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경향>에 저희 출판사 편집부원의 글이 실렸네요.^^

어려서는 내게 공간만이 필요한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 공간보다 시간이다. 나만의 시간. 나 혼자 내 맘대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 공간은커녕 그 시간 하나 얻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왜? 나는 무엇보다 아이들 땜에. 어려서는 시간은 내게 얼마든지 주어졌고 돈은 그 필요성이 생기지 않았고, 어쩌면 돈이란 걸 아예 몰랐고 다만 내 공간, 내 방만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이제 내게는 방도 방이지만 돈이 필요하다. 아무리 혼자만의 공간이 주어진다 한들, 그곳이 도시의 뒷골목에 있는 소위 말하는 쪽방이라면 나는 그 공간 자체가 서러워서 배기지 못하리라. 더 이상 설움 타지 않으려면 돈이,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어버렸다. 공간만이 필요하던 시대는 무구하게 아름다웠다. 공간에 더해 시간을 필요로 하던 시대도 그래도 아직은 푸르렀다. 공간과 시간의 확보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인식선상에 올라섰을 때, 인간은 이미 더 이상 아름다운 시기를 한참 지난 것이다. 그러나 돈이 필요한 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인 것을. 공간을 꿈꾸던 시기. 그 공간은 어쩌면 사실이기보다 환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공간은 얼마든지 꿈꾸어도 좋은 것이었다.(…) 시간은 꿈꾸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획득해야 한다. 시간을 따라잡다가 혹 우리는 공간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공간속에서 헤매다가 자칫 시간에게 버림받을 수도 있다. -황인숙 외, 『나만의 공간』, 개마고원, 206~207쪽.



현대인들의 하루는 나만의 공간과 돈을 위하여 시간을 저당 잡히는 생활의 연속이다. 언젠가는 내 마음대로 쓸 시간을 꿈꾸며 경쟁사회에서 하루하루를 허덕이며 보낸다. 하지만 우리가 꿈꾸는 풍족한 나만의 시간은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 ‘언젠가는’이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순간 나만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보자. 하루하루가 더 충만하고 행복할 것이다.


 

-경향신문(2010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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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쓴다』에 실린 김미혜 소설가의 「별을 향해 쏘다!!-온천천」 계속 이어집니다.

앞부분

녀석의 말이 장황하다 싶었는데 택시에 오르니 집에서 몇 분 걸리지도 않았고 설명이 소상해서 찾기도 쉬웠다. 조금 있으려니 녀석이 남자와 아이 하나, 그렇게 셋이서 긴 장대에 녹십자기를 매달아 든 모습으로 나타났다. 뜬금없이 웬 깃발씩이나? 하도 웃기는 장면이라 숨기지도 않고 웃고 있는데, 녀석이 정자로 올라오더니 다짜고짜 말했다.

온천천



“일주일에 1시간씩만 온천천에서 의료봉사 한번 해 볼라꼬. 오늘은 헌팅 삼아 나왔네요.”

개업의로 돈도 제법 번 녀석이 간소하나마 의료봉사를 하겠다는 것, 기특하기 짝이 없었다. 해서 반가운 마음에 일부러 억지소리를 했다.
“요새 환자 없는갑네? 그래서 외롭나?”
“참내, 생각이 그렇게 짧으니 결혼도 몬 했지. 내가 아무리 돌팔이라도 명색 의사 아인교. 국민건강을 위하야! 얌마, 인사해라. 우리 사촌 누나다.”

함께 의료봉사를 할 거라는, 옆에 섰던 덩치 큰 남자가 꾸벅 인사를 했다. 나도 인사를 했고, 달리 할 말도 없어 나무 난간에 앉아 하늘이나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푸른색으로 빛나는 큰 별 하나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어머! 영수야. 저기, 별 좀 봐라. 진짜 크네. 저 별은 색깔도 초록이다야. 저 별 내 꺼.”

녀석은 내가 손가락질하는 곳을 올려다보더니 으흐흐흐, 희한한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친구 되는 사람도 도무지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흥, 내가 유치하다 그 말씀이지? 이 나이에 별이나 찾는다고? 니들 생각은 참으로 가상하다만, 역시나 속물이로구먼. 사람이 별도 찾고 바람도 느끼고, 그런 게 인지상정 아닌가? 기분이 상한 나는 속으로 속물들을 실컷 비웃었다. 한데 속물 아비와는 달리 아이는 볼수록 귀여워서 볼도 만져 보고 이름도 물어보고. 잠깐이지만 친한 척을 했다.

