 꽁꽁 묶어 출고되기 때문에 빠질 일이 없지만요^^







일부러 이 페이지를 찍으려고 한 건 아닌데... 

펼치니까 제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


일부러 그런 건 절대로 절대로 아니에요^^;;



이 책을 읽으신 분들에게

산지니가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마음껏 웃고 응원해 주세요.



우와 축하한다면 하트를 눌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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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온수입니까

지난 몇주간, 저는 아침마다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여러 번 지각을 할 뻔하기도 하고, 하루를 제대로 시작하지 못해 종일 찜찜한 기분이기도 했어요. 

매일 아침 '오늘은 도대체 뭘 입지?'의 고민과 함께 저를 괴롭힌 이 질문은 바로 - 

'오늘 아침엔 도대체 뭘 읽?!'

출판편집자에게 읽을거리야 언제나 넘쳐납니다만 (교정지님 안녕;_;), '통근시간만큼은 읽고 싶은 것을 읽겠다!!!'는 마음으로 저는 아침마다 소설이나 시를 읽습니다. 어쩌다보니 주로 한국문학을 읽고 있고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얼마 전 신경숙 소설가의 표절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어서 한국문학 내 권력체계에 대한 비판이 일었습니다. 독자로서, 저는 놀라기도 했고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이런 사건을 맞아 발현되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최근에는 한국문학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출근길에 단편소설에 빠져 시간 지나는 줄 모르던 저에게, 한국문학계의 위기(?)가 매일 아침의 위기로 나타난 것이죠.

그러던 중, 한국의 작가 10인과의 대화를 담은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불가능한 대화들 2

이 책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부터 저는 이 비관적이면서도 고집스러운 제목이 좋았습니다.

소통이 아니라 '불통'의 나라와 시대라고 하지만, 그 수많은 어긋남들 속에서도 실제로 우리는 어떻게든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하길 원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저는 '그럼 이거라도 읽자'는 심정으로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오늘날 한국문학이라는 너른 마당 속에서 뚜렷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열 명의 소설가와 시인을 젊은 비평가들이 만났습니다.

정유정, 김유진, 고은규, 김성중, 최진영, 

이승우, 서효인, 김경인, 조혜은, 이안. 

저에게 '그래도, 그러니까 한국문학'이란 생각을 들게 한 글귀 몇 구절을 옮겨 적습니다. 



정유정


저는 소설을 ‘이야기의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전환점과 결말의 상황(극화)을 통해 이야기를 안으로부터 뒤집어 보여주고 싶고, 그것을 통해 ‘나는 인간을, 삶을, 세계를 이렇게 바라본다’라고 제시하는 것이 미학적 요소를 구현하는 제 나름의 방식이고요. 저절로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가 하나쯤 있다 해서 한국문단이 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차별화된 소설이란 그런 의미입니다. (22~23쪽)



김유진


소설은, 서사가 간소화되어 있지만, 서사를 부정하진 않았습니다. 인물의 감정을 절제하는 것과 배제하는 것은 다른 의미인것 같고요.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하지는 않았어요. 모든 묘사와 풍경, 방향, 인물들의 행동은 저의 머리를 통해, 제가 드러내고자 하는 정서와 분위기, 감정의 결을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한 폭의 그림처럼 읽히고자 했으나, 그림으로 보이고자 하진 않았습니다. 제가 쓰고 있는 것은 소설이니까요. (63쪽)



고은규


저를 자주 흔들어놓는 감정은 연민입니다. 연민이 저를 움직이게 하고 글쓰기를 재촉합니다.  () 아프다고 소리치는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고, 자신의 프레임에 넣어 엉터리로 사건을 재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사회는 나쁜 곳으로 굴러 떨어지겠지요. 문학이 낭떠러지를 지키며 미력하나마 울타리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도 찾고 있습니다. (87~88쪽)




