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니 북투어] 타이베이 어둠여행, 이곳은 어디? - 3일차 장소 안내

 

 

정부의 박해와 철거에 대한 항의의 표현을 이뤄진

무용가들의 '우리 집은 공중에 있다' 공연 모습

 

 

차이루이웨 무용연구소(蔡瑞月舞蹈究社)

 

차이루이웨(蔡瑞月)는 대만의 현대무용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으며 현대무용의 전파에 힘쓴 대만 현대무용의 어머니이다. 1921년 타이난(台南)에서 태어나 16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현대 무용가인 이시이 바쿠(石井漠) 밑에서 무용의 기초를 배웠다. 배움을 마친 후에는 귀국하여 무용에 모든 것을 다 바치면서 현대 무용의 개념을 대만으로 도입하였다. 차이루이웨는 ‘인도(印度)의 노래’, ‘우리는 우리의 대만을 사랑합니다’ 등 500여편의 현대무용을 창작하였다. 또한 발레, 민족무용, 대만 민속무용 등 다원화된 무용을 결합하여 대만 현대무용의 어머니로 불려지게 되었다. 차이루이웨 무용학원은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는 건물로 일제시대에는 관료 기숙사였다. 당시 타이베이에는 다양한 등급의 기숙사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목조로 지은 일본식 주택형식을 따른 것이었다. 1925년 전후에는 수 십 동을 연결하여 만든 목조 기숙사가 중산북로(中山北路)에 지어졌다. 차이루이웨 무용학원도 당시에 지어진 것으로 그 구조를 보면 일본 판임관(判任官 ; 일제시대 하급관리)의 숙소로 쓰였고 1953년에는 차이루이웨의 집이자 무용창작 및 창작무용 연습교실로 사용되었다. 이곳은 후에 무용교실로 바뀌었다. 비록 화재를 겪었으나 1999년에는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이곳을 대만 현재무용이 뿌리내린 곳으로 인정하였고, 이에 다시 재건하기로 결정하여 이곳을 개인 소유하려 했던 건설업자들에게서 벗어나 고적으로서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

 

 

타이베이 친다오관의 주요 건물

 

 

▶ 치둥가 일본식 기숙사(齊東街日式宿舍)

 

치둥가(齊東街)는 청대에 산반차오가(三板橋街)로 불리며 맹갑과 석구(錫口 ; 現 송산(松山))를 연결하는 중요한 ‘쌀의 길(米道)’로써 타이베이 성내 지역에 식량과 석탄 및 각종 생필품을 공급했다. 일제시대 타이베이의 개발은 점차 동쪽으로 확장했고 치둥가는 사이와이정(幸町)에 편입됐다. 당시 치둥가 및 치남로(齊南路) 일대에는 1920년부터 1940년 사이에 지어진 많은 관료 기숙사가 존재하여 ‘사이와이정 관료기숙사촌’으로 불렸다. 이 곳의 기숙사는 총독부의 관리 아래에 있었으며 8개의 등급을 나누어 거주토록 했다. 직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좋은 기숙사를 배정받게 된 것이다. 치둥가에는 2급 이상의 관료들이 머무는 관사가 있었다. 현재 타이베이 친다오관(臺北琴道)이 있는 건물은 보존 상태가 가장 훌륭하고 규모도 가장 크며 관사의 위계 또한 가장 높았다. 2010년에 타이베이시 문화국에서는 건축가 쑨치롱(孫榕)에게 수리 복원을 맡겼으며 현재 시 지정 고적 및 역사건축물로 지정되어 있다. 건물 밖에는 시에서 보호하고 있는 오래된 나무 50여 그루가 서 있고 녹음이 짙어 옛 정취를 한층 더 느낄 수 있다.

 

 

화산문화창의공원 정면

 

 

▶ 화산문화창의공원(華山1914文化創意業園區)

 

