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은 없다

 

사회이동이 우리를 어떻게 호도하는가

We Have Never Been Niddle Class

 

 

하다스 바이스 지음

문혜림·고민지 옮김

 

▶ 과연 중산층은 존재하는가?

우리는 결코 중산층이었던 적이 없다

 

금융화가 가하는 가장 심한 압박은
우리 자신의 착취에 우리가 투자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산층의 증가와 쇠퇴는 중요한 이슈다. 중산층의 몰락은 그 사회의 경제가 위험하다는 지표로 읽힌다. 하지만 사람들은 중산층을 산출하는 범위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 책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산층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목적을 가지는지 과감하게 풀어낸다. 저자는 우리는 결코 중산층이었던 적이 없고,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만 존재한다고 과감하게 말한다. 그 이데올로기 핵심은 바로 투자.

저자 하다스 바이스는 인류학자로 금융화 및 중산층과 관련된 문제를 연구해왔다. 이 도발적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독일, 이스라엘, 미국 등지에서 나온 문화기술지 연구들을 실례로 제시한다. 그간의 연구를 집약적으로 녹여낸 이 책은 중산층을 이데올로기로 규정하는 새롭고 논쟁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주식, 펀드, 부동산, 가상화폐, · 무형 자산에 열광적으로 투자한다. 은행과 증권사는 목청껏 투자를 홍보한다. 인플레이션으로 저축 이자가 낮아졌으니 은행에 돈을 넣어 손해 보지 말고 금융 자본에 투자해 이윤을 챙기라고 종용한다. 하지만 우리가 중산층이 되기 위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자본에 투자하는 행위는 과연 자기 결정적 투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이러한 핵심 논쟁을 이끌어가면서 모호한 중산층 범위와 중산층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사유재산 제도, 인적 자본 투자, 변화한 정치적 특성과 가치에 대해 상세히 규명한다.

 

▶ 투자를 강요받는 시대

우리는 우리를 착취하는 구조에 투자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사회 구조적으로 투자를 강요받지만, 주도적인 자기 결정으로 투자했다고 여기고, 이런 투자를 통해 어느 정도의 자산을 지닌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품었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에서 가계 재산을 늘릴 가능성이 점차 커지자 노동자들은 주택이나 주식, 보험, 학위, 전문자격증, 그 밖의 유무형의 재산에 투자하지만, 그들의 자산 가치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인해 손해를 보거나 이를 메우기 위해 계속 투자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런 끊임없는 투자로 인해 투자한 사람들은 지속적인 불안정과 부채, 강박적인 과로에 시달리게 된다. 엄청난 값을 치르지 않고서는 투자에서 손을 뗄 수도 없고 그로 인해 큰 손실을 얻게 되더라도, 투자는 자신의 결정에 의한 선택이기 때문에 투자의 모든 손실 역시 개인의 책임이라고 여긴다.

우리는 우리를 착취하는 자본에 투자하면서 자본의 몸집을 키워주지만 손실의 위험에 대해서는 개인의 몫으로 떠안아야 한다. 이 위험성에 대해서 자본주의는 함구하고 있다. 저자는 자본주의는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착취를 은폐할 뿐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 인적 자본에 과잉 투자, 결국 인간의 가치를 하락시킬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중산층이 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인적 자원에 투자한다. 학위를 받고 자격증을 따고 의미 있는 인맥을 구축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자녀 교육은 열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금융 자본에 투자하지 않더라도 자녀 교육에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뛰어든다. 내 자녀가 뒤처지지 않기 위해 가계 재산을 기꺼이 투자한다.

그러나 인적 자본에 투자할수록, 경쟁이 심화되고 우리는 더 많이 투자해야 하는 모순에 빠진다. 예를 들어, 개인이 자격증을 많이 취득하면 할수록, 오히려 자격증의 가치가 떨어지고 자격증을 많이 보유하는 것이 평균이 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따라잡기 위해서 인적 자본에 계속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가 자녀나 자신에게 투자했을 때, 투자의 결과가 사유재산의 증식으로 전환되면 좋겠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은 완전한 가치로 보상하거나 전환하지 못한다. 저자는 책에서 인적 자본 논리에 따라 가족의 유대 관계가 어떻게 재형성되는지 관찰하고 인적 자본의 과잉 투자와 축적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조목조목 밝혀낸다.

