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니평론선 · 15

구모룡 평론집

 

폐허의 푸른빛 비평의 원근법

 

 

 

“나의 비평은 푸른빛을 좇아온 날들이었다.”

시와 서사를 품는 비평의 원근법을 말하다

‘산지니 평론선’ 15권 『폐허의 푸른빛』. 여러 권의 비평서를 출간하며 ‘지방-지역-세계’라는 중층적 인식 아래 문학과 문화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온 구모룡 평론가의 새로운 평론집이다. 구모룡 평론가는 다양한 평문과 비평을 통해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문학 지향에 대해 살펴왔다. 이번 평론집에서는 21세기 한국문학과 지역문학을 이해하는 시각을 제시한다.

저자는 “문학도 비평도 이미 자본의 제단에 바쳐진 희생물에 불과하고, 한갓 유희로 빠지지 않고 여린 진정성에 기대면서 폐허의 시간을 버텨내는 일이 시가 된 지 오래”라고 말한다. 오늘의 문학과 비평은 이와 같은 역설의 시간에 처했지만, 저자는 결코 ‘평론’하는 것에 대한 좌절과 무너짐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학의 가치를 품고 키웠던 건 폐허의 시간이었다고 말하며, ‘푸른빛’을 띤 문학과 비평의 희망과 가능성을 주지한다.

 

 

시론부터 해양문학까지

비평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내보이다

이번 평론집에서는 시와 서사를 포괄하며 이론적인 전망을 드러내온 구모룡 평론가의 스펙트럼이 뚜렷이 드러난다. 저자는 시론은 물론이고 해양문학이나 지역학에도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왔다. 그 계기들은 이번 책 곳곳에 내재하는데, 특히 1부 「성찰과 전망」에서 두드러진다. 1부에서는 문학에 관한 원론적 질문부터 몸담고 있는 문단에 대한 평론가로서의 성찰까지 폭넓은 이야기가 담겼다.

2부 「묵시록의 시인들」과 3부 「폐허의 작가들」은 각각 시인의 시집과 소설가의 소설을 매개로 대화를 나눈 장이다. 주로 현재 활동하는 지역의 시인과 소설가를 중심으로, 그들의 소설이나 시집에 대한 단단하고 내공 있는 비평을 담았다.

부록 「나의 비평적 행보에 대한 회고」는 구모룡 평론가의 그동안의 비평 활동에 대한 보고서이다. 문학 평론가로서 걸어온 길을 회고하며, 비평집을 읽는 이에게 지역문학과 주변부문학에 대한 배경지식을 더한다.

 

 

 

 

‘지역에서 비평한다는 것은…

중심부와 주변부를 돌아보며 로컬이라는 시적 거처에 대해 고민하다

구모룡 평론가는 오랫동안 부산이라는 지방(lcoal)에서 비평을 하는 비평가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왔다. 저자는 1980년대 사회의 변화 속에서 중심주의의 폭력과 지방의 가능성을 동시에 보았지만, 한국사회의 중심과제 앞에서 지역모순은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지녔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러 냉전체제의 와해와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를 맞이하고, ‘중심부’와 ‘주변부’가 경계되는 현상을 본 저자의 고민은 깊어졌다.

중심부와 주변부가 경계되며 지역문학은 “서구 근대의 이미지를 좇다 침몰하거나 돌연 전통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모더니스트의 분열과 같이” 중심부 따라 하기라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이를 “자신의 터전을 망각하고 중심부의 그것을 가닿아야 할 보편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와 흡사하다고 말하며 그러한 태도를 경계한다.

그러나 동시에 주변이 자본과 제도의 차원에서 중심부로부터 소외되었다는 사실이, 지역문학을 규정하는 전제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전제에 기초하여 지역문학의 논리를 세울 때, 외부를 향한 선망과 분열을 되풀이하거나 문학적 낙후의 문제를 외부의 탓으로 돌리면서 자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처럼 이분법의 회로에 갇히지 않으려는 노력과 함께 지역 혹은 주변부에서 새로운 시각을 형성하려고 노력한다.

지역문학은 근대와 전통, 중심과 주변, 근대성과 식민성, 서구와 아시아, 문명과 자연과 같은 대립항들이 만드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생성의 공간, 희망의 공간으로 만드는 일에서 출발해왔다. 저자가 말하는 지역비평의 방향도 그것과 결코 멀지 않을 것이다.

 

책속으로 / 밑줄긋기

P. 69 교환관계가 지배하는 추상화 사회에서 세계는 근본적으로 비극이다. 그러나 시인은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다. 시인이 비극의 주인공이 될 때 그는 시를 버리고 역사 혹은 서사를 선택하게 된다. 시인은 역사의 무대에 선 주인공이 아니라 그러한 역사가 지닌 허위성을 아는 비극적 감성의 소유자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세계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작동하는 공간이 아니라 잡다한 사물과 수많은 생명체들이 유기적인 연관 안에서 공생 공존하는 장소임을 안다. 그에게 역사, 이성, 진보는 고통과 폭력의 다른 이름이다.

P. 232 여타의 장르와 달리 시는 자기를 말한다. 체험으로 전달하는 현상 그 자체에서 비롯한다. 아득한 유년을 말한다는 것은 실재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안의 부재를 끊임없이 표현하려 한다. 유년은 지금의 나(I)를 표현하는 과정이지 기억의 재현이 아니다.

