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걷다에서 작가는 현재의 부산을 걸으며, 소설 속의 부산을 걷는다. 소설가가 보는 현재의 부산과 소설 속에 표현된 부산은 닮은 듯 다르다. 소설 속의 공간이란 상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공간의 재현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작품에서 재현하고 재창조된 공간을 통해, 우리는 그 시대와 공간을 정의하고 재조립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의 정경이 완벽하게 시대를 반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시각에서 꽤나 흥미롭게 소설 작품과 부산이라는 장소를 읽어나갈 수 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공간에서 작품을 떠올리는 것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는 것 같다. 과거의,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공간을 상상하며 거리를 걷는 건 그저 현실의 공간을 여행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왠지 소설 속 주인공과 대화할 수 있을 것만 같고, 금방이라도 등장인물이 나의 옆을 스쳐 지나갈 것만 같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를 찾을 때는 이상하게 그 배경이 가상의 공간이라는 것을 더 절감하게 되는데, 어쩐지 소설의 배경지는 실제 인물이 살았던 공간에 내가 침입한 듯하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님에도 내가 마치 그들의 후손인 양 감상에 젖게 된다. 그래서 현실의 부산에 발 디디고 있지만, 공연히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된다.

부산은 역사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공간이다. 바다와 인접해 오래 전부터 타국의 침략이 잦은 동시에 교류가 활발했고, 전쟁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경관으로 여름이면 찾을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를 담은 곳이니, 문학적으로 흥미로운 공간임에 틀림없다. 해운대, 영도 등 부산의 유명한 공간들이 많이 있지만 나는 그중에서 구포와 낙동강에 집중하려 한다.

 

구포역 부산 3호선

 

구포역 부산3호선

부산 북구 낙동대로 1697 (구포동 1154-1)

place.map.kakao.com

 

이광수의 무정을 이야기할 때 계몽주의는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그는 시민들이 깨우쳐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고, 등장인물 또한 동경이나 미국 등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이 부산행 기차를 탄 것으로 보아, 당시에 동경이나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 항구도시인 부산을 거쳤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사실 무정의 배경지가 부산은 아니다. 유학을 위해 부산행기차에 몸을 실은 인물들은 낙동강 홍수 피해를 입은 삼랑진에 정차하게 된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 등장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저들을…… 저들이 아니라 우리들이외다…… 저들을 구제할까요?” 하고 형식은 병욱을 본다. 영채와 선형은 형식과 병욱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병욱은 자신 있는 듯이,

“힘을 주어야지요! 문명을 주어야지요!”

“그리하려면?”

“가르쳐야지요―인도해야지요―”

“어떻게요?”

“교육으로, 실행으로.”

- 이광수 『무정』

유학길인 부산에 다다르기 직전인 삼랑진의 낙동강에서, 그들은 유학의 목적을 공고히 한다. 배우고, 깨우치고, 가르쳐, 시민들을 무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타국과의 교류가 가능한 항구도시 부산은 그런 의미에서 무정의 중요한 요소이다. 계몽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배움의 출입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물들이 부산땅 한 번 밟지 않았음에도, 당시의 부산이 지식인들에게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 이야기를 걷다 』 개정 전(왼쪽)과 개정판(오른쪽).  2006년 출간하였던 『 이야기를 걷다 』가 11년이 지나 개정판으로 새로 태어났다. 몇 작품이 추가되었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부산의 정경 또한 개정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야기를 걷다에서는 조명희의 낙동강, 김현의 봄날의 화원을 언급하며 물류의 중심이었던 구포를 조명하지만, 이 글에서는 조갑상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구포와 독자인 내가 바라본 구포에 대해 더 집중해보려 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다닐 때 친했던 친구네가 여기서 제재소를 했다. 몰래 마신 술이 깨지도 않은 이른 아침부터 엄청 큰 나무를 자르는 기계 소리에 늦잠을 잘 수는 없어도 묘하게 흥청대는 역 앞 분위기와, 통통배 타고 김해 대동면으로 건너가는 재미를 쉽게 내칠 수 없었다.

- 조갑상 『이야기를 걷다』 p.25

저자가 기억하고 바라보는 구포는 내가 알고 있는 현재의 구포와는 또 다르다. 이제는 사라진 구포다리와 통통배를 타고 다니는 김해를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제 다시는 겪을 수 없는 그 시대만의 정경과 운치가 꽤나 즐거웠던 것 같아 덩달아 즐거워지기도 한다.

사실 부산의 많은 지역 중에서도 구포와 낙동강을 조명한 것은 개인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구포는 무정처럼 배움의 출입문인 동시에 이야기를 걷다의 통통배이기도 하다.

대학시절 편도 다섯 시간을 거쳐야 본가와 학교를 오갈 수 있었다. 돈 한 푼이 아까운 시기였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오고 갔음에도 당연히 무궁화호였다. 시외버스를 탈 수도 있었겠지만, 차멀미를 하는 나에게 그건 고문과도 같았다. 무궁화호를 예매할 때는 무조건 낙동강이 보이는 창가 자리를 선점해야 한다. 그러면 굳이 창문을 열지 않아도 바깥을 감상하며 여행하는 기분을 낼 수 있다. 그렇게 구포는 나에게 학교와 집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제는 나의 일상에 구포역이 자리 잡았다. 출퇴근을 하는 동안 스쳐간 수십 개의 지하철역 중에서도 구포역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낙동강의 풍광 때문이다. 아침이면 햇빛에 반짝이는 낙동강을 보며 지하로 들어가고, 저녁이면 지하에서 나와 한 단의 실크 같은 다홍빛 낙동강을 바라본다. 그 시간이면 스마트폰에 열중하다가도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 저 밑에 통통배를 타는 그 시절의 저자가 보일 것도 같다.


 

시대는 흘러가고 공간은 변화한다. 우리는 사라진 공간을 아쉬워하고 그리워하지만, 그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한 편의 사진처럼 그 공간을 자신의 방식으로 추억하고 기록할 수 있다. 소설은 어차피 읽는 자의 몫이다. 소설을 읽는 순간부터 우리에게는 마음껏 공간을 상상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변화한 공간을 아쉬워하기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추억하고 상상하며 새로운 공간을 기록해 나가는 것. 저자와 함께 이야기를 걷다 보면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사항 및 출처>

이광수, 무정』, 애플북스

조갑상, 『이야기를 걷다 - 소설 속을 걸어 부산을 보다』, 산지니

구포역 - 나무위키 (namu.wiki)

 

Posted by 부산에서 책 만드는 이야기 : 산지니출판사 블로그 제나wpsk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