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타 사토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3.16 르포, 절망의 일본열도 (1)
  2. 2009.07.24 문어방 사회 일본-어쩜 그리 우리와 똑같은지

막가파식 원전 건설

고베항을 출항해 서쪽 세토나이해로 향한 배는 구루시마해협에 걸려 있는 ‘시마나미해도’의 밑을 빠져나와 일본열도 혼슈를 향해 툭 튀어나온 시코쿠의 ‘오스미노하나(大角ノ鼻)’를 빙 돌아 들어갔다. 복잡하게 뒤엉킨 작은 섬들을 뒤로한 채 간몬해협으로 곧장 나아가면 우현에 돌연 나타나는 것이 깊은 숲으로 덮인 야마구치현 나가시마다. 나가시마는 본토 측 세토나이해에서 깊이 들어간 무로쓰 반도에서 축 늘어진 한 방울의 물방울처럼 보였다. 무로쓰와 가미노세키(上関)는 아치형 ‘가미노세키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이 섬 서쪽 끝 인적이 드문 해안이 ‘가미노세키 원자력발전소’ 예정지가 된 것은 1978년께였다. 그때까지 주고쿠(中國)전력은 야마구치현 서쪽 끝 히비키나다와 접한 호후쿠초(현 시모노세키시)에 건설을 추진했다가 어민들의 격렬한 저항을 받아 물러났다. 그 직후 당치않게도 세토나이해에, 그것도 항로 코앞에 위험한 원전을 지으려다 퇴짜를 맞아 당황했을 상황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가미노세키초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유치의 ‘정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어라, 마셔라 식 ‘원전시찰 여행’이었다. 지역민에게 돈을 우려내는 습성을 배양하는 길들이기 의식과 같은 것이었다. 원자력발전이 모습을 드러내기 훨씬 이전에 시작되는, 이 지역 인심을 통째로 매수하는 행위는 일본 원전지역의 토양을 깊이 침식하고 있는 부패의 근원이다.

‘가미노세키 발전소’ 건설예정지에는 향토 수호신을 모시는 우부스나(産土)신사인 하치만구(八幡宮) 소유의 산림과 들판 10ha가 속해 있다. 당초 계획의 20%를 점하는 면적으로 제1호 노심과 발전 터빈 건설 지점이다.

신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고 한다. 하야시 하루히코(68) 궁사는 주코구전력의 매도 요청을 거부했다. 그는 “신직으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뿐입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신사 본청은 하야시 궁사를 해직했다. 이 또한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위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신사 본청은 일찍이 다음과 같은 통지를 냈기 때문이다.

인간사회 발달의 결과로 자연환경이 악화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는 일이며 …… 신사계에 있는 우리들은 무엇보다 신사의 존엄풍치를 지키는 것이, 나아가 공해로부터 신사와 우지코(氏子, 같은 씨족신을 받드는 이들-옮긴이)를 지키고 지역사회에 정신적으로 공헌하며 또 일상생활에서도 공헌해가는 길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고, 우지코 숭배자에 대해서도 되풀이해서 계몽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합니다.(‘신역의 초록을 지키는 모임’ 결성촉진에 대해. 1971년 1월 7일)

정례평의원회에서 “초록을 지키자”고 의결하고 이에 바탕을 둔 신탁 성격의 통지를 냈던 것이다. 각지에 있는 신사의 숲은 ‘신사의 존엄풍치’를 만들어내고 있을 뿐만이 아니다. 인간의 욕심에 의한 어리석은 환경파괴를 신의 영역으로서 지켜온 ‘최후의 보루’이기도 했다. 그런데 신사 본청은 환경을 지키려고 지역에서 솔선하여 저항하고 있는 궁사를 칭찬해줘도 모자랄 판에 속세의 권력인 전력회사의 압력에 굴복해 해직시켜버렸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실은 나는, 신사 본청에 주고쿠전력의 가혹한 처사를 호소하고 처분을 하지 말 것을 요청하기 위해 도쿄로 나가 있던 하야시 궁사와 그 동생 마키오 씨한테서 연락을 받고 그들을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채 궁사가 해직되어버려 책임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하야시 궁사는 자신도 전혀 모르는 곳에서 야마구치현 신사청에 ‘퇴직원’을 제출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류 위조였다. 하야시 궁사가 따지고 들자 결국 ‘퇴직원’은 철회됐지만 그 뒤에 나온 것이 ‘해임 명령’이었다.
앞선 1994년 주고쿠전력은 ‘입지환경조사’를 실시하기 위해 하야시 궁사에게 토지 임차를 제의했다.