 

▶ 굿바이 가치, 굿바이 정치

 

마지막으로 저자는 중산층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정치와 가치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시위와 시민운동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낳은 정치에 대한 비판적 사상들에 대해서도 간략히 언급하면서, 미국에서 표명된 정치와 가치를 살펴보고, 뒤이어 저자의 문화기술지 연구에 기반하여 독일과 이스라엘에서 나타난 정치적 변화 및 가치에 대해 살펴본다. 이러한 사례들은 투자 주도적인 자기 결정이라는 중산층 이데올로기가 활동가들이 세우는 최고의 목표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준다.

저자는 우리가 자본에 투자하면 할수록, 사회의 중요한 가치나 공동의 이익보다는 내가 투자한 곳의 이익에 더 치중하게 되고, 사람들은 점점 사적 이익에 따라 재정립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가치와 정치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을뿐더러 우리에게 착취를 받아들이도록 강제하는 구조에 더 순응하게 된다고 분석한다.

 

 

첫 문장

(중산층으로서의) 중간계급(middle class)은 존재하지 않는다.

 

추천사

이반 아서(Portfolio Society: On the Capitalist Mode of Prediction 저자)
어쩌면 우리는 이미 중산층이 근거 없는 믿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어린아이가 산타클로스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방에 있는 어른들이 계속해서 착한 소년과 소녀가 선물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면, 그 믿음을 포기하기 어려울 수 있다. 중산층은 없다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다. 이 특별한 책에서, 하다스 바이스는 놀라울 정도로 영리하게 누가 선물을 나무 아래에 놓았는지뿐만 아니라 왜 그렇게 했는지까지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리고 매우 친절하고 예리하게 오늘날의 금융화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상기시키면서 동시에 해체한다. 이 책에서 얻는 교훈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지만, 우울감이나 향수를 자아내지는 않는다.

 

마이크 새비지(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 사회학과 교수・전(前) 국제불평등연구소장)

이 책은 새롭게 부상하는 사회계급 인류학에 절묘하게 기여하고 있다. 하다스 바이스는 투자와 축적, 재산 개념이 전 세계의 중산층 이데올로기의 매력을 어떻게 뒷받침하는지 보여줌으로써 폭넓은 시각을 드러낸다.

 

 

책속으로 / 밑줄긋기

 

P.63중산층이라는 명칭은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고 어떻게 사는지가 마치 개인적 선택과 노력의 결과인 것처럼 여기는 우리의 생각을 대변한다. 더욱이 그것은 마치 미래가 우리의 선택과 노력에만 달려 있다는 듯이 미래를 위해 희생하려는 우리의 헌신을 대변한다.

 

P.74 자본이 우리의 등 뒤에서 우리를 희생시켜서 축적을 이어가는 동안 우리는 입술을 꽉 깨물고 버티는데,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것이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장려하기 때문이다.

 

P.96 중산층을 지명하는 것의 주요한 이점은, 노동자들이 포부와 근면성, 진취성(enterprise)을 가지고 축적에 기여하기 가장 좋은 위치에 서게 하여 축적을 용이하게 한다는 데 있었다.

 

P.125 우리는 더 이상 일관되고, 안정적이며, 눈에 보이는 재산의 소유주가 아니다. 우리는 이제 운이 좋으면, 재산의 구성요소가 압축되어 있고 광범위한 축적 추세에 따라 가치가 변동하는 금융상품에 대한 공동 투자자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우리의 집, 자격증, 보험, 연금계좌는 안정의 올가미가 될 수 있다.

 

P.144 새로운 중산층은 대개 인적 자본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구 중산층과 구별된다. 경제의 구조조정 물결은 선진국의 재산 가치를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소유의 기회나 혹은 소유주가 불로소득 및 수익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감소시켰다. 사회의 부유한 구성원들은 다른 방법으로 그들의 이익을 확고히 하고 영속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들은 물질적 획득을 사회적 지위로 전환하고, 자녀들에게 우수한 교육을 받을 특권을 제공하기 위해 애썼다. 새로운 중산층을 과시하는 국가들은 옛 엘리트계급의 기원이 재산에 있었던 것과는 달리 중산층의 기원은 전문적 기술과 교육을 통해 일어나는 사회이동이 보장된 것에 있다고 본다.

 

P.149인적 자본이라는 범주는 자본주의 생산의 맥락에서만 의미가 있다. 사회적 관계, 기술, 취향, 역량을 표준화된 측정 가능한 단위로 바꿔서 이를 자본이라는 물질적 표현으로 나타낼 뿐만 아니라 여타의 물질들과 비교되고 대체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 역학이다.

