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던 한국학 석학,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가 돌아가셨습니다.

왕성한 저술활동을 통해 올해도 많은 저서를 출간하기도 하셨는데요. 산지니에 출간된 『늙은 소년의 아코디언』에서 부산에서 자라온 고인의 어린 시절의 삶이 녹아져 있습니다. 학계 은퇴 이후에는 고향인 고성에서 지내며 자연친화적인 삶을 몸소 실천하면서 해마다 한 권의 책을 내오셨습니다.

김열규 교수님께서는 최근에 혈액암 진단을 받아 투병중이셨다고 합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5호실에 마련되어 있으며, 발인은 25일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산에서 자라난 한국학의 거장 김열규의 청소년 시절을 그린 자화상


『늙은 소년의 아코디언』

『한국인의 자서전』, 『노년의 즐거움』 등 인문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한국학 학자로 지금껏 수많은 저서를 집필하였던 김열규 서강대학교 명예교수의 80년 인생을 돌아보며 쓴 산문집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처럼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고자 고성으로 낙향한 그는 여든의 나이에도 꾸준한 집필과 강연을 하며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지금까지의 그가 한국인의 삶과 죽음, 의식구조와 행동양식 등을 깊이 있게 연구해왔다면, 산문집 『늙은 소년의 아코디언』에서는 누구나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아련한 ‘고향’에 대한 이야기와 그곳에서 자라나는 한 소년의 성장기를 그려내는 데 주력한다.


늙은 소년의 아코디언


체육대회 장면

'한국학 석학'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 별세

한국학 석학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가 22일 오전 10시 별세했다. 향년 81세.


고인은 한 달 전 혈액암 진단을 받은 뒤 경남 진주 경상대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아왔다. 제자 우찬제 서강대 국문과 교수는 이날 "암 초기라서 곧 나으실 줄 알았는데, 오늘 오전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고인은 1932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국문학과 민속학을 전공했다. 29세에 교수가 된 고인은 민속학과 한국문학을 아우르다 한국학으로 연구 지평을 넓혔다. 초기 민속학자들이 발굴한 자료에 대한 해석을 통해 한국학의 담론화 작업에 기여했다. 강단에서 자연을 찬미했던 고인은 은퇴 이후 경남 고성으로 귀향했다. 고인은 지난 3월 한 언론에 기고한 '미리 쓰는 부고'에서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지는 그만큼, 미리 기획하고 노리고 벼르고 한 일들에 마지막으로 최대한의 정열을 바쳐야 한다"고 말했다. 고인은 이 말을 실천하며 살았다.


은퇴 이후 매해 한두 권의 묵직한 대중인문서를 출간했다.


인제대·계명대에서 강의했고, 경남 산청에 있는 지리산고등학교에서 수년간 논술을 가르쳤다. 이달 초까지 '김열규의 예맥(藝脈)'을 한 언론에 연재했다. 고인은 70여 권의 책을 썼다. 주저로는 < 한맥원류(恨脈怨流) > < 한국민속과 문학연구 > < 한국문학형태론 > 등이 꼽힌다. 한국인들의 화, 유머, 욕 등 다양한 소재를 갖고 폭넓은 글쓰기를 시도했다. 귀향 이후에는 행복, 공부, 독서를 열쇠말로 글을 써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상욱씨(수필가)와 아들 진엽(서울대 미학과 교수)·진황(현대고 교사)씨, 딸 소영씨(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다. (02)2072-2020


<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

보도자료 전문보기http://media.daum.net/society/people/newsview?newsid=20131022220407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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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규 산문







『한국인의 자서전』, 『노년의 즐거움』 등 인문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한국학 학자로 지금껏 수많은 저서를 집필하였던 김열규 서강대학교 명예교수가 스스로의 80년 인생을 돌아보며 쓴 산문집을 출간하였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처럼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고자 고성으로 낙향한 그는 여든의 나이에도 꾸준한 집필과 강연을 하며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다. 지금까지의 그가 한국인의 삶과 죽음, 의식구조와 행동양식 등을 깊이 있게 연구해왔다면, 산문집 『늙은 소년의 아코디언』에서는 누구나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아련한 ‘고향’에 대한 이야기와 그곳에서 자라나는 한 소년의 성장기를 그려내는 데 주력합니다.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한 유년 시절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광복하기 전 일제 강점기에 그토록 일본을 위해서 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맹세하곤 했는데, 이게 뭐람? 광복을 맞은 이제, 공산주의를 위해서 죽으라니!”(p142)