“발전소 건설에는 협력할 수 없습니다.”

제의를 거절당하자 주고쿠전력은 하치만구 대표자의 서명과 날인도 없는 ‘임차계약서’를 작성해 신사 토지에 들어가 조사를 강행했다. 나는 이처럼 원전 측이 도리도, 도의도 무시한 채 권력과 돈, 책모와 위계, 부정으로 건설을 강행해온 사실을 졸저 『원자력발전 열도를 가다』(슈에이샤·集英社 신서)에서 여러 차례 고발한 바 있다.

왜 이러한 부정이 허용되었을까. 원전 추진은 ‘국책’이며 거대한 이권이 거기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표현하면 ‘나라가 두목’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일은 다 허용된다는 식의 부조리를 만들어왔던 것이다. 마치 전쟁 중에는 온갖 무도한 일들이 다 허용되는 것처럼 말이다.

5m마다 ‘소유지’ 표식

가미노세키대교를 지나 발전소 예정지를 향하는 길은 농업용 경트럭이 겨우 빠져나오는 좁은 길이었다. 하야시 궁사 형제, 고나카 스스무(57, 초록그룹) 현 의원과 함께 섬의 고지대를 따라가다 반대파가 만든 ‘단결 오두막’ 주변에서 먼저 예정지를 내려다보았다. 매수가 끝난 토지는 황색과 검은색 얼룩 가로무늬 로프로 구획을 지어놓았고, 통로 양측에는 보란 듯이 거의 5m마다 ‘주고쿠전력㈜ 소유지’라고 인쇄된 플라스틱 표식을 묶어놓았다. 지금까지 본 발전소 매수지 가운데서 가장 노골적인 방법을 쓰고 있었다.

눈 아래 ‘다노우라’라는 하구가 보였다. 건설 예정지다. 바로 마주보는 쪽에 산마루가 구름으로 덮여 있는 이와이시마(祝島)가 보였다. 거리는 3.5km. 육안으로도 선명하게 보이는 그 어촌에서 6년 전 배를 타고 이 바로 밑까지 와본 적이 있었다. 인적이 없고 쥐죽은 듯 조용한 해안에 다가가자 이상한 오두막이 서 있고 ‘삐- 삐-’ 단속적으로 울리는 전자음이 들려왔다. 배를 조종하던 이와이시마 어민은 불쾌해했다.

그때 일을 떠올리면서 나는 단결 오두막에서 상당히 가파른 산길을 내려와 해안에 도달했다. 오두막은 기상관측용이고 그 곁에 큰 나팔 모양의 금속관 3개가 서 있다. 소리는 거기서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주변은 어업의 보고이며 풍후수도(豊後水道, 규슈 오히타현과 시코쿠 에히메현 사이 물길-옮긴이)의 해류도 들어오고 있어요.”

무로쓰초 가모(賀茂)신사의 궁사이기도 한 하야시 궁사가 설명했다. 대대로 신직을 이어온 그는 발전소 예정지인 ‘시다이(四代)지구’ 하치만구 궁사를 겸하고 있어서 이쪽에서 해고된 것이다. 튀지 않는 한결 같은 성품이어서 좀체 흥분하는 일이 없고 독실함이 몸에 배인 사람이라 발전소 소동 같은 게 없었더라면 다툼에 휘말릴 일도 없이 우지코들의 신뢰를 받으며 조용한 노후를 보낼 수 있었을 것이었다.

휘파람새가 지저귀는 해안에서 무엇인가 발굴한 흔적이 띄엄띄엄 보였다. 조몽(縄文)시대 유적지다. 그 무렵부터 이미 이 조용한 하구는 어업기지로 번성해온 것 같다. 지금도 숲이 깊은 신사의 산은 ‘어류를 모으는 숲(魚付林)’으로서 풍요로운 어장을 유지하고 있다.


“스나메리(돌고래의 일종)도 있어요.”


고나카 현 의원의 설명으로 한동안 어장을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도미 낚시 어장이기도 하고 세계적으로 귀중한 패류도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고나카 의원은 발전소 이야기가 나올 무렵부터 반대했고 지금은 하야시 궁사의 ‘부당해직’ 소송을 돕고 있다.

