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News1

 

[책&생각] 백원근의 출판풍향계

독일 조사기관인 스타티스타가 세계 17개국 국민의 독서 빈도를 조사해 발표한 2017년 자료에 따르면 ‘거의 매일 책을 읽는 독자’의 비율은 중국,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미국 등이 모두 30% 이상이었다. 이에 비해 한국은 그 비율이 13%로 조사 대상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9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를 보아도 매일 책을 읽는 성인은 2.3%로 앞의 국제 조사보다 훨씬 낮았다. 우리나라 성인 독서율은 스마트폰이 보급된 지난 6년 사이에 무려 20%나 떨어졌다. 이런 사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렇듯 역대급으로 책을 읽지 않는 나라에서 책값 제도 논란만 한여름 땡볕처럼 뜨겁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독서 환경을 만들까 합심해도 부족할 마당에 난데없이 도서정가제 문제가 크게 터졌다. 문체부가 지난 1년간 직접 운영해 왔던 도서정가제 민관협의체에서 내린 ‘현행 유지’ 결정을 난데없이 재검토한다고 밝히면서 생긴 사달이다. 작가, 출판, 서점, 독서단체들이 들고 일어나 정가제 사수를 외치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국정 지지율 하락으로 민감해진 청와대에서 문체부의 도서정가제 ‘현행 유지’ 추진 보고를 받자 추가 악재를 우려해 ‘소비자 후생을 더 챙겨보라’고 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지난해 가짜 뉴스 유포와 황당한 사실 왜곡으로 문체부 장관이 답변에 나서야 했던 ‘도서정가제 폐지 국민청원’ 여론을 청와대가 과도하게 의식했다는 것이다.

그럼 ‘소비자 후생’은 할인만 확대하면 해결 가능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할인을 확대할수록 할인 마케팅 경쟁력이 없는 전국의 대다수 영세 출판사와 서점들이 폐업에 내몰릴 것이고, 독자의 책과 유통경로 선택지는 그만큼 좁아질 것이다. 독자는 소비자의 권리는 얻되 독자의 권리는 잃게 될 것이다. 적정 가격의 정가 판매가 아닌 명목상 할인율은 거품 가격을 낳을 수밖에 없다. 현재도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이 허용한 15%의 직간접 할인만큼의 거품 가격이 구조화되어 있다. 할인을 염두에 두고 책값을 책정하기 때문이다. 양질의 책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판매 경로를 통해 공정하게 유통되는 것이야말로 ‘독자의 후생’에 기여하는 길이다. 비영어권 문화 선진국들의 공통분모인 도서정가제를 견지해야 한다.

 

문체부나 청와대는 도서정가제 관련법 조항을 결정하는 주체가 아니다. 3년 주기로 도서정가제에 대해 문체부 장관이 어떤 판단을 하더라도 결국 국회에서 법 개정을 해야 한다. 따라서 민간단체들과 정부가 힘겨루기하는 양상으로 변질된 현재의 구도는 청와대 개입이 초래한 불필요한 갈등일 뿐이다. 먼저 문체부는 도서정가제의 ‘현행 유지’ 결정 약속부터 지켜야 한다. 시간을 끌 까닭이 없다. 그리고 도서정가제 개정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번 기회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논의를 통해 문화의 바탕인 책과 도서정가제의 위상이 확고하게 정립되기를 바란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한겨레 신문 원문 보기]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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