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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3.25 제71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신정민『나이지리아의 모자』

 

 

어제였죠?

3월 23일(화) 제71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번의 책은 산지니 시인선 열두 번째 작품인 신정민 시집 『나이지리아의 모자』였는데요,

저자 신정민 시인과 문학평론가 구모룡 선생님의 대담으로 진행됐습니다.

 

 

오늘 행사의 포문을 열어주신 잠홍 편집자님!

『나이지리아의 모자』 중에서 <좋아한다는 말>을 읽고 식곤증을 이겨내셨다는데요.

'좋아한다'는 말이 '전어를 죽이고, 회 한 접시를 만들어낸다'라는 시를 보면서

제목과는 또 다른 반전이 숨어있는 시집이라고 이야기해주셨어요.

 

 

사실 이 날의 행사는 시인과 문학평론가의 '대담'이라기 보다

함께 시를 읽고, 시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혹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여러 편의 시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 중 기억에 남는(저의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으로~) 

시와 이야기들을 옮겨볼까 합니다.

 

<색깔빙고>

 

무지개의 본질은 흑백이므로

 

회색분자들이여

무지개를 그려보자

 

그림자가 우리를 속일 수 있게

 

옷장을 열어보자

새빨간 거짓말 코트를 입어보자

말만 번지르르한 헛소리 흰색으로 칠해보자

 

알래스카의 무지개는 삼원색으로

아프리타 인디언의 무지개는 스물하나 크레용으로

 

검은색은 현상일 뿐

검은 것 아닌 검은색 가까이 다가가 보자

 

가다 만난 회색으로

흰 것 아닌 흰색 멀리 도망쳐보자

도망치다 만난 무지개를 그려보자

 

모든 색을 다 쥐고 있는 태양

 

바다가 갖지 못한 푸른색으로

빨간색만 빼고 나머지 색을 다 감춰버린 원숭이 엉덩이로

익어버린 망고가 내놓지 않은 노란색으로

 

싸우는 자들의 본색이 드러나게

흉내 낼 수 없는 흑과 백 사이의 일탈을

 

구모룡 문학평론가(이하 구) : 눈으로 본다는 것은 문화입니다. 부시맨은 모래를 오십 가지를 구분하는데 호주사람들에게 모래는 딱 한 가지 밖에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것밖에 보지 않았다는 거거든요. 우리가 보는 눈이라는 감각이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색깔빙고>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신정민 선생의 시를 보면 우리가 보는 것이 진실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이 시를 쓰실때 어떻게 착상을 했습니까?

 

신정민 시인(이하 신) : 우리는 보통 흰 것 아니면 검은 것으로 이분을 하잖아요. 이분된 것 안에는 수만 가지의 또다른 것들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굉장히 복잡미묘한 무언가가 있을텐데, 우리는 그저 너는 너고 나는 나로 넘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회색분자여서 검정도 흰 것도 아닌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는데, 아프리카 무지개가 24가지 색이라는 거예요. 저는 무지개가 12가지라고 생각했는데, 색과 색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다른 색이 존재하는 거죠.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시는 그러한 지점에서 시작한 시입니다.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시가 될 것 같지 않아서 빙고게임을 가지고 왔어요. 같은 색이 되어야 빙고!를 외칠 수 있는 게임인데, 이 시에서는 빙고가 되지 못하는 색깔빙고가 되겠네요.

 

: 시를 쓰실 때 어떤 방식으로 쓰시는지요? 예컨데 제목을 나중에 쓴다던가 한 문장 한 문장 고심을 해서 글로 옮긴다던가.

 

: 저는 생각은 오래하고, 쓰기 시작하면 득달같이 쓰는 타입이에요. <색깔빙고>도 평소에 했던 제 생각들이 불쑥 나온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 참 재밌는 착상이고, 재밌는 시네요. 우리는 빙고라고 외칠 수 없는데 빙고라고 외치고 있진 않나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방추상회>*

 

내 머릿속에는 얼굴을 지워주는 가게가 있다

 

배꼽 근처의 타투를 지우듯

당신이 누구였는지 알아볼 수 없게

생전 처음 보는 얼굴로 바꿔주는 곳

 

놀러오세요

구경만 하고 가셔도 됩니다

불편한 호객 따위 하지 않는 곳

 

그래서 나는 언제나 당신을 처음 보고

 

두부 대신 사 온 커다란 양배추 주머니의 속의 붉은 두더지들

 

스물일곱 번의 꿈을 꾸고서도 단 하나의 꿈도 생각나지 않는

잔인한 농담을 처리해주는 곳

 

당신이 버린 얼굴들의 매립지

버린 것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조금 전까지 읽고 있었던 책을

감쪽같이 보관해주는 곳

 

아름다운 건 늘 처음 보는 것

 

생각날 듯 끝내 생각나지 않는

화이트 아웃 혹은 블랙아웃을 포장해주는 집

 

다양한 이목구비

헤어지면서 잊어버릴 수 있게

부위별 깜짝 구매가 가능한 곳

 

방바닥에 귀를 대고 아래층 소리를 엿듣는

목요일이었던 남자를 읽는 깊은 바까지

기어이 잊어주는 곳이 있다

 

(* 뇌 중에 얼굴을 알아보는 기능을 하는 곳)

 

: 제가 기억력이 정말 없어요. 점점 더 기억력이 약해지는 것 같아서 백과사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백과사전에 방추상회라는 것을 보는 순간, '아! 참 재밌겠다'란 생각을 하게 됐죠. 그때 마침 <목요일의 남자>라는 소설도 읽었어요. 사람의 이름을 목요일이라고 명명하는 게 참 재밌는 거예요. 그게 방추상회와 만난 게 이 시가 아닐까 싶어요. 나는 잊어버리지만, 그 기억들은 어딘가에 저장이 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에서 시작해서 방추상회라는 시가 완성됐죠. 착상이 참 재밌었던 시입니다.