녀석과 친구는 나는 안중에도 없는지 푸른 별이 어쩌고 야광이 어쩌고 하며 지들끼리 뭐가 그리 즐거운지 키득대다가 10시가 되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긴 장대는 그냥 장대가 아니라 못 쓰게 된 낚싯대라 깃발을 떼어 내고 착착 밀어 넣으니 막대로 변했다. 어떤 속물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기발하긴 했다.

온천천



조금 전, 영수가 전화를 해 왔다. 오늘 밤 온천천 벚나무 밑의 정자에서 정식으로 야간진료소를 개소할 예정이니 부디, 자랑스러운 첫 번째 무료환자 자격으로 참석해 달라고. 막상 나가 보니 별도 볼 수 있고 큰 무리도 아니어서 그러겠다고 했다. 한데 이어지는 녀석의 말이 참으로 가당찮았다. 지 친구 의사가 나랑 사귀고 싶어한단다. 하이고, 사람을 뭘로 보고.

“야야, 니도 잘 알다시피 나는 유부남 진짜 싫어하거덩? 멀쩡히 아들까지 있는 사람이 남의 처녀와 사귀고 싶다니, 지 정신 아이제?”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으니 아직 싱글로 산다며, 녀석이 버르장머리 없이 손위인 나를 한껏 비웃었다. 친구는 미혼이고 아이는 아들이 아닌 조카라고. 오잉? 그리고 연거푸 이어지는 녀석의 말. 내가 반색을 했던 온천천 하늘의 주먹만 하던 별은 별이 아니라 낚싯대 위에 달아 논 야광구슬이었다는 것. 허걱! 게다가 나이도 드실 만큼 드신 노친네가 멍청하게도 야광구슬을 별로 보는 그 순진함이 하도 귀여워 친구가 나랑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더라나? 기가 차서. 그래서 둘이 허리가 부러지게 웃었구나.

“오늘은 쫌 이뿌게 하고 나오소. 참참, 안경알 도수 높이는 것도 잊지 마시고. 크큭.”
민망하기도 하고 할 말도 없어 유구무언으로 있는데, 녀석은 제 할 말만 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뉘앙스가 묘한 웃음과 안경 도수 좀 높이라는 말에 다시 존심에 왕금이 갔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끊어진 전화기에 대고 나도 내 할 말은 다 했다. 온천천 정자에서의 야간진료? 내가 첫 환자 아니라도 고맙고 말고다.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연하남이 내 무식에 뻑이 갔다고? 그거야말로 좋고 말고다. 하나 아직은 때가 아인 기라. 알았나, 이 사람아! 아무튼, 온천천 기다려! 공짜 진료라니 양잿물이라도 마셔줄 테다. 아니, 너 때문에 넋 나간 남자까지 생겼으니 독약인들 마다하리. 온천천! 넌, 영원한 내 사랑이야.

그랬다, 인생은 내게 하기 싫어한 일도 득으로 돌아오게 하고 몸으로 느낀 고통으로 소중한 인연을 쌓게도 하고. 그러니, 하늘에 뜬 진짜 별아 받아라. 너를 향해 쏜다. 마음속 내 소망을!
내일은 그동안 무심히 지냈던 분들께 전화라도 한 통 드려야지. (끝)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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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에 북부경북 일대를 둘렀다. 첫 목적지는 안동의 도산서원.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남안동 톨게이트로 들어가 5분쯤 달렸을까. 뭐라고 뭐라고 쓰인 갈색 표지판이 휘익 지나갔다. 갈색은 문화유적지임을 표시하는 도로 표지판인데... 뭐였지?
우리의 첫 목적지는 도산서원이었지만... 좀 늦게 가면 어떠리. 원래 여행의 묘미는 이런 계획하지 않은 의외의 만남에 있다. 차를 돌려 <조탑동 5층 전탑> <권정생 선생 살던 집>이 있는 조탑동으로 향했다.

 

조탑동 오층전탑. 나즈막한 산자락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이 오층전탑은 전탑의 고장 안동의 상징이라고 한다.