김성중


보이지 않는 손’에 맞서는 ‘보이는 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 손은 당연하게도 우리의 팔에서 뻗어 나온 두 손, 나의 두 손이겠지요. 약하고 무디고 쉽게 다쳐 잘 아물지도 않지만 바로 이 손이야말로 유일한 손입니다. (…) 그 손을 치켜들게 만드는 다른 상상들, 꿈과 질문들이 새로운 서사를 이뤄나갈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102~103쪽)



최진영

이 세계와 내가 너무나 닮았다는 것. 이 세계의 무자비함과 폭력성이 바로 나의 속성라는 것. 저는 이제 겨우 그만큼 압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실, 아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도 힘에 부쳐요. 그러니 저는 주장하기보다 보여주고 싶고, 말하기보다 듣고 싶어요. 각자의 탈출구, 각자의 희망, 서로 같을 수 없고, 같아서도 안 되는 무수한 욕망과 그것을 담은 삶, 고독하게 메아리치는 저마다의 질문을. (138~139쪽)



이승우

나는 인간이 좀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우리가 가진 그물, 법과 이성으로 다 덮을 수는 없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우리의 이해의 그물 안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 근거이고,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의 방법입니다. () 세계는 없다고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세계만 있는 건 아니다, 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163쪽)

 


서효인


시는 학대받는 언어를 그러모으는 작업이 아닐까요. 이것은 서정시에 대한 옹호가 아닙니다. 습관적인 언술과, 비슷비슷한 이미지로 무한히 반복하는 여러 시들은 SNS의 안부인사와, 유튜브의 엽기 영상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언어’가 아닌 ‘예술’에 있다고 봅니다. 생채기 난 언어를 모아 생채기를 부각시키는 일 혹은 망가진 언어를 모아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것. (183쪽)




김경인

저는 언어는 근본적으로 투명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나조차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는데요. 그래서 시인은 잘 받아 적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듣는 사람」에서 저는 타인의 슬픔을 위무하는 것은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치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트레이싱 페이퍼처럼요. 그것이 설령 타인의 인생에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렇게 타인을 내 안에 깃들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12쪽)



조혜은

제 시에서는 소통하고 싶어 하는 화자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것들이 잘 전해지지 못했을 때, 자폐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 것 같습니다만 제 시의 화자들은 자폐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순간에도 누구보다 소통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청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화자와 청자는 다른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소통에 서투르고, 관계 맺기에 서투르기 때문에 어긋나고 있을 뿐, 서로를 향해 분명히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모든 관계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236쪽)



이안


시, 또는 세계가 호락호락, 단순하게 구성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면(裏面)이나 전면(全面)을 포함하지 못하는 단편적 현상 제시는 세계 인식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고 보고요. 앞으로 시를 써나가면서 경계하려고 하는 대목입니다. 대상과 관계 맺는 방식에서 언어의 끈을 결코 느슨하게 풀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며, 어느 한쪽에 맥없이 투항해버리지도 않으리라 다짐하고는 합니다. (266~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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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버린 학교에

문화를 그려내는 이들의 이야기

 

양아름 | 산지니 편집자

 

내게 있어 학교는 집 근처의 가까운 동년배의 아이들과 함께 추억을 쌓던 곳으로 여전히 기억되는 곳이다. 예전 살았던 동네를 방문하면 그곳에서 교복을 입고 언덕에 있던 학교를 오르내리던 기억이 절로 떠오르는 까닭도 그런 연유에서이다. 그렇게 고향과 동의어로 추억되는 학교를 몇 년 전 다시 찾은 적이 있었다. 주말에 찾은 학교의 풍경은 학생들이 없어 쓸쓸한 느낌이 있었지만 아직도 변함없는 학교 앞 서점과 문구점, 학교 안의 조경들을 통해 십 대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충분한 다리가 되어주었다. 그런데 이런 공간이 사라져버린다는 건, 과연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게 되는 것일까?


