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슬리퍼 
크리스틴 펠리섹 지음
이나경 옮김 
산지니 | 456쪽 | 1만8000원

 

언페어 
애덤 벤포라도 지음
강혜정 옮김 
세종서적 | 480쪽 | 2만원

 


먼저 가정을 해보자. 목격자가 없는 곳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살해됐을 경우, 가해자는 경찰에 붙잡혀 처벌받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나. 

또 다른 가정을 해보자. 내가 누군가에게 범죄를 저질렀다는 누명을 썼을 때,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내가 무죄임을 확실히 밝혀줄 수 있을까. 

최근 한국에 번역·출간된 <그림 슬리퍼>와 <언페어>는 이 문제를 나란히 이야기한다. <그림 슬리퍼>는 빈민가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을 통해 ‘보잘것없는’ 사람이 피해자가 됐을 때 받는 차별을 다뤘다. <언페어>는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제도가 원래 목적대로 정확히 운용된다고 해도 언제나 부당한 유죄 판결, 불평등한 대우가 발생할 수 있음을 실제 사례로 증명한다. 물론 두 책 모두 미국 상황을 다뤘지만 한국 사회라도 다를 것은 없어 보인다. <그림 슬리퍼>의 저자 크리스틴 펠리섹은 현직 기자이고, <언페어>를 쓴 애덤 벤포라도는 법대 교수이면서 변호사다.

<그림 슬리퍼>의 내용부터 보자. 미국 로스앤젤레스 사우스 센트럴에서는 1985~1988년 흑인여성 8명이 살해당했다. 범인은 피해자의 시신을 보란 듯이 도로에 버렸다. 피해자들은 모두 빈민가에 살았다. 경찰도, 정부도, 언론도 이 사건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책의 제목인 ‘그림 슬리퍼’는 연쇄 살인범의 별명이다. ‘범죄 전문 기자’로 일하던 펠리섹은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직접 별명을 지었다. 2008년 ‘LA 위클리’ 표지 기사에 처음 쓴 ‘그림 슬리퍼’는 ‘잠들었던 살인마’란 의미다. 살인범이 1988~2002년 긴 휴식기를 거쳐 다시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승사자(Grim Reaper)’와 발음이 비슷하게 만들었다. 펠리섹은 2006년에 처음 이 사건을 접한다. 첫번째 희생자가 발생하고 18년이 지난 뒤였다. 경찰의 수사과정을 계속 지켜본 펠리섹은 이런 물음을 던진다. “어떻게 20년간 반경 6㎞ 이내의 좁은 지역에서 소름 끼치는 연쇄살인이 계속될 수 있었을까.”

 

미국 사회의 사법체계는 사진 속 저울처럼 완벽하고 공평한가. <그림 슬리퍼>와 <언페어>의 저자들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한국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사회의 사법체계는 사진 속 저울처럼 완벽하고 공평한가. <그림 슬리퍼>와 <언페어>의 저자들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한국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는 빈민가에 사는 흑인 여성 피해자들에게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반면 같은 로스앤젤레스의 부촌 베벌리힐스 인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언론으로부터 집중 조명을 받고, 어머어마한 현상금이 걸린 뒤 순식간에 해결된다. 사우스 센트럴에 사는 피해자들은 ‘가난한 흑인 여성’이라 범죄의 표적이 되었고, 또 가난한 흑인 여성이라 수사 과정에서 뒷전으로 밀렸다. 2008년 펠리섹의 기사가 나간 뒤에야 ‘흑인 여성 연쇄 살인 사건’은 주목을 받는다. 범인 로니 프랭클린 주니어는 2010년 7월 검거됐고,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언페어> 역시 책의 제목 그대로 ‘불공정’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주제는 조금 다르다. <그림 슬리퍼>가 가난하고 힘없는 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노골적 차별을 다뤘다면 <언페어>는 사회 시스템 자체에 내장되어 있는 ‘부정의’를 말한다. 

저자는 실제로 벌어졌던 예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먼저 편견이다. 추운 겨울 길에서 한 남자가 쓰러진 채 발견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들은 옷에 묻은 ‘토사물’을 근거로 그를 술취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병원에서도 그는 ‘술이 깰 때까지’ 방치됐고, 뒤늦게 의료진이 두부 손상을 알아채 수술을 시작했지만 사망했다. 그는 저명한 기자였고, 길에서 강도를 당해 쓰러진 것이었다.

