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를 처음 만난 곳은 시바 카페였다.

어쩌면, 처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여행의 시작에서 소설의 시작과 끝은 정해져 있었다. 작가의 처음이 시작과 끝 문장을 정해놓은 것이라면 그 안의 서사는 기획의 단계에서 벗어난 작은 오차조차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설가에게 소설을 쓰기에 최적의 공간과 환경이 주어진다면 모든 사람이 환호할 대작(大作)을 낼 수 있을까. 문학적 가치와 시의성, 대중성을 갖춘 베스트셀러가 되어 후세에 알릴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10만 연의 운문으로 이뤄진 마하바라타라는 서사시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코끼리 머리의 사람 몸을 가진 지혜의 신 가네샤, 인도 신화 속 그 존재는, 브야샤가 쉼 없이 쏟아낸 대서사시를 자신의 어금니를 뽑아 완성시킨다.

소설에서 가네샤는 끝없이 우리의 앞에 나타난다. 누군가의 목걸이에, 당신의 여행에.

이곳에서는,

소설 속 하나의 기둥이 되어 함께 인도를 걷고자 한다.

 

 

미완의 소설, 왠지 모를 이끌림에 는 소설 속 낯선 남자의 목걸이에 있는 가네샤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이설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낯선 곳, 낯선 향, 수많은 사람들이 를 향해 뻗는 손길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시바 카페에서 '나'를 바라보는 한 남자. 자꾸만 의 주변을 맴도는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의 가족은? 나의 친구는?

눈을 뜬 그곳은 하얀 벽지에 하얀 천이 둘러쌓인 곳,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프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는 곳은 맞는 것 같다. 하나씩 떠오르는 무언가가 낯설지만은 않다. 이설이 끝내 완성하지 못한 소설, ‘는 완성할 수 있을까.

 

 

서평을 쓰기 전에는 자신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이 작품을 평할 수 있겠다고. 서평이 애정을 가지고 객관적인 평을 하는 것이라 한다면, 필자는 잠시 손을 내려놓겠다. 이미 마살라라는 향에 홀려 객관성을 잃었으니, 그러니 애정 없는 문구란 더 자신이 없다. 시바의 밤, 라훌에게 달려가는 처럼, 나는 오늘도 마살라를 펼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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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방을 제공하겠습니다. 당신을 쓰기만 하면 됩니다. 가네샤처럼.”

 

소설은 표지에서 작가가 우리에게 살짝의 죠크를 준다. 맥거핀(MacGuffin effect)일까.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느낌의 비밀은 소설과 소설 속 소설이 교차되면서 긴장감을 유지한다.

 

 

자꾸만 꺼려지는 ‘M의 아내

처음에는 소설가 M과 이설이, 자기 안의 심리가 일으킨 부담감 때문에 도망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짧은 생각이 오해를 일으켰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건이 전개될수록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분명 있었다. M의 아내는 왜 그렇게도 소설가를 믿으며 헌신하는가. 그저 소설쓰기에만 몰두하면 된다는 그녀의 생각이 몇의 인생을 흔들고 있는가.

내 안의 작은 울림에도 책임감을 가지는 작가에게 M의 아내는 M이 가져야 할 또 다른 책임감이었다. M에게 중요한 것은 소설이 아니라 3시간 동안 글을 쓰는 소박한 삶이었지만, 그를 사랑한(사실 그의 소설을 사랑했다는 표현이 맞을까), 그녀로부터 모든 계획은 처참히 무너진다. 그녀 자신까지 무너져 내리고 있지만 전혀 인지하지 못함에 쉬이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이설은 어디에 갔는가. 어디로 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소설가 이설을 따라 는 어디에 도달해있나. 꽤나 매력적인 진은 이설을 부른다. 이설의 소설을 부른다. 가네샤가 될 이설은 진에게서부터 얼마나 멀리 도망쳐 갔을까. 진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도망칠 수 있을까. 소설을 쓰지 않는 지금, 이설은 행복할까.

