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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출판사에서 인문 여행서 <홍콩 산책>과 함께 떠난 홍콩 북투어!
북투어에서는 홍콩을 대표하는 20가지 키워드를
가거나, 먹거나, 타거나, 체험하는 형태로 모두 만나보았습니다.
홍콩의 핵심 관광지는 가보고 싶지만, 그렇다고 남들이 가는 곳만 가는
뻔한 여행은 싫은 분들! 이 일정으로 여행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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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 일정 ★

침사추이 (숙소) > 도보 > 홍콩역사박물관 > 도보 > 미도찬실 > 도보 > 몽콕 > 서언서실 > 도보 > 삽겹살 바비큐 덮밥 > 지하철 > 심포니 오브 라이트 > 도보 > 침사추이 (숙소)


첫째 날 일정을 잘 마치고 둘째 날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인 북투어단이 도착한 곳은 바로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홍콩역사박물관’입니다.

<홍콩 산책>의 저자 류영하 교수님은 홍콩역사박물관 문제를 다룬 학술서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를 쓰신 분이기도 하지요.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에서 홍콩박물관이 말하는 홍콩의 정체성이 홍콩의 ‘사실’과 부합되지 않고, ‘민족’과 ‘본토’ 모두 특정한 주체에 의해 구현되어 국민국가와 민족 이데올로기를 교육하는 공간으로서 역사박물관이 운영되고 있음을 밝히는 작업을 하셨는데요. 그래서 교수님과 함께하는 홍콩역사박물관이 더욱 기대되었답니다.

 

홍콩역사박물관 입구

 

홍콩역사박물관 대륙의 중국인들이 홍콩을 폄하할 때 자주 동원하는 말은 ‘홍콩에는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문화란 이른바 ‘조국’의 문화일 확률이 크다. 모든 것을 ‘국가’ 나 ‘중국 중심’적인 잣대로 바라보는 것이 그들의 습관이니까. 내가 볼 때 홍콩역사박물관에는 ‘중국’의 입장이나 잣대로 바라보는 홍콩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다.
어느 박물관에나 그것의 배후가 있다. 어떤 물건이나 설명문이 전시되고 게시되기까지 누군가의 ‘손’을 거친다. 만든 ‘손’이 있다는 말이다. ‘전시’와 관련된 박물관의 모든 결과는 이 ‘손’이 기획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박물관은 힘센 기획자가 마음대로 꾸밀 수 있다. 따라서 박물관에는 힘센 ‘손’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전시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다면 홍콩의 힘센 ‘손’, 즉 승자는 누구일까?
그가 홍콩역사박물관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_‘홍콩의 역사는 없는, 홍콩역사박물관’, <홍콩 산책> 중에서

 

 

홍콩역사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였던 ‘서언’.
<홍콩 산책>을 읽으신 분은 ‘아, 이거!’ 하고 반가워하실 텐데요.

 

서언(Preface) 앞 류영하 교수님

 

서언 Preface

홍콩은 비록 매우 작은 곳이지만, 지질 구조가 복잡하고, 수목의 종류가 매우 많고, 인류 활동 시기가 빠르고, 신계 지역의 민속 보존이 완벽한 것 등이 매우 독특하다. 하물며 백여 년에 걸쳐 사람들이 잘 모르던 촌락에서 국제적인 대도회지로 탈바꿈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홍콩 역사 문화를 알고자 하는 여러분의 간절한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전심전력으로 홍콩 4억 년 역사를 말하는 ‘홍콩 스토리’ 상설 전시를 만들었다. ‘홍콩 스토리’는 기획부터 완성까지 6년이 걸렸고, 1억 9,000만 홍콩 달러가 투입되었으며, 7,000평방미터에 8개 전시실로 구성되었으며, 홍콩의 자연 생태 환경과 민간 풍속 및 역사 발전을 소개했다. 전람은 재미와 교육 모두를 중시하였기에, 홍콩 역사 문화에 대한 여러분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4억 년이라는 시간을 넘나드는 이 여행에 여러분을 정중하게 초대 한다.

