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인턴 미르입니다. 요즘 자주 뵙게 되네요.

다행히 날씨가 좀 시원해진 것 같네요. 오늘은 전국적으로 비가 올 수도 있다는데 더위도 식히고 가뭄든 땅도 좀 적셔줬으면 좋겠네요.

 

오늘은 여러분들께 『왜성 재발견 - 역사의 블랙박스』의 세 저자분 중 한 분인 김영동 기자님과의 인터뷰를 들려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기자님께서 많이 바쁘신지라 불가피하게 서면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을 내주신 기자님께 우선 감사드립니다.

 

순천왜성 천수각에서. 왼쪽부터 김영동 기자, 신동명 기자, 최상원 기자

 

 

Q. 저도 역사에 전혀 관심이 없는 편은 아니지만, 왜성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쳐들어온 왜군들이 기존 읍성 등을 빼앗아 사용한 줄로만 알았는데, 왜성을 쌓았다는 사실이 새로웠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왜성이란 생소한 존재일 것 같은데, 이것을 소재로 잡으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A. 평소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도 왜성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왜성 취재 기획을 확정하는 과정에서도, 제일 먼저 한 것이 결재 라인에 있는 간부들에게 왜성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왜성’이라는 단어 자체를 처음 들어본다는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더욱더 왜성을 취재해서 보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성은 우리 땅에 있는 우리 것입니다. 물론 왜성은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에 쳐들어온 왜군이 쌓은 성입니다. 그걸 우리 조상이 전리품으로 확보한 것이죠. 그럼에도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우리 것이 아닌 일본 것으로 많은 이들이 생각하고, 스스로 마음으로부터 멀리한 것이죠.

이를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왜성을 취재했습니다.

취재를 할수록 왜성은 왜군이 임진왜란에서 조명 연합군에 밀려 본국으로 퇴각하려고 구축한 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성은 왜군이 임진왜란에서 조명연합군에 밀리기 시작한 1593년 이후 집중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땅에 남아 있는 왜성은 임진왜란에서 패전한 왜군한테서 우리가 뺏은 전리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왜성을 소개해야 한다고 봅니다.

 

 

Q.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관점이었습니다. 대게 임진왜란을 다루게 되면 이순신과 조선 중심의 민족주의, 영웅주의적 시각에 빠지기 쉬운데요, 여기서 벗어나 왜군들의 시각과 상황을 함께 살펴본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을 택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A.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왜성을 전혀 다르게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일본 학자들은 대부분 왜성을 건축학적 측면에서 접근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왜성을 ‘전리품’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했습니다. 전리품은 전쟁의 산물이죠. 전쟁은 일방이 아닌 쌍방에 의해 진행됩니다. 임진왜란의 경우 일본과 조선은 물론 명까지 관련된 동북아 3국의 국제전이었습니다. 왜성은 이 국제전의 산물인 만큼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렇게 해야 한국은 물론 일본이나 중국의 전문가들도 인정하겠죠.

<왜성 재발견>은 국내 언론 사상 처음으로 모든 왜성을 소개한 시리즈이고, 이를 묶어 책으로 낸 것 역시 국내 첫 왜성 관련 단행본입니다. 사실상 왜성을 소개하는 입문서인 셈입니다. 앞으로 국내에서도 다양한 시각으로 왜성에 대한 접근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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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015년에 창원에서는 하멜보다 60년이나 앞서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 세스페데스를 기려 세스페데스 공원을 개장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왜군을 상대로 사목 활동을 벌이던 신부이며, 기념비는 웅천왜성 방문 기념비라는 점이 아이러니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왜성을 바라보시는 관점도 이와 관련이 있으신가요?

 

A. 세스페데스 신부가 한반도에 발을 디딘 첫 가톨릭 신부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 즉 ‘팩트’입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우고, 더 나아가 기념공원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스페데스 신부가 조선에 왔던 목적과 이 땅에 머물 동안 행적에 대해서는 별도의 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스페데스 신부는 사실상 왜군의 ‘종군신부’였습니다. 기념비를 세우고, 기념공원을 만든다면, 세스페데스 신부의 조선 방문 목적과 행적에 대해서도 명확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기념비와 기념공원에는 이에 대한 제대로 된 기록이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매우 안타깝습니다.

 

 

Q. 왜성에 얽힌 사건을 다루기 위해 『조선왕조실록』 등의 사료에 기록된 사건을 이야기로 풀어낸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일본 측 장면에 대해서도 자세한 묘사와 설명이 있었는데, 어떤 사료들을 참조하셨는지 여쭤보아도 될까요?

 

A. 임진왜란 때 조선에 쳐들어왔던 왜군 장수들 중 여럿은 자신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견줄 만큼은 아니지만, 참고자료로 쓰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지요. 또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일본 본국으로부터 받은 주인장이라고 하는 명령서도 남아있습니다. 세스페데스 신부와 게이넨 승려 등 종군신부나 종군승려로 참전했던 이들이 남긴 기록도 있습니다. 이런 1차 기록 외에, 일제강점기 일본 군부와 학자들의 연구 자료도 제법 있습니다. 임진왜란을 다룬 소설이나 시가집 등 문학작품도 많습니다. 가능한 이런 자료들을 많이 참고하려고 노력했습니다.

 

 

Q. 임진왜란 최초의 왜성인 증산왜성은 부산포의 역사를 간직한 좌천역사마을과 인접해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을 것 같습니다. 왜성을 청소년 역사 교육의 교재나 국제적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는데, 이와 관련해 탐방하기 좋은 왜성을 추천해주시겠습니까?

