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 27일(일) 오후 2시, 추석 연휴가 아직 다 끝나지 않은 날임에도 부산시민도서관 강의실2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부산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덴마크에서 한국으로 온 에바 틴드 작가님의 북토크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사서 선생님도, 산지니 출판사도 대담과 통역을 맡아주신 강도희 문학평론가도 연휴에 과연 독자분들이 와주실까 하고 걱정했는데 강의실이 가득 차고 질문하고자 하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연휴 마지막 날을 기쁘게 마무리한 그날의 기록을 펼쳐봅니다.

작가 소개
강도희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진행과 통역을 함께 맡은 강도희 문학평론가입니다. 본격적인 진행에 앞서 먼저 작가님을 간단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에바 틴드 작가님은 덴마크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 중 한 분입니다. 2009년 시집 『Do』로 데뷔했고, 이 책으로 이듬해 덴마크 아카데미가 신인 시인에게 수여하는 클라우스 리프비에르그 신인상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시집 세 권과 소설 여섯 권을 낸 다작 작가이십니다.
작가님은 1974년 부산에서 태어나 생후 13개월에 덴마크로 입양되었습니다. 20대에 처음 한국을 찾은 뒤 한국 가족들과 계속 인연을 이어 왔고, 영화와 미술을 전공한 만큼 입양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꾸준히 예술 작품으로 녹여 내 왔습니다.

20대의 첫 방문, 그리고 지금의 한국
강도희 20대에 처음 한국에 오신 뒤로 여러 번 덴마크와 한국을 오가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뿌리를 느끼려 애써 오신 걸로 아는데요. 이번 한국 방문은 몇 번째이신가요? 올 때마다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에바 틴드 한국에는 자주 왔습니다.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짧게 다녀갔고, 부산은 1년 반 만이에요.
처음 왔던 20대 때는 90년대였는데, 두려움이 굉장히 컸어요. 어쨌든 한번 이 나라에서 잘려 나간 존재라는 생각이 있었으니까요. 출생 가족들이 저를 무척 반겨 줬는데, 그것조차 부담스럽고 당황스러웠어요. 길에서 눈에 띄는 걸 전부 사 주면서 선물을 챙겨 주는데, 덴마크에는 없는 문화라 어쩔 줄을 몰랐죠. 문화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여러 장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90년대에는 영어 표기도 거의 볼 수 없었고 택시 타는 것조차 힘들었거든요. 한국도 달라지고 저도 한국에 익숙해지면서, 20년 넘게 지난 지금은 편안해진 단계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이번 책을 쓰면서 그런 마음이 더 커졌고요.
강도희 부산은 부모님이 처음 만나신 곳이자 작가님이 태어난 곳이라, 올 때 의미가 좀 다를 것 같아요.
에바 틴드 확실히 부산은 좀 더 집처럼 느껴져요. 부산 사람들은 화끈하고 직설적이고, 또 운전하는 속도도 빠르죠. 그게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산 바닷가에서 처음 만나셨다고 해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참 좋아합니다.
『민 킴』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강도희 오늘 소개할 『민 킴』은 작가님의 여섯 번째 소설이자 최신작입니다. 덴마크에서는 2024년에 출간됐고, 한국에서는 올해 부산 출판사 산지니에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작가님께 직접 책 소개를 들어 보겠습니다.
에바 틴드 이전 소설들에서는 일종의 인형처럼 만들어진 인물을 세상 속에서 움직이게 하는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그런데 이번 책은 분명히 개인적인 이야기이고, 그중에서도 입양에 관한 부분에 집중했습니다. 제 삶의 모든 면을 담을 수는 없으니, 이를테면 엄마로서의 삶이나 아이들 이야기는 빼고 입양에 관한 부분만 썼어요.
시작은 이렇습니다. 저는 다른 입양아 열 명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덴마크에 왔어요.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기다리던 양부모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제 양부모님이 그중 한 가족과 친해졌습니다. 그렇게 그 집 입양 딸과 저는 펜팔이 됐어요. 편지를 주고받다가 열네 살 무렵 연락이 끊겼는데, 마흔다섯 살이 되어 다시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들려준 가족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어릴 때 그렇게 가깝게 편지를 주고받았는데도 나는 이걸 전혀 몰랐구나 싶었죠. 친구는 이런 말을 했어요. 입양인들은 늘 "감사해야 한다, 입양됐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말을 들으며 자라는데, 그러니 자기가 겪은 끔찍한 일들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생각했습니다. 이 책을 쓰자. 이 책으로 그 이야기를 말할 수 있게 하자.

