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에서 '카페다온'을 운영하며 30여 년간 지역 문학 터전을 지켜온 정유미 시인의 첫 시집 『해로운 건 눈물로 씻었다』에는 지독한 슬픔에 짓눌려 죽지 않으려 일부러 호쾌하게 눙치며 버텨낸 삶이 담겨 있습니다. 이 웃음은 온화하기도 하고, 때로는 조소나 냉소에 가까운 얼굴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어머니를 그려보는 여성이자, 여성을 그려보는 여성으로서 시인이 아로새긴 문장에는 관념 아닌 삶이 미약하지만 분명히 넘실거립니다.
알리 아바시 감독의 영화 <경계선>에는 수치심의 냄새를 맡는 트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결국 이 세계로부터 탈락한 존재 트롤은 숲 속으로 들어가 삶을 살아가는데요. 수록작 「경계선」은 트롤에게 "넌 처음부터 완벽해/아름다워"라고 말을 건네며 "트롤이 있다 세상과 숲 사이에."라고 끝이 납니다. 세계로부터 탈락당한 존재들의 외로움을 정유미 시인은 그렇게 들여다봅니다. 성공과 실패, 칭찬과 무시, 개인적 갈등과 사회적 소외를 넓게 시에 담아내는 정유미 시인 인터뷰를 옮겨 적었습니다.
【인저리타임이 만난 사람】 시집 《해로운 건 눈물로 씻었다》 펴낸 정유미 시인, “해로운 건 눈물로 씻었제 … 슬퍼서 웃고, 웃어서 웁니다”
모진 세월의 슬픔을 해학으로 눙쳐온 삶, 30년 합천 문학 지킴이가 전하는 첫 시집과 ‘나를 그리는’ 구술 시학
[프롤로그]
경남 합천읍 카페다온. 현판에 적힌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좋은 사람이 온다, 좋은 일이 온다'. 출입문을 열자 나지막한 음악과 정갈한 책장의 온기가 손님을 맞는다. 이곳의 주인이자 시인인 정유미 씨는 평일엔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는 생활인으로, 밤에는 지역 문인들과 주민들이 모여 삶의 한을 풀어내는 문화 사랑방 지킴이로 살아간다.
그가 올 초 펴낸 첫 시집 《해로운 건 눈물로 씻었다》(산지니)는 경남 합천지역의 생생한 토착 구술 언어와 투박한 입말 속에서 가난과 상처, 여성의 비극을 처연하면서도 호쾌하게 눙쳐내는 독보적인 시 세계를 선보였다. 30여 년간 합천의 문학 터전을 지켜오다 늦깎이로 첫 시집을 낸 정유미 시인을 만나, 시의 샘물이 된 유년의 기억과 어머니, 그리고 ‘나를 그리는’ 구술 시학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자기를 그리는 게 곧 시 … 합천 입말과 생생한 육성으로 삶의 한을 씻었다”
- 정유미 시인, 첫 시집 《해로운 건 눈물로 씻었다》 출간 인터뷰
경남 합천에서 ‘카페다온’을 운영하며 30여 년간 지역 문학 터전을 지켜오다 첫 시집 《해로운 건 눈물로 씻었다》(산지니)를 펴낸 정유미 시인이 자신의 시 세계와 창작 비화를 밝혔다.
정유미 시인은 지난 24일 인저리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시학을 관통하는 핵심으로 ‘나를 그리는 작업’과 ‘생생한 구술성(口述性)’을 꼽았다. 오십이라는 나이에 박태일 교수(경남대)의 시 창작 수업을 찾아갔던 정 시인은 “내 삶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못하면 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남을 흉내 내거나 멋을 부린 관념어 대신, 입에서 나오는 생생한 지역 사투리와 육성으로 삶의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전했다.
