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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일기

의대 교수, 자신 집단의 기득권을 향해 칼을 들다.-『현미경으로 들여다본 한국사회』의 저자 정영인 교수 인터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 20.


  "똑똑똑, (...) 똑똑똑, (...) "
  두번의 노크에도 연구실 안은 묵묵부답이었다. 분명 전날 약속도 잡았고 교수님께 오전에 문자도 보냈는데 당황을 했다. 결국 등에 식은땀 한 방울과 떨리는 마음과 목소리로 전화를 드렸다.
  "네, 일분 안에 가요!"
  이내 정영인 교수님께서 환한 웃음과 함께 복도를 뛰어 나타나 주셨다. 그 때부터 나는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서 긴장한 채로 연구실에 들어가 앉았다.

  "그으래, 나한테 물어보고 싶으게 뭐요?"라는 질문으로 교수님께서 오히려 인터뷰를 시작해 주셨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한국사회』는 2011년 1월 24일에 산지니 출판사에서 출간된 18개월을 아직 채우지 못한(엄연히 따지자면 12개월도 채우지 못한) 따끈한 신간이다. 

  이 책의 저자는 부산대학교 의대 정신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정영인 교수다. 우리는 흔히 의사, 의사 중에서도 대학병원 의사, 심지어 국립 대학교 의대 교수라 하면 그 사고가 경직되어 있고 변화를 싫어하며 수구적이고 조금씩은 돈에 혈안이 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처음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는 '현미경으로 들여다 봐야 또 군중심리니 어쩌니 하겠지.' 하는 생각과 그냥 특별할 것 없는 책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편견은 책의 머릿말을 읽으면서 무참히 깨어졌다. 저자의 시각은 날카로웠고 언제든지 자신과 자기의 집단의 기득권과 권위를 향해서 스스로 칼자루를 휘두를 매서운 그것이었다. 책에는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현안에 대해 언급 되고 있는데 특히나 정치와 대학, 의료계에 대한 날선 비판은 예리하고 신랄하다. 그의 육성으로 책에 있는 이야기, 또 없는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Q. 올해가 선거의 해이니 만큼 정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책에서도
      날카롭게 지적하셨듯이 이명박 정부의
소통에 대한 언급은 당선자시절부터
      계속되어 왔습니다. 
이제 정권이 마지막으로 달려가는 이 시점에서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이명박 정부의 소통의 방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교수: 소통이 안된다는 것은 한마디로 '남의 말을 잘 안듣는 다'는 거지요.
             남의 말을 안듣는 다는 것은 자기 주장과 가치에 함몰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못 듣는 것이죠.

*필자: 대통령이 항상 소통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같이 언급하셨던 게 홍보가
         잘 되지않았다고 말씀 하시곤 했습니다. 이것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교수: 정직한 내용을 솔직하게 사람들에게 알리 것이 가장 효과적인 홍보의 방법이죠.
            언제나 정직이 최상의 방법입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거죠. 덧붙여 이야기 하자면
            대통령 후보자 시절부터 여러가지 도덕성 문제가 제기 됐죠, 그런데도
            국민들이 대통령으로 뽑아 준 것은 '경제를 살려라'는 이유에서 였던 거죠.
            기업인 출신이니까 나라 경영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말이예요.
              하지만 기업과 국가는 경영의 근본이 다른데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고 적자생존의 방식을 취하지만 국가는 물론 발전도 해야
            하지만 못살고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역할도 가지고 있는데 그분에게는 그런 인식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Q. 대학에 대한 많은 문제점을 책에서 지적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 2월이 되면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이 또 쏟아지게 됩니다. 
      고졸자보다 대졸자가 많은 이 시대에 대학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정교수:대학은 지금 구조조정을 해야합니다. 고등학교의 졸업자의 80%가 대학에 간다는
            것이 코메디인 셈이지요. 대학이 학생들을 가르치기보다는 비지니스화 되어있고
            거대한 학원이 되어있고 또 거대한 고시원이 되어있는 거지요. 책에도 써놨지만 
            낙후된 현재의 대학 수준으로는 대학이 경쟁력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세계 13위 정도 되는데 대학 수준은 어느정도죠?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학생들을 데리고가는 서울대가 그런 수준이라면
            내가 몸담은 학교는 어떻고 나머지 학교들은 어떻겠어요. 