 

 

 

 

 

단맛에 빠져 문장을 쓰지 못한 소설가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99

 

단맛은 마약 같은 것이라고 했다. ‘가 이설을 찾아야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왜 이토록 이설을 찾아 나선 것일까. ‘가 좇는 것이 이설이 맞을까. ‘가 말한 '이설이 취한 단맛'이라는 것은 라두경단 보다 달콤하고 매혹적인 것. 나는 어쩐지 그것이 뭐라고 확답 짓지 못하면서도 이설의 단맛이 낯설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단맛을 맛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스쳐간다.

이설에게 들어야 하는 이야기는 미완의 소설에 쓰지 않은 부분으로부터 시작된다. 단지 소설을 완성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쓰지 않은 부분에 이설은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누구로부터 소설을 쓸 것인지, 뒷이야기에 이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쫓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갠지스 강물처럼 탁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면서 M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나는 억울한 일을 겪고 궁지에 빠진 사람처럼 참혹한 M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고통을 느꼈다.”

-115

 

M은 소설 속 주인공이었고 사라지기도 했다가 나타나 를 따라다니며 추궁하고 몰아붙이는 귀찮은 존재였다.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는 궁금해야 했다. M은 그저 매일 같은 곳에 똑같은 옷을 입고 앉아 있는 남자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의 괴팍함이 를 움직이더니 어딘가 익숙한 두려움과 고통을 그에게서 느끼기 시작했다.

 

 

소음 때문에 소설을 쓰지 못했는지 소설을 쓸 수 없어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다.”

-231

 

사고 후 는 자아를 명확히 하지 못했음에도 본능처럼 글을 써야함을 알고 있었다. 머리는 기억한다. 다음 문장이 무엇인지. 무엇을 써내려가야 하는지. 이제 조금씩 현실 감각이 돌아오는 것 같음에도 는 다시 소설을 붙잡아야 할 것이다. 미완의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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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마살라1부와 2부로 빠른 전개 속, 유연함과 서성란 작가 특유의 여유를 가지며 진행된다. 복잡한 구조는 작가를 만나 그 어려움을 깨버리고 독자에게 그 무엇보다 빨리 서사와의 만남을 제시한다. 작가는 독자에게 바라지 않는다. 어떤 당부의 말이나 질문 없이 문장을 따라, 소설을, 인도를 걸어 나갈 수 있게 안내한다. 한 걸음 물러서 흐름 속에 빠져든 독자의 반응을 기대한다. 독자는 대답할 차례이다.

 

 

 

저자소개

서성란 

1967년 익산에서 나고 서울 사당동에서 자랐다. 서경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1996년 중편소설 「할머니의 평화」로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창작집 『방에 관한 기억』, 『파프리카』, 『침대 없는 여자』, 장편소설 『모두 다 사라지지 않는 달』, 『특별한 손님』, 『일곱 번째 스무 살』, 『풍년식당 레시피』, 『쓰엉』등을 출간했다.

 

책 소개

서성란 소설가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이다. 전작 <쓰엉>에서 베트남 이주 여성인 '쓰엉'과 도시에서 농촌 사회로 편입해온 '장', '이령' 부부의 삶을 통해 이방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씁쓸한 시선을 그려냈던 서성란 소설가가 장편소설 <마살라>로 돌아왔다.

전작에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었지만 미처 알아채지 못한 이주 여성을 다뤘다면, 이번 신작 <마살라>에서는 '글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를 이야기한다. 흔히 창작의 고통이라는 말을 한다. 창작의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는 작가들에게 소설을 쓰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쓰라고 하면 손가락이 날아다니듯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이 소설은 영감이 떠올라 작품을 써 대는 환상 속 소설가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을 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조건이 갖추어졌지만, 결국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사라진 소설가 '이설'을 찾아 낯선 도시를 헤매는 '나'의 이야기다.

