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시기 고종황제(왼쪽)와 순종황태자가 근대 군대식 복장을 하고 나란히 섰다. 사진출처: 부산일보


1895년 8월 20일 경복궁에 잠입한 일본인들은 명성황후를 처참하게 시해하고 암매장한다. 을미사변이다. 황후의 국장은 2년이 훌쩍 지난 1897년 11월 21일에야 치러진다. 아관파천과 환궁, 대한제국 선포 과정에서 고종은 황후의 복수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칙령에서 을미사변을 '국모를 시해하고 임금을 협박해 법령을 혼란시킨 만고에 없던 일'로 규정하고 을미의병들이 국모 복수를 위해 충절로 궐기했다고 평했다. 경운궁으로 환궁한 뒤 편전에 해당하는 경소전을 황후의 혼백과 유해를 안치한 빈전으로 삼음으로써, 통치의 우선 과제에 황후의 복수가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황제 즉위 절차적 정당성 획득 노려 
근대화 압력 맞선 군주제 변신 추적



고종은 왜 국장을 미루고 황후의 복수를 이토록 강조했을까?

'근대 서구의 충격과 동아시아의 군주제'는 고종이 공자의 '춘추 의리론'을 내세워 유교적 존왕론을 강화하고, 황제 즉위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을 획득하려 한 것으로 분석한다. 황제 중심의 전제군주론이 19세기 서구와 일본으로부터의 개방 압력에 대응하는 고종의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대한제국 선포 후 고종은 광무개혁을 추진하며 1902년 5월부터 양경체제(서울·평양)를 공식화했다. 러시아와 일본의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평양 천도 가능성을 열어놓으려는 조치였다. 책은 황제의 어진을 평양 풍경궁에 모시는 의식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치렀다는 점에 주목한다. 일부 어진은 근대적인 사진이나 유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일본에서 메이지유신 이후 쿠데타 세력이 양경체제를 추진하며 천황을 도쿄로 이주시킨 것과 비교되는데, 이때는 서구식 군복을 입은 모습이 사진으로 찍혀 활용되었다. 

지은이 신명호 교수는 대를 이어 조선을 다스려온 국왕 고종과, 수백 년 막부시대를 거치며 권력에서 소외되어 있던 일본 천황의 상반된 권력 기반에서 원인을 찾는다. 전통을 잇는 국왕이 근대적 황제로 바뀐 사실만 알리기만 하면 되었던 고종과, 천황의 존재 자체를 민중들에게 근대적인 이미지로 알리는 일이 시급했던 메이지 천황의 입장차 말이다.

이렇게 책은 서구의 근대화 압력에 맞서 한국과 청, 일본, 러시아, 티베트가 군주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시도를 했는지, 그 군주제의 어떤 이미지를 구축하려 했는지를 살펴본다. 

국왕과 황제, 천황, 차르, 그리고 달라이 라마에 의한 정교 합일 지배 등 각국의 군주제 양상은 서구 열강의 압력과 각국의 경제 정치 상황에 따라 다르게 흘러갔다. 

'서구화=근대화'에 길들어버린 동아시아인조차 과거의 군주제를 낡은 것으로 치부하는 현실이다. 동아시아의 시각에서 군주제의 의미를 살펴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책이다. 

부경대 사학과에 재직 중인 박원용·신명호·이근우·조세현 교수와 동북아역사재단의 박장배 연구위원이 저자로 참여했다. 

부산일보│이호진 기자│2014-11-01
원문읽기: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41101000051

             



근대 서구의 충격과 동아시아의 군주제 - 10점
박원용 외 지음 / 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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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서세동점의 시기에 동아시아 각국의 군주와 지배 엘리트들이 군주제 유지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각국의 특수성은 어떠했는지를 비교해 살핀다.

조선은 황제를 중심으로 전제군주제를 도모했으며, 청나라에선 만주족과 한족, 군주입헌제와 민족주의가 대결했다. 