*필자: 그렇다면 우리나라 경제 수준과 대학수준을 비교해보면 경제적인 수준에 비해
         정신적인 의식 수준이 떨어진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겠군요.

*정교수:혹시 외국의 대학을 가봤나요. 혹시 가보지 못했다면 기회가 있다면 꼭 가보세요.
            제가 미국의 대학에 있을 때 느꼈죠. 미국의 힘은 바로 대학에서 나온다는 
            것을요. 단적인 예로 1990년대 미국의 명문이라 하는 하버드 대학교에 인구대비 
            입학생 비율이 제일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였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중퇴자의 비율도 우리나라 학생들이 제일 높게 나온 거지요. 학생들에게 
           단기 목표(Short term goal)는 있지만 장기목표(Long term goal)는 없는거죠.
     
       말하자면 '대학에 가겠다.'는 목표로 공부를 하지만 대학에 가서 
            무엇을 해야겠다던가, 졸업 후 무엇을 해야겠다던가,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목표가 없는 것이죠.
            이게 우리나라의 문화적 폐습이고 대학을 수술해야하는 이유입니다.
            대학은 좋은 입학생을 뽑기 보다 좋은 졸업생을 배출하는 것에 집중해야합니다.

 Q. 교수님께서 책에 쓰신 '무지개 처방' 부분은 저도 참 공감하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상비약 슈퍼판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약물 남용이라는 맥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지개 처방이란 지휘관이나 지체가 높으신 분들에게 약을 처방할 때는 꼭 필요한 약제만 간단하게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증상과는 무관한 소화제나 비타민 또는 간장약 등을 섞어 마치 무지개 빛깔처럼 울긋불긋하게 한 움큼씩 처방하는 행태를 지칭한다. 그렇게 처방해야 그분들이 처방을 신뢰한다는 것이다.(본문 180~181쪽)

*정교수: 그건 당연한 일이죠. 외국에서는 일반 마켓에서 약을 다 살 수 있잖아요. 그리고
            처방이 필요한 약은 약사가 지어줄 수 있게 약사가 있는 마켓이 있기도 하고.

*필자: 그럼 약사회가 지적하듯이 약물남용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교수: 말도 안되지요. 결국 밥그릇의 문제에 봉착한 거예요. 약물 남용이요?
            어떻게 피로회복 드링크제가 약이예요. 어떻게 비타xxx가 약이냔 말이죠.
            내 연구실에 박스로 갖다주곤 하는데 그게 약이면 그렇게 할 수 있냐 말이죠.
            약물남용이라고 말하는 것도 근거 없는 이야기인 것이 의사 처방이 있어야
            팔 수 있는 전문 의약품도 처방없이 환자들에게 파는 약사들이 그런 말을 하면
            안되는거죠. 약국에서 약을 판다고 약물 남용이 안된다는 보장도 없지 않나요.

 Q.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질문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작년을 강타했는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픈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정교수: 나도 그 문구를 빌려서 말해보자면 "실패하니까 청춘이다." 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젊었을 때 도전하고 또 도전하기 때문에 젊음인 것이지요.
             실패를 절대 두려워 하지 마십시요. 젊기 때문에 실패할 수 있는 겁니다.

               또 한가지 말해주자면 사회의 질서에 순응하기 보다는 문제에 대하여
             분노할 수 있는 청춘들이 되어라는 것입니다. 창의적이지 못하고 정체되어있는
             사회 만큼 위험한 사회는 없습니다. Break the rules. 규칙을 깨부수고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야, 그래야 우리나라도 미래가 있지 않겠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교수님께 두 가지 요청을 드렸습니다. 한가지는 책에 사인 해달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사진 한 장 부탁드린다는 것이었는데 두 가지다 너무나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인터뷰 내내 손에 들고 계시던 유성 볼펜을 치우시고 최근에 선물 받아 "이 만년필로 사인받는 건 니가 처음이다."라고 말씀하시며 멋지게 사인해주셨습니다.

