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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일기

새 봄에 만나는 새로운 작가들! 201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상식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1. 21.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잠홍 편집자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엄청난 추위였지요? 무사히 보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산지니가 있는 부산 거제동은 체감온도 -14도,

비교적 따뜻한 지역이지만 춥다 춥다 소리를 달고 지내고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바람 부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바깥은 만주벌판인가 싶다는 분도 계신데요ㅎㅎ

추위가 살-짝 누그러진 어제,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상식에 다녀왔습니다.


왼쪽부터 강이라 소설 부문 당선자, 이명우 시 부문 당선자, 차승민 국제신문 사장, 최정연 시조 부문 당선자, 도희주 동화 부문 당선자.


국제신문 조봉권 기자님



시, 단편소설, 동화, 시조 부문으로 구성된 국제신문 신춘문예는 195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국제신문 문화부의 조봉권 기자님께서 행사를 진행해주셨고,

각 부문의 심사위원단 중 대표자이신 분들께서 심사평으로 올해 응모작들과 당선작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올해의 당선작들에 대한 전체적인 평은 "사람의 숨소리, 사람 냄새가 살아 있다"는 것이었는데요.

말씀하신 대로 삶의 결이 느껴지는 생동감 있는 작품들이었습니다.


당선작들을 잠시 만나보실까요.


/ 시 / 

스티커

이명우


대문에 붙어있던 스티커를 뜯다가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또 붙는 스티커를 뜯다가

스티커 뜯기를 멈추고 산동네를 떠났다

멈추고 떠날 때는 다 지운 것이어서

지운 것은 없는 것이어서

없는 여기 산동네로 다시 돌아오게 될 줄 몰랐다





왼쪽부터 남송우 심사위원, 박남준 심사위원, 안상학 심사위원. 사진출처: 국제신문


올해 시 부문 응모작 중에서는 이미지의 조형, 구성의 유연함 등에서 

상당한 수준에 다다른 작품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명우 작가의 <스티커>는 삶의 현장에 가까이 있어 

시가 "손재주에서 그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에 돋보였다고 하셨습니다.


사진출처: 국제신문


당선자 이명우 시인께서는 "우연히 시를 접하고 10년 간 써왔다"며

"그치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단편소설/

강이라

벌써 몇 분째였다. 수진은 욕실 앞에 엎어져 있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뒤통수를 감싸고 머리는 바닥에 처박은 채였다. 꺽꺽, 마른 울음이 목구멍을 할퀴며 넘어왔다. 바짝바짝 침이 말랐다. 풀썩 꺾인 무릎으로 타박의 고통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욕실용 슬리퍼가 발가락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전 세입자가 버리고 간 누런 아이보리색 슬리퍼의 지압용 돌기마다 거무스름한 물때가 잔뜩 끼어 있었다. 나머지 한 짝은 보이지 않았다. 목이 잔뜩 늘어난 양말이 발바닥까지 밀려 내려가 있었다. 허옇게 튼 뒤꿈치가 앙상하게 도드라졌다. 발목이 선듯했다. 냉기가 온몸으로 번져 올랐다.


그것은 쥐였다. 사과 씨처럼 작고 까만 눈을 가진 잿빛 털의 새끼 쥐였다. 그렇다고 큰 귀가 사랑스러운 미키, 미니 마우스는 아니었다. 어수룩한 톰을 괴롭히는 앙큼한 제리도 아니었다. 해묵은 기름기가 켜켜이 앉은 중화반점 환기통을 요리조리 쑤시고 다니며 살모넬라균을 옮기고 몸통을 채 보기도 전에 긴 꼬리의 흔적만 남기고 날쌔게 내빼버리는, 이름 그대로 시궁쥐였다. 어릴 적 수챗구멍 바깥으로 삐죽이 나온 꼬리를 고무줄인 줄 알고 잡아당기다 까무러치게 놀란 뒤로 수진은 쥐 소리만 들어도 기겁을 했다. 그 쥐가 저기, 욕실에 있었다. 욕조 가득한 물 위로 노랑 바가지를 타고 표류하고 있었다. 바가지는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뒤집힐지도 몰랐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전문 읽기



왼쪽부터 황국명 심사위원, 이순원 심사위원, 정혜경 심사위원, 나여경 심사위원. 사진출처: 국제신문


심사위원 대표로 평을 전해주신 황국명 평론가님은 

예술을 반구대 암각화와 비유하시면서 

암각화를 그린 사람들이 높은 위치, 깊은 동굴이라는 위험한 곳에서 목숨을 걸고 그림을 만들었듯

목숨을 걸고 하는 절실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진출처: 국제신문


당선자 강이라 소설가님은 1년 전 이맘때쯤 당선작을 쓰고 계셨다고 합니다.

12월 31일 밤에 무심코 '국제신문 신춘문예'를 검색해보다 

당선작품과 자신에 대한 기사를 보았고, 그렇게 2016년을 맞이하셨다고 합니다.

