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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신화 이면으로 닿는 길:: <더스쿠프>에서 『민 킴』을 소개했습니다.

by jh5169455 2026. 10. 2.

국가와 민족, 혈연은 근대 사회가 개인의 정체성을 가늠하기 위해 만든 어떤 틀에 해당합니다. 그 안에서 해외 입양은 가난한 국가의 결핍을 풍요로운 국가가 메워준다는 이타적인 신화 뒤에 가려져 있었는데요. 에바 틴드의 『민 킴』은 국가 주도의 입양 신화가 품고 있는 폭력성을 드러냅니다. 1975년 덴마크로 보내진 두 여성의 삶을 통해, 자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제도가 한 인간을 어떻게 지워버리는지 저자는 응시합니다. 문종필 평론가가 <더스쿠프>에서 『민 킴』을 소개했습니다. 

 


더스쿠프

가족도 기댈 곳도 없는 어느 입양아의 소망 [노동의 표정]

더스쿠프 리터러시+
텍스트 속 노동의 표정
30편 입양이 된 사람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삶
시에 등장하는 가상의 고아
국가가 방치한 사람들
그 사이에 사라진 삶

입양아를 이야기하는 작품은 뿌리와 정체성의 흔들림을 담는다. 텍스트는 그 삶에 놓인 노동을 상대적으로 작게 다룬다. 조인호는 유리 공장과 제철 공장을 지나온 상상 속 고아를 시에 등장시킨다. 이번 노동의 표정은 조인호 시인의 ‘맨 인 더 박스’에서 살펴봤다.

이국땅의 입양아 중에선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이들도 많다.[사진 ❘ 연합뉴스]

‘맨 인 더 박스’는 조인호 시인의 두번째 시집 「처음으로 물에 뜨는 시간」(2026년, 창비)에 수록됐다. 시 속 고아는 실제 입양 당사자가 아니다. 조인호가 상상해 만든 인물이다. 이 인물의 생애에는 유리 공장과 제철 공장에서 보낸 시간이 새겨져 있다.

시는 장례식장에서 고아의 삶을 되짚기 시작한다. 영정 사진 아래에는 낡은 통기타와 유리로 만든 새가 놓여 있다. 노조 위원들과 신문기자들이 빈소를 서성인다. 유가족은 없다. 고아원 여전도사만 자리를 지킨다.

그의 장례식장,
영정 사진 아래 낡은 통기타와 유리로 만든 새가 놓여 있다
노조 위원들과 신문기자들이 빈소를 서성인다
그의 유가족은 없다 
그가 자랐던 고아원의 여전도사가 장례식장을
지키고 앉아 있을 뿐이다
그는 
제철 공장에 오기 전, 
유리 공장에 있었다 했다 
그곳에서 유리새를 만들었다 했다
그의 집은 제철 공장의 
고로가 솟아 보이는 
옥탑방이었다
‘맨 인 더 박스’ 부분  

유리새는 이전 직업의 흔적이다. 고아의 첫 일터는 어디였을까. 그는 유리 공장에서 유리새를 만들었다. 다음 일터는 제철 공장이며, 옥탑방에서도 그 공장의 고로가 보였다.

제철 공장은 고아의 생이 끝난 장소이기도 하다. 그는 “풀장에 뛰어드는 아이처럼/천진난만하게,/방열복을 벗고/용광로 속으로” 뛰어든다. ‘철鐵’이 된 것이다. 화자는 “그의 피와 뼈가 녹아 있는/쇳물이 쓰인 철도”를 찾아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오른다.

열차는 러시아 소도시를 거쳐 철로가 끝나는 곳에 닿는다. 화자는 고아가 택한 죽음의 의미를 확인하려 한다. 그의 이동은 자살의 이유를 찾는 여정으로도 읽힌다. 철로는 작품에서 무엇일까. 유일한 탈출구로 읽힌다. 종착지의 철로 위에서는 맨발의 아이들이 해맑게 뛰어논다. 그 아이들의 모습에는 삶과 노동의 현장을 벗어나고 싶은 고아의 소망이 겹친다. 그는 흙수저였고, 가족도 기댈 곳도 없었다.

텍스트가 입양아의 노동을 크게 다루지 않은 까닭은 정체성의 상처와 맞닿아 있는 듯하다. 리사 울림 셰블룸의 그래픽 노블 「나는 누구입니까」(2018년, 도서출판 산하)는 스웨덴으로 입양된 소녀를 다룬다. 소녀는 한국의 부모님을 찾으려고 애쓴다. 한국에서 겪은 행정적인 방관 탓에 입양 기록조차 구하지 못한다.

