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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닭발… 사물로 읽어낸 씁쓸한 인생 (부산일보)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10. 7.

▲ 첫 소설집 '끌'을 낸 이병순 소설가. 부산일보 DB


'처음'이란 단어엔 기대와 두려움이 같은 무게로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첫 소설집을 낸 이병순(51) 소설가는 "세상 한복판에 그냥 내던져진 느낌"이라고 했다.

201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남들은 '늦깎이' 등단이라 했지만, 작가에겐 '이른' 등단이었다. 기회는 뜻하지 않게 왔다. 큰 기대 없이 보낸 단편이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본심까지 오르자 용기백배한 작가는 소설 공부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20년 논술 강사 일도 접고 '배수진을 치고' 소설에 매달렸다. '굶어 죽을지도 모를' 기나긴 사투를 각오했지만 1년 만에 '덜컥' 당선. 그는 이 '이른 행운'에 취하지 않기 위해 단편소설 하나하나를 '신춘문예 응모작'이라고 여기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병순 작가의 첫 소설집 '끌' 
2012 본보 신춘문예 등단작 등 
3년간 열정 쏟은 단편 7편 수록 

스마트폰 '인질' 삼은 택시기사 
포장마차의 단골 술안주 닭발… 
외로움·소통 부재의 일상 담아


소설집 '끌'(사진·산지니)은 지난 3년간 그가 이렇게 결사적으로 쓴 7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스마트폰, 끌, 닭발, 슬리퍼…. 작가는 일상에서 흔히 보는 사물들을 통해 인간을 들여다본다.

표제작 '끌'은 2012년 신춘문예 당선작이기도 하다. 끌로 가구를 다듬는 목수는 상처 입은 그의 마음도 함께 끌질하고 일상은 손에 잡힐 듯한 날 선 감각으로 다듬어져 간다. 

승객이 두고 내린 스마트폰을 '인질' 삼아 사례비를 받으려던 택시 기사의 남루한 일상('인질')도 있다. 하필 가까운 사람의 번호가 하나도 저장돼 있지 않은 서글픈 인질. 작가는 "'인질'에 집착하는 택시 기사를 통해 현대인의 외로움과 삶의 부박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포장마차의 술안주 '닭발'로 들여다본 '소통의 부재'('닭발')도 쓸쓸하다. '닭발'은 퇴고까지 거의 2년이 걸린 작품이다. '말(言)은 무엇인가.' 닭발을 매개로 이 거대한 화두를 풀어내기 위해 작가는 양계장에서 종종걸음을 치기도 하고, 끙끙대며 작품 노트만 2권을 썼다. 중편으로 시작했던 소설은 '도저히 안 돼' 구석으로 밀려났다가 2년 만에 단편으로 완성됐다. 소설가의 "자식이 못나도 내 자식인 것처럼 한 번 쓴 작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완성하고야 만다"는 모토 덕분이었다.

피아니스트 남편의 의처증에 시달리는 여자는 외반무지증 때문에 꽉 조이는 신발을 신지 못 한다('슬리퍼'). 작가는 평범한 소재 슬리퍼를 통해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18세기 조선의 화공 최수리가 타락한 양반 안유백에 '저항'하는 단편 '비문'과 고려 중기 묘청의 난을 평정한 김부식이 정지상을 회상하는 '부벽완월'도 있다. 단편 7편은 모두 결연한 신춘문예 응모작 같다. 

첫 소설집을 낸 작가는 그동안 쓴 단편을 다 털어 냈으니 또다시 초심으로 돌아갔다. 첫 장편을 준비 중인 그는 한 달에 몇 번씩 서울을 오가고 있다. "'멸치'에 대해 쓰면 바다를 통째로 다 알아야 할 것 같은 넘치는 의욕을 다스리지 못해" 장편의 소재가 될 분야 공부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승아 | 부산일보 | 2015-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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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점
이병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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