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에 해당되는 글 36건

  1. 2019.02.28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저자와의 만남
  2. 2019.02.28 CEO 트럼프는 어떻게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나 - <CEO사회> 카드 뉴스
  3. 2019.02.28 홍콩의 정체성을 말하다! <홍콩 산책> 류영하 교수와의 만남
  4. 2019.02.27 화랑의 기원이 된 신라 여성, 원화를 주목하다! 역사 소설『랑』김문주 작가와의 만남
  5. 2019.02.26 2018 하반기 문학나눔에 산지니 도서 6권이 선정되었습니다
  6. 2019.02.25 2019년 2월 산지니 소식 70호
  7. 2019.02.25 2019년 1월 산지니소식 69호
  8. 2019.02.25 <생활성서>에 실린『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9. 2019.02.25 [연합뉴스]-[신간] 동아시아 엑스포의 역사
  10. 2019.02.25 [내일신문]-[신간]『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유럽무대에서 조선독립을 알리다
  11. 2019.02.22 [서울신문]-[그 책속 이미지] 펜을 든 동양 소년, 독립을 외치다
  12. 2019.02.22 [매일신문]-[서평]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지음/산지니 펴냄
  13. 2019.02.21 서영해, 조명되지 않은 이야기_<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1)
  14. 2019.02.21 홍콩 산책 1일차 ② - 피크트램, 피크트램 빨리 타는 법, Klook(클룩), 피크트램 패스트티켓, 더 피크 룩아웃, 빅토리아 피크, 피크 맛집, 홍콩 야경 (2)
  15. 2019.02.21 [광주일보] 3·1절 100주년 앞두고 ‘독립운동’ 서적 봇물
  16. 2019.02.20 마르셀로 무스토(Marcello Musto) 초청 강연회-서울,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17. 2019.02.19 [94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정상천 작가]
  18. 2019.02.19 [한국일보] ‘잊어진 독립운동가’ 파리의 서영해
  19. 2019.02.18 [경향신문] - [새책]『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20. 2019.02.18 [불교신문] 김문주 장편소설『랑』
  21. 2019.02.18 [뉴시스] 100주년, 책으로 되새기는 3·1운동
  22. 2019.02.18 [국제신문]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포기 않는 이들에 건네는 위로
  23. 2019.02.15 홍콩 산책 1일차 ① - 대구공항, 옥토퍼스카드, 침사추이, Holiday in Golden Mile, 청킹맨션, 인도카레, 퍼시픽플레이스, 홍콩공원, 홍콩다구박물관, 애드미럴티, 홍콩상하이은행 (1)
  24. 2019.02.15 임시정부 대표 외교독립론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선생은_<이데일리>
  25. 2019.02.15 [이투데이] 3.1 운동 100주년…텀블벅, 소장가치 높인 창작물 펀딩 대세

역사의 덤불 속에 가려진 서영해를 발굴하며

94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작가



28일 저녁 7교보문고광화문점 배움에서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작가와 94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교보문고광화문점에서 저자와의 만남을 진행하는 건 처음이었는데요긴장도 됐지만 많은 분이 자리를 꽉 채워주셔서 뜨거운 열기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저자의 알찬 설명으로 서영해 선생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주불특파위원이었음에도 오랫동안 역사에 묻혀 있었습니다서영해 선생의 삶을 책으로 출간하기 위한 시도가 몇 번 있었지만 다들 언어의 장벽에 부딪혔습니다서영해 선생의 활동 무대가 프랑스였기 때문에 불어를 능통하게 할 수 있는 분이 필요했지요.

운명처럼필연처럼 평소 역사를 공부하시고 불어에도 능통한 정상천 작가가 프랑스 외무부 고문서실에서 우연히 서영해 선생의 명함을 발견하고 이것이 인연의 끈이 되어 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일요일의 역사가정상천
     

일요일의 역사가라는 말을 사용하신 분은 파리에 실제로 계시고 저의 모델입니다프랑스의 고위공직자이시면서 역사학계에 많이 알려지신 분입니다파리에 공부하면서 이 분을 알게 되었고 저도 벤치마킹하게 되었습니다

 

서영해, 그는 누구인가?

서영해 선생은 27년간 파리에 사셨고 그중 7년 동안은 파리에서 공부를 했고, 20년은 외교활동을 펼쳤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완전히 역사 속에 잊혀진 분입니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로 임정의 양대 외교 축이었지만 철저히 잊혔고 제가 그분을 되살리게 되었습니다.

 

서영해, 독립운동을 하기까지

[서영해 출생지로 현재는 락천각이라는 중국요리점이 들어서 있다]

1920년에 프랑스에 갈 여력이 없었을 텐데요. 부친이 한약방을 하셔서 재력이 있어서 서영해의 유학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부친은) 부산 초량동에 서약국을 하셨습니다. 제가 주소만 가지고 생가를 찾아가보았습니다. 워낙 부자셨고 당시에 이 일대가 서석주 옹의 땅이었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이 근처에 태어나셨고 화교 학교도 다녔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화교 중학교를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당시 화교에 중학교 과정이 전 세계에 없었습니다. 잘못된 내용입니다. 선생은 부산 봉래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위대한 독립운동가 서영해와의 만남

그렇다면 서영해 선생은 왜 상해를 가게 되었을까요. 16살 때 3.1만세운동을 참여했습니다. 당시 기록에는 밤참 먹는 재미로 했다고 하셨습니다. 이후 일제 탄압의 부당함으로 민족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됩니다.

제가 휴직하고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프랑스 외교부 문서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프랑스 대표라는 명함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명함을 보고 이 분의 독립운동 관련 자료가 엄청 많은 걸 알게 되었고 일부 자료를 복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2013년에 나폴레옹도 모르는 한·프랑스 이야기잊혀진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라는 제목으로 서영해 선생을 5페이지 정도로 간략히 조명하게 되었습니다.

 

임정의 유럽 외교를 담당한 외교관

서영해 선생은 1929년도에 호텔 드 상리에 고려통신사를 설립했고 호텔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가격은 5~7만 원 정도 하구요. 호텔에 찾아가면 서영해 선생이 머물렀던 방을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서영해 선생은 이승만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결정적으로 노선 차이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와 연애할 때 편지를 전달하기도 했고 서영해 선생의 부인도 오스트리아 여인이었습니다. 제네바에 국제연맹 활동으로 6개월 동안 동거동낙한 후 19335월 말 파리에 와서 찍은 사진 같습니다. 그러나 둘은 정치적인 노선으로 멀어지게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서영해, 조명되지 않은 이야기_<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실려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수립하게 되었고 김구 선생은 어떻게 우리가 독립하게 되었는데 3.8선을 베고 누울지언정 분단된 나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김구 선생과 서영해 선생은 친밀한 사이였는데요. 김구 선생이 서영해에게 백범일지를 주면서, 뜻을 같이 하는 동생에게 라고 적어 주었습니다. 서영해는 조소앙 선생 다음으로 백범 선생에게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하니 두 분은 아주 가까운 사이였던 걸 알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문필가, 언론가, 서영해

 

임시정부가 고려통신사에 재정적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현지 언론에 원고를 기고하고 원고료 받아서 고려통신사를 이끌어갔습니다정말 대단한 일이지요.

서영해 선생은『거, 불행의 원인을 집필했고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도 집필했습니다. 당시에는 주변이라는 말이 유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은 대공황 시기에도 5판 인쇄가 될 만큼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동안 일본을 통해 한국을 보다가 서영해의 역사소설을 통해 한국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게 조선 독립운동을 위한 선전, 외교활동이었습니다. 현재 국내에는 주변이라는 말을 빼고어느 한국인의 삶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이집트 여성 운동가가 만든 잡지인 이집트 여인에도 서영해 선생이 소개되었습니다. 이집트, 에티오피아, 체코, 프라하까지 활동 범위가 넓었습니다.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첫 번째 희생자였다” <스 수아> 특집 기사에 실렸고 이렇게 언론에 기고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서영해가 남긴 사랑, 사람

서영해 선생은 파리에 미술 공부하러 온 엘리자를 만나 빈 시청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엘리자는 타오라는 갤러리를 빈과 이탈리아에 운영했습니다두 분의 유일한 혈육은 스테판입니다.

스테판은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 없고 죽기 전에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언론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프랑스에 있는 오스트리아 대사관과 파리에 있는 출판사에 '서링하이(서영해의 중국식 이름)'를 아는지 찾아봤다고 합니다. 스테판은 2013년에 투병 후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수지에게 책을 써서 꼭 혼을 풀어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정상천 작가가 사무실에 스테판 사진을 걸어놓고 책 집필에 열정을 다하셨다고 하시네요)

수지왕은 2017년에 3주 정도 한국에 서혜숙(서영해 6촌 후손) 선생 댁에 머물면서 국립중앙도서관 영해문고에 방문하고 부산에도 찾아갔습니다. 스테판의 딸 수지 왕과 스테파니가 47일 한국에 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면 스테판이 성이 왕 씨가 된 이유는 엘리자베스가 식닝 왕이라는 중국인과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되어 성이 바뀌게 됩니다.


 서영해 선생의 마지막 생애는 미스테리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김광재 사료실장이 1948년도에 상해 한인들 연구하면서 서영해 선생의 사진을 발굴하게 되었습니다. 상해 인성학교에 있는 서영해 선생의 졸업사진이 마지막 추정 기록입니다. 마지막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겨야 할지 계속해서 발굴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통일이 되어야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역사에 묻힌 서영해 선생이 지금이라도 후손들에게 알려지길 바라고 이외 많은 독립운동가가 세상에 알려지길 바랍니다.

***

이날 많은 분들이 자리를 채워주셨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서영해 선생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일과 

정상천 작가가 책 출간하기까지 쏟아부은 열정에 박수를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3월은 부산 독자를 만나러 갑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CEO사회> 관련 글 바로가기

 

└ New Humanist 저자 터뷰 ①

New Humanist 저자 인터뷰 ②

 

Guardian 특집 기사

 

ABC radio 인터뷰

 

Posted by 실버_

산지니는 꾸준히 저자와의 만남을 가지고 있는데요,
<홍콩 산책>의 저자와의 만남은 특별하게도, 홍콩학서점 서언서실에서 열렸습니다.

콩에서 있었던 뜨거웠던 대담 현장, 함께 만나보시죠 :)


 

▲ 홍콩학 서점 서언서실

 

강수걸(이하 강): 오늘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은 <홍콩 산책> 류영하 선생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홍콩 산책> 속에도 나오지만 선생님은 중국본토로 유학을 갈 수 없던 시절, 홍콩으로 유학을 가셨는데요. 시절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중국 대신 대만으로 유학을 갔지 않습니까? 그런데 선생님은 홍콩의 어떤 점에 끌려서 유학을 가게 되셨나요?

 

류영하(이하 류): 이은주 편집자님이 <홍콩 산책> 책 뒤표지에 이런 표현을 했더라고요. “이 책은 뾰족하고 유쾌하다.” 실제로 저를 ‘뾰족하다. 심지어 투덜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굉장히 힘들게 다녔고 ‘우리나라를 떠나야 되겠다.’라는 생각도 하기도 했어요. 홍콩이 아니라도 밖으로 나가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20대 때 이 생각을 한 게 제 인생에서 제일 잘한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당연히 그 당시에는 대만이 대세였고 선배님들도 대만을 많이 가던 시기였죠. 그런데 저는 대만은 재미없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대륙의 책도 제대로 볼 수 없고 현대사 연구도 잘 안 되는 것 같았고 금기가 많았죠. 직접 체험하며 알게 된 게 대학교 3학년 때 대만 학생들이 왔었어요. 홈스테이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깐 홍콩이나 대륙의 책들을 빼 봤더라고요. 그때 느꼈죠.

반면에 그 당시 홍콩은 굉장히 우리한테 이미지가 좋았잖아요. 뭐든지 자유로울 것이라는 이미지들이 있었고 가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제가 고전문학이 아닌 현대문학을 하기 때문에 대만이 아닌 홍콩을 선택한 이유도 있죠.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를 더 들자면, 80년대 대학생들이 시대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굉장히 진보적이고 생각이 과격했어요. 저도 물론 그 대학생들 중 하나였죠. 그 당시에 대학생들은 도올 선생님의 <동양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특강을 보고 감탄을 했어요. ‘이분처럼 돼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분의 학력을 보니깐 일본 갔다가 미국 갔다가 대만 갔다가 온 데 다 갔더라고요. 그걸 보고 저도 독특한 곳을 가고 싶어 홍콩에 가게 되었죠.

 

▲ 류영하 교수(좌) 와 산지니 강수걸 대표(우)

 

강: 그럼 그곳에서 문학을 쭉 공부하신 건가요?

 

류: 그런데 그게 인연이고 운명이고 그런 것 같아요. 지금 돌아서 보면 저는 요즘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하거든요. 현재 그 자리는 그 사람이 원했던 자리라고요. 자신이 부정하고 싶어도 그 선택을 했기에 그 자리에 와있는 거거든요.

그 당시 홍콩은 매우 살벌했어요. 가끔 유학생 간첩 사건이 터질 때에요. 그래서 스스로 ‘정치색이 있는 작가를 피하자’ 생각하고 소설을 연구했죠. 하지만 한쪽으로는 항상 ‘이게 주류가 아닌데. 메인이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그래서 후배들이나 제자들이나 소설연구를 한다고 하면 심리적으로 복잡해져요. 소설이 만만한 게 아닌데, 특히 외국인들에게요. 한국소설은 누워서 보기도 하고 지하철에서 보기도 하잖아요. 중국소설은 쉽게 못 봐요. 단어 하나조차도 이해하기가 굉장히 힘들고 장면은 이해되지만 완벽히 체득하기에는 힘들어요. 대체적으로는 아는데 단어의 의미, 사투리, 욕까지 완전한 이해는 힘들죠. 노신의 소설 같은 경우도 중국 사람들도 두세 번 읽어야 이해될 정도라고 하니까요. 소설을 하기에는 쫓아가기에 급급할 것 같아서 이론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사회주의 문학 이론을 전공하게 됐어요.

 

강: 그럼 박사 때는 석사 때와 조금은 다른 마음가짐으로 공부하게 되신 거네요?

 

류: 네, 시대도 부드러워졌고 학교 때부터 제가 사회과학서적을 많이 읽어왔으니깐 ‘사회주의를 제대로 한번 보자.’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걸 선택을 잘한 것 같아요. 이론적으로 탄탄하게 기초가 되어 있었고, 박사 과정에서 공부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웠다고 할 수 있죠. 중국권의 학자들은 대부분 창작도 하고 연구도 같이해요. 기본적으로 산문 수필은 다 쓰죠. 선생님이 홍콩연구를 해보라 하셨는데 당시 홍콩연구는 우리나라에 없었기 때문에 ‘중국학 지평을 넓혀봐야겠다. 또 홍콩에 7년 동안 산 내가 남들보다 조금은 유리하지 않을까?’는 생각을 하고 처음에는 홍콩 문학의 정체성을 연구하다가 점점 문화 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담론 쪽으로 오게 되고 여기까지 왔네요.

 

강: 교수님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으신데요. 홍콩역사박물관에 관한 학술도서도 쓰셨고 또 이번에는 대중적인 홍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책도 쓰셨어요.

 

류: 계속 학술서를 쓰다 보니깐 모든 학자들이 그럴 것 같아요. '이게 누구를 위한 책인가 어디까지 알려질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이 들어줘야 하는데 안 들어주면 어떡하지?’ 많은 사람이 인문학의 위기라고 말하잖아요. 논문을 적으면 과연 몇 사람이나 읽어주실까요? 저는 논문은 꼭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세 사람이 읽든 다섯 사람이 읽든 상관없이 말이죠. 자기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학자로서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쪽에서는 ‘내 생각을 누가 알 건데?’라는 딜레마도 빠지죠. 영원한 갈증 같아요.

