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저자와의 만남 | 이벤트

11월 저자와의 만남-이규정 소설가의『치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1. 23.


지난 14일 서면 러닝스퀘어에서 이규정 소설가와 저자와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날 담당 편집자로서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사실 편집자로 일하면서 글을 읽는다는게 일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치우』를 읽는 동안은 저 역시 독자로 돌아가 소설 읽는 재미에 푹 빠졌던 것 같습니다. 그럼『치우』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힘이 뭘까, 이날의 만남으로 그 비밀을 나눠보겠습니다.  





이규정: 반갑습니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우비를 챙겨 오셨는지 걱정이 됩니다. 책도 선물하지 못한 분도 계시는데 미안하고 또 이렇게 생각보다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성의껏 진지하게 사회자의 질문에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박형준: 처음에는 책 표지를 받고 선생님 연세도 있으신데 표지가 좀 밝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후 삶과 죽음, 삶과 피안(彼岸)을 구분하는 경계로 책 표지가 소설의 내용을 잘 전달한 것 같습니다. 이번 작품집은 7년 만에 나왔는데 오랜만에 작품집을 낸 소회가 어떤지 궁금합니다.


이규정: 모든 작가는 아무리 졸작이라도 그 작품집에 자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고,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자식 같은 마음이기도 합니다. 보통은 늦어도 3년 안에 책을 내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책을 출간한 건 나름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겪었습니다. 그때 병원에 조금 더 입원해 있었어야 했는데 급하게 마감해야 하는 원고가 있어 3주 만에 퇴원을 했습니다. 이후 후유증이 심해 불면증과 두통, 평생의 지병인 소화불량을 다시 겪으면서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출간이 미뤄진 것도 있고, 이 책을 내기 전 먼저 준비한 1900년대부터 30년대까지의 역사배경으로 쓴 장편 소설도 있고 해서 조금 미뤄진 점도 있습니다.



이데올로기보다 사람다운 삶

무엇이 사람다운 삶인지 묻는다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이자 문학평론가이신 박형준 평론가(왼쪽), 이규정 소설가(오른쪽)



박형준: 『치우』라는 소설집이 가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접근 방식과 역사 기술 문제 등 치우를 통해 문학이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아우를 것인가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규정: 「치우」는 제 체험이 많이 들어간 작품입니다. ‘임상태’라는 친구는 소설에서는 죽은 걸로 나오지만, 지금은 살아 있습니다. 책을 받았다는 연락을 전해 들었는데 소설에서 본인이 죽은 걸로 나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웃음)

저는 그 친구와 소년 시절부터 함께하면서 야간 중학교 공부도 함께했고, 마산시청에 사환노릇도 같이하면서 우정을 쌓은 친구입니다. 저 역시 가난했지만 친구는 굶기를 밥 먹듯이 할 정도로 저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저는 그 사실을 몰라 제 생각대로 친구를 재단하기도 했습니다. 친구가 너무나 가난해서 일본에 있는 조총련계인 이모에게 간다고 했을 때 말하지 않았지만 밀항하는 것을 반대하며 은근히 압박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60년대~70년대 정치 상황은 조총련계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왔고 이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간첩으로 몰려 잡혀가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항상 저를 따라다니는 형사가 있었고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지만 제가 일하던 학교에 소문이 퍼져 동료 교사들에게 소외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저의 고통을 소설에 녹였습니다.


박형준: 현실을 압도해버리는 멋진 수사들은 오히려 이야기를 압도하는 경우가 있는데 선생님은 현실의 문제들을 뿌리 깊게 끌어올리고 있다. 현실 인식도 소설 안에서 리얼리즘을 반영하면서 그 고민과 사유가 현실과 떨어져 있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소설을 읽다 보면 뿌리 깊은 가난이 자주 나오는데, 소설에서 가난이 가지는 의미가 궁금합니다.



작가가 경험한 가난과 사회의 불합리성.

소설에 고스란히 녹아 들었다



이규정: 제 소설의 바탕에는 항상 가난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로 설정합니다. 그건 제가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는 부산 연지동 꼭대기에 살았습니다. 한여름에도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집사람과 물을 길어 와야 했고 밤중에도 물을 받아야 했습니다. 식구는 보통 열 식구가 넘었고, 열 식구 안쪽이 된 지도 20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가난은 늘 나의 동반자이자 친구라고 생각했고 그래서인지 어릴 때도 가난한 친구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귀한 물이 저희 동네에서 몇 미터 밖을 벗어나면 물이 콸콸 나왔고 이러한 것들을 경험하면서 사회의 불공정, 불합리에 분노를 느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물과 전기를 누구보다 아껴 쓰고 있는데 이렇게 살아온 제 삶이 소설에 녹아들었던 것 같습니다.




