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오사카를 만든 것들에 대하여_『오사카: 도시의 기억을 발굴하다』 서평
코로나 이후 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그리고 엔저 현상과 함께 한국 여행객들의 일본 방문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한국인이 즐겨 찾는 도시 중 한 곳이 오사카일 것이다. 오사카를 방문해 본 적 없는 나에게 오사카에 대한 이미지는 한신 타이거스와 빵! 하면 으악! 하는 반응을 보이는 재미있는 사람들, 그리고 도톤보리(의 글리콜 상)가 전부였다. 그러다 궁금해졌다. 오사카, 베네치아, 방콕, 제주와 같이 대중에게 주로 관광지로 인식되는 도시들, 주로 미디어를 통해 그 이미지가 소비되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도시를 어떻게 감각할까? 외부로부터 소비되는 이미지와 사람들이 오랜 시간 살아내며 경험한 도시 인식에는 어떤 간극이 존재할까. 하나의 도시는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이루게 될까.
『오사카: 도시의 기억을 발굴하다』는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도시, 그래서 깊이 알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도시인 오사카를 역사 속에서, 그리고 오사카를 이루고 있는 여러 장소와의 관계를 통해서 말한다. 오사카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기타’와 ‘미나미’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책은 오사카의 중심에서 시작해 차츰 그 외곽으로 영역을 확장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오사카라고 인식하고 있는 ‘오사카성’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지, 그것을 위해 탈락한 것은 무엇이 있는지 소개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오사카의 도시 풍경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오사카의 지하상가였다. 오사카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지만 책에 표현된 풍경과 오가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 덕분에 마치 그 장소에 서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저자는 “물론 지하상가의 주요 기능은 통로다. 하지만 상술한 것처럼 다양한 역할도 수행했다. 실제로 이 공간의 특징을 형성한 것은 신문 가판대, 알리바이 요코초, 그리고 부라리 요코초 등이었다”고 말한다. 신문 가판대가 즐비한 곳, 어디든 다녀왔다고 알리바이를 댈(거짓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일본 다양한 지역의 기념품을 파는 곳, 시간과 날씨를 가리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오사카의 지하상가였다.
그러나 이토록 활기찬 지하 공간이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나를 놀라게 했다. 오사카역 아래, 지하상가를 만들기 위해 진행되던 공사는 전쟁으로 인해 잠시 멈추게 되는데, 전쟁 중 이 지하도는 지하 방공호로, 피난민들의 임시 거주지로 기능한다. 일종의 공공성을 띠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이곳에는 자연스럽게 암시장 같은 것도 형성되는데, 이후 정부는 지하도 환경 개선을 위해 몇몇 업종만을 허가했고, 그것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신문과 식당 등이었다고 한다.
지하도로 개발된 공간에 눌러앉은 부랑자 및 암시장에서 활개 치던 불법 업자를 쫓아내기 위해 특정 상업 기능을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이로써 단순한 통로였던 이곳이 ‘거리’가 됐다.
그렇다. 오사카 최초의 지하상가는 ‘배제의 공간’으로서 탄생했다.(84쪽)
이러한 배제는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1990년, 정부는 국제꽃박람회를 위한 도시 정비를 위해 우메다 지하상가의 신문 가판대를 강제로 철거했다. 2020년 개최되었던 도쿄올림픽을 위해서 지하 통로의 폭을 넓힌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알리바이 요코초와 부라리 골목의 철거가 시행되었다. 이런 변화의 원인은 늘 국제적 행사였다. 저자는 연쇄적인 배제와 사라짐을 지켜보며 아쉬움을 드러낸다. “여기가 사람을 배제했던 공간이었다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미 잊어버린 사실. 이 기억이 흐르던 협소한 상업공간이 사라졌다.”