저자 벤포라도는 “관련자들이 정해진 규칙을 등한시하고, 빤히 보이는 우려사항들을 간과하며, 절차를 생략하고, 증거들을 무시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은 뒤 “대부분의 사람들은 ‘냉정하고 신중한 수사관’이 아니라 ‘극도로 제한적인 증거’를 근거로 속단을 내리는 데 능하다”고 말한다.

사법체계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오류와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목격자의 범인 식별 과정에서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것이나 강압적인 심문에 의한 피의자의 허위 자백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책에는 강간 피해자가 진범을 옆에 두고도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든 사례가 나온다. 

 

재판 과정에서 검사와 배심원, 판사들로 말미암아 발생할 수 있는 오류와 문제점들도 피의자에게 결정적일 수 있다. 검사가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피의자 측 변호인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면, 피의자는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우리가 지금까지 밝힌 모든 문제를 없앤다 해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끔찍한 학대, 잘못된 유죄 판결, 불평등한 판결이라는 문제들이 남게 될 것”이라며 “사법제도 설계 자체가 인간 행동에 관한 부정확한 가정 아래에서 만들어져서 그 자체로 불공평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어 “진정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 사형을 받을 만하다고 결론을 낼 때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숨은 힘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경향신문 홍진수 기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6212041005&code=960205#csidx0ab09569d8d8303b6757e17108cdb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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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슬리퍼
크리스틴 펠리섹 지음/ 이나경 옮김/ 산지니/ 456쪽/ 1만8000원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30여km 떨어진 ‘사우스 센트럴’은 흑인 거주 비율이 높은 슬럼가다. 1980~1990년대 이 지역에서는 강도, 마약, 살인, 그리고 갱단 범죄가 일상다반사로 일어났다. 그러니 1985년 세 발의 총을 맞고 후미진 뒷골목에 버려진 흑인 여성의 시신에 경찰이나 언론이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후 벌어진 10건 넘는 연쇄살인의 시작이었다. 언론이 ‘미모의 금발 여학생 실종 사건’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동안, 12년에 걸쳐 10여 명의 슬럼가 흑인 여성은 무자비하게 살해돼 거리에 내던져졌다. 범죄 전문기자인 저자는 이 의문의 연쇄살인마에 ‘잠들었던 살인마(The Grim Sleeper)’라는 이름을 붙이고 집중 보도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다. 그제야 흑인사회의 분노를 감지한 경찰은 서둘러 전담 수사팀을 본격 가동해 살인마를 쫓는다. 이 책은 10년에 걸친 연쇄살인마 추적기다. 그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잔혹한 범죄자의 실체만은 아니다. 피해자 가족이 겪는 참담함과 만인에게 공정하게 적용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의 민낯 또한 가감 없이 드러난다. 과하게 흥분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게 죽음과 슬픔, 그리고 형사들의 집념을 담담하게 전달하는 문체가 돋보인다.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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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슬리퍼
크리스틴 펠리섹. 산지니. 1만8000원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우범 지역 사우스센트럴에서 일어난 10건의 연쇄살인 사건을 파헤친 기자가 펴낸 논픽션 글이다. 가난한 흑인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경찰의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인종과 성별, 계급과 권력에 대한 이야기다.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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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슬리퍼 = 크리스틴 펠리섹 지음. 이나경 옮김

'피플'의 범죄 전문 기자인 저자가 로스앤젤레스의 우범 지역 사우스센트럴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을 추적한다.

1985년 흑인 여성 데브라 잭슨이 살해된 이후 열 건이 넘는 연쇄살인이 이어졌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빈민가 우범지역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부와 경찰, 언론은 사건을 외면한다.

'잠들었던 살인마'라는 뜻의 '그림 슬리퍼'(Grim Sleeper)로 살인마를 명명하고 이 사건을 파헤쳐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저자의 범죄 르포집이다.

산지니. 456쪽. 1만8천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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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슬리퍼 - 10점
크리스틴 펠리섹 지음, 이나경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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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죽인 살인마는 거리를 활보했다…

피해자가 흑인여성이었기에”

 

연쇄 살인마 기사로 범죄 검거 이끌어낸 작가 크리스틴 펠리섹

 

미국의 유명 주간지 피플의 범죄전문기자인 크리스틴 펠리섹이 21일 서울 코엑스 인근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서울국제도서전 참석차 방한했다. 홍윤기 인턴기자

법과 정의는 반드시 공평하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통용되듯,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에게 사법부는 유독 관대했다. 재판뿐만이 아니다. 범죄 발생 직후 수사 단계에서부터 공정함은 작동하지 않는다. 똑같은 범죄를 당했다 해도 피해자가 누구냐에 따라 경중이 갈린다. 피해자가 돈 많고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사람이라면 사건은 떠들썩하게 다뤄진다. 반면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일 경우엔 조용히 묻히기 일쑤다.