화산문화창의공원은 원래 1914년 일본방양주식회사(日本芳釀株式會社)에서 만든 술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국민당 정부에서 공장을 접수하여 대만성전매국타이베이양조공장(台灣省專賣局台北酒工廠)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과 도식확장으로 인해 주변 인구 밀도가 높아지고 환경문제가 대두되자 양조장은 1987년 타오위안(桃園)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술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는 흔적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데 들어서는 입구 3층 벽돌 건물은 쌀로 빚은 곡주를 위한 공간으로 시멘트를 얽어서 짜놓은 모양을 하고 있고 여러 차례 보수되면서 건물마다 높이가 다를 뿐만 아니라 건축 양식도 차이가 있다. 현재 이곳은 타이베이 개발 역사를 생생히 보여주는 공업 유적지가 되었으며 지금은 이름을 바꾸고 복합문화창작공간, 예술단지로 다시 태어났다. 단순하게 지어진 공장 건물과 두꺼운 담장, 높이 솟아 있던 창고는 예술작품 전시, 공연, 특색 있는 식당 등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최근 몇 년 동안 대만 디자이너 주간, 심플라이프 페스티벌, 음악회 등의 행사를 열면서 타이베이 문화예술계의 중요 장소가 되었다

 

 

▶ 박애특구(博愛特區)

 

박애특구(博愛特區)는 타이베이 중정구(中正區) 안의 총통부를 중심으로 하는 구획된 특별지역이다. 이곳에는 총통부, 행정원, 사법원, 외교부, 법무부, 최고법원, 타이베이 지방법원 등 주요 정부기관이 모여있는 곳으로 대만의 정치 중심구역으로 불리는 만큼 대만 계엄령시기부터 군 당국이 구획하여 ‘타이베이시 박애특구 경비구역’으로 특별 관리하고 있다. 때문에 이곳을 중심으로 항공법 및 건축법 등 많은 규제들이 따른다. 현재 대만 정치의 중심구역인 즉, 일제시대 당시에도 정치 중심구역이었기 때문에 많은 일제시대 건축물들이 위치하고 있다.

 

 

▶ 아스토리아 카페(明星咖館, Astoria Café)

 

러시아 혁명 이후 황실 군관 Elsne艾斯尼가 상해로 망명하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동향(同鄕)인 Burlinsky布爾林가 상해에 ‘명성카페(明星咖館)’를 개업한다. 후에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건너올 때 같이 건너와 18세의 졘진주이(簡錦錐)와 나이를 뛰어넘는 우의를 다진다. 그리고 布爾林을 포함한 몇몇 동향인들과 1949년 우창가(武昌街)에 ‘명성 서양과자점(明星西點麵包廠)’을 개업하고 그 2층에 ‘명성카페’의 문을 열었다. ‘명성(明星)’이라는 이름은 ‘Astoria’에서 왔는데 Astoria가 러시아 말로 ‘우주’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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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딘타이펑 鼎泰 (2일차 점심으로 먹을 예정이에요!)

 

1958년 중국 산서성 출신의 양빙이(楊秉彝)가 식용유를 판매하기 위한 기름 도매업으로 시작했다. 샤오롱바오(小籠包)의 판매는 식용유의 매출이 침체되자 1972년에 부업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 후에 딘타이펑의 샤오롱바오는 지역민들에게 인기가 있게 되었고 1980년대에 본업이었던 식용유 판매를 중단하고 샤오롱바오 전문 식당으로 장사를 바꾸게 되면서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1993년 미국 『뉴욕 타임즈』에 소개된 ‘세계 10대 레스토랑’으로 선정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다. 한국에는 2005년에 서울 명동에 처음으로 진출하였다.

 

 

린이슝 가택 살인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쌍둥이 량쥔과 팅쥔

 

 

▶ 린이슝 가택 살인사건(林宅血案)

 

1980년 2월 28일 발생한 살인 사건으로 사건의 피해자는 린이슝(林義雄)의 쌍둥이 딸과 모친이다. 당시 린이슝은 메이리다오 사건(美麗島事件)에 연루되어 구류된 반체제 인사였기 때문에 이 사건은 중화민국 내외를 경악하게 한 매우 민감한 사안이 되었다. 현재까지 이 사건은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 있지만 중화민국 사회에서는 이 사건이 국민정부가 반체제 인사들의 의지를 꺾고 동요시키기 위해 일으킨 정치적 살인이라는 추측이 많다.