또 일본에선 막부와 장군을 중심으로 한 에도시대 군주제가 조정과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군주제로 변모했으며, 러시아의 군주정은 우익 정치세력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허약한 모습을 보였다. 

티베트에선 독특한 정교합일의 전통이 달라이 라마에 투영됐다. 이들의 비교 연구는 어떤 함의를 줄 수 있을까. 저자들은 전통을 지키려는 다양한 군주론 또한 당시 근대화론이나 혁명론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부각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북매일신문ㅣ2014년 10월 31일 

원문읽기: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33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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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극심해지는 외세의 침투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의 막부는 조정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이전까지 막부가 유일한 국가의사 결정기구로 작동했던 것과는 달라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외 위기와 내부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이고 강력하게 통합된 의사결정기구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천황을 중심으로 한 조정이 쇼군을 정점으로 한 막부를 타도하고 새로운 군주제를 창출하는 과정은 이렇게 시작됐다. 막부 중심의 체제가 수백년간 지속되면서도 천황의 종교적, 학술적 권위를 존속시킨 것은 새로운 정치체제 형성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고종(왼쪽)과 일본 메이지 천황 모습. 출처: 세계일보


막부를 무너뜨린 메이지유신의 관료들은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천황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전국을 순행(巡幸)하게 하고 천황의 사진, 초상과 같은 시각적인 장치들을 활용했다. 또 하나 주목한 것이 천황릉이었다. 천황 지배의 정당성을 ‘만세일계’(萬世一系·천황가의 혈통이 단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다고 주장)라는 관념을 통해 확보하기 위해 능을 조작했던 것. 신무천황릉은 없던 것을 새로 만든 것이다. 

‘근대 서구의 충격과 동아시아의 군주제’(박원용 등 지음, 산지니)는 19세기 이전 폐쇄적으로 운영되던 동아시아 각국의 군주제가 서양 세력과 대면하면서 겪은 변화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비교적 빠른 시기에 메이지 유신을 통해 강력한 입헌군주제를 성립시킨 일본을 비롯해 조선, 중국, 러시아, 티베트의 사례를 분석한다. 

조선의 경우 고종은 명성황후의 국장을 지연시키며 ‘국모 복수론’을 확산시켰다. ‘존왕론’을 강화시키고자 한 의도였는데 고종 자신을 중심으로 외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논리였다. 책은 “고종은 황제에 즉위한 후 정치체제를 황제 중심의 전제정치체제로 만들 수 있었다. 이런 전제군주론이 바로 19세기 서구의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대한제국 시기에 고종이 구상했던 ‘구본신참’ 또는 ‘법고창신’의 정치적 표현이었다”고 설명했다.


세계일보│강구열 기자│2014-11-06

원문 읽기: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11/06/20141106003749.html?OutUrl=naver


왕좌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 『근대 서구의 충격과 동아시아의 군주제』(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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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서구의 충격과
동아시아의 군주제

동아시아 5개국의 대응사례를 중심으로

 

 

 

서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동쪽의 왕좌를 흔들다

이른바 서세동점(西勢東漸) 시기인 19세기 이전의 동아시아 각국은 폐쇄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적 세계질서를 축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각국의 정치, 경제, 문화, 외교는 동아시아라는 큰 틀에서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이 명치유신을 통해 강력한 입헌군주제인 ‘근대일본과 천황제’ 모델을 비교적 빠른 시기에 성립하자 유학파, 친일파, 외교관 등 다양한 통로로 조선과 청에 일본의 모델이 소개되고 논의되었습니다. 조선의 갑오개혁과 대한제국 성립 그리고 청 왕조의 무술정변과 20세기 초의 개혁노력은 일본의 모델을 수용하고자 하는 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외에 러시아의 차르 체제도 조선과 청의 군주제에 영향을 미쳤으며, 중국의 신해혁명은 티베트의 독립은 물론 베트남 군주제를 약화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군주‘론’과 군주‘이미지’로 살펴보는 5개국의 근대 군주제