 광복 후, 좌익 학생 단체 소속의 선배들이 시켜 공산당의 ‘적기가’를 불렀던 일은 소년 김열규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그 당시 빚어진 정치 집단의 이념 갈등은 학생들에게까지 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산문집『늙은 소년의 아코디언』은 일제 시대와 광복, 6․25전쟁 등 굴곡진 현대사를 겪게 되는 소년의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독자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일제 강점기, 부산의 부평동 사거리에서 ‘마사무네야 혼텐(正宗屋 本店)’이라는 정종 도매 가게를 운영하셨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김열규 교수는 일본 상점과 사무실이 즐비한 그곳에서 ‘누가 뭐래도 여긴 우리 조선 땅이야!’라며 마음속에 긍지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가 유년을 보낸 부산은 일본과 인접한 지리적 특성에 따라 한국의 현대사를 더욱 실감나고 생생하게 보여주는 곳입니다. 자칫 딱딱할 수도 있는 소재를 저자는 무겁게 풀어내지 않습니다. 그 시절의 부산 풍경과 한 소년의 성장기를 시종일관 유쾌하고 재밌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년다울 수 있었던 그때!

 김열규 교수는 자신의 유년기를 여러 가지 일화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데, 전차가 다니던 그 시절, 마음껏 시내를 활보하면서 이웃집 형과 함께 일본인 소학교에 원정을 떠나 일본아이들을 응징했던 일, 그리고 「부산일보」(당시 ‘후잔닛보’)에 작문 글이 실려서 신문사로 한걸음에 달려갔던 장난기 가득한 소년의 모습들을 노년이 된 지금에도 여전히 소년의 눈으로 회고하고 있습니다. 늙은 소년 김열규 교수가 켜는 아코디언의 울림을 듣다 보면, 어느덧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으로서 부산을 마주할 뿐만 아니라, 소년이 된 우리네 어린 시절의 모습까지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 ‘꼬맹이’ 소년 김열규의 삶을 그린 「자갈치를 낚싯대로 휘저으면서」와 철들기 시작할 무렵 ‘학생’ 김열규의 삶을 담은 「얌생이와 돗따」가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제 치하를 겪은 유소년기와 1945년 광복을 맞기까지 청소년기의 김열규 교수 모습을 나눈 셈입니다. 특히나 2부 「얌생이와 돗따」에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학교를 함께 다닐 수 없었던 당시의 모습과 함께 군수품을 만들면서 꿇어앉아 맞이하던 광복의 순간들이 묘사되어 있어 한국 현대사가 더욱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기억에 스며든 둥지, 부산

 6․25전쟁이 끝나고 인생의 황금기인 청년 시절까지 자신을 품어주고 가꾸어준 부산을 둘도 없는 ‘내 둥지’라고 말하는 김열규 교수. 광복로, 보수천, 자갈치, 영도다리, 중앙동 40계단, 범어사 등 그의 기억 속 부산은 과거와 현재를 종횡무진하며 변모했습니다. 지금은 ‘문화관광테마거리’로 바뀐 중앙동 40계단은 6․25전쟁 시대를 회고하는 역사박물관 거리라고 해도 될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 40계단의 중턱에는 ‘아코디언 켜는 사람’의 동상이 있는데, 이곳은 저자가 학생 시절, 좌익과 우익 학생의 싸움을 겪은 곳이라 김 교수에게는 아픈 사연이 깃든 장소입니다.

