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경인문학

국가가 커진 만큼 시민사회는 멀어졌다

중국, 코로나19 봉쇄 여세 몰아 홍콩과의 접경 지우고 국가주의 강화

 

2021년 1월 홍콩의 조던 주택가의 한 진입로에서 경찰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도로를 봉쇄하고 있다. REUTERS

접경인문학 연재 순서
① 팬데믹과 접경 ② 코로나 시대, 국가와 민족의 ‘귀환’ ③ 행성적 사이버네틱스 ④ 국경여행, 경계에 선 삶들의 만남 ⑤ 접촉지대에 산다는 것 ⑥ 의료와 문학 접촉지대와 치유공간 ⑦ 과학과 미신의 경계에서⑧ 중국-홍콩 체제의 변화

“나와 같은 종족이 아니면, 그 마음이 반드시 다르다.”(유교 경전 <좌전>)

홍콩은 중국과 영국으로 대표되는 동서양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접경 포인트로서 다양하게 연구됐다. 1997년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며 ‘일국양제’라는 유일무이한 접경이 생성됐고, 중국 정부와 ‘본토 홍콩’은 ‘일국’과 ‘양제’의 우선순위를 두고 경쟁해왔다. 과거 홍콩이 중국과 세계의 소통을 위한 유일한 접경이었다면, 이제 중국은 상하이 등 새로운 접경을 마련하는 결실을 거두고 있다. 중국 국가주의가 힘을 얻는 배경의 하나다. 그럼에도 ‘중국-홍콩 체제’가 국가와 지역, 문화와 문화, 제도와 제도가 만나는 접경이라는 가치는 여전하다. 나는 양쪽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작용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중국-홍콩 체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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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홍콩 골든 보히니아 광장에서 열린 국기 게양식에서 경찰관이 중국 국기 오성홍기와 홍콩특별행정구 깃발을 올리는 의식을 하고 있다. REUTERS

코로나19가 드러낸 ‘분리’의 미덕

2020년 2월 코로나19 발생 초기 홍콩 의료계는 중국과의 접경을 봉쇄하지 않으면 총파업에 들어가겠다는 데 99%가 동의했다. 코로나19가 퍼지면 의료진이 그 부담을 고스란히 진다는 이유였다. 2020년 1월부터 중국 우한은 76일 동안 외부와 단절됐고, 2021년 2월에는 허베이성 주민 2200만 명이 봉쇄됐다. 2020년 3월 홍콩에선 4명 이상 집회를 금지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2021년 3월에는 주룽 일부 지역 봉쇄가 시행됐다. 200개 건물을 봉쇄하고 코로나19를 검사하는 초강력 방역이었다. 그 지역은 닭장집, 관짝집(coffin house)이라 부르는 쪽방이 밀집한 곳으로 홍콩의 최저소득층이 거주한다. 2021년 4월에는 인도·파키스탄·필리핀에서의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그쪽에서 출발해 홍콩에 도착하는 모든 여객기가 14일간 금지됐다.결과적으로 2021년 5월 현재 코로나19 확진자가 홍콩에선 한 자릿수, 중국에선 0명으로 집계된다. 국가와 지역, 지역과 지역의 봉쇄가 코로나19 확산을 막아준 경험은 접경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통합보다는 분리가 코로나19 통제에 효과적이었다는 말이다. 이번 사태로 국가와 지역, 그리고 접경에 대한 정의가 다시 내려져야 한다. 물론 국가 내에서 지역을 구분하는 접경의 의미도 새삼 주목받았다. 앞으로 우리는 어디에서 통합되고 어떻게 분리돼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시시각각 대답해야 한다.중국 정부는 국가 차원의 방역 성공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초기에 코로나19 사태를 숨겨서 키운 것도 국가권력이고, 도시와 지역 간 접경을 통제해 코로나19 확산을 막은 것도 국가권력이다. 중국의 포털 사이트에는 ‘중국의 방역 성공 경험, 왜 전세계가 배워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이 많다. 글의 요지는 일관되게 첫째, 공산당의 집중 지도, 둘째, 국가 제도의 우수성, 셋째, 전 국민 참여, 넷째, 과학 방역 등이다. 국가가 블랙홀처럼 모든 논의를 삼켜버린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와 있다.토머스 홉스는 국가를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끝내기 위해 구성원들이 합의한 괴물 같은 절대 권력’이라 했고, 프란츠 오펜하이머는 ‘국가란 폭력을 동반한 강자의 지배 체계’라고 했다. 국가주의자들의 논리 속에는 통합의 장점만이 상정되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반대로 분리의 의미를 돋보이게 했다. 제국 건설은 우선 지역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중국 내 지역 사이나 중국-홍콩 체제에서나 접경의 긍정적 측면이 도드라졌다.