P.191 가치를 통해 자신을 표명할 때, 우리는 더 안정된 토대에 서게 된다. 왜냐하면 가치는 현실보다는 신념에, 물질적 보상의 포기에, 그리고 실제 영향력에 얽매이지 않고 비슷한 성향을 지닌 타인들이라는 가상적 존재로 입증되는 보편성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시위, 자원봉사, 연대활동, 시민운동에서 가치는 우리의 약해진 힘을 발산할 강력한 수단을 제공한다. 또한 가치는 보상받지 못한 투자를 기꺼이 한 희생처럼 보이게 만들어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마치 더 고귀하고 비물질적인 이상을 추구하면서 실용주의를 초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치는 우리의 삶을 조직하는 구조의 경직성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만든다.

 

P.205 투자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이러한 자유로부터 힘을 얻지만,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명백한 불평등에 맞닥뜨리고 만다. 이러한 불평등은 일상의 고역을 넘어설 수 있는 수단을 지닌 사람들의 대응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그들이 지닌 가치는 무기력하고, 그들의 정치는 물질적 압박 및 인센티브와 얽히면서 방해를 받고 있다.

 

P.222 중산층에 암시되어 있는 자기 결정은 거짓이다. 우리가 인생을 계획하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관습과 관계를 조정하는 구조들은 우리의 욕구 충족과 꿈의 실현, 두려움 해소와는 상반되는 목표를 위해 나아가도록 설계된다. 그 목표들은 우리가 투자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임시적이고 수단적인 동맹을 맺게 하는 한편, 이익과 손실을 두고 서로 경쟁하게 만든다.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경쟁은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운동들 속에서 지속적이고 효율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서 앗아간다.

 

 

저자🌸

 

하다스 바이스Hadas Weiss

이스라엘 출신의 인류학자이자 학계의 유목민이다. 시카고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독일, 핀란드, 헝가리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활동하였고, 마드리드 고등연구소(Madrid Institute for Advanced Study)에 재직한 바 있다. 현재는 베를린훔볼트대학교 아시아 아프리카학과에서 프로젝트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의 문화기술지 연구는 이스라엘, 독일, 스페인에서 이루어진 금융화의 사회적 기반과 그 여파를 다루고 있으며, 다수의 학술지에 기재되었다. 이 책은 하다스 바이스의 첫 번째 책으로, 그간 진행한 문화기술지 연구들의 결과를 녹여내며 중산층을 이데올로기로 규정하는 과감하고 논쟁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문혜림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경상대학교 대학원 정치경제학과에서 사회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저서로 교육혁명가 파울로 프레이리, 역서로 거리 민주주의, 계급 이해하기(공역), 마르크스의 마지막 투쟁(공역), 희망의 페다고지(공역)가 있다.

 

고민지

경상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정치경제학과에서 사회학을 전공하여 프랜차이즈 생산구조와 노동의 불안정화: 베이커리 산업을 중심으로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학술지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등재된, 계급과 사회재생산론에 관한 해외학술논문을 번역한 바 있다.

 

목차🌸

 

감사의 말: 중산층-러브스토리

서문 우리는 결코 중산층이었던 적이 없다

1장 우리가 중산층을 이야기할 때 말하는 것들

2장 재산의 은밀한 매력

3장 너무나 인간적인

4장 굿바이 가치, 굿바이 정치

맺음말

역자 후기 : 투자를 강요받는 시대, 과연 중산층은 존재하는가?

찾아보기

 

 

 

 

<구매>

알라딘: 중산층은 없다 (aladi.co.kr)

 

중산층은 없다

하다스 바이스는 인류학자로 금융화 및 중산층과 관련된 문제를 연구해왔다. 이 도발적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독일, 이스라엘, 미국 등지에서 나온 문화기술지 연구들을 실례로 제시한다.

www.aladin.co.kr

 

 

『중산층은 없다』 - 사회이동이 우리를 어떻게 호도하는가

We Have Never Been Middle Class

하다스 바이스 지음 | 문혜림·고민지 옮김 | 272쪽 | 127×200

978-89-6545-721-3 03330 | 20,000원 | 2021년 5월 10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산층의 증가와 쇠퇴는 중요한 이슈다. 중산층의 몰락은 그 사회의 경제가 위험하다는 지표로 읽힌다. 하지만 사람들은 중산층을 산출하는 범위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 책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산층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목적을 가지는지 과감하게 풀어낸다. 저자는 우리는 결코 중산층이었던 적이 없고,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만 존재한다고 과감하게 말한다. 그 이데올로기 핵심은 바로 ‘투자’다. 

