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 27일, 산지니X공간에서 사현금 동인의 세 번째 무크지 『편백나무 상자』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사현금 동인 김하기, 강동수, 박향, 정인 소설가와 더불어 이상섭, 이미욱 소설가와 함께했는데요.
사현금 동인은 군사 정권의 문화 탄압에 맞서 저항의 수단으로 쓰였던 무크지의 역사성을 이어받아, 작품을 통해 “문학은 개인을 구원하는가, 아니면 사회를 구원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아쉽게 못 오신 분들을 위하여 강연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해 드립니다!

이선화 편집자 안녕하세요, 『편백나무 상자』 북토크를 찾아주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이번 북토크의 진행을 맡은 산지니 이선화 편집자입니다. 오늘 북토크에서는 사현금과 소설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이번 세 번째 무크지는 5년 만에 발간되었는데요.『편백나무 상자』를 세상에 내놓은 마음이 어떤지 듣고 싶습니다.
김하기 작가 원래는 합평회만 하는 모임이었지만 우리의 작품 성과를 결과물로 만들어보자라는 강동수 선생님의 제안에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무크지는 작은 문학을 지향하는 첫걸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었고, 두 번째 무크지는 코로나 시대를 버티는 문학의 생존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었습니다. 세 번째 무크지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습니다. 작품은 있었지만, 출판 환경이 되지 않아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세 번째 무크지는 시대의 격변 속에서 어떤 문장으로 이 시대를 견디며, 어떤 방식으로 현실을 기록하고 해석할 것인가,라는 고민 속에 이 무크지가 탄생했습니다.
이선화 편집자 사현금 동인회는 어떤 취지로, 어떻게 모이게 되었나요? 동인회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향 작가 사현금 모임을 제일 먼저 제안하신 분은 김하기 선생님입니다. 어느 날, 김하기 선생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소설을 공부하는 모임을 꾸려보자는 말씀을 하셨어요. 나이가 들더라도 함께 공부하고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작가들이 되었으면 한다고요. 처음 전화를 주셨을 때는 너무 당혹스러웠지만, ‘소설을 공부해 보자’는 한마디가 마음이 울리더라고요. 그리고서 제가 강동수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모임에 들어오도록 설득했고, 이후 정인 선생님이 합류해서 이 모임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사현금이라는 이름도 없었습니다. 이 이름은 강동수 선생님께서 제안해 주셨는데요. 사현금은 바이올린의 옛날 이름입니다. 각자 소리가 다른 네 개의 현이 어우러지면 정말 아름다운 음악이 나오듯이 우리도 각자 개성이 다 다르지만 멋진 음악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짓게 되었습니다.
이선화 편집자 창작을 하면 합평도 진행하시는지,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가 궁금합니다. 또, 세 번째 무크지를 발간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정인 작가 작품 제출을 하고 합평 순서를 정합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진행하고, 작품이 늦어질 경우 날짜를 늦추는 방식으로 유연하게 하고 있습니다. 합평을 할 때는 굉장히 진지하고 가차 없습니다. 제 기준에서 말해보자면, 합평할 때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 그런 부분은 깊게 생각해 보고 대체적으로 수정을 해보는 편입니다. 물론, 결코 안 그러는 분도 여기에 있습니다. (웃음) 그리고 서로 영향은 안 받은 것 같습니다. 각자 느끼는 점을 이야기하면 납득은 되지만, 개성이 다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개성대로 집필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선화 편집자 무크지마다 외부 필진이 두 분 참여하시는데요, 어떤 기준으로 소설가님들을 초대하시나요?
박동수 작가 우리끼리 작품만으로 이 책을 만드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고, 함께 소설을 쓰고 울고 웃고 하는 동료들의 소설도 넣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부 논의를 거쳐서 결정되지만, 특별히 정해진 기준은 없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한 분은 우리보다 선배 작가를, 한 분은 우리보다 후배작가를 모십니다. 그럼 총 여섯 편이 되는데, 제 기준 소설집에 들어갈 작품 수치곤 좀 적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는 한 분 정도 더 초대하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입니다.