1980년 2월 20일, 메이리다오 사건으로 린이슝은 대만 경비 총사령부(경총)에 의해 반란죄로 기소되고 신디엔(新店) 감옥에 구금된 채 심문을 받았다. 2월 28일 낮, 타이베이시 신이로(信義路)에 소재한 린이슝의 자택에 있던 모친 린요우아메이(林游阿妹)가 13번에 걸쳐 칼에 맞고 지하실 계단에서 숨졌다. 린이슝의 7살 난 쌍둥이 딸인 린량쥔(林亮均)과 린팅쥔(林亭均)도 각각 칼 한번씩을 받고 숨졌고 장녀 린환쥔(林奐均)은 6번에 걸쳐 칼에 맞아 중상을 입었지만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린이슝의 부인 팡쑤민(方素敏)은 사건이 일어난 당시 린이슝이 갇힌 감옥에 면회를 간 덕분에 피해를 입지 않았다. 범인은 단도를 피해자에게 찔러 넣고 그대로 가로로 좌우 방향을 바꿔가며 휘두르며 피해자가 죽을 때까지 이를 반복하였다. 범행의 수법이 극히 전문적이어서 군사 훈련을 받은 자의 소행으로 여겨졌고 린이슝의 자택이 경찰에게 24시간 감시를 받고 있었는데도 범행이 이루어진 점으로 인해(또한 경찰은 사건 당시는 물론 수사 이후에도 사건의 범인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다고 답하였다) 결국 사회 대중들은 이 사건을 정보 기관(혹은 비밀 경찰)에서 일으킨 것으로 더욱 인식하게 되었다.

 

3월 2일, 경찰은 린이슝의 자택에 놓인 새 과일 상자 하나를 발견하고 조사한 끝에 린이슝의 외국인 친구인 브루스 제이콥스(Bruce Jacobs)를 용의자로 의심하였다. 그러나 제이콥스는 자신이 사건과 관련이 없고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해 타이베이시 경찰국으로 가서 해명하였다. 3월 3일, 치안 당국은 사건의 수사와 해결을 위하여 중화민국 전역의 치안 기관 공동으로 사건 전담 부서를 조직하고 그 아래에 14개의 증거수색팀을 조직하였다. 또한 범인에 대하여 200만 대만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후 2009년 3월 마잉주(馬英九) 총통은 린이슝 일가 살인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명령하고 사건 전담 부서를 조직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경찰은 사건으로부터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수사 및 감식 기술 부족 등으로 인하여 증인과 물증, 사건 기록 등의 자료가 충분히 남아 있거나 발견되지 않아서, 사건 해결이 매우 힘들다고 밝혔다.

 

린이슝이 투옥된 후 부인 팡쑤민(方素敏)과 장녀 린환쥔(林奐均)은 생활하는 데 곤경에 처하여 사건이 발생한 집을 임대하거나 매각하기로 했다. 결국 타이완 기독 장로교회(台灣基督長老會)가 국내외 신도의 모금을 통해 780만 대만달러에 집을 구입하고 타이완 기독 장로교회 의광교회(義光會)를 건립했다. 의광교회는 매년 2월 28일 오전 9시에 추모 예배를 드리고, 이란(宜蘭)에 소재한 일가 묘지로 가서 추모 행사를 실시한다. 린환쥔은 미국으로 유학하여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영어 교육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선교사 조엘 린턴(Joel Linton)과 결혼하여 주디 린턴(Judy Linton)으로 개명하고 기독교에 귀의하였다. 린환쥔은 현재 가족과 함께 미국에 거주하며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 다안삼림공원(大安森林公園)

 

1994년 개장한 타이베이 시내에 위치한 생태공원으로 면적이 약 26ha(축구장 크기가 보통 1ha)에 달하며 타이베이 공원 중 가장 크다. 흔히들 타이베이의 폐라고 부르곤 한다. 이 곳을 미리 공원 부지로 선정한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타이베이 곳곳에 대형 도시공원을 계획했는데 이 곳이 바로 일본이 선정한 17개 공원 중 제7호 공원 위치이다. 그러나 일본의 패전으로 실현되지 못했으며 빈터로 남아있었던 이 곳을 1949년 국민당 정부와 함께 대만으로 건너온 외성인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넘어온 군인들이 이 곳에 정착하여 권촌(眷村)을 형성하였고 함께 건너온 외성인, 타이베이로 상경한 본성인 이주민 등의 하층민들이 스스로 집을 지으며 정착하였다. 1980년대 이후 타이베이시는 주민들을 이주시켜 재개발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거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수 차례의 공청회 끝에 결국 도시공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하였다(이들의 철거사는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 참고). 공원 내에는 900석 규모의 야외 공연장이 있어서 각종 음악 공연이 펼쳐진다. 또한 생태호수 여러 수목들이 있고 각종 운동 기구들 또한 갖추고 있어서 타이베이 시민들의 휴식과 운동 공간으로 인기가 좋다.

