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임성원 기자가 쓴 <미학, 부산을 거닐다>는 한 권의 ‘부산문화지도’로 읽어도 손색 없는 책이다. 특히 제2장 ‘부산, 공간의 미학’에서는 남포동, 광복동, 동광동, 대청동, 보수동, 중앙동 등 원도심을 거쳐 서면, 광안리, 해운대, 온천천, 금정산 부근에 이르기까지 부산 곳곳의 문화 공간을 소개하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쓸쓸한 퇴락의 기미가 읽히고, 또 어떤 곳에서는 활발한 부활의 징조가 읽히기도 한다. 그중에서 ‘중앙동’은 옛 영화와 정취를 잃은 쪽에 해당한다.

40계단 근처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문학 동네’였다. 부산작가회의, 부산시인협회가 자리하고 있었고, 인쇄 골목을 끼고 출판사들이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단체는 모두 서면 등지로 떠났고, 출판사들도 <전망>, <해성> 등 몇몇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떠나면서 문학인들이 즐겨 찾던 술집도 이젠 옛 영화와 정취를 잃었다. 
-임성원, <미학, 부산을 거닐다> 39p

 하지만 중앙동의 문화 지도는 다시 쓰이게 될 것 같다. 지난 4월 4일(토)에 개원한 <백년어> 서원이 ‘중앙동’을 새롭게 밝혀줄 환한 공간이 될 거라는 예감에서다. 개원 첫날 찾아간 <백년어>는 백 마리 나무 물고기들과 책들로 알뜰하게 채워져 있었고, 손님들의 축언들로 잔잔하게 달궈져 있었다. 공간 구석구석마다 김수우 시인의 다감한 손길이 닿아 있었기에, 그 손길을 따라가는 눈길도 덩달아 들뜰 수밖에 없었다. 커피를 내리고 있는 김수우 시인의 모습은 마치 다도를 하는 것처럼 곱고 정연했다.


3시가 되자, 이거룡 교수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15평의 아담한 공간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고, 바닥에라도 앉아서 강의를 듣는 이들은 그나마 행운이었다. 바깥에서 선 채로 힘겹게 귀를 기울여야 했던 분들도 많았던 것이다. 이 교수님은 강의 도중에 ‘소식을 들은 자만이 알 수 있다’고 했는데, 과연 ‘소식’을 들은 분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흐르지 않는 삶은 썩는다>라는 주제의 강의를 듣다보니, 철 들지 않고, 다소 위험하게 살아야 할 필요도 있음을 새롭게 생각하게 된다.

강의가 끝나고, 개원을 축하하는 말씀들이 이어졌다. 100마리의 나무 물고기를 깎아주신 윤석정 선생님과 공간 구석구석 설비를 맡아주신 시인의 아버님을 비롯하여 여러 고마운 지인들이 소개되었다. 그 밖에 신문을 보고, 소식을 듣고, 이끌려서 발걸음하신 분들도 많았다. 바로 이 ‘첫 손님’들이 <백년어>의 공간을 활기차게 움직여나갈 것이다.   

이제 100마리의 물고기들이 헤엄쳐나갈 일만 남았다. '저렇게 하셔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낌없이 마실거리를 나누어주시던 김수우 시인, 4월 인문강좌도 ‘무료로’ 제공하신다고 한다. 봄볕 좋은 토요일, 중앙동으로 나들이 갈 강력한 이유가 생겼다!


백년어 서원 개원기념 4월 인문강좌 : 토요일 오후 3:00

◎ 4월 4일 흐르지 않는 삶은 썩는다 / 이거룡 교수
◎ 4월 11일 문학적 상상력과 영성 / 고진하 시인
◎ 4월 18일 사진과 사람 / 한정식 교수
◎ 4월 25일 소통과 치유를 꿈꾸며 / 김수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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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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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랑 2009.04.09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원이라고 해서 안동의 도산서원이나 그런 걸 생각했는데
    차도 마시고 책도 볼 수 있는 북카페 같은 곳이군요.
    중앙동 나가면 한번 들러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