박형준: 「치우」의 주인공은 이념적이고 국가주의에 휩싸여 있는데, 소설 말미에는 반성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궁극적으로 주인공과 친구 상태의 관계에서 궁극적으로 선생님이 말씀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규정: 이데올로기가 과연 무엇인가 늘 생각을 합니다. 사실 우리처럼 남북이 대치되지 않은 국가에서는 이데올로기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한국은 그 어떤 국가보다 이데올로기가 중요해 서로 싸우고 사람을 죽이고 합니다. 지금은 가난에 굶주린 친구를 위해 어디든 못 가겠냐고 하겠지만, 그 당시 친구가 일본에 있는 조총련계 이모부에게 간다고 했을 때 친구가 이데올로기에 빠지는 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은근히 친구가 가지 못하도록 반대하기도 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가난에 굶주린 친구 앞에 저는 어리석은 친구였고, 이런 바보 같은 친구의 말만 믿은 친구 ‘상태’도 어리석은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소설 제목을 어리석은 친구라는 의미로 (어리석을)치, (벗)우, 라고 지었습니다.


박형준: 「치우」를 읽었을 때 이념을 대하는 방식이나 개인이 국가라는 지정학적 한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다른 방식으로 성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내 옆에 있는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치우는 이러한 관계 구도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이념의 돌파구의 만들어 성찰의 계기를 찾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말년의 양식을 이야기하면서 말년의 양식은, 자기로부터 망년이다. 자기가 옳다고 믿었지만 이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찰의 지점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말년이 양식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치우가 의미가 있는 작품이지 않았나 합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생각하는 소설의 범주나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소설은 현실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이규정: 작가의 말에서도 밝혔듯이, 소설은 현실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이란 지금 이 몸을 담고 있는,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담겨 있는 고통스럽고 뼈아픈 곳을 말합니다.


옛날 연지동 꼭대기에 살 때는 위에서는 물이 없어 밥 짓기도 힘들었는데 조금만 내려가면 지금은 풀장이라고 불리는 수영장이 있는 아주 큰 집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중동으로 젊은 사람들이 일하러 나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셋방 사는 어느 젊은 부인이 마침 남편은 마침 중동에 갔고 해산을 해도 먹을 쌀 한 톨이 이를 안타깝게 여긴 셋방 주인아주머니가 동네 주민들에게 도움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그때 풀장이 있는 그 집에도 셋방 주인아주머니가 찾아갔는데, 그 집주인이 해마다 연말이면 방송국이나 신문사에 돈을 많이 내는데 당신들의 말을 믿을 수 없다, 라고 하며 인터폰을 끊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며칠 후 그 집 개가 새끼를 낳자 팔뚝만 한 가물치를 사서 개에게 먹였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럼 지금 현실은 조금 나아졌는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지금도 가진 사람들의 몰인정과 횡포는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작가분들도 많이 계시는데 이런 이웃들을 이야기하면서 소설을 쓰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박형준: 이 소설을 관통하는 두 가지 주제가 있는데 하나는 노년의 삶을 집중하고 또 하나는 신앙적인 삶입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노년의 삶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규정: 노년이라고 하면 죽음문제를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역시 10년 전만 해도 죽음은 굉장히 두려운 존재였지만 지금은 죽음이 가장 두려운 존재가 아니고 죽을 수 있을 때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 역시 젊을 때는 성미가 급하고 모진 말도 많이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젊었을 때 고등학교 담임교사였을 때 학생들의 학적기록부에 바른말을 한다고 학생들에게 희망을 꺽은 말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이 들어서 생각해 보면 조금 더 너그럽게 조금 더 폭넓게 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편으로는 40대 초에 신앙을 갖게 되면서 젊었을 때와는 다른 인생관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죽음을 여유롭게 생각하며 모든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변해가고 있습니다.


박형준: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계속해서 소설 쓰기가 변모하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반갑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자와 삶과 생의 문제, 문학과 현실의 문제를 이번 소설집『치우』에서 잘 다뤄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좋은 글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다 함께 짝짝짝!) 


:> 치우 많이 사랑해주세요!



● 자세한 책 이야기와 구매를 원하시면


치우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