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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에 『내러티브와 장르』가 소개되었습니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 8. 20.

 

노창희 미디어미래연구소 실장

 

플랫폼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국가적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의 산업 생태계와 미래의 산업 생태계를 주도해 나갈 것이 플랫폼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플랫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플랫폼을 채우는 것은 결국 콘텐츠이며 플랫폼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가 콘텐츠라는 사실 또한 자명하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서사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내러티브와 장르』(부산: 산지니, 임영호 옮김)에서 닉 레이시는 내러티브가 인간의 존재만큼이나 오래되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근대 소설에서부터 현재의 드라마, 영화에 이르기까지 서사의 원형이 된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고 그리스 서사시와 비극이었다. 김영하는 『읽다』(파주: 문학동네)를 기원전 그리스의 서사시 작가 호메로스로부터 시작한다. 당시 모두가 알고 있던 오디세우스 얘기를 쓰기 위해 호메로스는 현재의 관점에서 봐도 상당히 복잡한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고 김영하는 지적한다. 김영하는 호메로스가 이러한 방식을 택한 이유를 셰익스피어와 같은 후대의 천재적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를 다르게 쓰기(14쪽)”위해서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호메로스가 서사시를 쓰던 시절에 내러티브에 가해진 제약은 활용할 수 있는 소재의 제약이었다. 수천 년이 된 서사의 역사와 고전을 알고 있는 지금의 창작자들에게 가해진 제약은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서사와 어떻게 차별화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읽다』로 돌아오면 김영하는 현재의 관점에서 호메로스의 작품이 현대적이라고 느껴진다면 당대에 창작되고 있는 소설, 영화, TV드라마가 오히려 고대적이며 호메로스 시대의 서사들에서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호메로스 시절에는 이야깃거리 자체가 없어 서사가 빈곤해지기 쉬웠다. 콘텐츠를 제작할 때 참조할 수 있는 수많은 라이브러리가 존재하는 지금은 다른 이야기와 차별화 하는데 실패 한다면 서사의 식상함은 피할 수 없다. 어느 시대에나 좋은 서사는 찾기 어려우며 각기 다른 종류의 서사의 빈곤에 처하게 될 수 있다.

최근에 개봉한 <강철비2: 정상회담>의 소재인 남북관계는 이미 수없이 많은 다른 영화들이 소재로 활용해 왔다. 문제는 소재 자체가 아니라 그 소재를 어떻게 변주해 내어 그동안 남북관계를 다룬 다른 콘텐츠들과 변별점을 확보해 낼 수 있느냐 여부일 것이다. <강철비1>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차별적인 서사를 제공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마 속편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전작의 성공에 힘입은 바 컸을 것이다.

플랫폼이 많아질수록 좋은 서사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용자들의 눈높이는 높아지고 있고 플랫폼들은 콘텐츠를 수급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좋은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갈수록 힘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플랫폼의 수는 많은데 막상 좋은 콘텐츠는 찾기 힘들어지면서 우리는 또 다른 종류의 서사의 빈곤과 마주하고 있다.

다른 서사도 마찬가지만 영상 서사는 특히 기술적 변화에 민감하다. 현재의 동영상 소비 환경은 단순히 기술 발전에 힘입어 영상의 품질을 높이는 것을 넘어서 서사의 내용과 장치가 주 타킷이 되는 영상 소비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생태계가 되어 가고 있다.

제작비가 높아지면서 콘텐츠 제작에 따르는 리스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콘텐츠 투자의 목적은 보다 명확해야 하며,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이제 좋은 서사란 단순히 의미 있고 재미있는 내러티브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술적 환경을 적절히 활용하고 이용자의 니즈가 종합적으로 반영된 서사만이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다.

플랫폼의 성장을 견인하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환경에 부합하는 좋은 서사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플랫폼 사업자들이 미디어 뿐 아니라 커머스와 같은 다양한 분야를 동시에 서비스 하면서 플랫폼이 산업 성장을 주도해야 한다는 쪽으로 초점이 맞추어 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미디어 분야는 본질적으로 문화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동영상을 포함한 모든 서사는 당대의 특성을 어떻게 반영해 내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산업 육성에만 관심이 매몰된다면 오히려 산업 육성도 어려울 수 있다.

이용자들의 사랑을 받는 좋은 서사를 만드는 일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을 육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훌륭한 서사를 만들고 이를 유통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이 변화하고 있다. 미디어 이용량은 코로나로 인해 늘어나고 있고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그 이전과는 다른 세계가 될 것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코로나 이후 세상이 변화한다면 서사도 그 이전과는 다른 서사가 되어야 할지 모른다.

서사의 역사가 증명하듯 미래의 서사도 과거의 자장 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충분히 자유롭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다른 서사여야 한다. 그리고 내러티브만을 가지고 과거의 서사들과 경합하기는 어려운 환경이 되었지만 내러티브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가용자원은 더욱 늘어났다. 이와 같은 환경적 특성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느 시대에나 좋은 서사에 대한 갈증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플랫폼이 폭증하는 시대에 좋은 서사에 대한 갈망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클 수 있다.

 

[아주경제 원문 보기]

 


 

 

내러티브와 장르 - 10점
닉 레이시 지음, 임영호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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