그 배후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교육적 효과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박물관을 학교와 같은 정부의 공식적인 교육 수단으로 간주한다. 즉 힘센 ‘손’은 박물관의 교육적인 효과를 굳게 믿고, 박물관을 통하여 관람객을 교육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재미와 교육을 모두 중시한’ ‘홍콩 스토리’는 모두 8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제 1 전시실 : 자연 생태 환경
제 2 전시실 : 선사시대의 홍콩
제 3 전시실 : 역대 발전 - 한 (漢) 부터 청(淸) 까지
제 4 전시실 : 홍콩의 민속
제 5 전시실 : 아편전쟁 및 홍콩의 할양
제 6 전시실 : 홍콩의 개항 및 조기 발전
제 7 전시실 : 일본 점령 시기
제 8 전시실 : 현대 도시 및 홍콩 반환

전시실의 구성을 보면 우선 중국 역사를 기준으로 정리 되고 있다. 그리고 중국 역사와의 관계 설정에 치중하는 노력은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박물관의 설명문에 그런 노력이 단적으로 나타난다.

_홍콩의 역사는 없는, 홍콩역사박물관, <홍콩 산책> 중에서

 


‘박물관’은 한 사회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공간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요. 서언에서 드러나듯이 홍콩역사박물관은 중국이 왜곡하고 있는 홍콩 정체성에 대한 시선이 담겨 있었습니다. 박물관에는 권력 주체가 선양하고 싶은 것만 전시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북투어단도 이 점을 유의하면서 함께 박물관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홍콩 전도 앞 류영하 교수님

 

서언을 얼마 지나지 않아 큰 홍콩 지도 앞에 도착했는데요, 홍콩 지도 앞에서도 한참 설명을 들었어요. 다른 특별한 자료가 없이 지도 하나만 있어도 술술 나오는 교수님의 홍콩에 대한 설명이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었답니다.

 

영국과 홍콩의 관계

영국과 중국의 전쟁에서 영국은 1차 아편전쟁 이후 홍콩섬을, 2차 아편전쟁 이후 구룡반도를 영구히 할양받고 3차 아편 전쟁 이후 신계를 99년 동안 조차(빌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 대처가 홍콩을 포함한 신계 지역을 영구히 할양받기 위해 중국에 협상을 하러 갔습니다. 그때 등소평이 협상을 잘해서, 홍콩은 다시 중국으로 반환되었는데요.

협상 이후 대처는 인민대회당 내려오다가 계단에서 넘어지게 되고,
중국에서는 ‘등소평이 대처를 기로 눌렀다!’라고 말하며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영국이 중국에 홍콩 지역을 빌려 간 이후 센트럴과 상환지역을 집중 개발했는데요,
그 흔적으로 센트럴의 교통망을 위해 만든 피크트램이 있지요.

 

초기 피크트램의 모습

 

그래서 홍콩은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준다’라고 말이 통한다고 합니다.
아직도 홍콩 영화배우와 상류층은 피크 쪽에 산다고 해요.

요즘 홍콩에서 뜨는 지역도 있다고 하는데요, 중국 국경과 맞닿은 곳이 집값이 비싸다고 해요. 홍콩 사람들은 중국이 더 임금을 많이 줘서 중국으로 취직하고 싶어한다고 합니다.

 

등소평과 객가인

 

객가 [ 客家 , Hakka ]

한족(汉族)의 일파로 원래는 황하(黃河)북부에 거주하였으나 광둥성(广东省), 푸젠성(福建省), 광시장족자치구, 장시성(江西省) 등지의 산간지역으로 이주하여 고향을 떠나 생활하는 객가인들이 스스로에게 붙인 명칭이다. 역사적으로는 진(晋, 265–420)의 혼란기, 당 말의 분열기, 송 중엽의 강남 이주정책, 여진에 의한 북송(北宋)의 멸망과 몽고의 중원 정복, 청에 의한 명의 멸망 등에 따라 대규모의 이주가 이루어 졌다.

(...)