Posted by 부산에서 책 만드는 이야기 : 산지니출판사 블로그 리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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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파이채굴러 2021.05.17 16: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파이채굴러입니다.
    요기조기 구경다니다가 들어왔는데,
    포스팅 진짜 잘하시는거 같아요.😉😉
    저도 배워갑니다.
    시간되실때 제 블로그도 한번
    들려주세요.🤗🤗🤗🤗

  2. 동글동글봄 2021.05.21 1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라딘에서 화제의 책으로 주목해줬어요!

 취추바이 선집 

― 『신아국유기』, 『적도심사』

 

 

▶ 신생 소비에트러시아에서 전망을 찾고자 했던

중국공산당 초기 지도자 취추바이의 여정

 

취추바이(瞿秋白, 구추백)는 중국 공산당의 초기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러시아어 번역가이자 중국의 좌익 작가, 공산주의 혁명가이다. 중국근현대사상총서 열 번째 책으로 출간하는 이 선집에는 취추바이의 저술 가운데 신아국유기(新俄國遊記)적도심사(赤都心史)를 번역하여 실었다.

1920년 가을,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에 취추바이는 새로운 기회의 땅, 붉은 물결의 소비에트러시아로 향한다. 신아국유기는 저자가 중국에서 출발해 19211, 모스크바에 도착할 때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것이다. 베이징에서 출발해 하얼빈을 거쳐 모스크바로 들어가는 일정이었는데, 여러 가지 국내외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하얼빈에서 50일 이상 발이 묶이고, 이후에도 기차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바람에 2021125일이 되어서야 취추바이 일행은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브스키역에 도착한다. 이어 모스크바에 머물던 1년여의 기록이 적도심사(赤都心史)이다.

 

상하이에서 좌련(左聯)을 이끌던 1930년대 초 취추바이와 루쉰

 

몰락한 신사집안을 뒤로하고

새로운 사회에서 주체로 서기를 희망하다

 

1899년 장쑤성 창저우에서 태어난 취추바이의 집안은 대대로 서생과 관리를 배출했던 신사집안이었다. 그의 아버지 취스웨이는 전통 지식과 예능에 재주가 있었지만, 생활을 꾸려나가는 재주는 없었다. 몰락한 집안에서 생계를 걱정해야만 했던 취추바이는 학비를 내지 않아도 되었던 러시아어 전수관에 들어가 러시아어를 배우게 되는데, 이때 5.4운동이 일어나면서 러시아어 전수관의 학생대표로 학생운동을 지도하고, 이후 리다자오가 발기한 마르크스연구회에 참여해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를 공부하게 된다.

5·4운동이 퇴조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전망을 찾던 취추바이는 1917년 혁명으로 탄생한 신생 소비에트러시아에 눈길을 돌리고, 신보(晨報)의 특파원으로 모스크바에 가게 되는데 이때의 여정이 이번 선집에 실린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그는 햇수로 4년을 머물면서 이론을 공부하고, 현실을 관찰하여, 실천에 참여할 기회를 갖는다. 이후 1923년 소비에트러시아를 방문한 천두슈(陳獨秀)를 따라 귀국하여 공산당의 선전업무를 담당하면서 신청년(新青年), 선봉(前鋒), 향도(嚮導)등의 간행물 발행에 참여한다.

사회구조의 변화 속에서 신사 계급의 몰락은 필연적이었고 이에 따라 취추바이 자신 또한 존재를 상실하고 세계에서 부재하게 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취추바이는 왕조가 붕괴되고 새로이 나타난 사회에서 그 자신이 변화한다면, 자신은 옛 체제와 더불어 소멸할 존재였을지언정 새로운 사회에서는 존재를 유지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주체로서 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분투하다가 공산주의 혁명가로 생을 마감한다.