특히 평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구술성의 형성 배경에 대해 정 시인은 “문자 언어로 멋을 부리기보다 내 앞에 사람을 앉혀놓고 이야기하듯이 쓸 때 가슴을 치는 힘이 생겨난다”며 “김보성·구자순 시인 등 동료 시인들과 서로 글을 읽어주고 삶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치열한 대화의 과정이 시적 육성을 터뜨리는 결정적 자양분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시집 수록작 중 무겁고 비극적인 사연을 다룬 〈우리동네 1〉을 최애시로 꼽은 이유에 대해서는 연민과 자의식을 들었다. 정 시인은 “어릴 적 삼거리 주막집을 드나들던 떠돌이들의 슬픈 일대기이지만, 그 그늘 속에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어린 시절 내 모습이 그대로 스며 있다”며 “우리가 웃고 살아가는 뒷장면의 무거운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거울 같은 시”라고 강조했다.
정 시인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사회적 편견, 직장 내 성희롱을 다룬 시편(〈69세〉, 〈아무도 없었다〉)을 통해 사회적 저항과 고발의 목소리도 명확히 냈다. 그는 “사회생활 중 직접 겪었던 불의의 상처와 아픔을 가슴속에 묻어두지 않고, 다시는 여성을 향한 폭력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절박한 질문이자 고발로서 시로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지독한 가난과 차별, 여성으로서 겪은 상처를 한마디 입말과 해학으로 툭 받아치는 ‘눙치는 어법’에 대해서는 시적 기교가 아닌 ‘삶 자체’라고 단언했다. 정 시인은 “배운 것 없어도 모진 세월을 울다가 픽 웃으며 건너온 어머니의 유전자와 삶의 궤적이 시로 스며든 것”이라며 “지독한 슬픔에 짓눌려 죽지 않으려고 일부러 호쾌하게 눙치고 웃어넘기며 세월을 버텨낸 실제 삶의 방식”이라고 전했다.
어머니라는 존재 역시 시인의 예술적 유전자이자 영원한 애도의 대상이다. 정 시인은 “6·25 전쟁으로 한쪽 귀를 잃고 맨발로 도망치는 등 여자로서 온갖 비극을 안고 살면서도 생선 대야를 이고 삼남매를 살려낸 분”이라며 “어머니가 남기신 그림 재능과 노래 리듬, 그리고 지극했던 모성이 제 문학의 뿌리”라고 회고했다.
한편,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은 〈예쁘니요〉와 〈그 겨울 사흘〉에 대해서는 “개인사가 아닌 아끼는 지인의 실제 삶을 시화한 것”이라 밝히며, “관찰자에 머물지 않고 타인의 비극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 함께 아파할 때 비로소 진짜 시가 탄생한다”고 공감의 시학을 피력했다.
표제작 〈해로운 건 눈물로〉에 대해서는 “합천 일해공원에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세월이 준 고통과 가난, 관계의 상처를 비로소 다 씻어냈다”며 “과거의 슬픔에 발목 잡히지 않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겠다는 호쾌한 해방 선언이자 자기 구원의 결실”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정 시인이 운영하는 합천의 ‘카페다온’은 차를 파는 일터를 넘어, 지역 주민과 문인 50여 명이 모여 노래와 시를 나누는 문화 사랑방이자 삶의 한을 정화하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정 시인은 “거짓 없이 솔직하게 써 내려간 내 시편들이 누군가의 아픈 삶을 보듬는 작고 다정한 온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번 시집의 맨 마지막 시편 〈다정〉의 구절 “슬퍼서 웃을게요 / 웃어서 울게요”처럼, 정유미 시인은 모진 세월의 슬픔을 호쾌한 해학과 다정한 온기로 승화시키며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도입] 시인의 서재, 세상을 마주하는 조용한 열림
Q0.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시인을 찾아 유미카페(카페다온)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일반적인 카페라기보다 조용한 '서재'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정유미 시인: 가게 청소 깨끗하게 해놓고, 찾아오시는 손님들 따뜻한 차 한 잔 대접해 드리고 소통하는 게 제 일상이고 본분이죠. 제가 바깥으로 자주는 못 나가니까 지인들이 가볍게 놀러 오면 이 안에 앉아서 친구들과 세상 이야기 나누며 지내고 있습니다.