이선화 편집자 네, 잘 들었습니다. 이제 소설 한 편 한 편 이야기를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어느 봄날의 소묘」는 기이한 행동을 일삼는 꽁지머리 ‘김 씨’와의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꽁지머리 김 씨’라는 인물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이상섭 작가 제가 몸이 안 좋아서 새벽 6시가 되면 꼭 산행을 가거든요. 산행을 가다 보니까 만나시는 분들이 대부분 노인입니다. 근데 그분들이 왜 운동을 하게 됐는지 궁금했었는데 다 각자의 앓았던 병들이 있고 사연이 있더라고요. 「어느 봄날의 소묘」는 그것들을 엮어낸 것입니다. 먼저 꽁지머리 김 씨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모델로 잡은 실존 인물이 있긴 합니다만 그대로 가져온 게 아니라 상상력을 덧붙인 인물입니다. 산 중턱 운동 기구가 있는 곳에서 보는 사람인데, 항상 운동하고서 사과만 싹 얻어먹고 조용히 가요. 한 번 쭉 지켜보니까 너무 먹기만 하고 고맙다고 사탕 하나 주는 법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신비해서 이 사람을 통해가지고 뭔가 이야기를 한번 만들어내면 좋겠다 싶어서 상상력을 덧붙여 탄생시킨 인물이고요. 두 번째로 황영감님은 실존 인물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이선화 편집자 「밤은 언제 잠드나」에서 준희와 혜미는 서로를 동경하는 동시에 열등감을 느낍니다. 두 인물의 복잡한 감정선이 섬세하게 그려지는데요. 두 캐릭터를 어떤 방식으로 설정하셨는지, 왜 그렇게 설정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이미욱 작가 준희는 정규 교육과정을 밟고 체계적인 학습 방식을 지닌 인물입니다. 반면 혜미는 자기주도 학습으로 검정고시를 치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갑니다. 준희의 입장에서는 '바른' 자신의 모습이 혜미와 비교하면 '답답한' 자신처럼 느껴진다든지, 또 혜미의 입장에서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이라고 생각되는 자신의 모습이 준희와 비교하면 '자기 통제력이 없는 삶'이라고 느껴진다든지 인물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결핍을 느끼도록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이 결핍이 열등감과 동경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선화 편집자 「고귀한 죽음」에서는 노인과 돌봄 로봇 ‘선조’라는 설정이 흥미로웠습니다. 노인에게 죽음과 자율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소 디스토피아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미래를 상상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정인 작가 이 소설은 저의 경험과 미래에 대한 염려, 관절을 가지고 사람처럼 이제 활동하는 로봇이 나오기 시작하는 현시대를 녹여낸 작품입니다. 저희 시어머니께서는 지금 12년째 누워 계세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그렇게 누워서 꼼짝 못하면 굉장히 건강이 허물어질 것 같은데, 요즘 약도 너무 좋고 가족들이 잘 돌보고 있어서 어머니께서 굉장히 건강 상태를 잘 유지하고 계십니다. 가정 요양 제도로 의사와 간호사가 집으로 한 달에 두 번 정도 오는데 그분들이 저희 어머님 상태를 보면 깜짝 놀랍니다. "할머니 앞으로 10년은 끄떡없으시겠어요" 이러거든요. 근데 그러면 저희 어머니가 "난 앞으로 20년 더 살 건데"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보면 어떨 때 저는 어머니를 돌보면서 점점 나이 들어가는 걸 느끼고 힘들어지는데 우리 어머니는 가만히 누워서 에너지를 안 쓰시니까 굉장히 상태가 좋으신 거예요. 그래서 어쩌면 내가 먼저 갈 수도 있겠다. 결국은 그러면 이 상태로 유지가 잘 되면 나중에 어머니 혼자 살아계실 수도 있겠는데 이 생각이 정말 어느 날 문득 드는 거예요. 저희 친정 어머니도 주간보호센터 다니시면서 건강을 유지하려고 굉장히 노력을 하시거든요. 두 분 다 지금 90, 94살이거든요. 근데 본인이 앞으로 20년 더 살겠다 했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로봇 산업이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니까 앞으로 한 20년쯤 뒤 한 한 30년쯤 이때는 정말 그러니까 '선조'라는, 이름대로 착하게 잘 도와주는 일을 하는 로봇이 등장해서 돌볼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정말 들었어요.
이선화 편집자 네, 소설 속 춘영의 나이가 115세로 나오는데 선생님 어머님 나이를 들으니까 딱 20년 후가 이렇게 설정이 되네요.


이선화 편집자 「순수의 바다」는 세 친구의 술자리가 위로가 아닌 상처로 이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도 말 못 하는 감정들이 있다는 점이 현실적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떤 순간이나 감정에서 출발했나요?
