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화분』-당신의 장미가 피기를 바랍니다.

 

  26일, 조심스럽게 산지니에 발을 내딛으며 처음으로 접한 책이 바로 바로 바로 바로, 김현 작가님의 『장미화분』이에요. 갓 구운 빵처럼 따끈따끈한,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장미화분』을 먼저 받아 읽게 되니 (후훗!) 기분이 묘해졌어요. 저는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한 장 한 장을 차근히 읽었어요.

  책은 「장미화분」, 「소등」, 「7번 출구」, 「타인들의 대화」, 「숨비소리」, 「녹두 다방」, 「연장」으로 일곱 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는데 읽다 보면 소설집이라고 해서 다른 소설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일곱 편이 때로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때로는 다른 이야기처럼 다음 이야기를 읽는 중에도 그 전 이야기가 생각나며 마음 한 쪽을 툭툭 건드렸어요. 이렇게 툭툭 건드리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

  글은 마치 다큐멘터리나 독립영화를 보는 것 같이 우리네 삶의 어두운 부분을 짚어 보여주고 있었어요. 소외받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여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것 같았는데, 안타까우면서도 우리의 현실이 그대로 느껴져서 마음을 툭툭 건드리던 것이 뒤로 갈수록 쿵쿵 찧고 있었어요. 그래서 점점 아파질 수도 있어요. 

  물뿌리개에 물을 채우고 부엌바닥에 있는 화분을 들어 올렸다. 장미는 잎이 싱싱하고 뿌리도 튼튼했다. 조금 있으면 몽우리를 맺고 꽃을 피울 것이다. 하루 중 가장 어둡고 추운 새벽에 최상의 향기를 낸다는 크로아티아 장미. 최고의 장미를 얻기 위해 사람들은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작업을 한다지. 한국으로 오기 전날, 엄마는 가방 속에 넣어 둔 씨앗을 보고 그까짓 것을 왜 가져가느냐고 말렸지만 나는 고집을 부렸다. 씨앗은 몇 개 되지 않는 내 것 중의 하나였다. 치덕의 집에 도착해서도 나는 제일 먼저 씨앗을 심을 화분부터 구했다. 정성 들여 장미 씨앗을 심고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 화분을 두었다. -「장미화분」p. 30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이번에 묶은 일곱 편의 작품은 대부분 발로 뛰어 얻은 글들’이라고 하신 말씀에서 ‘발로 뛰어 얻은 글들’이 주는 힘이 듬뿍 느껴졌어요. 어쩌면 이렇게도 섬세하게 인물들을 설정하고 이야기를 써내려갔는지, 정말 놀라웠어요. 특히 「소등」과 「타인들의 대화」에서는 정말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서 주위에 어느 소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집중하며 읽었어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긴장감 있는 대사며 장면들이 눈앞에서 선명하게 그려져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거든요.

  여덟 시가 되자 간병인들이 모든 병실의 불을 껐다. 봉선화 할머니 옆에 죽어있던 모습을 떨쳐 버리지 못한 노인은 순간 자신의 생명이 소등(消燈)되는 상상을 했다. 죽음이란 찰나에 찾아오는 소등과 같은 것일 터였다.-「소등」 p. 60

 

  남동생을 만나고 와서 밤에 막내와 통화를 했다. 막내는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내게 그동안의 일을 설명하며 억울해했다. 엄마가 많이 아파서 제집으로 모셔 가 간병해 드렸고 마침 엄마 생일이 되었으며 절대 돈을 뺏는 파렴치한 짓 따위는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도리어 남동생이 자신의 욕심을 위해 막내를 모함하고 이용하는 거라 했다. 남동생은 막내가 엄마 돈을 허락 없이 빼내 간 거라 했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차피 나하고는 무관한 일이었다. 그보다는 엄마가 마지막까지 나를 소외시켰다는 사실만이 명징해졌을 뿐이었다.-「타인들의 대화」 p. 124-125

  책을 다 읽고 덮은 후에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어요. 최고의 장미를 얻기 위한 사람들의 혹독한 추위나기. 사실 얼마나 힘든지 그 깊이조차 가늠할 수 없고 어떻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도 그들의 크로아티아 장미가 피기를 바라는 것, 작가가 독자에게 원하던 것이 아닐까요.

 

장미화분 - 10점
김현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