합천이 연령층도 높고 농사나 축산업 위주라 낮에는 읍내가 아주 조용해요. 그래서 우리 카페도 번화한 가게 느낌보다는 차 한 잔 마시며 책 보고 이야기 나누는 조용한 서재처럼 꾸며놓았지요.
Q0. 시 창작 외에 어떤 일을 하십니까? 입구에 《합천열린신문》 현판이 있던데요.
정유미 시인: 남편이 운영하는 신문입니다. 합천 구석구석 면 단위까지 직접 신문을 배달하며 1인 신문사를 하고 있어요. 시골이다 보니 지역의 불편한 일이나 안 좋은 일들을 바깥으로 알리기 싫어하고 쉬쉬하는 경향이 있는데, 남편이 그런 문제들을 콕 짚어 기사를 쓰니까 주변에서 불편해하기도 하죠. 운영이 좀 힘들긴 해도 저는 옆에서 ‘똑바로 해라!’ 하고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저는 다른 취재는 안 하고, 격주로 나오는 신문에 시 코너 하나를 맡고 있어요. 평소에 읽다가 감동을 받은 좋은 시 한 편을 골라 넣고, 제 감상을 짧게 덧붙이는 글을 쓰지요. 그렇게 쓴 시 감상 글이 벌써 80편 정도 되었네요.
1부: 시의 탄생과 구술성의 리듬
Q1. 이제 시집 속으로 들어가볼까요? 오십이라는 나이에 마산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시 창작 수업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려라 목요일〉에서 “자기를 그리는 게 시 / 나는 내 그린다”라고 선언하셨는데, ‘나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자기를 그리는 게 곧 시’라는 깨달음은 언제 어떻게 찾아왔습니까?
정유미 시인: 제가 합천문학회(문인협회)에서 만 20년 넘게 일하면서 청춘을 다 보냈어요. 동네 일하고 후배들 챙기는 게 그렇게 즐거웠는데, 어느 날 단체 안에서 큰 갈등이 생기면서 마음이 단단히 상했죠. 그때 함께 고생하던 동생 하나가 ‘언니야, 혼자 일 그만하고 우리 공부하러 가자’ 해서 박태일 교수님(경남대) 수업으로 찾아갔어요.
첫 수업 때 교수님이 ‘자기가 제일 잘 썼다고 생각하는 시 두 편을 가져오라’고 하셨어요. 그 다음 주에 칠판에 제 글이 올라갔는데 아주 난도질을 당했죠.(웃음) 그때 바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아, 내가 지금까지 쓴 건 시가 아니었구나. 남을 흉내 내고 멋진 척 꾸며낸 글이었구나.’ 하는 게 얼굴이 화끈거리며 와닿았어요. ‘나를 그리지 못하면 시가 아니다’라는 걸 깨달은 바로 그 순간, ‘아, 내가 진짜 글을 배울 곳을 찾아왔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Q2. 〈노란 잠수함〉에는 스무 살 지하 경양식집 소파에서 노래 가사를 베껴 적다가 시를 쓰게 된 청춘이 나옵니다. 외롭고 힘들던 그 시절, 시를 필사해보게 된 계기와 그 순간들은 시인에게 어떤 의미였습니까?
정유미 시인: 어릴 때부터 우리 엄마가 아침마다 불을 때며 부르던 노래 리듬이 내 몸에 배어 있었어요. 엄마 유전자를 받아서 저도 통기타 치면서 포크송 부르는 걸 참 좋아했거든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도 못 가고 바로 취직해서 상처도 많고 답답하던 시절이었는데, 노래 가사를 적다 보니까 가사 너머에 내가 말로 다 하지 못하는 동경과 세상이 보이더라고요.