국가보안법, 홍콩 ‘시민’을 중국 ‘국민’으로

우한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상황을 경고한 의사가 있었다. 그는 경찰 조사를 받았고 이후 환자를 돌보다가 감염돼 숨졌다. 우한의 코로나19 상황을 국가 통제를 넘어 외부에 알린 건 시민 기자들의 활약이었다. 의사의 희생, 지식인의 용기, 일반 시민의 협조 등이 중국 시민사회의 존재와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들은 곧 사라졌다. 코로나19 초기 중국 정부는 은폐하고 왜곡하고 억압하는 국가주의로 대응했다. 시민은 그렇게 은폐되고 왜곡되고 억압당해 국민으로 포장됐다.앞서 의료계 투표는 홍콩에도 ‘시민’이 존재한다는 외침이었다. 홍콩 시민사회와 본토 홍콩의 존재감을 보여준 이벤트였다. 하지만 2020년 6월 홍콩에서 국가보안법이 발효된 뒤 거리시위가 중단되고 사실상 홍콩의 모든 정치 활동이 어려워졌다. 1997년 주권 반환 이후 척박한 토양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홍콩 시민사회의 앞날은 불투명해졌다. 자신감을 얻은 중국 정부는 홍콩 입법의원 선거를 1년 뒤로 연기하는 초법적인 조처를 단행했다.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내세웠다.2020년 7월부터 홍콩기본법과 홍콩 정부에 충성 서약을 해야 공무원으로 채용되고, 2021년 1월부터는 전체 공무원에게 충성 서약이 강요되고 있다. 이를 거부한 129명에 대한 해고 절차도 진행되고 있다. 2020년 8월 중국 국가주의에 비판적인 <핑궈일보> 사주 지미 라이(73)가 체포되던 날, 평소 발행부수가 7만 부이던 신문은 55만 부나 팔렸다. 이제 홍콩 시민은 자신의 존재를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홍콩 힘내라’라는 문구는 물론 아무 내용도 없는 빈 메모지조차 저항의 상징으로 간주돼 금지되고 있다.2021년 3월 열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홍콩의 행정장관, 입법의원, 구의원 등을 뽑는 홍콩의 선거법이 개정됐다. 이른바 ‘홍콩 특색의 민주화 선거 제도’는 선거 후보자의 자격을 심사하는 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 뼈대다. 애국심이 첫 번째 기준이다. ‘애국자가 통치하는 홍콩’은 덩샤오핑이 처음 언급한 이래 지금까지 중국 국가주의의 상징적인 구호다. 국가를 사랑하는 사람, 즉 중화인민공화국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홍콩특별행정구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홍콩의 민주화운동 관련 내용이나 천안문(톈안먼) 사건 같은 국가주의에 저항하는 내용이 홍콩 교과서에서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역 정체성이 신속하게 국가로 통합되고 있다. 홍콩 ‘시민’은 코로나19 사태를 기다렸다는 듯한 중국 정부에 의해 중국 ‘국민’으로 포섭됐다. 나는 국가보안법 발효가 실질적으로 홍콩 시민이 국민으로 편입된 분기점으로 본다. 주권 반환 이후 상징적으로나마 가능하던 일국양제는 종식됐고, 중국-홍콩 체제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또다시 새로운 관계를 도모해야 하는 시점이다.

