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난초 두 분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 3년 전 거처를 지금의 다래헌으로 옮겨왔을 때 어떤 스님이 우리 방으로 보내 준 것이다. 혼자 사는 거처라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는 나하고 그애들뿐이었다. 그애들을 위해 관계 서적을 구해다 읽었고, 그애들의 건강을 위해 하이포넥스인가 하는 비료를 구해 오기도 했었다.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 주어야 했고, 겨울에는 그 애들을 위해 실내 온도를 내리곤 했다.
(중략)

아차! 이때서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아니나다를까.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중략)

나는 이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 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한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중략)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번쯤 생각해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다른 의미이다. 

- 26~27쪽, 「무소유」




몇일 전 퇴근길에 지갑을 잃어버렸다. 흘렸는지 소매치기를 당했는지,
지갑 속에 들어있던 현금도 적잖았지만 그보다 각종 카드와 신분증을 다시 만들 생각을 하니 휴- 한숨부터 나왔다. 신용카드와 은행 현금카드, 보안카드, 신분증, 마트 적립카드, 도서관 대출 카드 등등. 이 많은 것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처음 세상에 태어날 때는 빈손으로 왔는데 살면서 소유물이 점점 많아져 물건의 노예가 되는 것 같다. 카드라는 물건만 해도 그렇다. 예전엔 이런 것 없이도 잘만 살았는데 말이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그만 잊자고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잃어버린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 머리속을 슝슝 날아다녔고, 현금만 쏙 빼낸 지갑이 걸거리 어느 쓰레기통 속에 처박혀 있을 생각을 하니 속이 점점 쓰려왔다.

그때 책꽂이 한 켠에 얌전히 꼽혀 있던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였다. 판권지를 보니 1999년판이었다. 스님이 돌아가신 후 최근 1990년 판이 거액에 경매가 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책.  '무소유'를 소유하기 위해 사람들이 집착하는 걸 보니 참 아이러니했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책을 읽었다. 다행히 쓰린 속이 좀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전국 산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래난
ⓒ강원일보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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