지난번에 EBS 테마기행 대만 편을 찍고, 어떻게 보면 대중적으로 처음 알려진 거죠. 그렇게 열심히 연구한다고 책도 내고 논문도 많이 썼는데 전화 한 번도 안 하던 친구들 친척들이 연락을 하는 그런 괴리감, 간극과 편차가 너무 컷어요. 제가 뾰족하다는 건 그런 거에 대한 반발 같아요. 뭔가 도전적이고 도발적이고 삐딱하고 뾰족한 생각을 하는 게 학자 같아요. 나는 그렇게 살았는데 한 번도 몰라주다가 TV에 한 번 나왔다고 해서 이런 반응이 나온다니깐 그러면 대중과 친해지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고 쉬운 책을 한번 내보자 해서 탄생한 게 이 책입니다. (웃음)

처음에는 가족조차도 안 팔린다고 내주는 출판사도 없겠다고 말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어요. 저는 재밌다고 생각해서 1, 2년 쓰기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들 보면 진짜 재밌게 쓰잖아요. 그래서 생각한 게 문장을 최대한 짧게 끊어서 쉽게 가자. 처음엔 주제를 몇 개로 할 건지도 답도 안 나왔고 많이 갈아엎었죠. 그런 과정을 거쳐 마지막까지 고민 끝에 류영하식으로 20가지 주제를 정해 만들었어요.

서언서실에서 만난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 홍콩 번역판

 

강: <홍콩 산책> 이전에 쓰신 홍콩 역사박물관에 대한 책(<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도 굉장히 흥미로워 보이는데요. 홍콩 역사박물관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짧게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류: 어느 나라든 역사박물관이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보통 사람들도 그곳의 역사를 알려면 그곳의 박물관에 가보라고 이야기를 많이 하기도 하고요. 저는 홍콩에 있으면서 역사박물관을 많이 가봤어요. 그런데 6년 정도 연구하면서 ‘이게 사실일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박물관의 소개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봤는데 반발이 생기더라고요. 소개에는 ‘중원문화’라는 말이 계속 나와요. 항상 비교하면서 중원문화는 우수하고 남방문화는 열등하다는 말도 나오고요. 중원문화라는 말은 독재적이고 파시즘적이잖아요. 그래서 ‘이거를 한번 조명해서 책을 써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죠.

책을 쓰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어요. 홍콩의 특징 중 하나인데, 홍콩 공무원들이 굉장히 신중해요. ‘홍콩 박물관에 대해 알고 싶다.’라고 말하면 알고 싶은 것을 메일로 보내라고 하고는 답이 없죠. 주권이 중국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그 사람들은 말을 잘못하면 어떻게 될지 두려웠던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박물관에 있는 사람들은 못 만났어요. 그러다 제일 중요한 한 분을 만났어요. 박물관 기획을 한 은퇴한 관장님을 만났는데요. ‘홍콩역사박물관’인데 너무 중원문화를 강조한 것이 아니냐고 물어보니 자기변명하고 충분히 논의를 거쳤다고 이야기를 하죠. 또 조금이라도 민감한 질문을 하면 대답을 안 했어요.

그러다가 책이 나오고 난 후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가 홍콩에서 출판이 되었어요. 그 책으로 홍콩역사박물관 내에서 강의도 하게 되었고요. 세미나에 그분도 오셨는데, 제 말을 경청을 하시더라고요. 끝나고 어땠냐고 물어보니 “모든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 그건 너의 생각일 수 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역사라는 것은 승자의 기록이고 공평하지 않잖아요. 그 사실을 저는 알리고 싶은 거예요.

 

강: 현장에 가서 조사하시고 인터뷰 요청도 하고 좌절도 하시면서 선생님의 관점과 노력한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는 학술서가 탄생한 거네요. 이게 어쨌든 홍콩에서 책으로 나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홍콩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개방성과 홍콩의 놓인 이중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만약 중국이었으면 책이 안 나왔겠죠. 출판하는 과정이 엄청 어려웠을 것 같아요.

류: 저도 계속 생각한 게 ‘이게 홍콩에서 출판이 될까?’였어요. 그게 제일 걱정되더라고요. 보통 홍콩에서 책을 낸다고 하면 사람들 추천사가 몇 개 들어가거든요? 홍콩에 있는 교수 친구들도 다 발을 빼는 거죠. 전부 다 눈치를 보고 그나마 지도교수만 해줬어요. (웃음) 마지막까지도 안심을 못 했습니다.

제가 말을 과격하게 하지만 글은 과격하게 안 쓰니깐 중국 민족주의도 비판하고 홍콩 본토 주의도 비판하는 양쪽 다 비판하는 중도적 책이기 때문에 홍콩에서 출판될 수 있었지 않나 싶어요. 저는 정체성이 너무 강한 것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거든요. 너무 강해도 안 되고 약해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강: 다시 <홍콩 산책>으로 돌아오면, 책 속에 한 꼭지인 ‘걸어 다니는 홍콩 정신 이천명(李天命)’ 거의 끝부분에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작은 병은 복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크게 공감이 되면서 이것이 홍콩 나름의 다름이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홍콩의 친구들로부터 인생의 핵심이랄까, 정수랄까, 철리랄까, 그런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나는 그것이 홍콩문화의 정신이라고 보는데, 중국 전통에 서구의 사상이 합쳐서 만들어낸 삶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말을 편집자가 상당히 인상 깊게 느꼈다고 하는데, 선생님께서 보시는 홍콩문화의 정신이나, 홍콩 정신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류: 이 질문을 받으면서 왜 나를 고민하게 만들지? 라는 생각을 했어요. (웃음)
지금 새로 쓰고 있는 책도 그런 책이거든요. 제가 집에서는 많이 이야기해요. ‘중국 사람은 이렇고 홍콩 사람은 이렇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제가 중국 연구자여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중국 사람들은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굉장히 탄탄하게 만들어져 있고 대화를 해보면 대화를 하면서 계속 배울 수 있어요. 중국문화의 저력인 것 같아요. 중국 문화의 저력이 어디서 나오나? 제 생각에는 사서삼경에 바탕을 둔 것 같아요. 어릴 때 홍콩 사람들은 사서삼경을 학교에서 배우지만 일상에서도 배웁니다.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의 말로 어릴 때부터 듣는 거고 당시 300수는 웬만한 사람 다 외워요. 당시 300수를 외운다는 것은 이미 인문학이 어릴 때부터 끝난다는 이야기라는 거예요. 거기다 중국 사람들의 두뇌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주역입니다. 주역의 핵심적인 이치를 꿰뚫고 있어요. 교육의 정도를 떠나서 그런 것 같아요.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말이 있어요. ‘잘나가는 용이 내려갈 길밖에 없음에 후회한다’는 말이죠. 그게 인생의 핵심이거든요. 인생에 계속 가는 건 없잖아요. 반드시 꺾일 때가 있듯이 또 잠룡물용(潛龍勿用)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면 성급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죠. 이 두 가지가 주역의 기본적인 핵심이에요. 잘나갈 때도 못 나갈 때도 사이클을 유지하고 공부하는 자세로 살아야 해요. 자기가 일이 안 풀린다고 생각되면 방문 닫고 조용히 책보고 있어야 해요. 이런 것들이 동양의 핵심사상인 순환론이고 ‘적선지가 필유여경, 적불선지가 필유여앙(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착한 일을 많이 하여 선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고, 나쁜 일을 하여 선을 쌓지 못한 집에는 반드시 재앙이 있다’고 이것도 인생의 핵심이에요. 제가 두뇌 과학에도 관심이 많은데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복을 받는다. 하는 것도 다 두뇌 과학이에요. 사서삼경에는 당시 300수의 내공들이 계속 전수되어 와서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고 유산이 되죠. 또 공자, 맹자 같은 제자백가들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생각해서 직접적인 연대감도 매우 커요.

서양의 영국식 합리주의도 홍콩 사람들의 정신에 같이 힘을 발휘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요. 홍콩사람들이 합리적이고 근대적이라면 서양의 합리주의가 굉장히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해요. 제가 우리 문화에 부족하다고 보는 것은 근대화거든요. 왜 근대화나 합리주의나 아직 곳곳에서 허점이 너무 많잖아요. ‘그걸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고 그걸 위해서 어떤 자료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그것을 중국문화 그들의 지성의 힘을 빌려서 풀어내는 게 향후 몇 년간의 작업이 될 것 같아요.

 

강: 책 속에 나오는 ‘정체성 없는 홍콩의 정체성’이란 말에 공감했어요. 홍콩에 직접 생활을 하셨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은 다 보신 선생님이 ‘이것이 홍콩의 열린 정체성이다. 이런 면은 홍콩의 새로운 정체성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신가요?

 

류: 저는 모든 걸 정체성의 충돌이라 보거든요. 지역 간의 세대 간의 그리고 정치적인 정체성의 충돌... 요즘 자꾸 정체성의 충돌이 심해지는 것 같아요. 이건 전 세계적인 조류에요. 이게 누구의 책임인지 범인을 신자유주의로 둘 것인가 하는 것이 학자들이 할 일인데. 중국의 정체성이 너무 강하고 홍콩은 정체성이 너무 강해서 서로 충돌해요. 정체성은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이에요. 이것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도구로 쓰이곤 하죠. ‘정체성이 어느 정도까지 가야 되는가.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 어디까지 가야 되는가’ 하는 것은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고, 저는 합리주의와 정체성이 같이 잘 맞물려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 홍콩은 아시아의 금융, 물류의 중심이고 부산도 금융, 물류에 새 성장 동력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또 두 도시 다 영화의 도시이기도 하잖아요? 이처럼 두 도시는 유사점이 많은 것 같은데 ‘하나의 도시로서 바라볼 때 부산과 홍콩을 비교하면 고민해야 될 부분들이 있지 않을까? 홍콩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점들이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데요.

 

류: 토론문화가 약한 것이 저는 한국문화의 취약점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학생이 ‘홍콩에 다녀왔다. 중국에 연수를 갔다 왔다’라고 이야기하면 제가 질문을 해요. ‘중국에서 뭘 배웠냐고, 중국의 가장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뭐였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참 힘들어해요. 어른들도 마찬가지죠. 우리나라도 한참 홍콩 여행을 많이 갈 때는 해외여행 방문 수가 1위였고 지금도 5위 안에 들어가고 수백만이 넘게 오는데 그러면 우리는 홍콩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 사람들의 머릿속에 ‘홍콩’ 하면 ‘쇼핑의 도시’ 같은 것밖에 없는데, 홍콩은 사실 우리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거든요. 홍콩에 대해 배워야 할 건 배우고 버려야 될 건 버려야 되는데 홍콩은 미리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을 미리 보여주는 거니깐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알 수 있다고 봐요. 그래서 홍콩을 연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것들이 작지만 이 책 <홍콩 산책>에 다 있다고 자부를 합니다.

 

강: 탈 자본화 탈 분단화 같은 탈해야 될 우리에게 놓인 과제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고도의 자본주의가 된 홍콩에서 어떻게 탈 자본화할 것인가 같은 문제들이죠. 홍콩은 밝음도 있지만 어두운 부분도 많잖아요. 홍콩을 거닐면서 고민을 해봐야 할 문제 같은데요?

 

류: 저는 홍콩식 자본주의를 무작정 비판하자는 주의는 절대 아니에요. 홍콩식 자본주의의 장점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장점조차도 한국문화가 알고 있는가? 라는 의심을 많이 하거든요. 인간의 근본적인 능력이나 성정까지 연결돼있는 문제인데, 그럼 어디까지 자본주의를 운용해야 되고 사회주의적 방식을 운용해야 되는 문제 이런 문제들이 홍콩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점에서 저는 홍콩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돼요.

 

 

홍콩 사회와, 홍콩의 정체성에 대해

류영하 교수님의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홍콩 산책 도시 인문 여행

 

류영하 지음 │ 224쪽 │ 2019년 1월 15일 출간 

 

홍콩의 정체성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온 류영하 교수의 인문 여행 에세이집. 30년간 홍콩을 연구하며, 살며, 여행하며 쓴 글들을 담았다. 홍콩에 대한 전문 지식을 집대성했지만 쉽게 풀어 썼다. 슬렁슬렁 비치는 홍콩의 불빛 사이를 느긋한 걸음으로 걸으며 관찰한 저자의 글에는, 홍콩에 대한 내공 깊은 시선이 뾰족하게 드러난다. 그의 시선을 따라, 함께 홍콩 인문 여행을 떠나보자. 홍콩을 꿈꾸는, 홍콩을 여행하는, 홍콩을 추억하는 당신과 함께 홍콩 산책.


 

 

홍콩 산책 - 10점
류영하 지음 / 산지니

Posted by 실버_

 

지난주 목요일 역사소설 <랑>의 저자 김문주 작가님과 함께 93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번 행사에 예상보다 많은 분이 참석해주셔서 공간이 북적북적했답니다.

 

 산지니X공간에서 예쁜 떡도 정성스럽게 준비했어요.

 

 

행사 시작 전 창원민예총 대표 박영훈 선생님 축하 공연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단소와 비슷한 악기인 께나(Quena)로 연주하신 곡은 영화 <라스트모히칸>의 OST로 널리 알려진 외로운 양치기(The Lonely Shepherd)인데요. 정말 슬프고도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셨어요. 소설 속 준정과 원화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축하공연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편집자(이하 편): 작가님께서 아동문학 책은 많이 내셨지만 장편소설로써는 <부여 의자>에 이은 두 번째 책을 내셨는데요, 두 번째 장편소설, <>을 내신 소회는 어떠셨나요?

김문주 작가(이하 김): 반갑습니다! <랑>의 작가 김문주입니다. 멀리서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오시고 귀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그냥 글을 쓰는 사람이지 한 사람으로서는 별로 보잘것없는 사람인데 그래도 작품을 써서 이렇게 여러분과 같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돼서 영광입니다. 말씀하신 데로 처음에는 장편 동화를 썼습니다. 첫 작품이 <할머니 사랑해요>라는 작품인데 제가 시댁이 남해거든요. 그래서 아이를 남해에 맡겨놓고 키우면서 있었던 일을 썼어요. 사실은 제가 동화를 공부한 건 아니고 소설을 썼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작품 중에 외국 성장소설이 많아요. 예를 들어서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빨간 머리 앤> 이런 작품들이요. 그래서 '나도 성장소설을 써야 되겠다.' 해서 썼는데 장르 상 굳이 구분을 하다 보니 장편 동화가 됐습니다. 처음에는 동화 작가로서 정체성의 혼란도 느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흔히 유아 동화를 읽으면 그 문체부터가 많이 다르거든요. 제가 쓴 작품들은 말은 동화지만 성장소설적인 소년소설 같은 그런 작품들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동화작가로서 글을 계속 쓸 수 있을까' 했는데. 그래도 운 좋게 계속 쓸 수 있었어요. 그래서 동화 한 10권 정도 나오고 나면 '나도 소설을 꼭 써야지' 라고 결심했죠. 다행히 하루종일 소설 쓴다고 앉아있는 기회가 있었고, <랑>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작년에 <부여 의자>가 출간되었고 두 번째 책으로 <랑>이 나왔지만 <랑>을 먼저 썼습니다. <랑>을 쓰면서는 1년 동안 정말 일을 그만두고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처음으로 주어져서 너무너무 행복하게 집필을 했던 것 같아요. <랑>은 제 모든 정신을 다 바쳐서 오직 여기에 빠져서 정말 딴짓은 아무것도 안 하고 썼어요.