 

2020년 12월 홍콩의 대표적 반중 매체로 꼽히는 <핑궈일보>의 창업주이자 발행인 지미 라이가 중국 중앙정부가 강행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기 위해 호송차로 걸어가고 있다. REUTERS

 

“구국 신념이 국민 계몽을 압도한 시간”

코로나19는 사회를 약화한 대신 국가가 강화된 가장 전형적인 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세계 어디에서나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하는 ‘공공공간’(Public Sphere)을 크게 축소하는 계기가 됐다. 중국에서도 홍콩에서도 국가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은 보이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최대한 보장되는 유럽에서처럼 자유가 억압당하는 상황을 참지 못해 행동하는 시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중국의 대표적 인문학자 류짜이푸는 중국에서 1949년 이후 국가사회주의 체제가 건립됐는데 국가만 있고 시민사회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관점은 개혁·개방 4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할 것이다. 시민사회 형성은 중국-홍콩 체제에서 양쪽 공히 걸음마 단계다.또 다른 사상가 리쩌허우는 중국 현대를 ‘구망’이 ‘계몽’을 압도한 시간이라고 했다. ‘망해가는 나라를 구하겠다는 신념이 국민 계몽을 방해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도 계몽은 유보됐는데 ‘일대일로’ 등 중국의 국가 우선주의에 밀리고 있다. 현대 중국에선 시종일관 국민을 소환하고 동원했을 뿐 시민의 성장은 유보돼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특히 시진핑 등장 이후 국가주의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이제는 ‘구망’보다 ‘국가’가 ‘계몽’을 압도하는 형국이다.신자유주의와 주권 반환이라는 이중의 충격에 더해, 코로나19 사태는 홍콩의 정체성, 나아가 중국-홍콩 체제를 재편하고 있다. 중국의 국가주의는 국가보안법과 함께 선거 후보자의 자격을 심사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데까지 숨 가쁘게 내달렸다. 국가보안법 발효와 선거 연기 등의 조처는 코로나19 시국이 아니었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본토 홍콩에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가 존재할 뿐이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중국이라는 국가권력이 홍콩이라는 지역성 앞에서 이 정도로 자신감을 보일 수 있었을까. 중국 정부가 총력을 기울인 홍콩의 ‘대륙화’와 홍콩인의 ‘다시 국민 만들기’는 초보적으로 완성됐다.

빈부격차, 만성불황이 국가 존속의 힘

중국 역대 왕조에서 가장 이상적인 체제로 평가받는 것은 당과 청 제국이지만, 뜻밖에도 전국시대와 위진남북조 시대도 손꼽힌다. 제국 성립은 국가와 지역 간의 적당한 거리 두기, 즉 접경 두기가 관건이었다. 분리된 통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국가의 힘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구실이 됐다면, 뜻밖에도 접경의 중요성을 증명한 예로 기록될 것이다. 중국이라는 국가 내에서 지역과 지역, 그리고 중국-홍콩 봉쇄는 역설적으로 접경의 의미를 부각했다. 코로나19는 국가와 지역의 ‘적당한’ 거리 두기를 요구했고 그것의 효과를 보여줬다. 코로나19는 통합에 의문을 제기했고 그 속도에 제동을 걸었다는 데서 의미가 크다.가라타니 고진은 국가주의를 통제하려면 국가에 대항할 수 있는 사회가 강해져야 한다는 화두를 던졌다. 가라타니는 네덜란드도 영국도 미국도 국외 경쟁에서 헤게모니를 잡은 뒤에야 비로소 국내 사회문제에 유연한 태도로 접근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중국도 확고한 주요 2개국(G2)으로 올라설 때까지는 국내 문제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즉, 시민사회의 성장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홍콩 사회의 성장이 중국 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된 이유다. 이 담론을 중국-홍콩 체제에 적용해보면 의미구조는 분명해진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사회가 형성될 수 있다면 홍콩특별행정구 사회의 성장도 기대할 만하다.가라타니는 자본, 네이션(국민), 스테이트(국가)라는 삼위일체가 사회구성체라고 말한다. 그는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빈부격차나 만성불황 등의 부정적 결과 때문에 오히려 국가가 존속될 힘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각박한 현실 속에 국민이 국가를 통한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세계 각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이나 홍콩에서도 빈부격차를 확대했다는 보고가 끊이지 않는다. 가라타니의 지적대로, 신자유주의가 계급격차와 사회불평등을 확대했고 어쩔 수 없이 그것의 해법을 국가에 위탁할 수밖에 없다면, 코로나19 사태 해법도 마찬가지다. 불행하게도 국가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지금처럼 높은 때도 드물었다.