 

하얼빈을 출발하여 극동공화국을 거쳐 붉은 빛의 나라로

 

취추바이는 신보의 특파원으로 동지 2명과 함께 러시아로 떠나게 되는데, 신아국유기에는 출국을 결정하고 신변을 정리하면서 갖게 된 회한과 미래의 전망에 대한 불안감 등 자신의 심리적 변화와 더불어 중국 국내에서부터 극동공화국을 거쳐 모스크바로 진입하기 직전까지, 이동하는 도중에 보게 된 중국과 러시아 양국의 사회상이나 인간의 심리가 기록되어 있다.

192010월에 베이징을 떠난 취추바이는 하얼빈에서 발이 묶이면서 이 유기(遊記)’를 쓰기 시작하는데, 단순하게 보면 중국에서 러시아까지의 노정을 기록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저자의 사상적 경험이자 마음의 여정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92111월이 되어서야 탈고한 신아국유기에는 길 위에서 겪었던 모든 견문과 경험, 구체적인 사실, 마음의 여정 속 동요와 기복, 사상과 이론 전부가 들어 있다.

신아국유기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그는 저 멀리서 가냘픈 한 줄기로 빛나던 붉은 빛의 세계로 들어가 깨닫고, 그렇게 해서 얻어낸 빛을 다시 중국으로 가지고 와 단잠에 빠져 있던 중국의 인민들을 돕고자 했다.

나는 어쨌든 모두를 위해 광명의 길을 열고 싶다. 나는 가고자 하며, 또 나는 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금 일떠섰다. 나는 아향(소비에트러시아)으로 떠난다.(1920. 11. 4. 하얼빈)

 

혁명과 내전을 겪은 이론의 실험장 모스크바에서

다양한 계급과 계층의 사람을 만나다

 

적도심사는 저자가 모스크바에 머물던 1년간의 기록으로서 신아국유기에 이어서 쓴 글이다. 두 책 모두 무미건조한 기행문이 아니고 여행안내서도 아니며,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서 그 수준이 상당하다. 저자는 한 나라의 사회생활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법률이나 법령 몇 조항에 근거할 수는 없으며, 그 사회의 영혼을 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게다가 문학작품의 형식을 취해서야, 작자의 개성이나마 훑어볼 수 있는 법이다.”라고 말하면서 이 책을 문학성 있는 시와 산문으로 채웠다.

혁명에 성공한 소비에트러시아와 볼셰비키는 백군의 반란을 빌미로 전시공산주의(戰時共産主義)라는 급진적 사회주의경제정책을 시행했다. 취추바이가 소비에트러시아로 들어갔을 때는 이러한 전시공산주의에서 벗어나 막 신경제정책(NEP)을 시작하던 단계였다. 혁명과 내전을 겪은 소비에트러시아는 이론의 실험장이었다. 당과 국가 차원에서 다양한 국가적·사회적 실험을 전개하고 있었고, 소비에트러시아 사회의 다양한 계급과 계층의 인간들은 이에 반응하여 실천하고 생각하며 삶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개혁과 변화의 현장, 그리고 그곳을 살아가던 사람들을 접하고 관찰한 취추바이는 이를 기록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기록했다.

레닌과 트로츠키를 만났던 일, 러시아 귀족문화의 잔재를 경험한 일, 러시아식 사회주의, 러시아의 종교, ‘노동자에 대한 상념, 시베리아 유배 경험자와의 만남 등 취추바이의 글쓰기는 모스크바에서 그가 보고 들었던 모든 분야를 가로지른다. 그러면서도 중국인으로서의 의 존재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톨스토이 생가, 야스나야 폴리아나 방문

 

취추바이는 모스크바에서 톨스토이의 손녀와 교류하면서 톨스토이 생가를 방문하는 여행단에 합류하게 되는데, 적도심사에서는 이때의 여행기를 제법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30여 명의 여행단은 기차를 타고 툴라로 가서 야스나야 폴리아나를 방문한다. 여행에 동행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혁명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생가에서는 또 톨스토이의 친척들을 여럿 만나 톨스토이의 생전 모습을 들어본다. 톨스토이파들이 꾸리고 있는 코뮌에도 들른다. 혁명 후에도 톨스토이의 유적이 보존되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야스나야 폴리아나에 혁명의 파도가 거세게 밀려왔을 때, 소장파 농민들은 들고 일어나 톨스토이의 재산을 나눠 가지려 했지만, 노인들은 톨스토이의 됨됨이를 기억하고는 차마 그렇게 하지를 못했었다. 나중에 중앙정부가 인력을 파견하여 이 역사의 유적을 지킨 것이다.