 

A. 왜성은 우리 조상이 자손들에게 물려준 전리품입니다. 자랑스러운 유산이죠.

대부분 왜성은 우리 가까이에 있고 접근성도 좋은 편입니다. 부산에선 증산왜성, 자성대왜성, 구포왜성 등이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갈 수 있는 왜성입니다. 동래왜성도 버스나 지하철로 갈 수 있지만, 전문가와 함께 가지 않으면 흔적을 발견하기 쉽지 않습니다. 기장군이나 강서구 가덕도에 있는 왜성들은 접근성이 좋지 않습니다.

울산에선 울산왜성이 도심 공원으로 가꿔져 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서생포왜성은 모든 왜성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뛰어나고 웅장하지만, 대중교통으로 가기는 어렵습니다.

경남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갈 수 있는 왜성은 마산왜성, 고성왜성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두 왜성은 보존상태가 별로입니다. 승용차를 이용해서 간다면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웅천·안골·명동 등 3개 왜성, 거제도에 있는 영등포·송진포·장문포·견내량 등 4개 왜성, 사천시에 있는 사천왜성 등을 권할만합니다.

전남 순천시의 순천왜성은 역시 순천에 있는 낙안읍성과 함께 둘러본다면 우리 전통 성과 왜성의 차이점을 비교할 수 있을 겁니다.

 

 

 

Q. 책에 등장하는 31곳의 왜성 중 저는 동래왜성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수안역 건설현장에서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유골이 발견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동래읍성의 돌을 동래왜성을 짓는 데 사용하고, 또 새로운 동래읍성을 지을 때 동래왜성의 돌을 사용했다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왜성이 무엇인가요?

 

A. 경남 김해시 한림면에 있는 해발 377m의 작약산 산등성 끝자락 구릉 정상에 있는 마사왜성입니다. 해발 80m짜리 구릉이죠. 왜성 서쪽 아래에는 낙동강이 흐르는데, 강 건너편에는 밀양시 하남읍이 보입니다. 2015년 9월 19일 마사왜성 현장 답사를 갔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구릉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많이 미끄러웠습니다. 무사히 정상에 도착했다가 낙동강 쪽으로 내려가다가 제가 미끄러져 4~5m가량 굴렀습니다. 당시 앞에 있던 최상원 선배가 깜짝 놀라 절 잡아주셨습니다. 산비탈에서 미끄러져 낙동강이 눈앞으로 다가오니 무섭더군요.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Q. 취재 중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성벽을 발견하셨다고 하셨는데요.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A. 부산 강서구 가덕도에 있는 가덕왜성 지성 인근에서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성벽을 발견했습니다.

왜성 취재를 갈 때는 기존 학계에서 만든 성벽 등 성 흔적을 정확히 표시한 지도를 항상 가져갑니다. 상당수 왜성의 성벽은 허물어진 상태로 흙이나 밀림 같은 풀숲에 파묻혀있기 때문입니다. 지도에는 일제강점기부터 일본과 한국 학자들이 조사를 통해 확인한 모든 성의 위치와 구조가 정확히 표시돼 있는데, 이 지도가 없으면 현장에 가서도 성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가덕왜성 지성을 취재하던 도중 지도에 나타나지 않은 성벽을 발견했습니다. 총 길이 750여m, 높이 2~3m, 너비 3m가량 됐습니다. 직사각형 돌로 옆줄을 맞춰 쌓은 형태였는데, 흙과 돌을 섞어 만든 구간도 있었습니다. 비스듬히 쌓은 왜성과 달리 전형적인 우리 전통 성벽 축성 방식이었습니다.

2주일 뒤 다시 현장을 찾아보다 자세하게 재취재했습니다. 왜성 관련 국내 최고 전문가인 나동욱 부산박물관 문화재조사팀장을 통해 이 성벽 유적이 국내 학계에 전혀 보고되지 않은 것이라는 확인도 받았습니다.

 

 

Q. 생소한 소재를 다루는 만큼 힘드셨던 순간도 많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A. 역사서와 성 관련 전문 지식을 공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일상적인 업무를 하면서 병행해야 하니 더 힘들었습니다. 전설과 역사적 사실을 구분해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힘든 부분은 전문 용어 등을 최대한 쉽게 풀어서 글로 옮기기였습니다. 왜성 전문 용어들은 대부분 일본식 한자로 정리돼 있습니다. 우리 학계에서도 대부분 이런 일본식 한자로 용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전문용어를 이해하고 한글로 풀어내면 어색한 문장이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나름 용어 정리를 통일해 글로 옮겼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 있습니다.

 

 

 

Q. 앞으로 어떤 분야에 대해 취재할 계획이 있으신지 여쭤보아도 될까요? 혹시 후속으로 또 다른 문화재를 소재로 삼으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A. 여름엔 수풀이 우거져 성곽의 흔적을 찾기 어렵습니다. 현재로썬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경상 좌우수영을 살펴보는 기획 등을 구상만 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하시고 싶으신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불편한 역사라고 해도 잊으려고 한다면, 그 민족은 도태될 것입니다. 성찰에 이은 발전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여전히 외면하고 있는 '왜성'이라는 임진왜란을 증명하는 역사적 증거가 우리 곁에 아직은 남아 있습니다. 왜군의 침략 역사이며, 조선의 승전 역사이기도 합니다. 이 역사적 증거를 보존해야 합니다. 남아 있는 왜성은 역사교육의 장소로,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역사적 교훈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이 책이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비록 직접 만나뵙지는 못해서 아쉽긴 하지만 답변을 꼼꼼하게 작성해주신 덕분에 궁금했던 점들이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시간 내주신 김영동 기자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역사의 블랙박스, 왜성 재발견』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독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