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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 이벤트

무엇에 쓰는 열녀인고? ─ 강명관 저자를 만나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4. 15.

 

안녕하세요, 전복라면 편집자입니다. 4월 11일 목요일에는 부산대학교 도서관에서 본교 한문학과 교수님이신 강명관 저자를 초청하여 개최한 <저자와의 만남>에 다녀왔습니다.
만남 시작시간은 오후 4시였는데, 5분 지각한 저는 마지막 의자를 아슬아슬하게 차지했습니다. 중간고사 기간이라 자리가 다소 한산하지 않을까 한 기대가 보기 좋게 빗나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제1도서관의 북카페는 깨끗하고, 물결치는 책꽂이가 세련되어 보이는 공간이었습니다.

 

 

 

본격적인 시작 전 스마트폰부터 끄시는 모습으로 처음부터 깊은 인상을 남겨주신 교수님은 차별과 편견에 대한 이야기로 오늘 만남의 진정한 주제를 자연스럽게 불러오셨습니다. “이 중에서 김태희처럼 태어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 난 장동건처럼 태어나고 싶었는데?” 다들 웃음이 터졌습니다. 교수님의 비유처럼,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이유로 차별을 받기도 합니다. 이 중 가장 뿌리 깊고 근원적인 차별이 바로 성차별입니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남성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높았습니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균등하게 분배해주었고, ‘말똥이 외손자 개똥입니다’ 처럼 스스로를 소개할 때도 외가까지 소개를 했지요. 고려시대에는 처가살이를 했습니다.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를 안 한다는 옛말이 있어요. 처갓집에서 사는데 아내에게 함부로 할 수 있겠어요?(웃음) 성리학이 도입되면서 남성의 이익을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는 가부장적 사회가 본격적으로 조성되었는데요, 조선시대에서 여성의 지위가 공작되는 과정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예로 들어 설명해주신 책이 『소학』과 『삼강행실도』였습니다. “성리학에서 여성을 어떻게 보는지 대표적으로 설명해주는 텍스트가 『소학』입니다. 한문학과에 입학하면 제일 먼저 배우게 되는 책이기도 한데, 저도 보다가 지겨워서 덮었어요(웃음).”


공자가 말씀하셨다. “부인은 남에게 복종하는 자이다. 따라서 독단으로 판단하는 의가 없고 세 가지 따르는 도가 있으니, 집에 있을 때는 아버지를 따르고, 남에게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라, 감히 스스로 하는 일이 없다. 가르침과 명령이 규문을 지나지 않으며 부인의 일은 음식을 마련하는 등의 일이 있을 뿐이다.”


그 유명한(?) 삼종지도입니다. 소학의 내용이 백성들에게는 다소 어려웠던 탓에 소학의 내용을 더욱 널리 보급하고자 만든 책이 『삼강행실도』라고 합니다. 또한 소학의 열녀편에 쓰인 글자 烈女에서 烈은 원래 있었던 글자가 아니며, 열녀 또한 조선시대에 생겨난 개념으로써 고려시대의 절부(節婦)를 대체합니다. 절부는 의부(義夫, 아내가 죽은 뒤 재혼하지 않은 남성)과 짝을 이루는 개념인데, 이 의부라는 단어는 조선조 『경국대전』에 와서는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칠판이 아직 준비되지 않아, 가져오신 종이에 쓴 다음 양손으로 들어 보여주며 설명하신 열렬(烈)한 이야기가 끝나고 조광조와 관기(官妓)이야기가 계속되었습니다. 조광조는 엄청난 미남이었는데, 자신을 사모한 옆집 과부에게 회초리를 쳐 다음날 과부가 목을 매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 과부의 한 때문에 조광조가 제 명에 못 살았을 거라는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를 해주셔서 한참 웃었습니다. 옛날 이야기는 이런 재미가 있죠?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요즘 저-기 금정구청에서 아가씨들을 데려다가 공무원들과 매춘을 주선한다면 기절할 노릇 아니겠어요?” 도덕과 윤리의 화신(?)이었던 조광조가 강력하게 주장한 것 중 하나가 기생제도 철폐입니다. 그리고 조광조가 죽고 나서 바로 부활한 제도가 또한 기생 제도라고 합니다. 교수님의 뼈 있는 한마디. “여러분, 조선 전기 양반에게 환상을 갖지 마세요.”


신체 일부를 훼손하거나 자결하는 형태의 열녀는 17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18, 19세기에 절정을 이룹니다. 이 때 조선에 양란, 즉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났었지요.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나서 경복궁에 불이 납니다. 왜군이 지른 건 아니고요, 아무튼 자료며 서적이 다 타버립니다. 좋은 일인데요(좌중 의아), 만약 그 자료들이 다 있었으면 저는 공부하느라 죽어났을 거예요(좌중 웃음).”