얼마 전 출간되었던 폐교, 문화로 열리다는 제목 그대로 사라진 학교인 폐교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 저자의 집필 계획을 듣고는 폐교라는 단어가 주는 슬픈 느낌에 어떤 식으로 책이 구성될지 조금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에게서 최종원고를 받고선 그런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보내온 폐교의 사진과 원고의 내용은 폐교가 주는 닫힌 느낌보다는 훨씬 생동감 넘치고 활기 넘치는 기록들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한 폐교 답사기를 넘어 폐교 문화공간이 지역 구성원 간의 소통이 부재한 현대사회에 있어 어떤 소통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책에 소개된 사례 대다수가 처음 들어본 문화공간이었지만 그런데도 무리 없이 잘 읽혔던 것은 저자가 학교의 공간을 담아내기 이전에 이곳의 사람들을 조명했기 때문이다. 버려지는 학교들을 애정으로 보듬어 관광객들을 유치한 기획자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듣노라면, 왜 버려지는 폐교 공간이 관공서의 행정시설이나 기업의 공장이 아닌 문화공간이 되어야 하는지 절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문화기획자들은 독특하게 공간을 재활용하며, 사람들이 발길을 끊은 도시마저 다시 불러오게 하는 기획력을 통해 다양하게 폐교가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너무나 안타까운 건, 책에서도 드러나지만 이들 기획자들에 대한 행정적 뒷받침이 부재한 현실이었다. 이 책은 폐교 공간을 구성한 기획자들과의 인터뷰 내용이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다. 강원도 영월군과 같이 지방자치단체에서 폐교 문화공간에 대한 지원을 전폭적으로 하고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교육청과 임대료로 인한 갈등으로 곤란을 겪는 곳이 대다수였다. 매년 오르는 공간의 공시지가를 그대로 반영해 기획자에게 더 높은 임대료를 요구하는 모습에 원고를 읽는 내내 안타까웠다. “공간은,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가지는 의미와 가치가 달라진다고 하는 저자의 말처럼, 버려진 공간 속에 주민 간 소통과 예술인들의 창조적 활동을 담으려는 노력들은 수익적 목적보다는 공익적인 효과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공간 속에 이야기를 담아내려는 이들 기획자들의 이야기가 책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형박물관, 미디어기자박물관, 연극촌, 도서관 등 지금껏 변화무쌍하게 모습을 달리한 폐교 공간이 앞으로는 어떤 기획자의 손을 거쳐 또 어떻게 변화될지 기대가 되고, 아울러 이 책을 통해 사회적으로 페교 공간을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지기를 바라본다.


『출판저널』 2015년 7월호 「편집자 기획노트」에 게재되었습니다.



폐교, 문화로 열리다 - 10점
백현충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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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부터 봄 그리고 여름 지금 가을까지

산지니시인선의 탄생


출판사에 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않는 시인, 그리고 언제나 헤어질 때는 막걸리 하자며 술 약속을 어김없이 하는 시인. 시인인가 출판인인가 가끔 헷갈리지만 그래도 그의 시를 읽으면 역시 시인이야! 하며 무릎을 치게 만드는 시인.


바로 최영철 시인입니다:)


지난겨울부터 산지니는 산지니시인선을 준비했습니다. 부산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지역에 시인들을 만나보자며 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역시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1호는 어떤 시인이 좋을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1호는 두말없이 최영철 시인. 부산에 뿌리를 둔 산지니, 그리고 부산을 고향에 둔 최영철 시인. 생각만 해도 궁합이... 그렇게 조심스럽게 최영철 시인과 시집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뜨거웠던 논의는 '대담'


시인선을 준비하면서 본문에서 가장 뜨거웠던 논의는 해설과 대담이었습니다. 해설과 대담 모두 장단점이 있는데요, 새롭게 시작하는 만큼 차별화 지점을 만드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으로 대담에 마음에 조금 기울었습니다. 그러나 장단점이 뚜렷했던 터라 깊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대담을 싣는 게 도전이기도 했지만, 독자들에게 조금 더 쉽게 다가가 보자는 의미로 격렬한(?) 논의 끝에 대담을 싣기로 했습니다.







대담자는 누가 좋을까?