 

 

융캉 공원

 

▶ 융캉가(永康街) & 융캉공원(永康公園)

 

청대에만 하더라도 융캉가(永康街)는 류공전(瑠公) 지류가 흘러 풍부한 수원으로 인해 논밭으로 가득했다. 일제시대에는 후쿠주미정(福住町)으로 불렸으며 검은 기와집들은 일본 관원들의 숙소로 제공되었다. 부근에 또한 대만대학교(臺灣大學)의 전신인 타이베이제국대학(台北帝國大學)과 대만사범대학교(臺灣師範大學)의 전신인 대만총독부 타이베이고등학교(臺灣總督府臺北高等學校)가 위치하고 있어서 관원들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이곳으로 이주해왔다. 일본의 패전 후, 이곳은 일본의 관원의 거주지가 아니라 국민당 정부의 관원의 거주지로 거주민만 바뀌었다. 1995년, 당시 타이베이 시장 천수이볜(陳水扁)은 융캉가의 확장, 개발을 결정하였다. 이 결정에 따르면 융캉가 내에 위치한 현재의 융캉공원(永康公園)의 부지가 잘려나가는 상황이었다. 주민들은 이 계획에 반대해 공원을 지키려 했으며 결국 공원의 보존에 성공하였다(융캉공원 보존운동은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 참고). 융캉가는 500m 남짓의 길지 않고 넓지 않은 거리이다. 훑어보는데 30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특출난 볼거리는 없어도 유명한 먹을거리는 많은 곳이고 숨어있는 골목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사대 상권 일대에 놓인 차량 한 대

 

▶ 국립대만사범대학교(國立臺灣師範大學) & 사대 야시장(師大夜市)

 

대만국립사범대학교(國立臺灣師範大學 ; 흔히들 줄여서 스다(師大))의 전신은 1922년 개교한 대만총독부고등학교(臺灣總督府高等學校)이다. 1927년에 대만총독부 타이베이고등학교(臺灣總督府臺北高等學校)로 이름을 바꾼다. 일제시대 대만에 있는 유일한 진학고등학교로 소위 ‘대학예과’였다.. 1988년부터 2000년까지 대만 총통에 재임한 리덩후이(李登輝)가 졸업한 학교이다. 1955년에 대만성립사범대학교(臺灣省立師範大學)로 그리고 1967년에 현재의 대만국립사범대학교로 명칭을 변경하여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본관, 강당 등이 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대만사범대학 학교 부근에 위치한 사대 야시장은 위치가 대학교 주변인 만큼 학생들이 좋아하는 야시장이다. 원래는 규모가 제법 컸었는데 사대로(師大路) 한곳의 노점을 헐고 공원으로 개조하면서 규모가 이전보다 작아지고 위치도 도로 주변이 아닌 뒷골목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사대야시장은 대학생들의 특별한 젊은 활기 때문인지 다른 야시장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사범대학은 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오는 곳이라 골목마다 한국, 일본, 미국, 인도, 이탈리아, 태국 등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들도 많다. 귀엽고 센스 있는 물건부터, 저렴한 의류, 신발과 가방을 쇼핑할 수 있는 가게는 물론, 케이크, 커피나 차,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카페도 많다. 또한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만큼 젊은 창의 산업을 보여주는 노점 도한 이 일대의 특색이다.

 

 

▶ 타이베이 101(台北 101)

 

타이베이 101(台北101) 혹은 타이베이 세계금융센터(臺北國際金融中心)는 중화민국 타이베이에 1999년부터 2004년까지 509m, 101층으로 지은 타이완 섬의 대표적인 마천루로 2010년 1월 3일까지 세계의 고층 빌딩 중에서 제일 높은 고층 빌딩이었다. 원래는 W 모양으로 지었으나, 1/3정도 짓다가 흔들려 W형에서 L형으로 고쳤다. 중국 광둥 출신의 건축가 리쭈위엔(李祖原)의 리쭈위엔건축사사무소(李祖原建築師事務所, C.Y.Lee&Partners)가 1997년에 설계하였으며 삼성물산 건설부문에서 시공을 맡았다. 정식 명칭은 타이베이 세계금융센터(Taipei World Financial Center)이고 과거에는 타이베이 국제금융센터(Taipei International Financial Center)라는 명칭을 사용한 바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약칭인 타이베이 101이 널리 쓰이고 있다.

