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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검토 시한 D-100, 도서정가제 줄다리기 ‘팽팽’ - 한겨레신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8. 12.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에서 열린 ‘도서정가제 폐지를 우려하는 출판·문화단체 긴급 대책회의’에서 윤철호(가운데) 출협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대책회의에 참석한 30여 출판·문화단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민관협의체 합의안을 파기하고 도서정가제를 재검토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며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12일 도서정가제 재검토 시한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제도의 향방은 안갯속이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출판업계 사이 견해차가 커 감정싸움으로까지 치닫는 모양새다. 문체부가 이달 안에 개정법률안의 뼈대를 만들어 발표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가운데, 출판계는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까지 구성하며 총력 대응을 예고했다.

 

도서정가제는 책을 팔 때 정가의 15%(10% 가격 할인, 5% 경제상 이익) 안에서만 할인하도록 정한 제도다. 예컨대 출판사가 정한 책값이 1만5000원이라면, 마일리지 적립 등 경제상 이익까지 포함해 최대 1만2750원까지 가격을 낮출 수 있다. 자본력을 갖춘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의 할인 공세에 영세한 중소책방이 고사할 것 등을 우려해 정부가 가격을 유지하는 정책이다. 다만 출판 환경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3년마다 한번씩 타당성을 재검토한 뒤 폐지·완화·유지 등의 조처를 하기로 했다. 오는 11월20일이 바로 이 3년 주기 재검토 시한이다.

 

현재까지 문체부와 출판업계가 합의한 부분은 크게 세가지다. ①발행 뒤 일정 시일이 지난 구간의 정가변경 기한 완화(18개월에서 12개월로) ②웹툰·웹소설 정가 표기 때 가상화폐 허용(가상화폐와 원화 교환 비율을 병기) ③국가·지자체·도서관 등 공공기관 구매도서 할인율 최대 10% 등이다. 여기까지는 문체부와 출판업계·서점연합회·소비자단체·웹소설협회·웹툰협회 대표 등 13명이 지난해 7월부터 11개월간 총 16번의 회의를 거쳐 어렵게 공감대를 이룬 내용이다.

 

하지만 도서정가제 할인 폭 결정, 적용 예외 대상 등을 둘러싸고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특히 전자책 부분은 가장 민감하다. 복잡한 디지털 기술과 시대 변화가 결부된 문제라 보완책 마련이 까다롭다. 전자책 업계는 웹툰과 웹소설의 경우 초기 공격적 마케팅으로 소비자를 확보해야 하므로 도서정가제가 발목을 잡는다고 주장하지만, 기존 출판사들은 전자책에만 예외를 허용할 수는 없다고 맞선다. 소비자가 책을 사면 그만인 종이책과 달리, 전자책은 데이터가 오가는 문제라 판단이 쉽지 않다. 이선주 문체부 출판인쇄독서진흥과장은 “전자책은 플랫폼이 운영을 중지하면 책을 볼 수 없는 등 소유권이 완전히 소비자에게 넘어가지 않기 때문에 도서정가제를 똑같이 적용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상당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출판계 쪽은 의견이 다르다. 박옥균 1인출판협동조합 이사장은 “도서정가제는 아이에스비엔(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이시엔(ECN·전자출판물 고유번호)이 부여된 출판물에만 적용하기 때문에, 만약 전자책이 도서정가제 적용을 피하고 싶다면 이 번호를 받지 않으면 될 일”이라며 “아이에스비엔을 받아서 부가가치세 면세 혜택은 누리고 싶고, 도서정가제로 인한 가격 규제는 피하고 싶다는 건 전자출판계의 지나친 욕심”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의 관심이 큰 할인율 부분을 보면, 문체부는 현행 15%인 할인율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쪽이지만 출판계는 기존 할인율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성경 한국출판인회의 유통정책위원장은 “책값이 싸지는 것과 다양한 책이 출판되는 것, 둘 중 무엇이 진정한 의미의 소비자 후생인지 따져봐야 할 것”이라며 “도서정가제를 규정하고 있는 법 이름이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이듯 출판계를 보호하고자 만든 법인데, 문체부는 소비자 후생을 이유로 이 법의 취지를 외면하고 있다”고 했다. 동네서점 지도서비스업체 퍼니플랜의 자료를 보면, 도서정가제가 한층 강화된 모습으로 바뀐 2014년 이후 독립서점은 97곳(2015년)에서 551(2019년)곳으로 5.6배 증가했다. 도서정가제가 단순한 ‘책값’이 아니라 책과 서점 생태계 자체를 떠받치는 제도라는 점은 문체부도 인정하는 성과다. 청년세대 등 신규 출판·서점인 창출 역시 도서정가제의 효과 중 하나로 꼽힌다.

 

출판계는 “16차례 회의 끝에 도출한 민관협의체 합의안을 문체부가 일방적으로 뒤집었다”며 30여 출판·문화단체가 참여하는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문체부는 민관협의체 합의가 어렵다고 보고 지난 7일 전자출판계만 초대한 간담회를 열어 업계 의견을 수렴했다. 문체부는 이달 안에 개정안 초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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