김춘수, 김남주 시인 시집을 사서 화장실 벽에 붙여놓고 미친 듯이 베껴 썼어요. 김춘수의 ‘나비는 가비야운 것이 美다’ 같은 구절이 어린 가슴에 팍 박혔죠. 노래로는 다 풀리지 않던 내 안의 수많은 앙금과 이야기들이, 시를 베껴 쓰는 순간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Q3. 짧은 시 〈로즈 와일리〉에서 80세에 유명 화가가 된 할머니 작가를 보며 “난 처음에 난 줄 알고!”라고 탄성을 지르십니다. 로즈 와일리를 접했을 때 “나도 저 사람처럼 될 수 있겠다”라는 확신이나 감흥이 실제로 찾아왔던 건가요?
정유미 시인: 로즈 와일리라는 작가가 마흔에 미술 공부를 시작해서 여든이 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잖아요. 제가 마흔넷에 늦깎이 등단을 하고 오십에 시를 제대로 다시 배우기 시작했거든요. 이 할머니의 연보를 보는 순간, 이건 세계적인 화가가 되겠다는 야망이나 동경이 아니에요. ‘늦게 시작해도 아무 상관없구나! 남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오롯이 내 색깔대로 내 삶을 그려내면 되는 거구나’ 하는 깊은 유대감이었죠. ‘명대로 그려놨네, 꼭 내 같다!’ 하는 반가움의 탄성이었습니다.
2부: 유년의 뿌리, 가난의 자존심, 그리고 어머니
Q4. 〈채송화 봉숭아〉는 가난 앞에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유년 시절을 상징하는 시편으로 보입니다. 당시 유년의 정유미는 어떤 아이였습니까?
정유미 시인: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3학년 때 엄마 손을 잡고 여기 합천 시골로 내려왔어요. 하얀 피부에 서울말을 쓰니까 애들이 예뻐는 하는데 섞이지를 못했죠. 집은 한없이 가난했고,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너희 집에 뭐 있냐’ 조사할 때마다 가난을 자각하는 게 너무 괴롭고 서러웠어요.
우리 아버지가 동아대학교 출신의 엘리트였는데, 가족은 건사하지 못하고 아픔만 줬거든요. 속으로는 ‘우리 아버지도 대졸이다!’ 하고 목구멍까지 외치고 싶었는데 차마 입 밖으로 내질 못했어요. 시집에 그 구절을 적어 넣으면서, 어릴 적 가난에 짓눌려 말 한마디 못 했던 그 소녀를 대신해 세상에 통쾌하게 한마디 날려준 셈이죠.
Q5. 4부는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오복골 먼당〉에서 생선 대야를 이고 삼남매를 키워내신 서른일곱의 어머니 ‘조복순 여사’는 어린 시인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까?
정유미 시인: 우리 엄마 삶은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부터 나요. 6·25 전쟁 때 외갓집 마당에 포탄이 떨어져 파편에 귀 한쪽을 완전히 잃으셨어요. 어린 나이에 보리자루처럼 시집을 갔는데, 남편 매질이 얼마나 심했던지 갓난 아들을 두고 맨발로 도망쳤죠. 그러다 29살에 아버지를 만나 딸 셋을 낳았는데, 아버지마저 가장 노릇을 못 하니 엄마가 생선 대야를 머리에 이고 삼남매를 살려낸 겁니다. 여자로서 모든 비극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자식들한테는 지극정성이셨던, 평생 안쓰럽고 불쌍한 내 어머니예요. 바로 지난해 떠나셨어요.
Q6.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뒤 발견된 천 원짜리 스무 장(〈조복순 여사 스무 장〉), 그리고 코로나 비닐막 너머로 힘겹게 뱉어내신 한마디(〈비닐막 못 이기는 눈꺼풀〉)의 “우리 큰딸”.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시로 기록하실 때 가장 마음에 걸렸던 대목은 무엇이었습니까?