『근대 서구의 충격과 동아시아의 군주제』에서는 ‘군주론’과 ‘군주이미지’ 라는 두 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5개국의 역사를 비교합니다.
1부에서는 위기를 맞이한 각각의 군주제를 지탱하기 위해 어떤 시도를 했는지 비교하였고, 2부에서는 사건이나 구체적인 조치들을 통해 각국의 군주제가 어떠한 이미지를 구축하려 하였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황제를 중심으로 한 전제군주제를 도모한 조선
 조선의 고종은 명성왕후의 국장을 늦추며 ‘국모 복수론’을 확산시키고 존왕론을 강화하고자 했다. 이후 고종은 황제에 즉위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전제군주론을 본격화했습니다.
또한 광무시기에 고종황제는 평양에 궁을 짓고 그곳을 서경으로 승격하는 양경체제를 구축하려 했는데,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명분으로 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이용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관했던 서경의 영숭전을 계승하겠다는 의도였지요. 일본에서도 명치시기에 교토와 도쿄를 수도로 삼고자 했는데, 광무시기와 명치시기의 양경(兩京)체제 추진은 근본적으로 서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이므로 비슷하게 보이지만 사실 다른 점이 많습니다. 따라서 양국의 양경체제 추진은 서구 앞에 선 한일 양국의 역사적 경험을 비교하기 좋은 소재라 할 수 있습니다.


만주족과 한족, 군주입헌제와 민족주의가 대결한
 청나라의 사례로는 청말신정(淸末新政) 시기, 단방(端方)이라는 만주족 고위관료를 중심으로 한 다섯 대신의 구미 여행과정과 그들이 귀국하여 전개한 입헌군주론이 예비입헌에 미친 영향은 무엇이고 관제개혁은 어떻게 실패하였는지 등을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팔기제도를 개혁하고 만한차별을 폐지하며 황권을 강화하려 함으로써 청말신정 시기 고조된 민족주의에 따른 만주족과 한족의 갈등이 가져온 군주입헌제의 굴절과 정치적 혼란도 조명하였습니다. 이민족 정권인 청조의 특성상 군주입헌제 변혁을 주도하기는 힘들었고, 1911년 신해혁명의 발발로 한족 중심의 민족주의가 승리하였습니다.


명치유신으로 입헌군주제의 기틀을 빠르게 다진 일본
 일본의 경우 서구 열강과의 조약 체결 과정에서 국가의사결정기구가 막부와 조정으로 나뉘었습니다. 그러나 위기와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안정적이고 강력한 국가의사결정기구, 즉 정부(政府)가 필요해지면서 막부와 장군을 중심으로 하였던 에도시대의 군주제를 폐지하고 조정과 천황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군주제를 창출하게 되었습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명치유신 관료들은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천황이라는 존재를 적극 활용하였고, 천황 지배의 정당성을 입증하고자 천황릉을 이용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없던 천황릉을 새롭게 만들기도 하고, 원분이나 방분을 전방후원분으로 둔갑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전제정 지지파의 유대인 탄압과 사회주의 세력의 러시아
 전제정의 위기가 가속화하던 러시아에서 군주제를 수호하고자 한 대표적 우익 조직인 러시아 민족동맹은 유대인 박해가 전제정의 수호와 민족의 이익과 가치 보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당시의 러시아 군주정이 우익정치세력들의 지원에 의지하여 전제정을 수호하려는 시도이자, 전제정의 취약한 지지기반과 반대세력을 확실히 제압할 수 없었던 허약한 이미지를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러시아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베일리스 사건은 많은 시사점을 남깁니다.