박향 작가 우리가 오랫동안 만나온 사람들은 말하는 패턴이나 성격 같은 것을 잘 아는 사이잖아요. 근데 어느 날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하다가 상처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절대로 나쁜 의도가 없다는 것은 알지만 나에게는 상처가 될 때가 종종 있었고, 그렇다면 이런 상처에서 탄생하는 아주 미세한 틈이 관계를 망가뜨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소설에서는 좀 더 극적으로 제가 구성을 했지만 그런 것들을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항상 아주 기름을 칠한 것처럼 매끄럽지가 않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선화 편집자 이 소설집에서 가장 와닿았던 게 박향 선생님 작품이었는데, 아무래도 제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게 인간관계이기도 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소설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이 있었는데요.
10년 전보다 몸무게가 더 나간다면 그것은 집안일이나 남자친구 일이나 서로에게 나눈 이야기가 살이 되어 붙었기 때문일 거라고 종종 제연은 생각했다. _126p
이선화 편집자 참 공감이 됐습니다. 소설에서 오랜 시간 알고 지내던 셋의 관계가 안 좋게 끝이 나잖아요. 그렇게 오랜 시간 정들면서 서로를 위로해 주던 관계가 미세한 틈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되게 잘 전달해 주신 것 같아요. 또 다음 소설 살펴보겠습니다.
이선화 편집자 표제작이기도 한 「편백나무 상자」는 안락사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소재를 선택하신 계기와 작품을 쓰면서 가장 고민되었던 지점은 무엇일까요?
박동수 작가 소설을 쓰면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혹은 주인공들이 제 나이를 항상 따라가는 느낌이 좀 들어요. 그렇게 되니까 또 자연스럽게 60대 되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에 관심이 생기는 거죠. 노년이 되면 고독사, 치매 등 여러 문제가 생기는데, 그중 하나가 안락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걸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안락사를 선택한 아내와 남겨진 남편 이야기를 쓰게 되었는데, 이야기가 서정적인 느낌보다는 빈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내의 유골함에서 뼛가루를 타먹는 설정을 넣게 되었죠. 합평에서의 의견은 그 설정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독자에게 전달할 것이냐가 중요할 것 같다고 말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천주교, 영성체 등 부연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부디 엽기적으로 봐주지 말아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또 이 소설의 제목이 원래「아내의 무덤」이었어요. 아내는 죽었지만 남편이 아내의 무덤이 되어 아내와 동행하는, 아내의 무덤이 되어주는 서사를 드러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제목이 너무 직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최종적으로 「편백나무 상자」로 정했습니다.
이선화 편집자 덕분에 자칫 밋밋할 뻔한 소설에 강렬한 로그라인이 생긴 것도 같습니다.

이선화 편집자「열 고개」는 이번 소설집에서 설정이나 분위기가 다른 작품들과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목숨을 건 추리 게임이라는 설정을 떠올리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동인회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나요?
김하기 작가 코로나19가 우리 인간을 고립화시키는 동시에 알고리즘, AI 등 가상세계 기술은 더 강화시켰다고 생각해요. 이제 AI는 자기들끼리 어깨를 서로 맞잡고 커넥팅하면서 인간을 능가하는 특이점을 지난 시점이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고, 또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창작자로서 창작자가 우리 소설가가 이 AI 시대에 가장 끝까지 남는 직업이라고 그러는데 가장 먼저 사라지게 되는 것 아닐까? 조금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선택하고 누가 지배를 하느냐는 관점으로 보면, 과거는 작가에서 독자로 문학이 흘렀는데, 이제는 거꾸로 독자에서부터 문학이 시작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울함을 달래고 싶으면, 우울함을 달래고 싶은 소설을 AI에게 창작하게 하는 것이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이 소설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이 소설은 일종의 추리소설의 특징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생존 게임이 시작되고 퀴즈를 맞히지 못하면 죽게 되지요. 저는 독자가 자신이 원하는 서사나 장르를 스스로 선택하는 시대가 현실화되었음을 조금 더 임팩트 있게 전달하고 싶었고, 그래서 추리게임이라는 설정과 더불어 퀴즈의 정답 역시 인공지능이 아닌 독자로 설정했습니다.