원래는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페트로나스 타워보다 3m가 낮아서 첨탑(Spire)으로 페트로나스 타워보다 더 높게 지어 개막하였다. 현재는 ① UAE 두바이의 부르즈할리파(828m), ② 중국 상하이의 상하이 타워(632m), ③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아브라즈 알 바이트 시계탑(601m), ④ 중국 광저우의 핑안금융센터(599m), ⑤ 한국 서울의 롯데타워(554m), ⑥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541m), ⑦ 중국 광저우의 광저우 CTF 금융센터(530m)에 이어 세계 8번째로 높은 마천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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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의 1구역을 중심으로 돌아볼 예정이에요!

 

 

▶ 맹갑

 

 

 

맹갑(艋舺, 중국어로 멍지아)은 타이베이의 최초 집거지로 알려져 있다. 청나라 말기 타이베이성, 대도정(大稻埕)과 함께 타이베이 핵심 구역 중 하나다. 또한 ‘맹갑’이란 명칭은 현재 완화(萬華) 구역의 옛 명칭이다. 청나라 시기 대만 원주민들이 한족과 교역을 할 당시 사용하던 통나무 배(카누 獨木舟)를 방카(Bangka)라고 불렀는데 대만어(민남어 閩南語)로 맹갑을 방카(Bangka)로 발음하기 때문에 이후 맹갑으로 표기하였다. 완화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일본이 1920년, 맹갑의 대만어 발음인 방카(Bangka)와 비슷한 반카(萬華)로 명명하면서부터다. ‘영원토록 번화하라(萬年繁華)’는 뜻을 담고 있다. 과거에는 단수이(淡水) 강을 통해 정크선이나 작은 증기선이 오갔지만 단수이 강 수심이 얕아져 운송 기능을 상실하면서 맹갑은 차츰 쇠퇴했다. 하지만 현재 맹갑에는 옛 가옥들과 좁은 길을 따라 형성된 상점가의 면모가 그대로 보존 돼 있어 타이베이 초기 역사를 감상하기 좋다.

 

 

 

▶ 탕부문화구역(糖廍文化園區)

 

 

일제시대의 설탕제조공장으로 1911년에 설립됐다. 식민지 시기 타오위안(桃園) 북쪽에 위치한 유일한 제당소였다. 일본 정부는 ‘공업의 일본, 농업의 대만’ 정책을 실시하면서 개인이 소유한 제당소를 사들여 대형집약경양 방식을 추진하였다(당시 개인 제당소의 규모는 크지 않고 품질 또한 일정치 않았다). 반챠오(板橋) 임가(林家)의 임웅징(林熊徵) 등이 타이베이 제당주식회사를 설립한 후, 전기제당공장을 합병 인수하여 이듬해 공장을 완화(萬華) 지역에 건설하였다. 이후 1916년에 타이베이 제당주식회사는 대만제당주식회사로 합병되며 타이완 제일의 신식 제당공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1943년, 태평양전쟁의 긴박한 전황으로 인해 사탕수수와 일손의 공급이 부족해져 타이베이 제당소는 결국 문을 닫게 된다. 전후에 이르러 남아있는 창고는 대만설탕공사(臺灣糖業公司)에 인수되었지만 머지않아 바로 설탕 제조를 중지하고 저장 창고로 사용되었다.

 

 

1950년대 징신뉴스(徵信新聞 ; 現, 중국시보(中國時報))가 대만설탕공사의 창고를 인수하여 신문 출판업을 시작하였고, 이는 주변의 인쇄산업의 집약으로 이어졌다. 1970, 80년대부터는 철도운송이 편리해짐에 따라 기성복 도매산업이 다리가(大理街)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산업환경변화와 도시발전 축의 동쪽 이전(現, 신이구(信義區) 일대)으로 완화 지역의 공업 환경은 점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인구가 조밀해지고 건물이 빽빽히 들어선 후에는 실질적인 환경의 질이 점차 나빠졌고, 공공설비는 주민들의 생활기능에 부합하지 못하여 점점 더 도시발전에서 소외되었다. 이후 다리가 지역주민들은 요양원 설립을 반대하고 마을 공원 설립을 쟁취하였으며 대만 최북단에서 제당구조가 남아있는 타이베이 설탕공장을 보존하였다(다리가 지역 사회의 항쟁은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 참고). 수 년 간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타이베이 시정부는 2003년에 남아있는 세 동의 창고와 설탕을 옮기기 위해 사용했던 플랫폼을 고적으로 지정하였고 2011년에 탕부문화구역으로 이름을 바꾸며 새로운 완화문화 관광명소를 창조하였다.