그러나 한 고개를 넘으니 또 한 고개가 나오더군요. 그럼 누구랑 하면 좋을까. 

퇴근하고 어디론가 새지 않고 오랜만에 집에 일찍 귀가하던 날이었습니다. 이부자리에 누워 심각(?)하게 고민하던 차에 불현듯 『문학을 탐하다』의 최학림 기자가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부산일보> 논설위원이십니다) 『문학을 탐하다』는 부산 경남의 작가 18명(소설가 7명, 시인 11명)을 소개한 산문집으로, 문학기자 최학림이 기자 생활 20년 동안 작가들과 애정으로 보낸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책에는 최영철 시인도 나오는 데요, 최학림 기자는 최영철 시인에게 부산 문화의 감수성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 책에서는 부산을 누볐던 두 분의 추억과 최학림 기자가 전하는 최영철 시인의 시 세계를 읽을 수 있습니다. 글을 읽는데 왜 두 분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을까요.


<부산일보>로 떨리는 마음으로 총총 가서 최학림 논설위원에게 조심스럽게 대담을 제안하자

망설임 없이 "최 형이면 해야죠" 라고 하셨습니다:)








“시집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시집 편집을 하고 있을 때, 세월호 침몰 사건이 있었습니다. 온 국민이 눈물을 흘리며 마음 아파하던 날들이었지요. 사건 이후 최영철 시인은「난파 2014」를 시집에 추가했습니다. 그외 시집 구성을 바꾸면서 처음보다 다소 어두워졌는데요, 어둡다는 말보다는 어둠을 직면한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어떻게 해야 할까.


편집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시「금정산을 보냈다」는 이 질문에 대한 시인의 답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이거야, 라고.



엎어진 채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엎질러진 채 축포가 터지고 있었습니다 허물어진 채 거대한 준공식이 계속되었습니다 몹쓸 우환이 알을 까고 무엇인가를 주워 담아 뒤춤에 숨기느라 위아래 아무도 듣지 못했습니다 보지 못했습니다 정적은 숨넘어가는 아우성이었습니다 환호는 조용한 통곡이었습니다 그날 날려 보낸 새들이 이제 막 날아오른 새들과 함께 차창에 부딪혀 한꺼번에 머리가 깨졌습니다(…)


-「난파 2014」중에서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먼 서역으로 떠나는 아들에게 뭘 쥐어 보낼까 궁리하다가 나는 출국장을 빠져나가는 녀석의 가슴 주머니에 무언가 뭉클한 것을 쥐어 보냈다 이건 아무데서나 꺼내 보지 말고 누구에게나 쉽게 내보이지도 말고 이런 걸 가슴에 품었다고 함부로 말하지도 말고 네가 다만 잘 간직하고 있다가 모국이 그립고 고향 생각이 나고 네 어미가 보고프면 그리고 혹여 이 아비 안부도 궁금하거든 이걸 가만히 꺼내놓고 거기에 절도 하고 입도 맞추고 자분자분 안부도 묻고 따스하고 고요해질 때까지 눈도 맞추라고 일렀다() 


-「금정산을 보냈다중에서





“제가 얼마나 머리를 싸맸는데요”


문학과지성사는 시인의 얼굴을 캐리커쳐로 그리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게 좋을까 고심했고, 아아 부단히도 도서관을 다닌 권디자이너. 그래서 시인의 사인을 책 표지에 은은히 넣기! 책 등에 "최영철"이라는 사인이 보이시죠?










“괜찮아~ 재밌잖아”


편집자로서 최영철 시인과의 인연은 『어중씨 이야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중씨 이야기』 발간 후 최영철 시인과 이가영 그림작가와 출판사 근처에서 출간 축하 자리를 조촐히 있었지요. 『어중씨 이야기』는 도시에 살다 시골에 간 어중씨가 마님 심부름으로 장터에 가면서 일어난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린 청소년 성장 소설입니다.