전력회사의 졸속적인 처사

어촌 특유의 밀집 가옥이 해안에서 급경사로 올라간다. 집과 집 사이 판자벽에 끼일 듯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니 언덕 중턱에 있는 시다이 하치만구 경내가 나타났다.
이 신사 건물을 해직된 궁사와 보러가는 게 조금 잔인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야시 궁사는 담담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고색창연한 본전 앞으로 성큼 나아가 깊숙이 고개를 숙여 삼배를 하고 주변 신에게도 합장을 했다. 그 뒤 본전 문 앞에 드리워져 있는 금줄을 당겨 올리려 혼자 애를 썼다.

이 지역에서 산 하나를 넘어 하구 곁에 있는 신사 소유 부지는 누구나 자유로이 산채와 장작, 마소의 사료를 얻을 수 있는 ‘입회지(入會地, 공동관리부지)’였다. 특히 정어리를 솥에 삶아 ‘이리코’를 만들려면 대량의 장작이 필요했는데 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토지 명의가 신사인 것은 신사는 토지를 팔아치우는 일은 없다는 주민의 신뢰감 때문이다. 이 토지는 원래부터 어느 주민의 것이고 신사 소유가 아니었다. 신사 명의로 맡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2003년 3월 야마구치현 신사청의 뜻을 알게 된 신사 본청이 하야시 궁사를 해직하자 같은 날 다른 신사의 궁사였던 사람을 대신 임명하고 이튿날 대표임원 변경을 등기했다.

“사직원을 위조하거나 토지를 팔지 않는다고 해서 궁사를 처분하는 행태는 정상이 아닙니다. 신사의 토지를 파는 것 자체가 위법이기 때문에…….”

하야시 궁사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한다. 전국 신사의 본전조차 돈에 진다면 무엇을 믿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빗대어 말하자면 목숨을 바쳐 자연을 지킨 신부를 로마 교황이 해고시키는 것과 같은 꼴이다. 이는 일본의 ‘교황청’이 얼마나 철학과 절개, 지조가 없으며 대기업에 약해 빠졌는지를 여실히 증명하는 사건이다.


또 신사 땅을 태연히 밟고 들어가는 전력회사가 벌을 받지 않는다면 이건 너무나도 불공평한 일이다. 종교법인법 18조 5항은 ‘그 보호, 관리하는 재산에 대해 감히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남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신사 본청 헌장 10조에도 ‘경내부지, 신사소유지, 시설, 보물, 유서에 관련된 사물 등은 확실히 관리하고 함부로 처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하야시 궁사는 지위복권 소송 중이다. 해임 소식이 전해지자 현에서 반대 서명이 벌어져 8만 5천 명이나 참여했다. 궁사해직 반대 서명 같은 일은 신사 본청이 문을 연 이래 처음 있는 일로 간부 책임 문제로 파급될 것 같다.


그런데 우지코들 사이에 매각 찬성 여론이 높아진 것은 어업권 포기를 찬성한 어민에게 보상금을 반만 지불하고 나머지는 공사를 착공한 후에 지불한다는 전력회사의 야비한 수법 탓이다. 이 당근과 채찍 수법은 효과를 발휘했다. 이것은 너무나도 노골적인 회유책으로 공서양속(公序良俗)에 반하는 처사라고밖에 할 수 없다.


주고쿠전력은 이와이시마 어협의 어업보상무효확인소송 외에 시다이지구 주민들로부터 ‘공유지입회권소송’, ‘신사부지입회권소송’ 등으로 고소를 당했다. 이들 재판의 원고인 다케히로 세이조(78) 씨의 집에서 역시 원고인 오하시 시즈코(88) 씨, 이마다 다케(91) 씨를 만나 설명을 들었다.

“옛날에는 모두 사이가 좋았는데…….”
그들은 지역의 분열을 안타까워했다.
“주고쿠전력에는 절대 땅을 팔지 않을 겁니다.”
그것이 원고인 세 사람의 공통된 생각이다. 비장감은 없다. 꼭 이긴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  본문 258~264쪽, <르포, 절망의 일본열도>

<르포, 절망의 일본열도>는 절망으로 치닫고 있는 일본의 사회 현실을 구석구석 파헤쳐 르포 형식으로 담은 책이다. 일본의 저널리스트이자 르포작가인 가마타 사토시는 30여 년간 고통 받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르포를 써왔는데, 이 책은 그가 일본의 진보적 시사주간지인 <주간금요일>에 연재한 기사를 모은 것으로, 절망적인 일본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르포, 절망의 일본열도 - 10점
가마타 사토시 지음, 김승일 옮김/산지니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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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아니카 2011.03.17 01: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은 우리와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원자력 발전소 짓겠다고 전력회사에서 저렇게 치사한 방법을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나저나 이 책을 번역하신 부산일보 김승일 기자는 사지를 뚫고 취재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셨는데, 부디 몸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연일 나라는 시끄러워지고 없는 사람은 점점 더 구석으로 내몰리는 세상이다.