미국의 유명 주간지 피플의 범죄 전문기자인 크리스틴 펠리섹은 이 부조리를 정면으로 주시했다. 그는 20여년간 묻혀 있던 미국 로스앤젤레스 빈민가 일대에서 벌어진 흑인 여성 연쇄 살인사건을 추적했다. 최근 출간한 ‘그림슬리퍼’(산지니 발행)는 그 취재 기록을 담은 범죄 르포집이다. 23일 폐막한 2019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여름 첫 책’(도서전을 통해 국내 처음 소개되는 책)에 선정돼 방한한 그를 서울 코엑스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펠리섹은 “범인은 10명을 살해하고도 20년 간 거리를 유유히 활보했다. 미국 사회는 범인을 못 잡았던 게 아니라 안 잡았던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죽음 뒤엔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다”고도 했다.

사건의 골자는 이렇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사우스 센트럴에서는 1985~1988년 흑인여성 7명이 살해당했다. 피해자들의 가슴에는 총알이 박혀 있었다. 범인은 피해자의 시신을 쓰레기봉투에 구겨 넣어 눈에 잘 띄는 도롯가에 버렸다. 피해자들은 모두 빈민가에 살았다. 범죄 대상, 살해 수법, 시신 유기 방법까지 동일했다. 반경 6㎞ 지역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사우스 센트럴에서 20년 간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의 피해자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흑인, 여성, 빈민가에 거주했다는 점 등이다. 8번째 피해자인 에니트라 워싱턴은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그러나 경찰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밑바닥 인생들이 모인 사우스 센트럴에서 살인 사건은 늘 일어나는 일이고, 마약에 중독된 가난한 흑인 여성들의 삶은 ‘원래 비참하다’며 외면했다. 그렇게 묻혀 있던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06년. 펠리섹이 이 사건을 처음 기사화하면서다. 첫 번째 희생자가 발생한 지 21년이 지나서였다. 그 사이 범인은 3명을 더 죽였다.

펠리섹은 흑인 여성 살인사건의 진짜 범인은 취약계층에 대한 미국 사회의 방관과 외면이었다고 지적했다. “로스앤젤레스의 부촌 베벌리힐스에서 살인 사건이 터지면 난리가 나죠. 경찰, 언론, 정부 다 달라붙어 사건을 신속하게 해결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흑인 여성들의 죽음에는 피해자 가족 말고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살아서 ‘가난한 흑인 여성’이라 범죄의 타깃이 됐고, 죽어서는 ‘가난한 흑인 여성’이라 수사조차 외면당했어요.”

공권력의 불공정함을 깨달은 펠리섹은 기사를 통해서 범인을 잡겠다고 나섰다.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범인의 별명도 직접 만들었다. ‘그림슬리퍼(Grim Sleeper)’는 ‘잠들었던 살인마’란 의미다. 살인범이 1988년 범행을 저지른 뒤 긴 휴식기를 거쳐 2002년부터 다시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한 것에 착안했다. 피해자 한 명 한 명의 삶을 다룬 기사도 내보냈다. 피해 여성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이웃이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다.

반향은 컸다. 시민들은 분노하며 범인 검거에 손을 보탰다. 남편이나 남자 친구가 범인으로 의심된다고 적극적으로 제보를 해오는 여성들도 있었다. 수사 인력을 총동원한 경찰은 2010년 7월 범인 로니 프랭클린 주니어(67)를 검거한다. 그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펠리섹은 사회적 약자들의 죽음에 둔감해질수록 사회는 더 위험해질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살인마가 20년 넘게 대담하게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이 죽어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했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힘 없는, 아무도 모르고 넘어갈 사람의 죽음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한국일보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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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슬리퍼 - 10점
크리스틴 펠리섹 지음, 이나경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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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7일 월요일, "월요일에 만나는 문학과 비평" 1회 모임이 열렸습니다. ‘재난시대, 새로운 세대의 문학과 비평’을 주제로 김대성 문학평론가의 평론집 <무한한 하나>와 <대피소의 문학>으로 김대성, 구모룡, 김만석 평론가와 함께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
김대성 평론가(이하 김대성):