술자리가 끝나고, 최영철 시인은 산지니 식구들에게 사인 본을 선물해줘야 한다며 산지니 식구들을 붙잡았습니다. 저희는 괜찮다고 다음에 사무실에서 해달라고 손사래를 쳤지만요. 그러자 최영철 시인은 “괜찮아~ 재밌잖아” 합니다. 그러나 산지니 식구를 챙겨주신 그 마음 왜 모르겠어요.


산지니 식구들에게 한 명씩 사인을 해주시고는 급기야는 발행인에게도 사인을 해주십니다.

얼마나 웃었는지요.






하하호호 최영철 시인과 이가영 그림작가 




“001이 좋겠다.”


시집이 쓸모없다고 하지만, 시만이 할 수 있는 일. 

시가 아니면 금정산을 통째로 아들에게 보낼 수 없었겠지요.



시집 나오기 전에 한 잔, 출간을 앞두고 한 잔, 시집이 나오고 한 잔, 

기자간담회가 끝나고 한 잔, 또 어딘가에서 한 잔. 


그래도 술이 부족하다고 자꾸 느끼게 하는 최영철 시인ㅎㅎ

그 취기 덕분에 즐겁게 시집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최영철 시인이 안내한 수영 맛집 물회, 

정말 맛있어요:) 배 반, 회 반이랍니다.



이렇게 산지니시인선 1호, 『금정산을 보냈다』가 나왔습니다.

독자분들의 손에 손을 거쳐 쑥쑥 자랐으면 좋겠네요.

마구 마구 읽어주세요:)



                                     

*

금정산을 보냈다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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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에 배달된 떡보의 하루!

누가 보낸 걸까!









주인공은 바로 서정아 소설가!


얼마전 산지니에서 서정아 소설가의 첫 번째 소설집을 

따끈따끈하게 출간했지요.


어떤 책인지 궁금하다면 



여기로


사심 홍보 듬뿍듬뿍 






빠르게 흥미롭게 긴장감 있게 책장이 넘어갑니다. 

호로록 읽을 수 있어요. 홍홍



*

이상한 과일 - 10점
서정아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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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 소설집 『만남의 방식』

 

                       설마설마하니 진짜 그 정인(情人)이다. 저자가 소설가로서 지은 자신의 이름 정인 말이다. 저자는 소설집 『만남의 방식』을 출간한 다음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애인을 “늘 그립고, 위안과 고통을 함께 주는 존재”라고 했다. 독자로서의 나는 그립다는 말이 주는 서정이 좋았으나, 편집자로서의 나는 누군가의 타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연인이라는 존재가 고독하고 연약해 보였다. 그 사랑이 진행 중이든 이미 단절되었든 상관없이 연인은 결국 누군가의 연인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만인의 연인이라 할지라도) 물론 이것은 금방 부정되어 머릿속에서 사라진 감상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고통과 고백, 치유의 경계를 넘나드는 소설집 『만남의 방식』 중 가장 어두운 편인 작품 「밤길」에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등장하는데, 예를 들면 이렇다. “마지막엔 변기에 오줌을 눠놓고 화영의 얼굴을 몇 번씩이나 처박았다. 마침내 화영이가 오줌물이 뚝뚝 흐르는 얼굴로 울음을 터뜨리자 깔깔거리며 말했다. 다음엔 똥이야!” 나는 괴로워하며 초교를 보고 이후 교정할 때마다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한번은 나의 고통을 호소하며 이런 장면을 쓸 때 힘들지 않느냐고 묻기도 했는데, 작가는 쓸 때는 힘들지 않은데 쓰고 나서 힘들다는 요지의 답을 했다. 지금도 나는 쓰고 나서야 비로소 찾아오는 힘듦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잘 모르며, 다만 그 말을 곱씹을 때마다 어떤 강인함을 느낄 뿐이다. 대적자를 순식간에 압도하는 종류와는 다른, 이를테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냄으로써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린다는 말을 기어코 참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묵묵한 끈질김. 그것 때문에 나는 『만남의 방식』에 실린 작품 여덟 편이 앞다투어 모국어를 잊어야만 했던 남자, 딸이 자살한 여자, 성폭행을 당하고 그 기억을 잊어야만 하는 소녀, 혼자 요트를 몰고 악명 높은 파도를 뚫는 남자 들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려주어도 지나치게 괴로워하지는 않게 되었다. 독자 여러분도 그러시기를 바란다. 물론 괴롭지 않다는 말은 외면이 아니라 용기와 가까워야 할 것이다.