 

: 의식이나 기억들이 지워지고, 오히려 최초의 기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의미있는 말인 것 같아요. 시에서 '아름다운 건 늘 처음 보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이 이러한 의미를 잘 보여주지 않나 싶습니다.

 

 

 

<나이지리아의 모자>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모자를 뜬다

빈곤이 만들어낸 심연과 굴욕에 씌워줄

빼앗긴 대지에 씌워줄 무늬 없는 모자

뉴욕만큼 비싼 물가와

사하라 사막에서 날아온 모래먼지의 나라

노예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아이들

강제 노역과 매질에 필요한

강한 바람과 우기의 천둘에게 씌워질 모자

회색의 열풍

나무에 매달린 채로 발아하는

맹그로브 숲의 씨앗들에게 씌워줄 모자를 뜬다

시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단어들만 있고 그리움이 없다면

내일은 오겠지만 당신이 없다면

어머니가 되기 좋은 나라에서 온 편지

답자 대신 모자를 뜬다

시는 사랑이 쓰는 거라서

그리움만이 단어를 찾아 떠나고

당신이 없다면 내일도 없다고

손끝에서 태어나는 모자

생명과 두려움

그 둥근 실타래를 풀어 뜬다

태어난 날 사망하는 나이지리아의 체온

작고 검은 얼굴에 어울리는 푸른 햇살로

모자를 뜬다

한여름 나이지리아의 고무단이 촘촘하다

 

표제작인 <나이지리아의 모자>에 대해 이야기해봐야 겠죠?  이 시에서의 지향점은 인류애, 타자에 대한 이해인데 이는 시인들의 지향점이라고도 보입니다. 

 

: 우리 딸아이가 아프리카로 보낼 모자를 항상 만들어요. 시집도 안 간 이 친구에게는 13살짜리 아들이 아프리카에 있고 그래요. 그걸 보면서 생각했어요. 이렇게 멀리서도 사랑을 줄 수 있는거구나.  이 아이가 뜬 모자를 통해 한 생명이 살 수도 있는거구나. 시집의 제목을 정할 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이 시가 가장 편하고 솔직하다고 생각했어요. 먼 곳에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하나쯤 나올 수 있다고도 생각했고요.

 

 

: 시를 함께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니 신정민 시인의 창작 방법이 궁금해요. 저는 이 시집을 보면서 제목을 먼저 보고, 시를 읽고 다시 제목을 보게 되더라고요. 그만큼 제목이 참 재밌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수께끼 문제를 푸는 것 같은 느낌도 있고.

 

: 이 시집에는 시를 먼저 쓰고 제목을 붙인 것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제목부터 정하고 시를 썼는데요. 가령 <헝그리 복서>, <새로운 신앙>과 같은 작품은 시부터 쓰고 제목을 붙였어요.

 

: <선글라스 선글라스>, <라면은 슬프다>, <뿔> 이런 작품들을 보면 이미지들을 결합하여 하나의 시로 완성했더라고요.

 

: 연상에서 비롯되어 의미를 만드는 시들이 많죠. <마리오네뜨>라는 시는 경험에서 시작해서 여러 연상을 통해 완성한 시인데요. 버스 기사 아저씨가 동전 떨어지는 소리만 듣고 저 승객이 돈을 덜 냈는지 아는 거예요. 그래서 막 소리를 치시는데, 이 승객은 돈이 모자랐는지 어쨌는지 버스 손잡이를 잡고 흔들리며 서 있는데 그 모습이 마리오네뜨 인형처럼 느껴졌어요. 우리는 바삐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지만, 그것이 어쩌면 누군가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쓴 시죠.

 

 

 

끝으로 구모룡 평론가 님께서 <중심>이라는 시를 낭독해주셨습니다.

 

<중심>

 

귀앓이 때에는 귀가

치질 도졌을 떈 똥구멍이

사랑니 솟구칠 떈 잇몸 가장 깉은 곳이

가장 아픈 곳이

 

가장 아픈 곳이 '중심'이라는 이 시의 말처럼

현재 우리를 지치고 힘들게 하는 부분들의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날 봄이라는 계절이 무색할 만큼 날이 많이 추웠는데요,

그래도 많은 분들이 참석하셔서,

함께 시를 읽을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신정민 시인, 구모룡 문학평론가 님을 비롯하여

참석해주신 모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72회 저자와의 만남에서 또 만나요 : )

 

 

나이지리아의 모자 - 10점
신정민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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