이선화 편집자 다시 이상섭 선생님께 묻겠습니다. ‘소묘’라는 단어는 보통 빠르게 그린 스케치, 또는 어떤 인물의 핵심을 잡아내는 기록을 떠올리게 합니다. 작품 제목에 ‘소묘’를 넣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상섭 작가 우리 딸이 미술을 전공해서 이 단어를 잘 알고 있었어요. 드러난 모습 외에 감추어져 있는 어떤 모습, 즉 명암을 자세히 상세히 그려내는 게 소묘잖아요. 그래서 이 어휘를 사용하면 제가 보고 있는 인생의 한 단면, 이게 봄날의 어떤 풍경하고 딱 어울리겠다 싶어서 그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또 신비롭고 잘 파악되지 않는 꽁지머리 김 씨를 주인공으로 두다 보니 이런 의의가 적확한 것 같아서 붙였습니다.
이선화 편집자 배경을 튀르키예로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열기구를 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이 장면을 넣게 된 과정도 들어보고 싶어요.
이미욱 작가 지금까지 다른 작가분들 말씀을 들으면서 경험이 창작에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저 또한 오래전 튀르키예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요. 그 이후 제게 그 여행의 감정이 계속 남아있었 던 것 같아요. 동서양이 공존하는 낭만적인 분위기, 전혀 다른 시간 속으로 들어갔던 것 같은 고요한 느낌들이 튀르키예가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한 나라 안에서 이런 여러 가지 세계를 품은 튀르키예의 모습이 한 인간이 자신 안에 수많은 갈등과 내면을 가지고 있는 모습과 굉장히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튀르키예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두 인물이 부딪히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인물의 내적 갈등과 그리고 성찰 또 그 나름의 성장의 계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열기구였는데요. 새벽에 열기구가 뜨는 걸 봤는데 그림자가 점점 멀어지다 한순간에 시야가 확장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힘들어하는 인물이 이런 장면을 보면, 이 순간을 전환점을 삼아서 더 넓은 시야로서 관점을 갖고 생각을 달리할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인물의 여정을 또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어떤 장치로서의 역할을 하는 게 열기구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기구를 타고 올라가면서는 인간보다 더 광활한 자연을 보며, 인간의 무력감과 감정적인 해방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이야기가 절정에 닿는 순간 열기구에서 자신의 내면을 다시금 확인하는 장면이 필요하기도 했고요.


이선화 편집자 미래 세계를 그리고 있음에도 이야기는 춘영의 삶과 하루를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인물을 만들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구체적인 모습이나 행동이 있었는지가 듣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선조에게 산책하러 가기 싫다고 말하는 장면 같은 거요.
정인 작가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노인의 삶은 하루에 다 압축되어 있다는 것이었어요. 하루 종일 누워 있는 노인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생각하는 일, 기억하는 일이 전부입니다. 소설 속 노인은 역시 움직이지 못해요. 하지만 한 세기를 넘어서 살아왔기 때문에 누워서 하루에 온갖 이제 기억들이 다 지나가는 거죠. 이러한 특성을 살려서 햇볕을 쐬면서 일광욕하다가도 까무룩 또 자기의 옛 추억 속으로 잠입해 들어가는 모습, 또 많은 기억들을 가지고 선조에게 한 번씩 반항하는 행동들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고귀한 죽음이라고 제가 제목을 붙였던 이유는 사람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소녀 시절에 원했던, 늘 이제 자유롭고 싶었던 그 영혼을 위해서 마지막에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 물론 소설 속 주인공은 누워만 있어야 하기에 행동을 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려는 것. 저는 그러한 형태의 죽음을 고귀한 죽음이라고 생각하고 이 소설을 썼습니다.
이선화 편집자 소설이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구성인데, 말씀하신대로 노인분들이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는 게 들어보니 굉장히 설득력이 있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이선화 편집자 제목 ‘순수의 바다’가 작품 내용과 대비되는 느낌입니다. 제목에 담긴 의미가 궁금합니다.
박향 작가 우리가 순수라는 것을 생각하면 순수는 나쁜 게 아니잖아요. 전혀 폭력적이지도 않고 그런데 등장인물 중 한 명인선미가 나중에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토할 것 같은 순수"라고. 선미는 그 순수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해요. 실패한 것을 숨기려고 선량한 척하려고 그러는 거라고. 말하자면 순수를 떠놓은 거죠. 결국에는 그 토할 것 같은 순수가 선미한테는 폭력이었던 거예요.