노력을 거듭한 뒤에야 소녀는 기록을 열람한다. 자신의 출생을 알게 되고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부모님도 찾는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입은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소녀는 지난 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 “그때 대한사회복지회가 가족을 찾았다면, 내 삶이 그렇게 힘들었을까?” “만약 대한사회복지회가 부모님 찾는 일에 성공했다면, 나는 그토록 긴 세월을 고통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이 말만으로 2026년 현재 한국의 상황을 재단할 수는 없다. 다만 과거 한국 정부는 입양 기록을 입양아에게 선뜻 공유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여건 속에서 입양아들은 정체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셰블룸은 그 심리적 상처를 “고통 속에서” 살았다는 말로 나타낸다. 이 대목에는 침대 구석에 몸을 움츠린 앳된 소녀가 나온다. 소녀는 자살을 시도했다. 옆에 있는 여성은 방에서 나갈 조건을 제시한다. “이 방은 늘 잠겨 있어, 나가고 싶다면, 다시는 자살 시도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해.” ‘잠겨 있는 밤’ ‘각서’ ‘자살’이라는 단어는 당시 소녀가 느낀 불안을 짐작하게 한다.

전정식도 한국에서 벨기에로 입양됐다. 그의 벨기에 이름은 ‘융’이다. 전정식은 「베이비 박스」(2023년, 바람북스)와 「피부색깔=꿀색」(2009년, 길찾기)에서 입양아의 정체성을 논했다. 후자의 작품은 전정식 개인을 넘어 그가 알고 지낸 입양아들의 삶까지 다룬다.

전정식은 먼저 어린 날의 내면을 고백한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최악은 내가 왜 불행한지 이유를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식으로 음식을 먹으면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무의식적으로 죽음을 원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는 어린 시절 거듭 죽음의 문턱을 넘으려고 했다. 정체성에 입은 심각한 타격 때문일 것이다. 전정식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입양아들도 그렸다. “입양아 유리는” 권총으로 자살하는 장면을 넣는다. “입양아인 유리의 누나는 마약 과용으로 죽었다”고 적었다. “다리가 짧았던 입양아 브뤼노는 목을” 매달았다.

또 “입양된 내 누이 발레리는 알 수 없는 자동차 사고 이후 죽었다”고 썼다. “입양아 안느는 혈관을 끊어서 죽었다”는 문장도 남긴다. 자살에 실패한 입양아 미쉘은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이들은 전정식이 직접 알던 이들이었다. 그는 서로 얼마나 가까웠는지 밝힌다. “이 모든 한국인 입양아들은 내가 아는 이들이다. 다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고 모두 같은 학교를 다녔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모든 입양아가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힘겨운 나날을 보낸 것은 확실해 보인다.  덴마크 입양인 에바 틴드의 「민킴」(2026년, 산지니)도 입양된 곳에 적응하지 못한 소년과 소녀를 보여준다. 에바 틴드가 10대였을 때, 이방인으로 지목당한 한 소녀는 눈매와 머리카락 색을 비롯한 모든 것을 바꿨다. 에바 틴드는 자신에게도 같은 꿈이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녀와 똑같은 꿈이 있었다. 변신하고 싶다는 것. 나는 깊이 매혹되었다. 내 안의 일부가 그녀처럼 내 얼굴이라는 이 낯선 가면을 단숨에 지워 버리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이국땅의 입양아들은 ‘변신’을 꿈꿨다. 그러나 결심만으로 변신을 이룰 수는 없다. 끝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입양아’라고 말이다.

세 텍스트는 뿌리와 정체성의 상처를 다룬다. 조인호의 시는 그 상처와 함께 고아의 노동도 다룬다. 그는 유리새를 만들다가 제철 공장으로 옮겼고 용광로에서 철이 됐다. 화자는 그 쇳물이 쓰인 철도를 따라 종착지로 간다. 

 

출처 : 문종필 평론가, 2026년 10월 1일, <더스쿠프>

 

가족도 기댈 곳도 없는 어느 입양아의 소망 [노동의 표정] - 더스쿠프

입양아를 이야기하는 작품은 뿌리와 정체성의 흔들림을 담는다. 텍스트는 그 삶에 놓인 노동을 상대적으로 작게 다룬다. 조인호는 유리 공장과 제철 공장을 지나온 상상 속 고아를 시에 등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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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행기 옆구리에서 태어났다.” 말하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두 여성, 이들이 밝히는 입양신화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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