 한편, 지금의 부산 서구청에 위치했던 ‘대정(大正)공원’의 지명을 설명하면서 일본말로 ‘다이쇼’라고 하는 일본 왕의 칭호를 언급하고, 오늘날 국제시장의 전신인 ‘돗떼기시장’이 ‘돗따(取, 취할 취)’에서 왔다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을 설명합니다. 보수동 헌책방의 기원도 바로 이 ‘돗떼기시장’에 있다고 합니다. 그는 이곳에서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많은 책들을 수집했는데, 이 책들은 어린 김열규로 하여금 학문에 대한 열정을 갖게 하여, 훗날 학자 김열규로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지은이 : 김열규

쪽수 : 184쪽

판형 : 국판

ISBN : 978-89-6545-179-2 03810

값 : 11,000원

발행일 : 2012년 6월 28일

십진분류 : 814.6-KDC5

       895.744-DDC21


저자소개 >> 김열규

1932년 경남 고성 출생.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한국문학 및 민속학을 전공했다. 37년간 서강대학교에서, 11년간 인제대학교에서 전임교수로 있었고, 2년간 계명대학교에서 석좌교수로 재직하였다. 저서로 『행복』, 『한국인의 에로스』, 『욕, 카타르시스의 미학』, 『푸른 삶, 맑은 글』, 『왜 사냐면 웃지요』, 『한국 신화, 그 매혹의 스토리텔링』 등 50여 권이 있다.




차례>>


첫머리에 | 부산, 한국 현대사의 전위대

1부 자갈치를 낚싯대로 휘저으면서

알짜 부산 놈! 부평동에서 자라면서

부평동 ‘사거리’ 시장에서

부용동, 영생유치원과 항서교회에서

‘나가테 도오리(광복로)’의 야시장에서

전차에 얽힌 추억

용두산 신사에서 일본 신들에게 절하고

소년 독립투사의 투쟁

부민 이겨라! 봉래 이겨라!

‘후잔닛보(釜山日報)’에 글이 실리고

보수천 ‘검정다리’에서 물놀이

자갈치를 낚싯대로 휘저으면서

대신동, 고원견산에서 여우를 만나다

까치고개 넘어 괴정으로

하단과 명지에서 수박서리

송도에서 친구 목숨을 구하고

나의 영도다리

2부 얌생이와 돗따

대연동 못골고개를 달리면서

감내 바다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수영의 군사 비행장 건설에 동원되다

부경대학교 앞뜰의 백사장에서 조개며 고동을 줍고

역사를 간직한 제1부두

‘학생 치안대’로 파출소 근무

중앙동 40계단과 ‘학생 연맹’

해운대 백사장에서 ‘적기가’를 부르고

‘대정공원’의 삼일절 기념식에서 우익의 테러를 당하다

국제시장의 전신, ‘돗데기시장’의 출발

대연동 못골 저수지에서 뱀과 헤엄치기 경주를

범일동 전차 정거장 지척에 공동 우물이 있었으니

6ㆍ25전쟁의 후방기지 제2부두에서

6ㆍ25난리 통의 부산 거리

부산의 전시 피난 대학

범어사의 인연

종장에| 내게 끼쳐진 부산이여!


늙은 소년의 아코디언 - 10점
김열규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편집자의 일이라는 것이 보통, 책상 앞에 찰싹 달라붙어 하는 일입니다. 원고 위에서, 혹은 컴퓨터 앞에서, 모래알 같은 글자들을 젓가락으로 고르거나 집어내는 것이 주된 일입니다. 그리고 역시 모래알 같은 글자들을 보며, 세상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기도 합니다. TV나 신문만큼 빠르지않고 또 미리 확보된 시청자나 구독자도 없지만, 출판사도 세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통로니까요. 이 통로의 중간에서, 
편집자는 일종의 거름막 같은 역할을 합니다. 작가가 쓴 글이 독자의 가슴 속으로 더 잘 스며들 수 있도록 곱게 빻아서 입자를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죠. 거기에 다른 재료를 좀 섞기도 하고, 있던 재료를 빼기도 합니다. 근데 그게 생각에 해로운지 아닌지를 알아야 하니, 편집자도 세상을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하는 것이겠지요.