P. 349 소설집 『맨밥』에는 다양한 형식의 소설 여섯 편이 실려 있다. 오랜 시간을 두고 발표한 작품들이지만 전반적으로 환멸의 서사라는 관점으로 읽힌다. 인간을 타락사관으로 인식하는 인간학을 견지한 탓이다. 생명의 세계를 이탈한 인공도시에서 인간은 욕망의 노예가 되거나 그 잉여가 될 수밖에 없다는 냉엄한 전망은 이복구의 소설을 어둡게 한다.

P. 375 황은덕의 소설에서 남성의 모습은 축약되어 있다. 남성이 주된 서술 대상이 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이보다 먼저 여성문제를 부각하려는 그녀의 의도가 작용한 데 기인한다. 그녀의 소설에서 여성은 많은 경우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거나 남성중심 사회의 제도적인 틀을 넘어서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의 주인공들이 보이는 패배는 여성의 위치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서술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좌절과 추락, 상처와 고통을 감수하면서 대지에 뿌리내리는 나무들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P. 377 기억 속의 일들은 상상력과 의지에 의하여 새로운 이야기로 거듭난다. 경험은 소설가에게 하나의 구실이자 실마리인데, 소설가는 이러한 구실거리를 찾아 자신을 온통 파헤친다. 창작은 자신의 기억이라는 재료를 통해 언어로 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그러나 경험이나 기억이 바로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이미 경험적 현실과는 다른 세계를 꿈꾸는 일이다.

 

저자 소개

구모룡

1959년 밀양에서 태어났으며 대학과 대학원에서 시론과 문학비평을 전공하였다.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평론(「도덕적 완전주의―김수영의 문학세계」)이 당선된 후 문학평론가로 활동해왔다. 무크지 <지평>, 비평전문계간지 <오늘의 문예비평>, 시전문계간지 <신생>에 관여하였다. 지방―지역―세계라는 중층적 인식 아래 문학과 문화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저서로 『앓는 세대의 문학』, 『구체적 삶과 형성기의 문학』, 『한국문학과 열린 체계의 비평담론』, 『신생의 문학』, 『문학과 근대성의 경험』, 『제유의 시학』, 『지역문학과 주변부적 시각』, 『시의 옹호』, 『감성과 윤리』, 『근대문학 속의 동아시아』, 『해양풍경』, 『은유를 넘어서』, 『제유』, 『시인의 공책』, 『예술과 생활』(편저), 『백신애 연구』(편저) 등이 있다. 1993년부터 현재까지 한국해양대학교 동아시아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목차

 

 

 

 

폐허의 푸른빛 

구모룡 지음 | 472 | 25,000원 | 2019년 930일

 978-89-6545-629-2 03810 | 신국판(152*225)

여러 권의 비평서를 출간하며 ‘지방-지역-세계’라는 중층적 인식 아래 문학과 문화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온 구모룡 평론가의 새로운 평론집이다. 저자는 “문학도 비평도 이미 자본의 제단에 바쳐진 희생물에 불과하고, 한갓 유희로 빠지지 않고 여린 진정성에 기대면서 폐허의 시간을 버텨내는 일이 시가 된 지 오래”라고 말한다. 오늘의 문학과 비평은 이와 같은 역설의 시간에 처했지만, 저자는 결코 ‘평론’하는 것에 대한 좌절과 무너짐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학의 가치를 품고 키웠던 건 폐허의 시간이었다고 말하며, ‘푸른빛’을 띤 문학과 비평의 희망과 가능성을 주지한다.

 

 

폐허의 푸른빛 - 10점
구모룡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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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팔 끓고 나서 4분간

199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정우련이 16년 만에 선보이는 소설집이다. 표제작을 비롯해 '처음이라는 매혹' '말례 언니' 등 소설 7편이 담겼다. 작품 속에서 화자의 시선은 다양하다. 천진무구한 어린아이일 때도 있으며, 때론 남편과의 끊임없는 언쟁에 소모감을 느끼는 중년의 여성이기도, 친구 앞에서의 모습이 전부인 청소년이기도 하다. 이는 모두 팔팔 끓거나, 끓었거나, 끓기 전 우리들의 모습이다. 표제작은 대학 강사와 수강생 '나'의 만남을 통해, 뜨겁지만 4분이 지나면 그뿐인 사랑의 덧없음을 그렸다. 산지니, 240쪽, 1만5000원

 

 

 

◇ 폐허의 푸른빛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구모룡 문학평론집이다. 21세기 한국문학과 지역문학을 이해하는 시각을 제시한다. 저자는 "문학도 비평도 이미 자본의 제단에 바쳐진 희생물에 불과하고, 한갓 유희로 빠지지 않고 여린 진정성에 기대면서 폐허의 시간을 버텨내는 일이 시가 된 지 오래"라고 한다. 구모룡 평론가는 오랫동안 부산이라는 지방에서 비평을 하는 비평가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왔다. 산지니, 472쪽, 2만5000원

 

뉴시스 신효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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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팔 끓고 나서 4분간 - 10점
정우련 지음/산지니

 

폐허의 푸른빛 - 10점
구모룡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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