왜 소설인가
강도희 작가님은 이미 2000년대 후반부터 시와 사진, 영상 등으로 입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탐구해 오셨는데요. 소설을 쓰기로 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에바 틴드 저에게 소설을 쓴다는 건 모든 것을 쓰는 일이에요. 소설은 진실에 다가가는 예술 형식이고, 서사에 대해 말하는 장르입니다. 여기서 서사란, 입양인으로서 우리가 계속 들어 온 말들이에요. 아주 구체적인 것부터 "이러이러한 책임을 져야 한다" 같은 추상적인 것까지요. 그런데 자라면서 겪는 일과 감정은 그 서사와 달라서 충돌이 생깁니다. 그 와중에 나만의 언어를 찾고 싶었고, 그 언어를 찾아가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면 슬픔이 그렇습니다. 그냥 슬픔이 아니라 입양인이 느끼는 특유의 슬픔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오래 고민했어요. 그러다 심리학 용어를 찾아보며 이해하게 됐죠.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슬퍼할 수조차 없는 상태, 이른바 '애도 불가능성'으로 설명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래 품어 온 감정을 표현할 방법을 찾은 느낌이었습니다. 소설 쓰기도 그런 과정 중 하나였어요.
예술을 한다는 건 자기 감정에 오래 머물 수 있다는 것이고, 하나의 주제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거예요. 또 글이 책이 되어 독자를 만난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책을 읽는 건 혼자만의 시간, 혼자만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쓰는 사람도 누군가의 즉각적인 반응을 의식하지 않고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습니다. 그런 시간을 보내며 이 소설을 썼습니다.

실존 인물을 쓴다는 것
강도희 『민 킴』은 자전적 이야기가 많이 담긴 소설이고, 주인공 이름도 '에바 틴드'입니다. 다른 인물들도 실명인가요?
에바 틴드 주인공 에바 틴드는 저 자신이지만, '민 킴'은 그 친구의 실제 이름이 아니에요. 민 킴을 비롯한 다른 인물들은 주변 사람들을 반영하되 각색한 캐릭터입니다. 물론 저와 펜팔을 했던 그 친구의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친구가 자신이 드러나는 걸 원치 않아서 가면을 씌웠어요. 제가 들었던 여러 입양인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민 킴'이라는 인물을 만들었습니다.
강도희 자기 이야기보다 타인의 이야기를 쓰는 게 더 어렵잖아요. 실존하는 누군가에 대해 쓰는 부담도 있었을 것 같고, 솔직하게 쓰겠다는 마음과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는 책임감이 부딪힌 적은 없었나요?
에바 틴드 출간 전에 친구에게 원고를 보여 줬어요. 친구가 정말 많은 곳에 표시를 해서 고쳐 달라고 했고, 저는 거의 다시 썼습니다. 제게도 무척 힘든 일이었고 이전에는 해 본 적 없는 작업이었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철칙이었고, 지금까지 친구가 살아오면서 많은 이들이 그의 삶에 제약을 두었는데,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소설가로서의 자긍심을 삼켜 가며 써낸 결과물이에요.
'다르다'는 감각 속에서 자라다
강도희 책에 그려진 대로, 해외 입양인으로서의 삶에는 어딜 가나 남들과 다르다는 자각, 그리고 티 나지 않게 어딘가에 자연스럽게 속하고 싶다는 욕망이 크게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작가님이 자란 70~80년대 덴마크는 지금처럼 외국인이 많지 않았고 한국도 잘 알려지지 않았으니, 차별이 더 컸을 것 같은데요. 어린 시절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에바 틴드 처음부터 스스로 다르다고 느낀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너무 많이 듣다 보니 서서히 내가 못생겼다는 감각이 생겼어요. 눈이 작다, 피부가 까맣다… 제가 살던 곳은 덴마크에서도 아주 작은 마을이라 저 혼자만 다르게 생겼거든요. 그런 말을 들으면서 거울을 볼 때마다 다른 백인 아이들처럼 눈이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고, 나 자신과의 자연스러운 관계가 점점 훼손됐습니다. 나는 사실 덴마크인인데 겉모습과 속이 다르다는 감각을 계속 안고 자랐어요.