정유미 시인: 제가 대구에서 야간 직장 다니며 학교 다닐 때, 새벽 6시 비포장도로 첫 차를 타야 했어요. 우리 엄마는 한겨울 부엌에서 그 차를 태우려고 잠 한숨 안 자고 따뜻한 밥을 지어놓던 분이었어요. 제 딸한테도 그렇게 못 해봤는데 지극하셨죠. 그러다 몸이 아파 요양병원에 모셨는데 코로나가 터져버린 겁니다.
1년 넘게 면회가 금지되어 간식만 들여보내다가, 겨우 비닐막을 사이에 두고 만났을 때 휠체어에 앉아 흐릿한 눈으로 저를 보며 "우리 큰딸" 하고 부르시는데… 그 장면은 평생 제 가슴에 벼락처럼 남아 있어요. 작년 11월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여전히 엄마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립니다.
Q7. 돌아가시기 전날 어머니가 남기신 말씀(〈예쁘니요〉)에서 “우리 딸 참 예쁘니요”라는 한마디를 시로 적어두셨습니다. 유년의 차별과 서러움,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까지 단번에 씻어내게 만든 이 한마디는 시인님에게 어떤 의미였습니까?
정유미 시인: 사실 질문을 들으시며 놀라시겠지만, 이 〈예쁘니요〉와 추천사에도 자주 언급되는 〈그 겨울 사흘〉은 제 개인 스토리가 아닙니다. 제가 정말 아끼는 지인(‘명희 언니’)의 실제 삶을 시로 옮긴 거예요.
그 언니가 어머니 임종 때 마지막으로 들었던 ‘우리 딸 참 예쁘니요’라는 말씀, 그리고 여자는 대학 안 보내준다는 말에 사흘을 뻗대다가 스스로 공부해 자립해낸 지독한 유년의 삶을 들었을 때 제 가슴이 먼저 터질 듯이 아팠어요. 그 언니 삶 속에 내가 완전히 들어가서 함께 울고 아파하면서 썼죠. 독자나 기자님이 제 본인 이야기로 착각할 만큼 완벽하게 동화되어 쓴 시인데, 타인의 깊은 비극과 화해를 내 몸처럼 느껴 시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시인으로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Q8. 표제작 〈해로운 건 눈물로〉의 마지막 문장은 슬픔에 발목 잡혀 살지 않고 과거로부터 완벽히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호쾌한 해방선언’처럼 읽힙니다. 어떻게 그 무거운 과거사들을 “이미 다 씻어냈다”고 이토록 단호하게 선언할 수 있으셨습니까?
정유미 시인: 합천에 ‘일해공원’이 있어요.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차 안이나 벤치에서 창밖 비를 가만히 바라보는 걸 참 좋아하거든요. 살아오면서 수많은 관계의 불협화음과 상처 때문에 오그라들고 무너졌던 적이 왜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어느 날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는데, 세월이 주던 그 고통과 가난, 사람과의 갈등이 비에 씻겨 내려가는 듯한 위로를 받았어요. ‘아, 내 인생의 1막은 이 빗물로 다 씻어냈다. 슬픔에 발목 잡히지 않고 나를 위로하며 살겠다’는 스스로를 향한 구원이자 단호한 선언이었습니다.

3부: 토착어의 입말, 여성의 상처, 그리고 ‘눙치는 어법’
Q10. 권혁웅 시인은 추천사에서 시인님의 시가 가진 독보적인 매력으로 ‘구술성(口述性)’을 꼽으며, "입말과 글말이 겹쳐지며 한 편의 시마다 어르신들의 대하소설 같은 일대기가 농축되어 있다"라고 평했습니다. 〈우리동네 1〉이나 독자 추천작인 〈불면증〉처럼, 관념적인 문자 언어가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생생한 육성으로 운율과 서사를 이끌어내는 시인님만의 특별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정유미 시인: 제가 억지로 지어 짜내서 글을 쓰려고 하면 시가 도무지 해결이 안 돼요. 박태일 교수님께 시를 다시 배우기 시작할 때, 같이 공부하던 시인들의 시편을 보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문자 언어로 멋을 부린 시보다, 그 사람이 실제로 살아온 생생한 이야기가 구어(口語)로 옮겨졌을 때 가슴을 팍 치는 힘이 훨씬 강하더라고요.