자본-국민-국가 삼위일체 전성시대

최근 중국 청년층에게 한 설문조사에서, 중국이 서방국가와 대등한 존재라고 느끼게 한 사례로 ‘중앙정부의 성공적인 코로나19 대응’을 꼽은 비율이 가장 높게 나왔다. 향후 중국의 국가주의가 더욱 강화되리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지점이다. 국민을 위해 뭔가 한다는 이미지를 창출해야 하는 국가와 경제적으로 당장 눈앞의 문제 해결을 기대하는 국민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국가가 쉽게 약화하거나 소멸할 수 없는 이유다. 코로나19가 빈부격차를 더욱 확대했고 서민 일상을 더욱 곤궁하게 했다는 점에서 국가에 대한 국민 기대는 더욱 커졌다.다시 중국-홍콩 체제로 좁힌다면 코로나19 상황 또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자본-국민-국가의 연대가 강화됐다. 그 과정은 자본-국민-국가 체제의 견고함을 확인해주면서 이들 3자에 더욱 강한 자신감을 부여하는 계기가 됐다. 그 자신감은 중국과 홍콩이라는 각각의 시민사회가 크게 축소되고 무력화됐음을, 그리고 상호관계 측면이 강조되는 중국-홍콩 체제에서 그나마 유지돼온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코로나19 상황은 중국-홍콩 체제에서 이미 블랙홀이 된 자본-국민-국가라는 연대를 더욱 강화하는 동력이 됐고, 중국에서 시민사회 형성은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류영하 백석대 중국어학과 교수

 

참고 문헌

1. <방법으로서의 중국-홍콩 체제>, 류영하, 소명출판, 2020

2.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개정판)>, 류영하, 산지니, 2020

3. <세계사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 도서출판b, 2017

 

 

출처: 한겨레21

 

알라딘: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 (aladin.co.kr)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가 6년 만에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 사회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공간인 박물관에서 중국이 왜곡하고 있는 홍콩 정체성을 살펴보고, 과연

www.aladin.co.kr

 

Posted by 부산에서 책 만드는 이야기 : 산지니출판사 블로그 제나wp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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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과 20세기 동양적 혁명을 논하다

유원표 지음, 이성혜 역주/산지니·2만원

한 기업한테 3000만원을 받았느니 안 받았느니 총리 자리가 위태롭다. 만일 제갈량이 살아와 그 자리에 앉는다면?

1906년 조선의 ‘계몽 지식인’ 유원표가 그런 시도를 했다. 황제도, 무당도 아니요, 한낱 글쟁이인 터라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꿈꾸기다. 그 결과가 ‘꿈속에서 제갈량을 만나다’(<夢見諸葛亮>)라는 제목의 책이다. 일부에서 ‘몽유록계’라 하여 소설 범주에 넣기도 하는데, 대화체를 빌린 계몽서다. 서울의 역관 집안에서 나 가업을 이은 유원표는 승문원에서 역관으로 15년 이상, 군부대 통역관으로 10여년 근무하다가 1906년 54살에 퇴직하여 개성에 정주한다. 그는 <황성신문> 등에 시국에 대한 글을 다수 기고하는데, 이 책은 그의 유일한 저서다. 퇴직 후 그의 모든 역량을 들여 쓴 것으로 추정된다.

책은 논자들은 좋은 계책이 아니라고 함(議者謂爲非計), 아마도 괴이함이 없이 용납될 것임-10조목(容或無怪十章), 선생의 역사 연의(先生歷史演義), 동양문학의 허와 실(東土文學虛實), 황백인종 관계의 진상(黃白關係眞狀), 중국 정략의 개량(支那政略改良) 등 6개 장으로 되어 있다. 앞 4개 장은 1700년 전 제갈량(181~234년)의 공과를 다투는 내용으로,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조조를 풀어준 관우는 그대로 두고 전투에서 한차례 패한 마속의 목을 벤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 승상으로 뭐든 할 수 있었으니 상하 양의원을 만들어 언로를 틔울 수 있지 않았느냐 등등의 지적질이다. 뒤 2개 장이 가관인데, 앞 4개 장을 합친 것보다 많은 분량으로 인간 유원표 내지는 계몽 지식인의 두뇌구조를 보여준다.

‘황백인종 관계의 진상’은 서세동점 시대를 당하여 한·중·일이 힘을 합쳐 이를 물리치자는 내용으로 당시 일본 지식인의 생각을 답습하고 있다. 그런 논리에 따라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것을 두고 “장하다” “시원하다”는 표현을 한다. 마지막 장이 하필 ‘중국 정략의 개량’이다. 조선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게 아니라 중국의 살 방도를 제시하고 있다. 중국이 살면 자연히 조선도 살 것이라는 사대주의가 깔려 있지 않고서야….