농담 뒤에는 잔혹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절개를 지키고 죽은 여성을 보고하라는 명이 떨어졌는데, 그 결과 만들어진 책이 『동국신속삼강행실도』입니다. 이 책에는 충신? 별로 없습니다. 효자? 많지 않아요. 열녀에 관한 내용이 굉장히 많습니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 중 「권씨결항」.임진왜란 때 시어머니와 어린 자식을 안고 숲 속으로 도망갔다가 왜구에게 발각되었는데, 시어머니를 죽인 왜구가 자신을 욕보이려 하자 큰소리로 꾸짖고 목을 매어 자결한 권씨라는 여인 이야기이다.


그리고 『동국신속삼강행실도』 등에 따라 열녀를 표창하기 위한 정문(旌門)이 하사됩니다. 전후 열악한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서 백성을 구휼하는 일과 열녀를 표창하는 일이 나란했다니, 새삼 소름이 끼칩니다.
이후 병자호란이 일어납니다. 유목민은 전쟁을 하면 포로를 죽이는 대신 잡아두었다가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호란이 끝나고 여인들이 돌아오자 효종의 장인인 장유가 며느리와 아들을 이혼하게 해달라고 왕에게 청했다고 합니다. 며느리가 순결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지요. 이후 비슷한 이후로 이혼이 급증했고, 그렇게 배척당한 여인들은 태(胎)가 다른(異) 곳에 모여 살게 됩니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이태원입니다(異胎院).


여성들은 물론 열녀사상에 저항했습니다. 그 방식으로 살인을 택하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지속적인 주입식 교육과 여성이 시집을 가는 혼습의 변경, 남성 장자에게 재산을 몰아 상속하는 장자우대불균등상속제(그래서 교수님은 흥부놀부가 아주 나쁜 소설이라고 하시더군요), 내훈이나 규방가사의 전파 등으로 여성에 대한 억압은 점점 더 고착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책을 쓰게 된 계기 중 하나인 어머니 이야기를 끝으로 만남에는 도돌이표가 찍혔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나의 생각이 정말 내 생각일까요? 우리가 하는 말은 주체적일까요? 우리는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데카르트의 말대로 사유하는 존재입니다.”

생각하기 위해 생각해야 한다는, 무한한 고리를 이루는 말을 따라 뱅글뱅글 돌고 있다가 조선시대의 여성에 대한 사진 슬라이드를 함께 보고 나서 질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부를 간략하게 옮기겠습니다.

 

주체적 사고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계속 의심하세요. 쓸데없는 책을 많이 읽으시고요. 인생의 목적을 돈에 두면 안 됩니다. 돈을 많이 벌면 많이 쓸 수 있고, 돈을 많이 쓰면 행복해진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생활습관을 버려야 하는데, 어렵지요.

당시에 차별에 맞서 깨어 있는 생각으로 저항한 사람들은 없었나요?
(딱 잘라) 없습니다. 다산 정약용? 연암 박지원? 춘향전? 여러분, 춘향전만큼 나쁜 소설이 없습니다. 춘향이하고 이도령이 결혼은 한 사이인가요? (일동 고개를 젓다가 웃음. 정식으로 혼인한 사이도 아닌데 왜 수절을 했냐는 의미인 듯)

교수님의 목표가 알고 싶습니다.
조선시대의 거짓에 반대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어떻게 평등한 사회로 갈 수 있는지를 연구하려 합니다.


책이 두껍고 잔인한 내용이 많으니 사라고 권하고 싶진 않고, 한 달 정도 계획하고 도서관에서 빌려 보라는 자학적인 농이 무색하게, 만남이 끝나자마자 사인을 바라는 독자들이 줄을 섰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서점 직원도   『열녀의 탄생』을 서가에 꽂는 사서 못지않게 분주하겠거니 싶어 흐뭇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평등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해야만 한다는 명령이다”라고 힘주어 말씀하시던 교수님의 목소리가 계속 떠올랐습니다. 만남이 끝나고 난 뒤 독자들은 다양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중에는 무심코 타인을 찔렀을지도 모를 차별적 시선을 인식하고 돌아보기 시작하는 독자들도 있겠지요. 그런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또 조금 바뀔 것입니다. 백년 전에 있었던 일로 내일의 모습을 바꿀 수 있다니, 역사란 어쩌면 오늘과 가장 가까운 학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열녀의 탄생 - 10점
강명관 지음/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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