객가인은 주변 민족과 다른 사회적 관습과 언어를 보유하고 있으나 별도의 민족이 아닌 한족의 지계(支係)로 인정되며, 현재 세계 전역에 9,000만에서 1억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타이완 인구의 15%와 동남아시아에 거주하는 화교의 대부분도 객가인으로 중국 남부를 비롯해 세계 80여 국가와 지역에 흩어져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타지에 살면서도 객가문화를 유지하며 언어는 고유어인 객가어(客家语)를 사용하고 있으며 머리가 좋고 부지런해서 경제관념이 특히 강하고 관료 출신도 많이 배출하고 있다.

주요 인물로는 태평천국(太平天国)의 창시자인 홍수전(洪秀全)을 비롯해 쑨원(孙文, 손문), 덩사오핑(邓小平), 타이완 총통을 지낸 이등휘(李登輝), 필리핀 정치가 아키노(Corazon Aquino), 싱가포르 총리를 지낸 이광요(李光耀) 등도 객가인이다. 이들은 1971년 홍콩에서 세계 객가단체들의 모임인 제1차 세계객가친속근친대회를 연 이후 2년에 한 번씩 세계 각지의 해당 도시를 돌면서 대회를 열고 있다.

[출처] 국가급 중국문화유산총람, 황매희 편집부

 

 

객가 사람들의 정체성이 아주 강한데요, 중원부터 피난을 내려와 홍콩까지 왔다고 합니다. 유명한 홍콩인 등소평도 객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외부 침입자들을 방어하기 위한 원 형태의 집 ‘토루’로도 유명한데요,
신서유기에서 멤버들이 묵기도 했었지요.

홍콩 예전 집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요,

 

 

등소평으로 대표되는 등 씨가 홍콩의 대표 성씨라 등 씨 사람의 집을 분해해 그대로 박물관으로 가져와 집을 남겼다고 합니다.


 

아편전쟁과 임칙서

임칙서(林則徐)’아편전쟁 관련 내용은 ‘홍콩 스토리’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임칙서를 민족 영웅으로 자리매김하여 제국주의에 대한 강력한 투쟁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중국공산당의 출발이 반제국주의 운동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족 영웅은 국가 통합을 위한 최고의 재료이기 때문이다. 즉 억지로 영웅이 만들어질 수도 있고, 우리에게 ‘장렬하게’ 영웅이 되라고 강요할 수도 있다.

 

_‘홍콩의 역사는 없는, 홍콩역사박물관’, <홍콩 산책> 중에서

 

 


임칙서 동상

 

책에 등장한 임칙서 동상을 직접보니 신기했어요. :)

임칙서는 아편에 대해 아주 강경파였다고 해요,
아편 때문에 영국으로 돈이 다 빠져나가고 농촌이 피폐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황제가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 각 총독에게 아편에 대한 의견을 묻다가 임칙서에게 권한을 넘겨, 흠차대신으로 임명했습니다. (황제 흠 - 황제가 파견하는 대신)

임칙서는 광둥으로 가, 무역을 하는 13개 회사에게 아편 유통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유통사들은 그 말을 크게 안 받아들이고, 계속 유통을 했는데요.

그래서 임칙서는 중국 사람들은 작두에 끼워 죽이고, 영국 상인들에게는 아편을 몰수하고 석회와 섞어서 사용 못 하게 바다에 버렸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보상을 요구하며 전쟁까지 고려했는데요, 결국 이 사건 때문에 8표 차이로 전쟁 허가가 났습니다.

영국은 사실 오면서도 이길 수 있을까 걱정이 컸는데요,
중국을 그만큼 두려워했지요.
그러나 결과는 영국의 승리였습니다.

임칙서는 운남성으로 귀양 가게 되고, 중국은 힘을 잃고 영국에게 홍콩을 주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기존에 있었던 기독교 선교사들이 영사로 바뀌고 정치적 스파이 역할도 했기 때문에 중국은 반기독교 체제가 강해집니다. 지금도 다시 반기독교 정책이 일고 있지요.

이러한 정책으로 전쟁 말기에는 영국 포로들을 굶겨서 피골이 상접했다고 하네요.

 

피골이 상접한 영국군들

 

지금 중국은 임칙서를 ‘반외세’를 했던 사람으로 아주 크게 보고, 칭송한다고 합니다.