꿈 깨시라. 제갈공명의 궁량은커녕 계몽 지식인의 혜안도 없다. 강대국 등쌀에 바람 잘 날 없는 나라의 형편을 목도한 당대 지식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들여다볼 ‘궁핍한 창’이라고나 할까. 이인직·이광수 등 친일로 나아간 문인들의 단초가 보인다.

신채호 서문이 뜻밖이다. “천만번 제갈량을 꿈꾸는 것이 한번 소학교 아이가 되기를 꿈꾸는 것만 못할 것이다”라며 에둘러 비판하는 것이 마지못해 쓴 흔적이 역력하다.

임종업ㅣ한겨레ㅣ2015-04-16


제갈량과 20세기 동양적 혁명을 논하다 - 10점
유원표 지음, 이성혜 역주/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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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과 20세기

동양적 혁명을 논하다

역주 『몽견제갈량夢見諸葛亮』


근대 지식인 유원표,

세기의 전략가 제갈량과 격돌하다

세기의 전략가, 제갈량을 20세기로 불러와 대화한다면 어떨까? 이 흥미로운 설정으로 쓰인 『몽견제갈량』(1908)은 계몽지식인 유원표가 집필한 국한문체 정치소설이다. 몽유록계 소설이기도 하지만 독립운동가 신채호가 서문을 썼으며, 시대 상황에 대한 정치적 개혁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등장인물은 유원표의 호이기도 한 밀아자와 제갈량, 단 두 사람이다. 문답으로 이루어진 소설 속에서 두 주인공은 한·중·일 동양의 문제, 특히 중국과 한국이 어떻게 변혁해야 할지를 놓고 격돌한다.

20세기에 지은이가 꿈꾼 혁명의 바탕이 된 유가 사상과 황백 인종론은 변화한 형태로 오늘날에도 나타나고 있다. 근대 한·중·일의 정세를 파악하고, 당시 지식인의 사유의 틀과 한계를 살피는 것은 21세기 한국의 미래에 대한 상상의 폭을 넓히는 작업일 것이다.



역관 출신 계몽지식인 유원표,

제갈량을 통한 ‘이이제이’를 꾀하다

유원표(1852~?)는 역관(譯官)이 여럿 배출된 집안에 태어나 한어 역관으로 10여 년을 군에 몸담았다. 그러다 1906년 봄에 사직하고 근거지를 개성으로 옮겨, 계몽지식인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신문 매체에 시국과 시세에 관한 글을 기고하며 활발히 활동하였으나, 1907년 이후에는 계몽소설몽견제갈량집필에 몰두하였다.

그는 몽견제갈량에서 서구 열강의 침략과 일본 제국주의의 마수를 눈앞에 둔 한국이 어떻게 독립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라를 변혁해야 하는데, 그 주체가 되어야 할 사대부들이 삼국지에 빠져 있다고 한탄한다. 유원표는 이런 연유로 ‘제갈량을 통한 이이제이(以夷制夷)’를 시도하게 되었다 말한다.

지금 우리나라 사정을 보면, 사대부들이 소매를 나란히 하고 계책을 얘기하는데, (…) 저 어리석은 자들은 제갈량의 윤건(輪巾)을 꿈꾸고, 우선(羽扇)을 꿈꾸고, 사륜거(四輪車)를 꿈꾸고, 기산의 오장원(五丈原)을 꿈꿀 따름이지만, 나의 꿈은 그렇지 않으니 곧 20세기 동양의 혁명이다. 그렇기에 내가 제갈량을 꿈꾸었지만 실은 제갈량이 나를 꿈꾼 것일 따름이다. 

_「서문」신채호의 유원표 인용


황인종 간의 단합,

진정한 유가사상 실천 통한 ‘동양평화’ 도모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는 근대전환기 용어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지리적 이분법은 물론 각각 동종의 인종·문화로 묶인 동양과 서양을 전제하고 있다. 청일전쟁 이후 서양열강의 중국 분할과 러시아의 만주 점령이 진행되자, 많은 지식인들은 당시의 국제질서를 인종경쟁으로 보았다. 백인종에 맞서려면 황인종은 일본을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만연했다. 유원표 역시 인종주의의 시각으로 러일전쟁을 바라보며, 백인종과 맞서려면 황인종의 맹주로 떠오른 일본이 무력으로 러시아뿐만 아니라 백인종의 식민지가 된 이웃나라 황인종을 모두 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수백 년 엎드렸던 황인종의 대표로 수백 년 악행을 하던 백인종의 선봉 러시아를 크게 격파하였으니 이보다 더한 다행이 없으며, 이보다 더한 경사가 없습니다. 