제가 동화를 냈을 때는 아이들과 간혹가다가 작가와의 만남 같은 데서 눈을 맞추며 이야기했지만, 어른들과 함께하는 저자와의 만남 자리는 '문학이라는 게 결국 인생을 이야기하는 건데 뭐 잘났다고 이야기를 하겠나'라는 생각을 해서 반려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랑>은 정말 제 첫사랑과 같은 작품이라서 오늘은 글을 읽으신 분이 두세 분만 계셔도 '같이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그런 마음으로 아주 저도 설레게 참석했습니다.

 

편: 주변 분들의 책에 대한 반응은 어떠셨나요?

: <랑>이 1월 말에 나오고 제가 잘 아는 시인께서 한 달 전에 책이 나오셔서 그 시집이랑 제 책 출판기념회를 간단하게 했습니다. 북 콘서트 형식으로요. 그래서 책이 나오자마자 해놓으니깐 그때 책을 안 읽은 상태에서 문인분들이 오셔서 책을 받아가셨고 이제 막 전화를 해주고 계신데요. 그냥 저한테 재미없다고 말씀하시긴 뭣하니깐 다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느 작가분은 어제 전화를 하셔서 '그래도 남모와 백아를 살려두지 어떻게 그렇게 죽일 수가 있냐'고 마치 드라마 보고 열 내듯이 저한테 전화를 해서 그래도 살려줄 수 있지 않았냐고 재판을 찍을 때 다시 고민해볼 수 없냐고 말씀하신 분도 계셨구요. 또 제가 장편 동화를 계속 냈던 예림당에서도 책을 한 권 보내드렸더니 산지니 출판사를 잘 알고 계신다면서 책이 예쁘게 재밌게 잘 나왔다고 칭찬해주셨습니다.

 

 

편: 선생님의 이력을 살펴보면 처음에 아동문학으로 문단에 발을 디디셨는데요. 어떻게 전혀 다른 장르인 역사소설을 쓰시게 되셨는지요?

: 책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제가 역사 동화도 습작을 했거든요. 한 권은 잘하면 나올 것도 같은데... 최초로 제가 동화로 시작하게 된 계기는 파락호 김용환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알고 계신 지는 모르겠는데 파락호처럼 겉으로는 노름과 술로 재산을 탕진했지만, 사실은 그분이 위장해서 겉으로는 그렇게 욕을 들어가면서 사실은 독립운동을 하셨던 거죠. 돌아가실 때까지 해방이 되어서도 말하지 말라고 해서 알리지 못했던 그분에 대해서 제가 알게 되어서 그분을 소재로 동화를 한번 썼었거든요. 그러면서 동화를 제가 쓰면서 보면 모든 것이 직접, 간접체험입니다. 모든 작가가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의 체험에서 다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역사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니깐 일단 제가 공부를 해야 되는 것도 많고 또 아는 것만 가지고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를 보는 관점이라든지 자기 철학이 만만치 않으면 감당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소설을 쓰면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써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고요. 그리고 있는 그 시대를 그대로 재현을 한다는 것이 어렵거든요. 동화는 아이들의 심리를 아이들이 요즘 뭐가 문제인가 또 아이들의 심리가 또 어떤 갈등을 가지고 있는가 그런 것을 위주로 했다면 역사소설은 기본적으로 시대에 대해서 꿰뚫고 있어야 되니깐 <랑>을 쓸 때는 법흥왕 시대 공부를 많이 했죠. 그런 차이점이 있었는데 그래도 그렇게 공부를 하는 게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역사소설을 공부를 한다고 해서 힘든 게 아니고 오히려 굉장히 재밌고 자료가 없는 부분을 제가 상상력으로 메꾸어 갈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뿌듯했죠.

 

편: 동화와 역사소설 두 분야를 집필하실 때, 선생님께서 어떤 차이점을 느끼시나요?

: 여기 시인분들이 없다고 가정을 한다면 간혹가다가 긴 글 쓰는 사람들은 농담처럼 그렇게 이야기하죠. 시인들은 할 거 다 하고 다니다가 잠시 앉아서 영감이 떠오른다고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조금 나쁜 표현으로 "그렇게 시 나부랭이 쓰는 사람하고 우리처럼 종일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어도 이게 돈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걸 써야 하는 이런 사람하고 달라." 이런 식으로 감히 이야기하는데요. 동화는 아이들은 상대로 했을 때 제가 소설을 잡아서 써보면 길이가 있거든요. 저는 길게 쓰고 싶어도 출판사에서는 길이가 너무 길면 안 팔린다고 제안하기 떄문에 자연히 짧게 끝났죠. <랑> 같은 경우에도 제가 1800매를 썼습니다. 1년 동안 1800매를 다 쓰고 줄이고 줄여서 출판사에 넘길 때는 1200매로 줄여서 넘겼거든요. 그걸 한번 해보고 나서는 <부여 의자>를 쓸 때는 "이 짓을 할 게 아니구나"해서 1000매 안쪽으로 900매로 딱 잡아서 초고를 900매 쓰고 별로 고치지 않았어요. 그래서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출간되는 시간이 <랑>은 1년 걸리고 <부여 의자>는 6개월이 걸렸어요. 말이 길어졌는데, 일단 역사소설이 동화보다는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노력이 있고, 그에 따라 투자하는 시간도 자연히 길어질 수밖에 없긴 해요. 하지만 문학적 성과는 그걸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편: 역사소설 중에서도 특별히 신라 화랑의 기원 원화를 다룬 작품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집필 과정과 관련 조사는 어디에서 어떻게 하셨는지요?

: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중학교 때 저도 배운 것 같거든요. '남모와 준정이라는 두 원화가 있었는데 폐하게 되었다' 이런 내용 말이죠. 잊고 있었던 그 문장을 어느 날 아는 지인 댁에 가서 밥을 먹다가 듣게 되고, 제가 거기에 꽂혀 집에 가서 자료를 찾아봤죠. 면밀히 자료를 찾아보니깐 책 별로 시기는 좀 다르더라고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진흥왕 시기로 되어있는데 <화랑세기>에 보면 그전에 법흥왕 시기부터 시작되었고요. 그래서 <화랑세기>에 맞춰서 쓰기 시작했고 기본적으로 법흥왕 시기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근데 진흥왕 시기와 관련된 기록은 굉장히 많이 남아 있는데 법흥왕 시기는 별로 기록이 없더라고요. 기록이 없는 만큼 힘들었지만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사소하게는 예를 들어 나무 한 그루를 쓰더라도 '이게 옛날에 우리나라에 있었다' 하면 쓸 수 있었고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을 알아가는 시간이 많았고요. 고증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역사를 상상하더라도 왜곡하면 안 되니깐요. <랑>을 쓰기 위해서는 하루에 10시간씩 앉아있었는데 절반은 이런 자료를 찾고 어떤 때는 하나도 건지지 못할 적도 있었죠. 자료 찾고 진도 나가고 이런 식으로 굉장히 재밌게 작업을 했습니다.

 

편: 전작 <부여의자>를 읽어보았을 때 망국의 왕으로서 덧씌워진 프레임이 있었고, 역사적 명, 훼손에 대해 새로운 조명을 하셨는데요. 이번 작품 <>에서도 그런 조명을 해주신 것 같아요. 선생님이 책 후기에서 말씀해주신 역사 속 기록을 잠깐 짧게 읽어보겠습니다.

아름다운 두 여자를 원화로 뽑아서 무리들을 맡게 하였다. 두 여인이 아름다움을 다투어 서로 질투했는데,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에 유인해 억지로 술을 권해 취하게 되자 끌고 가서 강물에 던져 죽였다. 준정이 사형에 처해지자 무리들은 화목을 잃고 흩어지고 말았다.

- <삼국사기>

이렇게 <삼국사기> 속에 짧게 전해진 두 여인이 아름다움을 다투어 서로 질투해 원화가 폐지되었다라는 기록을 비튼 작가님의 행보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불교신문> 등 언론에서는 <랑>을 '대체역사소설이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했는데요. 이런 역사 재조명이나, 역사를 재조명한 작품에 대해 작가님께서 해주실 말씀이 있으실까요?

: 읽으신 내용대로 기록에는 '준정이 남모를 시기해서 술을 먹여 돌로 쳐 죽여서 묻었는데 나중에 들켜 그래서 원화를 폐지하였다'고 되어있는 거에요. 남모는 정확하게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법흥왕이 태자 시절에 백제에 사신으로 갔는데 백제 공주와 첫눈에 반해서 낳은 것이 남모였습니다. 법흥왕의 딸이고 백제 공주의 딸이며 또한 남모의 남편이 미진부였는데요. 미진부는 위화랑 다음 두 번째 풍월주로 남모는 당시의 최고의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있는 거죠. 그에 비해 준정은 아무 기록이 없었습니다. 굳이 찾아보면 왕족의 친척의 딸이라고만 되어있었어요. 여기서 의문이 생겼어요. '낭도들을 거느릴 정도의 원화인데 그런 원화가 오직 질투 때문에 사람을 죽였을까? 그것도 신분상으로도 남모와 비할 수 없는데 준정이 남모를 죽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원화를 폐하고 화랑을 세우기 위해서 화랑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생긴 이야기는 아닐까?'론 아름다운 두 여성을 세웠기 때문에 여러 가지 염문설은 났을 수도 있는데 그런 기록들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이걸 다르게 써봐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준정은 기록이 없기 때문에 마음껏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거죠. 기록과는 다르게 '준정을 가장 고귀한 인물로 이차돈의 연인으로 만들어야 되겠다.'해서 이차돈이 순거하던 그 시기부터 본 이야기가 전개되는 거로 했고요. 역사의 기록이라는 게 승자 위주로 쓴 기록이어서 게다가 <삼국사기>는 삼국 시기에 써지지도 않았고 고려 시대에 김부식에 의해 쓰였기 때문에 모든 기록들이 한 번쯤은 의문을 가질 수 있는 그런 기록들이 아닌가 생각이 되죠. 모든 기록이 다 중요하지만 어쩌면 믿을 수 없다고 되짚어 봐야 된다고 생각하고 소설가는 결코 역사가가 아니니깐 사실을 밝혀내는지 집중하지는 않지만, 역사소설을 쓰기 위해서 사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왜 이걸 뒤집어야 하는가' 자기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역사소설이 문학계에서는 약간 소외된 장르이기는 하지만 예술의 대중성이라던지 공공성 이런 걸 볼 때는 제대로 된 역사소설이 계속 나오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편: 요즘 현대소설 분야에서는 여성 인물 중심의 작품 출간이 열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요. 역사소설은 대부분 전쟁 서사나 유명 인물, 혹은 왕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많아, 여성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은 거의 드문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은 소설 전반에 준정, 남모, 지소, 요 등 여성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렇게 성 인물을 축으로 하는 작품을 쓰신 소감이나 이유가 있을까요?

: 이 작품이 결과적으로 여인 천하처럼 되었는데 남모와 준정을 최고의 원화로 만들다 보니 지소를 알게 되고 왕권이 안정된 이후라면 선덕여왕, 진성여왕도 있듯이 지소가 왕이 될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해서 법흥왕에게 자기가 왕위를 잇겠다고 하는 부분도 넣고 했는데요. 일부로 여성을 강조한 건 아니지만 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다 보니 그 시대를 공부해보면 오히려 신라 시대나 고려 시대 때 여성들이 자유롭고 어머니의 지위가 세습되는 그런 체계였습니다. 물론 계급상의 차이는 있었지만, 여성이 원화도 되고 왕도 되는 여성들이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는 권력들도 가질 수 있었겠다 했고요. 요는 신라 시대에 설요라는 비구니가 있었어요. 시에도 능하고 무술에도 능한 준정의 스승 역할로 하면 되겠다 하고 넣었죠. 당시 여성의 지위를 생각하면 가능하다는 생각이 있었고 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긴 했습니다. 여성이 주인공이라서 좋다기보다는 그런 영화들이 대체로 소수자를 위한 억압을 고발하는 영화라던지 애정을 표현하는 영화였기 때문에 관심을 가졌죠.

 

편: 다양한 인물이 눈에 띄었는데요. 백제에서 온 사신 백아를 사랑하지만, 신분의 다름으로 갈등하는 신라의 공주 남모’, 여자는 왜 왕이 될 수 없냐며 아버지인 왕에게 항의하는 지소’, 신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거사를 도모하는 비구니 스님 ’, 나라의 중흥을 위해 분투하는 '법흥왕', 불교를 조국에 전파하기 위해 순교를 자청한 '이차돈', 백제의 왕자라는 신분을 속이고 신라에 잠입한 '백아', 남모의 호위무사이지만 남모를 연모하는 '유수' 등 소설 전체적으로 여러 계층의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선생님께서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거나 공들여서 창조한 인물은 어떤 인물이 있을까요?

: 사실 모든 인물이 다 애착이 가는데요. 제가 <랑> 이전에 썼던 동화부터 말씀드리면 주제가 소외당하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 그런 거였습니다. <학폭위 열리는 날>도 왕따를 당한 아이들을 직접 취재를 해서 썼었고 <천사를 주셔서 감사해요> 같은 책도 장애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런 취재를 해보면서 굉장히 아픔을 같이 느끼고 그랬거든요. 물론 어떤 작가들을 막론하고 작가는 휴머니즘에 기초를 두고 있을 텐데 저 역시 소외되는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주목한 것 같아요. <랑>을 쓸 때도 모든 인물이 중요했지만 '잠개'라는 인물의 역할을 살리고 싶었어요. 잠개는 노비지만 부처님을 알게 되고 나중에는 준정의 상을 돌벽에 새기는 그런 역할을 하는데요. 잠개라는 인물의 이름이 하루가 걸렸어요. 잠개라는 게 쟁기의 옛말이거든요. 잠개를 통해서 비록 계급적인 신분의 어려움을 다 극복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정체성의 한계는 극복하는 그런 인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준정의 마지막을 지키는 역할을 부여했어요. 이차돈의 경우에는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인물이기 때문에 이차돈이 가지고 있는 신성함을 왜곡하지 않도록 가능하면 이차돈이 있는 기록을 찾아보고 있는 그대로 쓰도록 노력했습니다. 백아는 제가 지은 이름 중에 제일 멋진 거 같아요. 유수는 처음부터 제가 남모를 대신해서 죽는 역할로 해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지은 인물인데 부는 "바람처럼 허무하지만, 왠지 아름다운 얼굴이 떠오르는 그런 이름이 있을까?" 하며 흐르는 물 유수로 정했고 유수를 죽이고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다음날까지 너무너무 마음이 아파서 많은 인물을 죽였지만, 처음에 특히 유수를 죽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가장 제가 신경을 많이 쓴 인물은 준정이겠죠. 가장 아름다웠고 고귀한 인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편: 준정과 이차돈의 사랑, 백아와 남모의 사랑 등 로맨스 요소도 존재하는데 개인적으로 백제의 사신 백아와 신라의 공주 남모의 사랑이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혹로맨스를 부분 중 마음에 드시는 부분이 있는지, 혹은 로맨스를 강조한 소설을 써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 아마 모든 소설가의 최종적인 꿈은 역사에 길이 남을 비극적인 로맨스 소설을 쓰는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저도 이 글을 쓰면서 로맨스를 못 쓰겠다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예전에는 제가 최고로 뽑는 작품이 중학교 1학년 때 읽은 <폭풍의 언덕>이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 조금 파격적으로 <데미지> 같은 연애소설도 써봐야 되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요. 애정씬을 쓰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래도 지소와 이사부의 장면은 그나마 좀 담백했고 남모와 백아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바라보는 유수의 장면은 애틋하게 썼고요. 사실 고백하자면 옥진과 법흥왕의 장면은 제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그 장면이 지금도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이고요. 조금 더 능숙하게 시간이 많이 지나게 되면 꼭 한 번 로맨스를 한번 써볼 생각이 있습니다.

