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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 이벤트

늑골에 새긴 한 조각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 장편소설 『우리, 다음 생에 만날까요?』 박영해 소설가와의 만남

by leecy120 2026. 8. 31.

 

지난 8월 27일, 산지니X공간에서는 박영해 소설가의 신작 장편소설 『우리, 다음 생에 만날까요?』 작가와의 만남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번 행사에서는 박영해 소설가와 문예비평지 『문학/사상』 편집인 구모룡 문학평론가가 함께 소설이 여성 주인공을 그려내는 방식, 기억 속으로 사라진 부산의 공간들을 불러오는 작업에 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젊은 시절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고는 사라져 버린 첫사랑, 그와 45년 만에 마주한다면 무슨 이야기를 나누실 건가요?

『우리, 다음 생에 만날까요?』는 자신을 세상에 보여주고픈 열망을 평생 마음 한구석에 품고 살아온 주인공 혜주의 목소리를 통해 그 질문에 답하고자 합니다.

작가와의 만남에서의 이야기를 여기에 옮겼습니다.


 

오늘 박영해 선생님의 장편 소설 우리, 다음 생에 만날까요?를 두고 이야기를 나눌까 합니다. 선생님은 그동안 단편 3권을 내시다가 이번에 중요한 장편을 내셨습니다. 720매 분량의 긴 소설을 쓰셨는데, 단편을 쓰시다가 장편 작업을 하시니 좀 어떻던가요?

아무래도 달랐습니다. 단편을 쓸 때는 내용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장편을 쓰니 앞에서 내가 뭐라고 했더라?’ 하며 다시 돌아가서 보고, 또 보게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특히 이 책은 시대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참고자료를 뒤적거리거나 용어와 말투에 대해 고심하게 되는 점이 있었습니다. 단편과 장편을 쓸 때가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첫 소설집 네 사람이 누운 침대와 두 번째 소설집 우리가 그리는 벽화때까지만 하더라도 본명 박영애를 쓰셨고, 다음 작품인 종이꽃 한 송이부터 박영해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셨습니다. 이 필명으로 바꾸신 까닭은 어디에 있습니까?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서울에서 어느 소설가가 전화가 왔습니다. 서울에 연세대학교 나온 박영애 작가가 있는데 나이가 많으신 분이다. 그러니까 필명을 하나 가지면 어떻겠느냐 묻더라도고요. 그러니까 바꿔라, 이 말인 거예요. 어려운 일도 아니라 생각해 영애하고 가장 비슷한 영해, 제가 이제 바다를 좋아하니까 ‘해’ 자가 들어가는 지금의 이름으로 선택했습니다.

 

 

사실 저는 비평가로서 좀 심각하게 인식을 했거든요. 작가가 본명을 쓰다가 필명으로 바꿀 때에는 작가 나름대로의 각오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점도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소설을 쓰다 보니 내가 너무 벗겨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누군가 읽으면 찔릴 사람도 있겠다 싶으니 한번 바꾸기는 바꿔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변신을 좀 하고 싶었고요.

 

마침 이름에 바다를 뜻하는 자가 들어가서 더 좋습니다.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시면서 대양처럼 크게 뻗어 나가는 작품을 또 쓰시겠다는 각오도 담겨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이번 장편 소설을 구상하신 후 작품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2년 하고도 반이 걸렸습니다. 집필하다 보니 시대 배경, 시간의 축을 되돌아보고 검토하는 데 있어 힘이 들었습니다. 당시의 말투와 역사적인 배경 등을 소설에 넣다 보니 제가 쓴 내용이 맞는지 아닌지 유심히 살펴보게 되고, 특히 유신 헌법 같은 이야기를 할 때에는 사료부터 다시 들여다보게 되어 진도가 좀 느렸습니다.

 

 

이 소설에서 현재 시점의 주인공이 보내는 시간은 보름 남짓이지만, 많은 내용이 인물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과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시대적인 배경 속에 있는 역사적인 사실 등을 다 고증하려고 노력하셨다는 말씀이죠.
그 과정에서 선생님이 경험하신 것과 허구적인 창작이 얼마만큼 섞여 있는지가 읽으면서 궁금했습니다.

