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작가의 재발견]

에로와 그로테스크의 경계, 돌직구 시인 김언희


김언희 시인의 시는 쎄다. 참혹했다. 그것이 제가 받은 그녀 시의 첫인상이었습니다. 김언희 시인은 1953년 7월 20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경상대학교 외국어교육과를 나왔고 1989년 현대시학에서 대뷔했지요. 2005년 경남문학상을 받은 전례도 있구요, 계간 '시와 세계'가 주관하는 제6회 이상 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최학림 문학기자는 『문학을 탐하다』안에서 '타협 없는 무서운 엽기'라고 그녀의 시를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그녀는 2000년도에 발간한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에서도 자서(自序)에 '임산부나 노약자는 읽을 수 없습니다. 심장이 약한 사람, 과민 체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읽을 수 없습니다. 이 시는 구토, 오한, 발열, 흥분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드물게 경련과 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시는 똥 햝는 개처럼 당신을 // 싹 핥아 치워버릴 수도 있습니다.'라고 경고하지요. 그쯤 '엽기'코드가 유행했으니 그녀의 시가 당시의 시대 코드를 잘 반영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녀는 쭉 그런 시를 쓰고 있습니다. 여전히 에로틱하고 그로테스크한 시를요.



그녀의 출판 저서로는 『요즘 우울하십니까』(문학동네, 2011), 『뜻밖의 대답』(민음사, 2005), 『트렁크』(세계사, 2000),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민음사, 2000)가 있습니다.

저는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와 『뜻밖의 대답』안에 있는 시들을 읽었는데요, 속도감 있게 읽히는 반면 불쾌한 감정을 들게하는 시들이었습니다. 시 안에 나오는 표현들 전부가 부정적인 이미지였으니 당연한 기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녀의 시세계를 이해하고 싶으신 분들은 일단 그녀의 시를 읽어보도록 하죠.

우선은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에서 뽑은 세 편을 소개할까합니다. 제 주관적인 해석이므로 반기를 드셔도 됩니다. 시는 읽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 여러 가지 옷을 입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는 아직도 죽지 않았다 양 한 마리가 무릎을 꿇은 채 여자의 잠속을 절룩절룩 걸어다닌다 도끼에 찍힌 자국들이 헐벗은 사타구니처럼 드러나 있는 앵두나무 저 여자는 언제 죽을까 죽은 앵두나무 아래 죽을 줄 모르는 저 여자 미친 사내가 도끼를 들고 다시 등뒤에 선다 미래의 상처가 여자의 두개골 속에서 시커멓게 벌어진다 앵두나무 죽은 앵두나무 말라죽은 앵두나무 도랑을 가득 채우고 흐르는 것은 검은 머리카락이다.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저는 이를 읽으면서 영화 <이웃사람>이 생각 났습니다. 왜일까요? 앵두는 애정관련 표상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앵두가, 그것이 맺히는 앵두나무가 말라죽었다는 건 이 시에 나오는 여자의 처녀성 상실로 생각되네요. 미친 사내의 도끼질을 보며 강간범을 떠올렸구요. 그것도 강간살인범이요. 시를 곱씹으면 계속 그런 장면이 머릿속에 되감기되어 재생되서 끔찍해요. 어쩌면 이 시는 처녀성을 잃고 무참히 살해당하는 여자에게 보내는 추모시가 아닌가. 이런 사회적 성범죄 문제를 각성하라는 시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자궁으로 가는 길은 불태워졌다

소작(燒灼)된 길

위에서

타고 남은 내 몸은

내가 낳은 난자를 먹어치운다

피가 벌건

입으로

* 소작Coagulation : 난관(난관)을 태우는 영구 피임.

-『가족극장, 소작*된』

 

소작된 길은 생명 잉태를 막는 차단로가 됩니다. 영구피임은 더 이상 임신하지 않으려고 선택하는 불가피적인 것이지만, 여자의 몸 안에 남아있던 난자들은 생명으로 부화하지 못한 채 무참히 죽음을 당하지요. 현대 의료시술에 의해 살해되는 겁니다. 그리고 결국 여자의 달거리로, 그들의 시체가 빠져나오게 되지요. 벌건 핏덩어리로 말입니다. 이미지 자체가 좀 징그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편으로는 소작된 길로 인해 상실되는 여성성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구요.