 

편: 이때까지 <랑>과 선생님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선생님이 책을 집필할 때 영향을 미쳤던 존경하는 작가분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 제가 동화를 쓰면서부터 가장 존경했던 분이 권정생 선생님이십니다. <강아지 똥>과 <몽실언니>를 쓰셨던 분인데요. 작가가 작품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그 사람이 일생이 어떠했는가 작가의 일생이 어땠는가를 보게 돼요. 겨울에 안동에 있는 권정생 선생님 생가에 갔었습니다. 창호지 구멍 틈으로 보이는 그곳을 보는 순간 언제나 글 쓸 시간이 없다 해서 게으르고, 만족하지 못하면서 남 탓을 하고 살았는가를 깨달았어요. 그분은 일생 아무런 욕심 없이 오직 글만 쓰면서 모든 책의 인세를 남북한과 분단지역 어린이들을 위해 기금으로 다 남기고 그렇게 돌아가셨죠. 그 후로 가장 존경하는 분이 권정생 선생님이 되었고 저도 오직 글만 쓰고 죽을 때 아무것도 없이 가야 되겠다고 다짐했죠. 여러분도 안동에 가게 된다면 권정생 선생님 생가에 꼭 한번 가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독자들의 질문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독자1:

아동동화를 집필하기도 하셨는데, 아이들을 키울 때의 교육방식은 어떠신지 알고 싶어요.

: 교육방식에 대해서는 제가 사실 엄마로서는 점수가 첫애한테는 거의 40점밖에 안 되고요 둘째는 첫째를 키우면서 '모든 걸 내려놓아야 되겠다'라는 것을 깨달아서 지금은 한 70점 정도에요. 첫애한테는 너무 못했고 동화를 쓰면서 이론적으로 아는 것하고 아이를 키울 때 하고 마음대로 다 못한 것 같아요. 가장 좋은 것은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사랑을 많이주면서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엄마로서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좋은지 답을 드릴 수 없을 만큼 좋은 엄마가 못됩니다. 다만 아이들과의 작가와의 만남에 갔을 때 '내가 우주의 중심이듯이 모든 사람이 우주의 중심이다. 똑같이 공경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가르치는데요. 자신을 사랑하고 남도 사랑할 줄 아는 그런 마음을 길러주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자2:

설을 보면 마지막에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이 있는데 독자들은 그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하는데요.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결정을 내리시는지 궁금합니다.

: 대체로 처음 구성을 잡을 때 주인공 운명은 대체로 정해놓고 가거든요. 준정을 '가장 고귀하게 죽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을 했고요. 살릴지 죽일지는 글의 구성에서 가장 재미있는 방향으로 가야겠죠. 독자들의 입장에선 주인공이 가장 잘됐으면 생각하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비극이 가장 오래 남는다고 생각을 할거에요.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을 비롯해서 세계적인 연애소설들도 거의 비극으로 끝나죠. 아마 많은 작가는 비극을 선호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편: 끝으로, 향후 작가님의 집필 계획이나, 오늘 찾아주신 독자분들께 해주실 말씀이 있으면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 긴 시간 동안 말주변도 없는 사람과 이렇게 마주 앉아서 들어주신다고 감사합니다. 작품은 제가 역사에 잠시 꽂혀서 작년에도 역사 동화를 하나 썼고요. 지금도 하나 쓰고 있고요. 아까 말씀드린 파락호 김용환을 올해 다시 소설로 써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사로 한 두어 작품 더 쓸 계획이고요. 다음에 무슨 작품이 나왔는지 관심 있게 찾아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점점 더 독자들이 문학작품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교요. 주변에서 보면 많이 보이는 책들이 자기계발서더라고요. 자기계발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문학작품을 많이 읽어주시면 하는 바람입니다.

 

흥미로운 소설 속 신라 시대 실제 인물들에 김문주 작가님의 상상력을 더한 <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봤는데요. 역사소설 <랑>을 읽어보신 분들께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었던, 아직 못 읽어보신 분들께는, 소설을 전체적으로 알 수 있었던 맛보기 같은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10점
김문주 지음/산지니

                                           

책 주문하기 >> https://goo.gl/cUJW3o


*산지니 출판사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습니다.

(10% 할인, 3권 이상 주문시 택배비 무료) 

Posted by 비회원

 2018 하반기 문학나눔 도서산지니 책이 무려 6권이나 선정되었습니다.

그 영광의 책들을 만나볼까요!

 

<시인의 공책> (구모룡 지음 | 산지니 | 208쪽 | 13,000원)

시인의 공책 - 10점
구모룡 지음/산지니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된 후 부산을 거점으로 문학 평론가로 활동해온 구모룡의 에세이집 『시인의 공책』이 출간됐다. 시론과 문학비평을 전공한 저자는 부산 문학 평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감성과 윤리』, 『은유를 넘어서』 등 여러 권의 비평서를 출간하며 지방-지역-세계라는 중층적 인식 아래 문학과 문화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활동을 했다.
구모룡 인문 에세이 『시인의 공책』은 저자가 기존에 가졌던 고민에서 조금 더 범위를 넓혀, 인문적 사색과 통찰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문학, 철학, 사회, 장소, 부산’ 등 다양한 주제의 글들은 에세이 형식을 지향하지만 그 이상의 깊이 있는 고뇌와 사유를 보여준다. 저자는 밀도 높은 글들을 통해 때로는 시보다 더 아름다운 문장으로, 때로는 사회를 해부하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의 공명을 흔들어놓는다.

문학 평론가의 눈으로 들여다본 세계를 담은 ::『시인의 공책』(책 소개)

 

<그날이 올 때까지> (김춘복 지음 | 산지니 | 254쪽 | 15,000원)

그날이 올 때까지 - 10점
김춘복 지음/산지니

제3회 경남작가상 수상자인 김춘복의 산문집. 저자는 유년 시절부터 여든을 넘은 원로 작가로 자리매김한 지금까지의 58년 세월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소년기에 전쟁을 겪고 전후 혼란의 시기에 청년으로 지냈던 질곡 많은 개인의 역사이자, 대한민국의 역사를 녹여낸 것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산문집 1부에서는 사라져가고 있는 한국 고유 풍속과 거기에 얽힌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2부에서는 소설가로 등단한 뒤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낸 동료 문학인들에 대한 회고록을 담았다. 3부에서는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에 대한 저자의 직간접적인 체험기가 담겨 있다.
[편집후기] 김춘복 선생님과 최불암 선생님, 그리고 은성주점

 

<나는 장성택입니다> (정광모 지음 | 산지니 | 224쪽 | 14,000원)

나는 장성택입니다 - 10점
정광모 지음/산지니

한국소설 신인상, 부산작가상을 수상한 정광모 작가의 소설집 『나는 장성택입니다』가 출간되었다. 이번 소설집은 총 7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삶과 인간을 향한 깊이 있는 시선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리얼리즘을 표방한 작품에서부터 스릴러와 역사적 인물의 내면을 결합한 작품, 노인 문제를 현대 이슈인 빅데이터와 결합시킨 작품 등 독특한 소재와 설정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선보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표제작 「나는 장성택입니다」는 실존 인물인 ‘장성택’을 주인공으로 하여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놓인 한 인간의 삶과 행복에 대해 자문한다. 이 밖에도 ‘교도소’와 ‘외출’이라는 소재를 통해 관계에 대한 상처와 아픔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는 소설 「외출」, 애완동물의 모습을 몸에 새기는 주인공으로 하여 새길 수 없는 사랑의 쓸쓸함을 이야기하는 「너의 자리」, 치매 걸린 엄마의 과거를 통해 상실의 무게를 되짚어보는 「집으로」 등의 작품은 소재와 상황을 통해 삶의 공허함과 아픔을 녹여내고 있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독특한 상상력과 분위기로 압도하는 소설 세 편도 함께 실려 있다. 「자서전의 끝」은 복수라는 소재를 통해 스릴러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으로 자서전 대필을 위한 만남으로 시작해 시대의 아픔이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을 멍들게 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아픔이 복수라는 이름으로 변하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아오이 츠카사를 위한 자세」는 선정적인 인터넷 방송과 개인의 삶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포르노와 고독이라는 소재를 통해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느껴지는 현대인의 슬픔을 읽을 수 있다. 끝으로 나이가 들어도 죽지 않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 「마론」은 인구 포화 상태로 인해 노인들의 삶을 평가해 격리(지상낙원 혹은 형벌)시키는 미래의 모습을 담고 있다.

북한 2인자였던 장성택의 삶, 픽션으로 그려내다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 (조혜원 지음 | 산지니 | 256쪽 | 15,000원)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 - 10점
조혜원 지음/산지니

서른을 훌쩍 넘겨 서울 생활을 접고, 아무 연고도 없는 외딴 산골에 첫발을 디딘 용감한 여자가 있다. “잘한 선택일까, 과연 여기서 살아낼 수 있을까.” 걱정 반, 설렘 반으로 깊은 산골짜기 언덕 위의 하얀 집에 깃든 지 어느덧 5년. 작은 텃밭과 골골이 이어진 산골짜기를 벗 삼아 놀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글 쓰는 알콩달콩 재미난 이야기를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에 담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철 따라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산살림, 들살림을 맛깔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산골에서 전해온 작은 행복 이야기는 고달픈 일상에 지쳐 아슬아슬 버티며 사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면서, 살아가는 의미를 찬찬히 되돌아보게 한다.

자연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이 일치하는 기쁨을 맛보는 삶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일리치를 읽다> (윤성근 지음 | 산지니 | 256쪽 | 15,000원)

‘이상한나라의헌책방’ 주인장이 이반 일리치의 책을 읽고 자신의 삶과 책방 운영에 적용해본 흥미로운 실천기가 담겨 있다. 더불어 11년 동안 헌책방을 운명하면서 겪은 재미난 에피소드와 일본 헌책방 고수들을 만나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저자는 헌책방을 운영하기 전 IT기업에서 일했는데 일상화된 야근과 개인 시간 없이 오로지 일에 매여 살아야 했다. 과도한 체중 증가와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몸의 균형은 헝클어졌고, 급기야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다. 방황하던 끝에 우연히 만난 이반 일리치의 책들을 읽고 ‘생활’의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멀리 떠나지 않고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 시스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자립할 수 있을지 궁리하며 자신만의 생활 리듬을 만들어 간다. 저자가 행한 이반 일리치의 사상은 일상이 파괴되고 몸의 리듬을 무시한 채 일에 매달려 사는 현대인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된다. ‘삶’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우리의 생활을 점검하고 자립할 수 있게 궁극적인 질문을 던진다.

<출판저널>이 선정한 이달의 책-『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새로운 인생> (송태웅 지음 | 산지니 | 160쪽 | 12,000원)

새로운 인생 - 10점
송태웅 지음/산지니

산지니시인선 열다섯 번째 시집 송태웅 시인의 『새로운 인생』이 출간되었다. 2003년 『바람이 그린 벽화』, 2015년 『파랑 또는 파란』 이어 세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외롭고 쓸쓸하고 그립고 비겁한 내면의 풍경을 과장과 꾸밈이 없이 담백하게 담았다. 시집을 내기까지 오랜 준비 기간과 좌절도 있었지만 시인은 좌초되지 않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다.
송태웅 시인은 담양, 광주, 제주, 순천을 돌아 지리산 구례에 터를 잡았다. 전원생활이라고 해서 마냥 편하지 않다.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혼자 사는 외로움과 자연이 준 고독함 속에서 삶의 무게를 오롯이 견뎌야 했다. 그 속에서 시 쓰는 일도 쉽지 않다. 「시인의 말」에서 “언제부터인지 시가 괴로웠다 / 그건 네 옷이 아니니 벗어버리라고 / 연기암 오르는 길의 시누대들이 / 죽비처럼 등짝을 때려왔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시인은 삶의 무게에 주저앉지 않고 다시 “지금부터 살기 위하여” 시를 쓴다. 시인은 고요에 잡아먹히지 않고 느긋해졌다가 팽팽해졌다가를 반복하며 과거에 짊어진 인생의 상처를 돌아보면서 묵묵히 나아간다.

송태웅 시인, ‘떠돎과 머묾의 고독’ 토로한 <새로운 인생> 펴내

 

 -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은 국내에서 발간되는 우수문학도서를 선정·보급함으로써 문학 출판시장 진흥 및 창작 여건 활성화를 견인하고, 다양한 문학 활성화 프로그램의 연계 확산을 통해 국민의 문학 향유·체험 기회 확대 및 삶의 질을 제고하고자 합니다.

- 사업연혁

  • 2005년 10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복권기금으로 시작

  • 2009~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민간보조사업으로 운영

  • 2014~2017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세종도서로 통합 운영

  • 2018년~문학 진흥 특화를 위해 세종도서에서 문학 부문을 분리하여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운영

       

      2018 문학나눔 도서 선정으로 산지니 도서가 날개를 달기 바랍니다. :)

       


    Posted by 비회원

     

    2019년 2월  산지니소식 70호

     

    <홍콩산책> 북투어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후 많은 독자분들이 책을 사랑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텀블벅 펀딩도 성공했습니다. 목표금액을 최소한으로 잡았지만 달성되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마음을 졸였습니다. 다행히 달성되었구요. 조금씩 힘을 보태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출판시장이 위축되고 책 판매가 점점 힘이 들지만, 독자분들이 보내주신 응원에 새해를, 봄을 활기차게 열어보겠습니다.
    신간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정상천 | 316쪽 | 16,000원 | 2019년 2월 28일 
    외교관이자 언론인이자 소설가였던 서영해는 일생을 조선 독립운동에 바쳤고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양대 외교 축이었지만, 안타깝게 역사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하고 가족과 친척 관계자를 만나 서영해의 삶을 발굴하고 정리했다.
     
    동아시아 엑스포의 역사
    하세봉 | 480쪽 | 35,000원 | 2019년 2월 11일 
    1851년 런던 박람회부터 2012년 여수박람회까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박람회의 변천사를 다룬다. 문명과 과학의 박람회 시대, 오락과 소비주의의 박람회 시대, 이데올로기의 박람회 시대, 환경생태의 박람회 시대로 나눠 박람회의 역사를 정리했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이병철 산문집 | 214쪽 | 14,000원 | 2019년 01월 14일 
    그렇다. 세상은 멈추고, 때로 후퇴하고, 또 때로는 침몰하지만 우리는 움직이고, 나아가고, 가라앉지 않았다. 시인은 이 책에서 세상살이의 희로애락을 따뜻한 인간애와 유머로 유쾌하게 풀어낸다.
    *출간예정
    CEO사회
    피터 블룸, 칼 로즈|장진영 옮김|304쪽|18,000원 | 2019년 02월 25일 
    21세기에 접어들어 마크 저커버그, 스티브 잡스 등 스타 CEO가 탄생했고, 그들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해졌다. CEO에 중독된 이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일을 겪고 있을까? 책은 CEO사회의 유래부터 기업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사랑 등 우리 삶 곳곳에 CEO가 미치는 영향까지 속속 파헤친다.
    *출간예정
    미국 영화비평의 혁명가들 
    데이비드 보드웰|옥미나 옮김, 허문영 감수|276쪽|20,000원 | 2019년 02월 28일 
    이 책은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의 영화연구전공 명예교수 데이비드 보드웰이 연재한 1940년대 영화평론가 시리즈를 발전시켜 출간되었다. 그가 랩소드라 명명한 4명의 평론가를 소개하며, 그들의 작업을 통해 1940년대 미국 영화 문화의 가능성과 문제점을 보여준다. 
    *출간예정
    마살라
    서성란 | 240쪽 | 15,000원 | 2019년 03월 
    서성란 장편소설. 미완성 소설을 남기고 사라진 소설가 이설. 그녀를 찾아 흙먼지와 소음과 향신료 냄새로 가득한 인도의 골목을 헤맨다. 마살라 향기가 가득한 그곳에서 이설의 소설 속 인물들과 기이한 만남이 시작된다. 
    <홍콩산책> 북투어 후기
     
    담당 편집자의 실감나고 생생한 북투어 일기:)

    인문 여행서 <홍콩 산책>과 함께 떠난 홍콩 북투어! 
    북투어에서 홍콩을 대표하는 20가지 키워드를 
    가거나, 먹거나, 타거나, 체험하는 형태로 모두 만나보았습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출간기념



     
     산지니x공간 행사
     
     
     산지니 소식
    사진을 클릭하시면 관련 포스팅으로 이동합니다.