  "교수님, 인자하게 웃어 주세요~"라는 저의 주문에 인자하게 웃어주신 교수님 한 컷.


  시종일관 어색한 진행과 어이없는 우문에도 웃으면서 즐겁게 해주신 교수님,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무서운 분일꺼야, 막연한 걱정에 처음에 너무 얼어 있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봄날처럼 따뜻했던 겨울 오후 무거웠던 책의 내용과 인터뷰 내용에도 불구하고 좋은 분을 만나게 되었다는 기쁨과 따뜻함이 가득한 오후였답니다.







-------------------------------------------------------지금부터는 여담입니다!

  원래 여담이 진짜 재밋는거 아시죠? 지금부터가 알짜배깁니다.
                                               (여담은 반말&사투리로 나갑니다. 아주 생생하게..)

<여담1> 무지개 처방 이야기에서 기사에 못 다한 이야기.

*정교수: 그 글을 언제 쓴 거게?

*필자: 잘 모르겠는데요?

*정교수: 그 글 22년 전에 써 놓은 거다. 진짜 안웃기나?(빵터지심)

*필자: 아, 그럼 22년 전이나 지금이나 약을 짓는 방식이 여전히 하다는 거네요. 헐,

*정교수: 그런 거지. 그니까 우리나라 약사들 약병에 있는 약 다시 꺼내가 
            좌르륵 봉지에 다시 담아주는 일 하는거라. 이래 하는 나라 전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디.

<여담2> 교수님께서 얼어있는 나를 풀어주려고 던지신 한마디.

*정교수: 니 왜이래 얼어있노.

*필자: 제가.. 사실.. 정신과 의사선생님은 처음 뵙는거라.. 좀... 떨려요...ㅠㅠ

*정교수: 니 오늘 밖에 나가서 내 만나고 왔다고 하면 니보고 미친 사람이라고 할꺼야ㅋㅋ

<여담3> 가루약의 비밀

*정교수: 니 옛날에 왜 약을 다 가루로 만들어 줬는지 아나?

*필자: 먹기 편하라고 그런거 아니예요?? 전 가루약은 잘 못먹지만요..

*정교수: 니 그런 줄 알았제. 먹기 편하기는 알약이 젤 편한데 가루약으로 만드는 이유는,
            뭔 약 넣은지 환자들이 모르게 할라고 그런거다.

*필자:  헐.. 진짜요....

<여담4> 리베이트 좀 받으세요~

*정교수: 내가 뭘 할 수 있겠노, 이런(사회에 대한 비판) 말이나 할 수 있지.
            나는 명예도 없고 돈도 없다.

*필자: 교수님도 리베이트 좀 받으시지 그러셨어요ㅋㅋㅋ
          (책에 의사들의 리베이트 문제를 지적하는 부분이 나온다)

*정교수: (웃으시며) 그걸 빨리 좀 말해주지 그랬노, 그걸 이제 가르쳐주노ㅋㅋ
            작년부터 쌍방과실이라 받았다가 걸리면 나도 벌금 내야해서 이젠 안된다ㅋㅋㅋ

<여담5> 인터뷰 & 인터뷰 기사작성 감상문

  여담이 길군요. 사실 인터뷰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글로 옮겨 놓으니 시종일관 진지한 이야기만 할 걸로 오해하실까봐서 이렇게 여담을 좀 덧 붙여보았습니다. 재미있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더 재미있고 노골적인 이야기들이 많지만 교수님의 인격 보호를 위해 저만의 것으로 잘 남겨두겠습니다.
  교수님께서 지어주신 영어이름 Simmone(샤르트르 부인의 이름이라고 하신 말씀 기억하고 있습니다)는 잘 간직하고 있다가 진짜 외국 나가면 제 이름으로 잘 사용하겠습니다! 정말이지 재미있는 만남이었고 또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긴 글 장시간 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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