강도희 덴마크에는 60~70년대부터 한국 입양인이 많았고 이미 공동체도 있었는데, 그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끼지는 않으셨나요?
에바 틴드 덴마크에는 한국 입양인이 8천 명 정도 있지만 전국에 흩어져 있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굉장히 고립되어 있었어요. 하나의 집단으로 묶이기 어려웠죠. 지금은 좀 다르지만요. 그래서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생각은 했어요. 지금은 혼자라서 다르다고 느끼지만, 아시아인 여럿과 함께 있으면 내가 입양인인지 여행객인지 아무도 모를 테니 그런 상태에 놓여 보고 싶다고요. 그런데 막상 어쩌다 아시아인을 마주치면 서로 모르는 척하게 되는 거예요. 어릴 때는 서로가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고, 그러면 내가 백인 덴마크인들과 다르다는 걸 자각하게 되니까요. 그런 점에서도 모이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에바 틴드 처음 소속감을 느낀 건 홍콩에서였어요. 비행기를 갈아타는데 갑자기 한국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온 거예요. 한국인들 사이에 내가 있는 경험을 처음 하면서 엄청 울었습니다. 한국인이 이렇게 많은 곳에서는 내가 다르지 않겠구나, 처음으로 그걸 깨달은 순간이었어요.

한국 가족과 닿기까지
강도희 덴마크에 있을 때는 한국에 대한 정보가 없었으니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거의 없었을 것 같은데요. 한국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찾아보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에바 틴드 한국과 처음 연결된 건 정말 우연이었어요. 라디오를 듣다가 덴마크 국내 입양인들이 생모를 찾는 프로그램을 듣게 됐고, 문득 나도 가족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전까지는 가족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한국에서 덴마크로 온 입양인들은 모두 고아로 등록되어 왔으니까요. 저도 제가 고아라고, 부모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한번 전화해 보자 싶어서 학교 상담 선생님께 부탁했고, 선생님이 입양 기관에 전화를 걸어 주셨어요. 그랬더니 마침 석 달 전에 생모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연락이 닿아 편지를 주고받다가, 스물한 살에 처음 한국에 와서 가족들을 만났어요.
가족, 그리고 기억한다는 것
강도희 이 책에는 입양 가족, 출생 가족, 그리고 작가님이 직접 꾸린 가족이 모두 등장합니다. 책을 쓰면서 가족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혹은 책에서 가족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에바 틴드 어릴 때 주변에 가계도에 무척 집착하는 가족이 있었는데, 저에게는 그게 너무 지루해 보였어요. 그 집안은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도 전부 백인이었으니까요. 입양인은 그렇게 뒤돌아볼 수 없는 존재예요. 조상을 떠올리려 해도 모두 얼굴 없는 존재로 그려지죠.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결국 우리는 모두 역사의 일부이고 그 역사를 기억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계속 생각하게 됐습니다. 뉴질랜드에서 마오리족 사람들을 만날 일이 있었는데, 그들은 자기 가계도를 전부 암기한대요. 그 암기는 가족과 연결되는 것만이 아니라 나무, 개울, 안개처럼 생존을 돕는 주변 세계 전체와 연결되는 의식이라고 해요.
거기에 비추어 보면 입양인은 나무가 잘린 상태예요. 그 상태에서 계속 생각했던 건, 우리가 가족에게 사랑을 받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알고 기억하는 것, 설령 그 기억이 잘못되었거나 왜곡되어 있더라도 계속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었어요. 이 작업을 통해 그걸 알게 됐습니다.

낭독 - 부산에서, 냄새로 찾은 어머니
강도희 벌써 마칠 시간이 다가오는데요. 독자분들의 질문을 받기 전에 마지막으로 책의 거의 끝부분에 있는 시를 읽어 보겠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에바가 고향 부산에 와서, 잃어버렸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냄새로 되찾는 장면이에요. 방금 말씀하셨듯 기억은 왜곡되어 있을 수 있고, 그때 정말 그 냄새를 맡았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자각한 순간에 대해 쓴 부분입니다.