소설 후반에 재현이 바닷가에 앉아서 발에 박힌 유리 조각을 빼면서 그 유리 조각이 반짝거리는 것과 바다에 네온사인이 비춰서 바다가 반짝거리는 것이 굉장히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장면에서, 재현은 그 유리가 순수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유리가 어떻게 순수할 수 있겠습니까? 순수의 결과로 반짝거렸다면 그건 순수가 아니겠죠. 발에 박히지도 않았을 거고요.
그래서 순수의 바다라고 제목을 붙인 것은 결국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게 해 놓고 파국을 만들어 버린 게 어떻게 보면 이들이 마주 앉아 있었던 거실의 커다란 창으로 들어온 바다일 수도 있다는 걸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 소설 앞부분에 "누군가 실시간으로 덧칠을 하듯 점진적으로 어두워져 가던 바다"라는 표현이 나오거든요. 파도가 치면 바다는 계속 바뀐다는 거예요. 그럼 또 새로운 바다가 되는 거예요. 그거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싸움들 또는 어떤 미세한 틈들을 다 갖고도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순수해 보이는 그런 바다라는 뜻으로 그렇게 제목을 썼습니다.

이선화 편집자 남편이 아내의 뼛가루를 타 먹는 장면이 강렬합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애도란 어떤 모습일까요?
박동수 작가 애도라고 하는 건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요. 어쨌든 애도라고 하는 것은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과의 이제 이별의 과정일 텐데 저로서는 뭐 애도라고 하는 것은 기억의 과정이 아닐까 하는 이런 생각도 해보거든요. 물론 다들 그리 오래 기억하진 못하겠죠. 저도 그게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또 씁쓸한 일이기도 하잖아요.
그렇다면 삶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부 사이에서는 어떤 애도가 가능할까 생각했고, 같이 살았던 시간을 반추하는 것들이 가장 가까운 삶에 대한 지속적인 애도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소설에서는 뼛가루를 먹는 행동을 하면서 더 지극히 함께하려는 바람을 드러내고 있긴 하지만, 또 추억하는 것과 기억하는 것이 애도의 본질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이선화 편집자 작품에는 AI시대의 창작에 대한 고민이 묻어납니다. 선생님도 이런 고민을 직접 느끼고 있을까요?
김하기 작가 그럼요. 알고리즘을 보세요. 유튜브에서 무언가 하나를 검색하고 나면 알고리즘이 굉장히 편향되게 바뀝니다. 이게 벌써 지배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딱 드는 거예요. 그래서 실은 소설 마지막 부분도 AI가 지배하는 걸로 하려다가 독자로 바꾼 이유도 그거예요. 나는 이제 지배 당하기 싫다는 인간의 의지를 드러내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동시에 이제 작가가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이런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근데 바둑에서 약간 힌트를 얻을 수 있어요. 바둑은 이미 알파고가 최고의 고수들을 다 이겨버렸거든요. 그런데도 상금이 큰 대회들은 계속 열리고 있거든요. 고수들도 여전히 있고요. 다만 바뀐 건, 고수들이 계속 AI와 둔 기보를 연습한대요. 과거와 달라진 거죠. 그런 면에서 우리 인간의 두뇌를 우리도 결국은 이제 AI에 좀 의존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작가도 그러나 계속하면서 이제 새로운 어떤 깊은 질문과 어떤 창조적인 질문을 계속 내세워서 AI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시대가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참 작가로서의 존재 이유, 인간 서사의 깊이라든지 작가가 계속해서 붙잡아야 할 인간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이선화 편집자 네, 이제 북토크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여섯 분이 다 말씀해 주셨던 게 경험에 따라 소설을 쓰게 됐다 이런 말인 것 같아요. 경험에 따라서 이야기를 쓰셔서 그만큼 진정성 있는 이야기 설득력 있는 소설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네 번째 무크지는 모쪼록 빨리 출간되기를 바라면서 오늘 북토크는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서로 다른 네 개의 현으로 완성된 세 번째 선율, 사현금 동인의 북토크가 끝났습니다. 작가가 하나의 작품을 써내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개성이란 무엇인지, 경험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주신 작가분들과 참석해 주신 관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열릴 북토크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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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나무 상자 | 김하기 - 교보문고
편백나무 상자 | 네 개의 현이 완성한 세 번째 선율 다양성 속의 조화로 빚어낸 여섯 편의 이야기▶ 문학의 구원을 묻다, 동인 ‘사현금’세 번째 무크지 발간 소설 동인 ‘사현금’이 세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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