 

            

 

맹갑공원 옆의 중고 노점의 모습

 

 

 

▶ 맹갑공원(艋舺公園)

 

 

맹갑공원(艋舺公園)은 용산사(龍山寺) 옆에 있으며, 원래 명칭은 ‘완화12호공원(萬華十二號公園)’으로 타이베이 시정부가 예술을 테마로 개발한 매우 특색 있는 공원이다. 공원 내부에는 문화적 의의를 지닌 디자인이 많다. 동쪽에 있는 용형태의 조소는 중국 풍수 중에 좌청룡의 상서로움을 상징하고 서쪽에 있는 배형태의 조소는 타이완 선조들이 일찍이 강을 건너, 운수, 무역 등 교통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을 의미한다. 중앙의 연못은 중국 풍수와 접목 시켜 북두칠성 방향에 맞게 설치하였으며 매일 한번 분수쇼를 공연한다. 공원 북측에 있는 사찰 광장(廟埕廣場)은 용산사 사찰과 그 연장선에 있다. 광장 내의 별자리 표시는 중국의 별자리와 서양의 열두 별자리를 결합시켜 디자인한 것으로 총 2천여 개의 작은 별들을 박아 넣어 밤이 되면 각종 다른 빛깔의 빛을 발산한다. 맹갑공원은 시정부의 ‘축선 반전, 서구 재건(翻轉軸線、再造西區)’이라는 구호아래 건축된 중요 공원이다. 이 공원과 그 연장선에 있는 용산사는 타이베이시 역사, 문화와 종교의 중요 관광지로서 서구 도시의 재발전을 기대하고 있으며, 상업의 유동성, 국제 관광 명승지로 재건함으로써 맹갑 200년의 멋스러움을 재현할 것이다.

 

 

 

 

용산사 광장

 

 

 

▶ 용산사(龍山寺)

 

 

정식으로는 맹갑 용산사(艋舺龍山寺)로 부르지만 맹갑의 용산사가 가장 유명하기 때문에 흔히들 간단히 용산사로 부른다. 용산사는 맹갑 청수암(艋舺清水巖), 맹갑 청산궁(艋舺青山宮)과 함께 맹갑 3대묘로 불린다. 혹자는 맹갑 신흥궁(艋舺新興宮 ; 現 시먼딩 천후궁(西門町天后宮))까지 포함하여 맹갑 4대묘라 부른다. 또한 용산사는 맹갑 청수암, 대룡동 보안궁(大龍峒 保安宮)과 함께 타이베이 3대 묘로 부르고 있다.

 

 

용산사는 청 건륭(乾隆) 3년(1738년)에 천주 삼읍인(泉州 三邑人)들이 건립한 타이베이 시내 사찰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다. 청 가경(嘉慶) 연간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용산사는 큰 피해를 입어 개수하였으며 1867년에 폭우로 인해 다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일제시대에는 일부 공간을 학교와 군영, 사무실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1919년, 용산사 승려 복지법사(福智法師)가 오랜 시간 훼손된 절을 보고 지방 유력자들에게 기부금을 모아 중건하여 현재와 같은 면모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공습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현재의 건물은 1957년에 다시 복원한 것이다. 중국 남방 양식과 대만 전통식 건축의 조화로 화려함을 더했다. 불교와 도교, 유교가 공존하는 사원이라는 점도 독특하다. 본존에는 관세음보살, 본전 뒤에는 마조(媽祖), 관우 등 도교와 민간신앙의 신들을 모셔 놓았다. 본존은 본당에 안치된 관음보살이지만 그 외에도 보현보살, 마조, 관제(關帝), 삼신할머니(誕生娘娘) 등의 신불을 모시고 있다. 특히 관음보살은 전쟁으로 본당이 불에 탔을 때도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영험하다고 알려져 있다. 음력 2월 19일 관음보살 탄생일에는 성대한 제전이 열린다.

 

 

 

▶ 보피랴오 역사거리(剝皮寮歷史街區 ; 타이베이시 향토교육중심)

 

 

완화의 옛 거리의 골목을 다니다 보면 보피랴오(剝皮寮)라고 하는 옛 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은 여전히 백여 년 전 청대의 거리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붉은 색의 벽돌, 무지개형의 기루(騎樓), 꽃을 조각한 창문틀 등이 우아하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다.