 

에필로그

 

후기 Epilogue

홍콩은 영남지구의 일부분이며, 자연 생태 환경은 주변 지구와 대동소이하다. 옛날부터 홍콩의 사회·경제 발전은 영남 - 특히 주강( 珠江 ) 삼각주의 개발과 동시적이며, 행정 제도는 동일 계통에 속하며, 전통 문화 및 풍속 습관은 인근 지구와 일맥상통한다.

영국의 점령은 홍콩 역사의 분수령이다. 백여 년 이상, 홍콩의 정치·사회·경제 및 문화 발전의 방향과 보폭은 내지와 달랐고, 그것의 상대적인 안정적 환경은, 한 세대 한 세대의 이민을 흡수했다. 여러 가지 주관 및 객관적인 조건하에서, 손발이 닳도록 일해서 홍콩을 국제 대도회로 건설했다. 1997년 7월 1일, 홍콩이 조국에 반환되어 홍콩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홍콩 스토리 전람은 홍콩 반환을 결론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홍콩인이 쓴 스토리는 앞으로도 날마다 해마다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에필로그 앞 류영하 교수님

 

찬찬히 둘러본 후 나오는 마지막 구역에는 에필로그가 있었는데요,
류영하 교수님은 홍콩역사박물관이 관람객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은 홍콩이 ‘중국 영남지역’의 일부이며, 자연생태 환경이 서로 비슷하다는 점, 행정 제도 또한 동일한 계통에 속하며 나아가서 문화나 풍속도 비슷하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2021년에 홍콩역사박물관이 새로운 ‘홍콩 스토리’ 를 선보인다고 하는데요,
새롭게 태어나는 홍콩역사박물관의 ‘홍콩 스토리’는 어떤 모습일까요? 홍콩역사박물관을 둘러본 후 중국 측은 여전히 박물관의 교육적 효과를 철저하게 믿고 있음이 보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역사박물관 측이 중국 중심의 ‘홍콩 스토리’의 틀을 과감하게 버리고, 홍콩 자신의 우수한 전통을 자랑하는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2021년 새로 탄생할 홍콩역사박물관을 기대하며 북투어단은 홍콩역사박물관 투어를 마무리했습니다.

 

 

 

홍콩 산책 도시 인문 여행

 

류영하 지음 │ 224쪽 │ 2019년 1월 15일 출간 

 

홍콩의 정체성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온 류영하 교수의 인문 여행 에세이집. 30년간 홍콩을 연구하며, 살며, 여행하며 쓴 글들을 담았다. 홍콩에 대한 전문 지식을 집대성했지만 쉽게 풀어 썼다. 슬렁슬렁 비치는 홍콩의 불빛 사이를 느긋한 걸음으로 걸으며 관찰한 저자의 글에는, 홍콩에 대한 내공 깊은 시선이 뾰족하게 드러난다. 그의 시선을 따라, 함께 홍콩 인문 여행을 떠나보자. 홍콩을 꿈꾸는, 홍콩을 여행하는, 홍콩을 추억하는 당신과 함께 홍콩 산책.


 

 

 

*이 일정은 류영하 교수의 인문 여행 에세이집

<홍콩 산책> 속 장소와 정보를 참고하였습니다.

더 깊은 내용은 <홍콩 산책>에서 보실 수 있어요 :)

   

홍콩 산책 - 10점
류영하 지음/산지니

 

>> 이 글은 '홍콩 산책 2일차 ② - 미도찬실, 심포니오브라이트 '이어집니다


 

3박 4일 전체 일정 바로보기 >> Click!

Posted by 실버_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신청해주신 분께 책을 보내드리며, 

성실히 써주신 분께는 산지니 신간도 보내드립니다.


어렵지 않으니 신청해주세요:)

책에 대한 독자분들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책 소개]

총과 폭탄을 든 독립운동가도 있지만 여기 펜을 들고 조선 독립에 앞장선 독립운동가도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숨겨진 서영해의 삶과 사상을 발굴해 정리했다. 서영해는 당시 유럽사회에 외교 중심지였던 프랑스 언론에 끊임없이 조선을 알렸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해 유창한 불어실력으로 조선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리는 활약상을 펼쳤다.