마을 어귀를 들어서
5분쯤 가니 멀리 서있는 5층전탑이 한눈에 들어왔다. 예전에는 탑 주변이 사과과수원이어서 가까이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서만 구경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 사과밭은 없어지고 관람객을 위한 배려인지 주변을 연꽃밭으로 꾸며 놓았다. 아직 출입금지 울타리 같은 것도 없어 탑 가까이 가볼 수 있었다.


무수히 많은 벽돌로 쌓아올려진 이 오층전탑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는 전국에 화강암 삼층석탑이 대유행이었고 다른 형태의 탑들은 버린 자식 취급했는데, 북부 경북에서는 오히려 전탑을 발전시켜 우리나라 탑 역사에서 다양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마을 이름까지 조탑동이라고 불렸을 정도면 이 지역이 얼마나 고집스럽게 전통을 고수하려고 노력했는지 엿볼 수 있다.
 

당초무늬 전돌과 민짜 전돌


몸돌은 화강석으로 만들어졌고
, 1층 지붕돌부터는 길이 27cm, 두께 5.5cm의 벽돌을 어긋나게 쌓아올렸는데 벽돌 하나하나에 예쁘고 섬세한 당초무늬가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1917년 이후 여러차례의 보수를 거치면서 '보수용 전돌은 민짜로 했으니 이 전탑의 이미지는 완전히 바뀐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탑 윗부분은 모두 없어져 멀리서 탑신을 보면 뭉툭해 보이는데, 가까이서 위를 올려다보면 웅장해 보인다. 수많은 벽돌을 어쩜 이렇게 쌓아 올렸는지 무척이나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조탑동 오층전탑의 인왕상


조탑동 오층전탑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1층 몸돌의 감실을 지키고 있는 두 분의 인왕상 모습이다. 법계를 수호하는 경호실장급의 이 신상 두 분은 무서운 통방울눈에 태권도의 공격과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공격하는 분은 입을 벌리고 방어하는 분은 입을 다문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을 이른바 아상과 음상이라고 하는데, (중략) 조탑동 오층전탑의 인왕상은 무섭지도 위엄스럽지도 않고 오히려 귀엽기 짝이 없다. 사람을 겁주거나 놀라게 하기는커녕 꿀밤 한 대 먹이지도 못할 애기주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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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나의문화유산답사기3


<몽실언니>의 작가 권정생 선생님
5층전탑을 뒤로 하고 권정생 선생님 집을 찾아 나섰다. 마침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께 권정생 할아버지 집이 어디냐고 여쭸더니 '오두막 한 채 있는데 별로 볼 것도 없다'고 하시며 길을 가르켜주셨다. "그 집 보러 많이 온다. 하루에 관광버스가 3~4대씩 올 때도 있다"고 덧붙이셨다. 마을 끄트머리에 정말 대문도 없는 허름한 오두막이 우리를 반겼다. 주인 없음을 하소연이라도 하는듯 마당엔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우리에겐 <몽실언니>로 잘 알려져 있는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이 글을 쓰고 텃밭일도 하면서 조용히 말년을 보내신 곳이다. 권정생 선생님은 동네에 있는 일직교회에서 종지기로 일하기도 하셨단다. '그 망할 놈의 전자 차임벨이 나와' 실직하기 전까지 말이다.

권정생 할아버지 살던 집


평생을 얼마나 검소하게 사셨는지 집을 보니 느껴졌다. 재작년에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에 동네 사람들은 두 번 놀랬다고 한다. 성치않은 몸으로 종지기나 하면서 쓸쓸하게 사는 노인이거니 했는데, 전국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문상객들때문에 한번 놀랐고, 고인이 남긴 거액의 유산때문에 또 한 번 놀랐다고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셨으니 인세 수입만 해도 어림짐작이 가능하다. 돌아가시기 한참 전에 유언장을 미리 준비해놓았는데, 전재산을 북한 어린이와 불우한 아동들을 돕는데 기부한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결혼을 안하고 평생을 혼자 사셨지만 형제 자매등 가족들은 있었을텐데, 유족들이 유산으로 고민하지 않도록 생전에 깔끔하게 정리를 다 해놓으셨던 거다. 권정생 할아버지가 살던 집을 보려고 하루에도 관광차가 3~4대씩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을 찾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이번 주말엔 <몽실언니>를 꼭 읽어봐야겠다.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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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아니카 2009.09.10 1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저기 마당에 평상은 작년에는 없던 건데...
    찾아오는 사람이 많으니 잠시 쉬어가라고 마련했나봅니다.