“오늘 이 자리에서 <무한한 하나>부터 <대피소의 문학>까지를 다 다루시겠다고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이 두 책은 비평을 쓰는 방식이나 관점이 달라지고 갈라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 변별성이 굉장히 의식적이거나 어떤 관점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차이가 나왔다기보다는 계속 쓰는 와중에 저도 모르게 변화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약간의 의식을 하고 쓴 부분도 있지만, 아마 대부분은 그렇게 쓰여진 것 같은데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읽고 쓰는 것들의 감각이 변화된 와중에 비평의 방식도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분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그 변화가 무엇이었는지 객관화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구모룡 평론가(이하 구모룡):

“저작이 개입해왔던 다양한 비평적 투쟁이 <대피소의 문학>에 많이 나옵니다. 주니어 시스템이라고 부를 만한 문학 제도 내에 있었던 강력한 선후배 구조, 청탁 시스템 , 젊은 어린 평론가들에게 쪽글, 서평들을 계속 쓰게 만들면서 어디 써먹을 수 없는 글을 계속 쓰게 만드는 시스템, 잘 아시다시피 신생에 관련된 잡지 편집위원 그리고 제도의 정지와 붕괴의 경험 등이 이 책에 많이 나옵니다.

이 투쟁은 단순히 국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3부에 가면 곳간이라고 부르는 실제로 활동하고 있는 영역들에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소규모 모임에 찾아가 만나거나 멤버들과 함께 일군 생활 예술에 대한 주장이 있습니다. “

 


김만석 평론가(이하 김만석):

“ 저같은 경우에는 시를 이야기하는 비평가의 태도가 소설에서도 나타난다는 것. 소설을 작품 전체를 두고 이야기를 풀어내어서 그 작품과 작가의 세계관이라던가 이런 것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비평가가 필요한 대목들을 시적으로 이렇게 선택을 해서 비평가의 목적, 대피소라는 이런 쪽하고 결부시키는, 자꾸 현장으로 가다 보니까 그러 세계에 없는 작품들은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이 두 개를 아울러서 김대성 선생이 한 번 자기 비평이 흘러온 과정을 한 번 우리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시면 오늘 오신 분들 처음 접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스스로 한 번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김대성:

“꼭 미학적으로 정연된 글쓰기만이 문학이 아니고 각자의 생활 이력 속에서 익힌 자질들이 있거든요. 그게 너무 사소해서 가까이 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데 가까이 가서 보면 되게 뛰어나고 비범한 태도들과 능력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기록하고 비평하고 의미화하는 작업을 지속하면서 '아, 이것은 기존에 있는 방식으로 읽어내는 게 아니구나. 이것을 일단 기록하고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리는 것이 그 자체가 비평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이론적이지 않고 텍스트 자체를 해석하는 게 아니라 그 현장에서 주고받았던 말들과 기운들과 에너지가 어떤 의미인지를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글을 써 나가면서 기존에 있던 작가들의 텍스트를 보는 관점들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그게 얼마나 잘 쓰고 얼마나 보편적인가 보다는 얼마나 그 사람의 결 그 사람이 품고 있는 희망을 담고 있는가가 달리 읽히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제가 비평을 쓰는 것들 만약에 변화된 게 있다면 이런 과정 속에서 나온게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



김대성:

“누구나 시대 감각이라는게 있고 동시대적 체험이라는 것도 저는 꽤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을 객관화시켜서 이론화하면 차이가 없는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문학적 체험이라던지 인식의 전환이라는 것은 동시대적, 동세대적 체험이 주는 효과가 되게 크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4.16이라는 동세대적 절망에 대한 체험은 저한테 대체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물론 그런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그전에 놓쳤던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문맥이 열린 측면은 있겠습니다만, 그 역할은 각자가 좀 해야할 부분인 것이 보편적 문맥으로 전환하는 것은 제 입장에셔는 조금 쉽지가 않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





참여자1:

“만약에 미디어 체험의 양식이 완전히 급변화해버린 조건 안으로 우리 사회가 들어왔고 그런 체험의 순간에 왔다고 치면 왜 문학이냐. 실시간으로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는 미디어 장치들이 훨씬 더 많을텐데 왜 문학을 통해서 그런 증언 언어들 혹은 그 증언과 언어가 놓여 있는 컨텍스트 등에 대해서 비평가가 그것을 독해해야 하거나 알고 해야 하는가. 혹은 이런 사정은 기존의 문학적 제도가 실제로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어줬던 제도적 에너지들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독서회, 말하자면 그것을 통해서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논리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