소설가를 스쳐간 모든 것이 글이 된다고들 하죠. 그래서 딱 잘라 말하기 참 어렵습니다. 중심이 되는 시간의 축이나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비교적 사실이고, 주인공이 첫사랑을 만난 이후의 연애 장면은 다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소설에서 선생님의 경험적인 이야기가 들어간 부분은 주인공이 초량에서 살다가 증산공원이 있는 산동네로 이사를 가서 겪게 되는 일을 그린 부분일 것 같습니다. 그 동네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갖고 계신지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저희 가족이 초량에서 살다가 제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산꼭대기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1년 동안 그 동네에서 살다가 다시 내려왔는데, 1년 동안에 보고 경험한 일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증산 꼭대기에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어린 시절에 공동묘지를 철거하는 장면을 실제로 보면서 감정적으로 힘이 들었습니다. 학교에 가야 하니 무덤을 이장하는 장면은 보지 못하고 이야기만 전해 들었는데, 그때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 소설에도 넣었습니다. 철거가 임박하자 공휴일에 사람들이 몰려와 무덤을 파내고, 관에 박힌 못을 뽑았던 것도 기억납니다. 그 뺀 못을 동네 아이들이 주머니에 넣고 쩔겅쩔겅 소리를 내고 다니던 것도 소설에 담고 싶었는데, 매수가 너무 많아 조금 뺐거든요.

 

주검에 불이 휙 붙던 소리가 이명처럼 울려왔다. 
그해 6월 하순, 이장 막바지에 이르자 휴일이면 이장하는 가족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간단히 제상을 차려 절을 하고, 구경꾼들에게 떡을 나눠주었다.
아침부터 산으로 몰려온 조무래기들은 떡을 쥔 채 축축한 구덩이마다 들어가 콩닥거렸다.
 산동네에는 기괴한 활기마저 감돌았다. (중략)
그들은 관을 들어내고 못을 뽑더니, 주검에 석유를 철철 들이부었다.
성냥불을 던지자 주검은 삽시간에 타오르며 누르께한 냄새가 휘돌았다. 군데군데서 주검이 타올랐다.
댕기다! 누군가 그렇게 소리치자 다들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미처 삭지 않은 빨간 댕기가 공주에서 너울거리자 가슴이 저렸다. 내 또래였을까?
p. 68-69

 

웃기다면 웃기고 너무 허술한 게, 사람들이 먹고살기도 바쁠 때니까 관을 뜯고 그다음에는 석유를 확 뿌리는 거예요. 지켜보던 우리는 저 석유를 왜 뿌리나, 하고 있었는데 성냥불을 탁 던져 넣는 거라, 불이 확 올라오면서 시체 타는 냄새가 온 산에 퍼지는데, 하루는 불길 속에서 아직 삭지 않은 댕기가 떠올라서 춤추듯 떠다니는 겁니다. 댕기가 아직 남아 있다는 건 묻은 지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았다는 얘기거든요. 우리 또래의 소녀가 죽었다는 것이었겠죠. 그때 가슴이 너무 아팠고, 이걸 온 동네 꼬마들이 다 몰려와서 보고 있는데 이걸 이렇게 보여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무연고 묘지들만 남았어요. 그 자리를 포크레인이 지나가니까 뼈들이 바닥에 굴러 다니는데, 일하는 아지매들이 앉아서 그걸 맨손으로 골라서 한쪽에 모아놓는 거예요. 이 장면도 소설에 썼는데, 그렇게 모은 뼈를 자루를 든 할아버지가 지나가면서 담아서 끌고 갔습니다. 그런데 잘 보니 그 할아버지도 금방 그 자루 속으로 들어갈 듯한 모습인 거 있죠. 그 모습에 기가 막혔습니다.
묘지가 사라진 후에도 그 자리에 한 번씩 가봤었는데, 그곳에 만들어진 동물원에 동물 우리가 있었는데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사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소설을 쓰며 다시 생각해 보니 참 가슴 아프고,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살게 된 것이 무엇 덕분이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이야기가 소설로 직접 읽으면 디테일이 더 살아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그렇게 가난한 동네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상실감, 그리고 힘들게 대학에 간 후 주인공 혜주가 만난 첫사랑 윤재가 갑자기 사라지며 느꼈던 상실이라는 두 가지 축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선생님은 집필하시며 두 가지 중 어떤 것에 더 중점을 두셨는지 궁금합니다.

상실감을 이야기한다면 후자가 더 컸습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서는 상실감이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어요. 왜냐면 제가 실제로 산꼭대기에 이사했을 때도 상실감보다는 믿어지지 않는다’, ‘이게 연극이야, 뭐야?’ 하는 생각이 더 강했거든요. 길고 좁은 방에 살며 마치 환상의 열차를 타고 있고, 그 기차를 타고 그곳에 다다른 것처럼 언젠가 또 내려갈 수 있지 않겠냐 하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보다는 대학생이 된 혜주가 첫사랑이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느낀 상실감이 더 컸다고 보았습니다.