    • 산지니 2009.09.10 1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랬나 봅니다. 저희도 수돗가에서 세수도 하고 평상에 앉아 쉬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어느날 시립도서관에서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책 많이 읽은 시민'으로 뽑혔으니 상을 받으러오라고. 남편은 얼떨떨해했다. 가끔씩 책을 빌려 보긴 했지만 '다독상' 수상자 명단에 들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뭔가 착오가 있었겠지...

출판사에 들어와 북디자인 일을 하면서 예전보다 몇배로 책을 많이 보게 되었다. 남편 명의로 된 시민도서관 가족회원카드로 한번에 최대 15권을 빌릴 수 있다. 대여기간은 2주. 15권중 2~3권은 내용까지 꼼꼼히 보지만 나머지는 직업이 직업인지라 대부분 겉모양을 열심히 살핀다. 책의 판형, 표지는 어떤 종이를 썼고 본문 편집은 어떻게 되어 있나, 무슨 색을 썼나 등등. 매달 30권씩 꼬박꼬박 1년(360권)을 대출더니 도서관에서 상 받으러 오라고 연락이 온 것이다. 책을 읽은 게 아니고 열심히 보기만 한 것이라 내심 좀 찔렸지만.  그래도 상이란 걸 받아본 지가 언젠지 기억도 안나는데 이게 왠 상이냐 하며 가서 받아왔다. 거금 삼만냥어치의 문화상품권도 덤으로.

요즘 한비야의 새책 <그건, 사랑이었네>가 화제다. 책을 보면 한비야는 1년에 책을 100권 가량 읽는다고 한다.  여고 1학년, 열일곱 살 때 잘생긴 총각 국어선생님의 책략 덕분에 <1학년 필독 도서 백 권 읽기>를 급우들과 경쟁하면서 실천한 게 계기가 되어 중년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1년에 백 권 읽기"를 해마다 달성하고 있다고 한다. 외국에서 국제구호활동을 하거나 여행할 때 빼곤 말이다. 1년에 백권이면 대략 1주일에 2권. 헉!

고등학교 때 생긴 독서 습관이 내 인생을 얼마나 풍성하고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것이다. 책을 통하지 않고 어떻게 개미와 우주인, 천 년 전 사람들과 천 년 후의 사람들을 만나고 또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녹아 들어가고, 그들의 머릿속을 낱낱이 분석할 수 있단 말인가? 책 읽는 재미를 알고 난 후부터 정말이지 나는 심심하다는 단어를 모르고 살고 있다. 거대한 호수에 빨대를 꽂고 있는 듯 세상의 지혜와 지식과 이야기에 목마르지 않게 살고 있다. 이런 놀랍고도 멋진 세상을 알게 해준 국어 선생님과 여고 시절 단짝 친구가 일생의 은인이다. - <그건, 사랑이었네> 본문 중에서

1년에 책을 백 권씩 읽는 사람의 삶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생각했다.
나도 어릴 때부터 이걸 실천에 옮겼으면 내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지만 나이들어서라도 철이 들어 다행이다. 책읽기의 즐거움을 뒤늦게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렸을 때도 책을 싫어한 건 아니지만 열심히 보진 않았다. 그땐 시간이 나면 뭐하고 놀까를 먼저 생각했지 무슨 책을 볼까 하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혼자 있는 시간이나 남는 시간이 두렵지 않다. 재밌는 책, 봐야할 책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선 엊그제 제본소에서 내려온 따끈따끈한 신간 '만들어진 점령 서사'부터...

만들어진 점령 서사
 

점령군의 PX로 변한 도쿄 긴자

1945년 패전후 일본은 연합국(실질적으로는 연합국의 우두머리인 미국)의 점령하에 놓이게 되는데, 이는 일본이 건국 이래 처음으로 당해본 피지배 경험이었고, 점령기간 동안 일본인의 삶에 미국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당시의 일본 문학작품을 통해 들여다 보는 책이다. 타국에 의한 피점령 기억은 오늘날까지도  일본인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해방 이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직, 간접적 영향을 받으며 일본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만들어진 점령 서사>가 던지는 내용이 단순히 이웃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책소개 더보기

서장 <점령과 문학>

1장 <미어米語의 탄생>
2장 <전후 일본과 미국의 젠더적 관계>
3장 <‘재일조선인’이라는 중간자>
종장 <교차의 장場, 오키나와>

만들어진 점령 서사 - 10점
조정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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