김대성:

“저는 그것에 대해서 왜 문학이면 안되냐 라고 얘기하고 싶은데요. 왜 이렇게 말씀드리냐면 지금 작가라고 하는 사람들, 지금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과거처럼 등단하고 매체에 글쓰고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더 작아진 것 같고요. 독립출판하고 텀블벅하고 집단적으로 작업하고. 오히려 그 동네의 작가. 그 마을의 작가. 이런 식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다 파악도 안돼요. 파악도 안되는 어마어마한 글쓰기 역량과 욕심과 그 표현의 욕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문단 문학이 그런 것들을 제어할 수도 없고 다 품어 안을수도 없어요. 말씀처럼 그게 왜 문학인가. 라고 꼭 문학이어야만 하는가 할 때 그 문학에 대해서 저는 왜 문학이 왜 문학이면 왜 안되느냐 라고 할 때 그 결이 좀 다른 것 같은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우리 시대의 문학들이 시사하고 있는 바는 우리 문학이 조금 더 다양한 층위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근대의 네이션을 형성할 만큼 커다란 이야기, 거대한 담론을 다룰 수는 없지만 개인의 이야기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고, 보다 다양한 담론을 품을 수 있는 다채로운 문학이 되었습니다. 근대문학의 종언 이후 생성된 소설들이 거대한 담론을 아닐지라도, 우리 시대의 소외된 이들, 무심코 지나쳤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사소하지만 새로운 담론을 형성해 내는 것이 바로 근대문학의 종언 이후 문학이 나아갈 방향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운명이 걸린 예언을 받고도 그 예언에 반하는 부산물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소설 또한 종말로 내몰리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사소하지만 다양하고 새로운 담론이라는 부산물을 형성해내고 있습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문학이 거대한 담론을 형성하지 못하게 되는 시점에서부터 종말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근대문학이 종언했다고 확언하거나 종말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문학이 생성하는 사소하고 다양한 담론들이 발전하여 이전 근대문학이 수많은 이들을 상상의 공동체속에 공감시켰던 것처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월요일에 만나는 문학과 비평이 그 담론의 첫 발걸음이길 바랍니다.


 

 

 

무한한 하나 - 10점
김대성 지음/산지니

 

대피소의 문학 - 10점
김대성 지음/갈무리

 

 

 

 

김대성

 

 

 

1980년 부산 출생. 2007년 계간 『작가세계』 평론부분에 「DJ, 래퍼, 소설가 그리고 소설」이라는 글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한국 노동자 글쓰기에 대한 박사학위논문을 쓰며 동아대와 한국해양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2013년 생활예술모임 <곳간>을 열어 활동하면서 제도 바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부대끼며 사는 삶으로 이행할 수 있었다. 2015년부터 생활글을 근간으로 <회복하는 글쓰기> 모임을 기획 및 진행하고 있으며 구성원들과 함께 『문이야, 무늬야』(chaaak, 2016)를 함께 썼다. 문화이론계간지 『문화/과학』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생활예술모임 <곳간>과 모임 <회복하는 글쓰기>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무한한 하나』(산지니, 2016), 『대피소의 문학』(갈무리, 2019)이 있다.

 

 

 

구모룡

 

 

 

1959년 밀양에서 태어났으며 대학과 대학원에서 시론과 문학비평을 전공하였다.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평론(「도덕적 완전주의―김수영의 문학세계」)이 당선된 후 문학평론가로 활동해왔다. 무크지 <지평>, 비평전문계간지 <오늘의 문예비평>, 시전문계간지 <신생>에 관여하였다. 지방-지역-세계라는 중층적 인식 아래 문학과 문화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저서로 『앓는 세대의 문학』, 『구체적 삶과 형성기의 문학』, 『한국문학과 열린 체계의 비평담론』, 『신생의 문학』, 『문학과 근대성의 경험』, 『제유의 시학』, 『지역문학과 주변부적 시각』, 『시의 옹호』, 『감성과 윤리』, 『근대문학 속의 동아시아』, 『해양풍경』, 『은유를 넘어서』, 『제유』, 『예술과 생활』(편저), 『백신애 연구』(편저) 등이 있다. 1993년부터 현재까지 한국해양대학교 동아시아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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