 

러시아에서 병을 얻어 힘든 생활을 하고 있던 취추바이에게 야스나야 폴리아나 여행은 답답했던 마음을 확 풀어주는 일이었다. 그 시골에는 세계적인 위대한 대문호의 흔적과 향기가 아직 남아 있었고, 구시대의 러시아, 즉 귀족적 풍모가 아직도 풍광에 남아 있었고, 사람들의 꿈에 서려 있었다. 취추바이는 평민 농민과 지식계급의 감정에는 사회문제가 여전히 선명하고 깊게 뿌리 박혀 있었지만 지식계급 문제와 농민 문제는 노도와 같은 10월혁명에 힘입어 그 뿌리가 흔들렸고, 이제 점차 해결되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보면서 그날의 감동을 기술한다.

 

직접적인 경험과 사고에 바탕을 둔 취추바이의 고민을

지금 다시 검토하는 일의 의미

 

취추바이가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당시 소비에트러시아는 중국과 같은 농업국가 상태에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고 있었다. 취추바이는 여기서 소비에트의 사회를 보려 했다. 그가 행했던 사회의 관찰은 곧 사회 성원들의 다양한 삶과 그들의 심리를 보는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심리를 기록하는 것에 자기 글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소비에트 사회를 형성하고 있던 사람들노동자, 농민을 포함한 피지배층의 심리 기록을 통해 어떻게 사회적 주체가 형성되는지를 살핀 것이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취추바이는 초기 중국공산당의 실천을 조직하고 중국 사회주의 혁명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그러나 중국 혁명의 진행 과정에서 좌익모험주의로 비판받고 실권을 빼앗겼으며, 정치적으로 실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경험과 사고에 바탕을 둔 취추바이의 고민을 지금 다시 검토하는 일은 오늘날 중국의 사회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방향을 모색하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소비에트러시아가 막 건설되고 나서의 사회상과 이념적으로 교조화되기 전 중국 사회주의 운동의 실상과 그에 대한 대응을 알아보고, 그 가운데 간과되고 있는 지점, 놓치고 있는 지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문장 

북풍이 살을 에고 온갖 더러움과 추악함이 얽혀있는, 음침하고 어두운 곳, 나는 그곳에서 태어난 이래 빛 한 줄기를 보지 못했다지금까지 햇빛이란 것이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인지 알지도 못한다.

 

 책속으로 / 밑줄긋기 

📌 P.79 화는 천부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

📌 P.153 이 두 책은 모두 저자의 문학 작품으로 그 수준이 유치하기는 하지만 결코 무미건조한 기행문도 아니며, 여행안내서도 아니다! 한 나라의 사회생활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법률이나 법령 몇 조항에 근거할 수는 없으며, 그 사회의 영혼을 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게다가 문학작품의 형식을 취해서야, 작자의 개성이나마 훑어볼 수 있는 법이다.

📌 P.158 무거운 어둠이 평화롭고 고요히 대지를 감싸고 있었다. 높이서 타들던, 은촛대의 양초는 이제는 짧아져 흐릿한 빛을 낼 뿐이고, 부끄럼 많은 항아姮娥는 이미 저녁 화장을 지운 뒤였다. 주흥도 다하고 피곤에 전 무희는 허리에 힘이 빠져 흐느적대고 있었다.

📌 P.180 톨스토이 전시관은 우리 아파트에서 멀지 않았다. 전시관은 청결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소피아는 갖가지 그림과 사진을 설명해주었다. 톨스토이가 직접 그린 작은 그림에는 조랑말 한 마리와 성인 한 명이 있었다. 소피아는 말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그녀에게 주었던 장난감이라고 말했다.

📌 P.217 레닌은 대회에 출석하여 서너 번 발언을 하였다. 그는 독어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발언이 침착하면서도 과단성이 있었지만, 절대 대학교수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대신 진지하고 과감한 정치가의 모습이 더 자연스럽게 보였다. 한 번은 복도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 몇 마디를 나눌 수 있었다.