    "어머님, 이 책은 읽으셔야 합니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이병철 작가의 귀여운 작품

     
     
     

    한 사람을 들여다본 시간

    <방마다 문이 열리고> 최시은 작가 인터뷰

     

     





    산지니 식구의 서점 탐방

    <취미는 독서>

    해리단길 속의 작은 공간이 주는 따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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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동글동글봄

     

    2019년 1월  산지니소식 69호


    "산지니북투어 시즌2 홍콩야행단 출발합니다"


    산지니가 야심차게 준비한 2019년 산지니북투어 두번째 지역은 홍콩입니다.
    1월 17일 목요일부터 20일 일요일까지,
    3박 4일동안 <홍콩산책>의 류영하 교수와 홍콩야행단이
    홍콩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보고 올 예정입니다.


    화려한 아경, 쇼핑의 도시로만 알았던 홍콩이었는데요
    전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큰 도시라고 합니다.

    우리가 몰랐던 홍콩을 깊숙히 만나고 오겠습니다.

    신간
    홍콩산책
    류영하 지음 | 224쪽 | 15,000원 | 2019년 1월 15일 
    홍콩의 정체성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온 류영하 교수의 인문 여행 에세이집. 30년간 홍콩을 연구하며, 살며, 여행하며 쓴 글들을 담았다. 홍콩에 대한 전문 지식을 집대성했지만 쉽게 풀어 썼다.

    볼리비아 우표
    강이라 소설집 | 256쪽 | 15,000원 | 2018년 12월 28일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가족의 관계를 
    주요한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강이라 작가는 차마 말할 수 없는 
    가족 간의 상처와 아픔을 작품에서 다룬다.


    김문주 장편소설 | 342쪽 | 16,000원 | 2019년 1월 31일 
    남성들의 집단으로만 알고 있었던 ‘화랑’의 기원을 두 명의 여성 ‘원화’에서 찾아보는 역사 장편소설이다. 작가는『삼국유사』, 『삼국사기』 속 ‘원화’에 대한 짧은 기록에 상상력을 더해 주체적이고 당당했던 신라 시대 여성의 삶을 그린다.
     
    *출간예정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이병철 산문집 | 214쪽 | 14,000원 | 2019년 01월 14일 
    그렇다. 세상은 멈추고, 때로 후퇴하고, 
    또 때로는 침몰하지만 우리는 움직이고, 
    나아가고, 가라앉지 않았다. 시인은 
    책은 세상살이의 희로애락을 
    따뜻한 인간애와 유머로 유쾌하게 담았다.
    <홍콩산책> 북투어 일정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텀블벅 오픈
     

            알려지지 않은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발굴 
            국내 최초 서영해의 삶을 다룬 책 전격 출간

            *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MBC방송 확정
    • 초판 도서와 선물을 드립니다. 텀블벅 프로젝트를 밀어주세요:)
    • 프로젝트: 2019.1.1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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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동글동글봄

    이병철 산문집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가 <생활성서> 소금항아리에 실렸습니다. <생활성서>는 1983년, 한국 천주교 선교 200주년을 기념하여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가 설립한 출판사 생활성서사에서 낸 월간지입니다.

     

     

     

    쫄면과 짬뽕라면이 불어터져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찾아오느라 고생했을 텐데, 괜찮다"며 웃어 보였다. 미안함과 고마움, 안쓰러움이 뒤섞인 얼굴로 눅눅한 계단을 내려왔다. 몇 시간 후 그릇을 찾으러 갔을 때, 나는 울었다. 깨끗하게 설거지된 그릇이 계단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불편을 감수하는 희생, 약자에 대한 배려, 실수를 용서하는 관용은 더불어 삶을 가능하게 하고, 인간의 위엄은 거기서 비롯된다.

    -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 너그러운 사회를 위해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 10점
    이병철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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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비회원

     

    ▲ 동아시아 엑스포의 역사 = 하세봉 지음.

    1851년 런던 세계박람회부터 2012년 여수 엑스포까지 박람회 역사를 개괄적으로 살피고, 20세기 초반 동아시아 박람회 특징을 분석했다.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인 저자는 "박람회는 근대성의 거대한 호수였다"며 "진보와 발전부터 오락과 축제에 이르는 모든 것은 박람회로 와서 모이고, 사회 전체로 확대돼 나갔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어 "20세기 전반기 동아시아 박람회가 지닌 공통된 목적 중 하나는 근대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었다"며 박람회가 '감성공학'에 의해 기획된 메가 이벤트였다고 강조한다.

    산지니. 480쪽. 3만5천원.

     

    연합뉴스 psh59@yna.co.kr

    기사원문바로가기

     

     

    동아시아 엑스포의 역사 - 10점
    하세봉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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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비회원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2019년 우리사회 곳곳에서 독립유공자에 대한 발굴과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독립운동에 대한 일반적 생각은 혹독한 추위 속에서 만주벌판을 넘나들며 항일투쟁을 벌이거나 일제의 수뇌부를 향해 총이나 폭탄을 던지는 모습이 먼저 연상되곤 한다.

    정상천이 지은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는 이런 인식을 바꿔주고 있다. 독립운동의 길은 너무나 다양하고, 각계각층에서 수많은 이들이 보이지 않게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서영해라는 이름도 마찬가지다. 부산에서 태어난 서영해는 17세 때 3.1독립운동에 참가했고 수배자 신분으로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막내가 됐다. 이후 임시정부의 권유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어렵게 학업을 마친다. 임시정부 외무부의 지시로 고려통신사를 설립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전 유럽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서영해의 활동범위는 프랑스에 국한되지 않고 벨기에, 제네바, 스페인 등 유럽 전역과 중동의 이집트,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까지 이른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이 같은 기록을 직접 발굴하고 가족과 친척들까지 만나가며 재조명했다. 유고 글과 프랑스 언론 기고문, 현지 인터뷰 등을 번역해 싣기도 했다. 서영해의 삶을 통해 독립운동의 새로운 면면을 보게 되는 셈이다. 재조명되고 있는 서영해의 삶도 남다르지만 저자의 삶도 흥미롭다. 프랑스 파리 1대학에서 역사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상공부와 통상산업부 등을 거쳐 외교통상부에서 15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한국과 프랑스 관계 연구에 매진했고 현재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에 근무 중이다. 역사에 대한 열정과 관심으로 꾸준히 역사서를 공부하고 집필활동을 해 '일요일의 역사가'로 불리기도 한다.

    서영해의 열정적 삶이 저자의 눈에 들어온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 듯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일신문 정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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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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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비회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정상천 지음/산지니/316쪽/1만 6000원

    빛바랜 흑백사진, 서양 소년들 사이로 익숙한 외모의 동양 소년이 앉아 있다. 다부진 입매가 돋보이는 소년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의 권유로 프랑스로 유학 간 서영해(원 안)다. 우리 중고등학교에 해당되는 보베시의 ‘리세’에서 파란 눈의 축구부 급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엄혹했던 시절, 일제에 저항해 어떤 이는 총과 폭탄을 들었지만 어떤 이는 펜을 들고 낯선 땅에 갔다. 외교관이자 언론인, 소설가였던 서영해는 일생을 서방세계에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로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양대 외교 축이었지만, 안타깝게 역사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책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는 상하이 임시정부의 막내로 활동하다 1920년 프랑스로 유학 간 청년 서영해를 그린다. 그는 임정 외무부의 지시로 고려통신사를 설립하고,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전 유럽에 알렸다. 불어로 장편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과 민담집 ‘거울, 불행의 원인’ 등도 집필,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유럽에 알리려고 노력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여인 엘리자와 결혼해 아들 스테판을 낳았고, 스테판의 딸인 수지 왕이 할아버지의 첫 전기에 추천사를 썼다. “할아버지는 흐르는 물에 과감히 역행해서 헤엄치는, 그리고 지칠 줄 모르고 열심히 일하는 대단한 이상주의자였고, 평화수호자였으며, 반파시스트이자 섬세한 예술적 감각을 지닌 애국자였을 것이다.” 

    서울신문 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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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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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비회원

    독립운동가 서영해가 파리 보베시 리쎄 고등중학교 졸업반 때의 모습. 앞줄 오른쪽 두 번째가 서영해.

     

     

    외교관이자 언론인이자 소설가였던 서영해는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다. 일생을 조선독립에 바쳤고 서방 세계에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힘썼다. '미국에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할 정도다. 서영해는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양대축 이었지만 안타깝게 역사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정부수립시기까지 세계사와 현대사의 굴곡이 서영해의 삶에 투영돼 있다. 또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지은이는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하고 가족과 친지를 만나 서영해의 삶을 짚어간다.

     

    서영해는 1902년 부산에서 '서약방'을 운영하는 한의사 서석주의 8남 2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적부터 총명해 '서약방의 백미'로 불렸다. 세살에 서당에 다녔고 네살 때 천자문을 떼어 천재라는 말을 들었다. 보통학교, 화교학교를 마친 그는 일제치하에 억압받던 당시 우리 나라의 암담한 현실과 비록 경제적으로는 부유했지만 평민의 신분이었던 자신의 집안 내력에 뭔가 탈출구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3·1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상해로 망명하게 된다. 이런 활동은 사회적, 민족적 현실에 대해 일찍 눈을 떴기 때문이다. 프랑스 유학 전까지 1년 6개월간 상해에 머물렀다. 상해 임시정부에 모여든 독립운동가들 중에 나이도 몸집도 제일 작아 '임정의 막내'로 불렸다. "부모님 걱정하신다. 돌아가거라." 임정 어르신들의 염려에도 서영해의 독립에 대한 뜻을 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임정의 잔심부름을 하면서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1919년 4월 임정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돼 1920년 북경으로 가서 의열단, 고려공산당, 국민대표회의 등 활동에 전념했다.

     

    임정은 국제외교무대에서 공용어인 불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서영해를 프랑스로 유학을 보내게 된다. 서영해는 파리 북쪽 보베시 각급 학교에 입학해 초·중·고 과정을 6년 만에 마쳤다.그는 다른 유학생들과 구별되는 점은 그가 단순한 유학만 한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 주불대표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에 있는 유학생들과 임시정부 간의 공식적인 연결통로였다. 주불유학생들은 그를 통해 임정의 소식을 듣고 그의 유학생활의 현황을 임정에 보고하고 그들을 결집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서영해는 프랑스 유학 4년째 되던 해에 퇴학을 당할 뻔했던 일화가 있다. 수업시간에 역사 선생이 "인구가 600만명인 조선민족은 매우 게을러서 조상이 전해준 문화유산까지 지금은 형체를 찾아볼 수 없다"는 굴욕적 내용의 강의를 했다. 이에 서영해는 책을 집어 던지며 "조선민족은 2천만이고 4천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는 교육은 미개한 일이다"고 반박했던 것.

     

    조선독립을 위한 기고를 통해 프랑스 언론과 인연을 맺은 그는 언론이야말로 해외에서 독립운동하기에 매우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체득하게 된다. 그래서 1929년 파리고등언론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임정의 지시로 고려통신사를 설립하게 된다. 통신사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전 유럽에 알리면서 일본에 의해 왜곡된 한국 이미지를 바로잡고 참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그는 파리를 중심으로 영국, 스페인, 벨기에, 제네바, 체코 등 유럽뿐만 아니라 중동과 멀리 아프리카 에티오피아까지 돌아다니며 강연과 신문 기고를 이어갔다. 서영해는 1936년 주프랑스특파원으로 임명되고 1940년 프랑스가 독일군 수중에 들어가자 나치를 피해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에 3여 년간 참여하기도 했다.

     

    이승만과 서영해는 한때 매우 가까운 사이였지만 나중에 독립운동에 대한 노선차이와 개인적 성격차이로 멀어지게 됐다. 서영해는 광복후 귀국해보니 국내정세는 난장판이었다. 이승만은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을 추진하고 김구는 남북통일정부 수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일에 협력하지 않겠다." 김구를 추종하던 서영해는 광복 후 국내 정치에 환멸을 느껴 프랑스로 재출국하게 된다. 서영해는 1956년 상해에서 인성학교에 근무한 기록을 마지막으로 행방이 묘연하다. 중국에서 병사했다는 설, 제3국으로 갔다는 설, 북한으로 가서 살다 사망했다는 설 등 다양한 추측이 있다. 316쪽 1만6천원.

     
     


    매일신문 김동석 기자
    기사원문바로가기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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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비회원

    안녕하세요. Y편집자입니다. 

    이번주는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텀블벅 정리 기간이라 은근 바빴네요. 네! 텀블벅은 내일 발송될 예정입니다. 두근두근 기대해주세요.


    텀블벅 준비하기 전에 한 번 해봤던 분이 발송하는 일이 장난 아니더라 해서 정말 그럴까 했는데요. 목표금액은 달성했지만 발송 도서가 아주 많은 건 아니라서 무난하게 진행했지만 후원자가 많아서 발송해야 할 도서가 많다면 정말 전 직원이 동원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래도 그런 날이 많았으면 하는 이 마음은 뭐죠ㅎㅎ


    오늘 아침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쓴 저자 분과 통화를 했습니다. 텀블벅에 보낼 사인을 다 하셨다고 하시네요. 선생님 화이팅입니다:)


    정말 매일매일 저자와 통화와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 같아요. 아침에 출근을 알리며 알림처럼 울리는 책 소식. 반갑고 또 즐거운 아니겠어요. 책이 나온 후 아무도 기사를 써주지 않고 서점에 세일즈 포인트가 올라가지 않는다면 편집자로서 기운이 쭉쭉 빠지지요. 


    오늘은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책 작업을 하면서 

    언론에 조명되지 않은 서영해의 삶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서영해는 파리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해방 이후에 고국에 돌아와 서울에 살면서 대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 불어를 가르쳤는데요. 일본인이 만들었던 불어교과서는 던져버리고, 본인이 직접 타이프를 직접 쳐서『초급 불어』라는 불어책을 만들어서 강의했다고 합니다. 


    불어에 있는 특유의 기호표시는 만년필로 직접 표기했다고 합니다. 우리만의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서영해 선생의 굳은 의지와 집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서문에는 "일본인이 만든 교과서를 배제하고 우리 손으로 만든 교과서를 쓰는 것은 그 만큼 우리 독립에 대한 하나를 이루는 것"이러고 적혀 있네요. 가슴이 뭉클해지는 대목입니다.



    [서영해가 직접 작성한 초급불어, 169쪽]


    서영해가 고국에 돌아오니 자신을 파리에서 일본 대사관에 밀고하며 일본인이라고 자처했던 사람들이 공공연히 서울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해방 이후 친일을 빠르게 청산하지 못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때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의 업적이 아직도 후대에 전해지고 있지요. 