저자는 국내에 부족한 서영해의 자료를 직접 발굴했고 책에는 서영해가 쓴 유고 글과 프랑스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 인터뷰 등을 모아 번역해 실었다.



<파리의 독립운동가 서영해서평단 모집

 

▶ 모집 기간 : 3월 29(금) ~ 4월 8(월)

▶ 모집 인원: 7

▶ 당첨자 발표: 4월 9일 (화)

▶ 도서 발송: 4월 10일 (수)

▶ 서평 마감기한: 4월 25일(목)까지

▶ 신청 구글폼 https://forms.gle/qAaenSNQ3tpDEPwA7

 

1. 서평은 본인 계정 블로그페이스북 등 SNS에 올려주시면 됩니다.

2. 온라인 서점에도 해당 도서에 대한 간단한 평을 남겨주세요.

    (교보문고알라딘, yes24 등 자유롭게 올려주시면 됩니다)

3. 계정에 업로드 후 산지니 페이스북에 쪽지 부탁드립니다.

4. 성실히 서평 써주신 분에게는 산지니 신간을 보내드립니다.






Posted by 동글동글봄

산지니는 지난 3월 13일~18일 한국을 방문한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의 저자 무스토 교수의 강연에 함께했습니다.

3월 13일 (수) 진주: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및 SSK연구팀(정성진 교수)
3월 14일 (목) 부산: 오후 3시, 동아대학교 맑스엥겔스연구소(강신준 교수)

3월 18일 (월) 서울: 정치경제연구소 대안(곽노완 교수)

진주, 부산에 이어 서울에서 열린 강연회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 초청 강연회-진주, 부산 편)

18일 당일 아침에는 <한국일보> 강윤주 기자와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한국일보> 인터뷰 현장

통역해주신 분의 종이가 빼곡히 채워졌네요. 인터뷰는 1시간 조금 넘게 진행되었습니다.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한국일보>에서 곧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 책에는 두 가지 메세지가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노년에) 선택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기존의 연구를 발행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공부를 좀 더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마르크스는 공부를 계속하는 걸 선택했는데요. 이건 마르크스의 자기 비판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기의 기존 생각을 비판하고 생각을 확장하려고 하는 연구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맑스가 왜 이렇게 갔냐면 자본론을 공부하면서 자본주의라는 게 자본주의 표상을 영국이나 유럽뿐만 아니라 확장해서 좀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남북 전쟁 이후에 미국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통계 자료를 모으고 거기에 대해 연구를 했습니다. 1861년 러시아의 공군주의가 끝나고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살펴봤습니다. 마르크스는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절대적인 발견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자신의 연구 영토를 확산시켜 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에게는 새로운 전집이 있고 그걸 어떻게 읽고 도움을 받을까 하는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개방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다양한 원고와 글들을 읽을 수 있고 기존에 글도 선험주의로 쓰인 게 많으니까 그게 아니란 게 분명해졌습니다. 마르크스가 자신을 의심하고 회의를 가지고 질문했던 부분도 있습니다. 20세기 장악했던 경제주의적인 마르크스를 오히려 우리가 비판해야 할 상황입니다"

 

인터뷰가 끝나자 활짝 웃는 마르셀로 무스토 교수. 


이날 오후 4시에는
<정체경제연구소 대안>에서 마르셀로 무스토 강연이 있었습니다. 

연구소를 찾아간 건 저도 처음이었는데요. 
정책연구와 정당 활동 등 다양한 활동 경력을 가지신 분들이 이곳 연구소를 거점 삼아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셨습니다. 팟캐스트 "이럿타"도 한다고 하니 한 번 들어보길 추천드려요.

강연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자리는 꽉 찼고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금민 소장님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이후 마르셀로 무스토의 열띤 강연이 있었습니다.

강연은 청중 질문 포함해서 세 시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요약해서 정리해보았습니다.