 

자궁의 목구멍에 아버지가 걸려있다

하수구에 걸린 슬리퍼처럼

-『가족극장, 삭망(朔望)』


삭망(朔望)은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을 아울러 이르는 말인데요, 이것과 같은 말로 삭망전이 있습니다. 삭망전은 상중(喪中)에 있는 집에 매달 초하룻날 보름날 아침에 지내는 제사라는 뜻입니다. 제목으로 유추하여 보자면, 상중에 있는 아버지가 지금 성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저 불쾌했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날 만큼은 엄숙해야하는 거 아닐까요. 하물며 상(喪)의 중심에서 상주(喪主) 역할을 해야하는 아버지는 특히요. 그래서인지 하수구에 걸린 슬리퍼를 생각하니 짜증이 났습니다. 아니 짜증보다는 분노에 가깝습니다. 심지어 이 시 속의 아버지가 미친놈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다음으로는 『뜻밖의 대답』안의 세 편을 추려봤습니다. 아래로는 더 주관적인 해석이 달려있습니다. 이 시인이 사회적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구나, 생각이 들어서요.


그것은, 어디에나, 있고,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간에, 극장이라, 부르거나, 유치원이라, 부르거나 간에, 그것은, 도살장이고, 도살장임에, 틀림없고,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들의, 공공연한 용도를, 사무치는, 용도를, 모르는 사람, 역시, 없다, 어떤 간판을, 달았든지 간에,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이, 자신의 집, 안방에서, 또는 욕실에서, 家傳의, 도살 기구들이 흔들거리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흡사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 섬뜩한 항등식, 무엇을, 대입해도 성립되는, 도살의, 등식을, 모르는 사람, 또한,

-『벙커 A』


우리는 벙커 안에 갇혀있습니다. 시인의 말대로라면 항상 어느때나 어디서나 우리는 벙커 안에 갇혀있는 셈입니다. 그 벙커에는 이름이 있지만 벙커는 그냥 벙커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무참하게 도륙당하고 있는 것이지요. 무엇이요. 우리는 그 벙커안에서 무엇을 도륙 당하고 있는 걸까요. 아마 벙커 안에서 도륙되어지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생각'이 아닐까요? 극장에서는 같은 화면을 똑같이 앉아 보고, 유치원에서도 똑같은 내용을 배우죠. 공장에서 찍어내듯 균일화된 사람들이 탄생합니다. 말그대로 이름만 다른 벙커죠. 도살장이지요. 각기 다른 개개인을 죽이는, 벙커는 도살장이군요. 김사과 소설가의 『미나』가 생각나네요.


이자의 개가 되고

호출기의 개가 되고

더 이상 변명일 수 없는 변명의 개가 되고

단말기의 개가 되고

땅거미의 개가 되고

숙취의 개가 되고

시의 개가 되고

구멍의 개가 되고

입에서 나온 입으로 뻐꾹

뻐뻐꾹 성교를 하고 백날이고 천 날이고

연기가 피어오르고 마침내

마침내 그것의 개가 되고

백날이고 천 날이고

누린내가 피어오르고

-『마침내 그것의』


<마침내 그것의>는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을 힐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여기서 '개'는 '노예'로도 바꿔말할 수 있겠네요. 자신의 생활 수준에 안맞는 소비 때문에 이자의 노예가 되는, 휴대폰 단말기처럼 기기의 노예가 되는, 땅거미지도록 술을 퍼마시는 술의 노예가 되는, 상대에게 뻐꾸기 날리며 교접을 원하는 성의 노예가 되는, 개가 되는 그러한 현실. 그리고 결국 누린내가 피어오르죠. 이 누린내는 죽음을 뜻하는 걸로 보이는데요, 얼마나 허무한 인생입니까. 평행 무언가의 노예로, 개로 사는 현실은요.


나에게는

뾰족하게 깍은 연필 한 자루 있네

나에게는 뾰족하게 깍은

자지 하나 있네

뾰족하게 깍은 자지, 아버지의

자지로 오늘도 나는

내 눈을

찌르네

아버지, 아버지가 밴 아이는

내 아이가

아녜요

-『나에게는』


비약적일지도 모르지만, 전 연필을 사람이 쓰는 ‘말(言語)’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뾰족하게 날이 선 말이지요. 그것을 다시 아버지의 성기에 빗대어 말한 것은 그 습관을 아버지로부터 받았다는 말이 됩니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배우지 않습니까. 화자는 뾰족하게 날이 선 자신의 말로 자신도 아버지도 상처입히지요. 아버지가 밴 아이는 내가 준 상처의 말이지만 화자는 그것을 부정하지요. 그 말은 애초에 아버지의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화자는 아버지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답습했을뿐이죠.



시를 보고, 읽고, 나름대로 해석해보면서 역시 생각한 것은 ‘김언희 시인은 시는 쎄다.’였습니다. 부패된 부정한 사회와 가정에게 돌직구를 날리는 스타일이랄까요. 괜스레 독설가 언니를 만나고 온 듯한 느낌도 들었구요.

 

김언희 시인은 “종이가 찢어질 정도로 훌륭한 시를,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쓰고 싶었습니다.”라고 그녀의 네 번째 시집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당신은 김언희 시인의 시를 읽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김언희 시인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아래 책을 참고해보세요.