2014년 5월 상하이대학교와 함께하는 동아시아 문학교류를 위해 부산의 여러 소설가, 시인, 평론가와 함께 상하이에 다녀왔다. 정인 소설가도 일행이었다. 문학포럼을 경청하고 문학의 밤 행사에서 우아하게 작품을 낭독하던 작가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남다르게 기억하는 것은 작고 개인적인 일화이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와이파이가 일행 중 유독 저자에게만 불통이었다. S.O.S.를 받고 옆방으로 건너간 내가 휴대전화를 들고 이것저것 건드려보아도 해결하지 못해 다시 여기저기에 물었으나 끝내 저자는 상하이에서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했다. 저자는 답답했을지언정 이제 와 다시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구석도 있다. 그 넓은 대륙을 쥐락펴락하는 전파도 저자에게는 감히 범접하지 못한 게 아닌가. 억지가 좀 심했나? 그래도 정인은 강인하다. (출판저널 2014년 10월호 편집자 출간기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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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북적북적 대학로 페스티벌



따뜻한 가을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입니다. 

북적북적 대학로 페스티벌 소개하고 갈게요ㅎㅎ


북적북적 대학로 페스티벌은 10월 한 달 동안 '청춘들의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매주 저자를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자를 만나는 것은 물론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감상을 발표하는 시간도 있네요. 


이번 여름 산지니에서 발간한 『천 개의 권력과 일상』도 청춘들의 인문학에 들어가네요. 와우! 이 책은 현대철학자 들뢰즈와 푸코의 이론을 알기 쉽게 설명한 책입니다. 10월 29일 수요일 저녁 7시 30분, 카페 헤세이티에서 열립니다.


자세한 내용과 약도 첨부합니다^^











천 개의 권력과 일상 - 10점
사공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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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온수입니까

9월의 끝, 호박이 굴러들어온 날

-최영철 시인의『금정산을 보냈다』


오늘 9월의 끝이네요. 아침에 출근하면서 

시 한 편 읽고 업무 시작해야지 했습니다.

(마음속으로 편집자 좋은 직업이네)

제 마음대로 고른 제 마음에 드는 오늘의 시입니다.




광안대교를 건너며



어느 날 느닷없이 내일이 없어진다 해도

오늘의 마지막이라 해도

괜찮아 다 괜찮아 첫날 같은 마지막 날

호박이 덩굴째 굴러들어온 날

밥은 두어 숟갈만 먹어야지

(중략)

남은 생의 절반, 한나절을 허송해야지

이젠 네가 내일이면 꼭 온다고 해도

가슴 설렐 일 없으니 좋아라

다시는 오지 않을 어둔 밤이 코앞이니 좋아라

뒤척이며 잠 못 들 일 없으니 좋아라

(하략)


-「호박이 굴러들어온 날」일부 , 최영철의 『금정산을 보냈다』



매일매일 새로운 날이 주어지지만 어제를 살았기에 오늘을, 내일을 때로는 기대하고 때로는 두려워합니다. 첫날 같은 마지막 날, 오늘이 마지막이라도 괜찮다, 라니...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시인이 괜시리 미워집니다. 오늘을 잘 살아야 하는데. 9월과 작별하고 다시 없을 새로운 10월이 옵니다. 