 

 

 

 

 

 

 

마살라 - 10점
서성란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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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실버_ 2019.07.25 09: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서평입니다,, 읽는 동안 코끝에 '마살라' 향이 스치는듯 했어요.☺️❤️

  2. 날개 2019.07.25 1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작가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저도 이제 '인도'라는 나라를 생각하면 이 작품이 떠오를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산지니 출판사 인턴 이윤재입니다. 최근에 저는 만화『까대기』를 읽었는데요, 이 책의 저자 이종철 만화가 님과 인터뷰를 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서면으로나마 인터뷰를 할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채널예스

 『까대기』의 이종철 만화가님

 

 

Q. 작가님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신 첫 번째 책이 출간이 된 것인데요, 이전의 작품 활동과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까대기』가 출간되고 난 후에 기분이 어떠신지 소감과 작가님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A. 만화 『까대기』가 출간되고 책의 반응이 예상보다 좋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기쁘기도 했고요.

  올해 3월 초에 만화 원고를 마무리했습니다.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냈는지 잘 몰라서, 쉽게 원고를 출판사에 건네지 못했습니다. 플랫폼에 연재를 하거나, 이름이 있는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독자들이 나의 만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몰랐습니다. 책을 출간하고 생각보다 좋은 반응에, ‘내가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며칠 동안 『까대기』를 매일 다시 읽었습니다. (한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로요^^)

  『까대기』가 반응이 있다는 건, 사람들이 잘 알지 못했던 택배 현장에 우리와 같은 사람들의 노동이 있다는 걸 만화를 통해서나마 알게 됐다는 것이고 또한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노동 환경의 열악함에 공감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작가로써 책임감을 가지고 매체 인터뷰나 작가와의 대화 등을 통해서 내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노동 문제를 알리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Q. 이 책을 내기까지 택배 업계 동료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셨는데요, 자신의 이야기가 만화로 그려진 것을 보면 기분이 좋을 것 같거든요. 책이 나온 후, 동료 분들의 반응이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A. 만화에 잠깐 등장하는 캐릭터인 학원을 운영하며 까대기를 했던 ‘승호’ 형님을 얼마 전 우연히 만나게 됐는데요. 제 책이 나온 것을 알고 읽어봤다고 얘기를 하더군요. 책 잘 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승호’라는 캐릭터로 형님을 표현했다고 하니, 깜짝 놀라더군요. 그리고 산지니 출판사의 인터뷰를 작성하고 있는 오늘(7월 22일) 까대기 알바를 같이 했던 한 형님을 만나서 책을 선물했습니다. 아직 읽지는 않아서 조만간 소감을 듣기로 했습니다.^^

 

출처: 『까대기』p.199

 

 

  사실 까대기에 등장하는(가명으로) 인물들에게 책을 건네기가 조심스럽습니다. 혹시나 자신의 처지나 삶의 팍팍함이, 많은 독자분들의 응원을 받고 있지만, 정작 본인들에게는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최근, 만화에 등장하는 ‘강반장’과 작가의 말에 담긴 K 택배 지점장에게 다시 까대기 알바를 할 생각이 있냐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거절을 했는데요. 책이 출간된 후에 여러 제안들을 받고 있어서 주 6일을 출근해야 하는 까대기 알바에 온전히 시간을 투자하기가 힘든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괜히 하겠다고 말했다가 다른 일 때문에 자주 빠지게 되면, 같이 일하는 분들에게 피해가 가거든요. 까대기 알바를 하지 못하더라도 하차장에 한번 들려서 책을 건넬 생각입니다. 

 

 

 

 

 

 

다음으로 만화 내용에 대한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출처:  『까대기』p.187

 

후반전에서 주인공 ‘바다’는 시급제 아르바이트로서 받는 비인간적인 대우에 A 택배회사의 일을 그만둡니다. 그리고 ‘높은 시급만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말을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걱정하던 이전의 ‘바다’의 모습과 대비되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습니다.

