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가 독립운동하는 것 같아요"  

<사진출처=내손안의서울>

옛사람들은 먼 곳에 빨리 이르고 싶어 축지법이란 낭만적 술법을 생각해내기도 했다. 축지법이란 스스로가 쌓아온 내공을 들여 말 그대로 '땅을 줄이는 방법'이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손가락 클릭 한 건으로 땅(공간)과 시간을 도둑질(?)한다. 그런데도 현대인들은 더 바빠졌다. 어느 학자의 말을 빌린다면, 광속도(光速度)는 광속도(狂速度)가 되었고 실시간(實時間)은 실시간(失時間)이 되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간의 조응적 일치를 뜻하는 '아우라'의 붕괴. 여기에 맞춰 진정성이 사라진 복제기술은 융복합 이나 크로스오버, 혹은 창조 경제, 문화산업이란 타이틀로 그럴싸하게 포장된다.  

                                     송인서적 부도 사태 여파
                                 인접 산업계 패닉 상태 
                                정부도 市도 지원책 외면

(중략)

새해 벽두 몰아닥친 한국 2위의 도매업체 송인서적 부도 사태로 출판은 꽁꽁 얼어붙고 있다. 송인서적과 거래하던 2000여 개의 출판사가 어음 부도와 책값 미지급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부산의 대표적인 산지니 출판사와 해성출판사 같은 지역 중소출판사들은 핵폭탄에 가까운 직격탄을 맞았다. 부산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산지니는 어음(4000만 원)과 책값(9000만 원)을 받지 못해 1억 3000만 원 정도의 피해를 보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쇄사, 제지사, 제본사들이 줄줄이 연계돼 지역 출판계와 인접 산업계는 거의 집단 패닉 상태다. 산지니 출판사는 위기에 처한 부산지역 출판과 문화의 회생을 위해 지역출판사 책 한 권이라도 구매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산지니 강수걸 대표는 "12년 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출판사를 차린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라며 "출판사 대표조차도 유통구조가 이 정도로 후진적인 줄 이제야 알았다"고 한숨지었다. 이번 경우도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형출판사들은 현금 거래를 했고, 을의 처지인 중소출판사들은 어음 거래로 큰 피해를 입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 대책은 거의 없다. 출판사들의 모임인 한국출판인 회의가 정부에 100억 원 정도의 공적 자금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거절했다. 정부는 IMF 위기 이후 공적자금 168조여 원을 들여 금융회사들의 손실을 메워준 전례가 있다.

서울시는 미약하지만 지난 16일 국공립 도서관에서 피해 출판사들의 책을 구매하며 이들에게 저리 대출 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부산시는 지난 17일 실태 파악만 했을 뿐, 지원책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 부산시 어느 조직표를 봐도 출판 담당 공무원을 찾아볼 수 없는 게 현주소다. 영상, 영화, 게임 같은 외형적인 화려함에 치중할 뿐, 상상력과 창조력의 샘물 콘텐츠인 출판은 아예 배제돼 있다. 대구는 게임과 만화, 출판의 결합을 꾸준히 추진해 지난해 출판산업단지를 설립했다.

부산문화재단도 마찬가지다. 출판 진흥에 대한 근본적인 정책과 비전을 찾기가 어렵다. 출판(publication)이라는 단어 자체가 출판이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일임을 일러준다. '더불어 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 하는 근본적 현안에 대한 공론의 장을 깔아 준다. 정부나 지자체가 출판에 대한 획기적 지원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 고민해야 할 때다. 물론 커다란 변화에 대한 연결고리를 만들지 못하고, 2차 콘텐츠 대중화에 소홀했던 출판사들도 함께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2017-02-02 | 부산일보 | 박태성 기자

원문읽기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