*

금정산을 보냈다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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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온수입니까


오늘 <한겨레> 신문에 푸코의 사상에 대한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마침 『천 개의 권력과 일상』에 나온 이야기라 발췌해서 덧붙입니다^^







진태원의 다시, 변혁을 꿈꾸다

-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예술적 주체를 생산하는 '규율 권력'의 작동


68년 5월의 반역은 정치 권력을 탈취하지 못했고 가시적인 사회경제적 구조의 변화를 이끌어내지도 못했지만, 프랑스철학사에서는 하나의 단절을 산출했다. 그것은 지배의 핵심은 사회경제적 지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 질서에 순응하는 예속적 주체의 생산에 있다는 통찰이 낳은 단절이었다. 실제로 알튀세르는 68년 반역 직후 저 유명한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1970)이라는 미완의 논문을 발표하여,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예속적 주체를 생산하는지 탐구했다. 또한 들뢰즈와 가타리는 1972년 <반오이디푸스>를 써서 자기 자신에 대한 지배를 욕망하는 대중들의 욕망의 도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분석하려고 했다. 그리고 푸코는 <감시와 처벌>(1975)이라는 책을 써서 권력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2014년 9월 29일 <한겨레> 일부분/ 원문 읽기




지배의 핵심은 사회경제적 지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 질서에 순응하는 주체의 생산에 있다는 말이 핵심인데요. 


이 책 역시 일상에 편재된 권력과 순응하는 주체 생산에 대해 면밀히 파고들고 있습니다. 



권력에 대한 균형감각을 기르기 위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천 개의 권력과 일상 - 10점
사공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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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온수입니까

2014 가을독서 문화축제

-표성흠 소설가가 말하는 왜 문학인가





지난 20일부터 21일까지 이틀 동안 열린 2014가을독서문화축제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행사 마지막 날인 일요일 3시부터 5시까지 롯데백화점 광복점 다목적홀에서 진행된 표성흠 소설가를 만났습니다.


표성흠 소설가는 산지니에서 발간한 문익점 장편소설『목화』를 집필한 작가입니다. 붓두껍에 목화씨를 가져왔다는 문익점의 일화에 작가의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이 더해 장대하게 펼친 작품입니다. 소설의 배경은 한때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던 KBS드라마 <정도전>과 같은 시기로 고려말~조선초입니다. 


표성흠 소설가


이날 강연은 소설『목화』에 관한 이야기보다 

문학이 왜 필요한지 표성흠 소설가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작가는 시간을 세 가지로 나눴습니다.

① 동물적인 시간

② 문명의 시간

③ 원의 시간


①번 동물적인 시간은 먹고 자고 싸는(?) 동물이든 사람이든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시간입니다. ②번 문명의 시간은 인간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한 시간을 말합니다. 그리고 ③번이 원의 시간입니다. 역시 우리가 궁금한 건 원의 시간이겠죠.


젊은 시절 해군순항훈련에 작가의 자격으로 승선한 적이 있는데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순항을 견딜 수 있었던 건, 타히티에 가 보고 싶어서라고 합니다. 타히피는 풀 고갱이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그린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곳에 4박 5일 동안 머물면서 우리는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봤다고 합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무수한 이야기들은, 단군신화조차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말해주는 것처럼, 결국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생명은 시간 줄에 매여 있고 이 시간이 끝나면 죽게 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상상하며 우리의 근원에 대해 탐구합니다. 그 상상의 시간이 문학이고 문학에는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표성흠 작가는 우리가 문학을 읽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지만 

문학을 읽는다면 마음에 무지개를 안고 살아갈 수 있게 될 거라고...말합니다. 


마음속에 무지개. 그건 각자가 해석해야 할 몫이겠지만

어렴풋이 그 무지개가 마음속에 피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청명한 가을, 오랜만에 광복동에 왔고 작가의 비밀스러운 고백을 들은 것 같아 

기운이 퐁퐁 샘솟는 하루였습니다.


가을은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책 판매 부수가 주는 시기입니다.

책 읽는 게 조금 힘들다면 책과 작가를 만나는 축제에 함께하면서

책의 향기를 잊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럼 내년에도 기약할게요


*

목화 : 소설 문익점 - 10점
표성흠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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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온수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