"좀 더 제대로 써보라고 주는 상이라 여기며" 작품활동을 이어나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조/

물의 독서

최정연


물 아래 달을 봐라

콸콸한 문장이네

몇 개의 모음들이 괄호 밖에 흘러넘쳐

지금은 은어가 오는 시간,

달빛공지 띄우라네


산란하는 조약돌도 물 소리 헤이는 밤

오십천 수면 아래

무슨 등불 켜두어서

뜨거운 이마 짚으며

다상량의 달을 보나


수심 찬 질문들이 부서지고 또 고여서

물결 책 갈피마다

각주로 박혀있네


내 몸도 출렁, 불려나와

행간의 밑줄 될까



전연희 심사위원(왼쪽), 서태수 심사위원. 사진출처: 국제신문


전연희 심사위원님께서는 

360여 편의 응모작이 있었다고 합니다.

1. 율격 운용의 자질 2. 제재 해석의 참신성 3. 시상의 심화 확장성 4. 정서 전달의 효율성

측면에서 평가하신 후, 생동감 넘치는 신선미가 돋보이는 '물의 독서' 를 당선작으로 뽑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사진출처: 국제신문


당선자 최정연 님께서는 

신춘문예 마감일 한 달 전부터 밤을 새며 글을 쓰셨다고 하는데요.

밤늦게까지 글을 쓰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불평을 피해 나간 물가에서 이 시조를 쓰셨다고 합니다.


/동화/

굿샷! 쭈글이

도희주


식은 어묵을 먹다 말고 뛰기 시작했어. 검은색 승용차가 언덕길을 올라오고 있거든. 놓치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나는 뛰었지.

"저 녀석 또 뛰네!"

그런데 승용차는 경적을 날카롭게 울리며 내 앞을 휙 하고 스쳐 가고 말았어. 한 걸음만 빨리 뛰었으면 바퀴 아래로 들어갈 뻔 했지.

"쭈글아! 괜찮아?"

김밥 아줌마 목소리가 경적소리보다 크게 들렸어. 나도 놀랐지만 김밥 아줌마와 요구르트 아줌마가 더 놀랐나 봐. 두 아줌마는 횡단보도 앞에서 수레에 파라솔 쳐놓고 장사를 하고 있어. 여긴 골프장과 등산로가 있어 늘 사람들이 붐벼.

나는 멀어져가는 자동차를 물끄러미 바라봤어. 비슷했지만, 내가 기다리는 차는 아닌 것 같아. 그런데 이번엔 배달통을 든 오토바이 한 대가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내 꼬리를 스치고 쌩 지나가는 거야.

"쭈글이 죽겠다!" 

"저 집에 짜장면 시키지 마!"

쭈글이. 김밥 아줌마가 붙여준 나의 새로운 이름이지. 난 불도그 샤페이 종으로 얼굴과 발에 주름 많은 게 특징이야. 하지만 내 이름은 굿샷. 이곳에서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두 아줌마를 만난 지 한 달이 됐어. 한 달 전엔 넓은 마당에 퍼팅 연습 홀이 있고 바다가 보이는 이층집에서 살았지. 외출 때는 예쁜 신발을 신었어. 선택된 개만 간다는 애견유치원도 다녔고. 그런데 여기서 뭐 하냐고? 나도 그게 궁금해. 어느 날 주인이 이곳에 나를 내려놓고 가버렸어. 그게 다야.




배익천 심사위원(왼쪽), 이동렬 심사위원. 사진출처: 국제신문


동화 부문 당선작 '굿샷! 쭈글이'는 심사위원 두 분께서 한 마음으로 '찍어뒀던' 작품이라고 합니다.

동화는 산문이지만 시에 가까운 장르인데,

응모작은 거의 생활동화여서 순수동화가 줄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당선작의 강점으로는 돋보이는 구성과 문장력, 

군더더기 없는 짧은 문장에서 느껴지는 박진감을 매력으로 꼽으셨습니다.


사진출처: 국제신문


도희주 작가님께서는 여러 동화를 쓰다 그만두기도 했지만 쭈글이만큼은 버릴 수 없어 묵혀두셨다고 합니다.

위암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다니며 수없이 동화를 반죽했다고 하셨어요.

아버지께 신문에 실린 당선작을 보여드리니 버리지 말고 간직하라고 당부하셨다고 합니다.


사진출처: 국제신문


왼쪽부터 정혜경 소설가, 남송우 부경대 교수, 강이라 단편소설 당선자, 황국명 인제대 교수, 

이명우 시 당선자, 차승민 국제신문 사장, 최정연 시조 당선자, 전연희 시조시인, 

도희주 동화 당선자, 배익천 동화작가, 이동렬 동화작가, 서태수 시조시인 이십니다. 



신춘문예 시상식에 가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습니다.

첫 시상식에서는 '신기하다'는 느낌이 컸다면 어제는 만남의 기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가 눈여겨 본다는 것

그리고 그 가치를 알아본다는 것

그 누군가가 나와 같은 (또는 비슷한) 일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

또 이런 만남을 통해 더 많은 읽는 이, 쓰는 이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


오랜 기간 묵혀온 원고, 고독하게 홀로 글을 쓰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당선자 분들의 숨길 수 없는 눈물을 바라보면서 새삼 글쓰기의 즐거움이란 그런 것이구나, 했습니다.

독자와 글쓰는 이를 연결하는 편집자의 기쁨 또한 그런 만남에서 오는 것이겠지요.

(이쯤에서 머릿속에서는 반사적으로 '연결고리'가 흐르는군요 ~_~)



어쨌든

새 봄에 뵙게 된

강이라, 이명우, 최정연, 도희주 작가님

모두 모두 축하드립니다 :)

앞으로도 꾸준히 건필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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