2025년, 올해 또 하나의 국제적인 행사가 오사카에서 열린다. 바로 4월부터 10월까지 열리는 세계박람회다. 박람회가 열리는 장소는 오사카만에 조성 중인 인공섬 유메시마. ‘꿈의 섬’이라는 뜻의 유메시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와도 인접한 고노하나구의 앞바다를 매립하여 만들었다. 저자는 2025년 세계박람회가 1990년 열린 국제꽃박람회 “당시 완성하지 못한 테크노포트 오사카의 뒤처리를 위해 유치”되었다고 말한다. ‘테크노포트’란 무엇일까. 21세기를 맞아 국제 정보 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오사카의 계획이었다고 한다. 이 계획에 따라 90년대 오사카에 아시아태평양 트레이드 센터와 월드 트레이드 센터 빌딩이 세워지기도 했으나, 지금 이 건물들에는 공공기관과 상업시설이 들어와 있다. 2008년에는 유메시마에서 올림픽을 개최하고자 시도하기도 했으나, 최초 구상으로부터 30년이 넘게 흘러 엑스포 개최 전까지 이 섬의 용도는 불분명했다.
저자는 1990년대 국제꽃박람회와 함께 발간된 책자인 『오사카시 주요 프로젝트집』을 들여다보며 당시 오사카가 어떤 곳으로 거듭나려 했는지 그 모습을 묘사하고, 비판한다. 당시에는 진지하게 계획되었던 것들(‘패셔너블한 도시’, ‘오스카 드림’ 등)은 지금 보면 기이하다. 꿈은 크고 거창하지만 프로젝트 사이에는 유기적인 연결이 없고, 정부 주도의 대형 프로젝트만이 난무했다. 저자는 이처럼 유기성을 배제한 채 이루어진 오사카 도시 개발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장소에는 지리·역사적인 조건과 맥락을 바탕으로 한 개성이 있다. 동시에, 장소는 단순한 개체가 아니다. 원근을 떠나, 다른 장소와의 관계성 속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장소성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임플란트형의 (재)개발 사업은 결국 오사카 1990의 최후를 따라가고 있는 게 아닐까. 도시의 공간 구성에는 장소로부터의 발상이 필요하다.(226쪽)
사실 저자의 신랄한 비판을 읽으며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작년, 내가 살고 있는 도시 부산에서도 2030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한 여러 프로젝트가 시행되었다. 지하철에 붙은 수많은 연예인의 포스터와 지하철을 타면 들려오는 로고송, 유치에 애쓰는 기업들. 하지만 세계박람회가 구체적으로 부산의 어디에서 열리는지, 왜 부산이 박람회에 적합한 곳인지 설득력 있게 말해주는 계획과 홍보물은 만나기 어려웠다. 말만 좋게 들리는, 알맹이 없는 홍보를 접하며 그것과 세계박람회의 연관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은 부산 시민이 있을까.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 부산은 박람회 유치에 실패했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했을 때는 아직 먼 미래였던) 오사카의 2025년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와 걱정을 담아 질문한다. 저자의 이 질문은 비단 오사카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관광지’라는 이름 아래 개성 없이, 그 장소가 가진 역사적 맥락 없이 발전만을 거듭하고 있는 장소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회의적인 듯하지만) 몇 달 후 국제박람회가 개최되는 오사카에서 직접 그 모습을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다.
오사카의 발전과 그 과정에서 탈락한 장소들이 더 궁금하다면,
오사카
오사카가 현대 도시의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한 선택을 검토하고, 이 선택으로 인해 탈락된 장소들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모습은 어떻게 형상화되는 것일까? 우리가 보고 듣고, 또 경험하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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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오사카 세계박람회를 기다리며 읽기 좋은 또 하나의 책, 『동아시아 엑스포의 역사』
동아시아 엑스포의 역사
1851년 런던 박람회부터 2012년 여수박람회까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박람회의 변천사를 다룬다. 문명과 과학의 박람회 시대, 오락과 소비주의의 박람회 시대, 이데올로기의 박람회 시대, 환경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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