어머니의 땀이 배어날 때 풍기던 그 시큼하고 날카로운 냄새
나는 그것을 내 고향 부산을 처음 찾았을 때 다시 맡았다.
골목에서 풍기던 기묘하고 매캐하며
약간은 썩은 듯한 냄새
길거리 음식 노점의 튀김 기름 냄새
붉은 팥 앙금을 넣어 물고기 모양으로 구운 달콤한 빵
그리고 언제나 김치의 냄새
숯불 위 철판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마치 마술 같은 연기 너머로 바라본 어머니.
덴마크에서 자라며 내가 맡은 냄새는
갓 깎은 풀냄새
피어나는 라일락 향기
장어구이, 퇴비의 냄새와 돼지고기의 냄새였다.
그들이 애착장애라 부른 것을
나는 이제 가스라이팅이라 부른다.
여기에 내가 입양과 결부시키는 현상이 있다.
스톡홀름 증후군.
납치나 감금의 피해자가
자신을 가둔 자에게
심리적 애착을 느끼는 상태.
그러나 나는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다.
백색으로 세탁되어 팔려 나간 아이들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서구가 가난한 아이들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한다는 입양 신화 속에는.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내가 태어난 그곳의
단 하나의 향기조차 나는 떠올릴 수 없다.
그러나 이제 나는 오래 묵은 김치 냄새를 기억한다.
나는 그 냄새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어머니가 일하던 요양원의 냄새
씻기지 않은 사람들, 기저귀
등줄기를 타고 기어 올라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르던
늙은 오줌 냄새.
나는 그 냄새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오직 두려운 것은
당신의 얼굴을 잃어버리는 일뿐.
_<민 킴>, 479~481쪽.
독자와의 대화
독자 1 아직 책은 읽지 못했지만 입양에 관심이 있어서 꼭 읽고 싶어졌어요.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작가님은 한국과 덴마크의 삶에 걸쳐 있는 디아스포라인데, 두 나라 사이에서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민 킴』을 쓰고 나서, 그동안 쌓여 온 가족에 대한 마음이 지금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도 여쭙고 싶어요.
에바 틴드 저에게 소속감을 느낀다는 건 가족과 연결되는 것 이상으로, 내가 태어난 장소와 연결되는 일이에요. 지금은 부모님이 두 분 다 돌아가셨어요. 가족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한국의 문화와 자연, 특히 산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즘은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데, 한국어를 배우는 게 뿌리 찾기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고 있어요.
가족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말하자면, 제 이야기는 곧 제 아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거예요. 이 책을 쓸 때 저 자신에 대한 의무뿐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의무도 느꼈습니다. 제가 겪은 고통은 아이들의 고통일 수도 있어요. 제가 그걸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덮어 버리면, 아이들이 자기 역사를 배울 기회를 빼앗는 셈이 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썼어요.
독자 2 글쓰기 과정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여쭙고 싶어요.
에바 틴드 가장 힘들었던 건 단연 쓰는 일 자체였어요. 머릿속에 재료는 다 있는데, 그걸 써내는 게 저를 너무 지치게 했습니다. 쓴다는 건 결국 기억하는 일이라서 기억을 전부 끄집어내야 했거든요. 사실 우리를 지탱해 주는 건 망각의 능력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거슬러 의도적으로 계속 기억하려다 보니 몸이 실제로 많이 달라졌고, 시력도 많이 나빠졌어요. 그래서 아주 천천히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이런 거예요. 아주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그냥 피하면 되잖아요, 집에 가 버리면 되고요. 그런데 그 사람 곁에 계속 머물며 "왜 저렇게 행동할까, 왜 나한테 이럴까" 하고 끝없이 파고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거죠. 가장 좋았던 순간은 다 끝냈을 때였어요. 수치심 없이 제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그게 가장 좋았습니다.