지금껏 마르크스는 생애 연구와 업적이 함께 병행되지 못한 점이 있었습니다. 교조주의(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 역사적 정세를 무시하고 그 원칙론만을 고수하려는 공식주의를 일컫는 말)로 마크스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경향으로 지금껏 이루어져 왔습니다. 여러 텍스트를 섬세하게 다루지 못한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투쟁적인 마르크스는 청년기에 해당합니다. 맑스의 노년의 시기를 조명한 이유는 마르크스는 노년기에도 연구를 활발히 하였고 청년기에 작업했던 연구를 수정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자본과 노동계급 투쟁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에 폭넓게 연구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를 새롭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노년의 시기를 연구하는 게 중요합니다.

첫 번째 예시로 1848년에 공산당선언은 마르크스의 청년기에 쓴 내용이고 이후 이건 역사적 사료로 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본 1권은 실제로 불어로 번역할 때 많은 부분을 수정하기도 했습니다. 마르크스를 글을 읽을 때 최종적으로 남길 부분과 수정될 부분이 어떤 것인지 고려해서 읽을 부분이 필요합니다.


마르크스는 생태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지구와 자연을 파괴한다고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현재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생태와 관련해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될 수 있습니다.

한편 기자였던 시절에 썼던 글은 조심스럽게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마르크스가 청년기에 돈을 벌기 위해 미국 <트리뷴>지에 유럽중심주의 글을 짧게 쓴 일에 대해 맑스 전체 연구에 어느 정도 무게를 가질지 의문입니다(마르크스는 유럽중심주의의 백인유럽남성 학자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습니다). 

또 마르크스는 여성해방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요. 자본주의가 여성을 억압하고 있지만 여성이 개별주체로 사회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사진제공: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강연 끝나고 책에 사인 받는 독자

오늘날 마르크스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으로 새롭게 마르크스를 만날 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날 참석해주신 <노동자연대> 신문에 정선영 기자님의 서평 덧붙입니다.


서평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 1881-1883년의 지적 여정》
풍부한 자료로 생생히 그린 마르크스의 마지막 2년

정선영 280호 | 2019-03-27 

기존 마르크스 전기들에서 그의 말년을 자세히 다룬 내용은 찾기 힘들다. 그가 말년에는 정치 활동을 거의 중단한 것처럼 서술하는 경우도 많다.

흥미롭게도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 ─ 1881-1883년의 지적 여정》은 마르크스 말년의 삶과 투쟁을 다뤘다. 저자 마르셀로 무스토는 캐나다 요크대학교의 사회학과 부교수로, 《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을 기초로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는 학자이다. 그는 여러 책과 마르크스의 서신, 노트 필기 등을 종합해 마르크스의 말년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마르크스는 이미 1880년 여름 의사에게서 “어떤 종류의 일도 삼가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신경계를 회복시켜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했다. 그의 아내 예니 폰 베스트팔렌은 암으로 고통받았고, 마르크스는 자신보다 더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를 돌봐야 했다. 아내는 1881년 말에 먼저 세상을 뜬다.

이 책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르크스가 지적 호기심과 이론적 통찰력을 잃지 않고, 새로운 연구를 발전시켰다는 것을 보여 준다.

특히 마르크스는 인류학과 수학을 탐구했는데, 인류학 연구는 《민속학 노트》라는 책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서 여성 차별의 기원, 국가에 대한 분석과 함께 인종차별적인 다른 인류학 보고서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확인할 수 있다. 《민속학 노트》는 엥겔스가 마르크스 사후에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쓰는 기초가 된다.

마르크스는 말년에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을 주의 깊게 보며 러시아에 대한 탐구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무스토의 책에서는 특히 러시아 농촌 공동체(옵시나)와 관련한 내용이 꽤 자세하게 서술된다.

당시 러시아에서 혁명적 인민주의자들은 농촌 공동체가 사회주의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본 반면,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농촌 공동체는 해체돼야 할 운명이라고 주장해 논쟁이 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해 마르크스는 1882년에 러시아어로 출간된 《공산당 선언》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만약 러시아에서의 혁명이 서유럽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신호가 되고, 그리하여 양자가 서로를 보완한다면, 현재의 러시아적 토지 공동 소유는 공산주의적 발전의 시작점으로 봉사하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은 마르크스가 스탈린주의 식의 기계적인 역사 발전 5단계설과 같은 도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마르크스는 진정 국제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혁명을 전망했던 것이다.