Q. 이것은 내용 전개에서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했는데요, 이때 ‘바다’의 행동과 심정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여담이지만, 오늘 저녁에 만났던 형님과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만화에서는 ‘종범’이라는 캐릭터와 성향이 비슷해서 다른 택배회사 지점에서 만났던 한 살 어린 동생 ‘종범’(가명)이라는 캐릭터로 합쳐서 표현을 했습니다. 형님에게 그 사건에 대해 얘기를 했더니, ‘아~ 그 일?’ 하면서 웃더군요.

  형님과 같이 까대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점장의 무리한 요구에 그는 불만을 가졌고 항의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럴 때, 저처럼 지점에서 형님보다 오랫동안 일을 했고 나름 ‘에이스’ 아르바이트로 불리는 사람이 함께하지 못하면 그 형님만 피해를 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예상대로 지점장이 형님을 자르려고 하자, 저도 그만두겠다고 한 것입니다.

  실제로는 둘 다 그만두겠다고 말한 뒤에, 지점장이 점심값을 제공하기도 했고 청소할 구역을 줄여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관계가 그렇듯이, 마음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니까 더 이상 있고 싶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그 달, 월 말까지만 일하기로 하고, 다음 까대기 아르바이트와 같이 일을 하며 나름의 인계를 해주고 그만뒀습니다. 다행히 형님과 제가 그만둔 뒤에도 저희의 요구 (점심값과 청소)가 다음 아르바이트들에게도 적용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그때 항의하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건이 있은 후에는 까대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요구할 것들이 있으면 용기를 내서 말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야 함께 일하는 까대기 동료들이 피해를 받지 않고 약간의 처우라도 개선이 되거든요. 

 

 

 

 

 

 

책의 마지막에 ‘우리는 저마다의 벽을 깐다. 벽을 깐다. 함께 벽을 깐다.’는 말이 나옵니다. 저는 이 구절을 보고 작가님이 많은 에피소드를 통해서 결국 말하고자 한 것이 ‘함께 더불어 사는 가치’가 아니었을까? 라는 해석을 해봤습니다.

Q. 이런 ‘함께’라는 가치를 원래부터 중요하게 생각하신 건지, 아니면 택배 상하차 알바를 한 후에 느끼신 건지 궁금합니다.

 

 

A. ‘함께 벽을 깐다.’ 라는 대사는 알바를 하면서 문득 생각난 대사였습니다.

‘함께 더불어 사는 가치’를 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까대기 알바는 당연한 얘기겠지만 혼자 하기는 힘이 듭니다. 위험하기도 하구요. 11톤 화물차에 가득 실려 있는 택배를 하차하거나 상차할 때, 택배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거나 무너질 수가 있습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까대기를 한다면 정말 위험할 수도 있는데요. 왜냐하면 택배가 무너질 때,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까대기를 하면서 다치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까대기를 할 때,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고 도와줍니다. 그래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가령 “그쪽에 택배가 무너질 것 같으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조심해서 내려라.”, “이 박스는 너무 무거우니 같이 들자.” 하는 식이죠.

  택배뿐만 아니라 다른 일에 있어서도 혼자의 힘이 아닌 ‘함께 더불어 사는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함께 벽을 깐다.’ 라는 말을 마지막 대사로 넣은 것입니다.

 

 

 

 

 

 출처:  『까대기』p.33 이미지 편집

Q.  만화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그 이야기의 주인공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서 감동적이었습니다. ‘작가의 말’에 보면 책에 동료들의 이야기를 다 담아내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혹시 아쉽게 담지 못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A. 택배 기사들의 삶을 좀 더 다루지 못해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파손주의’라는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대학생 때 아빠가 돼서 택배기사가 된 분과 식당을 했었다는 광주 부부가 등장하는데 그분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특히, 광주 부부는 제가 그분들이 있는 레일 옆을 지날 때면 고생한다고 믹스커피나 음료수를 주시곤 했습니다. 그게 너무 감사했고 만화에도 넣고 싶었습니다.하지만 한정된 페이지에, 한 권의 책으로 이야기를 정리해야 했기 때문에 시놉시스에는 있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담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아쉬움은 있습니다.