    "일본말은 입에도 담지 말라"고 했던 서영해 선생은 어지러운 국내 정세와 혼탁한 정치에 환멸을 느꼈다고 합니다. 다함께 완전체로 완전한 독립을 하기 바쁜데 이념과 세력 다툼으로 정치인들은 바빴으니까요.


    한때는 이승만 박사와 친했지만 정치적 이견 차이로 결별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김구와 친밀해졌습니다. 서영해의 책과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 국립중앙도서관 영해문고에는『백범일지』에 김구 선생의 친필 서명이 들어 있는 책이 있습니다.


    『백범일지』원본이라고 하네요. 거기에 " 서영해 지제 혜존, 무자원단 백범 김구"

    "뜻을 같이하는 동생 서영해에게 이 책을 드리니 간직해 달라, 1948년 새해 아침"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백범일지 친필서명(백범이 서영해에게), 171쪽]



    국립중앙도서관 영해문고에 이 책들이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습니다. 저자가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고 정리한 내용이 책에 정성스럽게 담겨 있습니다.


    역사를 되돌릴 수 없지만, 그때 남한단독정부가 설립되지 않고 통일된 하나의 정부가 세워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랬다면 서영해는 다시 프랑스로 떠나려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요.

    역사는 만약이 존재하지 않고, 우리는 과거를 공부하고 역사를 읽으면서 현재를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가죠. 서영해의 삶에서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까지 한국의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습니다. 


    얼핏 책에 한자가 많다고 어렵게 느낄 수 있지만, 전혀 어렵지 않고 재밌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의 책을 고르신다면,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

     

    산지니출판사에서 인문 여행서 <홍콩 산책>과 함께 떠난 홍콩 북투어!

    북투어에서는 홍콩을 대표하는 20가지 키워드

    가거나, 먹거나, 타거나, 체험하는 형태로 모두 만나보았습니다.

     

    홍콩의 핵심 관광지는 가보고 싶지만, 그렇다고 남들이 가는 곳만 가는

    뻔한 여행은 싫으신 분들! 이 일정으로 여행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 )

     

    ***

     

     

    1일차 일정 ★

     

    공항 > 이층버스 (40분) > 침사추이 (숙소) > 도보 (5분) > 청킹맨션 > 지하철 (10분) > 퍼시픽플레이스 > 도보 (10분) > 홍콩공원 / 홍콩다구박물관 > 도보 (15분) > 센트럴역 > 도보 (10분) > 피크트램 정류장 > 피크트램 > 더피크 > 더피크룩아웃 > 피크트램 > 피크트램 정류장 > 지하철 (10분) > 침사추이(숙소)

     

     

     

    >> 홍콩 산책 1일차 ① - 대구공항, 옥토퍼스카드, 침사추이, Holiday in Golden Mile, 청킹맨션, 인도카레, 퍼시픽플레이스, 홍콩공원, 홍콩다구박물관, 애드미럴티, 홍콩상하이은행 보고 오기

     

     

    낮 동안 바쁘게 움직인 북투어단은, 밤에는 산 정상에서 조용히 야경을 보기로 했어요.

    홍콩의 야경을 한눈에 감상하기에 좋은 곳인 타이핑 산 정상을 홍콩 사람들은 '피크'라고 부르는데요.

    피크에 올라가기 위해선 버스, 택시 등 다른 교통수단을 타도 되지만

    저희 북투어단은 홍콩에 온 여행객이라면 꼭 타야 할 '피크 트램'을 선택했습니다. :)

     

     

     

    ▲ 피크트램 (출처: 셔터스톡)

     

     

    >> 빅토리아 피크 / 피크트램

     

    홍콩의 야경은 어디서 보는 것이 좋을까? ‘빅토리아 피크’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이 하늘에 가득한 별의 모습과 같다 하여 홍콩 8경의 첫째로 손꼽힌다. 센트럴의 남쪽 타이핑 산 정상에 있는 홍콩 전경 감상의 대표 코스 빅토리아 피크, 그 정상을 이어 펼쳐지는 루가드 로드는 홍콩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홍콩섬과 침사추이의 전경, 홍콩의 스카이라인과 바다를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낮에는 푸른 하늘과 선명한 경관을 보기 위해, 그리고 밤에는 반짝이는 홍콩의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하루에도 수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찾고 있다. 빅토리아 피크의 명물, 1888년 완공된 피크트램(Peak Tram)은 빅토리아 피크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며 약 45도 몸이 기울여진 상태로 약 7분이면 정상까지 올라간다. 긴 기간 동안 무사고를 자랑하는 안전한 교통수단이기도 한 피크트램은 올라가면서 보는 창밖의 풍경에 감탄이 나오며, 저녁 넘어 올라가며 보는 야경도 색다른 경험을 만들어준다.

    _「야경의 이유, 심포니 오브 라이트」 중에서

     

     

    ▲ 피크트램 정류장 앞, 길게 줄선 사람들

     

    인기가 많아 피크트램 정류장 앞은 항상 관광객들로 붐비는 모습을 보실 수 있어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대기 시간이 어마어마한데요, 시간을 조금이나마 아끼고 싶으신 분들께는 패스트티켓을 권해드리고 싶어요.
    패스트티켓을 판매하는 회사가 다양한데, 저희는 가장 저렴한 클룩(Klook)을 통해 구매했어요.

     

    피크트램을 타기 위해 홍콩상하이은행과 멀지 않은 센트럴역 K 출구에서 클룩 직원과 미팅을 가졌는데요.

    K 출구에서 피크트램 입구까지 10분 정도 다 함께 걸어갔답니다.

     

    그리고 패스트티켓이긴 하지만 피크트램 정류장 앞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조금 (약 1시간 정도^^; 그냥 티켓으로 입장하시려면 더 기다리셔야 해요...) 기다려야 했어요.

    그래서 각오하시고! 편한 신발과 복장으로 가시는 것이 좋아요.

     

    K 출구에서 피크 트램 걸어가는 길이 살짝 위험하고 뭔가 정신없긴 했지만,

    일반 티켓줄에서 기다리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보니 잘 신청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Klook을 이용하실 분들은 이 링크를 통해서 예약하실 수 있어요. >> 바로 가기

     

    비교적 짧은(?) 기다림 끝에!
    그리고 피크트램을 타고 출발했어요!
    피크트램을 타실 땐 오른쪽에 앉는 걸 추천드려요.
    올라가면서 홍콩의 멋진 풍경을 보실 수 있거든요.

     

    피크트램을 타고 빅토리아 산 정상에 도착했다면, 야경을 즐길 타이밍!
    피크트램 정류장 옥상에 있는 스카이테라스에서 많이들 보시는데요. 그곳에서 보는 야경도 멋지지만, 저희는 류영하 교수님이 추천하신 조용한 정자에서 야경을 봤답니다.

     

     

    류영하 교수님 추천 장소 :) 정자에서 본 홍콩 야경

     

     

    ▲ <홍콩 산책>도 살포시 함께 ♡

     

     

    그리고 한 가지 말씀드릴 사항이, 트램을 타고 올라가면 산꼭대기라 정말 춥답니다.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이죠ㅠ_ㅠ

    여러분도 겉옷과 목도리 등 단단히 준비하시고 가는 게 좋아요.

     

    보고 나서 춥고 배고파졌는데요. 피크 트램 주변에 분위기 있는 식당에 가고 싶다면, ‘더 피크 룩아웃’을 추천드려요!
    역사가 오래된 곳으로, 가격대는 조금 있지만 타이 음식, 이태리 음식 등을 좋은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어요.

     

     

    ▲ 분위기 있는 피크 맛집, 더 피크 룩아웃

     

    ▲ 피크에서 와인 한 잔 어떠세요? 

     

     

    >> 더 피크 룩아웃


    홍콩섬에서 제일 높은 552미터 정상에는 유명한 식당이 있다. 당시 산 정상에 사는 영국고관들은 가마꾼들의 가마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이 식당은 1901년에 가마꾼들의 휴식처로 세워졌다고 한다. 수많은 영화에 등장한 고풍스러운 식당 ‘더 피크 룩아웃(太平山餐廳)'에서 맛있는 볶음밥에 시원한 아이스 레몬티 한 잔 하고 트레킹에 나서기를 바란다.

     

    _「홍콩 자본주의의 실체, 이층버스」 중에서

     

    식사를 다 하고 내려가는 피크트램을 타기 위해 또 기다렸답니다. (피크트램을 향한 끝 없는 기다림...)
    여차여차 숙소로 돌아오니 12시가 넘은 시간^^; 

    첫날부터 여기저기 힘차게 다닌 1일 차 일정은 그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홍콩 산책 도시 인문 여행

     

    류영하 지음 │ 224쪽 │ 2019년 1월 15일 출간 

     

    홍콩의 정체성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온 류영하 교수의 인문 여행 에세이집. 30년간 홍콩을 연구하며, 살며, 여행하며 쓴 글들을 담았다. 홍콩에 대한 전문 지식을 집대성했지만 쉽게 풀어 썼다. 슬렁슬렁 비치는 홍콩의 불빛 사이를 느긋한 걸음으로 걸으며 관찰한 저자의 글에는, 홍콩에 대한 내공 깊은 시선이 뾰족하게 드러난다. 그의 시선을 따라, 함께 홍콩 인문 여행을 떠나보자. 홍콩을 꿈꾸는, 홍콩을 여행하는, 홍콩을 추억하는 당신과 함께 홍콩 산책.


     

     

     

    *이 일정은 류영하 교수의 인문 여행 에세이집

    <홍콩 산책> 속 장소와 정보를 참고하였습니다.

    더 깊은 내용은 <홍콩 산책>에서 보실 수 있어요 :)

     

      

    홍콩 산책 - 10점
    류영하 지음/산지니

     

     

     

    >> 이 글은 '홍콩 산책 2일차 ① - 홍콩역사박물관, 미도카페'이어집니다


     

     

    3박 4일 전체 일정 바로보기 >> Click!

     

    Posted by 실버_

    소설 ‘대한독립만세’ ‘독립운동가…’ ‘기미년 태극기 특공대’
    인문·연구서 ‘만세열전’ ‘파리의 독립운동가…’ 등 숨은 주역 조명
    광주 만세운동 다룬 소설 ‘피로 새겨진 이름, 윤혈녀’ 눈길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독립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들의 숭고한 뜻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독립운동을 다룬 청소년소설과 다양한 인문서·연구서가 발간돼 눈길을 끈다.

    출판사 서해문집은 청소년문학 여섯 번째 시리즈로, 청소년소설 작가 다섯 명의 작품이 담긴 소설집 ‘대한 독립 만세’를 출간했다. 1919년 3월 1일부터 5월까지 전국에서 일어난 3·1운동 이야기를 소설 형태로 엮었다. 정명섭, 신여랑, 이상권, 박경희, 윤혜숙 작가가 의기투합해 발간한 결과물이다.

    그 가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광주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다룬 정명섭 작가의 ‘피로 새겨진 이름, 윤혈녀’이다.

    정 작가는 당시 수피아여학교와 숭일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주도해 3월 초부터 4월 말까지 이어진 역사의 현장을 담았다. 소설은 실존 인물인 수피아여학교 학생 윤형숙과 최수향, 교사인 박애순과 진신애를 중심으로 만세운동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소설의 주인공인 윤형숙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헌병이 휘두른 칼에 한쪽 팔을 잃고 ‘혈녀’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야기는 당시 일제의 탄압이 얼마나 잔인했는지를 보여준다.

    “순사 보조원에게 끌려 나가던 윤형숙이 외쳤다. “조선 독립 만세! 일본은 물러나라!” 고개를 절레절래 저은 일본 순사는 자리에 앉아서 심문 보고서를 작성했다.”(‘피로 새겨진 이름, 윤혈녀’ 중)

    이밖에 책에는 제주도 조천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을 다룬 ‘열다섯, 홍련’(신여랑), 경기도 용인의 만세운동인 ‘봄바람 스치는 남바위를 쓰고’(이상권), 통영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통영의 꽃, 국희’(박경희), 강원도 홍천의 항일운동 이야기 ‘끝나지 않는 아침’(윤혜숙)의 소설이 수록돼 있다.

    ‘독립운동가가 된 고딩’(초록서재)은 이진미 작가가 쓴 광주학생독립운동을 모티브로 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태웅이는 어느 날 체험학습이라는 장치를 통해 일제 강점기 경성 한복판으로 가게 된다. 과거 속으로 뛰어 들어가 당대 사람들과 함께 그 시대를 몸으로 체험하며 당시 열일곱, 열여덟 살 학생들이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던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실제 의열단 단원이었던 김익상 의사의 이야기를 차용해 현장감과 몰입도를 높였다.

    이규희가 쓴 ‘기미년 태극기 특공대’(꿈터)는 1919년 3월 1일 수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뛰쳐나왔을 때 과연 그 태극기가 어디에서 왔을까 라는 의문이 단초가 됐다. 일본 순사들이 태극기를 빼앗아가는 것에 분노한 도철이는 할아버지와 태극기 목판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실행한다는 내용이다.

    한편 소설이 아닌 인문서와 연구서로 만세운동을 다각도로 들여다본 책들도 있다.

    3·1운동의 기획자들, 전달자들, 실행자들을 토대로 엮어낸 조한성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의 ‘만세열전’(생각정원)은 숨은 주역들을 조명한다. 저자는 역사책에 한 줄도 기록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보통 영웅들’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특히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지방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던 보성사 사무원 인종익과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을 민가에 배포하고 만세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열아홉 살 나이에 징역 1년을 선고받은 배제고보 2학년 김동혁은 책에서 처음 다루어진 인물이다.

    “이 책은 3·1운동 시기 독립과 자유를 위해 거침없이 자신의 삶을 던졌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중략) 그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소중한 삶을 희생했지만 역사책에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의 첫 번째 목표는 그들의 삶을 역사로 복원하는 것이다.”

    전 독립기념관장인 김삼웅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가 펴낸 ‘3·1 혁명과 임시정부’(두레)는 왜 3·1운동이 아니고 3·1 혁명인지를 주장한다.

    “국권을 빼앗긴 뒤 한민족은 해방투쟁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전략·전술을 동원하여 국권회복투쟁을 전개했다. 그것이 3·1 혁명으로 집약되면서 민족적 에너지가 폭발했다. 국치 9년만에 폭발한 3·1 혁명은 일제 식민통치를 거부한 민족의 자주독립선언임과 더불어 봉건군주체제를 종식하고 민주공화주의를 지향하는 근대의 횃불이었다.”

    유럽 무대에서 외교로 조선독립을 알렸던 독립운동가를 조명한 책도 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정상천 저자의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산지니)에는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유럽 외교관이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렸던 서영해의 삶이 녹아 있다.

     

     

    광주일보 박성천 기자

    기사원문바로가기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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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비회원

    마르셀로 무스토(Marcello Musto) 초청 강연회


    맑스엥겔스전집(MEGA) 연구의 권위자 마르셀로 무스토의 초청 강연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부산, 진주, 서울 세 곳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서울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과 함께합니다. 날짜는 3월 18일(월) 오후 4시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입니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링크를 클릭하시면 자세한 내용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마르셀로 무스토(42세)는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의 신세대 맑스주의 연구자로서 현재 캐나다 요크대학 부교수입니다. 칼 맑스의 사상, 맑스주의, 사회사상사, 소외 이론, 공황 등에 관한 그의 관심은 100권을 넘는 분량의 저서, 기사 등으로 표현되어, 16개 국 언어로 번역된 바 있습니다.

    특히 그의 저서 [칼 맑스의 Grundrisse-정치경제학비판의 기초, 이후 150년]은 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산지니에서는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1881-1883년의 지적 여정>(2018, 산지니)을 이 번역 출간했습니다.