저한테 깊은 영감을 준 김보성 시인이나 구자순 시인 같은 동료들과 서로 글을 읽어주면서 늘 이야기했어요. ‘글을 어렵게 쓰지 말고, 내 앞에 누군가를 앉혀놓고 이야기하듯이 써보자.’ 제 자신한테도 ‘유미야, 너 그동안 네 이야기 말로 다 못 했잖아. 이제 말하기 방식으로 진짜 네 육성을 써내려가자’ 하고 작정했지요.
독자들이 좋아하는 〈불면증〉 같은 시도 그래요.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 같은 소소한 일상의 장면에서 과거 유산의 깊은 상처가 툭 터져 나오는데, 장면과 장면이 전환될 때 억지로 다리를 놓지 않고 입말의 흐름 그대로 서사를 끌고 갑니다. 내가 진심으로 아파했던 순간을 관찰자의 기록이 아니라 말하듯이 솔직하게 털어놓을 때, 비로소 어르신들의 일대기 같은 농축된 서사와 운율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Q9. '좋아하는 시'로 꼽으신 〈우리동네 1〉이나 〈유미카페 4〉, 〈내곡리〉처럼 시집 곳곳에 고향(합천·초계)의 사투리가 생생합니다. 정제된 표준어 대신, 투박하고 날것 그대로인 방언을 시로 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유미 시인: 박태일 교수님이 ‘네가 사는 장소와 네 말을 쓰라’고 하셨을 때 답을 찾았죠. 다만 방언을 무조건 남발하면 독자와 소통이 안 돼요. 시 전체 서사 속에서 ‘아, 이 장면에서는 이 사투리가 안 들어가면 맛이 안 산다’ 하는 적재적소의 순간에 딱 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글을 지어 짜내지 못해요. 입에서 나오는 생생한 육성과 서사가 자연스럽게 운율을 타고 흘러나오도록 사투리를 적재적소에 배치했을 때, 그 사람의 삶이 독자에게 가장 구체적으로 다가갑니다.
Q10. 〈우리동네 1〉은 아주 무겁고 비극적인 스토리인데, 좋아하는 시로 꼽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유미 시인: “어릴 적 우리 집이 삼거리 점방(주막)이었어요. 동네 떠돌이 어르신들이 모여들고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비극적인 일들이 일상처럼 일어났죠. 겉보기엔 떠돌이들의 슬픈 일대기 같지만, 사실 이 시는 제 자신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 떠돌이들의 그늘 속에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어린 시절 내 모습이 그대로 스며 있거든요. 지금 우리가 웃고 살아도 그 뒷장면의 삶은 여전히 지독하게 무겁고 비극적일 수 있다는 것, 그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내 연민과 자의식이 담긴 시라 가장 마음이 갑니다.
Q11. 〈69세〉, 〈아무도 없었다〉처럼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과 사회적 편견, 직장 내 성희롱을 지극히 서늘하고 사실적으로 다루셨습니다. 피해자가 숨는 현실 앞에서 이 아픈 고백들을 시로 끌어올리기로 결심하신 계기는 무엇입니까?
정유미 시인: 제가 사회생활을 하고 가게를 운영하면서 직접 겪었던 기가 막힌 직장 내 성희롱이나 불의의 순간들이 있었어요. 분노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고, 영화 〈69세〉나 〈블라인드〉를 보면서 가슴이 분출했죠. 가해자의 가족이나 현실적인 벽 때문에 완벽하게 처단하지 못했던 아픔이 가슴에 앙금으로 남아 있었어요. 이 시들은 가슴속 아픔을 고발하는 동시에, ‘다시는 우리 사회가 여성을 향해 이런 폭력을 저지르지 말라’고 세상을 향해 던진 절박한 경고입니다.