_5장 「황백인종 관계의 진상」중

이때 황인종의 ‘동양’은 한자·유가문화권으로 사유되었다. 이에 따라 번역자 이성혜는 유원표가 여러 번 사회적 개혁을 촉구하지만, 유가사상 자체를 비판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짚어낸다. 진정한 유가사상의 실천을 통해서라면 개명과 개화를 이룰 수 있다는 논리이다.

만약 성인의 심법을 조금이라도 강구하여 실행하였더라면 (…) 증기차와 화륜선, 크루프 대포와 회룡총 등의 발명품 역시 중국에서 먼저 나왔지 하필 경전도 읽지 않은 서양인이 제작했겠습니까? 

_4장 「동양문학의 허와 실」중




21세기 『몽견제갈량』을 만나다

『몽견제갈량』의 역자 이성혜는 한국 근대전환기 ‘서화’, ‘역관’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다 우연히 역관 출신인 유원표에 흥미를 느껴 한국 근대소설 『몽견제갈량』을 번역하게 되었다. 한국의 근대라고 하지만 국한문체로 쓰인 그 당시의 글들은 대부분 번역이 필요하고 이러한 이유로 한국 근대소설에 대한 자료가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번 책에는 번역된 소설뿐만 아니라 역자의 해제와 함께 『몽견제갈량』의 원문을 실었다. 한국 근대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나 학자들에게 유용한 자료가 되리라 본다. 더불어 ‘출전인물간략정보’로 원문의 이해를 도왔다. 평소 삼국지를 즐겨 읽는 독자라면 한국의 근대소설을 읽는 즐거움에 도전해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하고,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는 근대전환기 한국 계몽지식인의 고심과 사상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학계는 근대전환기 한국의 지식인들이 자국의 힘과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제국주의 논리인 사회진화론․우승열패론․황백인종론 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자강의 의지를 불태우는 주체 없는 근대에 몰두하면서 친일과 식민지의 늪으로 점차 빠져든 사실을 일부 고증해냈지만 그에 딱 들어맞는 지표종(指標種)으로서의 작품은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데 몽견제갈량이 바로 그러한 지표종으로서의 작품인 것이다.

_해제 11쪽



글쓴이 : 이성혜

부산대학교 한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강의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연구 초기, 조선후기 서화가의 삶과 예술에 골몰하여 그 결과물을 조선의 화가 조희룡(한길아트, 2005)으로 출간하였다. 이후, 연구 영역을 확대하여 이들 조선후기 서화가들이 중세가 해체된 근대전환기에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며 경제적 문제를 해결했는지에 대한 연구를 하였고, 이를 한국 근대 서화의 생산과 유통(해피북미디어, 2014)으로 간행하였다.

연구 노정(路程)에서 한국의 근대가 형성되는 과정에 많은 중인 계층, 특히 조선시대 역관 신분의 인물들이 계몽지식인으로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이들의 활동은 한국의 근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인지하였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근대전환기 역관의 행방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얻은 성과물이다.



차례



『제갈량과 20세기 동양적 혁명을 논하다

 - 역주 몽견제갈량』

학술 | 신국판 | 301쪽 | 20,000원 | 2015년 03월 16일 출간 | ISBN : 978-89-6545-283-6 93810 

세기의 전략가, 제갈량을 20세기로 불러와 대화한다면 어떨까? 이 흥미로운 설정으로 쓰인 『몽견제갈량』(1908)은 계몽지식인 유원표가 집필한 몽유록계 소설이자 정치적 개혁안이다. 소설 속에서 유원표와 제갈량은 중국과 한국이 어떻게 변혁해야 할지를 놓고 격돌한다. 근대 한·중·일의 정세를 파악하고, 당시 지식인의 사유의 틀과 한계를 살필 수 있다.



제갈량과 20세기 동양적 혁명을 논하다 - 10점


유원표 지음, 이성혜 역주/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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