 

 

보피랴오 역사거리는 청대의 거리모습, 청대 전통 가게의 모습이 보존되어 있는데 건축공간이 맹갑 시가의 발전을 보여주고 있으며 독특한 역사문화와 건축특색을 드러낸다. 타이베이시 향토교육센터는 교육과 문화의 이념을 융합하여 향토교육을 진행하는 장소로 발전시켜 왔는데 학교교육과 커뮤니티 문화를 결합시켜 여러 가지 주제와 보피랴오 관련 역사 특별전 등을 열고 있으며 각종 교육 활동도 진행하여 휴가를 겸한 교육이란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문맹루 내부 

 

 

 

▶ 문맹루(文萌樓)

 

 

문맹루는 1925년 일본 건설회사 호라이사(蓬萊會社)가 지은 예전 공창관이다. 공창관이 성행하던 시기의 구이수이가(歸綏街)는 사람들의 소리와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주변 역시 역시 각종 장신구, 의복, 화장품을 파는 곳이나 약국 및 정력제를 파는 좌판 장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문맹루 뒤쪽의 경찰서가 위치하고 있는데 과거 공창제도가 존재할 당시 공창관 손님들간의 분규를 해결하는 등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2006년에 타이베이시는 고적으로 지정하였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 대만에 유일하게 보존된 합법적 성매매 공간이다. 일제시대 대만의 성매매 산업의 역사와 근대 대만 사회운동사에 매우 중요한 곳이다. 현재 건물 자체는 존재하지만 문맹루는 존재하지 않는다.

  

 

 

▶ 볼레로(波麗路) 레스토랑

 

 

볼레로는 1934년에 영업을 시장하여 대만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레스토랑이다. 볼레로라는 이름은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이 1928년에 작곡한 관현악곡 ‘볼레로(BOLERO)’에서 따왔다. 개업자인 랴오수이라이(廖水來)는 일본인이 개업한 서양 식당에서 요리를 배운 후 창업하였다. ‘향촌카레점’, ‘뛰어난 서양식 레스토랑’으로 유명했다. 2006년 타이베이시는 볼레로 레스토랑 본점을 타이베이시 역사 건축물로 지정했다.

 

 

관련 링크 :: https://www.travel.taipei/ko/shop/details/1068

 

 

 

▶ 대도정(大稻埕)

 

 

18세기 말의 대도정은 단수이항이 열린 이후 발전을 하기 시작하여, 상업과 무역이 번영하고 인문이 한데 모이는 곳으로 변했다. 대도정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1853년에 발생한 주도권 다툼이다. 맹갑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삼읍인(三邑人)과 동안인(同安人)들 사이의 다툼은 결국 삼읍인의 승리로 끝났으며 주도권 싸움에서 진 동안인들은 대도정으로 이동하게 된다. 싸움에서 승리한 삼읍인은 맹갑에 남고 패배한 동안인들은 대도정으로 옮겼으나 이후 번화하고 부귀해진 곳은 맹갑이 아니라 대도정이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대도정은 화려한 바로크식 건축물, 전통적인 민남식 단층집, 붉은 벽돌로 지어 올린 밝은 양옥집을 갖추고 있는데 고적건축물, 전통민속 건축물, 차 도매상, 천 도매상, 한약재상 및 현지 맛집 등 할 것 없이 어디든지 모두 고성의 역사궤적을 지니고 있다. 대도정에서 대표적인 곳이 바로 디화가(迪化街)이다. 타청제(塔城街)의 연장인 디화가와 그 주변은 건어물, 한약 등의 도매상 밀집 지역이다. 대만 식문화가 집대성 된 거리로 입구부터 강한 한약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데 50 곳 정도의 약재상이 있다. 거리 가득 한약재와 진귀한 식품이 진열된 모습도 충분한 구경거리다. 음력설 전에는 식재료를 사러 모인 사람들로 빈틈이 없을 정도로 혼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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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산지니 북투어 "타이베이 어둠여행"을 담당하고 있는 단디SJ입니다.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독자 분들과 산지니 식구들이

 

직접 책에 나온 공간들을 답사하며

화려한 도시 이면의 이야기들을 찾아갈 예정인데요,

이 책의 역자인 곽규환, 이제만 선생님의 가이드로 여행이 진행될 예정이라

3박 4일 동안 깊고 진한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럼 함께할 여정들을 공유할께요!

