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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전성욱 평론가의 문화 읽기17

세계의 비참에 대한 영화의 사유: 장 뤽 고다르의 <필름 소셜리즘> 나에게 영화의 재미, 그러니까 줄거리나 볼거리에서 그저 얻는 즐거움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다시 능동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해 주는 영화의 존재론적 힘, 그 놀라운 향락의 희열에 눈 뜨게 해 준 것은 다름 아닌 고다르였다. 말하자면 나는 고다르의 영화를 만나기 이전에 영화를 통해 사유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타르코프스키는 너무 아득했고, 베리만은 너무 현학적으로 느껴졌으며, 무엇보다 나는 영화를 사유의 대상으로까지 생각할 만큼 영화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러나 격렬하리만큼 작위적으로 분방한 고다르의 영화는, 노모스의 극한에 대한 열정으로 언제나 뜨거웠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정념이 영화에 대한 내 사념의 단초였고, 드디어 그것은 예술의 개념에 대한 내 상투적 관념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처음 본 .. 2012. 3. 24.
척도에 대하여 좋은 작품이란 무엇일까? 어쩌다보니 심사라는 걸 하게 되었고, 그 심사라는 ‘사건’ 속에서 나는 ‘좋은 작품’은 무엇인가라는 지극히 일반적인 물음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어느 강연에서 ‘비평은 비교다’라고 했던 김윤식 선생의 말씀을 기억한다.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상대적이다. 그러니까 비평은 절대적인 척도로 환원될 수 없으며, 가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읽은 작품들 간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비평이 올바른 해석의 감수성으로 단련되기 위해서는, 읽고 또 읽어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의 지평을 넓혀야만 한다. 그것은 결국 치열한 감상의 수련을 통해 해석의 주체로서 ‘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좋은 작품은 그렇게 좋은 사람만이 비로소 어렵게 만날 수 있다. 그러므로 .. 2012. 1. 2.
보편에 이르는 길 가을이 깊어간다. 날이 차가워지고 어두운 시간이 길어지는 기온의 변화가 나의 몸과 마음에도 큰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킨다. 우주의 변화는 이처럼 내 몸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때는 아무래도 생각이 많아지고 따라서 마음이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쉽게 말해 나는 요즘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심란하다. 이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무엇에라도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할 것만 같다. 나는 때마침 공연 중인 연극 를 관람하는 것으로 마음을 추슬러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본다. 2010년 10월 30일 저녁 7시 30분. 후배들과 저녁을 함께 먹고 거제에 있는 가마골 소극장에서 를 관람했다. 에서부터 비교적 최근의 작품인 에 이르기까지 이윤택의 작품들을, 연희단 거리패의 공연을 자주 관람해왔던 나에게 역시.. 2010. 11. 1.
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 왕가위의 (1997), 아핏차퐁 위라세타쿨의 (2004) 그리고 이안의 (2005). 이 세 편의 영화는 모두 슬픈 사랑의 이야기다. 그 사랑이 슬픈 이유는 그들의 정념이 어떤 완고한 장벽에 가로막혀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저 영화들은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동성애 영화, 이른바 퀴어 시네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랑은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처럼 서럽다. 모든 사람에게는 삶을 누릴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질서와 규율을 좋아하는 문명의 요구에 자주 제약되곤 한다. 문명은 야만의 퇴치를 빙자하면서 사람의 활력을 이런저런 제도적인 완력으로 제압한다. 그래서 야만으로 낙인찍힌 모든 비루한 것들은 문명 이전의 순수한 자연이라는 관념에 이끌리기 마련이다. 의 이과수 폭포, 의 정글, 의 브로크백 설산은 문명.. 2010. 9. 20.
감독의 길 한 평생, 하나의 대상을 향해 열정을 쏟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삶의 어느 순간에 쉽게 그 열정을 잃어버리거나, 아니면 방향을 돌려 다른 대상에 열정을 쏟게 마련이다. 열정이란 사실 이처럼 변덕스럽다. 그러므로 우리는 긴 세월을 견뎌 무엇 하나에 그의 삶을 오롯이 바친 사람들을 볼 때 놀라움을 참지 못한다. 때로 그것은 단지 놀라움에 그치지 않고 어떤 경이로움, 그리고 마음의 깊은 존경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나는 20세기 세계영화사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에게서 그런 마음을 느낀다. 지금 해운대에는 무더위를 피해 모여든 인파들로 북새통이다. 나는 그 인파들을 피해 해운대 인근의 ‘시네마테크 부산’으로 간다. 지금 거기선 ‘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2010. 8.. 2010. 8.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