문학을 탐하다 - 10점
최학림 지음/산지니

『문학을 탐하다』는 2014 '원북원부산운동' 후보 도서입니다.

책 읽는 부산을 만드는 소중한 한 표 부탁드립니다.

2014 원북원도서 올해의 책 투표하러 가기>> http://www.siminlib.go.kr/onebookone2/

Posted by 비회원

문학을 탐하다, 우리 지금 만나!

 

 문학(文學) [명사]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그런 작품.

탐하다(貪--) [동사] 어떤 것을 가지거나 차지하고 싶어 지나치게 욕심을 내다.

 
문학을 탐하다. 이 제목은 사전적 의미로 풀어본다면 참으로 묘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학을 탐한다는 이 말을 곱씹으면 문학이란 사상과 감정을 언어로 또는 작품으로 만들어낸다는 뜻이고, 탐하다는 말은 그런 문학을 갖고 싶어 안달내는 누군가의 모습을 떠오르게 만들기 때문이지요. 이런 문학을 탐내는 첫 번째 누군가는 단연 이 글을 집필한 최학림 문학기자요, 두 번째는 바로 이 책을 읽게 될 당신이 되지 않을까요?

 

최학림 기자가 문학 기자가 되기까지 과정은 꼬박 1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문학 기자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부산일보>에 입사해서 여러 과정을 거쳐 문학기자가 된 최학림. 그가 만난 작가들의 이야기들이 여기 이 책에 담겨있습니다.

 

 

『문학을 탐하다』는 세 가지 파트로 나눠지고 또 그 한 파트 한 파트 안에는 각각 여섯 명의 작가들이 숨 쉬고 있습니다. 즉, 이 책 한 권으로 독자들은 총 18명의 작가들을 만나보는 셈이지요.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입니까? 책 한 권으로 18명의 작가를 만날 수 있다니! 또한 최학림 기자는 작가와 있었던 에피소드를 통해, 작가와 독자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주고 있습니다. 최학림 기자가 풀어놓는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그가 들려준 작가들에게 호기심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들의 작품이 읽고 싶어집니다. 이 책을 통해 작가와 독자는 작품 밖에서 미리 만나게 되지요. 그렇게 보면,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문학을 탐하다』의 위치가 아닐까 싶네요.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정태규 소설가, 최영철 시인, 조갑상 소설가, 이복구 소설가, 유홍준 시인.

제가 처음 『문학을 탐하다』를 접했을 때 이 책 안에는 생소한 작가들이 많았습니다. 특히나 문학을 멀리하는 독자층이라면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이름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저도 처음 보는 작가들이 대부분이였어요.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존재감이 분명한 이 작가들은 이 책을 뚫고 나옵니다. 대담하게 독자의 앞에 걸어 나와 묻습니다.

 

“자, 이제 어떻게 하겠어요?”

 

그러면 독자는 작품이라는 몸에 걸쳐진 『문학을 탐하다』라는 옷을 보고 그 안에 감춰진 속살을 생각해봅니다. 옷 속으로 비친 속살을 보며 그 안을 가늠해봅니다. 그러다 호기심이 이는 순간 이 책을, 그리고 이 책 안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품들을 손에 집어든 당신을 발견하게 되겠지요. 아니면 저처럼 이미 작품들을 펼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구요.

『문학을 탐하다』를 읽다보면 최학림 기자가 얼마나 문학에 애정이 있는 사람인지 느껴지실거예요. 최학림, 그는 진정으로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문학을 애정의 대상으로 보고, 그 작가들과 작품들을 만나 자신의 글쓰기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최학림 기자의 눈을 통해 18인의 작가를 엿볼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지요. 그렇기에 작가들이 멀게 느껴져서, 혹은 작품을 어렵다며 책 읽기를 멀리하는 그대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대들에게는 이 책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작가, 작품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거예요. 이건 마치 소개팅하는 기분일지도 몰라요. (두근두근)

소설가 이복구, 시인 김언희, 시인 최영철, 시인 유홍준, 소설가 김곰치, 시인 엄국현, 소설가 조갑상, 시인 신진, 시인 성선경, 소설가 정영선, 시인 박태일, 소설가 강동수, 소설가 정태규, 시인 조말선, 시조 시인 박권숙, 소설가 이상섭, 시인 정영태, 시인 최원준.

나른한 오늘 오후.

18명의 작가들과 유쾌한 만남을 가져보시지 않겠어요?

 

 

- 마하 올림

 

 

문학을 탐하다 - 10점
최학림 지음/산지니

『문학을 탐하다』는 2014 '원북원부산운동' 후보 도서입니다.
책 읽는 부산을 만드는 소중한 한 표 부탁드립니다.

2014 원북원도서 올해의 책 투표하러 가기>> http://www.siminlib.go.kr/onebookon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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