    마르셀로 무스토를 만나,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마크르스 연구자들에게, 마르크스를 알고 싶은 독자에게 소중한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놓치지 마세요.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 한국 방한 일정 안내

    3월 13일(수) 진주: 경상대학교 사회과학 연구소 및 SSK연구팀

    3월 14일(목) 부산: 오후 3시, 동아대학교 '맑스 엥겔스 연구소'와 부산 '산지니'


    [책과 저자 관련 링크]


  • 2018.06.18 '혁명 투사' 이면에 숨은 따뜻한 통찰 
  • 2018.06.07 마르크스의 노년이 궁금하신가요?-『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책소개)
  • 2018.05.10 [마르크스 200주년 기념 인터뷰] 카를 마르크스를 읽자! by. 마르셀로 무스토
  • 2018.05.09 2018년 5월 산지니 소식 61호
  • 2018.05.02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출간 예정 
  • 2018.05.02 2018년 탄생 200주년을 맞아 국내에서 재조명되는 마르크스
  • 2018.04.24 축적되는 지식의 깊이, 교수신문이 기대하는 올해의 책



  •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 10점
    마르셀로 무스토 지음, 강성훈.문혜림 옮김/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이번 달 가장 많이 쓴 단어가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가 아닐까 싶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쓰고 또 확인하고 듣고 읽으니까요.


    제가 열심히 쓴 만큼 독자분들에게도 많이 닿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준비한 저자와의 만남 장소는 교보문고광화문점입니다.


    이날 서영해 선생의 삶과 책 집필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속으로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94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정상천 작가]

    일시: 2019년 2월 27일(수) 저녁 7시

    장소: 교보문고 광화문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외교ㆍ저술활동으로 독립운동
    일대기 ‘파리…’ 출간 이어
    90년前 불어로 쓴 소설 번역

     

    1930년 2월 이집트 월간지 ‘이집트 여인’에 실린

    서영해의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Autour d'une vie Coreene)의 소개 글.

     

     

    “그는 (중략) 지칠 줄 모르는 대단한 이상주의자, 평화 수호자, 반파시스트주의자, 그리고 섬세한 예술적 감각을 지닌 애국자였다.”(‘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일제 강점기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외교, 저술 활동으로 대한 독립의 정당성을 널리 알린 독립운동가 서영해(1902~?). 1956년 실종된 이후 60여 년간 역사에서 잊혀졌던 그 이름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한국과 프랑스에서 뒤늦게 호명됐다. 그의 일생을 다룬 최초의 전기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에 이어, 그가 쓴 한국인 최초의 프랑스어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이 번역돼 나왔다.

     

    ‘파리의 독립운동가…’는 한국과 프랑스에 남아 있는 각종 사료, 유족들의 증언을 종합해 독립운동에 헌신한 서영해의 발자취를 생생하게 추적한다. 그는 1902년 부산에서 큰 한의원을 하는 유복한 집안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3•1운동에 참여했다 수배자로 몰리자 이름을 희수에서 영해로 바꾸고, 상하이 임시정부 일을 잠시 돕다가 1920년 혈혈단신 프랑스로 건너갔다. 이후 파리에 언론사인 고려통신사(Agence Korea)를 설립해 27년 간 임시정부 파리 통신원, 주프랑스 대표위원을 지내며 한국 독립에 대한 국제사회 지지 여론을 끌어내려 애썼다. 그의 독립 무기는 총과 칼이 아닌 말과 글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미국에는 이승만이 있다면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뒤늦게 평가할 나올 정도로 활약이 컸다.

     

     

    이승만과 서영해의 한때 가까웠던 모습. 파리 시절에 찍은 것이다.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서영해의 삶은 뿌리 내리지 못했다.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추진한 이승만이 아닌 남북한 통일 정부를 지향한 김구를 따르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이후 중국으로 갔다는 짧고 모호한 기록을 끝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월북 설이 파다했지만, 북한에도 남아 있는 흔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저자 정상천씨는 외교통상부 출신 국가균형발전위 과장이다. 2000년 파리로 국비 유학을 갔다가 서영해라는 이름과 우연히 만난 뒤 그의 비극적 삶에 매료됐다. 정씨는 18일 통화에서 “서영해는 남북한이 통일되는 완벽한 독립을 꿈꿨지만, 분단의 현실과 국내 정치 갈등 속에 남한과 북한 모두로부터 핍박 받으며 철저하게 잊혀진 비운의 독립운동가로 남았다”고 말했다.

     

     

     서영해 전기를 다룬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한국인 최초의 프랑스어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 번역서. 산지니•역사공간 제공

     

     

    서영해의 이름은 해외에서 더 크게 조명 받았다. 한국 역사와 풍습을 서술한 그의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은 1929년 프랑스에서 출간돼 인기를 끌었고, 유럽뿐 아니라 이집트 언론에까지 소개 될 정도로 반향이 컸다. 한국 독립을 넘어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 연대를 강조한 그의 외침이 공명한 덕분이었다. 소설은 주인공의 절규로 끝맺는다. “일본의 범죄행위들을 벌해야 하는 것은 바로 문명 사회 전체다! 억압하는 일본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은 바로 인류 전체다!”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프랑스를 비롯한 강대국들에 내쏘는 거침없는 일갈에 유럽인들은 매료됐다.  

     

     

     

    1937년 3월 22일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반파시스트 작가회의에 참석한 서영해. 노르웨이, 덴마크, 멕시코, 쿠바 지식인들과 함께였다.

     

     

    독립운동사 연구자인 장석흥 국민대 교수는 ‘어느 한국인의 삶’ 해설에서 “자유·평화 사상에 바탕을 둔 서영해의 자취는 한국 독립운동사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 차원에서도 기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강윤주 기자

    기사원문바로가기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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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비회원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젊은 시인 이병철의 산문집으로 영화, 음악, TV 프로그램 등 대중문화부터 갑질과 부정부패, 불평등 등 묵직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생각까지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통렬하게 풀어놓는다. 개인적 체험을 소재로 한 일상 이야기엔 한국 젊은이들의 초상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산지니. 1만4000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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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 10점
    이병철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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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비회원

     

     


    김문주 지음 / 산지니

     

    신라의 부흥과 삼국통일을 이끈 화랑(花郞)은 흔히 남성들의 집단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화랑의 우두머리 격인 원화(源花)는 여자였다는 설이 전한다. 작가는 “두 여인이 아름다움을 다투어 서로 질투해 원화가 폐지되었다”라는 <삼국사기>의 짤막한 기록에 상상력을 쏟아 부었다. 화랑의 기원을 ‘준정’과 ‘남모’라는 두 명의 여성 원화에게서 찾아보는 일종의 대체역사소설이다. 여성중심에서 남성중심으로 전환되는 시대적 격동을 살아낸 여인들을 재조명했다. 조연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나라의 중흥을 위해 분투하는 법흥왕, 불교를 조국에 전파하기 위해 순교를 자청한 이차돈, 백제의 왕자라는 신분을 속이고 신라에 잠입한 백아, 남모의 호위무사이지만 남모를 연모하는 유수 등이 극에 활력을 더한다. 저자는 2000년 문학사상사 장편동화 신인상 공모전에 당선된 동화작가다.

     

    장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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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점
    김문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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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비회원

    정상천 지음, 316쪽, 1만6000원, 산지니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정리했다. 서영해의 가족과 친척을 만나 그의 삶을 짚었다. 서영해의 유고, 프랑스 현지언론 기고, 인터뷰를 번역해 부록에 실었다.

     

    서영해는 1902년 부산에서 태어나 17세 때 3·1운동에 참가했다. 수배대상자가 된 그는 중국 상하이로 가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가진 인재가 필요한 임시정부의 권유로 1920년 12월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임시정부 외무부 지시로 설립한 고려통신사를 통해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유럽에 알리면서 일본이 왜곡한 한국 이미지 바로잡기에 주력한다. 오스트리아인 엘리자와 결혼했고 유일한 혈육인 아들 스테판이 있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은 서영해를 가족과 갈라놓았다. 타국에서 조선독립을 위해 투쟁했지만, 광복 후 조국은 그를 환대하지 않았고, 백범(白凡) 김구를 추종했다는 이유로 국내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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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비회원

    - 섬세한 문체·독특한 표현력에
    - 생생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내용
    - 신예작가 불구 존재감 드러내

     


    신예 작가 강이라의 독특한 존재감은 그의 첫 소설집 ‘볼리비아 우표’(산지니) 속을 “낮게 깔린 눅진한 안개”(수록 작품 ‘명상의 시간’ 속 표현)처럼 채운다.

     

       

    첫 소설집을 낸 강이라 작가.

    강이라 작가는 울산에서 활동한다. 그는 201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쥐’로 당선됐다. 앞서 2013년에는 제24회 신라문학대상 소설 부문에서 단편소설 ‘볼리비아 우표’가 당선됐다. 201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때 단편소설 심사를 맡은 이순원 작가의 다음과 같은 선명한 ‘회상’이 소설가로서 강이라의 역량을 드러낸다.

     


    “나와 또 한 명의 심사위원(문학평론가 황국명 인제대 교수)은 그 작품(당선작품 ‘쥐’)을 읽자마자 당선작으로 선뜻 골라냈지만 그날 저녁부터 꽤 오랫동안 작품 속에 나오는 꼬리가 잘린 쥐가 주는 소름 끼치도록 칙칙한 인상과 상징에 시달려야 했다.”(이순원 작가가 소설집 ‘볼리비아 우표’에 쓴 표사 중)

     


    단편소설에 등장한 쥐 한 마리의 힘이 얼마나 셌는지 심사위원조차 ‘그날 저녁부터 꽤 오랫동안’ 그 이미지의 생생함과 강력한 생동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강이라가 보여준 섬세한 문체와 표현력, 주제를 장악하는 강한 힘, 작품의 결을 개성 있게 다듬는 역량에 관한 간결한 평가인 셈이다.

     

     

    ‘쥐’는 초라한 자취방에서 혼자 지내며, 좀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취업 전선에서, 미친 듯이 노력하면서 빠른 속도로 소모돼 가는 20대 여성이 주인공이다. 자취방 욕실의 욕조 속 바가지 안에 꼬리 잘린 쥐 한 마리가 타고 있다는 사실을 주인공이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생생히 담았다. 궁지에 몰린 청춘의 절박한 상황을 딱 맞아떨어지는 상징 구도와 문체로 표현했다.


     

    다른 수록 작품에서도 강이라는 세밀한 결의 다채로운 세계를 펼쳐 보인다.‘명상의 시간’은 아련하고 아프지만, 아름답고 ‘통쾌한’ 반전을 지닌 단편이다. 라파엘과 라파엘라는 이란성 쌍둥이 남매다. 학창 시절 라파엘·라파엘라와 같은 학교에 다닌 ‘나’는 요가 강사이자 명상가이다. 독일에서 열린 요가 워크숍에 가게 된 나는 우연히 코블렌츠라는 작은 도시로 간다.

       
       

     


    그곳에서 뜻밖에 라파엘라를 ‘발견’한 나는 라파엘라의 상처와 라파엘의 비극을 알게 된다. 작품은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라파엘라에게 우편물을 보내지만, 답장이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오는 데서 끝난다. 여기에 이 소설집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반전이 숨어 있다. 강이라 작가 자신이 요가 강사로 활동해왔다. 그래서 이 단편에는 요가와 명상의 낱말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요가와 명상의 세계가 작가 강이라의 작품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가꿔줄 가능성을 내다보게 한다.

     


    표제작 ‘볼리비아 우표’에서 작가는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마치 다른 트랙으로 ‘점프’하는 느낌이다. 사촌 사이인데 친남매처럼 한집에서 자란 두 사람이 주고받는 편지를 통해 굴레에 갇히지 않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 떠난 한 사람의 결단을 뻔하지 않은, 경쾌한 방식으로 그렸다. 여성 의상을 입는 데 집착하는 남편의 모습을 담은 ‘스위치’ 등 수록 작품은 대체로 위태롭게 흔들리거나, 그렇게 흔들리는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조봉권 문화전문기자

    기사원문바로가기

     

     

     

    볼리비아 우표 - 10점
    강이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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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비회원

    ***

    산지니출판사에서 인문 여행서 <홍콩 산책>과 함께 떠난 홍콩 북투어!

    북투어에서는 홍콩을 대표하는 20가지 키워드

    가거나, 먹거나, 타거나, 체험하는 형태로 모두 만나보았습니다.

     

    홍콩의 핵심 관광지는 가보고 싶지만, 그렇다고 남들이 가는 곳만 가는

    뻔한 여행은 싫으신 분들! 이 일정으로 여행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 )

    ***

     

     

    1일차 일정 ★

     

    공항 > 이층버스 (40분) > 침사추이 (숙소) > 도보 (5분) > 청킹맨션 > 지하철 (10분) > 퍼시픽플레이스 > 도보 (10분) > 홍콩공원 / 홍콩다구박물관 > 도보 (15분) > 센트럴역 > 도보 (10분) > 피크트램 정류장 > 피크트램 > 더피크 > 더피크룩아웃 > 피크트램 > 피크트램 정류장 > 지하철 (10분) > 침사추이(숙소)

     

     

    첫째 날 두근대는 마음으로 대구공항으로 갔어요.

    옷깃을 여미며 출발한 대구공항에서 4시간여를 날아 도착한 홍콩공항은 도착하자마자 따뜻한 공기가 느껴졌구요.  북투어단도 하나둘 겉옷을 벗어 던지며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 공항 셔틀 정류장에서 돼지가 반겨줬어요:)

     

    입국 수속을 마친 후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옥토퍼스 카드!

     


    옥토퍼스 카드는 홍콩의 만능 카드라고도 불리죠?
    입국장을 나오면 바로 보이는 여행자센터에서 구입이 가능해요.

     

    >> 옥토퍼스 카드

     

    ‘옥토퍼스(문어) 카드’로 불리는 그것은 홍콩의 주권이 반환된 직후인 1997년 9월에 도입된 공공교통 선불카드다. 지금은 한국에서나 중국에서 각종 지불 방법이 많이 등장했지만, 20년 전에 이런 카드의 도입은 획기적이었다. 버스, 전차, 지하철, 페리 등 대중교통은 물론이고, 식당, 상점,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자판기 등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 잔돈을 준비할 필요도 없고 할인도 되니 홍콩에서 거주 또는 여행할 때의 필수품이다. 포인트 적립도 되고 지정 루트를 이용할 경우 할인도 받을 수 있다. 현재 3천 홍콩달러(50만 원)까지 충전할 수 있는 ‘옥토퍼스 카드’ 는 그 편리성 덕분에 신용카드의 영역까지 잠식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_ 「도깨비 방망이, 옥토퍼스 카드」 중에서

     

     

     

    홍콩에서 시내까지 가는 방법은 다양한데요, 가장 빠르게 가는 법은 공항철도를 타는 것이지만, 차가 많이 없는 시간에는 버스를 타시는 걸 추천해요.

    홍콩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타볼 기회가 적은 이층버스를 탈 수도 있으니까요.

     

    이층버스에서 본 홍콩의 풍경

     

    이층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침사추이의 Holiday in Golden Mile이었는데요. 청킹맨션 바로 옆에 위치한 건물로, 침사추이와 주변 관광지를 다니기 아주 좋은 곳이었어요.
    조식도 맛있었답니다! 짐을 풀고 바로 옆에 있는 청킹맨션으로 향했습니다.