독자 3 책 잘 읽었습니다. 책에 무당을 찾아가 대화하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제주 신화에 「원천강본풀이」라는 서사가 있습니다. '본풀이'는 뿌리와 근원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뜻인데요. 저는 『민 킴』을 읽으며 그 주인공 '오늘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오늘이도 들에 버려진 아이가 부모를 찾아가는 이야기거든요. 여러 곡절 끝에 부모를 만나기 직전, 그때까지 한 번도 울지 않던 오늘이가 문을 열어 주지 않는 문지기 앞에서 대성통곡을 해요. 책을 읽으며 그 장면의 감정이 확 올라왔습니다. 오늘이는 부모를 만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돌아가는 길에 만났던 사람들의 문제를 하나씩 풀어 준 뒤 사계절을 조화롭게 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작가님도 오늘이처럼 뿌리를 찾아 오간 이야기를 이 책에 다 쓰셨으니, 이제 그런 조화로운 일을 해내실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자 4 책 제목에 대해 여쭙고 싶어요. 이 책은 두 입양인, 꿀마이(민 킴)와 에바(김남숙)가 주고받는 편지 형식으로 쓰였는데, 제목을 '민 킴'으로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에바 틴드 제목에는 여러 의미가 있어요. 우선 '민 킴'이라는 인물의 이름을 딴 건, 이 책을 그녀를 위해 썼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을 위해서였다면 이 책은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우리'를 위한 어떤 보상을 바라고 썼다 해도 이만큼 어렵지는 않았을 거고요. 그리고 덴마크어로 '민(min)'은 '나의'라는 뜻이고, '킴(kim)'은 뿌리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나의 뿌리'라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또 '킴'은 한국에서 가장 흔한 성이잖아요. '나의 킴들', 그러니까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제목이기도 해요. 이렇게 여러 의미를 담았습니다.
독자 5 작가님을 알게 된 지 일주일도 채 안 되어 아직 소설은 읽지 못했어요. 다만 『그 여자는 화가 난다』 같은 책을 보면 해외 입양인들이 한국의 출생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던데, 작가님은 환영받으셨다는 게 좀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취재하면서 만난 다른 분들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해외 입양을 둘러싸고 한국 정부나 홀트아동복지회 같은 입양 기관에 대한 분노가 크다고들 하는데, 작가님도 그런 분노를 느끼시는지요.
에바 틴드 입양인들의 모습은 정말 다양합니다. 동두천 같은 지역에서 입양된 분들은 친척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입양인들끼리 가족처럼 지내는 모습도 봤어요. 제 친구 중에는 엄마가 더 이상 만나길 원치 않는다며, 또 연락하면 이사를 가 버리겠다고 한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감춰진 것을 드러내는 일이에요. 가족사든 입양 기관의 진실이든, 이제 비밀을 멈추고 진실을 밝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분노는 저도 느낍니다. 아주 불공정하다고 생각해요. 입양 서류가 조작된 경우가 많아서, 저도 생모를 찾고 DNA 검사까지 했는데도 호적에 오를 수 없었어요. 입양 기관이 아이들을 거의 훔치다시피 해서 입양 보낸 사례들을 보면 정말 불공정하다고 느낍니다. 최근 진실화해위원회가 다시 출범해 이 문제를 조사하고 있는데, 수많은 허위 정보와 불법적인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강도희 이것으로 북토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다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정말 많아요. 책을 끝까지 읽어 보시고, 또 생각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질문이 쏟아져서, 시간 내에 모든 독자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성황리에 마무리된 에바 틴드 작가의 북토크.
<민 킴> 전에 출간된 <뿌리>를 들고 오신 한 독자분께서, 작가님께 편지를 전달하시던 모습도 기억에 남습니다.
북토크를 진행해주신 강도희 평론가님과 에바 틴드 작가님, 주관해주신 임애주 사서님, 그리고 자리를 빛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출판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지역에서 20년, 여전히 책을 만듭니다 :: 『지역에서 부산스럽게 출판하기』 교보문고 북펀드 오픈! (0) | 2026.10.08 |
|---|---|
| 『청사포 해녀 할머니』가 한국어린이교육문화연구원 으뜸책에 선정되었습니다! (0) | 2026.10.02 |
| 『패션, 영화 속 미술을 그리다』가 2026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 (0) | 2026.09.22 |
| 부산에서 해녀들을 만날 수 있다고? :: 『청사포 해녀 할머니』가 부산가톨릭평화방송 <다정다감 다섯시>에 소개되었습니다! (0) | 2026.09.09 |
| 부산 시민도서관에서 『민 킴』 에바 틴드 작가와의 만남이 열립니다! (9/27) (0) | 2026.09.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