  암튼, 편집자의 일은 대부분 컴퓨터와 원고와 책을 앞에 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제는 처음으로 외근이란 걸 했습니다. 김열규 선생님께서 부산일보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고 있는데, 거기에 들어갈 사진이 필요했거든요. 1930~1940년대, 그러니까 지금으로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소년 김열규'가 천방지축 뛰어놀았던 남포동 일대를 찾아나섰습니다. 물론 예전의 그 모습들을 그대로 찾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비석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곳은 찾는 것도 힘들었지요. 보수천에 걸려있던 검정다리는 보수천이 복개되는 바람에 덩달아 사라졌고, 부평시장엔 아케이드가 설치된 지극히 현대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동광초등학교엔 비석과 옛터만 쓸쓸히 남아있었고, 40계단 옆에 있던 '학생 연맹'은 그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역사는 흘러가기 마련이고, '학생 연맹'은 기억하기엔 너무 아픈 역사의 장소지만, 부산은 과거를 담은 공간들이 너무 빨리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검정다리추억비 옆으로 포장된 도로(흑교로)가 원래는 보수천이었습니다. 지금은 자동차가 다니지만, 예전엔 깨끗한 물이 자갈치로 해서 바다로 흘러들었다고 합니다. 아, 얼마나 시원했을까요. 특히 검정다리가 있던 곳은 물이 얕은 폭포가 되어 쏟아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니 풀장 치고도 일급 풀장인 이곳에서 수영복도 걸치지 않은 꼬마들이 제 세상 만난 듯이 놀아 댔다는군요. 김열규 선생님도 개구리처럼 첨벙 뛰어들었답니다.ㅎㅎ

》보수천 '검정다리'서 물놀이 (부산일보 연재 보기)  
 



부평시장이 있던 부평사거리는 일제강점기시절, 대표적인 일본인 상가 거리였다고 합니다. 국제시장이 생기기 전에는, 부산은 물론 전국에서도 규모를 자랑했다고 합니다. 그런 곳에서 조선 사람의 가게는 달랑 넷 뿐이었다고 합니다. 그중 한 곳이 주류도매상이었던 김열규 선생님의 집이었고요.
지금은 아케이드가 설치되어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미관상 그리 아름답지도 않고, 시장의 북적거림과 활기도 사라진 느낌이지만, 비가 올 때도 불편함없이 장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큰 장점입니다. 김열규 선생님이 어릴 적 부모님 몰래 사먹었던 '뿌시래기'를 지금의 부평시장에서도 살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부평동 사거리 시장에서 (부산일보 연재 보기)





이곳은 동광초등학교 옛터입니다. 지금은 용두산 공영주차장이 들어서 있는 곳입니다. 주차장 뒤쪽으로 올라가면 당시 학교에 세워져있던 기념탑, 국민교육현장기념탑, 반공소년 이승복 동상도 볼 수 있습니다. 겨울인데다가, 정말 옛 '터'만 남아있어서 쓸쓸하기가 그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터도 곧 허물고, <영화체험박물관>을 짓는다고 하네요. 
일제강점기 시절에 동광초등학교는 일본인만 다니던 소학교였다고 합니다. 학교 건물이나 규모가 '일선학교(조선인과 일본인이 함께 다니던 학교)'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좋았다지요. 어린 마음에 분통이 터지고 시기심이 솟구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쪽발이 새끼들! XXX! "하고 '욕폭탄'을 동광초등학교에 던지고 왔다는데, 아주 머리쓰다듬어 줄 일이죠.

 
》소년 독립투사의 투쟁 (부산일보 연재 보기)



마지막으로 카메라에 담은 곳은 유명한 40계단입니다. 박주홍의 '경상도 아가씨'를 연주하는 아코디언 켜는 사람과 뻥튀기하는 아저씨를 만날 수 있지요.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피난민들의 한이 서린 곳입니다. 
그런데 전쟁 전만해도 이 40계단 중간쯤에 '학생 연맹'이라는 우익 단체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좌와 우의 격렬한 분열 속에, 학생들도 각각 '학생 동맹'과 '학생 연맹'으로 대치한 상황이었지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다가 좌익으로 몰아 괴롭히곤 했다는데, 김열규 선생님도 그 파장에 걸려든 적이 있었답니다. 훗날, 아코디언 동상을 지날 때 다리를 저리게 만들었던 그 날의 일을, 그저 잊기만 해선 안 될 것입니다.

 》중앙동 40계단과 '학생 연맹(부산일보 연재 보기)



옛 모습을 찾아다니는 건 마음 시원한 일이었습니다. 아스팔트와 자동차에 막혀있는 이 곳이 원래는 강이 흐르고 널따란 땅이었다는 걸 생각하니, 마치 커다란 캔버스에 몇 개의 점만 찍혀있는 단순한 그림을 보는 것처럼 가벼워졌습니다. 편집자의 출사는 오랜만에, 따뜻한 겨울날 봄을 느꼈던 하루였습니다.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