독특한 정교합일의 정점 달라이 라마의 티베트
 티베트의 군주론에서는 군주권 계승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이론이자 방법인 ‘활불 전세’ 제도, 달라이 라마를 정점으로 하는 중층적인 ‘정교합일 체제’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1912년 이후 달라이 라마는 청 황제의 권위를 완전히 대신하여 티베트 사회의 구심점으로 존재했습니다. 또한 티베트에서 군주의 모습은 여전히 불교교단 수장의 이미지와 겹칩니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의 이미지는 티베트 불교의 수장뿐 아니라 통합된 티베트를 만들어내는 티베트 민족주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근대화냐 전통이냐? 이분법을 넘어서는 동아시아 연구

 근대화 성공 여부로 동아시아의 근대사를 해석하려는 서구적 관점의 기존 연구는 전통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군주제를 지지하는 전통적 지식인이었던 각국의 주류 세력은 서구의 충격에 대응하여 전통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혹은 군주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군주론을 전개했습니다. 그들이 제시한 새로운 군주론과 그에 입각해 전개한 정치개혁운동, 사회개혁운동, 사상개혁운동 등은 당시의 근대화론이나 혁명론 못지않게 중요했습니다.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티베트는 모두 군주제를 경험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일본을 제외한 이들 4개국에서 현재 군주제의 양상이나 영향력을 찾아보기는 어려우며, 군주제에 내리는 평가 역시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일국적, 서구적 관점을 넘어선 새로운 시도인 『근대 서구의 충격과 동아시아의 군주제』는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티베트가 서구 열강에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그에 따라 어떤 대책을 세우고 개혁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같으면서도 다른 동아시아 국가의 역사를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연구하는 데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저자

박원용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박물관장을 겸하고 있다. 저서로 『19세기 동북아 4개국의 도서분쟁과 해양경계』(공저), 『대중독재와 여성: 동원과 해방의 기로에서』(공저) 등이 있고 『E. H. 카 평전』, 『10월혁명: 볼셰비키 혁명의 기억과 형성』 등의 번역서가 있다.

박장배 서강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사와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근현대 중국의 티베트 통합정책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연구 사업을 하고 있다. 저서에는 『역대 ‘중국’의 판도(版圖) 형성과 ‘변강’지배』(공저), 『중국 동북 연구-방법과 동향』(공저) 등이 있다.

신명호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동 대학원에서 조선시대 왕실문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경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조선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 『조선공주실록』, 『한국사를 읽는 12가지 코드』, 『고종과 메이지의 시대』 등이 있다.

이근우 서울대 동양사학과, 한국학대학원 석ㆍ박사과정을 거쳐 일본 경도대학 일본사교실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부경대학교 사학과에 재직 중이며 대마도연구센터 소장을 겸하고 있다. 저서로는 『고대왕국의 풍경』, 『부산 속의 일본』, 『대한민국은 유교공화국이다』 등이 있다.

조세현 서강대 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치고 북경사범대학에서 중국 근현대 사상사와 문화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경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淸末民初無政府派的文化思想』, 『동아시아 아나키스트의 국제교류와 연대』, 『부산화교의 역사』 등이 있다.

 

 

차례

책을 펴내며
 서장

제1부 서구의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동아시아 5개국의 군주론 비교연구

1장 을미사변 후 고종의 국모 복수와 군주전제론
2장 청말신정 시기 오대신출양과 군주입헌론의 전개-단방을 중심으로
3장 막말기의 새로운 권력구조 구상
4장 러시아 군주정의 구원투수-러시아 민족동맹의 형성과 전략을 중심으로
5장 19세기 말, 20세기 초 티베트의 군주론의 변용

제2부 서구의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동아시아 5개국의 군주이미지 비교연구

6장 광무 명치시기 양경체제 추진과 군주이미지 활용 비교연구
7장 청말신정 시기 만한갈등과 군주입헌론의 굴절-관제개혁과 만한평등책을 중심으로
8장 명치정부의 무대장치 천황릉
9장 러시아 전제정의 반격-베일리스 사건의 상징성을 중심으로
10장 20세기 전반기 달라이 라마의 이미지 변화-자연재해와 관련하여


참고문헌
색인


 

 

 

 

 