재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그나마 틀고 있던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밀려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뉴타운 행복도시가 허울 좋은 구호일 뿐이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재개발로 번듯한 아파트가 들어선들 거기 다시 발붙일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가진 돈이 있는 사람들이다. 재개발이 돈 많은 투기꾼들의 배를 불려주거나 시공을 맡아 하는 건설회사의 이익에 봉사하는 일일 뿐이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됨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건설 또 건설, 삽질 또 삽질을 멈출 줄을 모른다. 벌써 6개월 전에 용산참사라는 엄청난 희생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반성할 줄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참담한 상황이 우리의 일만은 아닌 모양이다. 흔히 우리나라보다 10년을 앞서간다는 이웃 나라 일본의 상황도 어쩜 그렇게 우리와 비슷한지.
공공의 가면을 쓰고 대기업의 대규모 도심개발이 진행되면서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주민을 위한 배려는 없다. 대규모 도가도로가 도심을 통과하면서 인근 주택가는 생활공간이 완전히 차단되어버리고, 별 필요도 없는 공항을 건설한답시고 수십 년 농사짓고 있던 사람들을 내쫓아버린다.

도심 주택가를 분단시키는 고가선로와 도심 한가운데 떡하고 자리잡은 비행장



정부가 기업의 편에 서서 노동자를 무시하는 정책도 우리와 너무나 닮아 있다. 멀쩡한 국철을 민영화하면서 그 이익은 몇몇 대기업과 거대 언론사들이 가져갔고, 그 와중에 해고당한 노동자 천여 명은 아직까지 투쟁 중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우체국까지 민영화하지는 않았지만 일본은 우정공사를 민영화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게 미국의 금융, 증권, 보험업계의 금융자본에 고스란히 이익을 갖다 바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앞에는 고이즈미가 있었던 것이다.


일본에는 ‘문어방 노동’이라는 말이 있다. 문어를 잡기 위해서는 단지를 덫으로 쓰는데, 문어는 이 속에 들어가면 절대로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더 참혹한 것은 문어가 이 단시 속의 열악한 상황에서 제 다리를 뜯어 먹으며 6개월을 버틴다는 것이다. 이는 일제강점기 노동력이 부족한 훗카이도에 강제로 노동자들을 끌고 가서 일을 시킨 데서 비롯되었는데, 일본에 징용을 당해 수용소에 갇혀 강제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인 노동자들의 환경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일본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 참혹하고 비참한 환경에서 제살을 뜯어 먹으면서 버틸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 일 해도 일 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워킹푸어’. 신주쿠에서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했다가 죽임을 당하는 사례도 있다. 이 또한 실업자들이 늘어나고,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는 우리의 상황과 어쩜 그리 비슷한지. 우리나라의 청년실업자나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바로 그 ‘문어방’에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 전교조 시국선언 교사를 탄압하는 수위가 한참 높아지고 있다. ‘양심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을진대, 정치적 견해를 표명했다고 해서 징계를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일본에서도 교육계의 우경화가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왜곡된 교과서를 발행한다든가, 기미가요 제창을 의무화한다든가 하는 것이 그런 일들이다. 하지만 일본에도 양심적인 교사들이 있어서 이에 반대하고 학생들과 함께 토론식 수업을 할라치면, 교육 당국은 그런 교사들을 감시하고 징계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교원노조 교사들을 학교에서 쫓아내기도 한다. 어쩜 그리 우리와 상황이 똑같은지.

노조 활도을 이유로 해고된 다이세이고교 교사들이 학교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伊田浩之

『르포, 절망의 일본열도』는 절망으로 치닫고 있는 일본의 사회 현실을 구석구석 파헤쳐 르포 형식으로 담은 책이다. 일본의 저널리스트이자 르포작가인 가마타 사토시는 30여 년간 고통 받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르포를 써왔는데, 이 책은 그가 일본의 진보적 시사주간지인 <주간금요일>에 연재한 기사를 모은 것으로, 절망적인 일본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지 않고 갈수록 보수화, 우경화되는 현재의 일본을 저자는 절망사회로 규정하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모습이 지금의 대한민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절망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르포, 절망의 일본열도
 
- 10점
가마타 사토시 지음, 김승일 옮김/산지니



Posted by 아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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