 

이 소설의 구성은 주인공 혜주의 가족사 이야기가 작품의 베이스이고, 그 위에 연애 이야기가 겹쳐져 두 개의 스토리가 얽혀 있는 형태입니다. 주인공이 연애라는 사건을 계기로 거듭 자신의 과거 기억을 환기하는 과정을 보면서 저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컸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이 어렸을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산동네로 이사하는 사건이 없었더라면, 아마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 볼 수가 있는데, 실제로 선생님께서는 소설 속에서처럼 다른 삶을 꿈꾸기도 하셨습니까?

사실은 다른 삶을 살고 싶었지요. 공부를 잘했으니까 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또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렸으니까 화가가 되거나요. 학자나 화가, 둘 중에 하나가 되고 싶었는데 다른 길을 가게 됐지만, 못 가는 길에 대한 미련은 뭐 누구라도 있기 마련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선택권의 부족이) 특히 여성이기 때문에 더 보였던 것 같지는 않습니까?

그런 게 있죠. 제가 만약에 남성이었다면 부모님이 최선을 다해서 어떻게 해든 좋은 대학으로 보냈겠지요. 그런데 여성이다 보니 그런 게 조금 덜한 면도 있었습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다 못 하고 부모에게도 숨겨야 하는 그런 경우도 많았죠.

 

안타깝습니다. 소설 속에서도 여성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계신데, 선생님 연배도 그렇겠지만 여성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고, 시부모를 모시는 일을 거치다 보면 자기실현의 기회가 계속 지연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작가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해오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점이 지속적인 어려움으로 작용했는지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여성의 삶이라 하는 게, 보통은 결혼을 함으로써 육아를 하게 되고, 또 직장 생활을 하게 되고 하면 일단 시간적으로 아주 쫓기게 됩니다. 그러면 감정적으로 힘든 상황을 겪게 되죠.

 

아이를 돌보고, 어른들을 돌보고, 다 돌보고 나면 자기를 돌봐야 할 때가 옵니다. 나이가 들면 자기 삶을 돌아보며 옛날에 이렇게 했으면하는 후회가 많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후회는 성별과 관계없이 찾아오겠지만 여성의 삶에는 그런 어려움을 돌파해 낼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주인공 혜주의 연인이었던 윤재는 주인공에게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 인물입니까?

윤재는 혜주와 사귄 지 5개월 만에 떠났지만, 혜주는 윤재가 해준 혜주 씨는 잘할 수 있을 거다라는 말을 평생 붙잡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꼭 윤재가 해준 말이라서 그렇다기보다는 혜주 스스로 자신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거죠.

 

3월부터 7월 중순까지,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로 인해 나 자신이 될 수 있었다.
혜주 씨는 잘할 수 있을 겁니다, 라던 그 말 한마디.
그 덕분에 다시 미래를 꿈꾸고 생생히 빛날 수 있을 듯한 자신감도 생겼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바라봄으로써 성장하는구나 싶었다.

더구나 중학교 때 산동네로 이사 간 후 멀어졌던 ‘사람들’ 속으로 돌아갈 수 있을 듯했다.
그런 만큼 그가 떠난 충격은 나중에 다른 이와의 짧은 결혼생활 끝에 택했던 이혼의 상처보다 깊고 날카로웠다.

p. 16-17

 