 

 

[산지니 북투어]

책을 따라 걷는 타이베이 어둠 여행

 

 

시간

1일차

2일차

3일차

4일차

2월 8일 (목)

2월 9일(금)

2월 10일(토)

2월 11일(일)

 

 

 

 

 

 

8:00

김해공항 출발

(8시 30분/대한항공)

9:00

 

 

10:00

타오위엔 공항 도착

(10시 15분)

2구역 탐방(10:30~)

차이루이웨무용학원

치둥가일본식기숙사

타이베이국제도서전

자유롭게 관람

(10:30~)

 

 

강수걸 대표님의 강연11시 45분부터 있을 예정이에요!

11:00

숙소 도착

(COSMOS HOTEL TAIPEI)

타오위엔공항 출발

(11시 15분)

12:00

중식(12:20~)

(화산문화창의공원근처)

 

중식(12:30~)

13:00

중식

 

※북투어 일정 소개와 참가자 소개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2구역 탐방

화산문화창의공원

14:00

김해공항

(14시 30분)

자유시간

or

가이드(박애특구)*

 

석식각자

 

 

※박애특구 지역과 관련된 태양화운동 관련 자료를 링크 걸어두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세요!

3구역 탐방 

 

린이슝사건

삼림공원

융캉공원

사범대학교

15:00

1구역 탐방

 

탕부문화구역 
화시지에 과거 공창구역
용산사,맹갑공원
보피랴오
문맹루  

 

16:00

 

차담회(16:30~18:00)

 

 

 

 

 

 

※ 저자 왕즈홍 교수와 대만의 유격출판사 관계자 분들과 함께 책 이야기를 나눠요!

 

 

 

 

석식(18:00~)

 

 

 

 

※ 차담회와 석식은 서점 겸 카페인 '공공책소'에서 진행됩니다.

 

17:00

 

18:00

석식(18:00~)

 뽈레로식당

 

 

 

 

※ 최초 서양식 식당

 

 

19:00

대도정 역사거리 

서점 

반민야경

 

숙소 집결(19:15)

 

산지니 워크숍(19:30~

 

 

※ 여행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에요. 워크숍은 ‘카페 명성: Astoria’에서 진행됩니다.

20:00

101 청핀서점

101관광 (선택)

 

21:00

 

22:00

 

 

숙소 or 야시장 투어

 

 

 

 

※ 스린야시장 투어는 희망자의 한에서만 진행될 예정입니다.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에 수록된

7구역 중 총 세 구역을 돌아볼 예정이에요!

(일정표에 적힌 각 '*구역" 표시는 책에 적혀 있는 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책 속 장소뿐만 아니라

타이베이 도서전 관람(둘째날),

저자와의 차담회(둘째날),

산지니 워크숍(셋째날)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 중이니,

책과 사람과 이야기가 함께하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현지 사정에 따라 일정이 조금씩 수정될 수 있습니다.)

 

 

그럼 저는 여행 준비를 위해

다시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를 펼쳐봐야겠어요!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 10점
왕즈홍 외 지음, 곽규환 외 옮김/산지니

 

 

 

 

 

 

 

 

 

 

책 주문하기 >> https://goo.gl/cUJW3o

*산지니 출판사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습니다.

(10% 할인, 3권 이상 주문시 택배비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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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는

조금 불편한 타이베이 여행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이 책에는 TV에서 보던 화려한 관광지로서의 타이베이가 없다.

대신 국가권력, 자본주의, 이성애주의 등

주류의 힘에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실제 일어난 일이지만,

화려한 불빛에 가려져 잊히고 있는 이야기.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에는

그런 도시의 목소리들로 가득하다.

 

 

 

▲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원서 『반민성시』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왕즈홍 외 지음 | 곽규환 한철민 외 옮김 | 306쪽 | 20,000원 | 2017년 10월 30일 출간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ㄴ▶ 출간 전 이야기

 

ㄴ▶ 책 소개

 

ㄴ▶언론스크랩①

 

ㄴ▶언론스크랩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 10점
왕즈홍 외 지음, 곽규환 외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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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와 함께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거닐

여행 친구를 모집합니다.

 

관심 있는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바랍니다.

 

 

 

 

 

 

 

저항의 도시, 타이베이를 걷다 - 10점
왕즈홍 외 지음, 곽규환 외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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