  그리고 택배 물류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백마진’ 같은 이야기인데요. ‘소비자가 지불하는 택배비가 과연 택배회사에만 온전히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도 뺐습니다. 택배기사님들마다 백마진에 대한 입장이 조금씩 다르기도 했고, 택배시장을 비난하기에 앞서 ‘그곳에서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위로하자.’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입니다.

 

 

 

 

 

 

출처:  『까대기』p.267

 

만화를 보고 기억에 남는 것 중에 하나는 주인공은 아르바이트와 만화 준비를 병행하면서 경제적, 육체적으로 힘들어도 ‘만화를 포기할까,, 고향에 돌아갈까’라고 갈등하는 것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Q. 작가님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았다고 하신 만큼 작가님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실제로 서울에 정착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 권의 만화책을 내기까지, 작가님이 만화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A. 사실 서울살이를 하면서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힘들어서 고향에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대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요. 그저 매일매일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었습니다.

  ‘이번 달 월세를 내야 하는데... 학자금 대출 상환이 몇 달 연체됐는데...’ 등의 걱정과 압박이 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신없이 지냈던 것 같습니다. 만화에 등장하는 추운 겨울을 버틴 동백나무처럼요.

 

 

  그래도 원동력이라고 한다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투잡을 뛰면서 문득 드는 생각들을 휴대폰으로 메모했을 때는 ‘그래도 오늘 뭔가 작업을 하긴 했구나.’하고 위로가 됩니다. 아마 그런 조금의, 뭐라도 끄적이던, ‘창작과 기록’이 지난날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택배 노동 현장을 자세하게 묘사한 만화라는 장르의 매력을 빼놓고 말할 수 없는데요. 시각적 정보가 풍부한 덕분에 생소한 소재인 택배 노동 현장을 생생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Q. 작가님은 만화가로서, 다른 장르와 비교하여 만화가 특히 가지고 있는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만화는 다른 장르에 비해 읽기 쉽습니다. 재미있기도 하고요. 물론 모든 만화들이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만화는 그런 만화입니다.

  원고 작업을 할 때 ‘이 만화를 누가 읽어주면 좋을까?’ 하는 생각에 제가 첫 번째로 꼽은 독자는 ‘어머니’ 이었습니다. 부모님은 30년 가까이 고향에서 식당 장사를 하고 계신데요. 1년에 쉬는 날이 며칠 안 됩니다. 1년에 관람하는 영화는 두어 편이 채 안 되고, 미술 전시장을 가보거나 예술, 문화 활동을 하는 것은 그분들의 평생의 삶에 있어서 손에 꼽히는 일입니다. 책을 읽지 않는 것도 물론이고요. 자영업을 하면, 그렇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죠. 영화 ‘극한 직업’에 나오는 대사처럼 ‘목숨 걸고’ 장사를 하고 계시니까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대사를 쉽게 쉽게 풀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처럼 책이라는 매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더라도 술술 읽을 수 있게요. 독자들에게 ‘단번에 읽었다’라는 평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은데요. 만화가 가진 힘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도 궁금합니다.

 

A. 사람 사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네 삶에 있어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서, 노동을 빼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만들기는 불가능 하더군요. 그게 조금 서글프기도 하구요. 앞으로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갈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기회가 되어 산지니 출판사와 또 인터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작가님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어떤 질문을 만들어야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책을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본 덕분에 책을 더 풍부하게 이해했던 기회가 되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만화 주인공처럼,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년으로서 앞으로 어떤 삶을 선택할까? 라는 고민을 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귀한 시간 내셔서 인터뷰해주신 작가님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작품 활동도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까대기 - 10점
이종철 지음/보리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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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실버_ 2019.07.25 09: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까대기 알바가 힘들다는 건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만화로 보니 더 와닿는 것 같아요...! 작가님 말씀처럼 '만화가 가진 힘'이 아닐까 싶네요.

  2. 날개 2019.07.25 1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택배는 이제 사람들의 일상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내 물건이 오기까지 수 많은 사람의 지문이 묻으며 온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네요. 역시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주는 힘이 진실되고 강하다는 것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