Q12. 반면 〈남정탕〉에서는 새벽 목욕탕 어르신들과 시를 나누며 "참말이네 내 말이" 하고 공감하는 정겨운 풍경이 나옵니다. 동네 어르신들의 삶과 언어를 마주할 때 시인님은 어떤 감흥을 느끼십니까?
정유미 시인: “합천은 이 목욕탕 문화가 아주 활발한 곳이에요. 주민 절반은 달목욕을 즐기거든요. 제가 시력이 많이 안 좋아서 목욕탕 탕 안에 들어갈 때 작은 시집이나 책을 들고 들어가곤 했어요. 10분 정도 편안하게 책을 보고 있으면, 동네 할머니나 언니들이 ‘니 뭐 보노?’ 하고 툭 물어보시죠. 시골이다 보니까 처음엔 ‘아이고, 탕에서 책 보고 잘난 척한다’ 소리를 듣기도 해서 상처받고 안 들고 가기도 했어요.(웃음)
그러다 문무학 시인의 호미에 관한 시를 읽다가 목욕탕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떠올랐어요. 할머니들이 살아오신 무거운 세월과 투박한 입말 속에는 흉내 낼 수 없는 삶의 진정성이 있거든요. 시를 들려드렸을 때 ‘참말이네, 내 말이!’ 하고 손뼉을 치며 공감해주시는 그 한마디가 얼마나 따뜻하고 큰 위로가 되는지 몰라요. 멀리서 세상을 찾는 게 아니라, 이렇게 목욕탕이나 카페에서 만나는 동네 어르신들의 생생한 삶과 언어를 통해 세상을 느끼고, 그걸 내 방식대로 따뜻하게 품어 안고 싶었습니다.
Q13. 강연호 시인은 추천사에서 시인님의 어법을 ‘처연한 슬픔을 눙치는 어법’이라 평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동네 1〉의 "어디 부잣집에 팔아먹고 가시던가요!"처럼 지독한 가난과 차별의 비극을 한마디 입말과 해학으로 툭 받아치는 모습은 실제 삶의 모습입니까, 아니면 시적 기교입니까?
정유미 시인: 제 삶 자체가 그래요. 우리 남편이 참 고지식하고 무거운 사람인데, 나마저 무거우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어요.(웃음) 배운 것 없는 우리 엄마도 모진 세월을 울다가도 픽 웃으면서 건너오셨거든요.
제 삶도 굉장히 무겁고 파란만장했지만, 그 지독한 슬픔에 짓눌려 죽지 않으려고 일부러 호쾌하게 눙치고 웃어넘기며 건너온 겁니다. 끔찍한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전환시키는 힘, 그건 제가 세월을 버텨낸 삶의 방식이자 시를 쓰는 유일한 화법입니다.

4부: 슬픔의 승화, 그리고 ‘다정(多情)’
Q14. 시인의 이름을 건 공간인 〈유미카페〉에서 90세 엄마와 70세 아들에게 팥빙수를 내어주며 타인의 삶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계십니다. 모진 풍파를 통과해 온 시인님에게 지금의 '유미카페'(실제공간 카페다온)는 어떤 의미를 지닌 공간입니까?
정유미 시인: 유미카페는 제 생계의 터전이자, 지역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문화 사랑방’입니다. 그동안 카페에서 주민들과 지인 20~50명씩 모여 노래 부르고, 시를 읽고, 이야기판을 벌이는 행사를 50회 넘게 해왔어요. ‘합천 시골에도 사람이 산다, 문화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팍팍한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이 와서 자기 가슴속 이야기를 툭 털어놓고, 한판 잘 놀고 완벽히 정화되어 돌아가는 공간, 그게 제가 꿈꾸는 유미카페이자 북카페 다운(좋은 사람이 온다, 좋은 일이 온다)의 진짜 모습입니다.