     

    청킹맨션의 뒷골목

     

    >> 청킹맨션

     

    번화한 침사추이와 선명하게 대비되는 빈민굴인 동시에, 매일 밤 120개 국 이상에서 온 다양한 인종이 모여들어서 작은 ‘UN’이라 불린다. 그래서 ‘홍콩특별행정구’ 중의 ‘특별행정구’라고 한다. 청킹맨션 안에서 매일 4,000명이 숙박한다고 하니,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곳이 아닐까?
    또한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과 ‘<타락천사>’에 의해서 다시 의미가 부여된 곳이다. 일찍이 미국의 타임지에 의해 ‘세계화의 가장 좋은 예’로 선정된 빌딩이다. 그래서 요즘의 ‘청킹맨션학'이라는 학문이 성립되기도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청킹맨션’ 연구에 매달린 고든 매튜 교수는 그 안에 머무는 사람들을 상인, 업주와 직원, 파트타임 노동자, 피난민, 가정부, 성 노동자, 약물중독자, 관광객 등으로 분류했다. 다양한 인종들이 더불어 조화롭게 산다는 점으로 볼 때 세계화의 좋은 모델이다.

     

    _ 「세계공화국의 구현, 청킹맨션」 중에서

     

    청킹맨션 안에 있는 인도 카레집에서 맛있는 점심식사를 했어요. 친절한 인도 종업원분이 계시고, 탄두리 치킨에 각종 카레까지! 마음껏 세계공화국 청킹맨션과 인도를 느낀 시간이었답니다.

     

    델리클럽

     

    세계화의 길목에 홍콩이 자리하고 있는데, 세계 사람들을 포용하는 ‘청킹맨션’은 그 상징으로 충분하다. ‘청킹맨션’ C동 3층에 자리 잡고 있는 인도 카레집 ‘델리 클럽The Delhi Club’에서 치킨이나 양고기 카레를 먹으면서 ‘세계공화국’을 한번 생각 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 식당에서 소고기 카레 주문했다가 혼났다.

    _ 「세계공화국의 구현, 청킹맨션」 중에서

     

    배를 든든히 채운 후 지하철을 타고 홍콩섬으로 향했는데요. 여기서 잠깐 설명하자면 홍콩은 크게 두 지역, 구룡반도와 홍콩섬으로 나눌 수 있어요. 그중 홍콩섬은 정부에 의한 집중 개발이 이루어져서 휘양찬란한 건물들이 많이 있답니다.

     

    홍콩 지도

     

    홍콩섬에 도착해서 퍼시픽플레이스를 둘러봤어요.

    퍼시픽플레이스는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몰로 30년 전에 지어졌다고 해요.
    그당시에 서양인들이 와서 왜 우리 서양에는 이런 쇼핑 공간이 없냐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여느 쇼핑몰 못지않게 세련된 모습이더라구요.

     

    퍼시픽 플레이스 내부

     

    >> 퍼시픽플레이스

     

    조금 더 여유 있는 쇼핑을 즐기고 싶다면, '애드미럴티'의 ‘퍼시픽 플레이스'를 추천한다. 각종 사무실, 4개의 고급 호텔, 복합 영화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5년 오픈된 그곳에서의 쇼핑은 마치 아름다운 공원을 산책하는 기분이다. 벌써 30년 전에 이런 쇼핑센터를 지을 수 있었다는 점이 세계 쇼핑문화를 주도한다는 홍콩의 저력이 아닐까?
    지금까지도 전 세계를 통틀어 이렇게 쾌적한 쇼핑센터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홍콩의 ‘퍼시픽 플레이스’는 쇼핑센터의 모범이라는 생각이 든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을 최대한 배려한 공간 배치와 편안한 동선은 홍콩이 왜 쇼핑의 천국인지 알게 해준다.

     

    _ 「아름다운 쇼핑의 본보기, 퍼시픽 플레이스」 중에서

     

    쇼핑몰 구경을 마치고서 홍콩공원으로 갔어요.
    홍콩공원에서는 "와 여기 너무 좋다~"를 연신 외쳤는데요, <홍콩 산책>에서 왜 작가님이 홍콩의 공원은 한국의 그것과 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하셨는지 알겠더라구요.

    복잡하고 빽빽이 들어선 건물 사이를 걷다가 공원에 가니 정말 해방감이 느껴졌답니다.

     

    홍콩공원 산책

     

    >> 홍콩공원

     

    또 하나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아파트의 밀집 정도와 높이이다. 이런 정도의 거리인데 어떻게 건축허가가 나올까 할 정도로 아파트와 아파트가 가깝다. 이쪽 아파트에서 저쪽 아파트의 거실 텔레비전 화면을 볼 수 있을 정도이고, 주방에서 만드는 음식 냄새가 우리 아파트로 넘어올 만큼 가깝다. 그런 거리에 40~50층 되는 높이의 아파트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 숨이 막히고 도무지 불안하고 불편해서 매일매일이 악몽 같았다. 그래서 가급적 밖에 있다가 밤에만 들어가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한국의 공원과 홍콩의 그것은 가치가 다르다. 홍콩 사람들은 그렇게 집에 들어가기도 곤란하고, 계속 걸어 다니기도 곤란할 때 공원으로 간다. 답답한 마음을 잠시라도 풀어준다는 점에서 홍콩 공원의 가치는 매우 크다. 일반적으로 홍콩의 공원은 매우 넓다. 공원을 중시하는 영국적 전통이며, 식민지 영국이 남긴 장점이라고 칭송되기도 한다.

     

    _「도심의 오아시스, 빅토리아 공원

     

    홍콩 공원에는 ‘홍콩다구박물관’이 있었는데요.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무료로 홍콩 다구의 이모저모를 볼 수 있는 알찬 박물관이었어요. 심지어 입장료도 받지 않는 무료 공간이랍니다. 저도 아기자기한 그 모습에 반해 꽤 꼼꼼히 박물관을 둘러보았답니다.

     

     

    홍콩다구박물관

     

    >> 홍콩다구박물관

     

    또한 홍콩공원 내의 ‘홍콩다구박물관(香港茶具博物館)’은 건물이라는 하드웨어나 그 안의 매점에서 파는 다구 등의 소프트웨어 모두가 볼 만하다. 차와 다구를 파는 매점은 상품의 다양성에 있어서 내가 아는 한 최고의 장소다. 건물은 식민지 시대 영국군 사령관의 저택인데, 그 시대의 분위기를 담은 특징적인 건축물 중 하나라고 한다.

    _「도심의 오아시스, 빅토리아 공원

     

    다구박물관을 다 보고 나서는 주변을 산책했는데요, 널찍한 홍콩 공원을 벗어나자마자 뺵빽히 서있는 고층 빌딩들을 보고 ‘우와!’하고 감탄을 했답니다.

    이 지역은 '애드미럴티' 지역으로 우리가 홍콩하면 생각나는 그 고층 건물이 밀집한 지역이라고 합니다. 책에 언급된 ‘홍콩상하이은행’이 어찌나 멋있던지요.
    세계 건축의 중심지라 불리는 홍콩의 저력을 느꼈습니다.

     

     홍콩 애드미럴티 지역

    - 두 번째 사진이 홍콩상하이은행 본점

     

    >> 홍콩상하이은행 본점(滙豐總行大廈)

     

    세계적인 건축가인 ‘노먼 포스(Norman Foster)’의 작품으로, 단위 면적당 가장 비싼 비용이 투입된 곳으로 유명하다. 46층짜리 철강 구조의 건물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1986년에 완공된 건물로, 세계 최초로 1층을 앞뒤 뻥뚫리게 설계해서 시민들에게 개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단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물인데, 아름다우면서도 강력한 힘이 느껴지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났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보고 있으면 내 호주머니에 넣고 싶어진다.
    이 건물 앞에 사자 동상 한 쌍이 있는데 자세하게 보면 총알 자국이 보인다. 1938년 일본군과 영국군의 접전 흔적이다. 그로부터 홍콩은 3년 8개월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_「홍콩 건축역사의 자랑, 홍콩상하이은행 본사」 중에서


     

     

     

    홍콩 산책 도시 인문 여행

     

    류영하 지음 │ 224쪽 │ 2019년 1월 15일 출간 

     

    홍콩의 정체성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온 류영하 교수의 인문 여행 에세이집. 30년간 홍콩을 연구하며, 살며, 여행하며 쓴 글들을 담았다. 홍콩에 대한 전문 지식을 집대성했지만 쉽게 풀어 썼다. 슬렁슬렁 비치는 홍콩의 불빛 사이를 느긋한 걸음으로 걸으며 관찰한 저자의 글에는, 홍콩에 대한 내공 깊은 시선이 뾰족하게 드러난다. 그의 시선을 따라, 함께 홍콩 인문 여행을 떠나보자. 홍콩을 꿈꾸는, 홍콩을 여행하는, 홍콩을 추억하는 당신과 함께 홍콩 산책.


     

     

     

    *이 일정은 류영하 교수의 인문 여행 에세이집

    <홍콩 산책> 속 장소와 정보를 참고하였습니다.

    더 깊은 내용은 <홍콩 산책>에서 보실 수 있어요 :)

     

      

    홍콩 산책 - 10점
    류영하 지음/산지니

     

     

     

    >> 이 글은 '콩 산책 1일차 ② - 피크트램, 피크트램 빨리 타는 법, Klook(클룩), 피크트램 패스트티켓, 더 피크 룩아웃, 빅토리아 피크, 피크 맛집, 홍콩 야경'으로 이어집니다.

     

    3박 4일 전체 일정 바로보기 >> Click!

    Posted by 실버_

    임시정부 대표 외교독립론자,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선생은

     

    [3.1정신 잇는 사람들]①<下>이승만과 외교독립론 양축
    임시정부 프랑스 유학생…졸업후 외교·기자·작가 등 활약
    전쟁 소용돌이에 두 차례 결혼도 잇달아 불행한 결말로
    1956년까지 中서 교사…중국 실종, 월북 사망 등 說 분분

     

    서영해 선생 (사진=부산박물관 제공)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파리의 독립운동가`라고 불렸던 서영해 선생은 당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무장투쟁론과 양대 축을 이뤘던 외교독립론을 대표한 인물이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을 무대로 활약하면서 임시정부의 외교 및 선전활동에 주력했다.

     

    본명이 서희수였던 그는 190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불과했던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수배되는 처지가 되자 아예 상하이 임시정부로 건너갔다. 이 때 이름을 영해로 바꿨다. `임시정부의 막내`라는 별명을 가졌던 그는 당시 임시정부 어른들이 “부모님이 걱정하시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유했음에도 심부름을 하며 독립운동을 배웠다. 마침 임시정부에서 당시 유일한 국제기구인 국제연맹 본부가 있던 파리를 외교독립 거점을 삼으면서 프랑스어 인재를 키우기 위해 그에게 프랑스 유학을 권유했다.

     

    1920년 12월31일 프랑스를 단 한마디도 못했던 서영해는 혈혈단신 파리로 건너갔는데, 훗날 그는 “내 이름처럼 태산을 끼고 북해를 넘는 기개로 구체적 계획은 없었지만 흉중은 세계정복이라는 포부로 가득찼다”며 그 시절을 회고했다. 리세(유치원부터 고교까지 교육과정)에 입학, 12년 과정을 6년만에 마친 그는 부족한 체제비로 인해 학업과 일을 병행하면서도 1929년 파리신문학교(에꼴 드 주르날리즘)를 졸업했다.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게 된 서영해는 졸업하던 해 파리에 고려통신사(Agence Korea)를 설립하고 기자와 작가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나섰다. 1934년 주불외무행서 외무위원, 1936년 외무부 주법특파위원, 1940년 파리통신원에 임명됐던 서영해는 국제연맹에 일제의 한국 침략 부당성을 알리는 외교전을 펴는 한편 한국의 실상을 유럽에 알리는 작업을 했다. 임시정부와 유학생, 교민들과의 연락책, 독립운동 자금 모집책까지 맡았다.

     

    1929년 쓴 자서전 격인 소설 <어느 한국인의 삶의 주변>을 출간해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프랑스어 소설로, 단군신화부터 `3·1독립선언서`까지 한국 역사를 꼼꼼이 수록해 한국을 유럽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했다. 또 <심청전>, <흥부와 놀부> 등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이후 프랑스가 1945년 임시정부를 사실상의 정부로 인정하면서 그 해 주파리특파원 주법대표를 역임했고 임시정부의 외교특파원과 최초의 주불(駐佛)대사로 임명됐다. 당시 임시정부 외교에서 `미국에는 이승만, 유럽에는 서영해가 있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였다. 특히 서영해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식 직전 김구의 대일선전포고서를 파리에 있는 일본대사에게 통고하기도 했다

     

    서영해와 오스트리아 출신 여성 예술가 엘리자와 1937년 파리에서 정식 결혼식을 올리고 1939년 아들까지 낳았다. 그러나 히틀러에 의해 1938년 오스트리아가 합병되자 임신한 엘리자는 고향 빈으로 돌아갔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둘은 재결합하지 못했다. 1946년 26년 만에 귀국한 서영해는 연세대와 이화여대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며 국내 정치상황을 살폈다. 서영해는 정치적으로 이승만보다 김구쪽에 가까웠다.


    이런 상황에서 서영해는 1948년 스무살 연하인 경남여중 교사 황순조와 재혼했다. 이승만의 정치노선과 친일파가 득세하는 세태에 실망한 그는 다른 세 부부와 함께 외국에서 살 계획을 세웠다. 1948년 10월 서영해 부부는 상하이행 배에 올랐고 이후 프랑스로 갈 준비를 했지만 부인의 입국 비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1949년 10월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면서 아내는 한국으로 귀국한 반면 중국 국적인 서영해는 귀국하지 못해 부인과 영원히 이별하고 만다.

     

    이후 서영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중국에서 죽었다거나, 프랑스로 갔다거나 월북했다는 얘기까지 설이 분분했다. 부산지방보훈청이 발간한 <부산독립운동사>에는 `중국에서 행방불명`으로 기록돼 있다. 반면 1956년까지 상하이 조선인민인성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서영해의 사진이 남아있고 당시 이 학교 교장이던 선우혁이 북한으로 건너간 만큼 그와 함께 북으로 갔다는 추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기사원문바로가기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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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비회원

    [이투데이] 달 3.1 운동 100주년…텀블벅, 소장가치 높인 창작물 펀딩 대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은 3.1 운동과 관련된 프로젝트가 각광 받고 있다고 13일 밝혔다. 텀블벅은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으면서 대중의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텀블벅에서 독립운동 관련 프로젝트는 2017년부터 진행돼 총 5000여명의 후원자들과 함께 했다. 특히 지난해 열린 '대한 여권 케이스: 잊혀진 독립운동가 김문로 선생 알리기' 프로젝트의 경우 후원자 약 2500명의 후원으로 목표액의 2만% 이상 달성했다.

     

    올해도 총 10개의 프로젝트가 개설, 약 1100명의 후원을 이끌어 냈다. '한인애국단 제 1호 단원 이봉창' 프로젝트는 이봉창 의사의 모습에서 모티브를 따온 피규어 제작 프로젝트로, 28일 마감 예정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펼쳐진 '안중근 의사 피규어 프로젝트'에 이은 5번째 프로젝트로, 지금까지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 백범 김구, 이봉창 의사 등 총 4명의 독립운동가가 피규어로 재탄생됐다.

     

    또한 파리의 독립 운동가 서영해를 발굴, 국내 최초로 서영해의 삶을 다룬 책 '파리의 잊혀진 독립운동가 서영해' 프로젝트도 눈길을 끈다. 서영해는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상해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주불 특파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고려 통신사를 설립하고, 일본의 한반도 침략상을 알리는데 주력했던 그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염재승 텀블벅 대표는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아 관련 프로젝트가 늘어나는 추세"라며 "크라우드펀딩이 독립 운동을 기억하고,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투데이 김우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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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 10점
    정상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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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