📌 P.278 이처럼, 나의 사명은 분명하다. “나는 장차 무엇이 되려는가?” 나는 가 인류 신문화의 배아가 되길 바란다. 신문화의 기초는 본래 역사적으로는 대치해왔으나 지금 시대의 초입에 이르러 서로를 보조하는 두 문화, 즉 동방과 서방을 연결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저자 

취추바이(瞿秋白, 1899–1935)

현대 중국의 정치가, 혁명가, 언론인, 문학가, 학자이다. 러시아어 전수관의 학생대표로 5.4운동에 참여하면서, 혁명가이자 정치가로서의 길로 들어섰고, 소비에트러시아 여행 이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혁명가로 살아갔다. 중국공산당 당 장정의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고, 중국공산당 중앙위원, 정치국 위원에 선출되었으며, 중앙위원회 총서기로서 무장봉기를 지도하는 등 혁명운동의 최고 지도자로서 활약했다. 언론인으로서 공산당의 선전업무를 담당하고 신청년新青年, 선봉前鋒, 향도嚮導등의 간행물 발행에 참여했다. 문인으로서 본서와 같은 문학성 짙은 글을 다수 발표하는 한편 중국좌익작가연맹中國左翼作家聯盟에 참여하면서, 마르크스주의문예이론의 보급과 좌익문학 건설에 공헌했다. 학자이자 교육자로서 상하이대학上海大學에서 사회학과 교수로 교편을 잡았으며, 중국어의 라틴화 방안 등 중국언어문자의 개혁과 대중화를 연구하고 실천하려고 했다.

 

 역자 

이현복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청말 新政時期 문학담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강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중국현대문학과 문화를 가르치고 있으며, 중국 사회주의운동과 좌익문학, 華人文學 등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논문으로 1920년대 중국 공산주의의 인간화와 혁명-瞿秋白의 이념의 현실화와 변용, 陳映眞 초기 소설에서 좌절과 절망의 의미-서사구조분석을 중심으로등이 있으며 역서로 혁명과 역사-중국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기원 1919-1937, 무중풍경(공역), 타이완신문학사(공역), 저서로 길 없는 길에서 꾸는 꿈 중국 신문학 100년의 작가를 말하다(공저)가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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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국유기(아향기정)

서언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발跋

적도심사

프롤로그

1 여명
2 무정부주의의 조국
3 전쟁과 노래
4 가을빛
5 코뮌公社
6 혁명의 반동
7 사회생활
8 「번민……」
9 하얀 달
10 러시아식 사회주의
11 종교적인 러시아
12 노동자의 부활
13 ‘노동자’
14 「사자死者의 집」의 환향인
15 Angel
16 귀족의 보금자리
17 모스크바의 붉은 물결
18 레닌과 트로츠키
19 남국 『혼이나마 돌아오시오, 강남은 애달프오.魂兮歸來哀江南』 유신庾信
20 관료문제
21 신新 자산계급
22 기아飢餓
23 영혼의 감상
24 민족성
25 “동방월”(중추절에 짓다)
26 돌아가세
27 지식노동
28 야스나야 폴리아나 여행기
29 “뭐!”
30 붉은 10월
31 중국인
32 집에서 온 편지
33 ‘나’
34 생존
35 중국의 ‘잉여 인간’
36 ‘자연’
37 이별
38 일순간
39 적막
40 새벽놀
41 표트르Pyotr의 성
42 러시아의 눈
43 미인의 소리
44 아미타불
45 신촌新村
46 바다
47 야우자Yauza강
48 새로운 현실
49 생활
미주

해제

 

 

 취추바이 선집 ― 『신아국유기』, 『적도심사』 

취추바이 지음|이현복 옮김|336쪽|148*212 

 978-89-6545-727-5 94820|28,000원

취추바이(瞿秋白, 구추백)는 중국 공산당의 초기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러시아어 번역가이자 중국의 좌익 작가, 공산주의 혁명가이다. 중국근현대사상총서 열 번째 책으로 출간하는 이 선집에는 취추바이의 저술 가운데 『신아국유기(新俄國遊記)』와 『적도심사(赤都心史)』를 번역하여 실었다.

 

알라딘: 취추바이 선집 (aladin.co.kr)

 

취추바이 선집

취추바이는 중국 공산당의 초기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러시아어 번역가이자 중국의 좌익 작가, 공산주의 혁명가이다. 중국근현대사상총서 열 번째 책으로 출간하는 이 선집에는 취추바이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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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부산에서 책 만드는 이야기 : 산지니출판사 블로그 제나wp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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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파이채굴러 2021.05.17 16: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파이채굴러입니다.
    요기조기 구경다니다가 들어왔는데,
    포스팅 진짜 잘하시는거 같아요.😉😉
    저도 배워갑니다.
    시간되실때 제 블로그도 한번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