Q15. 〈유미카페 4 - 가을비 동창생〉에서 환갑이 된 여자 동창들이 모여 사별과 삼혼, 병마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징하고 장하고 욕봤다 가스나야" 하고 서로를 보듬습니다. 어찌 보면 어릴 적 친구들끼리 나누는 흔한 회포나 수다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모진 세월을 통과해 온 시인님에게 이 동창들과의 나눔은 어떤 의미였습니까?
정유미 시인: 친구들과 대구 갤러리 골목을 거닐며 가을비를 맞던 좋았던 기억에, 우리 카페 앞 마당 벤치로 모여드는 초등학교·중학교 동창들의 실제 서사를 더해 만든 시예요. 이제 나이가 예순 가까이 되다 보니 진짜 세 번 결혼한 친구도 있고, 사별하거나 크게 아픈 친구,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도 있어요. 전부 팩트(Fact)지요.
어릴 때는 서로 잘났다고 다투기도 하고 시기 질투도 있었지만, 세월을 한참 지나고 보니까 다들 삶의 파란만장한 풍파를 안고 살아왔더라고요. 60이 다 되어 만나니 예전의 뾰족함은 다 사라지고 마냥 다정해집니다. 지나온 모진 세월을 다 아니까, 서로 얼굴만 봐도 ‘징하고 장하다, 참 욕봤다 가스나야’ 하고 가슴으로 보듬게 되는 거죠. 저에게 이 동창들과의 나눔은, 각자 모진 세월을 견뎌내고 살아남아 서로의 삶을 온전히 인정하고 정화해주는 거울이자 따뜻한 쉼터입니다.

Q16. 시집의 맨 마지막 시 〈다정〉에서 "슬퍼서 웃을게요 / 웃어서 울게요"라며 밤 깊도록 세상을 품어 안으십니다. 이 시집을 읽을 독자들과 인저리타임 독자들에게 시인으로서 한말씀 해주세요.
정유미 시인: 〈다정〉은 거창에 눈 내리던 날, 제가 아끼는 11살 아래 지인 미화와 동네 술집 ‘다정’의 온기, 그리고 제 삶 전체가 훅 얽혀서 단숨에 터져 나온 시입니다. ‘슬퍼서 웃을게요, 웃어서 울게요’는 정유미라는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오롯한 태도이자 다정함 그 자체죠.
이 시집을 내고 오랜 세월 불화를 겪었던 지인이 첫 장부터 끝까지 읽고 펑펑 울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내 오랜 친구가 ‘유미야, 세상 시인들 시 다 봤는데 네 시가 제일 낫다’고 해줬을 때, 비로소 ‘아, 성공했구나. 내 어머니와 내 자신 앞에 단 하나도 거짓이 없었구나’ 하고 안도했습니다.
독자분들에게 제 시를 꼭 읽어달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다만 자기 삶을 시로 쓰고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세련된 기술이나 남의 시선을 시늉 내지 말고, 자기 상처 속으로 깊이 들어가 거짓 없이 솔직하게 써 내려가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 거친 시편들이 누군가의 아픈 삶을 보듬는 작고 다정한 온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출처 : 조송현 기자, 2026년 8월 31일,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이 만난 사람】 시집 《해로운 건 눈물로 씻었다》 펴낸 정유미 시인, “해로운 건
[프롤로그]경남 합천읍 카페다온. 현판에 적힌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좋은 사람이 온다, 좋은 일이 온다'. 출입문을 열자 나지막한 음악과 정갈한 책장의 온기가 손님을 맞는다. 이곳의 주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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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로운 건 눈물로 씻었다 - 교보문고
넉넉한 황강을 품은 합천을 시로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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