제가 이 소설에서 굉장히 좋다고 느꼈던 점은 혜주가 그리움을 품고 살았던 윤재도 결말에 가면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결국 윤재도 평범한 사람입니다. 두 사람이 만났던 20대 때야 그 관계를 특별하게 느낄 수 있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면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죠. 소설에서 윤재가 입대하고 나서 혜주와 5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때에도 사건의 진실을 밝히거나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이 윤재의 부족한 점이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적 대립 구조로 그리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여성 인물의 삶을 형상화해서 마지막까지 끌고 갔다는 점이 장편소설로서 우리, 다음 생에 만날까요?가 가진 의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저는 이걸 조금 다르게 쓸 수도 있었는데 싶은 아쉬움이 한 10%쯤 있습니다. 윤재를 조금 더 포용적인 인물로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윤재와 혜주와 5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도록 했지만 두 사람 모두 말을 아끼거든요. 그때 누군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도록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60년대의 부산 초량 일대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산 아래에는 부잣집들이 있었지만, 산 위로 올라가면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빈부로 살림살이와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곳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산 아래의 부잣집에서 살다가 산 위로 쫓겨난 어린 시절의 혜주는 그때부터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도 자아를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가면을 쓴 듯한 삶을 살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대학생이 된 후 윤재를 만날 무렵은 혜주가 자아를 되찾을 무렵이라는 거죠. 그런 점에서 윤재와 사귀었던 시절은 혜주에게 굉장히 중요한 기억으로 평생 남았을 겁니다. 서로에 대한 감정이 남았다기보다는 그때의 기억이 혜주 자신에게 가지는 의미가 큰 것이죠. 이러한 점에서 보면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로 분류하는 일은 별로 재미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그런 혜주라는 인물이 1960년대와 1970년대를 부산에서 보내며 가난한 삶을 살다가 대학생이 되고, 사랑과 상실을 경험하고, 결혼 생활을 하고, 그 와중에 과거를 기억해나가는 모습을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려내셨다는 점이 이 장편소설의 가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까 소설에서 아쉬웠던 점을 말씀해 주셨는데,, 반대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윤재가 혜주에게 앞으로 뭘 하고 싶으세요?’라고 물어보는 장면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는 아무도 저에게 그렇게 물어봐 주지 않았거든요. 가난한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네가 뭘 하겠어?’라는 마음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윤재가 혜주에게 그렇게 물어보는 장면이 마음이 남았습니다.

 

윤재는 혜주에게 편지를 보내며 무항산이면 무항심이다라는 맹자의 말을 인용하는데, 그 구절이 작품 전체에 깔려 있다고 느껴집니다. 맹자의 이 구절은 가진 것, 안정적인 생활이 없으면(無恒産)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無恒心)는 뜻으로, 가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백성들이 어느 정도 살 만해야 마음도 편안해진다는 뜻인데, 윤재가 건넨 그 말을 혜주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젊은 시절의 혜주는 그 뜻을 몰랐기 때문에 대충 읽고 넘어갔어요. 한참 뒤에 그 말의 뜻을 알고 나서는 윤재와의 편지를 없앤 뒤라 누가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을 겁니다.

 

무항산 무항심이라는 말이 작품의 주제 의식으로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혜주에게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가 없어 어린 시절이 평탄했더라면 자아성취가 가능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죠. 고등학교 때에도 대학에 가기 위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마련했지만, 드디어 성취를 이룰 만한 단계에 이르렀을 때, 자신에게 용기를 주던 윤재라는 인물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 후에는 결혼과 가족 부양에 대한 이야기밖에 남지 않죠. 그렇지만 그런 평범한 삶 속에서도 혜주가 자아성취에 대한 갈망을 끝까지 품고 있는 모습은 결말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처럼 비애를 느끼게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혜주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 인물의 삶을 보여주면서도, 초량, 증산, 온천천변 같은 부산의 여러 공간들을 다루면서 그곳들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쓰셨습니다. 앞으로의 소설에서는 이러한 관심을 바탕으로 어떤 작품을 쓰실 것인지 궁금합니다.

온천천 주변을 걸어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노인들이 바깥에 나와서 한탄을 많이 합니다. 지나가는 강아지나 사람을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하는 일 없이 벤치에 하루 종일 누워 있는 젊은 남자들, 다리 밑에서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을 보며 그 사람들을 한 번 소설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이라는 공간 안에서도 특히 증산에 대한 선생님의 관심이 큰 것 같습니다.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요? 어렸을 때 1년 딱 살았는데, 그 뒤로도 시간이 있을 때마다 자주 갑니다. 증산은 조선 시대에 부산진성이 위치해 있던 곳으로, 임진왜란 당시 전투가 벌어졌던 격전지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 대해 안내도 되어 있지 않았고, 부산 사람들도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이야기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상처와 소외 같은 기억이 있던 장소였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선생님께 자기 정체성을 담고 있는 소중한 장소,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헤테로토피아와 비슷한 곳이 되신 것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런 증산에 대한 기억을 구체적으로 쓰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우리 부산과 이곳 사람들의 삶에 대한 현장을 담고 있습니다.

장소의 혼을 담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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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음 생에 만날까요? | 박영해

박영해 소설가의 장편소설 『우리, 다음 생에 만날까요?』는 돌연 곁을 떠난 첫사랑에게 45년 5개월 만에 문자를 보내면서 시작한다. 오래도록 스스로에게조차 묻지 못했던 질문 하나를 정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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