『근대 서구의 충격과 동아시아의 군주제』

동아시아 5개국의 대응사례를 중심으로

박원용 박장배 신명호 이근우 조세현 지음 |
역사 | 신국판 양장 | 384쪽 | 28,000원
2014년 10월 27일 출간 | ISBN :
978-89-6545-267-6 93910

근대의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티베트가 서구 열강에 받은 영향과 대응방식을 다룬 책. 근대화에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를 기준으로 역사를 해석하려는 관점을 지양하고 각국의 정치, 경제, 문화, 외교를 동아시아라는 큰 틀에서 파악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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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전복라면 편집자가 만든 근간 홍보 포스터를 보는 산지니 식구들 

 

권디자이너: 잘했네. 사소한 것만 좀 고치면 되겠다. 밑에 저자 소개는 검은색으로 하고, 여기 큰 글자 옆에 가려진 거 빼고 보이게 하고.

전복라면: 근데요, 전 약간...(시무룩하게) 근간 소개는 좀 웃기게 하고 싶었어요. 병맛 나게. 짤방처럼.

엘뤼에르, 온수입니까: 짤방? 그건 전혀 아니다.

온수입니까: 포스터 색깔이 검은색이라서 딱딱하게 보이는 거 아닐까? (산지니 블로그에 들어가보고) 카테고리 이름을 근간 소개 말고 좀 부드럽게 했으면 좋겠어.

전복라면: 곧 나올 책, 이런 거? 으음.(블로그 카테고리 이름을 고친다)

엘뤼에르: 전복 씨 근간 소개 가지고 한 이 주쯤 계속 생각한거 아니야?ㅋㅋ 쉽게 생각해요. 전복 씨는 정말 걱정 여왕이다.

전복라면: 맞어, 나 좀 그래.

 

다음 소개는 꼭 웃기게 하리라 다짐하며 첫 번째 근간 소개를 마칩니다. 격동의 서세동점 시기에 서구열강과 맞닥뜨린 조선, 청, 일본, 러시아, 티베트 5개국의 다양한 군주론을 다룬 『근대 서구의 충격과 동아시아의 군주제』가 곧 독자 여러분께 알현을 청할 예정이오니, 애독자 여러분께옵서는 부디 긍휼을 베푸시어 서점으로 왕림하여 주옵소서(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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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엘뤼에르 2014.10.23 09: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그래요? ㅎㅎ 좀이 아닌데ㅎㅎ 앞으로는 걱정 많이 줄이고, 즐거운 나날들만 생각해요 전복씨~♥

2014년 5월이 곧 시작됩니다. 시간이 너무 빨라서,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없네요. 

<교수신문>에서 2014년에 발간될 학술서 출간계획을 특집으로 실었습니다. 

산지니 학술서도 소개되었는데요, 어떤 학술사가 출간될지 예고편을 보시죠!





즐거운 그러나 고통을 직시하는 力作들과의 조우


특집_ 2014년 학술서 무엇이 준비되고 있나




부산에서 한국출판문화 발전에 일조하고 있는 산지니는 류원빙의 『중국 영화의 열광적 황금기』, 헬무트 크라비치 등의 『반대물의 복합체』, 박원용 등이 쓴 『근대 서구의 충격과 동아시아의 군주제』 등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반대물의 복합체』는 칼 슈미트가 죽고 난 뒤 독일 수파이어 행정대학원에서 열린 특별 세미나에서 발표된 논문을 편역한 책이다. 칼 슈미트 사상의 다양성과 모순성을 심도 깊게 엿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근대 서구의 충격과 동아시아의 군주제』는 서세동점 시기 서구의 충격에 응전한 동아시아 5개국(조선, 청, 일본, 러시아, 티베트) 군주제의 대응양상을 비교사적 관점에서 검토한 책이다. 


2014-04-23 최익현 기자




다른 출판사의 2014년 출간될 학술서를 보고 싶으시면


* 이 글은 <교수신문>에서 일부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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