오해 걷어내기

일각에서는 마르크스가 ‘유럽중심주의, 오리엔탈리즘’적 관점이 있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사례와 더불어, 마르크스가 건강을 위해 요양했던 알제리에서의 경험만 봐도 그런 주장이 오해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는 알제리에서 쓴 편지들에서 아랍인들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묘사하지만, 유럽인들이 저지르고 있는 폭력과 학대에 대해서는 격한 분노를 표현한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상에 대한 온갖 왜곡을 비꼬며 이렇게 말했다 “확실한 것은 내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거요.” 마르크스 사후에 마르크스에 대한 곡해는 더욱 발전했는데,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오해을 걷어 내는 데 도움을 준다.

미국의 언론인 존 스윈튼이 말년의 마르크스를 인터뷰한 내용은 유명하다. 그는 마르크스에게 “존재의 근본 법칙에 관해” 물었다. 마르크스는 잠시 고민을 한 후 낮고 엄숙한 목소리로 답했다. “투쟁이죠!” 

마르크스는 기력이 존재하는 날까지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다. “나는 내 뒤를 이어 계속 공산주의 선동을 할 사람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말년의 마르크스에게서 영감을 얻고 싶다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런저런 왜곡에 맞설 근거들을 얻고 싶다면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참고로 이 책은 프랑스 사회주의노동당연맹의 선거 강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르크스가 프랑스 사회주의자들과 벌인 논쟁을 소개한다. 이때 마르크스는 강령에 최저임금과 관련한 항목이 포함되는 것에 반대한다. 그런데 혹여라도 당시의 논쟁을 맥락에서 떼어 내 오해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기본적으로 임금 인상 요구를 중시했다. 그런데 이 강령에는 “상비군 해체, 인민 무장” 등과 같은 요구가 들어가 있었는데, 이런 혁명적 강령에 최저임금 제도를 포함시키는 것이 걸맞지 않다고 봤기 때문에 반대했던 것이다.

<원문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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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동글동글봄

 스포츠로 본 러시아 현대사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 박원용 지음/산지니/2만5000원

 

 

건조한 책 제목과 딴판으로, 이 책 속의 세상은 ‘고온다습’ ‘흥미 상승’ 요소를 두루 갖췄다. 왜냐? 스포츠 세계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것도 ‘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라는 제목으로 옛 소련의 ‘스포츠 월드’를 비춘다. 일단 먼저 든 생각은 ‘이런 주제로 책을 쓸 국내 필자가 몇이나 될까’였다. 적어도 역사, 정치, 옛 소련, 스포츠를 두루 알아야 엄두를 낼 책이지 않은가. 역사학자 박원용(부경대 사학과) 교수는 관련 분야를 전공했고 연구해왔다. 스포츠가 정치 체제에 의해 어떻게 ‘활용·변형’되는지, 미국과 소련의 스포츠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등 다채롭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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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


박원용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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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

 

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이후 소련 정부는 새로운 지도 원리로 ‘신체문화’를 내세웠다. 육체를 단련할 뿐 아니라 음주·도박 등 타락한 생활방식을 일소하기 위함이었다. 박원용 부경대 사학과 교수는 신체문화와 올림픽이 미-소 냉전 시기 치열한 선전무대로 활용된 역사를 재조명한다. /산지니·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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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저자는 기존의 접근법에서 벗어나 조금은 '부드러운' 스포츠라는 소재를 통해 러시아 현대사를 소개한다. 그렇다고 소련 현대사의 전체적 조망을 포기하고 스포츠와 같은 미시적 영역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소련사회 구조의 특성상 스포츠와 같은 문화영역은 전반적인 통치 이념이나 정책의 방향과 분리하여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저자는 스포츠를 통해 러시아의 정치사회적 변화를 살피며, 1920년대와 스탈린 시대, 냉전 시대로 이어지는 러시아사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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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